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경제1팀] 기업의 자회사 퍼주기. 오너 일가가 소유한 회사에 일감을 몰아주는 '반칙'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변칙적인 '오너 곳간 채우기'는 멈추지 않고 있다. 보다 못한 정부가 드디어 칼을 빼 들었다. 내부거래를 통한 '일감 몰아주기'관행을 손 볼 태세다. 어디 어디가 문제일까. <일요시사>는 연속 기획으로 정부의 타깃이 될 만한 '얌체사'들을 짚어봤다.
<일요시사>는 일감 몰아주기 연속기획을 통해 한솔그룹의 내부거래 실태를 지적한 바 있다.(920호 참조) 총 22개 계열사 가운데 조동혁 명예회장, 조동길 회장 등 오너 일가가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한솔케미칼'과 '한솔CSN'에 계열사 일감이 몰리는 것으로 확인됐다.
그런데 두 회사 외에도 내부거래가 많은 한솔그룹 계열사는 또 있다. 바로 '한솔제지'와 '한솔아트원제지' '한솔테크닉스' 등이다. 이들 회사는 관계사들이 일감을 몰아줘 적지 않은 실적이 '안방'에서 나왔다.
'안방'서 실적
1965년 설립된 한솔제지는 인쇄용지, 산업용지, 백상지, 특수지 등 원지 제조업체다. 처음 새한제지란 회사였다가 1972년 상장했고, 1992년 현 상호로 변경한 데 이어 이듬해 삼성그룹에서 분리했다.
그룹의 주력 계열사인 한솔제지는 실적이 증가 추세다. 2000년대 초반만 해도 천억대에 머물던 매출은 2002년 1조원이 넘더니 2010년 1조5000억원을 돌파했다. 지난해의 경우 1조4825억원을 기록했다. 그동안 매출 대비 내부거래율은 10∼20%대로 집계됐다. 한솔제지의 관계사 의존도는 ▲2002년 17% ▲2003년 18% ▲2004년 11% ▲2005년 10% ▲2006년 13% ▲2007년 15% ▲2008년 16% ▲2009년 12% ▲2010년 22% ▲2011년 19% ▲지난해 21%로 조사됐다.
지금까지 <일요시사>가 지적한 다른 기업들의 내부거래율과 비교하면 양호한 수준이다. 그러나 그 금액을 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한솔제지는 지난해 한솔페이퍼유통·글로벌파이버 등 종속기업(2117억원)과 한솔피엔에스·아트원제지 등 관계기업(888억원), 한솔씨에스엔·한솔이엠이 등 기타특수관계자(110억원) 등 계열사들과 거래한 금액이 3115억원에 이른다.
2011년에도 종속기업(2123억원), 관계기업(797억원), 기타특수관계자(41억원) 등과의 내부거래액이 2961억원이나 됐다. 그전에도 해마다 1000억∼3000억원을 내부에서 채웠다. 한솔제지의 내부거래액은 ▲2002년 1720억원 ▲2003년 1826억원 ▲2004년 1288억원 ▲2005년 1167억원 ▲2006년 1383억원 ▲2007년 1725억원 ▲2008년 2199억원 ▲2009년 1580억원 ▲2010년 3489억원으로 나타났다.
한솔제지의 내부거래가 도마에 오를 수밖에 없는 이유는 오너 일가와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이인희 한솔그룹 고문이 지분 3.51%(153만873주)를 소유한 개인 최대주주. 이어 이 고문의 3남 조동길 한솔그룹 회장이 3.34%(145만8126주)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이 고문은 1992년부터 미등기 상근직으로 한솔제지 경영고문을 맡고 있다. 조 회장은 등기임원으로 회사 업무를 총괄하고 있다. 1986년부터 27년간 근무 중이다.
매출 대비 거래율 낮지만 금액 수천억대
'오너 모자'지분…'방계' 삼성에 의지도
1971년 설립된 한솔아트원제지는 아트지, 코트지, 도화지 등 문구용 종이제품 제조업체다. 삼성특수제지란 회사로 출범해 1974년 상장했지만, 1998년 워크아웃에 들어갔다가 2004년 졸업하고 2009년 한솔그룹에 편입했다.
문제는 자생력. 관계사에 매출을 의존하고 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 분석 결과 매출의 1/3 가량을 내부거래로 채우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를 통해 1000억원대 고정 매출을 올리고 있다.
한솔아트원제지는 지난해 매출 3850억원 가운데 1150억원(30%)을 계열사와의 거래로 올렸다. 일거리를 준 곳은 글로벌파이버(544억원), 한솔피엔에스(323억원), 한솔페이퍼유통(232억원), 한솔제지(51억원) 등이다. 2011년에도 글로벌파이버(541억원), 한솔피엔에스(394억원), 한솔페이퍼유통(262억원), 한솔제지(105억원) 등 계열사들은 매출 4095억원 중 1304억원(32%)에 달하는 일감을 한솔아트원제지에 퍼줬다.
한솔아트원제지의 계열사 의존도가 처음부터 높았던 것은 아니다. '한솔 식구'가 된 이후 매출 대비 내부거래 비중이 증가했다. 한솔아트원제지의 내부거래율은 2009년 11%(매출 4870억원-내부거래 533억원)였다가 2010년 29%(5057억원-1462억원)로 올랐다. 다만 이 회사는 오너 일가와 직접적으로 연관이 없다. 지분 63.51%(1379만1084주)를 소유한 한솔제지의 자회사다.
1966년 설립된 한솔테크닉스는 백라이트유닛, 인버터, 브라운관, 액정화면, 태양광모듈 등 전자 및 LED 제품을 제조해 판매한다. 당초 한국마벨이란 회사였는데, 한솔그룹이 1990년 인수했다. 1988년 상장했고, 2010년 현 상호로 변경했다.
낯익은 주요 고객
한솔테크닉스가 계열사들과 거래한 물량은 그다지 많지 않다. 주요 고객은 삼성전자, 삼성디스플레이, 삼성SDI 등 삼성 계열사다. 이들 회사에 납품해 적지 않은 매출이 삼성 쪽에서 나오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솔테크닉스는 2001∼2005년 각각 3000억∼5000억원의 매출을 기록하다 2006년 8000억원을 올린 데 이어 2008년 1조원이 넘었다. 물론 삼성 계열사들을 등에 업은 결과다. 지난해 매출은 5487억원에 그쳤다.
한솔테크닉스도 이 고문과 조 회장의 지분이 있다. '모자'는 각각 9.45%(153만873주), 9%(145만8126주)를 쥐고 있다. 한솔은 삼성 방계회사로 긴밀한 관계다. 이 고문은 고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의 장녀로 이건희 회장의 큰누나다.
김성수 기자<kimss@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일감 받는' 3개사 기부는?
한솔 관계사들의 일감을 받고 있는 한솔제지와 한솔아트원제지, 한솔테크닉스는 기부를 얼마나 할까.
금감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한솔제지는 지난해 53억원을 기부금으로 냈다. 이는 매출(1조4825억원) 대비 0.4%에 달하는 금액이다. 반면 한솔아트원제지는 지난해 기부금을 한 푼도 내지 않았다. 한솔테크닉스는 매출(5487억원) 대비 0.04%인 2억원을 기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