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기획> 가업 말아먹은 철부지 후계자 ‘천태만상’

  • 김설아 sasa7088@ilyosisa.co.kr
  • 등록 2013.04.01 14:3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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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쪽같이 키웠더니 쪽박찬 황태자들

[일요시사=경제1팀] ‘수성’은 과연 ‘창업’보다 어려운 것인가. 기업들의 ‘2세 경영 리스크’가 잇따르고 있다. 창업주가 아들에게 경영권을 넘겨주자마자 속절없이 쓰러지곤 한다. 최근 몇 년간 잊을만하면 비슷한 사건이 반복되고 있다.



가업을 물려받은 ‘2세들의 경영능력’이 도마에 오르고 있다. 일부 기업들은 시장에서 이미 퇴출됐고, 일부 기업들은 주가가 급락하면서 주주들의 원성을 사고 있다. 경영 실패의 책임이 전적으로 이들에게 있다고는 할 수 없지만, 일부 기업은 젊은 경영진이 무리하게 외형을 키우다 무너진 사례인 것으로 추정된다.

물러나는 아버지
빗나간 바통터치

현대·기아차에 자동차 부품을 납품하는 협력업체 한일이화는 유양석 대표의 배임혐의로 상장폐지 기로에 놓여있다. 유 대표는 2010년 10월 중국에 설립한 우량계열사를 자신의 개인회사에 헐값에 넘기고 회사 이익을 빼돌린 혐의를 받고 있다.

배임금액은 1702억9155만원으로 자기자본대비 59.1%에 해당된다. 서울동부지검은 지난달 21일 유 대표를 불구속기소했고, 다음날 한일이화 주식은 거래 정지됐다.

‘의학박사’ 경력을 갖고 있던 유 대표는 지난 2009년 부친 유희춘 회장와 함께 대표이사 지위에 올랐다. 이후 4년간 함께 경영하다가 유 회장은 지난해 4월 은퇴했다.


국내 2위 벌크선사인 대한해운도 2세 경영인 체제 아래에서 위기를 맞고 있다. 이진방 회장이 이끄는 대한해운은 지난 2011년 초 법정관리를 신청한데 이어 자본 잠식으로 상장 폐기위기에 처했다.

현재 매각을 진행하고 있지만 난항을 겪고 있는 상황이다. 협상이 한차례 결렬된 후, 재협상 과정도 쉽지 않아 보인다. 사업보고서 제출기한인 1일까지 자본 전액 잠식이 해소됐다는 사실을 입증하지 못하면 상장폐지가 현실화된다.

대한해운은 이 회장의 아버지인 고 이맹기 회장이 창업한 회사로, 이 회장은 이 창업주가 작고한 이듬해인 2005년 5월 회장으로 취임했다. 창업주의 아들이지만 이 회장은 삼성에서 20년간 샐러리맨으로 지내며 삼성물산에서 부장을, 삼성코닝에서 이사 등을 역임했다.

이후 1992년 대한해운에 입사해 당시 매출 1조1000억원의 회사를 2008년에 3조3000억원까지 끌어올렸다. 그러나 금융위기 이후 직격탄을 맞으며 현 상황에 이르게 됐다. 이 회장은 아버지가 창업한 회사인 만큼 회생 의지가 남다른 것으로 전해진다.

창업 2세 재벌들 헛발질에 회사 벼랑 끝으로
한일이화·대한해운·쌍용건설 상장폐지 기로

또 다른 창업 2세 기업인 쌍용건설도 고사 직전이다. 불과 29세의 나이에 사장직에 올랐던 김석준 쌍용건설 회장은 워크아웃 당시 보유하고 있던 지분 대부분을 채권단에게 내놓고 사장 자리에 물러났다. 이후 전문경영인 신분으로 회사를 이끌며 재기에 몸부림쳤다. 

그러나 주택건설경기 침체란 파고를 넘지 못했다. 결국 쌍용건설은 지난 2월 말 두 번째 워크아웃을 신청하며 상장폐지 기로에 섰다. 최근 감자와 출자전환으로 급한 불은 껐지만, 정상적인 경영을 위해서는 1500억∼2000억원의 유동성 지원이 필요할 것으로 보고 있다.


