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셸 위, 한국 국적 이탈 사연

바빠서? “이젠 위성미가 아니랍니다”

골프선수 미셸 위(한국명:위성미)가 한국 국적을 포기한 것으로 드러나 팬들의 안타까움을 자아내고 있다. 행전안전부의 관보에 따르면 미셸 위는 지난 2월21일 법무부 장관의 허가 하에 한국 국적을 이탈했다. 이탈사유는 ‘외국 국적 선택’이다.

바쁜 일정으로 외국 국적 불행사 서약 못해
한국인 미셸 위? 국적 포기 비난 이유 없다

국적 이탈은 해당자가 해외에 거주할 경우에만 신청이 가능하고 하와이 태생인 미셸 위와 같이 ‘선천적 복수 국적자(부모가 직장근무, 유학 등의 이유로 출생지주의를 채택한 외국에 체류할 때 태어났거나 국내 다문화가정에서 출생한 자녀)’의 경우 재외공관이 이탈신고를 접수하면 외교통상부 장관을 통해 법무부로 송부되는 방식이다.

‘자랑스런 한국인’
내면의 불편함

이로써 미셸 위에게 ‘위성미’라는 이름은 지워지게 됐다. 물론 남자는 병역문제로 인해 국적 이탈에도 나이제한이 있는 등 까다롭지만 여자는 자유롭게 국적 재취득을 신청할 수 있다.

그럼에도 미셸 위가 굳이 국적을 포기한 배경에 팬들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23년 동안 한국 국적을 유지하다가 지금에 와서 포기한 이유는 2011년 1월1일 발효된 국적법에 따른 것이라는 분석이다.


개정된 국적법에 의하면 미셸 위처럼 선천적 복수국적자는 만 22세가 되기 전에 국적을 선택하도록 돼 있다. 즉 ‘외국국적 불행사 서약’ 절차를 밟아야 하는데 미셸 위는 그 시기를 놓쳐 미국과 한국 중 한쪽 국적만을 선택해야 했다고 예상할 수 있다.

만약 미셸 위가 외국국적 불행사 서약 절차를 밟았다면 상황은 달라졌을 것이다. 만 22세가 되기 전 국내에서 외국 국적을 내세우지 않겠다는 외국국적 불행사 서약서를 쓸 경우 복수국적을 유지할 수 있도록 새 국적법이 여지를 남겨 놓았기 때문이다.

바쁜 일정 관계로 절차를 밟지 않은 것으로 보이는 미셸 위는 한국 국적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고 볼 수 있다. 미국 국적을 포기하면 주 무대인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를 뛸 때 수시로 비자를 갱신해야 하는 등 활동에 상당한 제약이 우려됐다.

2005년 10월6일. 전 세계가 한 소녀를 주목했다. 16세 골프천재 미셸 위의 프로전향 기자회견. 나이키와 소니의 후원을 받는 1000만달러 소녀의 탄생이었다. 183cm의 키에 뛰어난 미모, 한국계 미국이민 2세의 성공스토리, 2003년 US 여자 아마추어 링크스 챔피언십 최연소 우승에 빛나는 뛰어난 실력. 글로벌 스포츠자본이 탐낼만했다.

미셸 위는 스타성을 완비한 LPGA의 새로운 희망이었다. 언론도 부응했다. 미셸 위의 뛰어난 상품성에 주목한 언론은 그녀가 아니카 소렌스탐의 뒤를 이어 골프여제로 성장해주길 바랐다. 특히 데뷔 이후의 잇따른 남자대회 출전, 성적부진, 매너 논란이 불거질 때마다 언론은 경험부족과 학업부담을 내세워 팬들에게 기다림을 요구했다.

2007년 스탠포드대학 입학은 미셸 위 셀러브리티의 정점이었다. 하버드와 예일에 주눅 든 한국에서 스탠포드대생 미셸 위는 골프만으로 평가할 수 없는 한국적 셀러브리티의 명성을 획득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당시엔 미셸 위와 관련된 모든 것이 기사화됐다. 떡볶이를 좋아한다는 것도 뉴스였고 방송에서 튀어나온 “야마 돈다”는 비속어도 뛰어난 한국어 실력의 증거였다.

