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세 경보’ 대기업 해외골프장 소유 실태

  • 김설아 sasa7088@ilyosisa.co.kr
  • 등록 2013.06.07 19:2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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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의 조세피난처 비자금·로비 창구?

[일요시사=경제1팀] 재계에 탈세 쓰나미가 덮쳤다. CJ그룹의 해외비자금에 대한 검찰 수사가 역외 탈세에서 비롯됐고, 같은 의혹을 받고 있는 해외 조세피난처에도 거액의 자산가들이 연루돼 있는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의심의 눈초리가 ‘해외 골프장’에도 쏠리고 있다. 그간 골프장이 오너의 비자금 조성 창구로 종종 이용돼 왔기 때문이다.



국내 기업이 인수·운영 중인 해외 골프장은 대부분 일본과 중국에 편중돼 있다. 특히 지난 2004년부터 2008년까지는 원화 가치 상승과 국내 골프 붐을 타고 인·허가 절차가 까다로운 국내 골프장 대신 해외 골프장을 인수·건설하려는 기업이 쇄도했다. 공급 과잉론이 제기되던 국내보다는 원화 강세를 배경으로 싼 값에 매물을 사들일 수 있는 근거리의 해외 골프장이 투자가치가 있다는 판단에서다. 또 국내에서 골프장을 건설하기 위해서는 중앙정부·지자체 등으로부터 800건이 넘는 인·허가를 받아야 하고 780개의 도장이 필요하지만 해외 골프장은 가격만 맞으면 손쉽게 인수할 수 있었다.

한국 기업인들
일본서 ‘큰손’

국내 기업 중 해외 골프장을 가장 많이 소유한 기업은 ㈜한국산업양행이다. 일본 야마하 골프카트 수입업체인 한국산업양행의 유신일 회장은 일본 부동산 거품이 꺼지기 시작한 지난 2003년부터 일본 골프장을 잇달아 현지법인 명의로 매입했다.

일본 나가사끼의 명문클럽인 ‘페닌슐라 오너즈’ 골프장과 일본 골프장 최대 밀집지역으로 불리는 자바현의 ‘요네하라’ 골프장과 ‘이스미’ 골프장, 후쿠오까의 ‘레이크사이드’골프장, 구마모토현의 ‘INO' 골프장, 센다이의 ’Airport' 골프장 등 총 5개의 골프장을 인수해 운영 중이다.

특히 나가사키에 있는 페닌슐라 오너즈 골프장은 일본 내에서 한국인 전용회원제로 운영되는 유일한 곳으로 인기가 높다. 잔장 7022야드 18홀 규모로 빼어난 자연 풍치와 새로운 코스로 골퍼들 사이에서 ‘동양의 페이블 비치’라는 명성까지 얻고 있다. 이곳은 최문휴 전 아시아나 CC사장에 이어 현재 박갑철 아시아체육기자연맹 회장이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 


식품회사 해찬들의 전 회장인 오형근 에딘버러 CC 공동회장도 일본의 부동산 거품이 빠지면서 곳곳의 골프장이 연달아 부도를 내 헐값에 쏟아지던 무렵, 일본의 큰 레저업체인 로얄그룹 골프장 3곳을 인수했다.

현재 3곳의 일본 골프장을 총괄 지휘하는 유정웅 사장은 인수할 때부터 오 회장에게 큰 힘을 실어주었던 인물이다. 1998년 공군 준장 예편 후 남수원CC 대표이사를 역임했던 유 사장은 오 회장과는 대전고등학교 동창이자 수십년을 동고동락해 온 인연으로 일본 골프장 경영을 책임지고 있다.

개나 소나 다…가격만 맞으면 손쉽게 인수 가능
대부분 일본·중국 편중 동남아·미국서도 운영

이들은 대하(大河)주식회사라는 법인을 설립하고 3개의 골프장 이름을 ‘大河’의 일본어 발음 ‘타이가’를 넣어 ‘오다마타이가컨트리클럽’, ‘나코스타이가컨트리클럽’, ‘나스타이가컨트리클럽’으로 지어 개장해 운영하고 있다.

