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76일 최장 농성' 재능교육 사태 총정리

  • 김설아 sasa7088@ilyosisa.co.kr
  • 등록 2013.09.02 15:3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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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습지 교사들의 외침 “드디어 통했다”

[일요시사=사회팀] 재능교육 노사가 합의문에 도장을 찍었다. 재능교육 노동조합이 천막농성에 나선 지 2076일 만이다. 이로써 노조는 ‘국내 최장기 비정규직 농성’이라는 꼬리표를 마침내 떼게 됐다. 종탑에서 고공 농성을 벌였던 조합원들도 202일 만에 땅으로 내려왔다.



역대 최장기 농성을 이어온 재능교육 사태가 노사 합의로 종지부를 찍었다. 재능교육 노사는 지난 26일 장기농성 문제해결을 위한 최종 합의문에 조인하며 투쟁을 마무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최장기 투쟁’
노사합의 마침표

전국학습지산업노조 재능교육지부(재능지부)는 “250만 특수고용노동자 유일의 단체협약을 원상회복했다”며 “6년이라는 긴 시간 온 역량을 쏟았고 많은 것을 버리며 투쟁한 결과이기에 아쉽고 미련이 남는다”고 말했다. 이어 “이제 노동조합의 이름으로 현장에서 선생님들의 요구를 담아 2013년 단체협약을 갱신 체결하겠다”고 밝혔다.

최종합의문에는 ▲사망한 조합원 포함 해고자 12명(사망자 1명 포함) 전원 복직 ▲단체협약 원상 회복 ▲각종 고소고발 취하·처벌불원 탄원서 제출 ▲노조 생활안정지원금·노사협력기금 2억2000만원 지급 등의 내용이 담겼다.

재능교육 측도 “이제 회사는 장기 노사분규 사업장이라는 인식을 떨쳐 버리고 협력과 상생에 기반한 선진 노사관계의 새장을 열 것”이라며 “노사간의 감정적 앙금을 털어내고 불신의 골을 메우는 신뢰 회복에 매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앞서 재능교육 노사 양측 교섭위원은 노조원의 종탑 농성 200일을 앞두고 지난 19일부터 21일까지 사흘간 막바지 집중교섭을 벌였고 밤샘협상 끝에 지난 23일 잠정합의했다. 이어 25일 오후 학습지산업노조 재능지부 조합원 총회에서 회사 측과 마련한 잠정합의안이 가결됐고 노사는 합의서에 최종 조인했다.

이에 따라 서울 혜화동 성당 15m 높이 종탑 옥상에서 202일째 고공농성을 벌인 오수영 노조지부장 직무대행과 여민희 조합원은 농성을 마무리하고 지상으로 내려왔다.

유득규 조합원은 “종탑에 있는 조합원들이 많은 고생을 했고 더 아프지 않을 때 내려올 수 있어 참 다행이다”며 “큰 틀에서는 단체협약 원상복구와 해고자 복직이 이뤄졌지만 제도 개선이 바라는 만큼 이뤄지지 않아 아쉬움이 있다”고 밝혔다.

2076일,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이었다. 이들의 이야기는 지난 2007년 5월17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재능교육 노사는 이날 임금단체협상을 체결했다. 그러나 장기근무 교사들의 회원관리 수수료(일종의 임금)가 10만∼100만원 이상 삭감됐다. 새로운 회원을 유치하지 못했다는 이유에서다.

임금문제가 발단…
2000일 넘게 평행선

학습지 교사는 법적으로 특수고용노동자로 분류된 1인 사업자다. 이 때문에 1999년 학습지 교사 9명이 모여 설립한 노조는 정식 노동조합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하지만 근로 감독과 지휘는 엄연히 회사로부터 받고 있어, 회사는 재능지부를 법외노조로 인정하고 노조 집행부와 단체협약을 체결했다.

사건은 협약 체결 이후에 터졌다. 노노갈등이 발생한 것이다. 이들은 학습지 회원들의 회비 중 최소 35∼55%까지를 수수료라는 이름으로 받아왔지만, 임단협은 3개월간의 단기적 성과에 따라 평가를 하고 수수료를 지급하는 방식으로 합의됐다.