국적, 개인의 선택이자 권리
언론의 애국주의와 상업주의


혹자는 빼어난 미모를 좋아했을 수도 있다. 또 스탠포드라는 타이틀에 매력을 느꼈을 수도, 300야드 가까이 되는 호쾌한 드라이브샷에 감탄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미셸 위 인기의 기저에 같은 한국인이라는 핏줄의식이 작동했다는 것은 부인하기 힘들다. 그런데 그렇게 열광했던 미셸 위가 한국 국적을 포기했다.

법무부 자료에 따르면 최근 5년간 9만220명의 외국인이 한국 국적을 취득했고 10만6588명의 한국인이 외국 국적을 취득했다. 국경 없는 글로벌시대가 아니라 국적 없는 글로벌시대인 듯하다.

국적 변경의 이유도 다양하다. 정치적 신념, 국제결혼, 취업 등이 일반적 이유이다. 재력가들은 조세부담 경감을 위해 국적을 변경하기도 한다. 스포츠세계에선 올림픽 출전을 위해 새로운 조국을 택하는 것이 흔한 일이다.

다양한 이유에도 불구하고, 범죄자들의 도피용 국적세탁을 제외한 대부분의 국적변경은 새로운 기회와 꿈을 향한 개인의 선택이라는 점에서 공통적이다. 국가가 발전할수록 국가단위, 기업단위, 개인단위의 국제네트워킹이 활발해지며 개방사회로 진입하기 때문에 국적변경은 더욱 자연스러워지고 일상화될 것이다.

국제연합(UN)은 이미 1948년 12월에 채택한 세계인권선언 15조에서 ▲모든 사람은 국적을 가질 권리를 가진다 ▲어느 누구도 자의적으로 자신의 국적을 박탈당하거나 자신의 국적을 바꿀 권리를 부인 당하지 아니한다고 명시했다. 국적 선택의 권리는 기본적 인권이라는 뜻이다. 당연히 미셸 위는 한국 국적을 포기했다는 이유만으로 비난받아서 안 되고 비난받을 이유도 없다.

미셸 위는 LPGA에서 원래 미국 국적이었다. 중계방송의 리더보드엔 미셸 위의 이름이 성조기와 함께 표기된다. 모두 알고 있다. 그런데도 언론은 성공한 재미교포 골퍼 미셸 위가 아닌 ‘자랑스러운 한국인, 우리 선수 위성미’를 고집했다. ‘재미교포 미셸 위’보다 ‘자랑스러운 한국인 미셸 위’가 좀 더 먹히기 때문이다.

히트상품 ‘미셸 위’ 개발을 위한 언론의 코드는 미모와 학벌, 그리고 한국인이었다. 미셸 위의 한국에 대한 기억, 한국인으로서의 정서, 한국음식에 대한 기호는 모두 뉴스화 됐다. 전쟁과 가난에 한 맺힌 시절, 국민에게 위안과 희망을 주자는 애국주의 저널리즘의 ‘자랑스러운 한국인’ 프레임이 군부독재의 국가주의 저널리즘을 거쳐 히트상품 판매를 위한 상업주의 프레임으로 진화된 것이다.

 

“한국인이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는 미셸 위의 인터뷰 내용이 배신의 증거인양 자주 인용된다. 지금도 미셸 위는 스스로 한국인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미국에서 태어나고 교육받고 성장한 미셸 위가 한국계임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미국인으로 살아가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지 않을까?

빅토르 안 선택한
쇼트트랙 황제

나이키와 소니가 미셸 위에게 각 500만달러씩 모두 1000만달러를 투자할 당시, 미셸 위는 불과 16세였다. 조기 발굴, 물량공세, 철저한 독점, 글로벌 마케팅으로 이어지는 미국식 스포츠자본주의의 작동방식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일찌감치 ‘돈의 맛’을 안 미셸 위가 프로에서 배운 것은 골프만이 아니었다.