한때 재계 6위를 기록하던 쌍용그룹은 고 김성곤 창업주가 작고한 이후 김석원-김석준-김석동 3형제가 나누어 경영해왔지만 모두 좌초됐다.

주력회사인 쌍용양회는 일본 태평양시멘트로 경영권이 넘어갔고, 쌍용차는 중국에 넘어갔다 다시 인도에 팔려갔다. 공적자금이 투입된 쌍용건설도 한국 자산관리공사(캠코)가 주인이고, 쌍용중공업은 STX그룹에, ㈜쌍용은 외국 자본에 넘어갔다. 쌍용이란 이름은 남았지만, 기업의 주인은 모두 바뀐 것이다. 현재 쌍용그룹의 2세 경영인 중에는 차남인 김 회장만이 경영 일선에 남아있다.

무리한 외형확장
날개 꺾인 2세들

이 외에도 2세 리스크는 최근 몇 년간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에는 전자재료업체 SSCP(구 삼성화학공업)가 오정현 대표이사 단독 경영을 시작한 지 2년여만에 상장 폐지됐다. 12억원의 어음을 막지 못해서다.

한때 홍콩 상장사를 자회사로 거느릴 정도로 우량기업으로 손꼽히던 SSCP가 12억원을 결제하지 못해 최종 부도를 맞자 업계는 충격에 빠졌다. 오 대표의 무리한 외형 확장이 아버지 회사를 망쳤다는 비난을 샀다.

1973년 삼성화학공업으로 출발한 SSCP는 설립초기 전자제품 코팅 소재를 시작으로 IT코팅소재, 디스플레이용 핵심소재로 사업을 확장해 왔다. 창업주 오주헌 회장의 아들로 2002년 대표이사에 오른 오 대표는 미국 코넬대에서 재료공학을 전공했다.

그는 취임 직후 중국 후이저우법인, 상하이법인을 설립했고, 톈진시에 5000평 규모의 공장을 신축했다. 2002년 710억원이던 매출은 10년 새 2.5배 가까이 늘었지만 지난 2010년 부채비율이 처음으로 100%를 넘어서는 등 재무상황은 악화일로를 걸어왔다. 상장폐지 등 사건이 불거지자 오 대표는 현재 해외에 체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SSCP에 앞서 상장폐지된 금강제강도 주력 계열사인 함양제강이 무너지면서 본사까지 여파가 밀려왔다. 함양제강의 경영을 맡은 것은 임윤용 금강제강 대표이사의 아들 임상문씨다. 1979년생인 임씨는 함양제강 외형을 무리하게 확장시키다가 사세가 급격히 기울었다. 신규 시설을 늘리는 방식으로 불황에 대처했던 것이다.

이 때문에 함양제강 2011년 매출액은 897억5800만원으로 전년(313억원)보다 3배 가까이 급증했으나 영업손실은 72억3800만원으로 전년의 2배였다.

2011년에는 중견 제약사 신풍제약이 대표이사의 회계처리 위반으로 2세 경영의 막을 내렸다. 장원준 부사장이 대표이사에 오른지 불과 2년 만이었다.

신풍제약은 1962년 설립된 의약품제조 회사로 관절기능개선제, 소염진통제, 항생제 등을 제조 판매하고 있다. 장 부사장은 이 회사를 창업한 장용택 회장의 아들로, 2009년 3월 대표이사에 올라 본격적인 ‘2세 경영’에 나섰다. 이후 어려운 제약 환경 속에서도 나름 경영 성과를 내는 듯 보였다.


2008년 1813억원이던 회사 매출은 장 부사장이 회사를 맡은 첫해 2000억원을 넘어섰고 2010년에는 2200억원대로 늘었다. 영업이익도 2008년 280억원에서 2010년 427억원으로 크게 증가했다.