노사가 체결한 단협이 임금을 악화시켰다며 노조 내에서 쿠데타가 일어났고, 2007년 9월 유명자씨를 지부장으로 한 새로운 노조가 생겼다. 신임 노조는 같은 해 11월, 경력과 쌓아온 성과들을 보상받을 수 있는 수수료 개정 단협을 새로 맺자고 회사에 요구했다.

이에 사측은 “재능의 수수료율은 업계 최고 수준”이라며 33차례 교섭과 조합원 투표까지 통과된 단협을 번복할 수 없다고 버텼다. 또 유효기간을 들어 새롭게 교섭을 할 수 없고 신수수료제도로 계약하지 않으면 해고하겠다고 통보했다.

갈등 5년8개월 만에 잠정합의안 가결
해고자 전원 복직…고공 농성도 끝내

노조의 유일한 선택은 농성뿐이었다. 천막농성을 통해 사측의 해고협박 중지와 재교섭을 요구했다. 노조는 본사앞 집회·시위, 불매운동 등으로 사측과 맞섰다.

이에 반한 사측의 압박도 만만치 않았다. 농성을 중지시키려는 탄압은 오랜 기간 다양한 형태로 지속됐다. 재능노조에 따르면 이들은 2007년 말부터 2010년 10월 서울시청 앞으로 농성장을 옮길 때까지 모두 14번 천막이 철거를 당했다. 같은 교사 출신의 관리자들이 앞장섰고 구청에서도 2∼3차례 철거를 강행했다.

당시 유 지부장은 “재능교육에는 정규직 노조와 노조로 인정받지 못한 교사노조가 있다”며 “정규직 노조원들이 자기 자리를 지키기 위해 우리에게 노조 탈퇴를 강요한다”고 안타까워 했다.

용역 탄압에
가재까지 압류

천막농성을 접은 후에는 사측이 고용한 용역의 탄압이 이어졌다. 이들의 농성장은 서울 성북구 혜화동 재능교육 본사 앞 폭이 좁은 인도에 있었다. 인적도 드문 곳이었지만, 조합원이 1인 시위를 하면 용역들이 어김없이 나타나 피켓과 현수막을 철거했다. 사측은 결국 2008년 11월 단체협약을 일방적으로 해지하고 유 지부장과 노조 사무국장을 해고했다.

육체적·정신적 고통 후 뒤따른 건 경제적 고통이었다. 노조 측의 강경시위가 이어지자 사측은 법원에 가처분신청을 제기했고 같은 해 서울중앙지방법원은 노조원들에게 “회사 100m 반경 내 불법시위나 무단 천막설치를 금지하며 위반 시 위반행위 1회당 100만원을 회사 측에 지급하라”는 내용의 방해금지가처분 결정을 내렸다. 조합원 8인의 통장과 급여 5000여만원이 가압류됐다.

이후에도 불법행위가 계속되고 있다고 판단한 사측은 2010년에도 법원에 압류와 경매를 요청해 조합원의 가재도구와 차량, 노조 사무실 비품 등이 경매 처분되는 상황이 발생했다.

이 과정에서 일부 노조원들은 집에 있던 김치냉장고와 세탁기는 물론 장롱까지 압류돼 경매 처분을 기다리는 처지가 됐다. 노조 차원에서도 방송차와 노조사무실에 있던 컴퓨터와 책상, 의자까지 모두 압류 조치됐다.

당시 회사 측은 “노조원들이 불법으로 농성하는 과정에서 회사직원들의 통행을 방해하고 폭력을 행사하는 등 그동안 임직원 42명이 64회에 걸쳐 적게는 2주, 많게는 10주가 넘는 상해를 당해 총 160주 이상의 입원치료 등을 받았다. 여기에 영업을 방해하고 불매운동을 벌여 2007년 말 65만명이던 회원이 올 8월에는 54만명으로까지 감소했다”며 법적조치의 정당성을 강조했다.

집행부 교체로
노노갈등 불거져


이후 감정이 상할 대로 상한 양측의 협상은 평행선을 걸었다. 그 과정에서 노조 조합원 중 한명이 암 투병 끝에 사망했고, 노조 내부에서 집행부 교체를 둘러싼 다툼이 일어나 대화가 잠정 중단되기도 했다.