경북 구미의 선산CC와 제이스CC, 경주의 제이스 씨사이드CC 등 3개 골프장(54홀)을 운영 중인 ‘재일교포’ 전용사 동과그룹 회장도 일본 5곳(고바야시, 휴가, 가노야, 기타코, 히고)에 골프장을 소유하고 있다.

코리아나 호텔도 2007년 ‘버블 경제’의 희생양이 된 아이와 미야자키 골프장을 인수했다. 호텔 측은 하와이 호놀룰루에 있는 이와 비치 골프장을 운영하는 등 호텔과 리조트를 운영하면서 축적한 세련된 서비스와 일본 전통의 서비스를 접목시키며 승부수를 던졌다.

그 밖에 사조산업, 혼마왕도, 베어스타운, 반도건설 등이 일본 골프장을 인수해 운영 중이다. 또 승은호 서서울CC회장이 세운 인도네시아 코린도 그룹도 일본 가고시마의 게도인 GC를 사들였으며 상무종합개발 선산토건 쌍용투자개발 등도 일본 골프장을 인수했다.


거침없이
부지 싹쓸이

대기업 가운데는 한화그룹이 지난 2005년 일본 규슈 나가사키공항CC를 매입했다. 국내에서 4개 골프장과 13개 콘도를 운영 중인 한화는 호텔 수영장 요트계류장이 딸린 이 골프장을 리모델링해 오션팰리스CC라는 이름으로 운영하고 있다.

한화에 이어 금호아시아나그룹도 대기업으로는 두 번째로 지난 2006년 말 중국 산동성 웨이하이에 있는 범화골프장을 매입했다. 범화골프장은 골프코스를 정비하고 클럽하우스와 호텔을 추가로 지어 새 단장한 뒤 2008년 9월 ‘웨이하이 포인트 오션 사이드 골프&온천리조트’로 재개장했다.

웨이하이포인트는 현재 호텔&골프 리조트 이용 고객에게 금호리조트에서 여행일정에 맞춰 항공, 공항픽업, 호텔, 골프, 외부관광, 비자발급 등 모든 여행서비스를 ‘원-스탑’ 처리해 주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이랜드그룹의 박성수 회장도 레저사업 확장에 공을 들이고 있다. 박 회장은 지난해 남태평양 사이판에 자리잡은 유명 골프장인 ‘코럴오션 포인트(COP)’ 리조트 클럽을 인수했다. COP리조트 클럽은 한국인들도 많이 찾는 골프장이다. 필리핀해와 맞닿은 사이판 남부에 위치해 코스를 도는 내내 바다를 마주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총 코스 길이는 7015야드로 사이판에 있는 골프장 중 가장 길다. 90여개의 객실과 수영장, 레스토랑 등 부대시설도 갖췄다.

이랜드는 지난해 초 인수한 ‘퍼시픽 아일랜즈 클럽(PIC)’ 사이판이 COP리조트 클럽 옆에 자리 잡은 점을 감안해 두 리조트를 묶어 골프와 워터파크를 함께 즐길 수 있는 상품을 개발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골드·코리아CC를 운영 중인 이동준 코리아 골프 아트빌리지 회장도 2005년 미국 샌디에이고 인근에 있는 선시티골프&아트빌리지를 1000만달러에 인수해 운영하고 있다. 코스는 18홀이지만, 딸려 있는 부지가 약 10만평에 달해 리모델링을 거쳐 재개장했다.

이 회장은 2007년에는 일본 효고현에 있는 갤럭시 리조트를 8억 5000만엔에 인수했고, 2008년 3월에 ‘스프링골프&아트리조트’로 이름을 바꿨다. 중국 상하이 인근의 난퉁(南通)에도 2008년 봄 개장했다.

