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인물> 전격사퇴 양건 전 감사원장

  • 이광호 khlee@ilyosisa.co.kr
  • 등록 2013.09.02 14:3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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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없이 떠난 자리에 ‘소문만 주렁주렁’

[일요시사=사회팀] 양건 전 감사원장이 이임사에서 무거운 표정으로 ‘역류와 외풍’이라는 표현을 사용해 감사원의 독립성과 정치적 중립성에 대한 논란이 일고 있다. 양 전 감사원장의 사퇴 배경을 둘러싼 의혹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



양건 전 감사원장이 지난달 26일 퇴임했다. 헌법상 정치적 중립성과 독립성이 보장된 감사원의 최고 책임자가 임기 4년 중 1년7개월을 남겨두고 하차한 것이다. 이번 사퇴에 야당의원들은 청와대 압력설을 주장하고 있다. 양 전 감사원장이 이임사를 통해 내뱉은 말이 문제가 된 것이다. 그는 감사원의 직무 독립성과 정치적 중립성을 위협하는 모종의 ‘외압’이 있었음을 시사했다.

떠나며 남긴 말
청와대로 불똥?

양 전 원장은 이임식에서 사퇴배경으로 사실상 ‘외풍’을 언급해 향후 이를 둘러싼 정치적 논란이 상당할 전망이다. 국가 최고 감사기관의 수장이 독립성과 중립성을 흔드는 외압을 견디지 못해 중도하차했다는 것으로 그 파장이 만만치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양 전 원장은 서울 종로구 삼청동 감사원에서 진행된 이임식에서 “이제 원장 직무의 계속적 수행에 더이상 큰 의미를 두지 않기에 이르렀다. 이것은 개인적 결단”이라고 말했다. 또한 “정부 교체와 상관없이 헌법이 보장한 임기 동안 정상적으로 업무를 수행하는 그 자체가 헌법상 책무이자 중요한 가치라고 믿어왔다. 이 책무와 가치를 위해 여러 힘든 것들을 감내해야 한다고 다짐해왔다”고 밝혔다. 이어 “재임 동안 안팎의 ‘역류와 외풍’을 막고 직무의 독립성을 한 단계나마 끌어올리려 안간힘을 썼지만 물러서는 마당에 돌아보니 역부족을 절감한다”고 밝혔다. 그는 자진사퇴라는 표현을 사용했지만 ‘역류와 외풍’을 언급하면서 되레 의혹을 증폭시켰다.

양 전 원장은 이임사를 통해 그가 임기를 지켜낼 수 없는 무언가가 있었음을 강하게 보여줬다. 헌법기관인 감사원의 정치적 중립과 직무 독립성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으나 역부족이었다는 뉘앙스를 풍겼기 때문이다. 갑작스러운 사퇴 과정에서 청와대 등 권력 핵심부와의 갈등 여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개인적 결단임을 강조하면서도 석연치 않은 뒷맛을 남겨 정치권에 파문이 일고 있다. 떠나는 감사원장의 입에서 ‘외풍’이라는 단어가 나온 것은 쉽게 넘길 수 없는 대목이다.

임기 1년7개월 남기고 돌연 하차
이례적…배경 두고 갖가지 추측

정리해보면 양 전 원장은 헌법에 보장된 4년의 임기를 채우기 위해 노력했지만 감사원을 뒤흔드는 압력으로 인해 독립성을 지키는 데 한계를 느꼈고 감사원장으로서의 직무수행에 회의를 느껴 자진사퇴를 결심하게 됐다는 게 이임사의 요지다.

양 전 원장은 이임식을 마치고 감사원을 떠나기 전 정원에서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주차장 광장에서 직원들과 일일이 악수했다. 이임식 직후 취재진이 몰려가 ‘역류와 외풍’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물었지만 기자들의 질문에 입을 굳게 닫았다.



