<일요기획> 신음하는 동물원 실태&해법

  • 이광호 khlee@ilyosisa.co.kr
  • 등록 2013.10.08 09:4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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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도 원숭이도 “끙끙 앓고 있다”

[일요시사=사회팀] 동물원은 밝고 즐거운 공간이다. 다양한 동물과의 상호작용은 가족과 연인에게 행복을 가져다준다. 때문에 동물들은 끊임없이 사람들 앞에서 재롱을 떨어야 한다. 그 이면에는 동물들의 아픔이 서리어 있다.




말 못하는 동물을 학대하는 행위, 과연 어제오늘의 일일까. 최근 경기도 고양시에 위치한 테마동물원 쥬쥬에서 조련사가 바다코끼리를 발로 차고 때리는 등 학대하는 행위가 발각돼 세간에 알려지며 동물권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지난달 29일 동물보호시민단체 ‘카라’는 바다코끼리 학대 장면이 담긴 동영상을 언론에 공개했고, 지난 2일 해당 동물원을 의정부지방검찰청에 고발했다.

조용히 자행돼온
동물원 동물학대

이번 동물학대 사건을 계기로 많은 사람들이 동물권리의 실태를 깨닫고 그 심각성에 공감하고 있는 분위기다. 이에 민주당 장하나 의원은 동물을 기준 이하의 열악한 환경에서 사육하거나 관람을 위해 위협적 방법으로 훈련시킬 경우 동물원장은 처벌을 받게 하는‘동물원법 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장 의원은 지난달 30일 국회 정론관에서 동물자유연대, 동물보호시민단체 카라, 동물을위한행동, 핫핑크돌핀스, 동물사랑실천협회, 한국동물보호연합 등 동물보호단체들과 함께 법안 발의 배경을 설명했다.

현행법상 동물원과 관련한 명시적 정의 및 기준을 포함하고 있는 법률은 전무한 실정이다.


동물복지에 관한 사항을 규정하는 ‘동물보호법’의 경우 동물원 내 동물에 관한 사항을 별도로 정의하고 있지 않으며 동물원은 도시공원 및 녹지 등에 관한 법률, 자연공원법 및 박물관 및 미술관진흥법 상 각각 교양시설, 공원시설, 박물관의 한 종류로 취급되고 있을 뿐이다.

영국, 뉴질랜드, 오스트리아, 체코, 덴마트 등 해외 여러 국가는 이미 동물원의 운영 및 사육기준에 관한 사항을 법률로 규정하고 있어 동물원 전반에 대한 관련법 마련의 필요성에 대한 요구가 계속돼 왔다.
장 의원이 발의한 동물원법이 통과되면 환경부는 장관 소속으로 동물원 등 관리위원회를 두고 동물원 등 설립의 허가·변경에 관한 사항 등을 심사·의결하게 해야 한다.

동물원 등을 설립하고자 하는 자는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요건을 갖추어 환경부 장관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또한, 동물원 등 이용자의 관람을 목적으로 하는 인위적 훈련이 금지되며 동물이 수의학적 처치를 요할 경우 동물원장은 즉시 적절한 방법으로 조치해야 한다.

환경부 장관은 동물원 사육이 부적합한 동물에 대해 매년 고시해 사육을 금지하게 되며 동물원 등의 장은 매년 상·하반기 각각 1회씩 동물원 사육현황을 작성해 환경부장관에게 제출하도록 했으며 동물원 등 관리위원회 위원 또는 관계 공무원의 동물원 등에 관한 출입 및 검사권한을 가지게 된다.

장 의원은 “동물원의 건강하고 건전한 운영을 위해서는 동물원 관련법이 시급히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좁은 철장 안에서
평생을 사는 동물

많은 사람들이 동물원을 방문한다. 이제는 동물원, 수족관뿐 아니라 체험전시장, 이동동물원, 체험카페, 생태체험 등의 이름으로 도시 곳곳에서 살아있는 동물을 전시하는 시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주말 나들이 장소로도, 어린 학생들의 견학 장소로도 이용되는 동물원에서 사람들은 평소 볼 수 없는 동물을 가까이서 구경하고 재주를 부리는 모습을 보면서 즐거움을 느낀다. 그러나 동물원에 전시되는 동물들은 과연 어떨까. 행복한 삶을 살고 있을까.