2005년 남자대회인 일본프로골프투어 카시오월드오픈이 미셸 위를 초청하기 위해 지불한 비용은 200만달러. 자가용 비행기에 경호비용까지 모두 포함된 액수이다. 2006년 국내서 열린 SK텔레콤오픈 출전도 적지 않은 초청비용이 들어갔을 것으로 추정된다. 한국에서 열리는 대회니까 기꺼이 자원해 참가했다고 생각했다면 순진한 착각이다. 엄청난 초청비용 이외에도 미셸 위는 건설회사 신영과 30억원짜리 광고계약을 맺었다.

미셸 위에게 한국행은 고수익창출의 마케팅행사였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박지성 마케팅을 비난할 수 없듯이 미셸 위의 한국마케팅 역시 비난받을 이유는 없다. 비난해야 한다면 미셸 위의 비즈니스를 ‘자랑스러운 한국인의 고국방문’으로 포장한 언론의 상업주의이다.
감동적인 고국방문을 그대로 믿었다면 미셸 위 팬들의 순진함도 귀책에서 벗어나긴 힘들듯 하다.
미셸 위의 한국 국적 포기 배경에 대한 분석이 분분하다. 스폰서 확보를 위해 미국 국적을 선택했다는 분석이 중론이다. 일부에선 외국 국적 불행사 서약서 작성 시기를 놓쳤기 때문이라고도 한다. 2011년 발효된 국적법은 선천적 복수 국적자에게 만 22세 전에 국내에서 외국 국적을 행사하지 않겠다는 서약서를 쓸 경우 복수 국적을 인정한다.

미셸 위가 이 서약서를 쓸 시기를 놓쳐 한국 국적을 포기하게 됐다는 얘기이다. 배경이 어떠하든 명확한 것은 미셸 위가 미국과 한국 국적을 두고 택일해야 되는 상황에서 자신에게 유리한 미국 국적을 선택했다는 것이다. LPGA 골퍼로서, 재미교포 2세로서 당연한 선택일 수도 있다.


빅토르 안(안현수)과 신의손 당예서 등의 귀화가 미셸 위와 비교된다. 올림픽 출전과 더 좋은 환경이 공통적인 귀화의 배경이지만 선수 개개인의 속사정은 다를 수밖에 없다. 당예서는 올림픽 출전을 위해 무려 8년이라는 인고의 세월을 견뎌냈다. 대한한공 탁구부 훈련 파트너로 한국에 온 것이 2000년. 19살 한창 나이였다.

당예서는 자신의 꿈을 위해 2007년 귀화시험 합격까지 20대 청춘을 무명의 훈련 파트너로 묻어야했다. 빅토르 안의 귀화는 좀 더 처절하다. 생존을 위한 마지막 카드였기 때문이다.

국적, 국가가
부여한 의무?

세계쇼트트랙의 황제로 군림하면서도 빅토르 안은 언제부터인가 국가대표로 뽑히지 못했다.
전 소속팀이었던 성남시청이 해체되면서 황제는 하루아침에 청년실업자로 전락했다. 빙상연맹과 척을 진 안현수에게 손을 내미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운동선수로서의 생명을 이어가기 위해 안현수는 자신을 원한 러시아를 택했다.

1000만 달러 소녀 미셸 위의 한국 국적 포기는 아쉬울 것이 없는 선택이다. 철저하게 상업화된 LPGA 골퍼의 선택이기도 하다. 그래서 단지 귀화선수라는 잣대를 들이대면서 빅토르 안과 당예서를 미셸 위와 함께 거론하는 것은 왠지 불편하다. 빅토르 안과 당예서의 귀화엔 미셸 위에게는보기 힘든 한국적 현실의 고뇌와 삶의 무게가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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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입수> 노상원 수사 기록 ②부정선거에 꽂힌 내막

