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격세태> 기러기아빠 아지트 ‘기러기바’ 실태

  • 이광호 khlee@ilyosisa.co.kr
  • 등록 2013.09.16 11: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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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의 빈자리, 그녀들이 채워준다

[일요시사=사회팀] 자녀의 교육을 위해 부인과 아이들을 외국으로 보내고 홀로 한국에 남아있는 ‘기러기아빠’들은 늘 외롭다. 이들은 가족을 그리며 술로 밤을 지샌다. 그리고 씻기지 않는 외로움을 달래고자 ‘기러기바(데이트바)’를 찾고 있다.



1990년대 조기유학 열풍이 불면서 시작된 ‘기러기아빠’ 문제, 한국에서는 그리 낯설지 않은 풍경이다. 이미 국어사전과 국립국어원에 신조어로 포함됐을 정도로 한국사회에 엄연한 보통명사로 자리잡았다. 그 숫자도 50만 가구 이상으로 추산되니, 이미 가족의 한 형태가 된 것이다. 그러나 정작 ‘기러기아빠’의 속은 썩어 문드러진다. 지금 그들은 속 얘기를 들어줄 대화상대를 찾고 있다.

데이트 상대 찾아
밤거리 헤맨다

서울 강남 일대에 외로운 기러기아빠들을 상대하는 일명 ‘기러기바(데이트바)’가 우후죽순 생겨나고 있다. 이곳은 초저녁부터 기러기아빠 등 외로운 남성들로 북적댄다. 이색적인 건 이들은 동행 없이 혼자 온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그간 외로웠던 마음을 달랠 수 있는 시스템이 마련돼 있기 때문이다. 자신이 원하는 여성을 선택해 1대 1로 술을 마시며 자연스러운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장점이 이들의 발걸음을 옮기게 하고 있다.

수년 전 사랑하는 아내와 자식을 먼 타국으로 떠나보낸 A씨는 최근 외로움에서 한 발짝 벗어났다. 기러기아빠가 주 고객인 ‘데이트바’에서 대화녀를 만나고부터다. 묘한 술집시스템에 대해 꽤 만족하는 눈치다. “내 나이쯤 돼서 기러기족 생활을 하다보면 룸살롱도 재미없고 늘 외롭다. 우연히 데이트바를 알게 됐는데 술에 대한 부담도 없고 젊은 아가씨들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보면 스트레스가 풀리고 위로받는 느낌이다.”

사실 A씨는 ‘데이트바’를 처음 접했을 때, 신종 변태 유흥업소인 줄 알았다. 하지만 데이트바를 직접 가보니 신종 유흥업소가 아니었다. 외로움을 달랠 수 있는 최상의 장소였던 것이다. 그는 ‘데이트바’에서 만난 대화녀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기대 이상의 위안을 느꼈다. 그 뒤로  A씨는 한 달에 두 세 번씩 데이트바를 찾고 있다.

A씨는 기러기아빠들이 모이는 한 인터넷 카페를 통해 데이트바의 존재를 알게 됐다. A씨는 이곳에서 활동하는 기러기아빠들과 고민을 털어놓으며 공감대를 형성하고 가끔 열리는 정기모임에도 빠짐없이 참석했다. 그리고 정기모임 어느 날, 데이트바에 다녀온 B씨의 후기를 듣게 됐다. 당시 A씨는 퇴폐업소라고 생각해 단순히 웃어 넘겼지만 그 호기심은 며칠이 지나도 가시지 않고 남아 있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고 쓸쓸히 퇴근하는 발걸음에, 문득 정기모임 때 B씨가 말한 데이트바가 떠올랐다. A씨는 B씨에게 들은대로 곧장 데이트바로 향했다.

솔로 남성들을 위한 전용술집 데이트바는 대화녀라고 불리는 예쁜 여종업원과 독립된 공간에서 1대1로 술을 마시며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곳이다. 룸살롬 등에 싫증을 느낀 기러기 아빠들이 많이 찾는 것으로 알려졌다.

