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는 지금 ‘샐러리맨 신화’, 몰락 도미노 왜?

  • 김설아 sasa7088@ilyosisa.co.kr
  • 등록 2013.09.30 14: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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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천서 용?…부잣집서 부자 난다

[일요시사=경제1팀] ‘샐러리맨 신화’주인공들이 잇따라 몰락하고 있다. 웅진의 윤석금이 무너졌고, STX를 이끌던 강덕수에 이어 팬택의 박병엽도 씁쓸한 퇴장을 맞았다. 이들은 한 때 샐러리맨의 전설이라 불린 3인방. 맨손으로 시작해 기업 성장을 이끌어냈지만 실적 악화 앞에 결국 무릎을 꿇었다. 반면 전통적인 재벌 패밀리의 성장세는 더욱 가팔라지고 있다. 바야흐로 개천에서는 더 이상 용이 날 수 없는 시대다.




“바닥부터 그룹 키워냈는데…”. 팬택 창업자이자 최고경영자인 박병엽 부회장이 사의를 표명했다. 말단 샐러리맨에서 출발해 조 단위 이상의 매출을 달성하는 기업 총수로 성장한 ‘샐러리맨 신화’가 결국 ‘비운의 신화’로 마감하게 된 셈이다.

젊은이들의 우상
쓸쓸한 최후

팬택은 국내 3위의 휴대전화기 생산업체다. 맥슨전자의 영업사원이던 박 부회장이 1991년 전세금 4000만원으로 창업한 무선호출기(삐삐) 회사가 그 시작이다. 이후 팬택은 1997년 휴대전화기 제조 사업으로 발을 넓혔고, 2001년 현대큐리텔을, 2005년 SK텔레택을 인수해 명실공히 휴대전화기 업계에 떠오르는 별이 됐다.

벤처신화를 쓰던 그는 한때 국내 30위 주식부자 반열에도 올랐다. 그러나 국내 굴지의 대기업인 삼성전자와 LG전자 등과 경쟁하기에 팬택은 역부족이었다. 실적 악화로 2006년 워크아웃에 들어가면서 나락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박 부회장이 워크아웃 기간 중 보유 지분을 모두 포기하고 백의종군해 2011년 말 겨우 워크아웃 딱지를 뗐지만, 이 상승세도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스마트폰으로 휴대폰 시장이 지각변동하면서 팬택의 사정은 다시 악화됐다.


삼성과 애플 등에 밀리며 지난해 3분기부터 계속 적자를 맞았다. 악조건 속에서도 연구개발을 이어가 올해 초 베가넘버6, 베가아이언, 베가LTE-A 등 신제품을 꾸준히 내놓으며 반등을 노렸지만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박 부회장은 지난 24일 경영 무대에서 퇴장을 선언했다.

샐러리맨 신화의 몰락은 팬택뿐이 아니다. 강덕수 STX 회장은 최근 채권단에 경영권을 박탈당하며 역사의 뒷길로 쓸쓸히 사라지고 있다.

동대문상고를 졸업하고 1973년 쌍용양회에서 평사원으로 사회에 첫발을 내딛은 강 회장은 20년 만인 1993년 쌍용중공업 이사로 승진했다. 2000년 말 회사가 법정관리(기업회생절차)를 거쳐 외국계에 인수된 뒤엔 대표이사로 발탁됐다.

2001년엔 일생일대의 승부수를 던졌다. IMF 당시 외국 자본에 넘어갔던 쌍용중공업이 다시 매물로 나오면서 전 재산 20억원을 털어 경영권을 인수, STX그룹을 설립했다.

윤석금·강덕수 이어…박병엽까지 줄퇴진
무리한 사업확장·금융위기에 무대 밖으로

이후 강 회장은 공격적인 인수·합병(M&A)을 통해 그룹 외형을 확장했다. STX팬오션과 STX조선해양의 근간인 범양상선, 대동조선을 잇따라 인수했다. 조선업을 근간으로 해상운송까지 사업 분야를 넓혔다. 산업단지관리공단을 인수해 STX에너지를 세우는 등 에너지, 건설업에도 뛰어들었다.

