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기획> 신음하는 동물원 실태&해법

  • 이광호 khlee@ilyosisa.co.kr
  • 등록 2013.10.08 09:4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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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도 원숭이도 “끙끙 앓고 있다”

[일요시사=사회팀] 동물원은 밝고 즐거운 공간이다. 다양한 동물과의 상호작용은 가족과 연인에게 행복을 가져다준다. 때문에 동물들은 끊임없이 사람들 앞에서 재롱을 떨어야 한다. 그 이면에는 동물들의 아픔이 서리어 있다.




말 못하는 동물을 학대하는 행위, 과연 어제오늘의 일일까. 최근 경기도 고양시에 위치한 테마동물원 쥬쥬에서 조련사가 바다코끼리를 발로 차고 때리는 등 학대하는 행위가 발각돼 세간에 알려지며 동물권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지난달 29일 동물보호시민단체 ‘카라’는 바다코끼리 학대 장면이 담긴 동영상을 언론에 공개했고, 지난 2일 해당 동물원을 의정부지방검찰청에 고발했다.

조용히 자행돼온
동물원 동물학대

이번 동물학대 사건을 계기로 많은 사람들이 동물권리의 실태를 깨닫고 그 심각성에 공감하고 있는 분위기다. 이에 민주당 장하나 의원은 동물을 기준 이하의 열악한 환경에서 사육하거나 관람을 위해 위협적 방법으로 훈련시킬 경우 동물원장은 처벌을 받게 하는‘동물원법 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장 의원은 지난달 30일 국회 정론관에서 동물자유연대, 동물보호시민단체 카라, 동물을위한행동, 핫핑크돌핀스, 동물사랑실천협회, 한국동물보호연합 등 동물보호단체들과 함께 법안 발의 배경을 설명했다.

현행법상 동물원과 관련한 명시적 정의 및 기준을 포함하고 있는 법률은 전무한 실정이다.


동물복지에 관한 사항을 규정하는 ‘동물보호법’의 경우 동물원 내 동물에 관한 사항을 별도로 정의하고 있지 않으며 동물원은 도시공원 및 녹지 등에 관한 법률, 자연공원법 및 박물관 및 미술관진흥법 상 각각 교양시설, 공원시설, 박물관의 한 종류로 취급되고 있을 뿐이다.

영국, 뉴질랜드, 오스트리아, 체코, 덴마트 등 해외 여러 국가는 이미 동물원의 운영 및 사육기준에 관한 사항을 법률로 규정하고 있어 동물원 전반에 대한 관련법 마련의 필요성에 대한 요구가 계속돼 왔다.
장 의원이 발의한 동물원법이 통과되면 환경부는 장관 소속으로 동물원 등 관리위원회를 두고 동물원 등 설립의 허가·변경에 관한 사항 등을 심사·의결하게 해야 한다.

동물원 등을 설립하고자 하는 자는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요건을 갖추어 환경부 장관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또한, 동물원 등 이용자의 관람을 목적으로 하는 인위적 훈련이 금지되며 동물이 수의학적 처치를 요할 경우 동물원장은 즉시 적절한 방법으로 조치해야 한다.

환경부 장관은 동물원 사육이 부적합한 동물에 대해 매년 고시해 사육을 금지하게 되며 동물원 등의 장은 매년 상·하반기 각각 1회씩 동물원 사육현황을 작성해 환경부장관에게 제출하도록 했으며 동물원 등 관리위원회 위원 또는 관계 공무원의 동물원 등에 관한 출입 및 검사권한을 가지게 된다.

장 의원은 “동물원의 건강하고 건전한 운영을 위해서는 동물원 관련법이 시급히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좁은 철장 안에서
평생을 사는 동물

많은 사람들이 동물원을 방문한다. 이제는 동물원, 수족관뿐 아니라 체험전시장, 이동동물원, 체험카페, 생태체험 등의 이름으로 도시 곳곳에서 살아있는 동물을 전시하는 시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주말 나들이 장소로도, 어린 학생들의 견학 장소로도 이용되는 동물원에서 사람들은 평소 볼 수 없는 동물을 가까이서 구경하고 재주를 부리는 모습을 보면서 즐거움을 느낀다. 그러나 동물원에 전시되는 동물들은 과연 어떨까. 행복한 삶을 살고 있을까.