기러기아빠 A씨는 본인이 원하는 아가씨 한 명을 지목해 1대 1로 ‘프라이빗바’에서 술자리를 함께했다. 맥주와 안주는 무제한 제공된다. 대화를 나누다 보니 제법 이야기가 통했고 재밌었다. 기본 한 시간에 10만원이지만 돈이 아깝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왜냐하면 대화녀가 자신의 고민을 진심으로 들어주고 시덥잖은 농담에도 밝은 미소를 보여줬기 때문이다. 이러한 대화녀의 반응에 들뜬 A씨는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씁쓸한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데이트바를 이용하는 기러기아빠 A씨는 “가정에서 치이고 회사에서 치이다 보면 삶이 황량하다. 체면 때문에 속내를 털어놓기도 힘들다. 그렇다보니 늘 외롭다”고 토로했다. 그는 “그러던 중 우연히 데이트바를 알게 됐는데 술에 대한 부담감도 적고 대화녀들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보면 어느새 위안을 받고 웃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고 털어놨다.

진솔한 대화로
발길 끊이지 않아

업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데이트바’는 고급스러운 인테리어는 물론이고, 손님들과 원활한 대화를 위해 대화녀들에 대한 철저한 서비스 매너 교육을 시키고 있다. 그리고 대화녀로 일을 하기 위해선 어느 정도의 기본적인 교양지식은 갖춰야 한다고. 학식 있는 기러기아빠들이 많기 때문이다. 한편 이러한 세태 속에 목돈 마련을 위해 ‘대화녀’를 자청하는 젊은 여성들이 늘고 있다.

사실 퇴폐적 서비스를 하는 바나 유흥업소는 천지에 널려있다. 하지만 데이트바는 유흥업소에 질린 외로운 남성들에게 안성맞춤이다. 큰 부담 없이 편하게 와서 기분전환하고 갈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보니 뜨거운 서비스나 진한 스킨십을 원하는 손님은 드물다. 물론, 간단한 스킨십 정도는 허용된다.

가끔 꼴불견인 손님들도 있다. 도를 지나쳐 가슴 등 신체 은밀한 부위를 노골적으로 만지려고 하는가 하면 치마 속 등 몰래카메라를 찍으려는 남성도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몇몇 남성들은 대화를 나누다 마음이 통한다 싶으면 “나랑 사귀자”고 말하기도 한다. 또 몇몇 손님은 은밀하게 성매매를 제의한다고 한다. 아무리 친절하고 매너가 좋아도 사적인 만남, 2차는 엄격하게 금지돼 있다.

서울 강남 일대에 ‘데이트바’우후죽순
초저녁부터 외로운 남성들 북적북적

‘대화녀’ 가희(27·가명)씨는 “손님들이 사귀자는 건 대부분 엔조이를 의미한다. 가끔 정말로 마음이 통하는 손님이 있기도 하지만 일일 뿐이다. 솔직히 사귀는 건 힘들다”고 말했다.

가희씨는 6개월 전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새로운 분야에 도전했다. 자격증을 따러 학원에 등록하고 열심히 공부했다. 새로운 삶을 살기 위해 직장을 그만뒀지만 생활이 막막했다. 학원비며 수업에 필요한 도구며 돈 나갈 곳이 많았다. 거기에 생활비와 적금, 보험료 등 수입보다는 지출이 많아 경제적으로 힘들어 고민하던 중 지인의 소개로 데이트바에 발을 들이게 됐다.

“사실 처음엔 술집 접대부 같은 일은 아닐까 겁이 났다. 하지만 막상 일을 해보니 나름 많은 것을 배우고 느끼고 있다”고 털어놨다.

가희씨에 의하면 데이트바 일 손님 대부분이 다양한 직업군을 가진 사람들이다보니 대화를 나누면서 자연스럽게 많은 정보를 습득할 수 있어 견문이 넓어졌다고 한다.