하지만 강 회장의 공격적 M&A 경영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경기 침체 속에서 부메랑이 돼 돌아왔다. 세계 교역 물동량이 줄면서 해운업이 망가지기 시작했고, 이어 선박 발주량이 줄면서 극심한 수주 가뭄에 시달렸다.


그룹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50%가 넘던 해운 업황은 곤두박질쳤고, 후방 산업이자 그룹의 핵심인 조선업도 심각한 유동성 위기의 수렁으로 빠져들었다.

STX그룹은 지난해 매출이 18조8300여억원에 달했지만, STX조선해양(6300억원 손실)과 STX팬오션(4500억원 손실)이 막대한 적자를 기록해 그룹 전체로 1조4000억원이 넘는 순손실을 기록했다. 결국 유동성 위기가 심화되면서 올해 그룹이 해체됐다.

무리한 M&A
승자의 저주

백과사전 외판원 출신의 윤석금 웅진그룹 회장도 같은 처지다. 윤 회장은 1980년 한국 브리태니커에 입사한 뒤 전 세계 54개국 세일즈맨 중 최고 실적을 내 ‘영업의 신’으로 불렸다.

당시 자본금 7000만원으로 웅진그룹의 모태인 도서출판 해임인터내셔널을 설립했다. 이후  웅진식품, 웅진코웨이 등 생활가전으로 사업 군을 확장하다 태양광 사업, 건설, 금융(서울저축은행 등)등으로까지 사업 영역을 확대했다. 지난 2010년 웅진그룹의 매출은 5조2000억원, 재계 순위 32위(공기업 제외)의 ‘공룡 기업’으로 성장했지만 몰락의 시작이었다.

무리한 M&A는 외환위기와 경기침체 등이 겹치면서 유동성 위기로 번졌다. 결국 윤 회장은 지난해 10월 지주회사인 웅진홀딩스와 극동건설에 대해 법정관리를 신청한 뒤 퇴진에 이르렀다.

과거 샐러리맨 신화를 쓴 또 다른 기업가로 신선호의 율산그룹과 김우중의 대우그룹, 정태수의 한보그룹, 임병석의 C&그룹 등이 있었다. 그중에서도 원조로는 단연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꼽힌다.

김 전 회장은 24살이던 1960년에 한성실업에 입사해 6년여간 실무 경험을 쌓은 뒤, 31살 나이에 자본금 500만원과 직원 5명으로 회사를 설립했다. 대우그룹의 전신인 대우실업이었다.

1970년대 중반부터 건설·전자·자동차 등 사업 영역을 넓힌 대우는 한때 41개 계열사, 400개가량의 해외법인을 보유한 재계 2위 기업으로 성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김 전 회장의 대우 신화는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몰락하기 시작했다. 당시 부채비율 600%가 넘던 대우는 해외 채권자들의 상환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1999년 8월 대대적인 기업 구조조정에 들어섰다.

김 전 회장은 그해 10월 중국으로 떠난 뒤 그길로 장기 해외 도피에 들어갔다. 이후 2005년 귀국해 검찰 조사를 받고는 결국 징역 8년 6개월, 벌금 1000만원, 추징금 17조 9253억원 형을 선고받았다. 특별사면 이후 다시 해외행을 택한 김 전 회장은 최근 전격 귀국했다.  일각에서는 그의 재기를 조심스레 전망하고 있지만 건강 문제, 추징금 회수 문제 등 걸리는 부분이 많아 쉽지는 않을 전망이다.

김우중·신선호·임병석 비운 오너 꼬리표
재벌가문 고속 성장…출총제내 68% 장악


이 외 70년대에 명성을 떨쳤던 율산그룹도 빼놓을 수 없다. 창업주인 신선호 회장은 1976년 남대문 인근 그랜드호텔 506호를 임대해 무역업체인 율산실업주식회사를 차렸다.

율산은 창업 첫해인 76년에 무려 4300만달러를 수출하며 무역업계를 술렁거리게 하더니 77년 말에는 율산알미늄, 율산해운, 율산건설 등 11개 계열사에 7000여명의 종업원을 거느린 중견재벌로 거듭났다.