각기 다른 환경에서 온 여러 종의 동물을 한 곳에 모아놓고 극도로 제한된 공간에서 관람객에게 전시하는 동물원에서 동물들은 정신적, 신체적 고통에 노출돼 있다. 무리를 지어서 이동하는 일, 먹이를 찾아다니는 일, 날기, 수영하기, 뛰기, 짝짓기, 땅파기 등 야생동물로서 생태적 습성에 따라 본능적으로 보이는 행동은 모두 제약을 받는다.

심지어는 인위적인 방법으로 습성과는 상관없는 우스꽝스러운 재주를 부리도록 훈련하는 과정에서 학대와 폭력이 발생한다. 많은 동물들이 이런 정신적, 신체적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하고 위장장애 등 만성 질병에 시달리거나 무기력증, 상동증(정신분열 증상의 일종) 등의 정신질환 증세를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에는 동물원이 동물들이 목마름과 배고픔, 더위와 추위를 피하고, 적어도 정상적인 움직임이 가능한 시설에서 사육하도록 하는 최소한의 법적 기준도 마련돼 있지 않은 실정이다.

동물자유연대를 비롯한 동물보호단체에는 전시시설에서 학대를 목격했다는 제보가 끊임없이 들어오고 있다고 한다. 만지려고 달려드는 아이들을 피할 공간도, 기력도 없는 토끼와 고슴도치, 꼬집고 잡아당기는 조련사의 손에 이끌려 재주를 부려야 하는 오랑우탄, 뙤약볕에서 물 한 그릇 없이 하루 종일 철창 안을 빙글빙글 도는 곰은 모두 법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분명 동물이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이 명백한데도 불구하고 시민들이나 동물보호단체가 동물원에 개선을 요구할 법적 근거가 없는 상황이다.

동물원 동물이 자연서식지에서와 같은 삶은 누리지 못하더라도, 최소한 열악한 환경에서 방치되거나 부적절한 관리를 받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동물들을 위한 법 제정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해외에서는 동물들의 권리를 어떻게 지키고 있을까.

동물권 개선에
어떤 움직임 있나

도시화의 확산으로 인한 자연체험 경험의 감소, 가족중심 여가문화의 확산 및 각종 교육과정에서의 체험학습 강화추세는 동물원에 대한 수요증가로 이어지고 있다. 옛날부터 국내에 서식하지 않는 동물을 도입하여 사육했던 기록이 역사 문헌에 존재하고 있다.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태종11년(1411년) 일본으로부터 들여온 코끼리 1마리를 10년 이상 사육한 기록이 남아있다. 근대적 의미에서의 우리나라 동물원은 1909년 ‘창경원’이 시초다. 이 창경원은 일제가 창경궁을 창경원으로 격하시켜 조선의 권위적 상징을 지운 아픈 역사도 깃들어 있다.

본래 동물원은 종 보존, 교육, 여가 및 과학적 연구 등의 복합적 기능을 수행하는 공간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의 경우 아직도 동물원에 대한 체계적인 법률 및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고 있지 않은 상황이다. 이에 동물원 관련 국내·외 법률현황과 동물원에 대한 제도적 개선 방안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현재 국내에서 운영 중인 동물원은 2011년 말 기준으로 수족관 5개소를 포함하여 17개소로 파악되고 있다. 동물원은 운영주체에 따라 다른 법률에 근거하고 있다. 지방자치단체 운영 동물원은 도시공원 및 녹지 등에 관한 법률과 자연공원법 시행령에 근거하고 있으며, 기업·개인이 설립한 동물원은 박물관 및 미술관 진흥법, 관광진흥법을 따른다.

계속되는 학대 논란에 ‘동물복지법’급물살
체계적 제도 보완 ‘동물원 개선안’도 추진

야생동물 보호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제 35조에 따라 동물원은 생물자원 보전시설로 등록될 수 있으나 시설기준은 마련되어 있지 않다. 야생동물 보호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시행규칙 제45조 제1항 제 1호 및 박물관 및 미술관 진흥법 시행령에 기준이 제시되어 있으나 시설 종류 및 인력 등에 관한 사항은 구체적으로 규정되어 있지 않다.