과도한 스킨십 금지
여성은 목돈 목적

‘대화녀’로 일하면서 가희씨는 가끔 ‘카운슬러’가 된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고 전했다. 딱딱하고 공식적인 자리가 아닌 만큼 남들에게 말하기 힘든 남성들의 ‘속이야기’까지 들을 수 있다는 것이다. “남자들이 그렇게 외로움도 많이 타고 고민이 많은지 처음 알았다”면서 “처음엔 술집 접대부 같은 일이 아닐까 싶었지만 요즘엔 무슨 심리상담사가 된 기분”이라고 속내를 털어놨다.

사실 ‘대화녀’들은 기러기남성들에게 큰 도움이 되지는 못하지만, 진심으로 경청해주며 가끔 조언도 해주면 손님들이 큰 위안을 받는 것 같아 자신도 힘이 생긴다고 했다.

가희씨는 “낮에는 자신의 미래를 위한 공부를 하고 밤에는 기러기바에서 일하고 있다”고 말했다. 가희씨 뿐 아니라 데이트바에서 일하는 대화녀들은 대부분은 낮에 직장생활을 한다. 이중에는 자기계발 중인 대학생들도 많다. 이들 대부분은 새벽 3시에 퇴근해 다음 날은 자신을 위해 시간을 투자하고 있다.
초미니스커트로 각선미를 과시하는 ‘대화녀’들은 대부분 낮엔 직장에 다니거나 피팅모델 등의 일을 하는 투잡족이다.

수연(22·가명)씨는 “밤에는 일하고 낮에는 학교에 다닌다. 학비를 벌기 위해선 어쩔 수 없다. 대학 졸업 후 내가 원하는 직장에 들어갈 때 까지 계속 이 일을 할 예정이다”며 “시간을 많이 뺏기지도 않고 그렇다고 술을 많이 마시지 않으면서 고수익을 보장 받을 수 있어서 좋다”고 털어놨다.

한편 수연(24·가명)씨는 섹시바에서 일하다가 된통 당한 기억에 다시는 유흥업소 관련해서는 일을 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그러나 커져버린 씀씀이를 감당하기 위해서 다시 눈길을 돌렸다. 그러다 데이트바를 만나게 됐다.

수연씨는 “섹시바에서처럼 속옷만 입고 일하지 않아도 되고, 손님들과 이러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곳이란 점이 마음에 들었다”고 귀띔했다.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대화녀들은 한 달에 보통 300만원을 번다. 1시간에 10만원의 비용 중 5만원이 대화녀의 몫이다. 술을 많이 먹지 않아도 되니 목돈이 필요한 여성들에게 인기가 많다. 이렇듯 외로운 기러기아빠들과 그들의 지갑을 노린 이들로 데이트바는 호황을 누리고 있다. 누구는 외로움을 달래고, 누구는 목돈을 마련한다. 어떻게 보면 서로 좋은 만남일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들의 만남은 한국사회의 슬픈 이면을 보여주고 있다.

정신적 고통 호소
아빠들이 위험하다

기러기아빠들은 정신적 고통을 가장 많이 호소한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기러기아빠 3명 중 1명은 우울감을 느낀다. 또 이들은 외로움을 달래기 위한 무분별한 음주습관으로 알코올중독에 걸리기 쉽다. 씨는 방송을 통해 “혼자 지내다보니 술을 자주 먹게 되는데 거의 기절할 정도의 폭음이 잦았다”고 고백한 바 있다.

지난해 6월, 기러기아빠였던 국립대 퇴직교수 K(69)씨가 숨진 지 한 달 만에 이웃에게 발견돼 논란이 됐다. 경찰은 “K교수가 외로움 탓에 술을 많이 마셔 건강이 악화됐던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또 지난 3월에는 대구시 북구 한 아파트에서 치과의사 A씨가 유학중인 딸과 아내 문제로 고민하는 유서를 남기고 자살했다.

