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인물> 메이저리거 임창용

  • 이광호 khlee@ilyosisa.co.kr
  • 등록 2013.09.23 11:3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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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세 불굴의 루키…드디어 ‘꿈의 무대’ 오르다

[일요시사=사회팀] 사이드암 투수 임창용이 메이저리그에 당당히 입성했다. 난관을 헤치고 결국 꿈을 이뤄낸 것이다. 결코 쉬운 도전은 아니었다. 1995년 해태(KIA 전신)에 입단해 프로 무대에 발을 디딘 지 19년 만에 이룩한 ‘꿈의 무대’ 진입이다.


'꿈을 이룬' 메이저리거 임창용
'꿈을 이룬' 메이저리거 임창용


‘창용불패’ 도전이 마침내 결실을 맺었다. 다부진 포부로 메이저리그 진출을 선언했던 ‘미스터 제로’ 사이드암 투수 임창용이 빅리그로 승격됐다. 미국 프로야구 시카고 컵스 구단은 지난 5일(한국시간) 임창용을 메이저리그 40인 로스터에 포함했다고 발표했다. 선수 생활의 고비마다 ‘마이 웨이’를 외치며 자신의 길을 개척한 임창용의 패기가 비로소 빛을 발한 것이다.

‘풍운아’ 임창용
빅리거 꿈 이뤘다

시카고 컵스 산하 트리플A 팀인 아이오와 컵스에서 뛰어온 임창용은 9월 확대 엔트리가 시행된 뒤 두 차례 발표된 추가 합류 선수 명단에 포함되지 않았다. 메이저리그 승격이 늦춰지는 듯했지만 지명할당된 투수 마이클 보우든 대신 빅리그에 입성하게 됐다. 이로써 현역 한국인 메이저리거는 추신수(신시내티), 류현진(LA 다저스)과 함께 3명으로 늘었다. 또 그는 1994년 LA 다저스에 입단한 박찬호를 시작으로 빅리그 무대에 서게 되는 14번째 한국인 선수가 됐다. 한국과 일본, 미국 프로야구를 모두 거친 선수로는 이상훈, 구대성, 박찬호에 이어 네 번째이다. 메이저리그를 거쳐 2011년 일본 프로야구 라쿠텐에 입단했지만 부상으로 한 경기도 출장하지 못한 김병현(넥센)까지 포함하면 5명째다.

컵스는 임창용을 2014년 주요 전력 중 하나로 높게 평가하고 있다. 리빌딩에 들어간 컵스는 전반적인 마운드 개편이 시급한 상황이다. 자유계약선수(FA) 시장을 기웃거리고 있는 가운데 40인 로스터 확장에도 기민하게 대응했다. 지난 5일까지 총 9명의 선수를 불러올렸고 이 중 절반이 불펜 요원이다. 지난 5일 불펜 평균자책점이 4.17로 내셔널리그 14위에 처져 있는 컵스의 고육지책이기도 하다.

데일 스웨임 컵스 감독은 2014년 구상을 원점에서 시작할 듯 보인다. 이번 로스터 확장에서 많은 선수를 불러 올린 것도 같은 맥락이다. 특히 불펜은 마무리부터 전면 개편이다. 올 시즌 팀 내 혼란을 틈타고 마무리 자리를 꿰찬 케빈 그렉이 불안한 모습을 보였음은 물론 장기적인 대안이 아니라는 시각이 우세하기 때문이다. 새 판을 짤 가능성이 높다.


스웨임 감독도 “9월에는 페드로 스트롭을 마무리로 시험할 것”이라는 의사를 밝혔다. 내년을 내다본 포석이다. 그러나 스트롭이 마무리로 직행한다는 의미는 절대 아니다. 스웨임 감독은 “시즌이 끝날 때까지 어떤 결정이 내려질 것이라 생각하지는 않는다”라면서 “많은 선수들이 MLB에 올라왔고 오프시즌은 길다. 내년 스프링캠프 때까지 어떤 결정이나 계획은 없을 것”이라고 말하며 무한경쟁을 예고했다.