우선 영국의 경우를 보면 1984년부터 시행된 동물원 면허법으로 동물원의 허가 및 기준 등을 규정하고 있다. 이 법에서는 야생동물 전시를 목적으로 연중 7일 이상 대중에게 개방하는 영구적 시설을 동물원으로 정의하고 있다. 환경식품농촌부(DEFRA)가 주무부처로서 동물원 검사자의 명단을 작성하는 역할을 담당하지만 실제 집행은 지방정부의 환경부서가 수행하고 있다.


동물원의 설립 및 운영을 위한 면허취득 절차는 공고, 제출, 심의, 허가(또는 불허), 조건부여의 총 5단계로 진행되며, 발급된 면허는 신규발급의 경우 4년, 갱신의 경우 6년간 유효하다. 면허 발급 후에도 동물원에 대하여 정기검사, 특별검사, 비공식 검사 등이 이루어진다. 검사는 지방정부가 지명하는 3인(수의사 1인, 기타 2인)에 의해 이루어지며 ‘현대동물원운영기준(SSSMZP)의 준수 여부가 주된 검사대상이 된다.

동물원 운영기준을 보면 DEFRA는 2000년 3월 동물원 면허법 제9조에 따라 동물원과 동물에 대한 관리기준을 정했다. 여기에서는 동물원 동물복지 5대원칙을 제시하고 있다. 그 내용을 보면 물과 음식, 적당한 환경, 동물 건강관리, 가장 정상적인 행동을 표현할 수 있는 기회, 공포와 고통으로부터 보호 제공 등이 있다. 동물원 환경에서 동물들이 정상적인 행동과 표현을 할 수 있도록 적절한 편의시설과 치료 및 공포·고통으로부터 보호할 수 있는 시설을 갖출 것을 요구하는 것이다. 이와 더불어 동물원 이용객이 안전하게 관람할 수 있도록 고려해야 할 사항 및 보존과 대중교육 등에 대한 사항 등을 담고 있다.




동물원 검사자는 동 기준을 토대로 검사를 수행하고 검사결과에 따라 동물원 면허 발급 여부를 결정하여 지방정부의 관련부서에 의견을 제시하게 된다. 이와 더불어 과학자, 수의사, 동물보존기구 관계자 등 동물복지 및 보존 관련 전문가들로 구성된 동물원 포럼이 동물원 동물 관리 편람을 만들어 세부적인 기준을 제시해주고 있다.

EU는 1999년 동물원이 야생동물 보존, 동물복지, 대중 교육 및 과학적 연구를 수행하도록 규정한 지침을 제정했다. 총 11장으로 구성된 동 지침은 동물원과 관련한 구체적인 기준을 제시하기보다는 각 회원국으로 하여금 지침의 목적을 따를 수 있는 기술적 기준들을 작성하고 준수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동 지침은 회원국들로 하여금 2002년 4월까지 국내법으로 지침 내용을 구체화하도록 하고 있었다. 이에 대해 영국은 동물원 관련 별도의 법령에 지침의 내용을 반영한 반면, 독일의 경우 자연환경보전에 관한 법률에 지침 내용을 포함시키는 등 각국의 상황별로 다른 방식과 수준으로 지침의 내용이 반영됐다.

동 지침은 회원국들로 하여금 회원국들이 야생 동·식물을 보호하고 종다양성을 보전하도록 동물원의 허가 및 검사에 관한 사항을 채택하도록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또한 연간 7일 이상 대중 전시를 위해 야생 종의 동물들을 보유하고 있는 모든 영구적 시설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동아시아 최초
동물복지법 발의

지침은 동물원의 역할을 종에 대한 보존, 보존 기술의 훈련, 종 보존 정보의 교환, 적절한 포획·번식·재생산 및 야생으로의 재입식으로 규정하고 있다. 또한 개별 종의 생물학적 보전을 위해 필요한 사항을 충족시킬 수 있는 공간들을 제공하고 높은 수준의 동물 사육 기준을 유지하도록 하고 있다. 이와 더불어 토착종에 대한 생물학적 위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종의 탈출과 외래종 유입을 예방하며, 보유한 종에 대한 기록을 최신상태로 유지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또한 회원국들은 지침에 따라 기존 및 신규 동물원이 지침에서 요구하는 사항들을 충족할 수 있도록 허가 및 검사를 위한 수단들을 채택해야 하며, 만약 지침에 따른 허가를 받지 못할 경우 해당 동물원을 폐쇄시키거나 별도로 허가 조건을 부여하도록 하고 있다.