그러나 무리한 사업확장과 부동산개발로 인해 자금난에 부닥쳤고, 1979년 2월 채권은행단이 율산그룹에 대한 공동감리에 돌입하면서 무너져 내렸다. 같은 해 4월 신 회장이 외국환관리법 위반 및 업무상 횡령혐의로 전격 구속되면서 율산그룹은 공중 분해됐다.




이들은 모두 내실을 기하지 못한 채 과도한 인수합병과 차입경영 등으로 몸집을 불리다 위기에서 날개가 꺾였다. 전문가들 역시 잇따른 샐러리맨 신화 몰락의 원인을 취약한 리스크 관리에서 찾는다.

재벌 기업들이 고도 성장한 산업화시대와 달리 기업 경쟁 자체가 글로벌화되면서 리스크 관리 중요성이 더 커졌지만, 샐러리맨 기업은 재벌 기업보다 상대적으로 역사가 짧고 인적·물적 자원이 취약해 위기 상황을 타개할 힘이 부족했다는 것이다. 현재 자수성가한 샐러리맨 신화에는 박현주 미래에셋 회장, 박성수 이랜드 회장 정도만 남아 있다.

월급쟁이 출신
회장님 잔혹사


반면 재벌 가문 기업들은 갈수록 덩치가 커지는 추세다. 기업경영 분석업체 CEO스코어가 2007∼2012년 출자총액제한을 받는 그룹을 분석한 결과, 범삼성(삼성·CJ·신세계·한솔), 범현대(현대자동차·현대중공업·현대·현대백화점·KCC·한라·현대산업개발그룹), 범LG(LG·GS·LS그룹), SK, 롯데, 범효성(효성그룹·한국타이어) 등 6대 재벌 자산 총액이 525조원에서 1054조원으로 101% 늘었다. 이들을 제외한 나머지 34개 그룹 자산은 41% 늘어나는 데 그쳤다.

특히 6대 가문의 순익 증가율은 자산 증가율보다 더 가팔랐다. 6대 가문 기업집단의 순익은 2007년 37조원에서 작년 말 60조원으로 63.3% 늘었으며 그 비중도 65.6%에서 91%로 25.4%포인트나 뛰어올랐다.

이들 6대가의 비중은 2011년말 대기업집단내 순위 31위였던 웅진과 작년 말 기준 13위였던 STX그룹이 구조조정 과정을 겪으면서 올해 말에는 더욱 높아질 전망이다.

6대 가문중 자산총액 비중이 가장 높은 그룹은 범삼성가로 삼성, 신세계, CJ, 한솔을 합쳐 작년 말 기준 자산이 358조원으로 출총제에 속한 일반기업 총 자산의 23%에 달했다. 2007년 19.1%에서 3.9% 포인트나 높아졌다.

이어 현대자동차, 현대중공업, 현대, 현대백화점, 현대산업개발, KCC가 속한 범현대가가 자산 273조원으로 17.5%를 차지했다.

범삼성가와 범현대가의 자산총액 비중 차이는 2000년 이후 4∼5%포인트 대를 계속 유지하다 2011년 말 한때 2.7%포인트로 좁혀지기도 했지만, 작년 말 5.5%포인트로 벌어졌다. LG, GS, LS로 분화된 범LG가는 178조원으로 단일 그룹인 SK(141조원)를 제쳤다.

SK와 롯데는 자산이 141조원과 88조원으로 비중은 각각 9%, 5.6%였다. SK, 롯데 모두 2007년 대비 0.8%포인트가량 상승했다.

효성과 한국타이어가 속한 범효성가의 자산총액은 17조원, 출총제 비중은 1.1%로 2007년(1.0%)대비 큰 변화가 없었다.

5개년간 6대가 기업의 자산총액 증가율은 범삼성가가 112.5%로 가장 높았고 이어 범현대가 103.0%, 범효성가 102.2%, 롯데 100.4%, SK 95.3%, 범LG가 81.8%의 순이었다.