결국 임창용도 이제 출발선에 섰다고 볼 수 있다. 지금부터 스프링캠프까지가 진짜 승부처다. 팀에서 기대를 걸고 있지만 임창용 스스로가 자신의 진가를 증명하지 못한다면 전망은 어두워질 수밖에 없다. 여기에 임창용은 현재 불펜 요원 중 가장 나이가 많다는 단점을 갖고있다. 다만 경험은 가장 풍부하다. 과연 임창용이 자신의 경쟁력을 확실하게 보여줄 수 있을까.

지난 8일 리글리필드에서 열린 밀워키 브루어스와의 경기에서 역사적인 메이저리그(MLB) 첫 경기를 치른 임창용은 그 후 2경기에서 등판하지 못했다. 몸 상태에 이상이 있는 것은 아니다. 임창용 스스로 “연투가 가능하다”고 자신할 정도로 몸 상태는 어느 정도 올라왔다. 하지만 ‘경기 상황’이 발목을 잡았다.

국내 프로 입단 19년 만에 MLB 입성
선수생활 고비마다 ‘마이웨이’개척

데일 스웨임 시카고 컵스 감독은 일단 임창용의 등판을 ‘지고 있는 상황’에 한정시켜 놓았다. 부담 없는 상황에서 마운드에 오르라는 배려다. 사실 처음에는 긍정적인 면도 있었다. 컵스는 올 시즌 포스트시즌 진출이 좌절됐다. 승리에 대한 압박이 그리 크지 않다. 산전수전을 다 겪은 베테랑이지만 MLB 첫 시즌을 맞이하는 임창용으로서도 나쁘지 않은 여건이었다. 컵스가 상대적 약체라 이기는 상황보다는 지는 상황이 더 많다는 점도 고려할 수 있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임창용이 승격한 이후 컵스의 성적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컵스는 임창용의 승격 첫 날이었던 5일 마이애미 말린스전에서 9-7의 역전승을 거뒀다. 임창용이 나올 만한 타이밍이 마땅치 않았다. 7일 밀워키전에서도 8-5로 이겼다. 초반부터 앞서 나가 임창용의 등판은 무산됐다. 9일 밀워키전에서는 1-3으로 졌지만 6회까지는 이기고 있는 상황이었다. 임창용은 이날 경기에 대기하고 있었지만 갑자기 역전당한 통에 등판 타이밍을 놓쳤다.

신시내티 원정 첫 경기였던 10일 경기에는 선발 트래비스 우드가 7이닝 6피안타 7탈삼진 무실점 역투를 펼치며 2-0으로 이겼다. 임창용보다는 기존부터 활용했던 필승조들이 먼저 부름을 받았다. 2-0으로 앞선 8회에는 장기적인 기대주인 페드로 스트롭이 마운드에 올라 1이닝을 책임졌고 9회에는 팀 마무리 케빈 그렉을 올려 임창용에게는 경기 끝까지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때문에 임창용과 추신수와의 맞대결이 미뤄졌다. 임창용 승격 이후 컵스가 3승2패로 5할 이상의 승률을 기록하고 있다는 것을 한가닥 위안으로 삼아야 할 판이다.


인고의 세월 끝에
드디어 밟은 MLB

임창용은 전남 광주에서 태어나 광주진흥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95년 지역우선 드래프트로  해태 타이거즈에 입단, 첫해를 대부분 2군에서 보냈다. 당시 해태 2군 감독이였던 김성근 감독의 밑에서 혹독한 훈련을 거치며, 입단 2년차때부터 조금씩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96년 20살 임창용과 34살 김정수가 뭉쳐, 마치 메이저리그의 뉴욕 양키스 마리아노 리베라-존 웨틀랜드처럼 불펜에서 뛰어난 활약을 보여 정규 시즌 1위, 팀의 8번째 우승에 공헌했다.