하지만 이 실적 중 상당액이 분식으로 밝혀졌다. 증권선물거래위원회가 적발한 내용에 따르면 장 부사장은 2009년과 2010년 실적 중 의약품 판매대금을 판매촉진 리베이트로 사용한 사실을 회계처리하지 않아 107억원의 매출채권을 과대계상 했다.


SSCP·함양제강·신풍제약 대물림 직후 부도
경영수업 부족…체계적인 승계준비 성패 좌우

반면 휴폐업 등으로 회수가 불확실한 매출채권에 대한 대손충당금은 6억원 이상 과소계상 했다. 여기에 지분법 적용 투자주식을 비싸게 평가하고, 3개 해외 현지법인과 48억원 상당의 거래를 주석에 따로 기재하지 않기도 했다. 이에 따라 2009년 순이익은 당초 발표한 210억원이 아닌 188억원이었고, 자기자본도 2010년 분ㆍ반기 보고서에 100억원 넘게 과다하게 잡혔다.

증선위는 이와 같은 회계처리 오류에 고의성이 있다고 보고 신풍제약에 과징금 2600만원 가량을 부과하는 한편, 향후 2년 간 감사인을 지정함으로써 분식회계 재발을 차단했다. 동시에 장 부사장은 대표이사 직함을 뗐다. 그러나 그가 지분 17.91%를 보유한 최대주주인데다 아직 등기임원에서 물러난 것도 아니어서 향후 경영에 복귀할 가능성이 배제된 것은 아니다.

로열 패밀리의
유별난 자식사랑

이처럼 2세에 대한 ‘부의 승계’는 단순히 금융자산의 승계만을 통해 완성될 수 없다. 충분한 경영수업을 받지 않고서는 성공적인 승계가 어렵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BK경제연구소가 기업 경영자들을 대상으로 ‘성공적인 가업승계를 위한 후계자 교육기간’을 조사한 바에 따르면 5년 이상 준비 과정이 필요하다는 답이 60.9%로 가장 높게 나왔다. 그 다음은 3∼5년(32.8%), 1∼3년(4.7%), 1년 미만(1.6%) 순으로 나타났다. 결국 창업자가 현직에 있을 때 그 밑에서 철저하게 준비한 2세가 가업승계에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창업 2세들이 ‘로열 패밀리’라는 이유로 경영능력의 검증 없이 낙하산으로 바로 CEO가 된 경우 많은 문제점들이 드러나곤 한다”며 “회사의 비즈니스 모델이 아무리 좋아도 경영이 바로 서지 않는다면 기업은 서서히 쇠락해갈 수 있다. 가업승계를 위해서는 최소 10년 이상 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기업들은 체계적인 승계 준비를 하는 경우가 드물다. 중기중앙회가 기업을 대상으로 ‘가업승계 실태’를 조사한 바에 따르면 조사 대상의 31.5%만이 승계 준비를 제대로 하고 있다고 답했다. 준비 안 된 승계 작업은 언제든지 위기로 내몰릴 수 있다는 분석이다.

경영학과 한 교수는 “국내에서도 가업승계에 성공한 100년 이상 장수기업이 나올 수 있도록 전문가들로부터 체계적인 도움을 받는 등 후계자의 역량 강화가 필수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며 “오너가 된 이후에도 관계자들과의 충분한 의견 교환은 물론 모든 사안은 공식적 합의를 거친 후 결정해야 부작용을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국내 갑부들은
3대 못 넘긴다?

‘부자는 3대를 못간다’는 속담이 있다. 부모가 애써 일궈놓은 부를 자식들이 흥청망청 쓰다가 손자대에 가면 결국 망하게 된다는 뜻이다. 부를 물려줘도 그 중에 10%만 물려준 부를 유지하고 3대에 이르면 그 중에 1%만이 부를 유지한다는 통계 결과가 이를 증명한다.

2세 리스크가 최근까지도 잇따르고 있는 것을 보면 속담이 결코 옛 이야기만은 아닌 것이다. 실패를 맛본 2세들이 향후 경영인으로 재기하게 될지 혹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될지 업계 안팎의 시선이 모이고 있다.