스웨덴 우메오대학 연구팀이 1991∼2000년 68만3000여명의 남성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자녀·부인과 떨어져 사는 경우 자살률은 2.3배, 알코올이나 약물중독으로 인한 사망률은 4.7배로 훨씬 높은 사망률을 보였다.
기러기아빠 현상을 중심으로 가족이 흩어져 사는 현상에 대한 연구로 연세대 대학원 신학과 목회 상담 분야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최양숙씨는 기러기아빠를 ‘비동거 가족’이라고 규정했다. 비동거 가족 문제는 우리의 슬픈 자화상이라는 것.

‘쭉쭉빵빵’아가씨와 토킹 1시간 ‘10만원’
이중 5만원 대화녀 몫…간단한 스킨십 허용

그는 논문에서 기러기아빠를 “자녀를 외국에서 공부시키기 위해 아내와 자녀를 외국에 보내 놓고 국내에서 혼자 생활하는 남자”라고 정의한 뒤, “한국의 독특한 역사적 경험과 학력 중시 현상과 더불어 국제화 세계화 정보화라는 흐름 속에서 결국 자녀 조기 유학을 위해 가족 비동거라는 선택을 한다”고 요약했다.

이러한 현상의 원인으로는 내 자녀가 잘 살 수 있는 길이 보이지 않아 두렵다는 주관적 판단에서부터 군복무, 공ㆍ사교육 문제, 과열 경쟁 등이 제시됐다. 또 한반도 이남을 뒤덮고 있는 영어 콤플렉스는 영어가 곧 돈이라는 ‘영어 자본론’으로 직결되는데, 이는 공교육이 무너진 상황과 맞물려 ‘덩달아 유학’을 부추긴다.

그 이면은 어쩌면 더 심각하다. 이미 외국 생활에 익숙해지고 외국 교육의 장점 등에 길들여진 기러기 엄마와 자녀는 대부분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어하지 않는다. ‘엄마 잘 만나야 대학 간다’는 말에 떠밀리듯 부인과 자식을 보낸 아버지는 갑작스런 독거 생활에 사실 처자식의 귀국이 그립기만 하다. 고독감, 정서적 불만, 성적인 욕구 불만 등은 그들이 맞닥뜨리는 보편적 문제라고 최 씨는 지적한다.

기러기 생활이 길어질 경우 가족 간 거리감이 심화돼 가정해체 가능성이 매우 높아진다. 물론 기러기 가족은 자발적 선택에 의한 것이지만 기러기아빠 수가 급증하고 있는 것을 고려할 때 이 같은 문제들을 방치할 수만은 없는 일이다.


이광호 기자 <khlee@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자녀유학 명암
무작정? 계산기부터 두드려야!

자녀를 무작정 유학길에 보내는 부모들이 많다. 하지만 미국에 입시경쟁이 없다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자녀를 아이비리그에 보내려는 미국인들은 초등학교부터 관리에 들어간다. 미국 중산층 엄마도 학교성적, 과외활동 등을 관리하는 맹모 생활을 한다. 그리고 ‘하버드 맘(엄마)’ ‘스탠퍼드 맘’ 같은 자녀 자랑을 자신들이 타고 다니는 차 번호판에 붙이고 다닌다.

경제학에 ‘밴드왜건 효과’라는 말이 있다. 다른 사람의 행동에 부화뇌동하는 것을 지칭한다. 연 10조원의 국부를 투입하고 50만명의 자발적 이산가족을 만들어내고 있는 지금, 기러기 가족의 비용과 교육성과라는, 투입과 산출의 냉정한 경제학적 계산을 해봐야 할 때가 아닐까. <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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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점’ 더 깊은 늪에 빠진 국민의힘