박주근 CEO스코어 대표는 “경제구조가 고도화되며 몸집 불리기식 전략보다는 적절한 리스크 관리의 중요성이 커졌다”며 “지난 5년간 중도 탈락한 그룹들은 모두 리스크 관리와 지속가능경영 체제 구축에 실패했다는 공통점이 있다”고 지적했다.


김설아 기자 <sasa7088@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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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억 오세훈 한강버스, 아라호 흑역사 오버랩

1000억 오세훈 한강버스, 아라호 흑역사 오버랩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서울시가 돛을 올린 한강버스가 고장 끝에 결국 멈췄다. 과거 ‘아라호 사업’도 재조명되고 있다. 아라호 사업은 2010년대 초반 경인 아라뱃길을 중심으로 관광 활성화와 교통난 해소를 위해 인천시와 공동으로 수백억원을 들여 기획한 수상 교통 프로젝트였다. 아라호는 시민들의 외면과 운영 적자로 인해 자취를 감췄다. ‘반면교사’로 삼았던 걸까? 서울시는 한강을 따라 운행되는 수상 교통수단으로, 서울 전역을 연결하는 새로운 교통망을 구축하겠다는 계획으로 지난 18일 한강버스 운항을 시작했다. 여의도, 잠실, 뚝섬 등 주요 한강변 거점과 지하철역을 연계해 시민과 관광객 모두가 이용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는 게 핵심이다. 관광이냐 출퇴근이냐 서울시는 한강버스를 통해 관광 교통수단을 넘어 서울을 ‘한강 중심의 스마트 모빌리티 도시’를 만들겠다는 비전을 제시했다. 그러나 정식 운항을 시작한 지 열흘 만에 운항이 중단됐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 29일 오전 시청에서 열린 주택 공급 대책 관련 브리핑 도중 “한강버스 관련 입장을 밝히지 않을 수 없다”며 “시민 여러분께 송구스럽다”고 말했다. 이어 “열흘 정도 운행 통해 기계적·전기적 결함이 몇 번 발생하다 보니 시민들 사이에서 약간 불안감 생긴 것도 사실”이라며 “이번 기회에 (운항을) 중단하고 충분히 안정화시킬 수 있다면 그게 바람직하겠다는 결정을 내렸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시는 이날부터 10월 말까지 한강버스 시민 탑승을 중단하고 성능 고도화와 안정화를 위한 무승객 시범 운항을 한다. 시는 국내 최초로 한강에 친환경 선박 한강버스를 도입해 지난 18일 정식 운항을 시작했다. 하지만 지난 22일에는 잠실행 한강버스가 운항 중 방향타 고장이 발생했고, 같은 날 마곡행도 운항 준비 중 전기 계통에 문제가 생겨 결항했다. 26일에도 운항 중 방향타 고장이 발생했다. 이 과정에서 운항 중단과 재개가 반복되자 운항 중단을 결정했다. 과거 아라호의 값비싼 교훈을 남겼지만, 실패 요인을 분석하지 않았다는 것으로 해석되는 결과다. 한강버스 역시 또 하나의 혈세 낭비 사례가 될 수 있다. 서울시 한 관계자는 “아라호 사례를 철저히 분석해 이번에는 실질적인 시민 편익을 제공하고 지속 가능한 운영 모델을 구축하겠다”고 강조했다. 한강버스가 서울의 새로운 교통 패러다임으로 자릴 잡을지, 아라호의 전철을 밟을지는 향후 몇 년간의 운영 성과에 달려 있다. 서울시 아라호는 오세훈 서울시장의 첫 임기 때인 2010년 서울시가 예산 112억원을 들여 만든 2층 유람선으로 지난 2009년 5월부터 1년5개월을 들여 건조됐다. 오 시장의 지시로 건조된 아라호는 시민들에게 저렴한 요금으로 공연과 한강특화공원 관람이 동시에 가능한 선상문화체험 기회를 제공한다는 영리 목적보다 공공문화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차원에서 민자 유치 대신 재정이 투입된 사업이었다. 