각기 다른 환경에서 온 여러 종의 동물을 한 곳에 모아놓고 극도로 제한된 공간에서 관람객에게 전시하는 동물원에서 동물들은 정신적, 신체적 고통에 노출돼 있다. 무리를 지어서 이동하는 일, 먹이를 찾아다니는 일, 날기, 수영하기, 뛰기, 짝짓기, 땅파기 등 야생동물로서 생태적 습성에 따라 본능적으로 보이는 행동은 모두 제약을 받는다.

심지어는 인위적인 방법으로 습성과는 상관없는 우스꽝스러운 재주를 부리도록 훈련하는 과정에서 학대와 폭력이 발생한다. 많은 동물들이 이런 정신적, 신체적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하고 위장장애 등 만성 질병에 시달리거나 무기력증, 상동증(정신분열 증상의 일종) 등의 정신질환 증세를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에는 동물원이 동물들이 목마름과 배고픔, 더위와 추위를 피하고, 적어도 정상적인 움직임이 가능한 시설에서 사육하도록 하는 최소한의 법적 기준도 마련돼 있지 않은 실정이다.

동물자유연대를 비롯한 동물보호단체에는 전시시설에서 학대를 목격했다는 제보가 끊임없이 들어오고 있다고 한다. 만지려고 달려드는 아이들을 피할 공간도, 기력도 없는 토끼와 고슴도치, 꼬집고 잡아당기는 조련사의 손에 이끌려 재주를 부려야 하는 오랑우탄, 뙤약볕에서 물 한 그릇 없이 하루 종일 철창 안을 빙글빙글 도는 곰은 모두 법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분명 동물이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이 명백한데도 불구하고 시민들이나 동물보호단체가 동물원에 개선을 요구할 법적 근거가 없는 상황이다.

동물원 동물이 자연서식지에서와 같은 삶은 누리지 못하더라도, 최소한 열악한 환경에서 방치되거나 부적절한 관리를 받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동물들을 위한 법 제정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해외에서는 동물들의 권리를 어떻게 지키고 있을까.

동물권 개선에
어떤 움직임 있나

도시화의 확산으로 인한 자연체험 경험의 감소, 가족중심 여가문화의 확산 및 각종 교육과정에서의 체험학습 강화추세는 동물원에 대한 수요증가로 이어지고 있다. 옛날부터 국내에 서식하지 않는 동물을 도입하여 사육했던 기록이 역사 문헌에 존재하고 있다.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태종11년(1411년) 일본으로부터 들여온 코끼리 1마리를 10년 이상 사육한 기록이 남아있다. 근대적 의미에서의 우리나라 동물원은 1909년 ‘창경원’이 시초다. 이 창경원은 일제가 창경궁을 창경원으로 격하시켜 조선의 권위적 상징을 지운 아픈 역사도 깃들어 있다.

본래 동물원은 종 보존, 교육, 여가 및 과학적 연구 등의 복합적 기능을 수행하는 공간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의 경우 아직도 동물원에 대한 체계적인 법률 및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고 있지 않은 상황이다. 이에 동물원 관련 국내·외 법률현황과 동물원에 대한 제도적 개선 방안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현재 국내에서 운영 중인 동물원은 2011년 말 기준으로 수족관 5개소를 포함하여 17개소로 파악되고 있다. 동물원은 운영주체에 따라 다른 법률에 근거하고 있다. 지방자치단체 운영 동물원은 도시공원 및 녹지 등에 관한 법률과 자연공원법 시행령에 근거하고 있으며, 기업·개인이 설립한 동물원은 박물관 및 미술관 진흥법, 관광진흥법을 따른다.