이외에도 르메이에르건설이 호주 호라이즌 골프리조트를 인수했으며, 레저전문기업인 토비스리조트가 태국 칸차나부리소재 블루사파이어골프장을 사들였다. 또 대구CC를 운영하는 경산개발은 1996년 중국 다롄에 골프장을 직접 건설, 현재까지 운영해오고 있으며 리솜리조트는 중국 위해의 리솜골프리조트 웨이하이 골프장을 운영하고 있다.

탈세·횡령 혐의
‘골프왕’법정행

기업이 해외 골프장 소유에 관심을 두는 이유는 골프장 영업을 통한 수익 창출 보다는 사업상의 필요와 자체적인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함이 크다. 골프장 부지가 부동산 투자의 수단으로 이용되기도 하지만 그룹사 차원의 원활한 골프장 예약이 주된 목적이 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때때로 불법이 이뤄지기도 한다. 일본의 파산한 골프장을 잇달아 사들여 이른바 ‘골프왕’으로 불리고 있는 유신일 한국산업양행 회장이 대표적이다. 유 회장은 지난 2011년 100억원대 탈세·횡령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검찰에 따르면 유 회장은 주로 수입증명서를 위조하는 방식으로 수입 물량을 부풀렸다. 직원들이 시중은행 외국환 거래영수증 양식에 컴퓨터로 출력한 날짜와 액수를 풀로 붙이고 이를 복사하는 방식으로 매입증명서를 위조한 혐의도 받았다.

세무조사에 대비해서는 회계자료를 위조했고, 실제로 국세청 세무조사 과정에서 위조된 회계자료를 제시한 것으로 드러났다.

“불법 탈세 발생하기도” 검은돈 마련 개연성 높아

이런 수법으로 유 회장은 2004년부터 2009년까지 법인세 24억원, 소득세 7억원을 포탈했고, 회삿돈 73억원을 빼내어 개인적으로 유용했다. 법원은 유 회장에게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벌금 40억원, 그리고 복지시설 봉사활동 180시간을 선고했다. 일본 골프장 5곳을 인수 할 수 있었던 자금 출처 등에 대한 의혹도 불거졌지만 수사는 이것으로 마무리됐다.

지난해에는 영업정지 된 한국저축은행 윤현수 회장이 유명 휴양지인 보르네오섬의 한 골프장을 통해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의혹이 제기 돼 논란이 일기도 했다.

사정기관 한 관계자는 “대기업 뿐 아니라 재무구조가 튼튼한 중견기업들이 해외 골프장을 운영하는 뒷배경에 의심이 가는 것은 사실”이라며 “결국 해외 골프장도 부동산 사업이라 투자자금조로 돈을 빼돌릴 가능성이 있고, 비용을 과다 계상해 돌려받는 수법으로 검은돈을 마련할 개연성도 있다”고 말했다.


“적법한 절차…
법적 문제없다”

이런 의심의 눈초리에 해외 골프장을 소유하고 있는 기업들은 난색을 표했다. 한 기업 관계자는 “(해외 골프장 인수는) 여행·레저 분야를 신성장 동력으로 키우겠다는 그룹 방침에 따른 것”이라며 “관광객 수요가 급증할 것이라는 점을 눈여겨보고 일종의 투자를 한 것 뿐, 아무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또 다른 기업 관계자도 “원화 강세 당시, 싼 값에 매물을 사들인 것으로 안다. 신고도 했고 적법한 절차에 따랐기 때문에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며 “이미 인수한 골프장들의 경영 실적이 좋지 않고, 그렇지 않아도 역외탈세 문제로 시끄러운 상황에서 이런 의심들이 어떤 형태로 불거질지 걱정된다”고 털어놨다.


