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임원 추태 ‘천태만상’

  • 김설아 sasa7088@ilyosisa.co.kr
  • 등록 2013.04.29 15:20:26
  • 댓글 0개

회사 망신시키는 꼴불견 “한명씩 꼭 있다”

[일요시사=경제1팀] ‘샐러리맨의 꽃’이라 불리는 대기업 임원들의 추태가 잇따르고 있다. 최근 기업 임원들의 도덕적 해이가 대대적으로 보도되면서 그 꼴불견의 천태만상이 만천하에 드러나고 있다. 폭언과 폭행, 성폭행에 이르기까지 수법도 다양하다. 이들은 한 번의 실수로 그동안 공들여 쌓아온 개인의 명예가 여지없이 실추되는 지경에까지 이르고 있다.



최근 포스코에너지 고위직 임원이 비행기 안에서 승무원에게 폭행을 휘두른 사실이 알려져 논란이 일고 있다. 당사자인 A씨는 지난 22일 포스코에너지로부터 보직해임 처분을 받았지만 사건의 파장은 쉽사리 가라앉지 않고 있다.

라면과 바꾼
임원 자리

항공업계에 따르면 A씨는 지난 15일 대한항공 인천발 미국 LA행 비행기 안에서 기내 비즈니스석 서비스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며 여 승무원을 폭행했다. 

A씨는 기내식으로 제공된 밥과 라면이 다 익지 않았다며 수차례 다시 준비해 오라고 요구, 그래도 자신의 입맛에 맞지 않는다고 지적하며 손에 들고 있던 잡지로 여 승무원의 머리를 가격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대한항공 사무장과 기장은 기내 폭행 사건을 비행기 착륙 전 LA공항 관계자와 수사기관에 신고해 미국 연방수사국(FBI) 요원이 출동했다. 미 FBI는 폭행 A씨에게 입국한 후 미 수사 당국 조사를 받을 것인지 아니면 한국으로 돌아갈지를 선택하라고 요구했고, 결국 임원 A씨는 바로 귀국했다.


현행법에 따르면 승객은 항공기 보안이나 운항을 저해하는 폭행·협박, 위계행위를 하면 안 된다. 또 기장은 기내 안전을 해치는 행위나 인명·재산에 위해를 주는 행위, 또는 항공기내 질서를 어지럽히거나 규율을 위반하는 행위를 한 승객을 상대로 체포 신청 등 필요한 조치를 할 수 있다.

이 같은 사실이 알려지자 A씨가 대기업 임원으로서 품위를 지키지 못했다는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포스코에너지의 모기업인 포스코가 홈페이지에 공식 사과문을 게재했지만 네티즌들의 분노는 가라앉지 않았다.

오히려 이 사건을 풍자한 ‘포스코 라면’, ‘기내식의 황제’ 등의 여러 가지 패러디들이 등장했다. 신라면 패러디에서는 승무원 얼굴을 때린 것을 두고 ‘매운 싸다구맛’이라고 비아냥거리며 ‘기내식의 황제가 적극 추천합니다’라는 말풍선과 함께 ‘개념 무첨가’라고 덧붙이기도 했다. 파문이 확산되자 A씨는 23일자로 사직서를 제출, 회사에서도 이를 곧바로 수리한 것으로 알려졌다. 

A씨는 1983년 포스코에 공채 입사한 후 포스코터미널, 포스코켐텍 등을 거쳐 2년전 포스코에너지로 자리를 옮긴 뒤 지난 3월 인사에서 ‘샐러리맨의 별’이라고 불리는 상무로 승진까지 한 인사다. 포스코는 임원 승진 비율이 대기업 평균 1%보다 더 낮아 280명당 1명 정도의 임원이 나올 정도로 어렵다.

이러한 최상위의 자리에까지 오른 대기업 임원이 이번에 비행기 기내에서 보여준 추태는 우리사회 지도층의 추한 단면을 여실히 보여준다는 점에서 시사점이 크다는 지적이다.

사회특권층 추태
‘나라망신 일쑤’

사실 사회지도층들의 비행기내 난동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지난 2007년 12월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은 술에 취한 상태에서 김해발 대한항공 1104편 항공기(서울행)에 탔다가 이륙준비를 위해 좌석 등받이를 세워달라는 승무원의 요구와 기장의 지시를 따르지 않고 소란을 피웠다. 결국 비행기 출발이 1시간가량 지연됐고 박 전 회장은 2심에서 벌금 1000만원의 실형을 선고 받았다.