그는 이임식에 앞서 감사원 1급이상 간부들과의 티타임에서 “감사원 독립성은 제도상 문제가 있다. 대통령 소속이어서 직무상 독립이라는 말에 어폐가 있다. 어떡하라는 말이냐. 구조적 모순이라고 생각한다”며 독립·중립을 지키는 데 한계가 있다는 점을 털어놓았다고 한다.

이 같은 언급은 자신의 재임기간 감사업무나 인사 등에 관한 압력을 비롯한 정치적 외풍이 적지 않았음을 강하게 풍긴 것으로 감사원의 직무독립성, 정치적 중립성이 상당히 훼손되는 일이 있었다는 주장으로 풀이된다.

양 전 원장은 정치적 외풍이나 독립성 훼손의 구체적 내용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지만 4대강 감사 번복에서 부각된 감사 방향에 대한 문제나 감사위원 임명 등을 둘러싼 청와대와의 이견, 감사원 내부에서의 고립화 등이 사퇴의 배경임을 강하게 시사했기 때문이다.


청 “개인적 선택”
야 “실체 밝혀야”

양 전 원장의 외풍 발언이 전해지자 정치권은 즉각적인 반응을 보였다. 청와대는 양 전 원장의 사퇴는 개인적 선택이라며 외풍 논란에 선을 그었다. 4대강 사업 감사 결과 번복에 대한 정치적 부담과 그로 인한 감사원 내부 갈등 때문에 양 전 원장이 스스로 물러났다는 것이다. 이정현 홍보수석은 지난달 28일 오후 기자들과 만나 “새 정부에서는 양건 원장의 임기를 보장하기 위해 유임을 결정했다”며 “자신의 결단으로 스스로 사퇴한 것에 대해 유감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내심 청와대는 외풍 발언을 두고 불쾌해 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개인적 결단’이라고 말했으면서도 마치 외부의 압력 때문에 물러나는 것처럼 외풍을 운운한 것은 사리에 맞지 않다는 말이 나온다.

청와대 관계자는 양 전 원장의 외풍 언급과 관련해 “양 전 원장 사퇴 이유로 이런저런 추측성 언론 보도들이 나오고 있지만 청와대는 무관하다”고 말했다.

야당은 “감사원에 압력과 외풍이 있었다는 것이 명명백백해졌다”며 박근혜정부의 외압 의혹을 제기했다. 전병헌 원내대표는 “대통령 직속의 헌법 기관장이 ‘외풍’이라고 말한, 그 외풍의 정체는 무엇인가”라며 “(감사원은) 대통령 직속의 헌법기관이기 때문에 청와대일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는 청와대가 독립성이 보장된 헌법기관의 인사에 압력을 행사했고, 또 4대강을 둘러싼 신·구 정권간의 권력암투와 야합을 사실상 인정한 것이라고 밖에는 볼 수가 없다”고 말했다.

이임사 ‘역류·외풍’표현
정·관계 후폭풍 ‘만만찮네’

민주당 박지원 의원은 지난달 26일 기자들과 만나 “이이제이하고 토사구팽하는 것도 문제지만 법과 원칙을 지키겠다는 박근혜 대통령께서 헌법을 어기는 것은 매우 큰 문제”라고 말했다. 헌법에 보장된 감사원장의 임기를 채우지 못한 것을 지적한 것이다.

박 의원은 이날 MBN <정운갑의 집중분석>에 출연해서도 “양건 원장은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는 분”이라며 “제가 법사위에서 4대강 감사원 감사를 그렇게 하라고 해도 안하다가 박근혜 대통령이 당선되니까 감사를 해서 ‘4대강이 잘못됐고 대운하다’라고 했다”고 말했다. 이어 “이건 이이제이한 것이고 당신은 토사구팽 된다(고 했었다)”고 말했다. 박 의원은 “이이제이하고 토사구팽 당한 양건 원장이나 법과 원칙을 강조하는 박 대통령께서 헌법을 어긴 것은 잘못”이라고 말했다.