김설아 기자 <sasa7088@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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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한길 유니버스’ 절대 불가능한 이유

‘전한길 유니버스’ 절대 불가능한 이유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국민의힘 행사에서 영향력을 과시하다가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국민의힘에서 ‘보수의 김어준’을 꿈꾸는 것 같다. 전씨는 과연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했던 영향력을 단번에 얻을 수 있을까?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지난 8일, 대구 EXCO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전당대회 대구·경북지역 합동연설회에서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지난 3월 창간한 <전한길뉴스> 소속 언론인 자격으로 참석했다. 선거판 난장판 하지만 전씨는 언론 취재의 한계를 넘어 반탄(탄핵 반대) 성향 후보들의 연설 도중 응원하면서 분위기를 띄웠다. 반대로 찬탄(탄핵 찬성) 성향 당 대표·최고위원 후보들이 연설할 때마다 “내부 총질” 혹은 “배신자” 등 원색 비난을 했다. 이날 김근식 최고위원 후보는 전씨를 직접 지칭해 “부정선거 음모론에 빠지고, 계엄을 계몽령이라고 정당화하는 사람들과 어떻게 같이 투쟁할 수 있겠느냐”면서 비난했다. 그러자 전씨는 김 후보에게 욕설하면서 자신의 지지자들을 격동시켰다. 찬탄 성향 조경태 당 대표 후보가 연설할 땐 자리에서 일어나 한 손을 들고 항의하는 등 지지자들의 조 후보 비난을 유도했다. 그러자, 찬탄 성향 일부 당원들이 전씨에게 물병을 던지면서 항의했다. 한 당원은 전씨에게 “난 20년 차 당원인데, 입당한 지 한 달밖에 안 된 당신이 왜 이런 난동을 부리느냐”고 따져 물었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전씨의 전당대회 출입을 막기 위해 대의원이 아닌 일반 당원의 행사장 출입을 금지했다. 이어 전씨에 대한 징계 가능성도 내비쳤다. 그러자 전씨는 <전한길뉴스> 발행인 신분을 내세워 “언론 탄압”이라며 반발했다. 이처럼 전씨는 국민의힘 당원과 언론인이란 신분을 왕래하면서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개입하고 있다. 지난달 31일과 지난 7일엔 시사평론가 고성국씨 등과 함께 주최한 ‘자유 우파 유튜브 연합 토론회’에 각각 장동혁·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출연시켜 ‘면접’을 보는 위력을 국민의힘 내외에 과시했다. 특정 진영의 강경파를 대상으로 언론사·유튜브 채널 등을 운영하면서 힘을 과시하는 모델로는 방송인 김어준씨가 있다. 김씨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친문(친 문재인) 강경파 성향 당원·지지자를 대상으로 라디오·유튜브 방송을 진행하면서 당 전체를 좌지우지하는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당 대표 후보들을 면접하는 형식은 김씨가 지난해 3월 자신의 유튜브 방송 ‘김어준의 다스뵈이다’에 민주당 총선 후보자였던 이언주·전현희 의원과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출연시켜 객석의 청중에게 큰절을 시킨 것과 비슷하다. 김씨가 지난 6월 기획·진행한 ‘더 파워풀’ 콘서트엔 ▲문재인 전 대통령 ▲민주당 정청래 대표 ▲김민석 국무총리 등 다수의 민주당 내 유력 정치인이 참석했다. 입당하자마자 영향력 과시 물의 당원·언론인 오가며 전대 개입 김씨는 지난 2011년 팟캐스트 방송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로 활동하면서부터 민주당에 대한 영향력을 키워왔다. 물론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한 영향력을 전씨가 단기간에 얻긴 어렵다. 