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배달원의 억울한 옥살이 사연

  • 김설아 sasa7088@ilyosisa.co.kr
  • 등록 2013.09.02 14:5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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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인 잡았나 만들었나…진실은? 

[일요시사=사회팀] 소설가 공지영이 쓴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에서 정윤수는 여자 3명을 살해한 혐의로 사형선고를 받는다. 하지만 그는 아내의 수술비 300만원을 구하려고 한 술집 여인의 집에 찾아갔을 뿐이다. 함께 갔던 선배가 술집 여인과 그의 딸, 파출부를 죽였고 윤수는 돈만 훔쳐 달아났다. 그러나 윤수는 선배의 모든 죄를 뒤집어쓰고 사형수가 된다. 과연 소설에서만 일어나는 일일까? 한 남성의 사연을 들어보자.



9년 전 고성옥(당시 48·남)씨는 새벽에는 신문을 돌리는 배달원으로, 낮에는 집수리 및 도배 일을 하던 평범한 40대 가장이었다. 그러나 2004년 9월 8일 새벽 3시30분께 제주시 연동의 한 다세대 주택에서 벌어진 특수 강도 및 강간 미수 사건은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 놨다.

잃어버린 7년

고씨는 이날 피해자 장모(당시 41·여)씨가 살고 있는 집의 작은방 창문을 통해 침입해 장씨를 흉기로 위협, 14K 반지 1개와 목걸이 1개 등 35만원 상당의 금품을 훔친 뒤 폭행하고 강간하려다 미수에 그쳤다는 혐의로 긴급 체포됐다.

경찰은 노란색 티셔츠와 면장갑, 소형 커터칼을 물증으로 내세우며 고씨를 범인으로 몰아세웠다. 고씨는 시종일관 혐의 내용을 전면 부인했지만, 결국 경찰은 고씨를 입건했고 이는 법원에서도 그대로 인정됐다.

고씨는 제주지방법원에서 성폭력범죄의처벌및피해자보호등에관한법률 위반 혐의로 유죄를 선고받았다. 2005년 7월 광주지방법원에 항소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고씨의 옥살이는 7년 동안 이어졌다.


2011년 9월. 고씨는 만기 출소했다. 고씨는 “돈도 없고 배경도 없는 사회적 약자의 설움을 누구보다도 절실히 느낀 세월이었다”고 말했다. 누군가가 “강도야”라고 외치는 소리를 듣고 달아나는 범인을 ?다 놓친 뒤 모든 죄를 뒤집어 쓴 그날을 잊지 못한다는 것이다. 고씨는 “차라리 범인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다”며 “하지만 범인이 아니기에 분하고 억울해서 죽지도 못하고 눈물로만 살아왔다”고 말했다. 다 잊고 용서해 보려 하기도 했지만 잃어버린 명예만큼은 되찾아야겠다고 다짐했다.

고씨는 그해 11월 제주경실련공익지원센터,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등과 함께 7년 전의 진실을 캐나갔다. 제주경실련공익지원센터 등은 3년에 걸쳐 면밀하게 관련 증거를 검토하고 관련 증인들을 만나 면담한 결과 고씨의 주장이 진실임을 확인했고, ‘고성옥씨 7년 억울한 옥살이 진실찾기 모임’을 결성했다.

진실찾기 모임은 그 첫 번째 활동으로 지난 28일 기자회견을 열고, 고씨의 무죄를 주장했다. 고씨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무슨 말을 해야 제 심정과 무고함을 알릴 수 있을지 막막하다”며 “당시 사건 시간으로 볼 때 사건을 일으킬 수도 없는데 경찰관은 이를 묵살한 채 증거를 조작했다”고 말했다.

고씨는 “증거와 관련해 피의자 사인과 도장이 있어야 함에도 경찰이 알아서 처리했고 조서에서 발견된 지문 차이가 조작의 증거”라며 “이 사건은 범죄증거로 범인을 잡은 것이 아니라 국가가 범인을 만들고 해결한 사건”이라고 밝혔다.

‘누명의 덫’걸려 7년간 강도·강간범으로
진실찾기 모임 10가지 이유 들어 무죄 주장

진실찾기 모임은 ▲객관적 증거 부족 ▲경찰의 객관적 증거와 사실 묵살 ▲신뢰성 없는 피해자 진술 ▲경찰의 타인 족적 인멸 ▲경찰의 증거조작 및 법정 허위증언 등을 제시하며 고 씨의 무죄를 주장했다.