2005년 9월에는 모 대기업 부장 B씨가 영국 런던으로 향하는 기내에서 난동을 부리다 경찰에 인계돼 처벌을 받는 사건이 발생했다. B씨는 조리실에서 승객에게 물을 뿌리고 생수로 발을 씻는 것도 모자라 승무원을 발로 걸어 넘어뜨리고 성희롱 발언을 하는 등 추태를 일삼았다. 결국 B씨는 영국 경찰에 연행되는 망신을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기내 난동뿐 아니라 각종 범죄를 저지른 대기업 임원들도 있었다. 최근에는 현직 대기업 간부가 지적장애인을 성폭행한 혐의로 경찰에 구속됐다. 그는 경찰서 유치장에서 철창에 머리를 찧는 ‘자해 소동’까지 벌여 응급실 신세를 지기도 했다.

서울 서초경찰서는 지난 11일 내연녀의 집에서 지적장애 3급 여성을 성폭행한 혐의(강간)로 STX중공업 차장 C씨를 구속하고 이를 방조한 혐의로 C씨의 내연녀를 불구속 입건했다.

경찰에 따르면 주말부부인 C씨는 지난 1월9일 서울 강남구 신사동에 위치한 내연녀의 집에서 30대 지적장애(3급)여성을 성폭행한 혐의를 받고 있다. 범행 당일 내연녀의 집을 찾은 C씨는 마침 방 안에 있던 지적장애 여성과 강제로 성관계를 맺은 것으로 알려졌다.

기내 승무원 농락 ‘라면 상무’파문 일파만파
장애인 성폭행 임원…술집 여주인 성추행 간부
택시기사 ‘묻지마 폭행’10대 소녀 몰카 망신도

내연녀 와 피해자는 한동네에 살며 친분을 쌓은 사이로 전해졌다. 피해자의 신고를 받고 수사에 착수한 경찰은 내연녀가 C씨의 성폭행을 도운 정황을 포착, 내연녀도 불구속 입건했다.

C씨는 당초 범행 사실을 부인하다 피해자의 체내에서 자신의 DNA가 발견됐다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감정 결과가 나오자 혐의를 시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경찰서 유치장에 수감된 C씨는 수갑을 찬 채로 철창에 머리를 수차례 찧는 등 자해 소동을 벌인 것으로 알려져 충격을 주고 있다.

터빈·엔진 등 동력기관 분야의 전문가로 알려진 C씨는 경찰 조사를 받은 약 3개월 동안에도 정상적으로 회사에 출근했지만 지난 2일 구속되자 회사측에 진단서를 제출하고 병가를 낸 것으로 전해졌다.

“대기업 임원인데
똑바로 대접 못해?”

지난 2012년 2월에는 CJ그룹의 한 임직원이 여성을 성추행 한 뒤 오히려 큰 소리를 치는 등 소동을 벌이다 덜미가 잡혔다. 서울 중구 중림동의 한 실내포장마차에서 친구와 술을 마시고 계산하던 CJ그룹 부장 D씨는 가게 여 사장이 돈을 받는 순간 “주방에 바퀴벌레가 있다”고 소리쳐, 여사장의 고개가 돌아간 틈을 타 볼에 입을 맞췄다.

화가 난 여 사장은 D씨를 쫓아냈지만 곧 다시 돌아온 D씨는 여 사장에게 욕설을 퍼부으며 “내가 CJ 임원인데 똑바로 대접 못하겠느냐”며 가게 안에서 행패를 부렸다.

이 상황을 알게 된 여 사장의 남동생이 곧장 가게로 달려와 D씨를 경찰에 신고했고 사건은 남대문 경찰서에 넘겨졌다. 경찰서에서도 D씨의 범행 일체를 부인하다 남동생이 당시 상황이 녹화된 CCTV를 보여주자 그제서야 “미안하다. 술에 취해 기억이 나지 않는다. 좋게 합의했으면 한다”며 추행 사실을 자백했다.


더욱이 D씨는 CJ식품계열의 주력 상품 출시에 앞장서면서 이목을 끈 인물로 알려져 대기업 임직원의 도덕성에 비판이 제기됐다.

앞서 지난해 1월에는 만취한 대기업 임원이 택시기사를 폭행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서울 용산경찰서에 따르면 두산그룹 전무 E씨는 술에 취해 인사불성 상태에서 택시기사를 폭행한 혐의(상해)를 받았다. 경찰에 따르면, 택시기사는 술에 취해 잠든 E씨를 깨워 “어디로 가시냐”고 물었고, E씨는 다짜고짜 택시기사의 턱을 구둣발로 차고, 주먹을 휘둘러 눈을 가격한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 2009년에는 ‘청정원’으로 유명한 대상그룹의 지주회사 대상홀딩스의 대표가 10대 청소년 성추행이라는 복병에 시달려 충격을 줬다.

서울 남대문경찰서에 따르면 대상홀딩스의 대표이사 F씨 등 일행 3명은 4월 22일 밤 10시께 서울 중구 서소문동 대한빌딩 앞에 앉아있던 10대 소녀의 치마 쪽을 쳐다보며 휴대전화 카메라로 사진을 찍었다. 이에 소녀의 일행 중 남성 1명이 항의하면서 몸싸움을 벌이다 모두 경찰에 연행됐다. 이들의 성추행을 지켜보고 만류했던 공익근무요원도 F씨 일행에게 폭행을 당했다.