사측은 지난해 8월 ▲해직자 11명 전원 복직 ▲복직 후 단협 체결 ▲민·형사상 소송 취하 ▲생활안정지원금·노사협력기금 명목으로 1억5000만원 지급 등을 제안했지만, 노조는 사망한 조합원을 복직 대상에 포함시키고 복직에 앞서 단협을 체결해야 한다면서 사측의 제안을 거절했다. 당시 일부 노조원들 사이에서는 사측의 최종협상안을 적극적으로 검토하지 않고, 곧바로 거부한 집행부에 대한 반발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본격적인 노노갈등은 지난해 말 이뤄진 집행부 교체를 계기로 표면 위로 불거졌다. 구 집행부는 임원 선거일정을 유보할 것을 요구했으나, 노조원 12명 중 9명이 포함된 신 집행부는 학습지노조 직무대행, 재능지부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를 출범시켰다.

이들 중 2명은 올해 2월부터 종탑 점거농성을 벌였다. 두 조합원은 당시 호소문을 발표하고 “이 시기에 투쟁하지 않으면, 향후 5년간 더 싸움이 이어질 것 같다는 절박함이 들었다”며 “우리가 반드시 단체협약을 손에 쥐고 환하게 걸어 내려올 수 있도록 우리의 투쟁을 지지해 주고 함께 해주시길 간절한 마음으로 호소드린다”고 밝혔다.

끝나 가는 노사갈등
끝나지 않은 노노갈등

이에 대해 구 집행부는 강력하게 반발했다. 이들은 블로그를 통해 “(신 집행부는) 투쟁지도부로서 자질과 능력이 없다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며 “종탑 농성마저 함께 싸워온 동지들을 배제했다”고 비판했다. 반면 신 집행부는 기존 인원의 임기가 만료됨에 따라 내부 의결을 거쳐 적법하게 교체됐다고 주장했다.


어찌됐건 앞길이 깜깜했던 재능교육 노사협상은 지난 19일 시작된 노사 양측 교섭위원의 막바지 집중교섭으로 23일 잠정합의안이 도출됐다. 이어 25일 오후 학습지산업노조 재능지부 조합원 총회에서 잠정합의안이 가결됨으로써 최종합의에 이르렀다. 다음날엔 종탑에서 고공 농성을 벌였던 신 집행부 조합원 두 명이 땅으로 내려왔다. 5년8개월간 이어온 긴 싸움은 이렇게 끝을 맺는 듯 했다. 그러나 유 전 재능지부 지부장 등 구 집행부는 여전히 이번 잠정합의안에 반대하고 있어 사태 추이가 어떻게 흘러갈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김설아 기자 <sasa708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재능교육 사태 일지]

◇2007년
▲12월21일 재능교육 노조 서울 종로구 혜화동 재능교육 본사 앞 천막농성 돌입
◇2008년
▲3월 서울중앙지방법원 ‘방해금지가처분’ 결정
▲10월31일 단체협약 사측 일방해지
◇2010년
▲11월7일 서울 중구 소공동 환구단 앞 농성 천막 설치
◇2012년
▲1월 이지현 조합원 암 투병 중 사망
▲11월 서울중앙지방법원 ‘학습지교사 해고는 부당노동행위’일부승소
◇2013년
▲2월6일 오수영 지부장 직무대행, 여민희 조합원 재능교육 본사 맞은편 혜화동 성당 종탑 고공농성 돌입
▲8월19∼23일 집중교섭 및 잠정합의안 도출
▲8월25일 재능교육지부 조합원총회 개최 및 잠정합의안 가결
▲8월26일 노조 농성 해제 및 노사 ‘협력과 상생을 위한 2013년 합의문’조인식

 

<기사 속 기사>

박성훈 회장은?
35년 교육출판 외길

재능교육 창업자인 박성훈 회장은 지난 35년간 교육 사업에만 심혈을 기울여온 외길 경영인이다.

재능교육의 전신은 1977년 세워진 무역회사 신영상역으로, 박 회장은 미국에서 MBA 과정을 마친 뒤 무역회사에서 근무하다 재능교육의 모태인 무역회사를 세우면서 사업을 시작했다.

박 회장은 1979년 당시 인기를 끌던 일본 구몬수학(공문수학)을 보고 순수 국내 학습지를 개발해야겠다는 아이디어로 학습지 사업을 시작했다. 신영상역 사무실 한쪽에 대학생 20여 명을 아르바이트생으로 고용, 학습 교재에 진단과 처방 과정을 결합한 학습시스템을 직접 개발하기 시작했다.