‘점점’ 더 깊은 늪에 빠진 국민의힘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지방선거 공천에선 인물난 속에서도 조직표를 놓지 못하는 흔적들이 감지된다. 서울시장 경선 참여자들은 장동혁 대표의 지원 유세에 난감해하고 있다. 조직표에 기반한 정당이 집권하지 못했던 과거 사례들은 국민의힘을 더 깊은 늪으로 몰고 있다. 리얼미터·한국갤럽이 지난달 각각 진행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이재명 대통령·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지지율은 높지만, 국민의힘의 지지율은 저조한 것으로 나타났다. 리얼미터가 발표한 이 대통령의 지지율은 62.2%로 확인됐다. 이 조사는 지난달 23일부터 27일까지 5일 동안 전국 만 18세 이상 유권자 2513명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가면 갈수록 지지율 격차 민주당 지지율은 51.1%로 집계됐고, 국민의힘 지지율은 30.6%로 집계됐다. 이 조사는 지난달 26일부터 27일까지 이틀 동안 전국 18세 이상 유권자 1006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다. 두 조사 모두 무선 자동응답 방식을 활용해 무작위 생성 표집틀을 통한 임의 전화걸기 방법으로 실시했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한국갤럽도 비슷한 기간 동안 유사한 조사를 진행했다. 한국갤럽이 발표한 이 대통령 지지율은 65%였다. 정당 지지율은 민주당 46%로 집계됐고, 국민의힘은 19%로 집계됐다. 이 조사는 지난달 24일부터 26일까지 3일 동안 전국 만 18세 이상 유권자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두 조사 모두 무작위로 추출된 무선전화 가상번호에 전화 조사원이 인터뷰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이 조사 결과들을 놓고 “민주당과 국민의힘 간 지지율 격차가 상당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는 지방선거에서 언제나 중요한 승부처로 거론되는 서울시장·경기도지사 선거와 관련해 국민의힘이 인물난을 겪고 있는 현 상황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국민의힘에선 양향자 최고위원·새누리당 함진규 전 의원 등 2명이 경기도지사 선거 출마를 선언했다. 민주당에서 김동연 경기도지사·추미애 의원·한준호 의원이 치열한 경쟁을 하는 것과 대비된다. 이 때문에 국민의힘에선 유승민 전 의원에게 지속해서 출마를 권유했다. 국민의힘으로선 “중도 성향 유권자에게도 설득력이 있다”는 평가를 받는 유 전 의원이 경기도지사 후보로 적임이란 판단을 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유 전 의원은 “국민의힘 의원들이 지난달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절연을 선언한 이후에도 당의 강경 노선에 큰 변화가 없다”는 인식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지난달 27일 서해수호의 날 기념식에서 만났던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의 출마 권유에도 “불출마한다는 생각엔 변화가 없다”면서 끝내 거절했다. 그러자 양 최고위원은 같은날 KBS 라디오 <세상의 모든 정보 윤인구입니다>에 출연해 “정당·국가 운영과 공천은 원칙·절차적 정당성 확보가 중요하다”며 “어떤 분이 제게 ‘절대로 떠밀려서 나오는 선거는 하면 안 된다’고 말했는데, 확실한 소명 의식을 가진 사람이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이정현 전 공천관리위원장은 지난달 30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공천이 마무리되는 대로 당이 필요로 하는 가장 어려운 곳에서 제 역할을 다할 준비를 하겠다”며 “아무도 가지 않으려는 곳에서 또 다른 역할을 할 것”이라고 썼다. 