97년 풀타임 마무리로 데뷔한 임창용은 14승 8패 26세이브를 기록하며 해태의 마지막 우승에 공헌했다. 이해에 임창용은 불펜과 마무리로 135이닝을 소화하였는데, 이는 93년 선동열이 125이닝 소화한 것보다 더 많은 이닝을 소화하며 ‘창용 불패’의 신화를 만들어낸다. 98년 시즌 최다인 34세이브를 기록하며 22세 나이로 역대 최연소 구원왕에 오른 바 있다.

99년 삼성에서 보낸 첫 시즌, 마무리 투수로 활약하면서 38세이브와 2.14의 평균 자책점을 기록하여 두 부문 모두 리그 1위를 기록했다. “위기 상황 때마다 부르면 항상 나온다”는 뜻으로 자사의 휴대폰 브랜드인 “애니콜(Anycall)”이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혹사에 가까울 만큼 많은 경기를 소화해냈다. 2000 시즌까지 삼성의 마무리 투수로 활약한 임창용은 두산 베어스의 진필중과 함께 한국 최고의 마무리 투수 양대 산맥으로 꼽힐 정도로 맹활약을 펼쳤다.

2001 시즌부터 그는 마무리 투수에서 선발 투수로 보직을 옮겼다. 2001 시즌 14승, 2002 시즌 17승, 2003 시즌 13승을 기록하는 등 3년 연속 두 자릿수 승수를 쌓으며 김진웅, 배영수와 함께 삼성의 주축 선발 투수로 활약했다. 특히 2002 시즌에는 삼성 라이온즈가 정규 시즌 및 한국시리즈 통합 우승을 하는 데에 큰 공을 세웠다.

한편, 그는 국가 대표로도 많은 활약을 펼쳤는데, 1998년 방콕 아시안 게임, 2000년 시드니 올림픽, 2002년 부산 아시안 게임 등 세 개의 국제 대회에 출전하여 대표팀이 좋은 성적을 거두는 데에 큰 일조를 했다.

프로 야구 2003 시즌이 끝난 뒤 선동열이 삼성의 수석 코치 겸 투수 코치로 새롭게 부임하면서 그는 다시 마무리 투수로 보직을 옮겼다. 그해 임창용은 정규 시즌 36세이브, 평균 자책점 2.01을 기록하며 여전히 최강 마무리투수임을 확인시켰다. 하지만 시즌 막바지에 구위가 떨어지면서 포스트시즌에선 좋지 못한 기량을 보여 줬다.

2004 시즌이 끝난 뒤 자유 계약 선수(FA)가 된 임창용은 일본 프로 야구(NPB)에 진출을 모색했다. 당시 일본 구단 소프트뱅크 호크스가 그에게 관심을 보이긴 했으나 끝내 영입을 포기하였고, 그의 높은 몸값에 대한 부담과 그해 포스트시즌에서 제 기량을 발휘하지 못한 점 등이 빌미가 되어 한국의 다른 구단에서 선뜻 그의 영입을 조심스러워 했었다. 결국 소속 구단 삼성과 재계약을 맺으며, 심정수, 정민태에 이어 리그 전체에서 고액 연봉 3위를 기록했다.

추신수, 류현진
그리고 임창용

2005 시즌은 선동열이 삼성 라이온즈 감독으로 부임한 첫 시즌이자 임창용이 FA 계약 후 맞이한 첫 시즌이었다. 그는 다시 선발 투수로 보직을 옮겼지만, 2004 시즌 말부터 계속된 제구력 및 구위의 난조로 5승 8패 3홀드, 평균 자책점 6.50이라는 그의 프로 생활 최악의 성적을 기록했다. 이것은 그에게 혹사의 후유증이 드러나기 시작했음을 의미한 것이기도 했다. 2005 시즌 도중 팔꿈치 부상을 당한 임창용은 결국 팔꿈치 인대 접합 수술, 토미 존 서저리를 받았다. 2006 시즌에는 재활에만 전념하였으며, 그 시즌 마지막 경기가 되어서야 1군에서 등판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2006년 한국시리즈 3차전에선 연장 12회에 구원 투수로 등판해 한화의 중심 타자 김태균을 상대로 148 km/h의 강속구를 뿌리며 삼진을 잡아 조금씩 부활을 알렸다.