또한 장병완 정책위의장도 “양 전 원장의 사퇴는 4대강 감사 결과 발표에 대한 새누리당 친이계 반발의 희생양이자, 박 대통령 당선에 기여한 인사의 감사위원 임용이라는 외풍에 불복한 것”이라고 말했다. 장 의장은 “박 대통령이 나서서 정치적 외풍에 의한 헌법기관의 독립성 훼손 등 비정상적인 국가기관 운영 실태에 대해서 사과하고, 책임자를 처벌하고 개혁안 마련에 대해서 야당대표와 자리를 같이할 것을 촉구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야당 의원들도 성명을 통해 “감사원장의 중도 사퇴는 그 자체가 문제다. 사퇴 자체가 위헌이며, 사퇴를 하도록 행사한 압력 역시 위헌”이라며 “박근혜정부는 감사원을 정권의 시녀로 만든 이명박 정권을 넘어, 친이-친박의 당내 야합의 도구로 전락시키고 있다”고 강력 비난했다.

반면 새누리당 민현주 대변인은 구두논평에서 “감사원이라는 곳이 불가피하게 외압이나 외풍이 있을 수밖에 없는 자리이기 때문에 정치적으로 중립적인 인사가 감사원장으로 가서 모든 난관을 극복하고 공정하게 감사원의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 것”이라며 “그런 기본적인 것을 극복하지 못하고 사퇴하겠다는 것 자체가 유감스럽다”고 밝혔다. 양 전 원장에게 화살을 돌린 것이다.

감사원 향해
개혁 소용돌이


현재 정치권에서는 양 전 원장의 사퇴 이유로 4대강 정치감사 논란에 따른 친이계의 압박, 청와대와의 인사갈등설, 감사원 내부갈등설 등이 제기되고 있다.

양 전 원장의 애매한 이임사로 인해 그의 사퇴 배경이 명확히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일단 장훈 중앙대 교수의 감사위원 임명 제청을 요구하는 청와대와 갈등을 빚은 것은 사실로 여겨진다.

장 교수는 박 대통령의 대선캠프에 정치쇄신특별위원으로 참여했으며 인수위에서는 정무분과 위원으로 일한 바 있다. 이같은 경력이 감사원의 정치적 중립성에 위배됐다고 판단한 양 전 원장이 청와대의 요구를 거부하면서 갈등이 있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김영호 감사원 사무총장은 지난달 27일 오후 감사원 기자실을 방문해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양 전 원장은(장 교수가) 인수위 출신이고 대선에서 (박 대통령에게) 도움을 줬던 사람이니까 정치적인 사람이라고 해야 되지 않겠냐고 했다”며 “양 전 원장이 인사 쪽에서 상당히 독립성을 갖고 싶어하지 않았나 생각된다”고 말해 청와대와의 인사 갈등설을 사실상 인정했다.

감사원 내부에서는 양 전 원장의 후임 인선에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인선이 길어질 경우 업무 공백이 우려되기 때문이다. 청와대는 즉각 후임 인선에 나선다는 방침이지만 9월 초 박근혜 대통령의 해외순방이 예정돼 있는 데다, 정기국회마저 파행 조짐을 보이고 있어 한두달 내 임명은 어려운 상황이다. 감사원장 임명에는 국회 표결과 동의가 필요하다.

정치권서 ‘청와대 압력설’급부상
4대강 문제?…인사·내부 갈등설도


당장 감사원 주변에서는 양 전 원장이 그동안 중점적으로 추진해 온 감사들이 표류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감사원은 대형공사 및 인허가 비리, 부실저축은행, 공공보건 의료체계 감사 등 서민생활과 밀접한 부분의 감사를 올해 안에 처리한다는 계획이었다. 감사원은 “일단 정해진 감사 계획에는 큰 변동이 없을 것”이라는 입장이지만 양 전 원장의 후임 인선이 길어질 경우 감사 일정도 차질을 빚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