계속되는 학대 논란에 ‘동물복지법’급물살
체계적 제도 보완 ‘동물원 개선안’도 추진

야생동물 보호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제 35조에 따라 동물원은 생물자원 보전시설로 등록될 수 있으나 시설기준은 마련되어 있지 않다. 야생동물 보호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시행규칙 제45조 제1항 제 1호 및 박물관 및 미술관 진흥법 시행령에 기준이 제시되어 있으나 시설 종류 및 인력 등에 관한 사항은 구체적으로 규정되어 있지 않다.

우선 영국의 경우를 보면 1984년부터 시행된 동물원 면허법으로 동물원의 허가 및 기준 등을 규정하고 있다. 이 법에서는 야생동물 전시를 목적으로 연중 7일 이상 대중에게 개방하는 영구적 시설을 동물원으로 정의하고 있다. 환경식품농촌부(DEFRA)가 주무부처로서 동물원 검사자의 명단을 작성하는 역할을 담당하지만 실제 집행은 지방정부의 환경부서가 수행하고 있다.


동물원의 설립 및 운영을 위한 면허취득 절차는 공고, 제출, 심의, 허가(또는 불허), 조건부여의 총 5단계로 진행되며, 발급된 면허는 신규발급의 경우 4년, 갱신의 경우 6년간 유효하다. 면허 발급 후에도 동물원에 대하여 정기검사, 특별검사, 비공식 검사 등이 이루어진다. 검사는 지방정부가 지명하는 3인(수의사 1인, 기타 2인)에 의해 이루어지며 ‘현대동물원운영기준(SSSMZP)의 준수 여부가 주된 검사대상이 된다.

동물원 운영기준을 보면 DEFRA는 2000년 3월 동물원 면허법 제9조에 따라 동물원과 동물에 대한 관리기준을 정했다. 여기에서는 동물원 동물복지 5대원칙을 제시하고 있다. 그 내용을 보면 물과 음식, 적당한 환경, 동물 건강관리, 가장 정상적인 행동을 표현할 수 있는 기회, 공포와 고통으로부터 보호 제공 등이 있다. 동물원 환경에서 동물들이 정상적인 행동과 표현을 할 수 있도록 적절한 편의시설과 치료 및 공포·고통으로부터 보호할 수 있는 시설을 갖출 것을 요구하는 것이다. 이와 더불어 동물원 이용객이 안전하게 관람할 수 있도록 고려해야 할 사항 및 보존과 대중교육 등에 대한 사항 등을 담고 있다.




동물원 검사자는 동 기준을 토대로 검사를 수행하고 검사결과에 따라 동물원 면허 발급 여부를 결정하여 지방정부의 관련부서에 의견을 제시하게 된다. 이와 더불어 과학자, 수의사, 동물보존기구 관계자 등 동물복지 및 보존 관련 전문가들로 구성된 동물원 포럼이 동물원 동물 관리 편람을 만들어 세부적인 기준을 제시해주고 있다.

EU는 1999년 동물원이 야생동물 보존, 동물복지, 대중 교육 및 과학적 연구를 수행하도록 규정한 지침을 제정했다. 총 11장으로 구성된 동 지침은 동물원과 관련한 구체적인 기준을 제시하기보다는 각 회원국으로 하여금 지침의 목적을 따를 수 있는 기술적 기준들을 작성하고 준수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동 지침은 회원국들로 하여금 2002년 4월까지 국내법으로 지침 내용을 구체화하도록 하고 있었다. 이에 대해 영국은 동물원 관련 별도의 법령에 지침의 내용을 반영한 반면, 독일의 경우 자연환경보전에 관한 법률에 지침 내용을 포함시키는 등 각국의 상황별로 다른 방식과 수준으로 지침의 내용이 반영됐다.