한국인 14번째 빅리거…역대 최고령
시속 160km 공포의 ‘뱀직구’주무기

2007 시즌, 에이스 배영수가 부상으로 전력에서 이탈한 가운데 구단과 팬은 선발 투수 임창용에게 더욱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여전히 그의 기량은 회복되지 못했고, 5승 7패 3홀드, 평균 자책점 4.90이라는 성적으로 2005 시즌과 거의 동일한 모습을 보여 줬다.

2007년 시즌에도 자기 스스로 만족하지 못한 실망스러운 성적을 내면서 뭔가 새롭게 도전할 수 있는 환경과 동기 부여를 찾게 된다. 고민 끝에 임창용은 일본 리그 진출을 다시 시도해 보기로 마음먹었다. 2004년 시즌 후 소속팀 삼성 라이온즈와 맺었던 2년 FA 계약이 끝나는 시점인데다 삼성 구단은 그가 해외 진출을 원할 경우 조건없이 풀어주기로 미리 합의해 놓았었기에 일본 진출을 다시 시도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2007년 포스트시즌 준플레이오프가 끝나자마자 그는 일본 진출을 하고 싶다고 구단측에 말했고, 흔쾌히 동의를 받았다. 2005년부터 좋은 활약을 펼치지 못했을 뿐더러 자존심을 내세우기보단 새로운 리그에 도전한다는 것 자체가 그에게 더 중요했기에 “인생의 황금기는 한 번이 아니라고 들었다. 정체된 나를 깨우고 싶었다”라는 말을 남기며, 몸값이 낮더라도 상관없이 어떻게든 일본에 진출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였다.


일본 프로 야구단 중 센트럴 리그의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스가 그에게 가장 먼저 관심을 보였다. 2007 시즌이 끝난 뒤 야쿠르트는 에이스 투수 2명, 용병 세스 그레이싱어와 재계약에 실패하고, 좌완 이시이 가즈히사가 세이부 라이온스로 이적하면서 투수진이 크게 약화되었기에 임창용 영입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임창용은 결국 야쿠르트와 2년 계약, 연봉 1500만엔(약 1억2400만원)에 합의함으로써 일본 프로 야구에 진출했다.

일본 프로 야구 센트럴 리그의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스로 이적한 임창용은 팀의 간판 마무리 투수로서 2008년 첫 시즌부터 뛰어난 활약을 했다.

강타자 농락할
여전한 뱀직구

2008년 요미우리 자이언츠와의 개막 첫 경기 때 셋업맨으로 등판했으나, 마무리 이가라시 료타의 부상으로 바로 그 다음날 마무리로 등판하면서 일본 진출 후 첫 세이브를 따냈다. 이 날 첫 삼진을 잡은 선수는 놀랍게도 이승엽이었다. 인상적인 피칭을 보여줌으로써 현재까지도 팀의 주전 마무리로 2009년에는 클라이맥스 시리즈 제도가 생긴 이후 처음으로 팀이 진출할 수 있었던 것에 일조했다. 팬들로부터 야쿠르트 ‘수호신’이라는 말과 함께 ‘미스터 제로’ ‘이무타임’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그의 강속구는 마치 뱀처럼 빠르고 꾸불꾸불하게 지나가는 것 같다하여 ‘뱀직구’라 불리며, 최고 구속은 일본에서 세 번째로 빠른 160km/h이다. 일본에 진출한 한국 선수 중 최초로 올스타전 팬 투표 부문 1위를 기록하며 올스타전에 출전하기도 했다.