이는 전남·광주통합특별시장 출마 암시로 해석됐고, “유 전 의원에게도 출마를 간접 압박하는 것”이란 해석도 나왔다. 겹치는 악재에 강경 보수 조직표 의존? 장동혁 지원 유세? 각지 후보들 ‘난색’ 하지만 유 전 의원은 불출마 의사를 바꾸지 않았다. 이 전 위원장은 지난달 31일 “유 전 의원의 뜻을 존중하기로 했다”며 “현재 신청하신 훌륭한 두 분을 포함해 여러 방안을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지방선거 공천이 사실상 완료됐다”며 전남·광주통합특별시장 출마를 선언한 후 사퇴했다. 부산에선 국민의힘 주진우 의원과 부산시장 후보 경선을 치러야 하는 박형준 부산시장이 손영광 울산대 교수를 공동선대본부장으로 임명했다. 손 교수는 윤 전 대통령 탄핵 반대 집회를 주도한 손현보 목사의 아들이다. 이는 박 시장이 직접 지난달 24일 CBS 라디오 <박성태의 뉴스쇼>에 출연해 “손 교수는 역량이 뛰어난 사람이고, 누구의 아들이라고 매도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해명해야 할 정도로 큰 논란이 됐다. 박 시장은 국민의힘 내에서 합리적 보수 이미지가 강한 인물로 평가된다. 손 교수 영입에 대해선 “경선을 앞두고, 부산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대형 교회 조직표를 의식한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대구시장 후보 경선에서 공천 배제된 이진숙 전 방송통신위원장에 대해서도 여러 해석이 나오고 있다. 이 전 위원장은 지난달 29일 대구 삼성라이온즈파크에서 진행된 2026 KBO리그 개막전을 방문해 ‘대구시장 예비후보 이진숙’이란 어깨띠를 두르고 시민들에게 인사했다. 이에 대해선 “이 전 위원장이 대구시장 선거에 무소속 출마할 수도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반대로 “국민의힘이 이 전 위원장의 공천 자체를 배제한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는 분석도 있다.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은 지난달 24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이 전 위원장은 정권의 무도함에 맞선 최전선 투사”라며 “대구시장 후보에 현역 의원이 공천되면, 그 지역구 재보궐선거에 이 전 위원장을 공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전 위원장을 경기도지사 후보로 공천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국민의힘 조광한 최고위원은 지난달 26일 기자들을 만나 “이 전 위원장이 경기도지사 후보로도 추천되고 있다”며 “이 전 의원장의 결심 여하에 따라 선택지가 굉장히 다양하다고 본다”고 주장했다. 이 전 위원장은 경기도지사 공천 가능성은 강하게 부정하고 있다. 이 전 위원장은 지난달 25일 <조선일보> 유튜브 채널에 출연해 “경기도지사 출마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제 인지도 하나만 달랑 갖고 경기도지사를 하겠다는 건 경기도민에 대한 우롱”이라고 주장했다. 그러자 <경기일보>는 지난달 27일 ‘국힘, 경기지사가 경선 탈락자 처리장이냐’는 제목의 사설을 공개했다. 이 사설엔 “국민의힘 경기도지사 후보 경선에 나선 주자는 중량감·연고성 등이 모두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는 2명”이라며 “급기야 대구시장 탈락자 차출설도 나오는데, 이쯤 되면 경기도민 모욕 아니냐”고 비판했다. 낮은 당 지지율과 공천 과정의 잡음이 이어지면서 급기야 지방선거 출마자들이 장 대표의 지원 유세에도 난감해하는 상황도 이어졌다. 