감사원 바깥에서는 감사원을 향해 개혁의 소용돌이가 몰아칠 조짐이다. 민주당은 이미 감사원 개혁을 골자로 하는 감사원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한 상태로 9월 정기국회에서 통과시키겠다는 입장이다. 개정안에는 감사원의 ▲비공개 정보수집 제한 ▲직권남용 시 처벌 ▲세출세입 등의 국회 보고 의무화 등을 담고 있다. 감사원의 독립성 강화를 골자로 하는 감사원법을 제출한 민주당 민병두 의원은 “감사원장이 수시로 대통령에게 보고하는 관행을 폐지하고 국회 보고를 법제화하는 등 국회의 민주적 통제를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일부에서는 대통령 직속의 헌법기관인 감사원을 국회 기관으로 이전하는 방안도 제시하고 있다. 새누리당도 친이계를 중심으로 코드감사·보복감사를 막기 위해 감사원 개혁에 동의하고 있어 어쨌든 이번 정기국회에서 감사원 개혁을 둘러싼 공방은 불가피해 보인다.

다음 감사원장은?
후임 하마평 무성

양 전 원장 사퇴 후 후임 감사원장에는 고위 법조인 출신 인사들이 거론되고 있다.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을 마친 뒤 부인이 운영하는 가게에서 ‘편의점 아저씨’로 일하다 최근 법무법인 율촌 행을 택한 김능환(62·사법연수원 7기) 전 대법관과 지난해 대선 과정에서 새누리당 정치쇄신특별위원장으로 박 대통령을 보필했던 안대희(58·7기) 전 대법관, 국내 최대 법률회사인 김앤장 법률사무소의 사회공헌위원회 위원장 겸 공익법률센터장을 맡고 있는 목영준(58·10기) 전 헌법재판관이 하마평에 오르내린다. 국민권익위원회 위원장을 지내면서 공직 부패를 원천적으로 차단하기 위해 ‘부정청탁 금지 및 공직자 이해충돌방지법(일명 김영란법)’제정을 추진했던 김영란(57·11기) 전 대법관도 물망에 오르고 있다.

민주당이 감사원장 사퇴를 두고 청와대 외압설을 주장하고 있는 상태인데다 감사원장의 국회 청문회 등을 거쳐야 하는 만큼 청와대는 후임 결정에 신중을 기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당분간 감사원은 성용락 수석 감사위원 대행체제로 운영될 예정이다.


이광호 기자 <khlee@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양건 전 감사원장은?

▲함경북도 청진 출생
▲경기고 졸업
▲서울대 법학 학·석·박사
▲텍사스대 비교법학 석사
▲한양대 법학과 교수
▲미국 워싱턴대 법과대학원 객원연구원
▲대검찰청 검찰제도개혁위원회 위원
▲한양대 법과대학 학장
▲국민권익위원회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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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립무원’ 여야 수장 동병상련