이 때문인지 전씨는 국민의힘에 입당하자마자 ‘10만 당원 양병설’ 등을 주장하면서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가능성을 내비쳤다. 하지만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출마하기 위해선 당비를 3개월 이상 납부하고, 연 1회 이상 교육을 받은 책임당원이어야 한다. 전씨는 지난 6월 온라인으로 입당했고, 당 대표 후보 등록일은 지난달 30일부터 단 이틀 동안이었다. 따라서 전씨는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수 없었다. 출마 길이 막힌 전씨는 전당대회에서 당원·언론인 신분을 교차하면서 자신을 따르는 당원들을 선동해 영향력을 과시하려고 한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가 민주당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구조를 이해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과 주변 진영 전체를 둘러싼 질서는 20세기 초·중반에 활동했던 이탈리아 사회주의자 안토니오 그람시의 헤게모니 이론이 갖는 틀과 비슷하다. 그람시는 “자본주의는 견고하게 발전할 것”이라는 대전제를 토대로 “언론·문화 등 각 분야에 진지를 구축해 참호전으로써 상대 세력을 약화해야 한다”는 사상을 정리했다. 각 분야에 구축한 진지는 결정적인 시기에 전개할 기동전의 전초기지 역할을 한다. 자본주의 구조가 뿌리내리면서 러시아 2월·10월 혁명과 같이 한순간에 모든 것을 뒤집는 혁명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그람시는 주도권 다툼으로써 체제 내 혁명을 추구하는 취지의 사상을 구체화했다. 우리나라에선 소련 해체가 가시화되던 1980년대 후반부터 기존 노동운동에 문화·예술운동을 접목하는 단체가 활동하는 등 각계에서 다른 방향의 노동운동을 전개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민주당을 받치는 양대 축은 각계의 시민단체들과 진보 성향 매체들이다. 대규모 정치 이벤트가 진행될 땐 민주당 지원 사격을 맡으면서, 정치적 명분과 정당성을 구축·홍보하는 역할을 맡는다. 또 민주당에 인력을 공급하는 역할도 한다. 주요 선거 등 대규모 기동전이 필요한 상황에선 각자의 진지에서 일시에 뛰쳐나와 물량을 공급하는 식이다. 이 같은 구조를 상징하는 사람이 민주당 윤미향 전 의원이다. 정의기억연대 대표로 오랫동안 활동하던 윤 전 의원은 민주당을 통해 국회의원이 됐지만, 횡령 의혹이 유죄로 확정돼 의원직을 잃었다. 같은 당 추미애 의원 등 민주당 일각에선 윤 전 의원의 사면을 강하게 지지했고, 결국 8·15 광복절특사를 통해 사면·복권됐다. 민주당과 그람시 하지만 시민단체와 매체는 대중을 직접 동원하기가 어려운 데다, 매체는 언론 고유의 한계가 있다. 시민단체 역시 시민들의 참여가 부실하다는 핸디캡을 떠안을 수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도 존재해 왔다. 이 때문에 삼각 구조를 받쳐줄 또 하나의 하부 구조가 필요했다. 이 문제를 해결해준 사람이 바로 김씨였다. 김씨는 지난 1998년 ‘안티 <조선일보>’라는 깃발을 내걸고 <딴지일보>를 창간한 후 풍자·B급 정서·유머를 지향해오고 있다. 당시 <딴지일보>에선 포장마차에서 어묵을 찍어 먹는 용도로 내는 간장의 위생 상태를 취재해 기사화하거나 국가혁명당 허경영 명예대표의 대권 도전 과정을 풍자하는 등 ‘신선한 B급 정서’를 지향해 독자적인 인기를 누렸다. 하지만 한편으로 김씨에게 평생 따라다닐 놀림거리를 남겼다. 김씨가 <딴지일보>의 채무를 해결하기 위해 여성용 성인용품을 판매했고, 성인남녀의 만남을 중개하는 사이트를 개설했던 탓이다. 보수 성향 유권자들은 여전히 김씨를 비판하면서 당시의 전력을 함께 언급한다. 이후 김씨는 ▲황우석 박사 옹호 ▲영화감독 겸 코미디언 심형래씨 옹호 등 숱한 논란을 일으켰다. 특히 황 박사 옹호는 그럴 듯한 음모론을 제시하면서도 설득력 있는 근거는 제시하지 않는 김씨의 특성과 깊이 맞물린다. 당시의 논란도 김씨에 대한 비판론을 형성하는 중심축이다. 그랬던 김씨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계기로는 크게 2가지를 들 수 있다. 