유권자에게 “공개적 절윤 선언과 달리 인적 절연이 제대로 안 되고 있다”는 인상을 준 영향이라고 분석되고 있다. 7년 만에 대표 거부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달 27일 SBS 라디오 <김태현의 정치쇼>에 출연해 “저도 장 대표를 선거 유세에 모시고 싶다”면서도 “변신한 모습으로 와주시면 감사하겠다”고 말했다. 서울시장 선거 출마를 선언한 국민의힘 박수민 의원도 지난달 26일 같은 프로그램에 출연해 “장 대표의 지원 유세는 조금 예민한 문제”라며 “시민 눈높이에서 해결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선거는 후보가 시민이 듣고 싶어 하는 말을 잘 전하는 시민을 위한 시간”이라며 “장 대표는 노선형 정치인이 됐으므로, 정책 선거 현장이 정치 선거로 비화하면 유불리를 떠나 서울시민께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다 논란이 이어지자 지난 1일엔 의견을 바꿔 채널A 라디오 <정치시그널>에 출연해 “저는 국민의힘이 확장해야 한다는 것에 공감대가 확실히 있다고 생각한다”며 “정공법을 선택하겠다”고 말했다. 주요 선거 후보들이 당 대표의 지원 유세에 난감해하는 것은 지난 2018년 지방선거 당시 주요 후보들이 자유한국당 대표였던 홍준표 전 대구시장의 지원 유세를 거부한 상황을 연상시킨다. 낮은 지지율과 혼란을 거듭하는 국민의힘의 현 상황에 대해선 “이미 예고됐던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국민의힘은 윤석열 전 대통령이 지난 2024년 12월 비상계엄을 선포한 이후 대규모 집회 개최 및 참여 등 강경 보수 행보를 유지했다. 당시 진행됐던 대규모 집회는 손 목사·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담임목사·유튜버 전한길씨 등이 주도했다. 울림이 큰 방에서 나는 소리는 메아리가 돼 돌아온다. 이는 특정 성향·신념이 일치하는 사람들이 모여 비슷한 정보·주장을 계속 접하면서 그 의견이 굳어지는 현상을 비유하는 데 활용된다. 이를 두고 에코 체임버 현상이라고 한다. 보통은 SNS에서 일어나지만, 최근엔 정치권에서도 구조화되고 있다. 정치인의 관점에서 대규모 집회에서 동원한 인파·우호적인 사이트에서 확인할 수 있는 열렬한 지지는 쉽게 눈에 띈다. 선거에선 이게 독이 되는 경우가 많다. 후보의 캠프에선 이를 유권자의 보편적 정서로 착각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아울러 최근엔 당원투표의 비중이 높아지고 있다. 당원의 뜻이 공천에 반영되면, 정당의 민주적 구조가 탄탄해진다. 하지만 조직표 동원 경선이 될 위험이 커진단 치명적인 단점도 있다. 당내 강경파·특정 조직의 관성은 중도층·무당층까지 포함하는 전체 민심과 방향이 다른 경우가 많다. 집권은 불가능 후보도 선거를 치르면서 조직표를 움직이는 지역 토착 세력·강경 지지층을 만나는 과정에서 현장 분위기를 착각한다. 설령 당선되더라도 이들의 포로가 되는 경우가 많다. 이와 같은 확증 편향 현상은 “누구나 현실을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 사람은 자신이 보고 싶은 현실만을 본다”던 고대 로마 정치인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격언이 현재진행형임을 알 수 있게 한다. 조직표는 장단점이 명확하게 나뉜다. 일정한 득표를 보장하는 것은 분명한 장점이다. 하지만 득표 이상의 목표 달성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전형적인 사례는 일본 공명당이다. 공명당은 창가학회란 종교를 배경으로 두고 있다. 덕분에 공명당은 엄청난 조직력을 동원할 수 있다. 창가학회 회원 1명은 강력한 선거운동원이 된다. 그 1명은 주변 지인 모두에게 공명당 선거운동을 한다고 보면 된다. 정치와 종교의 결합이 흔히 발생하는 중요한 원인이다. 일본 자유민주당(이하 자민당)은 공명당과 연정을 하면서 창가학회·공명당의 조직력을 토대로 많은 정치적 이익을 얻었다. 공명당 후보가 출마하지 않는 지역구에선 그 조직력이 고스란히 자민당 후보의 선거 조직이 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공명당은 종교 기반 정당이기 때문에 그 틀을 벗어나긴 어려웠다. 