당초 아라호를 한강에서 인천 앞바다까지 운항하는 관광 크루즈선으로 활용하려 했으나 여덟 차례 시범 운항과 21회 시험 운항만 했을 뿐 사실상 사업은 중단됐다. 제작 당시부터 경제적 타당성이 부족하다는 논란을 빚었던 아라호는 정식 취항도 해보지 못한 채 팔렸다. 실제 운행이 어려운 상황에서 보험료와 유지비 등 관리 비용에만 연간 1억원이 들어간다는 점도 매각을 선택하는 데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112억원 들여 29억원에 판 아라호 출항 나흘 만에 고장…오, 좌불안석 아라호가 정식 운항에 나서지 못했던 배경에는 서해뱃길 사업을 둘러싼 서울시와 시의회의 갈등도 있었다. 오 시장의 아라호 활용 계획에 당시 더불어민주당이 다수인 시의회가 이에 반대했기 때문이다. 지난 2011년 10월 고 박원순 전 시장이 취임 후 사업 타당성 문제로 매각을 결정하면서 오 시장의 한강 르네상스 사업이 백지화됐다. 결국 서울시는 아라호 매각을 결정한 후 지난 2013년 5월, 106억원의 예정 가격으로 매각 입찰에 나섰으나 응찰자가 없어 유찰됐다. 이후 2차 입찰 결과도 마찬가지였다. 알만한 이들은 알겠지만, 선박 사업은 수요를 찾기 어려운 사업 중 하나다. 결국 서울시는 3차 매각 입찰에서 최초 예정 가격에서 10% 인하된 95억원으로 깎았지만 이마저도 입찰자가 나타나지 않았다. 이후 같은 해 11월, 4차 매각에서 15% 인하된 90억원에 입찰을 시도했지만 응찰자가 없어 가격 인하의 효과는 전혀 없었다. 그러다 서울시는 지난 2016년 아라호를 매각하지 못하자 결국 임대 쪽으로 사업 방향을 틀었다. 아라호가 정식 운항도 못한 채 6년 넘게 여의도 한강공원 선착장에 방치되면서다. 서울시가 제시한 사업 기간은 연말까지 8개월이고 한 차례 1년간 계약을 연장할 수 있었다. 당시 최저 임대료는 2억6300만원이었다. 아라호는 임대 사업을 시작해 건조 6년 만에 빛을 봤지만, 운항이 종료되는 시점까지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한강의 애물단지로 전락했던 아라호는 지난 2016년 민간업체인 레츠고코리아가 임대사업권을 낙찰받아 3년간 운영하다가 2018년 이랜드그룹 계열사 이랜드크루즈로 사업권을 넘겨줬다. 이랜드크루즈가 사업권을 따낸 시점은 지난 2018년 3월이지만 실제 운영은 2019년 6월부터 시작됐다. 이전 사업자인 레츠고코리아가 서울시의 계약 위반을 주장하며 유람선과 시설물 반환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결국 이랜드크루즈는 1년간의 법정 공방 끝에 지난 2019년 6월부터 운영을 시작했지만,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수익성 악화로 아라호의 임대 운영 사업을 1년 만에 접어야 했다. 애물단지 전락하나 이랜드크루즈는 임대계약 갱신청구권(1년)마저 포기했다. 코로나19 팬데믹 무렵부터는 주식회사 수가 임대사업권을 이어받았다. 이후 마지막으로 인더라인25가 지난해 6월부터 올해 5월까지 사업하는 조건으로 서울시와 지난 2022년 12월 계약을 체결했다. 하지만 1년 단기 임대계약이 종료된 이후에도 인더라인25가 철거하지 않아 서울시는 골머리를 앓았다. 아라호 운항은 멈췄지만, 선착장을 한 달째 무단 점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인더라인25는 계약 연장을 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서울시는 인더라인25를 상대로 명도소송, 점유 이전 금지 가처분, 행정 가처분 등 소송을 진행하기도 했다. 