동 지침은 회원국들로 하여금 회원국들이 야생 동·식물을 보호하고 종다양성을 보전하도록 동물원의 허가 및 검사에 관한 사항을 채택하도록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또한 연간 7일 이상 대중 전시를 위해 야생 종의 동물들을 보유하고 있는 모든 영구적 시설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동아시아 최초
동물복지법 발의

지침은 동물원의 역할을 종에 대한 보존, 보존 기술의 훈련, 종 보존 정보의 교환, 적절한 포획·번식·재생산 및 야생으로의 재입식으로 규정하고 있다. 또한 개별 종의 생물학적 보전을 위해 필요한 사항을 충족시킬 수 있는 공간들을 제공하고 높은 수준의 동물 사육 기준을 유지하도록 하고 있다. 이와 더불어 토착종에 대한 생물학적 위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종의 탈출과 외래종 유입을 예방하며, 보유한 종에 대한 기록을 최신상태로 유지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또한 회원국들은 지침에 따라 기존 및 신규 동물원이 지침에서 요구하는 사항들을 충족할 수 있도록 허가 및 검사를 위한 수단들을 채택해야 하며, 만약 지침에 따른 허가를 받지 못할 경우 해당 동물원을 폐쇄시키거나 별도로 허가 조건을 부여하도록 하고 있다.

회원국 가운데 27개국이 동 지침에 대한 국내법적 수용 작업을 마무리했다. 동물원 관리를 담당하는 주무부처는 국가별로 차이를 보이고 있는데 프랑스와 이탈리아는 중앙정부가 담당하는 데 비해 핀란드, 스페인 등은 지역 및 지방정부가 담당하도록 하고 있다. 중앙정부가 담당하는 경우에 있어서도 보건부(오스트리아), 환경부(체코), 법무부(덴마크), 농업부(네덜란드), 환경식품농촌부(영국) 등 각국마다 상이한 것으로 파악된다.

지침의 수용 수준에 있어서 독일은 지침과 관련한 최소한의 사항만을 국내법에 포함시킨 데 비해 영국은 지침에서 언급된 대부분의 사항들을 국내법으로 반영하는 등 지침의 국내법적 수용 수준에 있어 각국마다 큰 차이를 드러내고 있다.

미국의 경우는 1877년 28시간법(동물 수송 시 28시간에 한번씩 물과 사료를 공급해야하는 규정) 이후 다수의 동물 관련 법률을 제정하고 있으나 동물원 관련 별도의 법률은 없다. 그러나 민간단체인 미국동물원수족관협회(AZA)가 수행하는 동물원 인증제가 실시되고 있다.

AZA는 동물원의 서식환경, 사회적 그룹유지, 동물관리와 치료에 대한 협회 기준 준수 여부, 수의·교육 프로그램, 안정정책 및 과정 등 광범위한 항목에 대한 평가를 통해 인증을 실시하고 있으며 2007년 기준으로 미국 내 216개 동물원과 수족관에 대한 인증을 실시한 바 있다. 부여된 인증서는 5년간 유효하도록 정하고 있다.

국내 17개소 운영…대부분 관리 부실
스트레스 시달리다 정신질환 증세도

우리나라에는 다수의 동물원이 존재하고 있지만 동물원의 설립, 운영 및 관리에 대한 법률 및 체계적인 제도가 마련되어 있지 않은 상황이다.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가칭)동물원의 설립 및 운영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거나 기존의 관련 법률의 개정이 필요하다고 여겨지며, 이 과정에서 다음의 사항들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판단된다.

첫째, 동물원의 정의, 범위 및 역할이 명시되어야 할 것이다. 이를 통해 여러 법률에 분산되어 있는 동물원의 역할과 기능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둘째, EU 및 영국의 사례와 같은 동물원 인증제 실시를 검토할 수 있다. 인증제는 동물원 관리 주체로 하여금 동물원 관리에 대하여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도록 유도할 수 있으며, 이용객에게 해당 동물원의 관리운영 실태에 대한 정확한 정보제공을 가능하게 할 수 있다.
셋째, 동물원 관리의 주무부처의 지정은 동물원의 주요 기능, 관련 인력의 관리 등을 토대로 검토되어야 하며, 지방자치단체와의 역할 분담도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민주당 한명숙·진선미 의원, 정의당 심상정 의원, 새누리당 문정림 의원 및 녹색당, 생명권네트워크 변호인단, 동물보호시민단체 카라 등은 지난 1일 국회에서 공동으로 기자회견을 열고 현재의 동물보호법을 동물복지법으로 명칭을 바꾸고 동물학대 금지조항 및 처벌 강화, 실험동물 지위 부여, 동물복지축산 원칙 제시 등을 핵심으로 하는 동물보호법 전면 개정안을 발의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동물은 우리 삶의 일부가 된 지 이미 오래”라면서 “우리나라가 선진국으로 나가기 위해서는, 국민의 복지개선과 함께 인간과 함께하는 동물의 복지가 개선되어야 한다”며 이와 같이 밝혔다.