그래서 공명당이 정치적으로 확장할 수 있는 최대치는 집권당의 연정 파트너였다. 공명당과 손을 잡았다고 무조건 선거에서 좋은 결과를 얻는다고 보긴 어렵다. 이는 지난 2월 진행된 제51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이하 중원선)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제1야당 입헌민주당(이하 입민당)은 자민당과 결별한 공명당과 손잡고 ‘중도개혁연합’이란 선거 연대를 구성했다. 하지만 선거 결과는 참혹했다. 입민당·공명당은 원래 총 169석을 보유했지만, 선거 결과 49석만 확보하는 대참패를 당했다. 이 중 입민당이 확보한 의석수는 21석에 불과했다. 중도개혁연합이 해체되면 각각 28석을 확보한 공명당·국민민주당이 제1야당 반열에 오를 수 있을 정도의 대참패였다. 조직력보다 더 중요한 것은 민심이란 걸 보여준 선거였다. 경기도지사 후보 인물난…유승민은 거듭 고사 손현보 아들 등장·컷오프 이진숙 못 놓는 이유? 절대로 몰락하지 않는 안정적인 하한선을 보유했지만, 상한선·기대치도 낮은 사례로 일본 공명당만 있는 것은 아니다. 성향이 강한 특정 집단을 기반으로 유지되는 정당은 그에 대한 다른 유권자의 거부감 때문에 집권이 불가능하다. 대표적인 사례로는 ▲독일 좌파당 ▲영국 민주연합당 ▲이스라엘의 샤스·유대교 토라 연합 등을 거론할 수 있다. 독일 좌파당은 독일 통일 이후 구동독 지역 사회주의 통합당 후신이 모여 조직됐다. 따라서 구동독 지역의 고령 유권자·옛 공산당 관료·강성 노동계급 등이 핵심 지지층을 이루고 있다. 이런 연유로 구동독 지역에선 큰 영향력을 행사하지만, 전체 민심과 조화를 이루긴 어렵고, 주요 정당의 연정 파트너로 주로 거론된다. 영국 민주연합당은 북아일랜드 강성 개신교·연합주의자 조직에 기반한다. 이들의 강경한 종교 성향은 잉글랜드·스코틀랜드 등의 정서와 많이 멀다. 따라서 이들도 북아일랜드 지역 정당 겸 주요 정당의 연정 파트너로 거론된다. 지난 2017년엔 영국 보수당이 과반 확보에 실패하자 민주당과 신임 공급 협약을 맺고 정부를 구성할 수 있었다. 이스라엘의 샤스·유대교 토라 연합은 이스라엘 내 극단적인 유대교 원칙주의자들로서 사회적 민폐라고 거론되는 하레디를 기반으로 구성된 정당이다. 이들은 사회적인 활동보다 경전 공부에 몰두한다. 극단적인 일부 하레디는 19세기 생활 양식을 고집하고, 일체 생산 활동을 하지 않면서 정부 보조금에 의존한다. 이들은 출산율이 높아 이스라엘 재정에 부담을 주지만, 이스라엘 내 유대인 인구 비율 유지를 고려하면, 정부가 이들을 지원하지 않을 수 없는 측면도 있다. 이들은 랍비의 지시에 따라 절대적인 투표 성향을 유지한다. 이스라엘의 보수 정당 리쿠드당은 이들과의 연정을 통해 조직표를 동원한다. 일본 자민당은 원래 다양한 성향의 여러 파벌이 모여 구성된 특성을 역설적으로 정권 유지 비결로 활용했다. 총리를 배출하는 회파만 바뀌어도 국정 기조가 바뀌어 유권자에게 정권교체 체감을 주는 유사 정권교체 효과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난 2월 중의원 의원 선거 대승은 자민당으로서도 기존과 다른 형태였다.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의 기민한 유튜브·SNS 활용 ▲실용적 포퓰리즘으로 통하는 사나에노믹스 등 다카이치 총리의 개인 팬덤이 강력하게 형성된 것이 승리로 연결됐다. 공명당 등 해외 사례 표면적으로는 국민의힘은 이미 지난 2월에 입증된 자민당의 승리 비결을 외면하고, 공명당의 길을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주요 후보들이 당 대표 지원 유세에 신중한 반응을 보이는 것 자체가 국민의힘이 ‘더 깊은 늪’에 들어가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는 일면일 수도 있다. 국민의힘은 늪에서 나올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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