1981년 회사 이름을 한국프로그램재능교육원으로 바꾸고 이 해에 <재능산수> A∼H등급을 출판했다. 1985년 <재능산수> I와 J등급을 내놓으면서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교재 개발을 마쳤다. 1986년 학습지 회원수가 1만 명을 넘어섰다. 1987년 회사 이름을 재능교육으로 바꿨다. 1989년 회원수가 5만 명을 넘었고 이 해에 <재능한자>를 출시했다.

1993년 <재능영어>와 <재능국어>를 잇따라 선보였다. 1998년 CH23(DSN)을 인수해 재능스스로방송을 시작하면서 방송 사업에 진출했다. 2001년에는 교육포털을 만들었고 이 해에 종합학습지인 <스스로i>를 출간했다. 2004년부터 영어 교육 전문 방송인 JEI English TV를 운영하기 시작했다. 2006년 <재능원리수학>과 <재능중국어>를 잇따라 출시했다. 계열사로는 재능방송, JEI English TV, 재능인쇄, 재능아카데미, 재능유통, 재능문화, 재능해외교육원 등이 있다.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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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권 청신호’ 이재명 꽃놀이패

‘대권 청신호’ 이재명 꽃놀이패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대권행 급행열차 티켓을 거머쥔 채 돌아왔다. 선거법 위반 항소심서 무죄를 선고받으면서 그야말로 기사회생한 것이다. 이제 남은 건 윤석열 대통령의 파면 여부다. 벼랑 끝까지 몰렸던 이 대표가 반격의 날을 세웠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항소심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사법 리스크라는 족쇄에 얽매인 지 3년 만이다. 웃음을 띤 채 법원서 나온 이 대표는 “진실과 정의에 기반해서 제대로 된 판결을 해주신 재판부에 먼저 감사드린다. 이제 검찰도 자신들의 행위를 되돌아보고 더는 국력을 낭비하지 말아달라”고 밝혔다. 살아서 돌아왔다 지난 26일 서울고법 형사6-2부(부장판사 최은정·이예슬·정재오)는 이 대표의 공직선거법상 허위 사실 공표 혐의 항소심 선고공판서 무죄를 선고했다. 피선거권 박탈에 해당하는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한 1심 판결을 모두 뒤엎은 것이다. 이번 사건의 쟁점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뉘었다. 이 대표가 민주당 대선후보이던 2021년 TV 프로그램서 “고 김문기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개발1처장을 모른다”는 취지로 발언한 것과 성남시 백현동 한국식품연구원 부지 용도변경에 국토교통부(이하 국토부)의 협박이 있었다고 발언한 것이다. 재판부는 두 가지 모두 허위 사실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검찰은 ‘김 전 처장을 몰랐다’는 발언이 교유관계를 부인해 허위 사실에 해당한다고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피고인의 행위가 아닌 주관적 인식에 대해 허위 여부를 판단할 수 없고 교유행위를 부인한 발언으로도 해석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1심서 유죄가 인정됐던 ‘골프 발언’에 대해서도 TV 프로그램 진행자의 질문에 대한 답변 중 일부며 “골프를 치지 않았다고 거짓말한 것으로 볼 수 없고 허위성 인정도 어렵다”고 무죄로 봤다. 