이렇듯 일본 진출 2년 만에 스스로 퀼리티를 높여, 실력을 인정받고 첫해 기본 연봉 30만 달러, 2010년 50만 달러(추정)에서 2010년에는 200% 증가한 기본 연봉 160만 달러에 재계약을 했다. 그러나 2012년 시즌 중 발생한 팔꿈치 부상으로 재활에 전념했으나 결국은 그해 11월15일 야쿠르트에서 방출되었다.

2012년 12월14일 미국 메이저리그 시카고 컵스와 계약했다. 이로써 역사상 4번째로 한국 프로 야구 , 일본 프로 야구 , 미국 메이저리그 순으로 활약하게 된 선수가 됐다. 그리고 엔트리에 올라와 2게임동안 무실점으로 호투했다.



이광호 기자 <khlee@ilyosisa.co.kr>


<임창용은?>

▲전남 광주 출생
▲해태 타이거즈
▲방콕 아시안게임 한국 야구 국가대표
▲삼성 라이온즈
▲시드니 올림픽 한국 야구 국가대표
▲부산아시안게임 야구 국가대표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스
▲제2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국가대표
▲시카고 컵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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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 비선’ 노상원·명태균 오버랩

‘계엄 비선’ 노상원·명태균 오버랩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이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을 통해 윤석열 대통령의 안보 공약과 정치적 스탠스 등에 조언을 아끼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윤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와 직접적으로 연락하면서 국정 전반에 개입한 의혹을 받는 명태균씨의 모습과 맞닿아 있는 대목이다. 일각에서는 노 전 사령관이 군 인사뿐만 아니라 국방정책과 사업에까지 손을 댔을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통상 비선 실세는 외부서 활동한다. 대통령으로부터 보직을 받지 않았음에도 최측근으로 꼽히는 인사들과 정부의 정책과 정치적 활동에 상당한 영향을 끼친다. 윤석열정부서 이 같은 행위를 한 이들은 주로 ‘무속 관련자’들이었다. 정치 브로커 명태균씨와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 등도 정부 정책 및 인사에 개입한 의혹의 당사자들이다. 안보 분야 대책 조언 노 전 사령관은 윤석열 대통령이 대선후보 시절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을 통해 안보 공약이나 지지율 상승 방안 등을 조언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25일 <한겨레> 단독 보도에 따르면 노 전 사령관은 지난해 12월11일 경찰 조사에서 “(2022년)윤 대통령이 대선 캠프를 구성했을 때, 김 전 장관이 제게 일을 도와달라 부탁했는데 성 관련 범죄 경력 때문에 전면에 나서지 못했다”며 “(그 대신에)대선 토론 때 안보 관련 분야 질문 및 답변 내용에 대해 초안을 잡아주면, (상대 후보의)역공 대비 등 세밀히 검토해서 수정하는 작업을 했다”고 진술했다. 그는 윤 대통령 취임 이후에도 “(김 전 장관이)‘대통령 지지도를 어떻게 하면 올릴 수 있냐’고 묻길래 ‘검사 출신이라 말이 친화적이지 않다. 