이들은 “동물조차 존중받는 세상이라면 당연히 인간도 행복한 세상일 것”이라며 “동물복지법이 실효성 있는 규범이 된다면, 단언컨대 동물뿐만 아니라, 인간의 삶 또한 개선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번에 발의된 동물복지법은 동아시아 최초다.


이광호 기자 <khlee@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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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구성원의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된 수장이 반년 만에 끌려 내려왔다. 막말에 가까운 강한 발언과 제멋대로인 행보가 탄핵을 불렀다. 강성 수장이 물러나면서 변화를 기대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대화의 문이 열릴 것인가, 더 높은 벽이 쌓일 것인가.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 전 회장이 3년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탄핵당했다. 지난 5월 취임 이후 6개월 만으로 의협 역사상 2번째, 최단기간 내 불명예 퇴진한 회장이 됐다. 첫 번째는 2014년 4월 임기 1년여를 앞두고 탄핵당한 노환규 전 회장이다. 두 번째 최단기간 의협은 지난 10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서 임시대의원총회를 열고 임 전 회장의 불신임안을 처리했다. 참석 의원 224명 가운데 170명(75.9%)이 찬성했다. 반대는 50명, 기권 4명이다. 전체 대의원 249명 가운데 224명(91.1%)이 표결에 참여했다. 의협 정관에 따르면, 회장 불신임안은 제적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출석하고, 출석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면 가결된다. 지난 3월 임 전 회장은 선거서 유효 투표수 3만3084표 중 2만1646표를 받아 당선됐다. 65.43%의 압도적인 지지다. 의협 회장 선거는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발표로 의정 갈등 수위가 높아지고 있을 무렵에 치러졌다. 전공의가 병원을 떠났고 정부가 ‘2000명’을 강조하던 시기였다. 의협 회원들은 강성 중의 강성으로 분류되는 임 전 회장에게 힘을 실었다. 임 전 회장의 어깨에 너무 힘이 들어갔던 것일까? 임 전 회장의 언행은 사사건건 도마 위에 올랐다. SNS에 올린 글, 공식 석상서 했던 발언 등이 막말 논란으로 번졌고, 단식투쟁 등의 행보는 ‘쇼’라는 비판을 받았다. 무엇보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이하 대전협) 비대위원장과 갈등을 빚으면서 의료계 내부 분열을 조장한다는 지적이 뼈아팠다. 임 전 회장이 8개월 동안 보여준 모습은 고스란히 탄핵 사유가 됐다. 의협 회원 사이에서는 임 전 회장이 SNS로 막말과 실언을 해 의사단체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또 ‘임 회장이 전공의 지원금을 빼돌렸다’는 허위 비방 글을 올린 시도의사회 임원에게 고소 취하 대가로 1억원을 요구한 사실이 녹취록을 통해 알려져 논란이 불거졌다. 특정 인물에 대한 수위 높은 비판은 여론의 역풍을 불렀다. 장상윤 대통령실 사회수석을 겨냥해 “정신분열증 환자 같은 개소리”라고 비난하는 글을 올렸다가 환자를 비하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임현택, 6개월 만에 탄핵당해 막말 논란·의대 증원 못 막아 또 2021년 한 의사가 80대 환자에게 ‘맥페란’ 주사제를 투여한 뒤 부작용이 나타나 기소된 재판에 대해서도 도 넘는 발언을 쏟아냈다. 이른바 ‘맥페란 재판’ 항소심서 판사가 1심의 금고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해당 의사의 항소를 기각하자 “이 여자 제정신입니까?”라는 글을 SNS에 올린 것이다. 임 전 회장의 발언에 법원은 이례적으로 “재판장의 인격에 대한 심각한 모욕일 뿐 아니라 국민의 신뢰를 크게 훼손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행동”이라고 공개적으로 유감을 표명했다. 의대 정원 증원 집행정지와 관련해 기각·각하 결정을 내린 재판장이 ‘회유’받았을 것이라는 주장으로도 입길에 올랐다. 