하나는 ‘문재인 대통령 만들기’를 처음 시작했다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 중 1명으로 활동했단 것이었다. 김씨는 당시 민주당 백원우 의원이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장에서 이명박 당시 대통령에게 거친 항의를 말리고 고개 숙여 사과하는 문 전 대통령을 주목했다. 이후 김씨는 문 전 대통령의 킹메이커를 자처했고, 이는 ‘나는 꼼수다’ 진행 이후 문 전 대통령의 대세론으로 이어졌다. ‘나는 꼼수다’는 김씨 특유의 B급 정서·음모론이 이명박정부에 대한 다양한 불만과 맞물려 대성했던 방송이었다. ‘나는 꼼수다’는 현재까지 이어지는 김씨의 성향을 구체화한 방송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해당 팟캐스트의 상징으로 통하는 “쫄지 마”는 여전히 회자된다. ‘나는 꼼수다’는 구체적인 사실관계 검증엔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명확한 당파성을 매개로 특정 정당·진영 사람들이 선호할 음모론과 괴담을 이미 밝혀진 사실관계와 섞어 전달하는 것에 집중했다. 진실과 거짓의 경계선을 적당히 왕래하면서 민주당 지지를 극대화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다. 영웅과 악당들 이는 집단의식으로 연결됐고, 김씨에겐 거대한 영향력을, 민주당엔 거대한 지지 집단을 만들어줬다. 김씨는 ‘나는 꼼수다’를 통해 단순·명쾌한 이분 구도를 완성했다. 그를 선호하는 민주당 지지자의 정치관은 “보수진영이란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운다”는 것이다. 이는 정의로운 주인공이 지구 정복을 노리는 악당의 무리에 맞서 싸우는 어린이용 만화의 서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아울러 현재 민주당 핵심 지지 세대로 알려진 4050세대가 미국의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선호하는 것과 연결해볼 수 있다. 이 세계관엔 초월적인 힘을 갖고 모든 생명체의 절반을 죽여 우주를 정화하려는 악당에 맞서는 영웅들이 등장한다. 이 세계관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 사건은 지난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사건이었다. 이들에게 노 전 대통령 사망사건은 거대 악당과 싸워야 하는 당위성을 제공해주는 절대적인 명분이었다. 김씨가 이 사건에 주목하고, 상주로서 백 전 의원의 항의를 제지하던 문 전 대통령을 주목한 것은 당연한 순서였다. 우리 고전문학 중 전설은 김씨의 평소 주장과 비슷한 서사 구조를 띠고 있다. 전설은 능력이 뛰어난 주인공이 현실의 한계에 좌절하고 무너지는 비극적인 구조를 취한다. 또 설득력을 부여해야 많은 사람에게 퍼질 수 있어서 실제 존재하는 지역·지명을 매개로 그럴듯하게 전개된다. 여기엔 각박한 현실을 바꿔줄 새로운 영웅의 출현을 기대하는 민중의 소망이 담겨있다. 그래서 조선시대엔 “정씨 성을 가진 영웅이 새 나라를 만들어 왕이 될 것”이란 취지의 예언서가 오랫동안 돌아다녔다. 김씨의 주장은 21세기판 전설이라고 할 수 있다. 김씨는 민주당과 주변 진영을 취약한 상황에서 거대한 악에 도전하는 영웅으로 묘사하고, 지지자들은 그 영웅담에 환호한다. 그러면서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우는 영웅을 또 잃을 수 없다”는 공감대를 공유한다. 그들은 “대통령을 지켜야 한다”는 같은 목표를 공유한다. 김씨는 ‘김어준 유니버스’ 혹은 ‘민주 유니버스’를 만들었고, 지지자들은 관객을 넘어선 참여자로서 희열과 보람을 느낀다. <한국일보>는 지난 2017년 이들의 세계관을 소개하면서 “대통령이 국민을 지켜야지, 왜 국민이 대통령을 지켜야 하느냐”고 비판했다. 완전히 다른 ‘B급 정서’ 카타르시스·도파민 차이 김씨는 ▲세월호 고의 침몰설 ▲천안함 피격 사건 관련 가짜 뉴스 살포 ▲코로나19 대구 확산설 등 주장을 이어가면서 지지자들에게 정치적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했다. 