‘고립무원’ 여야 수장 동병상련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이재명 대통령과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당내 강경파의 반발로 인해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 동병상련을 느낄 법한 두 사람은 여야 지도부 회동이라는 전략적 제휴에 가까운 선택으로 각자의 어려움을 풀고 정국에 대응할 것으로 보인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8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정청래 대표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를 용산 대통령실로 초청했다. 오찬은 약 1시간 동안 진행됐고, 이 대통령과 장 대표는 30분 동안 비공개 영수회담을 진행했다. 유튜브 권력자? 이 대통령과 장 대표는 여야의 수장이지만, 각자의 이유로 자신의 진영에선 어려운 상황에 처해있다. 두 사람의 회담은 이 때문에 더욱 주목받았다. 정 대표는 지난달 26일 장 대표가 선출된 이후 줄곧 ‘무시’ 전술로 대응했다. 정 대표는 장 대표 선출 여부와 관계없이 국민의힘에 대해 정당해산심판 청구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강공 기조를 잇고 있다. 이 대통령은 이런 상황에서 여야 지도부 회동과 영수 회담을 진행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선 “이 대통령이 장 대표와 만난 것 자체가 고립무원에 처한 이 대통령의 상황을 보여주는 것일 수도 있다”고 의심하고 있다. 이 대통령이 겪는 어려움은 여당인 민주당과의 관계로부터 시작된다. 이 대통령과 민주당의 관계에 대해선 “대통령 위에 방송인 김어준씨가 상왕으로 군림한다”는 설이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 이 대통령은 문재인 전 대통령 등 친문(친 문재인) 진영과 오랜 갈등 관계에 있었고 “민주당에서 세가 약하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김어준 상왕설’은 이젠 진보 성향 언론에서도 공공연하게 거론한다. <주간경향>은 지난 8일 ‘김어준 상왕설’을 다루면서 “김씨가 비판·견제가 어려운 신성불가침 영역이 됐다”는 민주당 내부 반응과 “김씨는 민주당의 고정 상수고, 당의 일부 기능이 김씨의 유튜브 채널로 이관됐다”는 일부 정치평론가 반응도 소개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위로 알려진 민주당 곽상언 의원은 지난 7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유튜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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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청회에서 “정 장관도 검찰에 장악돼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검찰개혁 후속 법안을 마련하는 정부 기구 구성과 관련해 정 대표와 대통령실 우상호 정무수석이 크게 언쟁을 했다”는 설까지 불거졌다. 장 대표는 이 대통령과 만났을 당시 공개 발언에서 특검 연장·특별재판부 설치와 관련해 이 대통령에게 거부권 행사를 요청했다. 장 대표가 거부권 행사를 요청한 명분은 ‘견제와 균형 붕괴’였다. 장 대표는 이어진 비공개 회동에서도 “오랫동안 되풀이된 정치 보복 수사를 끊어낼 수 있는 적임자는 이 대통령”이라면서 특검 연장·특별재판부 설치에 강한 우려와 유감의 뜻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장 대표에게 뚜렷한 답변을 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선 이 대통령의 반응을 놓고 “이 대통령이 제어하지 못하는 상황일 수도 있다”고 보고 있다. 정 장관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중수청 소속 부처도 행정안전부로 결정됐다. 이에 대해서도 “이 대통령이 당의 의사를 이겨내지 못한 것”이란 분석이 나오고 있다. 지난 4일(현지시각) 미국 조지아주에서 발생한 현대차·LG 에너지솔루션 합작 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의 한국인 노동자 300여명 구금 사태도 이 대통령에게 비판의 화살이 집중되는 계기가 됐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25일(현지 시각)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진행했다. 그로부터 불과 10일 후 발생한 사태였다. 