서울고등법원 재판부가 결정을 내린 다음 날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재판장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지난 정권에서는 고법 판사들이 차후 승진으로 법원장으로 갈 수 있는 그런 길이 있었는데 제도가 바뀐 다음에는 그런 통로가 막혀서 이분이 아마 어느 정도 대법관에 대한 회유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있다” 말했다. 서울고법은 법원 명의로 입장문을 내고 “해당 단체장의 아무런 객관적 근거가 없는 추측성 발언은 재판장의 명예와 인격에 대한 심대한 모욕”이라면서 “사법부 독립에 관한 국민의 신뢰를 현저히 침해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언사다.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정부의 2025학년도 의대 증원을 막지 못한 점, 간호법 제정을 저지하지 못한 점이 탄핵 사유로 꼽혔다. 임 전 회장은 총회를 앞두고 의사 회원들에게 사과하고 페이스북 계정을 삭제하는 등 재신임을 호소했지만 반전은 없었다. 회장을 탄핵한 의협은 비대위원회 체제로 전환하고 지난 13일 새로운 회장 선거 전까지 단체를 이끌 비대위원장을 뽑았다. 그 결과 박형욱 대한의학회 부회장이 1차 투표서 총 유효 투표수 233표 중 123표(52.8%)를 얻어 과반으로 당선이 확정됐다. 임기는 내년 1월 차기 회장이 선출될 때까지다. 뒤늦게 호소했지만…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정부는 의료 파탄이란 시한폭탄을 장착해놨다”며 “정말 대화를 원한다면 정부는 먼저 시한폭탄을 멈춰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대화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대위원들의 합의에 기초해 입장과 행동을 결정할 것”이라며 “비대위 운영서 소외돼왔던 전공의들과 의대생들의 견해가 충분히 반영될 수 있게 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임 전 회장이 물러나고 새로운 비대위원장이 등장하면서 의협의 투쟁 방향에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커졌다. 일각에서는 의협의 이번 행보를 의정 갈등의 중요한 변곡점으로 보고 있다. 강성 회장을 필두로 정부와 강하게 대립했던 이전 모습서 벗어나 대화에 참여할 것이라는 의견과 이전보다 더 수위 높은 대정부 투쟁이 예상된다는 의견으로 갈리는 중이다. 후자의 배경에는 대전협이 있다. 앞서 박단 비대위원장 등 전공의 70여명은 전날 의협 대의원들에게 “비대위원장으로 박형욱 교수를 추천한다”는 메시지를 보내 공개 지지 의사를 드러냈다. 대의원회서도 박단 비대위원장의 공개 지지에 대해 경고하는 등 잡음이 일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대전협의 지지를 등에 업은 박형욱 비대위원장이 당선되면서 전공의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의협과 대전협의 공조가 본격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양측의 교류가 정부와의 대화로까지 이어질 수 있느냐는 점이다.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당선 소감부터 정부의 태도 변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또 윤석열 대통령의 변화도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의정 갈등서 줄곧 선봉에 선 전공의들은 ‘의대 정원 증원 백지화’라는 요구사항서 앞으로도 뒤로도 움직인 적이 없다. 전공의의 행보는 의대생, 의대 교수 등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영향력 커진 전공의 단체 의료계가 전공의 중심으로 굴러가고 있는 셈이다. 실제 대전협은 지난 11일 출범했던 여야의정협의체(이하 협의체)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협의체는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불참하고 의료계에서는 학술 단체인 대한의학회와 의대 학장 모임인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만 참석하는 등 ‘반쪽 출범’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협의체의 운영 기한은 올해 말까지로, 다음 달 22~23일 전에 의미 있는 결과를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태도다. 