그들이 김씨를 통해 느낀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은 고스란히 민주당의 정치적 자양분이 됐다. 그래서 총선 출마 후보들은 김씨가 보는 앞에서 지지자들에게 큰절을 해야 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비상계엄을 선포하면서 체포 대상 중 1명으로 김씨를 지목했던 것은 김씨에게 엄청난 이익이 됐다. 당시 계엄군은 김씨가 진행하는 유튜브 채널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 스튜디오 주변을 통제했다. 김씨는 지난해 12월13일 국회에서 “계엄군이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를 사살한 후 북한 소행으로 공작하려고 했다”면서 “정보 출처는 국내에 대사관이 있는 우방국”이라고 주장했다. 이후 “그 우방국은 미국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지만, 미국은 국무부·주한미국대사관을 통해 이를 부인했다. 반면 민주당 최민희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김어준님’의 증언을 허구로 단정하고 비난부터 하는 것은 무모하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과 보수 세력은 민주당과 그 주변 세력처럼 정교한 조직체를 만들지 못했다. 보수 세력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스피커 역할은 전씨와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가 맡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김씨처럼 진영 전체를 들썩일 수 있는 정치적 유머 감각과 설득력을 갖추지 못했다.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하지도 못한다. 이 때문에 이들의 주장은 강경 보수 지지자들 외 국민 사이에서 웃음거리로 전락한 지 오래고, 국민의힘 내부서도 강하게 비판한다. 국민의힘이 지난 2022년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이겼을 당시엔 민주당에 비판적인 2030세대 남성과 6070세대를 아울러 민주당을 지지하는 4050세대와 2030세대 여성을 포위한다는 ‘세대포위론’ 전략이 제시됐다. 그러나 윤 전 대통령과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가 불화 끝에 결별하면서 이 연합은 얼마 가지 못해 해체됐다. 당시 승리를 주도했던 국민의힘 지지층은 이 대표 특유의 합리주의를 지지하는 젊은 유권자와 강경 보수를 지향하는 노년 유권자로 분열됐다. 전씨는 많은 공무원 제자를 거느린 유명 한국사 강사였다. 따라서 적절히 순화된 주장과 교묘하게 선정한 정치적 입지를 섞어서 정치 전면에 나섰더라면,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와 달리 그럴듯한 이야기를 구성하고 유머를 섞는 능력을 보여준 적이 없다. 전씨의 옛 제자들은 그를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절대로 정치 전면에 나서지 않는 김씨와 달리, 직접 국민의힘에 입당해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하려 하는 등 적당히 선을 긋지도 않는다. 정치인들이 알아서 자신의 스튜디오에서 큰절을 하게 만드는 김씨와 달리, 전씨는 스스로 영향력을 과시하기 위해 전당대회서 눈에 띄는 행동을 했다. 전에겐 없는 것들 무엇보다 김씨가 “이 대통령을 능가하는 영향력을 가진 것 아니냐”는 설까지 나올 정도로 강력한 영향력을 구축하기까지 15년이 걸렸단 사실도 제대로 통찰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결정적으로 국민의힘은 정치 구조를 통찰하지 못해 민주당이 장기간 공들여 구축한 정치 구조체를 갖추지 못했다. 그런데도 전씨는 ‘전한길 유니버스’ 제작을 멈추지 않는다. 과연 전씨는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 있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