특히 이 대표가 호주 출장 중 김 전 처장과 찍은 사진에 대해서도 “10명이 한꺼번에 찍은 사진으로 골프를 쳤다는 사실을 뒷받침할 수 없다”며 원본 일부를 떼어냈기 때문에 조작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판시했다. ‘용도변경을 하지 않으면 직무유기로 문제 삼겠다고 국토부가 협박했다’는 발언에 대해서는 “핵심은 국토부가 법률에 의거해 변경 요청을 했고 성남시장으로서 어쩔 수 없이 변경했다는 것”이라며 “(발언의)일부가 독자성을 가지고 선거인의 판단을 그르칠 만한 발언으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피선거권 박탈형 1심 몽땅 뒤집혀 무죄 선고에 한시름 놓은 민주당 이 같은 판결이 나오자 검찰은 “항소심 법원 판단은 피고인의 발언에 대한 일반 선거인들의 생각과 너무나도 괴리된 경험칙과 상식에 부합하지 않는 판단으로 공직선거법의 허위사실공표죄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위법이 있다고 판단된다”며 곧바로 상고 의사를 밝혔다. 이로써 해당 사건의 최종 판결은 대법원서 가려지게 됐다. 이 대표의 선고가 예정된 26일 이전부터 민주당은 초긴장 상태였다. 한 민주당 관계자는 <일요시사>와 만난 자리서 “당의 운명이 걸려있다 하더라도 과언이 아니다”라며 “향후 모든 방향이 결정되는 하루일 것이다. 조기 대선이 확정된 건 아니지만 60일 이내 선거를 치를 경우 하나의 작은 변수도 나비효과처럼 커질 수 있어 고민이 되는 건 사실”이라고 전했다. 무죄가 선고된 후에는 “차기 대통령으로 발돋움하기 위한 완벽한 서사”라며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2심서 무죄를 받은 이 대표가 밝은 얼굴로 법정서 걸어 나오자 민주당 의원을 비롯한 지지자들은 그제야 한시름 놓았다. 대권주자 1위를 달리는 이 대표 앞에 청신호가 켜진 셈이다. 사법 리스크를 겨냥해 ‘이재명 흔들기’에 나섰던 대권 잠룡들의 목소리는 당분간 사그라들 전망이다. 후보 교체론을 주장해 왔던 비명(비 이재명)계 잠룡 역시 입을 모아 “법원의 판단을 환영한다” “사필귀정” 등의 메시지를 냈다. 이 대표 대세론이 탄력을 받으면서 운신의 폭이 좁아졌지만 탄핵 정국이 현재 진행형인 만큼 총구를 밖으로 돌린 것으로 해석된다. 뒤통수 얼얼 여당 대혼란 국민의힘은 눈에 띄게 당황한 모습을 보였다. 당초 1심서 피선거권 박탈형이 나왔기 때문에 2심 역시 최소한 벌금 100만원을 예상했던 것이다. 국민의힘은 재판부의 판결에 문제가 있다는 여론전을 이어나갈 전망이다. 국민의힘 권영세 비상대책위원장은 선고 직후 “항소심 법원의 논리를 잘 이해할 수 없다. 이 부분은 바로 잡혀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우리 당으로서 대단히 유감스럽고 대법원서 신속하게 6·3·3 원칙(1심은 6개월, 2·3심은 3개월 내 이뤄져야 한다는 원칙)에 따라 재판해서 정의가 바로잡히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이 대표의 최대 리스크였던 범죄자 프레임이 상당 부분 걷어지자 보수 잠룡들은 저마다 말을 얹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자신의 SNS를 통해 “거짓은 죄, 진실은 선이 정의”라는 글을 게시했다. 오 시장은 “대선주자가 선거서 중대한 거짓말을 했는데 죄가 아니라면 그 사회는 바로 설 수 없다”며 “대법원이 정의를 바로 세우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홍준표 대구시장도 “이재명이 억지 무죄가 된 것은 사법부의 하나회 덕분”이라며 “사법부 조차 진영 논리로 재판하는 것은 참으로 유감이지만 사법부 현실이 그런 걸 어떡하겠나. 오히려 잘됐다. 언제가 될지 모르나 차기 대선을 각종 범죄로 기소된 사람과 하는 게 우리로서는 더 편하다”고 비꼬았다. 대세론 굳히기 개혁신당 이준석 의원은 “2심 결과는 존중받아야 한다”며 “정치의 큰 흐름이 사법부의 판단에 흔들리는 정치의 사법화는 민주주의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다만 문제의 골프 사진을 최초로 제시한 개혁신당 이기인 최고위원은 “졸지에 사진 조작범이 됐다”며 “옆 사람에게 자세하게 보여주려고 화면을 확대하면 사진 조작범이 되나? CCTV 화면 확대해서 제출하면 조작 증거이니 무효라는 말이냐? 