회원국 가운데 27개국이 동 지침에 대한 국내법적 수용 작업을 마무리했다. 동물원 관리를 담당하는 주무부처는 국가별로 차이를 보이고 있는데 프랑스와 이탈리아는 중앙정부가 담당하는 데 비해 핀란드, 스페인 등은 지역 및 지방정부가 담당하도록 하고 있다. 중앙정부가 담당하는 경우에 있어서도 보건부(오스트리아), 환경부(체코), 법무부(덴마크), 농업부(네덜란드), 환경식품농촌부(영국) 등 각국마다 상이한 것으로 파악된다.

지침의 수용 수준에 있어서 독일은 지침과 관련한 최소한의 사항만을 국내법에 포함시킨 데 비해 영국은 지침에서 언급된 대부분의 사항들을 국내법으로 반영하는 등 지침의 국내법적 수용 수준에 있어 각국마다 큰 차이를 드러내고 있다.

미국의 경우는 1877년 28시간법(동물 수송 시 28시간에 한번씩 물과 사료를 공급해야하는 규정) 이후 다수의 동물 관련 법률을 제정하고 있으나 동물원 관련 별도의 법률은 없다. 그러나 민간단체인 미국동물원수족관협회(AZA)가 수행하는 동물원 인증제가 실시되고 있다.

AZA는 동물원의 서식환경, 사회적 그룹유지, 동물관리와 치료에 대한 협회 기준 준수 여부, 수의·교육 프로그램, 안정정책 및 과정 등 광범위한 항목에 대한 평가를 통해 인증을 실시하고 있으며 2007년 기준으로 미국 내 216개 동물원과 수족관에 대한 인증을 실시한 바 있다. 부여된 인증서는 5년간 유효하도록 정하고 있다.

국내 17개소 운영…대부분 관리 부실
스트레스 시달리다 정신질환 증세도

우리나라에는 다수의 동물원이 존재하고 있지만 동물원의 설립, 운영 및 관리에 대한 법률 및 체계적인 제도가 마련되어 있지 않은 상황이다.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가칭)동물원의 설립 및 운영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거나 기존의 관련 법률의 개정이 필요하다고 여겨지며, 이 과정에서 다음의 사항들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판단된다.

첫째, 동물원의 정의, 범위 및 역할이 명시되어야 할 것이다. 이를 통해 여러 법률에 분산되어 있는 동물원의 역할과 기능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둘째, EU 및 영국의 사례와 같은 동물원 인증제 실시를 검토할 수 있다. 인증제는 동물원 관리 주체로 하여금 동물원 관리에 대하여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도록 유도할 수 있으며, 이용객에게 해당 동물원의 관리운영 실태에 대한 정확한 정보제공을 가능하게 할 수 있다.
셋째, 동물원 관리의 주무부처의 지정은 동물원의 주요 기능, 관련 인력의 관리 등을 토대로 검토되어야 하며, 지방자치단체와의 역할 분담도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민주당 한명숙·진선미 의원, 정의당 심상정 의원, 새누리당 문정림 의원 및 녹색당, 생명권네트워크 변호인단, 동물보호시민단체 카라 등은 지난 1일 국회에서 공동으로 기자회견을 열고 현재의 동물보호법을 동물복지법으로 명칭을 바꾸고 동물학대 금지조항 및 처벌 강화, 실험동물 지위 부여, 동물복지축산 원칙 제시 등을 핵심으로 하는 동물보호법 전면 개정안을 발의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동물은 우리 삶의 일부가 된 지 이미 오래”라면서 “우리나라가 선진국으로 나가기 위해서는, 국민의 복지개선과 함께 인간과 함께하는 동물의 복지가 개선되어야 한다”며 이와 같이 밝혔다.