하지만 박단 비대위원장은 협의체에 대해 ‘무의미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협의체가 첫발을 뗀 11일 SNS에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전공의와 의대생, 당사자 없이 대화나 하겠다는 한가한 소리를 하고 있다”며 “한 대표는 2025년 의대 모집 정지와 업무개시명령 폐지에 대한 입장부터 명확히 밝히시길 바란다”고 일갈했다. 이어 “눈치만 보며 뭐라도 하는 척만 하겠다면 한동훈의 ‘여야의정 협의체’ 역시 임현택 전 의협 회장의 ‘올바른 의료를 위한 특별위원회(올특위)’와 결국 같은 결말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올특위는 의료계의 입장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의협 주도로 구성한 범의료계 특별위원회다. 전공의와 의대생이 해당 위원회에 불참하면서 파행 운영되다 지난 7월 해체됐다. 정부는 협의체서 의료계가 제안한 내용에 대해 “진정성 있게 검토하겠다”는 견해를 밝혔다. 지난 11일 협의체서 의료계는 한국의학교육평가원 자율성 보장, 추가 합격 제한 등을 통한 2025학년도 의대 선발 인원 축소 등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윤순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지난 14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이하 중대본) 회의를 주재하면서 “마주 앉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만큼 활발한 대화와 소통을 통해 누적된 갈등을 해소하고 신뢰를 회복해 국민이 원하는 결과를 끌어낼 수 있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의협과 전공의 등 다른 의료계 단체의 참여를 호소했다. 박단 공개 지지 새 비대위원장 강경 투쟁이냐 VS 노선 변화냐 의료계 내부 상황은 크게 바뀌었지만 향후 상황은 여전히 ‘시계 제로(0)’ 상태다. 임 전 회장과 박단 비대위원장 간 갈등의 불씨도 여전히 살아있다.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공개적으로 요청하는 등 ‘(임 전 회장과)같이 갈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바 있다. 실제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요청하면서 “이해와 소통이 가능한 새로운 회장을 필두로 의협과 대전협 두 단체가 향후 상호 연대를 구축할 수 있길 기대한다”는 입장문까지 냈다. 임 전 회장의 탄핵안 가결 직후 박 비대위원장이 “결국 모든 길은 바른 길로”라는 내용의 SNS 글을 올리기도 했다. 문제는 임 전 회장이 박단 비대위원장을 상대로 반격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임 전 회장은 탄핵 사흘 만에 닫았던 페이스북 계정을 다시 열고 “박단과 그 뒤에서 박단을 배후 조종해 왔던 자들이 무슨 일을 해왔는지 전 의사 회원들에게 아주 상세히 밝히겠다”며 박단 비대위원장을 저격하는 글을 올렸다. 그러면서 “의협 대의원회 비대위원장과 의협 회장 선거가 더 이상 왜 필요한가”라면서 “박단이 의협 회장 겸 비대위원장을 맡아 모든 권한과 책임하에 의료 농단을 해결하면 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지해주셨던 모든 분에게 우선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이유가 어떻든 회장 취임 전부터 탄핵하겠다고 마음먹고 있던 자들에게 빌미를 주어 넘어간 것 자체가 제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또 의협의 근본적인 개혁의 첫걸음으로 의협 대의원회 폐지 등을 내용으로 하는 민법상의 사원총회를 개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원총회는 민법에 규정된 사단법인의 최고의사결정 기관이다. 의협 최고의결기구로 알려진 대의원총회보다 상위에 있고 정관의 규정으로 폐지할 수 없다. 사원총회는 이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경우나 총 사원 5분의 1 이상이 회의의 목적 사항을 제시해 청구하는 경우 소집될 수 있다. 반격 시작 내부 갈등? 올해 2월 시작된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10개월째로 접어들었다. 온갖 말이 오갔지만 되짚어보면 조금도 좁혀지지 않은 평행선 상황이 계속되는 모양새다. 정부와 의료계의 대치 상황이 길어질수록 ‘의료 붕괴’는 가시화되고 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정말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