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경제1팀] 경영일선에서 물러난 박병엽 팬택 부회장. '샐러리맨 신화'의 퇴진을 두고 말들이 많다. 대부분 아쉽다는 반응이지만 한편에선 회사는 어려워도 정작 박 부회장 자신은 이미 한몫 제대로 챙겼다는 뒷말이 나온다. 왜일까.
맥슨전자 영업사원이었던 박병엽 부회장은 1991년 자본금 4000만원으로 팬택을 세웠다. '삐삐 붐'을 타고 무선호출기 사업으로 대박을 터뜨린 팬택은 1997년 휴대폰 시장에 뛰어들어 상승세를 이어갔다. 그해 8월 증권거래소에 상장한 데 이어 1998년 모토로라의 지분 투자, 2001년 현대큐리텔 인수, 2005년 SK텔레텍 합병 등 승승장구했다.
주머니 두둑
그러나 휴대전화 시장이 삼성전자, 노키아, 모토로라 등 대기업 위주로 재편되면서 실적이 악화됐다. 자금난이 불거지더니 부도 위기까지 내몰렸다. 팬택은 2006년 워크아웃에 들어갔고, 박 부회장은 자신의 주식을 산업은행 등 채권단에 넘겼다. 채권단의 신임으로 오너가 아닌 전문경영인(CEO)으로 백의종군한 박 부회장은 5년간 뼈를 깎는 정상화 노력으로 2011년 말 워크아웃에서 졸업할 수 있었다.
역부족일까. 팬택은 2009년 1조원, 2010년 2조원, 2011년 3조원의 매출을 올리면서 위기에서 벗어난 것처럼 보였지만 지난해 다시 2조원대로 주저앉았다. 영업이익과 순이익도 적자로 돌아서 각각 -780억원, -1800억원을 냈다. 급기야 올해 1분기 78억원이던 적자는 2분기 495억원까지 급증했다. 박 부회장은 결국 실적 부진에 대한 책임을 지고 지난달 24일 전격적으로 사의를 표명했다.
그의 퇴진을 두고 말들이 많다. 박 부회장이 월급쟁이로 시작해 자수성가한 '샐러리맨 신화'이기에 대부분 아쉽다는 반응이지만, 한편에선 곱지 않은 시각도 있다. 회사는 어려워도 정작 박 부회장은 이미 한몫 제대로 챙겼기 때문이다.
2006년 워크아웃 당시 4000억원 가량의 팬택 지분을 포기한 박 부회장은 빈털터리가 아니다. 팬택은 6개(해외법인 제외) 계열사를 두고 있는데, 이중 5개사를 박 부회장이 직간접적으로 소유하고 있다. '팬택씨앤아이'(통신장비 제조)와 '라츠'(휴대폰 유통), '토스'(인력 용역), '티이에스글로벌'(휴대폰 부품 제조), '피앤에스네트웍스'(화물운송 중개) 등이다.
1995년 설립된 팬택씨앤아이는 박 부회장의 개인회사다. 이 회사 대표이사도 맡고 있는 박 부회장은 2000년 리스업체인 한국개발금융(당시 한국개발리스)으로부터 팬택씨앤아이 지분 전부를 매입했다. 박 부회장은 ‘박병엽→팬택씨앤아이→팬택앤큐리텔→팬택’의 지배구조로 팬택씨앤아이를 지주사로 키울 복안이었다. 팬택 워크아웃 때 팬택씨앤아이 지분은 그대로 갖고 있었다.
팬택씨앤아이는 라츠(100%), 토스(100%), 티이에스글로벌(50%)을 자회사로 두고 있다. 팬택씨앤아이 지분 100%를 소유한 박 부회장이 사실상 이들 회사도 지배하고 있는 셈이다. 2007년 설립된 피앤에스네트웍스도 '박병엽 일가'의 회사다. 박 부회장이 지분 40%를, 그의 두 아들 성준·성훈씨가 각각 30%씩 보유하고 있다.
'샐러리맨 신화' 퇴진 두고 뒷말
팬택 6개 계열사 중 5개사 소유
매출 수천억…수십억 배당 받아
그렇다면 이들 회사의 실적은 얼마나 될까.
팬택씨앤아이는 지난해 976억원의 매출을 냈다. 영업이익과 순이익은 각각 38억원, 101억원이었다. 그전엔 더 좋았다. 2005년 이후 줄곧 1000억∼2000억원대 매출을 올렸다. 최근 5년 동안 적자 없이 매년 100억∼300억원의 영업이익과 순이익을 거뒀다. 당초 자본잠식 상태였다가 2008년부터 수익성이 차츰 나아지더니 2010년 완전 정상화됐다. 2011년엔 빚을 모두 갚고 무차입 경영으로 돌아섰다.
팬택씨앤아이는 안정된 실적을 기반으로 꾸준히 몸집도 키워왔다. 총자산은 2001년 313억원에서 지난해 695억원으로 2배 이상 불었다. 같은 기간 120억원이던 총자본은 614억원으로 5배 넘게 늘었다. 지난해 ▲라츠는 매출 2478억원(영업이익 94억원-순이익 71억원) ▲티이에스글로벌은 568억원(22억원-21억원) ▲피앤에스네트웍스는 636억원(19억원-26억원)을 기록했다.
박 부회장은 이들 회사에서 배당금도 챙겼다. 팬택씨앤아이는 2011년 29억원에 이어 지난해 30억원을 배당금으로 지급했다. 물론 이 돈은 모두 박 부회장이 가져갔다. 라츠는 지난해 30억원을 배당했다. 박 부회장과 자녀가 소유한 피앤에스네트웍스의 경우 2011년 4억원, 지난해 3억6000만원을 풀었다.
다만 문제는 '박병엽 회사'들이 올린 매출의 상당 부분이 팬택에서 몰아준 일감이란 점이다. 박 부회장과의 관계가 정리된 팬택이 앞으로 거래를 끊을 수 있다는 관측도 적지 않아 주목되는 대목이다.
팬택씨앤아이는 지난해 매출 976억원 가운데 639억원(65%)을 팬택에서 채웠다. 그전엔 팬택이 없으면 사실상 지속이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팬택씨앤아이가 팬택과 거래한 매출 대비 비중은 ▲2006년 91%(매출 1955억원-팬택거래 1774억원) ▲2007년 99%(1308억원-1306억원) ▲2008년 99%(1464억원-1451억원) ▲2009년 94%(1575억원-1474억원) ▲2010년 97%(1728억원-1682억원) ▲2011년 93%(2563억원-2396억원)로 조사됐다. 지난해 라츠의 팬택 거래율은 24%(604억원), 티이에스글로벌은 71%(402억원), 피앤에스네트웍스는 15%(94억원)로 나타났다.
일감이 문제
"많이 부족했습니다. 깊은 자괴와 책임감을 느낍니다. 번거롭지 않게 조용히 떠나고자 합니다."
박 부회장이 사의 표명 직후 사내게시판에 남긴 글이다. 자신이 창립한 팬택을 떠나는 아쉬운 마음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그래도 그의 주머니는 두둑하다. 회사가 죽어도 주인은 산다는 말처럼 말이다.
김성수 기자<kimss@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