이들은 “동물조차 존중받는 세상이라면 당연히 인간도 행복한 세상일 것”이라며 “동물복지법이 실효성 있는 규범이 된다면, 단언컨대 동물뿐만 아니라, 인간의 삶 또한 개선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번에 발의된 동물복지법은 동아시아 최초다.


이광호 기자 <khlee@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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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특집 대담> 정치 9단 김종인 대한민국을 묻다

[추석특집 대담] 정치 9단 김종인 대한민국을 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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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검찰의 문제는 지금까지 권력자가 검찰을 이용해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려고 한 것으로부터 비롯된다. 이 때문에 검찰도 못된 버릇이 들어 이렇게 됐다. 개혁보다 “검찰을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진짜 문제다. 검찰을 3개로 찢어놓는다고 해서, 검찰이 정상적으로 돌아갈 것이란 확신은 못하겠다. -이 대통령이 노태우 전 대통령의 장남 재헌씨를 주중대사로 임명했다. 노 대사가 어떤 역할을 할 것 같은가? ▲노 전 대통령은 한중 수교를 이끌었다. 노 대사는 동아시아문화센터 이사장으로서 한중 문화 교류와 관련된 많은 역할을 했다. 이 대통령이 이를 참작해 중국 대사로 임명하는 신선한 인사를 한 것 같다. 이 대통령도 자신에게 정치적으로 유리하다고 생각했으니 노 대사를 임명했을 것이다. -최근 민주당의 내부 구도를 놓고 ‘김어준 상왕설’이 불거지고 있다. 이 주장은 정국을 강경하게 이끄는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대응과 맞물리고 있는데… ▲김어준씨가 유튜브를 시청하는 일정 부류엔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다. 그런데 대중에게 크게 영향력을 행사한다고 보진 않는다. 대통령이 엄연히 있기 때문이다. ‘상왕설’은 너무 과장된 얘기라고 생각한다. -최근 특검 수사 기간 연장과 관련해 정 대표와 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가 충돌했다. ▲내부 의견 충돌 때문에 일어난 사건이다. 내가 보기엔 김 원내대표가 독단적으로 합의한 것 같진 않다. 합의 후 강성 지지층이 반발해서 문제가 생겼다. 그래서 합의를 파기하려다 보니 두 사람 사이에 갈등이 생겼다. 그 자체가 대단히 중요하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이 대통령과 정 대표는 과거에 갈등이 많았고, 최근 민주당에 대해선 “친명과 구 친문이 갈등하는 게 아니냐”는 얘기가 나온다. ▲그건 다 괜히 하는 소리다. 대통령이 엄연히 있는데, 당 대표가 대통령을 상대로 자신의 의사를 관철하기가 쉽진 않다. -민주당 일각에선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에 합당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혁신당 조국 비대위원장은 목표가 정해진 사람이다. 합당이 그 목표 실현에 유리할지 많이 생각할 것이다. 아울러 조 비대위원장으로선 혁신당만으로 전국 단위 선거를 치를 수 있을지 고민할 텐데, 상황에 직면하면 합당 여부를 정하지 않겠나? 합당은 민주당 내부에서도 받아들일 의사가 있어야 진행될 수 있다. 자신들에게 미칠 영향을 생각하면서 합의점에 도달하면 합당 여부를 결정할 것이다. “대통령 있는데 당대표가 어떻게 의사 관철?” “장동혁은 대권 욕심 갖고 계속 변화할 것”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이 이끌던 국민의당과 혁신당은 총선을 치르면서 호남에서 선전해 존재감을 드러냈다. 내년 지방선거에서 호남 민심이 어떤 선택을 할 거라고 보나? ▲두고 봐야 안다. 호남 민심은 제19대 대선에선 안 의원이 아니라 문재인 전 대통령을 선택했다. 호남 유권자들은 상당히 전략적으로 투표한다. 그들은 정권 재창출이 가능한 후보에게 표를 몰아준다. 