아라호가 실패한 가장 큰 이유는 수요 예측 실패와 운영비 부담이었다. 당시 서울시는 아라호가 연간 수십만명의 승객을 유치할 수 있다고 예상했으나, 실제 이용객은 예측치의 30%에도 미치지 못했다. 또 노선 설계가 시민들의 일상적인 통근이나 이동과 잘 맞지 않았고, 요금 역시 육상 교통수단에 비해 비쌌다. 결과적으로 관광객 유치에도 한계가 있었고, 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면서 아라호는 철수될 수밖에 없었다. 아라호는 건조한 지 15년 만에 민간에 팔렸다. 지난 1월 서울시 한강 유람선 아라호는 5차례 입찰 끝에 약 28억5780만원에 팔려 민간업체에 인도됐다. 2013년부터 총 9번의 입찰을 시도한 결과 3분의 1 가격에 달하는 헐값에 팔린 셈이다. 당시 서울시에 따르면 아라호는 2024년 11월 말 공개입찰을 진행한 뒤 지난달 주식회사 마이랜드와 매각 계약을 체결했다. 길이 58m에 688톤 규모의 아라호는 서울 여의도 한강공원과 서강대교 남단을 오갔다. 승객은 총 310명까지 태울 수 있다. 음악회, 공연, 결혼식, 영화 상영을 위한 시설도 보유했다. 선착장에는 편의점, 치킨집 등 부대시설도 있었다. 아라호는 건조 후 15년 만에 매각되기까지 여러 우여곡절을 겪었다. 후임 고 박원순 시장이 2012년 사업을 백지화하면서 5년간 방치됐다. 2013년 5월 처음으로 공개입찰에 넘겨졌다. 시는 같은 해에만 총 4번의 입찰을 추진했으나, 입찰자가 없어 매번 무산됐다. 실패했지만 이번엔 달라? 서울시는 수의계약 방식으로도 매각을 시도했으나, 매각사의 자금 동원 문제로 불발됐다. 이에 시는 2016년 아라호를 매각하는 대신 민간 위탁하는 방향을 택했고, 2017년부터 민간 위탁을 통해 운영했다. 하지만 임대계약이 만료되면서 지난해 5월 말부터 운항이 중단됐다. 그러자 시는 다시 매각을 시도했다. 지난해 10월부터 총 5차례의 입찰을 진행했고, 같은 해 11월 말 입찰자가 나와 12월 매각 계약을 맺었다. 서울시 관계자는 “그간 아라호의 위탁 운영은 선박 운항이 아닌 선착장 내 치킨집 등 부대시설 위주로 돌아갔다”며 “자연스레 선박도 노후화되고, 전반적으로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아 다시 매각을 추진하게 됐다”고 말했다. 법적 분쟁으로 얼룩진 아라호를 통해 한강에 배 띄우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경험했지만, 이번엔 다르다고 한다. 서울시는 이번 한강버스 사업에서 아라호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3가지 전략적 과제를 내세우고 있다. 먼저, 실제 수요 기반의 노선 설계를 강조했다. 또 관광 중심이 아닌, 출퇴근·생활 교통을 고려한 정류장 배치, 그리고 지하철·버스 환승과의 연계를 강화했다는 것이다. 합리적인 요금 체계를 내세우기도 했다. 기존 대중교통과의 환승 할인을 적용하고, 관광·레저용 프리미엄 서비스와 생활 교통 요금제의 이원화를 강조했다. 또 탄소 배출을 최소화한 전기·수소 하이브리드 선박을 도입했고, 실시간 교통 정보 제공 및 안전 관리 시스템을 구축했다고 한다. 서울시가 한강버스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지난해 들인 초기 사업비는 약 542억원으로 향후 발생할 총 사업비는 약 1500억~1750억원으로 예상된다. 아라호 사업비보다 10배가량 많은 혈세가 투입될 예정이다. 한강버스는 출·퇴근용 선박인 만큼 이용객을 충족하기 위해 여러 척의 선박이 필요하다. 지난해 3월 한강버스 운영사는 6척의 선박을 납품받는 계약을 체결한 바 있다. 