국민에게 다가가는 모습을 보여줘라’고 했다”며 “(시장에 가서)생선 같은 것도 만지면서 친근하게 대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또 “광주 5·18(행사)에 참석해라. 그들도 같은 국민”이라며 “일단 내려가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라 건의해라. 이왕 대통령이 됐으면 전라도도 품을 줄 알아야 한다”고 했다고 한다. 실제 윤 대통령은 지난 2023년 7월엔 부산엑스포 유치 홍보를 위해 부산을 찾은 뒤 자갈치시장서 붕장어를 맨손으로 만졌다. 또 2022년 5월 취임 이후 지난해까지 3년 연속 광주를 찾아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했다. 노 전 사령관은 “나중에 티브이(TV)를 보니까 제 말대로 다 하는 것 같았다”고 했다. 이 같은 상황을 볼 때 윤 대통령은 노 전 사령관의 존재를 수년 전부터 알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적지 않은 도움을 받은 김 전 장관은 노 전 사령관을 윤 대통령에게 인사시키려 했으나 성사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노 전 사령관은 “김 전 장관이 몇 번 (윤 대통령에게 자신을) 인사시키려 했는데, 저 스스로 성 관련 범행에 대한 멍에가 있어서 안 본다고 했다”며 “(김 전 장관이)군인공제회 산하단체 비상근 사외이사 자리를 주겠다고 했는데 (국회)국방위원회서 다 밝혀질 거라 사양했다. 공기업 임원 얘기도 했지만 같은 이유로 사양했다”고 진술했다. 노 전 사령관의 의혹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노 전 사령관이 자신의 인맥을 활용해 국방사업에도 개입했다는 의혹을 제기한 바 있다. 민주당 추미애 의원은 지난 1월16일 “12·3 내란 핵심 주동자인 김용현(전 국방부 장관), 노상원(전 정보사령관), 여인형(방첩사령관), 김용군(예비역 대령)은 방위산업을 고리로 한 경제공동체”라고 주장했다. 추 의원에 따르면 노 전 사령관은 지난 2022년 김 전 장관이 경호처장 시절 그의 영향력으로 국가정보원 예산 500억원이 육군 전자전 무인 정찰기(UAV) 사업 예산으로 편성 추진했다. 당시 이 예산은 ‘김용현 처장 꼬리표 예산’으로 불렸다는 게 추 의원의 주장이다. 노, 윤 대선후보 시절부터 감 놔라 배 놔라 실제 김 통해 일부 이행…윤 직접 접촉 시도 추 의원은 “2023년 이 사업에 도입될 기종은 노상원이 (당시)재직 중이던 일광공영이 국내 총판인 이스라엘 항공우주산업(IAI)의 헤론으로 결정됐다. 일광공영은 무기 중개상 1세대로 불리며, 2000년 러시아 무기 도입 사업인 불곰사업으로 유명한 이규태가 운영하는 방산업체다. 노 전 사령관은 최근 3년간 일광공영에 근무했다”고 말했다. 통상 무기체계 등 전력사업은 육군본부 기획관리참모부가 관리한다. 그러나 해당 사업은 당시 육군 정보작전참모부장이던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이 관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이 사업은 예산이 편성되지 않아 중단됐다. 추 의원은 노 전 사령관과 윤 대통령 일가와의 연결고리 의혹도 제기했다. 그는 “노상원은 이미 2015∼2016년 박근혜정부 때부터 김충식과 후원을 주고받는 관계였다”며 “김충식은 윤석열의 장인 행세를 하는 분이고, 장모 최은순 여사와 사적인 관계 또는 경제공동체이기도 하다”고 강조했다. 노 전 사령관은 국방·안보 분야 조언에 그쳤다. 명씨는 정부 사업과 정치 권력 전반에 영향을 끼친 정황이 드러나고 있다. 