안팎 모두 꼬인 실타래 한미 양국은 정상회담 후 3500억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 펀드를 조성하기로 합의했고, 미국이 한국에 부과하는 관세율은 15%로 확정했다. 일본은 5500억달러 규모의 펀드를 조성하기로 한 후 15% 관세율을 받아냈다. 그런데 일본의 관세율 15%가 트럼프 대통령의 행정명령이 내려지면서 명문화된 것과 달리, 우리는 아직 문서를 받아내지 못했다. 미국 정부는 “3500억달러 투자처를 구체적으로 명시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노동자 300여명이 구금된 구체적인 이유는 이들이 최대 90일 동안 단기 체류만 할 수 있는 무비자 전자여행허가 제도를 통해 입국해 근무한 것이었다. 단기 체류 비자로 입국해 근무한 이상 불법체류자가 될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트럼프 대통령과 정상회담까지 진행한 이 대통령에겐 “미국을 왕래하는 국민의 비자 문제에조차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것이냐”는 비판이 제기될 가능성이 커진다. 일본과의 외교도 난항에 부딪힐 가능성이 있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23일,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와 정상회담을 진행한 후 17년 만에 공동언론발표문을 채택했다. 정상회담도 그만큼 훈훈한 분위기로 진행됐다. 하지만 낮은 지지율과 자유민주당(이하 자민당)의 지난 7월 참의원 선거 패배로 인해 사퇴 압력에 시달리던 이시바 총리는 지난 7일 결국 사퇴를 선언했다. 후임 총리 후보로는 자민당 다카아치 사나에 의원과 고이즈미 신지로 농림수산상이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 이시바 총리와 고이즈미 농림수산상은 자민당 내에서 파벌 색이 짙지 않아 비교적 온건한 정치 성향을 지닌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다카이치 의원은 강경한 우익 포퓰리스트였던 고 아베 신조 전 총리의 후계자로 알려졌다. 다카이치 의원은 ▲야스쿠니 신사 참배 ▲헌법 개정 ▲재무장 추진 ▲아베노믹스 계승 등 아베 전 총리와 거의 비슷한 정치색을 드러냈다. 지난 1994년엔 <히틀러 선거전략>이란 책의 추천사를 쓴 것으로 알려졌다. 이 책엔 “단기간에 여론을 모아 권력을 빼앗았다”거나 “긴급조치로 적을 섬멸했다”는 등의 독일 나치의 선거전략을 높이 평가하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설득할 수 없는 유권자는 말살한다”는 등 작전을 일본 정치인의 선거 승리 전략으로 제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노 전 대통령은 자신에게 호의적인 국내 여론을 조성하기 위해 고의로 신사 참배를 했던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일본 총리와 상당한 갈등을 빚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민주당 소속임에도 강경한 우익 성향으로 유명했던 노다 요시히코 전 총리와 갈등하면서 지난 2012년 전격적으로 독도를 방문하는 강수를 뒀다. 박근혜 전 대통령도 재임 중 아베 전 총리와 상당한 갈등을 빚으면서 대중국 외교에 공들였다. 다카이치 의원이 후임 총리가 되면, 이 대통령도 전임 대통령들처럼 상당한 갈등을 빚을 가능성이 있다. 혁신당 나비효과 게다가 우원식 국회의장은 지난 3일 중국 전승절 80주년 경축 행사에 참석한 것으로 보수 성향 유권자들에게 큰 비판을 듣고 있다. 우 의장은 행사에 함께 참석한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짧게 인사를 나눴다. 반면 민주당 박지원 의원은 김 위원장을 2번이나 불렀음에도 아무 반응을 얻지 못해, 이 역시 보수 성향 유권자들로부터 큰 비판을 받고 있다. 이 대통령은 대통령 취임 이후 친서방 외교에 유화적인 방향으로 선회하려고 했다. 하지만 민주당의 전통적 방향과 충돌하는 상황으로 해석되고 있다.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 내부에서 불거진 성추행·성희롱 사건도 이 대통령에게 불리하게 전개될 가능성이 있다. 혁신당은 조국 비상대책위원장 등 친문 핵심 일부가 창당했다. 이 사건은 혁신당 강미정 전 대변인이 탈당하면서 폭로해 외부에 알려졌다. 가해자로 지목된 김보협 수석대변인은 문 전 대통령과 친분이 돈독한 것으로 알려졌다. 신우석 전 사무부총장은 조 비대위원장이 민정수석이었을 당시 민정수석실 행정관을 지냈다. 조 비대위원장은 그동안 특별한 반응을 보이지 않았고, 이 여파는 민주당과 이 대통령에게 번지고 있다. 