[단독 입수] 노상원 수사 기록 ②부정선거에 꽂힌 내막

[일요시사 취재1·정치팀] 오혁진·박희영·김철준 기자 = 12·3 내란 사태가 발생한 지 6개월이 지났다. 특검이 출범하면서 관련 수사도 발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현재까지 여러 언론을 통해 핵심 인물들의 수사 기록이 일부 보도됐다. 그러나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에 대한 내용은 구체적으로 언급된 바 없다. <일요시사>는 경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단의 ‘노상원 수사 기록’을 단독으로 입수해 공개하기로 했다. “부정선거 증거가 차고 넘치고 나중에는 드러날 것이다.” 노상원 전 국군정보사령관이 수사기관에 진술한 내용이다. 그가 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처럼 부정선거 음모론에 꽂혀 있다는 걸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노 전 사령관은 윤 전 대통령의 지지자들이 주최하는 집회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사실상 수년 전부터 망상에 빠져있었다고 볼 수 있다. 같은 생각 노 전 사령관이 윤 전 대통령 지지자들이 주도하는 부정선거 음모론 집회에 참여하기 시작한 건 2년 전부터로 추정된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노 전 사령관 수사 기록에 따르면 그는 부정선거 음모론 집회와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의 집회에 여러 차례 참여했다. 노 전 사령관이 전 목사와 개인적으로 알았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다만 노 전 사령관은 김 전 장관에게 집회에 참여할 때마다 당시 분위기와 참석자들이 윤 전 대통령을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해 텔레그램으로 자신의 의견을 전달했다. 1년간 ‘극우 집회’를 분석한 노 전 사령관은 부정선거 음모론에 집착하기 시작했다. 그는 “문상호, 정성욱, 김봉규 등과 만날 때 주로 어떤 말을 했느냐”는 경찰 측의 질문에 “선관위를 얘기했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선관위가 부정선거의 온상이라고 김용현 전 장관이 많이 말씀하셨다. 나에게도 여러 번 선관위의 부정선거에 대해 알아보라고 지시했고 네이버로 찾아도 봤다”고 말했다. “부정선거를 주로 누구에게서 들었냐”는 경찰 측의 질문에는 “관련 집회에 여러 번 참여하면서 들었고 특정 인물이 누구인지 실명을 거명하긴 그렇다. 나도 김 전 장관에게 보고를 해야 해서 스스로 공부도 많이 했다. 여론조사 조작이나 선거 부정은 합리적인 근거가 있다”고 했다. 전 주도 윤 지지자 극우 집회 직접 참석 김과 텔레그램으로 부정선거 자료 공유 노 전 사령관은 부정선거의 근거로 “선관위 산하에 여론조사심의위원회가 있다. 여론조사기관은 여론조사심의위에 등록해야 한다. 여론조사기관의 갑이다. 여론조사심의위원회는 9명으로 위원장 이대영 사무총장과 강성봉 등이고 그 밑에 쭉 있는데 7명이 진보 계열 인물이다. 여론조사기관이 편향되어 있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고 주장했다. 노 전 사령관은 부정선거 음모론자들이 주장하는 임시선거사무소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는 “네이버에 검색하면 다 나오는데 2021년 국회의원 선거 때 동작구 선거사무소가 있는데 옆을 임대해서 임시선거사무소를 만들었었다. 언론에 나오니까 발뺌했었고 김 전 장관에게 보고하자 김 전 장관이 더 많은 자료를 보내 줬었다”고 했다. 노 전 사령관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의 부정선거가 확실하다며 “결국에는 다 까질 것이다. 전산은 한 번 까지면 되돌릴 수가 없다. 폭파하거나 고물상에 갖다 버리지 않는다면 전산은 결국 까진다. 