현재는 첫 출항 이후 3척이 운항 중이며, 향후 6척의 선박이 모두 납품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 밖에도 선착장 시설, 운영 시스템, 접근성 개선 등 다양하고 복합적인 요소가 포함돼 총사업비가 1000억원대 중반까지 증가한다. 묻지 마 10배로 베팅 6시에 나와야 9시 출근 아라호는 ‘유람선 제작’이 중심이고, 공연시설 등이 포함된 문화를 제공하기 위한 목적의 선박이었다. 시설 설계가 크고 복잡한 부분이 있지만, 수량이 하나라 규모 면에서 제한적이기에 한강버스와 다르다는 결론이다. 반면, 한강버스는 여러 척의 선박을 건조해야 하고, 선착장 설치 또는 보수도 그만큼 갖춰져야 한다. 또 전기 또는 하이브리드 선박을 도입한 만큼, 유지비용도 클 뿐만 아니라 홍보, 안전, 시험 운항 등 여타 부대 비용에 민간투자금 및 보조금 등이 혼합돼있어 사업비 증액은 여러 원인으로 발생한다. 한강버스 사업비가 초기 대비 크게 증가한 이유로 업체 선정 과정에서 계약 조건, 예상보다 오래 걸린 공정률 등을 꼽을 수 있다. 이를테면 선박 제작 능력이 있는 업체와 없는 업체 간의 차이를 분석했는데, 일부 업체는 인프라가 부족하거나 준비가 미흡했다는 평가를 받아 계약이 무산된 경우도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한강버스는 대중교통 기능이 강조되면서 ‘출퇴근 수단’ ‘교통망 보완’ 등의 역할이 기대되는 상황이다. 따라서 초기 투자비가 크더라도 지속 운영을 통한 수요 확보가 전제된다. 하지만 계획 대비 수요가 예상만큼 확보될지, 운영비와 적자 보전 부담이 얼마나 될지는 논란 중이다. 한편, 한강버스는 정식 운항 나흘 만에 선박의 방향타 고장 등으로 잇따라 멈춰 승객들이 불편을 겪었다. 지난 23일 기준 누적 탑승객이 1만명을 돌파하는 등 시민들의 큰 관심을 받은 한강버스가 정시성 확보가 중요한 대중교통수단으로서 자리매김할 수 있을 지 의문이 커지고 있다. 매체에 따르면 지난 22일 오후 7시쯤 옥수선착장을 출발한 잠실행 한강버스가 강 한가운데서 20여분간 멈춰섰다. 결국 승객들은 종착지까지 가지도 못하고 도중에 내려야 했다. 한강버스 운영사는 고장 선박을 뚝섬 선착장에 접안한 뒤 승객들을 모두 하선시켰고, 뚝섬에서 잠실까지 구간의 운항을 취소했다. 지난 18일 정식 운항을 시작한 지 나흘 만에 발생한 일이다. 이 과정에서 제대로 된 안내 방송이 없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한 탑승객은 “20분이 넘게 서 있었고, 안내 방송이 안 나오고 승무원도 안 계시고…. (뚝섬 선착장) 도착하기 2~3분 전에 승무원이 ‘이 배 잠실까지 안 간다’고 뚝섬에 다 내리셔야 된다고…”라고 말했다. 이 사고와 별개로 같은 날 오후 7시30분에 잠실 선착장을 출발할 예정이었던 마곡행 한강버스는 선박 고장으로 아예 결항됐다. 그 바람에 강서 방향으로 이동하려던 시민들은 황급히 다른 교통수단을 찾는 등 불편을 겪어야 했다. 승부수? 무리수? 서울시는 두 선박 모두 전날 밤 안정화 조치를 거쳐 다음 날인 23일 운항에는 차질이 없다고 밝혔다. 또 선내 안내 방송이 없었다는 주장에 대해선 한강버스 운영사가 이상을 감지한 뒤 원인을 파악하는 데 다소 시간이 걸려 안내에 일부 지연이 있었다는 설명이다. 현재 한강버스는 마곡-망원-여의도-압구정-옥수-뚝섬-잠실 28.9km 구간을 상하행 7회씩 총 14회(첫차 11시) 운항하고 있다. 소요 시간은 마곡에서 잠실까지 127분이다. 여의도에서 잠실까지는 80분이다. 추석 연휴 이후인 다음 달 10일부터는 출퇴근 시간 급행 노선(15분 간격)을 포함, 평일 기준 왕복 30회로 증편한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