그러니 선거를 치러봐야 알 수 있다. 지금은 뭐라고 얘기하기 어렵다. -장 대표가 취임하자, 강경 보수 유튜버들은 “군소 보수 정당에 지방자치단체장 30석을 내놓으라”고 요구하고 있다. “국민의힘과 강경 보수 유튜버들이 너무 밀착한다”는 일각의 주장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는가? ▲국민의힘이 계속 지금과 같은 자세를 유지하면, 희망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 국민의힘은 지난해 12월 비상계엄 사태와 윤석열 전 대통령 파면 이후 우리 정치 지형이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냉철하게 분석해야 한다. 변화가 있어야 국민의 지지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요즘처럼 강경 보수로 회귀하면, 희망이 있다고 보이진 않는다. -장 대표는 강경 보수와의 밀착과 중도층 공략 사이에서 계속 의견이 바뀐다. ▲장 대표에게도 정치적 목표가 있을 텐데 그는 목표 달성을 위해 많은 변화를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강경 보수의 지원을 받아 당 대표가 됐지만, 자신의 정치적 지향점을 어떻게 결정할지 잘 생각해 봐야 한다. 만약 “지나치게 강경 보수와 밀착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면, 어느 정도는 그들과 선을 그을 필요가 있다. 하지만 선을 긋는 데 한계가 있을 것이다. 이를 극복하지 못하면, 그에게는 크게 정치적 기대를 하기 힘들다고 본다.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는 “장 대표가 용꿈을 꾸고 있다”고 평가한다. ▲장 대표도 어차피 당 대표가 됐으니, 대권 욕심을 가질 것이다. 정치인은 언제나 시대 변화에 적응해야 한다. 장 대표 스스로 “변화하는 능력이 있다”고 생각한다면, 계속 많이 변할 것이다.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는 장 대표가 당선되면서 위상이 많이 훼손됐다. 비상계엄 사태 이후 한 전 대표의 행보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국민의힘 당원들은 상당한 분노에 차 있었기 때문에 갑자기 강경해졌다. 세월이 흘러 당원들이 당을 위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알게 되면, 또 변할 수도 있다. 지금 상황만으로 판단하기엔 굉장히 이르다. 한 전 대표가 당시 여당 대표로서 비상계엄 선포 직후 반대 의견을 밝히면서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에 찬성한 것은 굉장히 용기 있는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그가 앞으로 어떻게 정치적으로 발전할지는 아직 모르겠다. 그래도 국민의힘에선 가장 올바른 판단을 했다고 본다. -장 대표가 한 전 대표에 대한 강경한 태도를 바꾸지 않고 있다. ▲장 대표로선 당연히 한 전 대표를 국민의힘에서 쫓아내고 싶을 것이다. 그런데 쫓아낼 수 있겠는가? 어떻게 쫓아내겠나? 오늘의 장 대표는 한 전 대표 덕분에 존재하는 것이다. -이 대표는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 오세훈 서울시장 등과 지방선거에서 연대할 가능성을 내비친다. ▲뻔한 사람들끼리 하는 거라서 큰 효과가 있을 것 같진 않다. 모두 국민의힘 사람이거나 국민의힘 출신인데 특별한 효과가 있겠는가? -진영 간 대결 구도가 성별·세대 갈등 구도로 번졌다. 정치권 원로로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건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시대·사회·경제 구조가 변하고, 새 기술이 도입되면 의견이 분분할 수밖에 없다. 국민 사이에 형성되는 ‘그룹’을 조화시킬 수 있는 정치적 능력이 필요하다. 이런 능력이 없는 사람은 정치적으로 성공할 수 없다. “이준석·안철수·오세훈? 뻔한 사람들” “국힘, 강경 보수로? 희망 보이지 않아” -일부 정치인은 갈등을 이용해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하면서 후원금을 벌고 있다. ▲큰 도움이 되진 않을 것이다. 