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경제1팀] 재계에 혜성처럼 등장한 강덕수 STX그룹 회장. 샐러리맨도 재벌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몸소 보여준 강 회장이 결국 경영일선에서 물러났다. 외부 활동도 접었다. 본인은 오죽 답답할까. 그의 뒷걸음은 주변에 아무도 없어 더욱 쓸쓸하기만 하다.
강덕수 회장은 맨손으로 STX그룹을 일군 자수성가한 오너다. 이 과정엔 한편의 드라마 같은 우여곡절이 가득하다. 월급쟁이 샐러리맨으로 출발해 '대기업 총수'에 오르기까지 구구절절한 성공 스토리가 그것이다.
가신이 없었다
강 회장의 질주는 거침없었다. STX그룹은 창립 10년도 안돼 재계 10위권에 이름을 올렸다. 매출은 100배 이상 늘었다. 성장 비결은 인수·합병(M&A). STX그룹은 굵직한 매물을 먹어치우면서 꾸준히 몸집을 불려왔다. 그만큼 '실탄'이 넉넉했고, 강 회장은 'M&A 귀재'로 불렸다. 이렇게 하나둘 늘어난 계열사가 모두 17개다. 강 회장은 한국 부자순위 20위권에 들기도 했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흠집이라곤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완벽하고 강한 강 회장에게도 건드리면 아픈 '아킬레스건'이 있었다. 바로 초라한 인맥이다. 여느 재벌그룹 오너들과 다른 길을 걸어온 결과다. 강 회장이 인재가 재산이란 '인재론'을 강조하며 우수 인재 확보에 힘을 쏟은 것도 이와 무관치 않았다. 외부에서 경영진을 스카우트할 때도 폭넓은 인맥 네트워크를 먼저 봤다.
재계 관계자는 "샐러리맨 출신의 강 회장 주변에 이렇다 할 인맥이 없는 게 어찌 보면 당연하다. 앞만 보고 살아온 세월과 기업을 일군 지 얼마 되지 않아 주변에 유명한 인사들이 그리 많지 않다"며 "지연, 학연, 친인척 등 어디를 둘러봐도 내세울 만한 큰 인물이 별로 없다"고 말했다.
강 회장은 재벌가에서 손에 꼽힐 정도로 드문 순수 국내파다. 경북 선산 출생인 그는 동대문상고, 명지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1973년 쌍용양회에 입사했다. 이후 쌍용중공업으로 자리를 옮긴 강 회장은 부도에 직면한 회사의 대표이사로 선임된 뒤 사재를 털어 회사를 인수하면서 인생의 전기를 마련하는 '뱃고동'을 울렸다.
경영자에게 필수로 인식되고 있는 대인관계는 곧 기업 자산과 다름없기 때문에 인맥 부재는 오너로선 치명타가 아닐 수 없다. 어려서부터 자라온 환경이 한 울타리에 있는 재벌가 사람들은 '끼리끼리' 명문 유치원과 초·중·고등학교를 거치면서 자연스레 친분을 쌓다가 미국 유학 등 '스페셜 코스'를 밟으면서 탄탄한 인맥을 갖게 된다. 반면 강 회장은 재벌가와 동떨어진 성장과정 탓에 재계에서 왕따 아닌 왕따를 당한 것도 공공연한 사실이다.
경영일선서 물러나…외부활동도 중단
'STX호' 휘청거리자 임직원 엑소더스
믿었던 경영진도 밥줄 찾아 갈아타기
그래서인지 강 회장은 재계를 대표하는 3대 경제단체에 들어갔을 때 그렇게 좋아했다고 한다. 강 회장은 2009년 전국경제인연합회에 이어 한국무역협회와 서울상공회의소 부회장으로 선출됐다. 조선업계에서 유일하게 3대 단체 부회장단에 선임된 것.
당시 강 회장은 국내 최고의 재벌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생각에 밤잠까지 설쳤다는 후문이다. 강 회장은 각 단체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면서 유수의 재벌들과 친분을 쌓았다. 평소 친구처럼 편하게 대화하는 상대까지 찾았다. 그러나 이도 잠시. 그룹 경영권이 채권단에 넘어가면서 강 회장은 경영일선에서 밀려났다. 동시에 3개 경제단체 부회장직에서도 사퇴했다. 강 회장은 외부활동 중단 선언을 마지막으로 끝 모를 칩거에 들어갔다.
STX그룹 관계자는 "특별히 줄을 댈 만한 아는 사람 없이 기업을 크게 일궜다면 그만큼 깨끗하고 투명하다는 반증이 아니겠냐"며 "그런데도 한계는 분명히 있다. 회사가 어려워지니 나서서 도와주는 사람이 없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이 관계자는 "강 회장을 더욱 외롭게 만드는 것은 그나마 곁에 있었던 사람들의 이탈"이라고 귀띔했다.
강 회장은 평소 주변에 회사를 믿고 맡길 가신이 없다고 토로했다고 한다. 그의 말대로 'STX호'가 침몰 위기에 몰리자 임직원들이 서둘러 회사를 떠나는 '엑소더스(탈출)'현상이 벌어졌다. 주요 직책을 맡은 직원들은 각자 다른 직장을 찾아 이력서 내기 바빴고, 각 부서는 이내 도미노 식으로 무너졌다.
경영진도 마찬가지다. 그룹의 자금난이 구체적으로 가시화한 지난해 말부터 고위 임원들은 줄줄이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수뇌부였던 이희범 전 회장과 이종철 전 부회장이 대표적이다. 오랜 우정도 소용없었다.
그는 외로웠다
강 회장이 직접 영입했던 이들은 사직서를 제출하고 STX그룹을 떠났다. 경영 악화에 대한 도의적인 책임과 구조조정의 솔선수범 차원이란 게 사임 이유였지만, 이들의 퇴임 이후 행보를 보면 '밥줄'에 연연한 티가 난다.
이 전 회장은 지난 5월 중순 STX그룹에 사임 의사를 밝히고 31일 퇴임했다. 이어 하루 뒤 LG상사 고문으로 자리를 옮겼다. STX 업무를 보면서 '갈아타기'를 준비하고 있었던 셈이다. 이 전 회장은 경총 회장직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사임한 이 전 부회장은 지난 3월부터 한국도심공항 대표이사로 일하고 있다.
결국 난파선 위에 강 회장 혼자 서 있는 형국. 선장을 두고 혼자 살겠다고 하선한 선원들을 보는 세간의 시선은 곱지 않다. 강 회장 본인은 오죽 답답할까. 그래서 더 강 회장의 퇴장이 쓸쓸하기만 하다.
김성수 기자 <kimss@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