무죄라는 결론을 정해놓고 논리를 꾸며낸 건 아닌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검찰이 상고심서 잘 다퉈주길 바란다”고 강하게 반발했다. 고비를 넘긴 민주당은 윤 대통령의 운명을 쥔 헌재를 최대한으로 압박하는 동시에 차기 집권여당으로서의 면모를 부각하는 데 집중할 것으로 관측된다. 무죄를 선고받은 이 대표는 곧장 안동을 찾아 대형 산불로 터를 잃은 이재민을 위로했다. 지난 26일 이 대표는 법원서 곧바로 국회로 이동해 비공개 최고위원회의를 주재할 예정이었지만 산불 피해가 커지자 이를 뒤로 미루고 안동으로 향했다. 안동은 이 대표의 고향이기도 하다. 앞서 이 대표는 무죄 선고 이후 취재진 앞에 서서 “이 당연한 일들을 이끌어내는 데 많은 에너지가 사용되고 국가 역량이 소진된 것에 대해서 참으로 황당하다는 생각이 든다. 검찰이 또 이 정권이 이재명을 잡기 위해서 증거를 조작하고 사건을 조작하느라 썼던 그 역량을 우리 산불 예방이나 아니면 우리 국민의 삶을 개선하는 데 썼더라면 얼마나 좋은 세상이 되겠나”라고 꼬집은 바 있다. 이 대표는 안동을 찾은 데 이어 27일에는 화재로 소실된 경북 의성군 고운사를 찾아 “고운사를 포함해 피해 입은 지역이나 시설 예산 걱정을 하지 않도록 국회서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같은 날 오후에는 헬기로 산불 진화 작업을 벌이던 중 추락사고로 순직한 고 박현우 기장의 분향소를 찾아 헌화했다. 당분간 통하지 않을 ‘범죄 프레임’ 여권 잠룡 집중포격에도 꼿꼿하게 이 대표가 민생을 살피는 동안 나머지 민주당 의원이 장외 투쟁을 이어나갈 방침이다. 민주당은 이 대표의 2심 결과가 나왔으니 헌재가 정치적 판단을 하지 않는 이상 윤 대통령에 대한 탄핵 심판 선고를 조속히 진행해야 한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민주당 박찬대 원내대표는 서울 종로구 광화문 고궁박물관 앞 민주당 천막 당사에서 진행된 최고위원회의서 “헌법재판소는 해야 할 일을 즉시 하라”며 다시 한번 압박에 나섰다. 박 원내대표는 “오늘로 12·3 내란발발 115일째, 탄핵소추안 가결 104일째, 탄핵 심판 변론종결 31일째인데 도대체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나”라며 “선고가 늦어지면 늦어지는 이유라도 밝혀야 되는 것 아니냐”고 질책했다. 그러면서 “헌재가 헌법 수호라는 중대한 책무를 방기하는 사이 온갖 흉흉한 소문과 억측이 나라를 집어삼키고 있다”며 “헌재의 존재 이유에 대한 근본적 회의도 그만큼 커졌다”고 말했다. 민주당 김민석 최고위원 역시 “선입 선출에 따른 파면 선고라는 상식의 시간은 지났고, 오늘 오전까지도 선고기일 공지를 안 하면 명예의 시간도 넘어간다”며 “검찰의 억지 기소에 따른 이 대표의 (선거법 2심) 선고 이후로 (윤 대통령 탄핵 심판) 선고를 지연하느냐는 불명예스러운 물음에 답하기 어려워질 것”이라고 밝혔다. “범죄자 이재명은 안 된다”는 국민의힘 전략이 반쪽짜리가 되면서 탄핵 정국 돌파구가 막혔다. 2심 무죄 판결이 대법원서 뒤집히길 바라며 상고심이 오는 6월26일까지 나와야 한다고 재촉하는 것 외에는 뾰족한 수가 없어 보인다. 남은 건 헌재뿐 국민의힘은 이 대표가 무죄를 선고받은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외에도 4개의 재판을 더 받는 만큼 아직 ‘완전히’ 족쇄를 풀지 못했다는 새로운 프레임을 들고 나왔다. 하지만 이미 날개를 단 이 대표의 존재감만 키워줄 뿐, 큰 효과는 없을 것이란 게 야권 관계자의 공통된 설명이다. 한시름 놓은 이 대표는 본격적으로 대권주자 1위를 굳힐 일만 남았다. 중도층을 포섭하는 동시에 비호감 이미지를 탈피하는 것이 최대 과제다. 이에 맞춰 이 대표의 목소리도 더욱 날카로워질 것으로 예상된다. 피 튀기는 3월이 마무리되면서 조기 대선의 운명을 가를 헌재에 모든 시선이 쏠린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