갈등을 전체적으로 포괄한 후 최대공약수를 찾아 정치해야 한다. -과거 정치와 현재 정치의 가장 큰 변화와 차이점은? ▲못 살던 시절엔 먹고사는 게 가장 중요해서 경제가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 그런데 먹고사는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된 지금은 국민의 의식 구조가 과거와 다르다. 이 시대의 젊은 세대는 우리 국민 중 성숙도가 가장 높다. 정보를 활용할 수 있는 능력도 가장 좋다. 이들은 공정하지 못하고, 불평등하며, 민주적이지 않은 것에 크게 저항한다. 세대별로 약간의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누군가는 이를 두고 “극우화됐다”고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된다. -4050 남성이 2030 남성에게 가장 불만을 품는 부분은 “너희는 왜 국민의힘을 지지하면서 보수화되느냐”는 것이다. ▲2030 남성은 국민의힘을 지지하는 게 아니다. 최근 국민의힘은 장외 집회를 하고 있는데, 이들은 이런 걸 별로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이들은 너무 소란을 피우는 것 자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흔히들 “장 자크 루소가 얘기하는 계몽주의가 프랑스 대혁명을 낳았다”고 한다. 그런데 그 계몽주의가 뭔가? 성숙지 못한 국민을 성숙하게 만들어서 사회를 변화시킨다는 것이다. 우리 국민의 성숙도는 매우 높아졌다. 이 때문에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도 실패했다. 국민의 의식 수준이 높아지면, 정치가 이를 따라가야 하는데, 접근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 -정계의 킹메이커로 알려졌다. 대통령의 가장 중요한 덕목은 무엇인가? ▲대통령은 정직해야 한다. 시대 변화에 민감하게 적응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 대통령들이 모두 실패한 원인은 너무 탐욕스러웠고, 시대 변화를 제대로 못 따라갔다는 것이었다. -최근 한국 정치·사회에서 작게나마 희망을 봤거나 “아직은 희망이 있다”고 생각하거나 그 반대가 된 일이 있다면? ▲우리나라의 제일 시급한 과제는 아주 극단적인 양극화 현상이다. 이를 완화하지 않으면, 한국 정치는 국민통합을 이룰 수 없다. 우리는 초고령화 사회로 가고 있고, 출산율은 매우 낮다. 경제의 역동성이 거의 없어지고 있다. 정치인이 말로만 소통·통합을 외친들 아무 소용이 없다. -추석 연휴를 앞둔 <일요시사> 독자에게 남길 덕담 한마디가 있다면? ▲대통령을 선출하는 기준이 여론조사에 휩쓸리는 식으로 정해지면, 문제가 복잡해진다. 윤 전 대통령도 그렇게 대통령에 당선됐다. 오랫동안 검사였던 사람이 지도자가 된 사례가 세계적으로 별로 없다. 이들은 남의 부정적인 측면만 따지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창의적·긍정적 역할을 하기 힘든 사람들이다. 제가 그를 호의적으로 봤던 것도 큰 잘못이었다. 당시 국민의힘엔 대통령감이 없었다. 그래서 저는 윤 전 대통령의 여론조사 지지율이 높은 것을 일컬어 “별의 순간을 잡았다”고 말했다. 결국 윤 전 대통령은 제가 우려했던 행동을 했다. 저는 이승만 전 대통령 외엔 모든 대통령을 만나봤다. 직접 자문도 했고, 대통령 선거에 참여한 적도 있다. 이 경험을 토대로 <왜 대통령은 실패하는가>라는 책도 출간했다. 이들이 실패한 원인은 초심을 관철하지 못했단 것이었다. 박근혜·윤석열 전 대통령이 파면된 이유를 생각해야 한다. 이미 우리나라에선 오래전에 보수·진보가 사라졌다. 지난 1997년 김대중 전 대통령이 당선됐던 제15대 대선도 보수·진보의 싸움이 아니었다. 모두 보수였다. 1980년대 운동권 출신들은 정치권에 진출한 후 스스로 대단한 진보를 자처했다. 그런데 이들은 진보의 뜻도 모른다. 이들은 정권을 네 번 잡을 동안 양극화 하나도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이들이 무슨 진보 정권인가? 국민이 정치 상황을 냉철하게 관찰하시고 올바른 선택을 하는 자세를 갖추셔야 한다. 대통령·국회의원도 결국 국민이 선출한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길 바란다. <ctzxp@ilyosisa.co.kr>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