김설아 기자 <sasa7088@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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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특집 대담> 정치 9단 김종인 대한민국을 묻다

[추석특집 대담] 정치 9단 김종인 대한민국을 묻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박희영 기자 = 국민의힘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은 더불어민주당의 검찰개혁에 대해 “검찰을 3개로 찢어놓는다고 해서, 검찰이 정상적으로 돌아갈 것이란 확신은 못하겠다”고 비판했다. 김 전 비대위원장은 국민의힘에 대해서도 “강경 보수로 회귀하면, 희망이 있다고 보이진 않는다”고 경고했다. 국민의힘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은 개혁신당 공천관리위원장을 끝으로 정치에 직접 개입하지 않고 있다. <일요시사>는 추석 연휴를 앞두고 김 전 비대위원장을 만나 그가 제시하는 정국 진단 결과와 향후 우리 정치가 나아가야 할 길을 들었다. 다음은 김 전 비대위원장과의 일문일답. -출범 100일을 넘긴 이재명 정부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100일 동안 별 탈 없이 무난하게 잘했다고 본다. 국민과 소통하려고 애를 많이 썼다. -추석을 앞두고 지급된 2차 민생회복 소비쿠폰에 대한 의견은? ▲민생 경제가 굉장히 어렵고, 우리나라의 총수요가 낮아졌다. 한국은행이 진단한 올해 성장률도 0.9%밖에 안 된다. 쿠폰을 풀면, 약간의 소비 촉진 효과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경제가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기엔 부족하다.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정상회담은 겉보기엔 훈훈했다. 하지만 미국 정부의 3500억달러 투자 펀드 조성 요구와 노동자 317명 추방 등 사태와 맞물려 이 대통령에 대한 비판 여론이 불거졌다. ▲우리 경제 부처 장관들이 미국 월가를 이해하지 못한 채 막연하게 생각한 것 같다. 그래서 “미국의 요구는 보증·대출을 거쳐 이행하면 될 것”이라고 이해한 것 같다. 근본적인 시각 차이 때문에 협상이 타결되지 못했다. 그런데 국민에겐 마치 타결된 것 같은 인상을 줬다. 한 달도 안 돼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에 국민은 의아하게 생각할 수밖에 없다. -트럼프 대통령과 함께하는 미국의 MAGA 진영은 우리나라 일각의 부정선거론을 지지하면서 “한국이 공산주의에 진입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어떻게 보는가? ▲그들은 미국이 어떻게 위대한 나라가 됐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트럼프의 MAGA 프로젝트는 성공하기 힘들다고 생각한다. 우리와도 관계가 없다. “MAGA 진영이 우리 정치에 개입할 것”이란 믿음은 국내 보수 진영의 희망 사항일 뿐이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검찰 해체를 서둘러 마무리하려고 한다. 민주당이 새로 구상하는 검찰 체계에 대한 평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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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당은 민주당 내부에서도 받아들일 의사가 있어야 진행될 수 있다. 자신들에게 미칠 영향을 생각하면서 합의점에 도달하면 합당 여부를 결정할 것이다. “대통령 있는데 당대표가 어떻게 의사 관철?” “장동혁은 대권 욕심 갖고 계속 변화할 것”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이 이끌던 국민의당과 혁신당은 총선을 치르면서 호남에서 선전해 존재감을 드러냈다. 내년 지방선거에서 호남 민심이 어떤 선택을 할 거라고 보나? ▲두고 봐야 안다. 호남 민심은 제19대 대선에선 안 의원이 아니라 문재인 전 대통령을 선택했다. 호남 유권자들은 상당히 전략적으로 투표한다. 그들은 정권 재창출이 가능한 후보에게 표를 몰아준다. 