양시경 제주경실련 대표는 “피해자는 사건이 일어난 시각에 강도가 1시간이나 있었다고 진술했지만, 고씨는 신문배달을 하고 있었고 이는 신문부수를 확인하면 입증된다”며 “고씨를 고용했던 조선일보 신제주지국장이 당시 증인으로 채택돼 고씨가 하루에 배달하는 신문부수와 시간을 진술, 알리바이를 증언했음에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사건 당일 신문 배달을 시작한 시간(새벽2시 30분)과 이미 배달한 신문 부수(180부)를 계산하면 범행이 일어난 시각에 사건현장에서 약 1시간동안 시간을 지체할 수 없음이 입증된다는 주장이다.

진실찾기 모임은 반면 경찰이 증거로 삼은 진술에는 신뢰성이 없다고 강조했다. 이들은 “피해자는 경찰 진술조서에서 목격자 송씨가 사건현장인 집에서 고씨가 뛰쳐나가는 것을 보았다고 진술했지만, 송씨는 실제 경찰 진술에서 사건 현장과는 70m 떨어진 사거리에서 고씨를 처음 목격했다고 진술했다”고 강조했다.

범인의 인상착의로 지목된 ‘노란 티셔츠’에 대해서도 경찰의 주장과 다르다고 설명했다. 진실찾기 모임은 “당시 고씨가 하얀색 런닝 셔츠를 입고 있었음에도 경찰은 고씨의 신문 배달 오토바이 바구니에서 발견된 노란 티셔츠를 증거로 삼았지만, 이는 주변에 거주하는 여성이 법원에 출석해 문제의 노란 티셔츠가 자신의 것이며 사건 발생 전에 잃어버렸다고 진술했다”고 반문했다.

이어 “당시 낮에는 자활후견센터의 주선으로 도배와 집수리를 하던 고씨가 안주머니에 늘 갖고 다니던 소형 커터칼을 범행용 흉기로 둔갑시켰다”며 “범행을 준비하는 강도가 어린이들이 사용하는 소형 커터칼을 가지고 범행을 저질렀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도 지적했다.

이들은 또 경찰의 증거 인멸에 대해서도 의혹을 제기했다. 피해자 옆집에 거주하며 범행 장소를 목격한 증인이 “사건현장에 뚜렷하게 남아있는 발자국을 보았다”고 진술, 경찰이 고씨의 운동화와 대조한 결과 일치하지 않아 증거를 인멸시켰다는 것이다. 그러나 경찰은 이웃주민이 청소해서 족적을 확보하지 못했다는 등 거짓말로 증언했다는 게 진실찾기 모임의 설명이다. 

면장갑에 대한 증거인멸 의혹도 있다. 이들은 “당시 범인이 도망치면서 추격하는 고씨와 거리가 좁혀지자 범인이 무엇을 던지기에 고씨는 훔친 물건을 되돌려주는 줄 알고 주웠더니 면장갑이었다”며 “고씨는 도배를 하며 사용하기 위해 주머니에 넣었고, 경찰은 면장갑에서 묻어나온 머리카락을 고씨의 모발로 의심해 국과수에 감정의뢰했지만 그 결과 고씨와는 전혀 상관없는 제 3자의 모발이 나왔다”고 말했다.

진실찾기 모임에 따르면, 이를 알게 된 경찰이 무리한 수사의 잘못을 덮으려고 모근이 있음에도 없어서 시행하지 않았다는 거짓 핑계를 대고 사실과 다른 허위 감정서를 작성했다.

양 대표는 “고씨가 과거에 살인미수 전과가 있다는 이유로 짜맞추기식 수사는 있어서는 안된다”며 “고씨는 국가공권력과 사법부의 잘못된 오판이 낳은 무고한 희생양”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진실규명에 어려운 점이 많을 것으로 생각하지만 고씨의 억울한 7년 옥살이 누명을 벗기는데 온 힘을 다할 것”이라고도 덧붙였다.

고씨는 “고향도 못 가고, 친구도 못 만나고, 자식과 손주를 생각하면 너무 괴롭다”며 “공소시효는 지났지만 이제라도 명예를 되찾고 또 다른 사법 피해자가 생기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수사과정 위법?

임문철 신부는 “2011년 출소 뒤 민변 등 법률단체를 찾아가는 등 노력을 했지만 재심사유가 없다는 답변을 들었다. 그런데 한 법률전문가는 당시 변호사가 조금만 더 적극적인 노력을 했으면 모르겠다는 발언을 했다”며 “이건 한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법 피해자들을 양산하는 시스템적인 문제”라고 밝혔다.

진실찾기 모임은 경찰이 승진에 대한 욕구 때문에 증거를 조작하고 은폐수사를 했고, 이것이 법정에서도 제대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며 이날 기자회견 직후 당시 지구대 경찰관 2명과 제주경찰서 감식담당관 등 3명을 고발했다.



김설아 기자 <sasa7088@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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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