기성세대 남성의 위선과 운동권 특유의 성 문화 논쟁으로 확대되면서,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과 오거돈 전 부산시장의 성범죄 사건까지 거론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대통령으로선 친문계와 빚고 있는 광범위하면서도 조직적인 엇박자가 국정에도 악영향을 미치는 상황에서 그 뒷감당까지 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한 것이다. 장 대표도 이 대통령 못지않은 고립무원 상황에 직면했다. 시작은 국민의힘 이준석 전 대표로부터도 신임받았던 김도읍 의원을 지난 1일 정책위의장으로 임명한 것이었다. 그러자 “장 대표 당선에 큰 공을 세웠다”고 자부하던 강경 보수 성향 유튜버들이 크게 반발했다. 특히 고성국 ‘고성국TV’ 대표는 지난 2일 “내년 지방선거에서 승리하려면, 국민의힘이 지자체장 30석을 자유통일당 등 자유 우파 정당 4개에 양보하면 된다”고 요구했다. 강경 보수 공세 친한 숙청 시동 민주당의 각종 입법 공세 방어 등 대여 공세 수단도 마땅치 않다. 국민의힘은 민주당의 노란봉투법 통과를 막기 위해 필리버스터를 동원했지만, 큰 의미를 두기 어려웠다. 노란봉투법은 국민의힘의 필리버스터 종료 직후 본회의를 통과했다. 국민의힘이 할 수 있는 일은 본회의 불참밖에 없었다. 3개의 특검은 이미 국민의힘을 사정권에 두고 있다. 현실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수단은 실질적으로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장외 집회밖에 없다. 장 대표는 강경한 대여 공세를 약속하면서 당 대표에 당선됐지만, 강경한 대여 공세를 할 수 있는 현실적인 수단은 처음부터 없었다. 따라서 여야 지도부 회동은 장 대표에겐 정치적으로 큰 의미가 있는 기회였다. 최소한 “이 대통령에게 우리의 요구를 가감 없이 전달했다”고 자부할 만한 명분이 마련된 것이었다. 내부 사정도 녹록하진 않다. 장 대표에겐 지난해 12월 결별한 친한계(친 한동훈)와의 내부 투쟁도 숙제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다만 장 대표가 당선된 것 자체가 이미 친한계엔 큰 타격이었다. 아울러 친한계엔 ▲김종혁 전 최고위원 ▲신지호 전 사무부총장 ▲윤희석 전 대변인 ▲송영훈 전 대변인 등 국민의힘을 대표해 각종 시사프로그램 패널로 출연하는 인사들이 다수 소속돼있었다. 이들은 대체로 친한계의 이해관계를 각종 방송에서 대변했다. 장 대표는 지난 7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서 “방송에서 당의 의견을 가장해 당에 해를 끼치는 발언을 하는 것도 해당 행위”라며 “국민의힘을 공식적으로 대변하는 인물임을 알리는 패널 인증제도를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장 대표의 방침은 “국민의힘 몫 토론자로 출연해 친한계를 대변하는 인사들을 방송에서 솎아내려는 것”이라는 취지로 해석된다. 이처럼 장 대표는 당내에서 양면 전선을 펼쳐놨기 때문에 현재 상황이 녹록지 않다. 강도 높은 내부 투쟁을 진행하는 이 대통령과 장 대표로선 여야 지도부 회동이 동병상련에 가까운 전략적 제휴였을 가능성이 있다. 장 대표는 비공개 회담에서도 국민의힘의 의견을 모두 전달한 것으로 보인다. 이 대통령도 뚜렷한 확답만 하지 않았을 뿐, 대통령 당선 이전 강성 이미지를 중화하려는 듯 유화적으로 대응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선 “장 대표가 이 대통령과 정 대표의 불화를 이용하려고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다른 한편에선 “장 대표도 내부 반발이 있고, 강도 높은 내부 투쟁을 진행해야 해서 제 코가 석 자”라고 보고 있다. 아울러 이 대통령과 장 대표는 그동안의 이미지에서 벗어나 나름대로 중도를 지향하고자 강경파와 투쟁해야 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당분간 이들이 전략적 제휴를 맺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정 대표는 이 대통령과 장 대표의 회담 분위기를 무색하게 하듯이 다음 날인 지난 9일 진행된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내란 청산은 정치 보복이 아니”라며 “국민의힘이 내란 세력과 단절하지 못하면, 위헌정당 해산심판 대상이 될지도 모르니 명심하라”고 경고했다. 수북한 현안들 ‘내란’은 민주당이 국민의힘과 보수 진영을 공격하는 용도로 사용하는 일반 명사가 됐다. 정 대표는 대표적인 당내 강경파로서, 국민의힘에 대한 강경한 태도가 정치적 상징이 된 지 오래다. 이 대통령과 장 대표가 마주 보고 성과를 낼수록 정 대표는 설 자리를 잃는다. 정 대표의 제동은 “고립무원에 처한 여야 수장이 서로에게 동병상련을 느껴도 큰 의미가 없을 것”이란 경고 메시지로 해석될 수 있다. 바퀴들이 삐걱대는 사이 현안은 더욱 수북이 쌓이고 있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