굳이 둘을 놓고 비교하자면 노 전 사령관보다 명씨의 비선 실세 서열이 한 수 위인 셈이다. <시사IN>이 공개한 윤 대통령 일가와 명씨의 카카오톡·텔레그램 대화 원본을 보면 명씨는 사실상 국회의원 후보 선정과 경제 사업 추진에 판을 짜는 플래너였다. 실제 명씨는 지난 2021년 7월 윤 대통령이 국민의힘에 입당하기 전 이뤄진 국민의힘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 당시 국민의힘 대표였던 개혁신당 이준석 의원과 가진 비공개 회동부터, 그 이후 진행된 윤 대통령의 정치인 접촉을 주도했다. 이 의원과 윤 대통령의 회동 당시 김 여사는 JTBC가 보도한 ‘윤석열·이준석 비공개 회동’ 기사 링크를 보냈다. 김 여사는 명씨에게 “큰일이네요. 왜 준석씨가 이렇게까지 발설했을까요. 남편에게는 완전 악재인데요ㅠ”라며 “선생님(명태균씨)께서 단단히 말씀하셨을 것 같은데요”라고 말했다. 닮은 듯 다른 듯 이들은 대선후보 여론조사 결과 보고서를 각각 여러 차례 주고받았다. 명씨가 윤 대통령 부부에게 여론조사를 무상으로 제공하고, 그 대가로 2022년 6월 보궐선거서 국민의힘 김영선 전 의원 공천을 받았다는 의혹이 ‘명태균 게이트’의 핵심이다. 명씨는 윤 대통령의 일정과 행보에 대한 사후 보고, 평가, 조언도 김 여사에게 더 자주 했다. 예시로 2021년 7월29일, 명씨가 김 여사에게 윤 대통령의 부산 방문 당시 실언한 점을 포착한 영상 보도 링크를 보냈다. 당시 윤 대통령은 이한열 열사가 새겨진 1987년 6월 항쟁 기념 조형물을 보고 ‘1979년 부마항쟁이냐’라고 물어 논란이 된 상황이었다. 명씨는 말실수를 한 윤 대통령이 아닌 김 여사에게 메시지를 보내 “미리 방문하는 곳 학습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2021년 9월17일과 18일, 20일에는 명씨가 김 여사에게 윤 대통령의 경북·경남지역 방문 관련 반응이 담긴 언론 기사와 여론조사 결과를 보냈다. 명씨는 이와 관련해 윤 대통령의 일정을 자신이 기획했다고 검찰에 진술하기도 했다. 명씨는 자신의 ‘기획물(지역 방문 일정)’ 결과를 김 여사에게 보고했다. 특히 윤 대통령의 경남 일정 이후 ‘창원 전·현직 도·시의원 33명이 윤석열 지지를 선언했다’는 내용의 기사 링크도 김 여사에게 먼저 보냈다. 대선 캠프에 소속되지 않은 명씨가 후보 일정에 개입한 것이다. 특히 명씨는 검찰서 자신이 기획한 경남 일정 가운데 창녕 방문을 자랑스럽게 설명했다. 당시 창녕 방문이 윤석열 후보자에게 가장 중요했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창녕은 국민의힘 대선 경선 경쟁자인 홍준표 당시 예비후보의 고향이다. 홍 후보를 견제하기 위해 창녕 방문 일정을 넣었다는 취지로 해석된다. 입 열면 쑥대밭 명씨는 윤석열 캠프 인사 개입 의혹도 받는다. 명씨와 김 여사의 대화를 보면, 이 의혹 역시 두 사람으로부터 시작됐다. 명씨가 김 여사와 캠프 인사 문제를 상의했고, 그 결과가 일부 실현된 사실이 확인된다. 2021년 7월16일 김 여사는 명씨에게 황준국 전 주영국 대사 프로필을 공유했다. 그러면서 “후원회장으로 어떤가요? 이권과 연결도 안 돼있다”고 했다. 김 여사가 명씨에게 이 메시지를 받은 다음날인 7월17일, 황 전 대사는 윤석열의 후원회장으로 위촉됐다. 정통 외교관 출신 인사가 대선후보 후원회장을 맡는 사례는 매우 드물다. 2021년 7월19일에는 명씨가 김 여사에게 임태희 경기도교육감 프로필을 보냈다. 그러면서 ‘총장님께서 물어보신 임태희 실장’이라며 장문의 설명을 덧붙였다. 윤 대통령이 먼저 명씨에게 임 교육감 세평을 물었는데, 명씨는 그 답을 윤 대통령이 아닌 김 여사에게 했던 것으로 보인다. 임 교육감은 2021년 12월 국민의힘 선거대책위원회에서 총괄상황본부장을 맡았다. 