그러니 선거를 치러봐야 알 수 있다. 지금은 뭐라고 얘기하기 어렵다. -장 대표가 취임하자, 강경 보수 유튜버들은 “군소 보수 정당에 지방자치단체장 30석을 내놓으라”고 요구하고 있다. “국민의힘과 강경 보수 유튜버들이 너무 밀착한다”는 일각의 주장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는가? ▲국민의힘이 계속 지금과 같은 자세를 유지하면, 희망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 국민의힘은 지난해 12월 비상계엄 사태와 윤석열 전 대통령 파면 이후 우리 정치 지형이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냉철하게 분석해야 한다. 변화가 있어야 국민의 지지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요즘처럼 강경 보수로 회귀하면, 희망이 있다고 보이진 않는다. -장 대표는 강경 보수와의 밀착과 중도층 공략 사이에서 계속 의견이 바뀐다. ▲장 대표에게도 정치적 목표가 있을 텐데 그는 목표 달성을 위해 많은 변화를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강경 보수의 지원을 받아 당 대표가 됐지만, 자신의 정치적 지향점을 어떻게 결정할지 잘 생각해 봐야 한다. 만약 “지나치게 강경 보수와 밀착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면, 어느 정도는 그들과 선을 그을 필요가 있다. 하지만 선을 긋는 데 한계가 있을 것이다. 이를 극복하지 못하면, 그에게는 크게 정치적 기대를 하기 힘들다고 본다.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는 “장 대표가 용꿈을 꾸고 있다”고 평가한다. ▲장 대표도 어차피 당 대표가 됐으니, 대권 욕심을 가질 것이다. 정치인은 언제나 시대 변화에 적응해야 한다. 장 대표 스스로 “변화하는 능력이 있다”고 생각한다면, 계속 많이 변할 것이다.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는 장 대표가 당선되면서 위상이 많이 훼손됐다. 비상계엄 사태 이후 한 전 대표의 행보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국민의힘 당원들은 상당한 분노에 차 있었기 때문에 갑자기 강경해졌다. 세월이 흘러 당원들이 당을 위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알게 되면, 또 변할 수도 있다. 지금 상황만으로 판단하기엔 굉장히 이르다. 한 전 대표가 당시 여당 대표로서 비상계엄 선포 직후 반대 의견을 밝히면서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에 찬성한 것은 굉장히 용기 있는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그가 앞으로 어떻게 정치적으로 발전할지는 아직 모르겠다. 그래도 국민의힘에선 가장 올바른 판단을 했다고 본다. -장 대표가 한 전 대표에 대한 강경한 태도를 바꾸지 않고 있다. ▲장 대표로선 당연히 한 전 대표를 국민의힘에서 쫓아내고 싶을 것이다. 그런데 쫓아낼 수 있겠는가? 어떻게 쫓아내겠나? 오늘의 장 대표는 한 전 대표 덕분에 존재하는 것이다. -이 대표는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 오세훈 서울시장 등과 지방선거에서 연대할 가능성을 내비친다. ▲뻔한 사람들끼리 하는 거라서 큰 효과가 있을 것 같진 않다. 모두 국민의힘 사람이거나 국민의힘 출신인데 특별한 효과가 있겠는가? -진영 간 대결 구도가 성별·세대 갈등 구도로 번졌다. 정치권 원로로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건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시대·사회·경제 구조가 변하고, 새 기술이 도입되면 의견이 분분할 수밖에 없다. 국민 사이에 형성되는 ‘그룹’을 조화시킬 수 있는 정치적 능력이 필요하다. 이런 능력이 없는 사람은 정치적으로 성공할 수 없다. “이준석·안철수·오세훈? 뻔한 사람들” “국힘, 강경 보수로? 희망 보이지 않아” -일부 정치인은 갈등을 이용해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하면서 후원금을 벌고 있다. ▲큰 도움이 되진 않을 것이다. 