결국 일행 3명은 모두 폭행 혐의가 적용돼 입건됐고, 경찰은 F씨 일행에게 항의하는 과정에서 몸싸움을 벌인 소녀의 일행 남성에 대해서만 ‘정당한 행위’로 간주하고 검찰에 불기소 의견을 냈다.

하지만 소녀와 F씨가 합의에 성공함에 따라 성추행 기소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강제추행 혐의는 피해자가 고소·고발하지 않으면 처벌할 수 없는 ‘친고죄’에 해당되기 때문이다. 유일하게 휴대폰으로 소녀의 사진을 찍은 혐의를 받고 있는 맥쿼리 증권 부사장만 ‘성폭력범죄처벌법 위반 혐의’가 적용돼 불구속 입건됐다.

이 같은 사실이 알려지자 재계는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기업 브랜드를 좌우하는 대기업 대표인사가 “10대 소녀를 성추행했다”는 전례 없는 사건이기 발생했기 때문이다. 당시 재계 한 관계자는 “자기 딸 같은 나이인 아이에게 그런 행동을 했다는 게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들다”고 황당함을 감추지 못했다.


별들 몸조심
주의보 발령

이처럼 과거부터 최근까지 대기업 임원들의 ‘도덕성 문제’가 도마에 오르는 사건이 잇따라 발생하면서 상당수 대기업들은 임원들에게 ‘몸조심 발령’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하면 해당 임원의 명예실추는 물론 그 기업의 국내외 이미지까지 악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나아가 기업 총수의 리더십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특히 경제민주화와 동반상생이 정·재계 화두가 되고 있는 시점에서 대기업 총수들은 더욱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다. ‘대기업 임원의 특권의식’에 대한 비난이 확산되면 ‘경제민주화가 지나치다’는 대기업의 항변이 먹혀들겠느냐는 우려도 일부에서 제기되고 있다.

재계 한 관계자는 “정치권과 정부 당국이 대기업의 세금 탈루와 부당 거래 등 폐단을 캐내려고 두 눈을 부릅뜬 상황에서 대기업 임원의 잘못된 처신이 불거지면 이롭지 않다는 것이 재계의 대체적인 시각”이라며 “때문에 이번 사건을 반면교사로 삼아 국내외 출장 또는 회식자리 등에서 말과 행동을 조심하자는 분위기가 일부 기업들에 조성되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사후약방문처럼 무슨 일이 발생한 다음에야 시정하겠다는 등 야단법석을 떠는 일이 없어야 한다”며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상식적인 명구절을 상기했으면 좋겠다”고 입을 모은다. ‘다이내믹 코리아(Dynamic Korea)’가 아닌 ‘젠틀 코리아(Gentle Korea)’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드는 요즘이다.


김설아 기자 <sasa7088@ilyosisa.co.kr>



항공기 ‘진상손님’제재 강화

승무원 괴롭히면 업무방해

최근 대기업 임원의 항공기 승무원 폭행사건이 사회적으로 주목을 받은 가운데 승무원의 업무를 방해하는 행위를 처벌할 수 있는 법률 조항이 마련된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법안심사소위는 지난 23일 조명철 새누리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항공안전 및 보안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통과됐다고 밝혔다. 

현행법상 항공기내 폭행·협박·위계행위나 출입문·탈출구·기기 조작, 항공기 점거·농성행위는 징역형 등 엄중 처벌토록 하고 있다. 아울러 승객의 안전유지 협조의무를 다룬 조항에도 ▲폭언·고성방가 등 소란행위 ▲흡연 ▲음주나 약물복용 후 위해행위 ▲타인에 성적(性的) 수치심을 일으키는 행위 ▲전자기기 사용 ▲조종실 출입기도 행위 등도 금지행위로 정하고 있다. 개정안은 여기에 ‘승무원 업무방해’ 행위도 기내 금지행위로 추가하는 내용이 골자다.

해당 법안은 올해 초 발의됐던 것으로 이번 ‘승무원 폭행’ 사건과 맞물려 이목을 끌고 있다. 입법화할 경우 직접적으로 안전을 위협하는 폭행이나 협박까지는 아니어도 지속적이고 공격적으로 불만을 제기하는 행위, 악의를 갖고 행하는 업무 방해 행위 등도 제재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조 의원은 “항공기 내에서 승객이 난동을 부리며 승무원 업무를 방해하더라도 이를 제재할 수단이 없어 기내 안전을 위한 승무원 업무수행에 어려움이 있었다”며 “승무원 업무 방해 행위에 대한 제재를 신설해 항공안전을 확보하려는 것”이라고 발의 배경을 설명했다. <아>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