한 달여 뒤에는 명씨가 김 여사에게 자신이 국민의힘 의원이었던 박완수 경남도지사와 주고받은 문자메시지를 캡처해 보냈다. 박 지사는 “명 대표 나도 많이 도와주세요”라고 말했고, 8월1일 “윤 총장 전화 왔습니다. 열심히 할게요”라고 말했다. 7월31일, 명씨는 윤 대통령에게 박 지사 연락처를 전달하면서 “전화하면 총장님을 돕겠다고 할 것”이라고 했다. 이후 8월6일 박완수 당시 의원은 명씨와 윤 대통령 자택인 서울 아크로비스타에 방문했고 윤 대통령과 사진도 찍었다. 이 같은 명씨의 영향력이 정치권서 소문으로 퍼지기 시작한 이후에도 두 사람은 연락을 주고받았다. 2023년(연도 추정) 4월6일 김 여사가 명씨에게 ‘김건희 여사, 명태균과 국사를 논의한다는 소문’이라는 제목의 정보지 글을 공유했다. 김 여사가 천공 스승과 거리를 두고 명씨와 국사를 논의한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는 등의 내용이었다. 노·명 전부 무속 의혹 제기 “여사 연결고리?” 명, 침묵하는 노와 대조적 “30명 죽일 수 있다” 윤 대통령이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 장례식에 참석하지 않으려 했던 이유가 명씨의 조언 때문이었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명씨는 웃으며 “세상에 천벌 받을 사람들이 많네요”라고 했다. 4월15일에는 명씨가 김 여사에게 네잎클로버 사진을 보냈다. 명씨는 “여사님 행운의 징표인 네잎클로버를 발견하고 여사님께 보내드린다”며 “윤석열정부 꼭 성공한 정부가 될 겁니다”고 했다. 김 여사는 V자 손가락 이모티콘으로 화답했다. 노 전 사령관은 가장 논란이 된 이른바 ‘노상원 수첩’과 관련된 내용에 대해서는 침묵을 지키고 있다. 검찰 조사에서까지 진술거부권을 행사하면서 국지전 유도와 북풍 공작 등의 음모론 같은 의혹은 아직 실체가 드러나지 않고 있다. 그러나 명씨는 본인이 적극적으로 검찰 조사에 임하면서 국민의힘과 윤 대통령 일가의 ‘뇌관’을 자처하고 있다. 창원구치소에 수감 중인 명씨는 최근 노영희 변호사와의 접견서 “국민의힘 주요 정치인 30명을 죽일 수 있는 카드가 있다”며 “내가 한 말은 전부 증거가 분명히 있다”고 말했다. 명씨와 연루 의혹이 있는 인사들이 정치권 내에서 이른바 ‘명태균 리스트’로 분류되긴 했지만, 명씨가 직접 숫자를 밝힌 건 이번이 처음이다. 앞서 명씨 관련 의혹을 폭로한 강혜경씨는 지난해 10월 명씨와 연관됐다고 주장하며 여야 정치인 27명 명단을 공개하기도 했다. 명씨의 정치권 인맥은 ‘황금폰’이라고 불리는 명씨 휴대전화서 일부 포착된 적이 있다. 검찰은 지난해 12월 명씨의 휴대전화를 넘겨받아 포렌식을 진행했다. 당시 검찰은 명씨의 휴대전화에 연락처가 저장된 전·현직 정치인 140명을 파악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 명씨 측 남상권 변호사는 지난달 13일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서 “명씨 황금폰 포렌식 과정서 너무 많은 정치인이 나와서 깜짝 놀랐다”며 “명씨 휴대전화에 저장된 전·현직 국회의원이 140명이 넘는다”고 밝히기도 했다. 황금폰 포렌식 명씨는 “내가 최재형 전 감사원장을 국무총리로, 이준석 의원을 미국 대북특사로 추천을 했었다”면서 “당시 국민의힘 관련 윤한홍, 박완수, 김영선, 김종인 등에 대한 자료가 많다”고 유력 정치인들의 이름을 구체적으로 거론했다. 특히 명씨는 오세훈 서울시장과 홍준표 대구시장에 대해 “(이들에 대해)얘기할 것이 아주 많다”며 “민낯을, 껍질을 벗겨 놓겠다”고 거친 언사를 쓴 것으로도 파악됐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