갈등을 전체적으로 포괄한 후 최대공약수를 찾아 정치해야 한다. -과거 정치와 현재 정치의 가장 큰 변화와 차이점은? ▲못 살던 시절엔 먹고사는 게 가장 중요해서 경제가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 그런데 먹고사는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된 지금은 국민의 의식 구조가 과거와 다르다. 이 시대의 젊은 세대는 우리 국민 중 성숙도가 가장 높다. 정보를 활용할 수 있는 능력도 가장 좋다. 이들은 공정하지 못하고, 불평등하며, 민주적이지 않은 것에 크게 저항한다. 세대별로 약간의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누군가는 이를 두고 “극우화됐다”고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된다. -4050 남성이 2030 남성에게 가장 불만을 품는 부분은 “너희는 왜 국민의힘을 지지하면서 보수화되느냐”는 것이다. ▲2030 남성은 국민의힘을 지지하는 게 아니다. 최근 국민의힘은 장외 집회를 하고 있는데, 이들은 이런 걸 별로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이들은 너무 소란을 피우는 것 자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흔히들 “장 자크 루소가 얘기하는 계몽주의가 프랑스 대혁명을 낳았다”고 한다. 그런데 그 계몽주의가 뭔가? 성숙지 못한 국민을 성숙하게 만들어서 사회를 변화시킨다는 것이다. 우리 국민의 성숙도는 매우 높아졌다. 이 때문에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도 실패했다. 국민의 의식 수준이 높아지면, 정치가 이를 따라가야 하는데, 접근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 -정계의 킹메이커로 알려졌다. 대통령의 가장 중요한 덕목은 무엇인가? ▲대통령은 정직해야 한다. 시대 변화에 민감하게 적응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 대통령들이 모두 실패한 원인은 너무 탐욕스러웠고, 시대 변화를 제대로 못 따라갔다는 것이었다. -최근 한국 정치·사회에서 작게나마 희망을 봤거나 “아직은 희망이 있다”고 생각하거나 그 반대가 된 일이 있다면? ▲우리나라의 제일 시급한 과제는 아주 극단적인 양극화 현상이다. 이를 완화하지 않으면, 한국 정치는 국민통합을 이룰 수 없다. 우리는 초고령화 사회로 가고 있고, 출산율은 매우 낮다. 경제의 역동성이 거의 없어지고 있다. 정치인이 말로만 소통·통합을 외친들 아무 소용이 없다. -추석 연휴를 앞둔 <일요시사> 독자에게 남길 덕담 한마디가 있다면? ▲대통령을 선출하는 기준이 여론조사에 휩쓸리는 식으로 정해지면, 문제가 복잡해진다. 윤 전 대통령도 그렇게 대통령에 당선됐다. 오랫동안 검사였던 사람이 지도자가 된 사례가 세계적으로 별로 없다. 이들은 남의 부정적인 측면만 따지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창의적·긍정적 역할을 하기 힘든 사람들이다. 제가 그를 호의적으로 봤던 것도 큰 잘못이었다. 당시 국민의힘엔 대통령감이 없었다. 그래서 저는 윤 전 대통령의 여론조사 지지율이 높은 것을 일컬어 “별의 순간을 잡았다”고 말했다. 결국 윤 전 대통령은 제가 우려했던 행동을 했다. 저는 이승만 전 대통령 외엔 모든 대통령을 만나봤다. 직접 자문도 했고, 대통령 선거에 참여한 적도 있다. 이 경험을 토대로 <왜 대통령은 실패하는가>라는 책도 출간했다. 이들이 실패한 원인은 초심을 관철하지 못했단 것이었다. 박근혜·윤석열 전 대통령이 파면된 이유를 생각해야 한다. 이미 우리나라에선 오래전에 보수·진보가 사라졌다. 지난 1997년 김대중 전 대통령이 당선됐던 제15대 대선도 보수·진보의 싸움이 아니었다. 모두 보수였다. 1980년대 운동권 출신들은 정치권에 진출한 후 스스로 대단한 진보를 자처했다. 그런데 이들은 진보의 뜻도 모른다. 이들은 정권을 네 번 잡을 동안 양극화 하나도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이들이 무슨 진보 정권인가? 국민이 정치 상황을 냉철하게 관찰하시고 올바른 선택을 하는 자세를 갖추셔야 한다. 대통령·국회의원도 결국 국민이 선출한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길 바란다. <ctzxp@ilyosisa.co.kr>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