북한이 쳐들어온 것도 아니고 서울 상공에 포를 쏜 것도 아니지만 윤석열 전 대통령께서는 선관위의 부정선거가 확실하다고 생각하시고 정국이 전시에 준하는 사태라고 민감한 상황이라고 보신 것 같다. 그런 상황이 아닌데도 그렇게 행동한 건 그만큼 절박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2시간짜리 호소였다. 만약 국회 결정을 윤 전 대통령께서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유혈사태가 났을 것”이라고 윤 전 대통령을 옹호했다. 노 전 사령관은 지난해 12월 초, 선관위가 서버 교체를 검토했다가 교체하려 했던 것을 두고 “윤 전 대통령께서 어디에선가 확실하고 핵심적인 정보를 들으셨을 것 같다. 서버 조작이 있었기에 그 서버를 우리가 확보하려 할 때 선관위 측이 폭파했을 수도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의 군검찰·검찰 피의자 신문조서를 보면 윤 전 대통령은 지난해 8월 초 ‘정보사 군무원 간첩 사건 수사 결과’를 보고받는 자리에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대표였던 이재명 대통령을 포함한 정치인 등 인물들에 대해 “비상대권을 사용해 이 사람들에 대해 조치를 해야 한다”며 “현재의 사법체계, 형사소송법, 방탄국회 및 재판지연 아래에선 이런 사람들을 어떻게 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재명 조치’ ‘2시간짜리 계엄’ 겹치는 윤·노 발언 "서버 확보하려 했다면 선관위가 폭파했을 것” 주장 윤 전 대통령이 “비상대권을 사용한 조치”를 언급한 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만큼 이 대통령과 자신의 의견을 거스르는 인물들에 대한 복수심이 극에 달했던 것으로 해석된다. 이는 노 전 사령관도 마찬가지다. 노 전 사령관은 경찰에 “김용군(대령)과 구삼회 등에게 ‘이재명은 죄가 7개인데 봐주고 지연시키고 구속도 안 되고 당 대표까지 하는데 더불어민주당이 감사원장, 중앙지검장, 판사 등을 모두 탄핵하려고 하는 게 과연 올바른 세상이냐’고 한 적이 있다”고 진술했다. 윤 전 대통령과 노 전 사령관이 언급한 말이 일치하는 건 이뿐만이 아니다. 윤 전 대통령은 지난해 12월12일 “국정원 직원이 해커로서 해킹을 시도하자 얼마든지 데이터 조작이 가능했고 비밀번호도 아주 단순해 ‘12345’ 같은 식이었다”고 주장한 바 있다. 노 전 사령관도 “선관위가 헌법기관인데 스스로 깨끗해야 하거나 아무런 문제가 없어야 하는데 황제·세자 채용 등 문제가 나왔다. 각종 할 수 있는 최악의 것은 다 저질렀다. 그리고 전산 해킹이 언급될 때 서버 본체를 보여준 것도 아니고 일부 샘플만 살짝 보여줬는데 얼마든지 전산 조작이 가능하고 해킹에 얼마나 취약하면 비밀번호가 ‘1234’냐. 이미 그런 게 다 나왔다. 그렇게 떳떳하면 왜 본체를 못 열어주나”고 말했다. 그러나 조태용 국정원장은 같은 해 12월 검찰 조사에서 “선관위 시스템에 보안상 취약점이 발견됐지만, 부정선거에 관한 단서는 전혀 포착하지 못했다”는 내용으로 보고했다고 진술했다. 일각에서는 노 전 사령관이 윤 전 대통령과 직접 비화폰으로 연락을 주고받았을 것이라는 보고 있다. 실제 노 전 사령관도 지난해 12월2일 자신의 지인에게 윤 전 대통령과의 친분을 과시했다. 노 전 사령관은 당시 “나 같은 경우는 브이(V, 윤 전 대통령 지칭)하고 이렇게 좀 도와드리고 있다. 원래 한 4~5년, 3~4년 전에 알았다뿐이고 그래서 이제 뭐 이렇게 여러 가지로 좀 도와드리고 있다. 비선으로”라고 했다. 친분 과시 노 전 사령관은 안산 ‘롯데리아 회동’에 참석했던 구삼회 전 육군 2기갑여단장에게도 “며칠 전에는 김용현과 함께 대통령도 만났다. 갈 때마다 대통령이 나한테만 거수경례를 하면서 ‘사령관님 오셨습니까’라고 한다. 내가 이런 사람이다. 대통령과 장관 같이 만난다. 나는 벌써 여러 번 만났다”고 했다. <hounder@ilyosisa.co.kr> <hypak28@ilyosisa.co.kr> <kcj512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