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한 ‘롯데인천개발’ 실체 추적

  • 김설아 sasa7088@ilyosisa.co.kr
  • 등록 2013.02.25 16:3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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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점포 쟁탈전 돌격대…“누구냐 넌?”

[일요시사=경제1팀] 인천터미널을 품은 ‘롯데인천개발’이 수상하다. 신세계와 부지 쟁탈전을 두고 팽팽한 법적 공방을 이어가던 와중에도 주인 행세를 하며 인수를 서두른 움직임 때문이다. 특히 법원 판결을 무시하고 사업이 강행된 배경에 의혹이 제기된다. 신세계는 인천시가 롯데에 준 특혜라며 법원에서 뒤집기를 시도할 전망이다. 롯데의 ‘황금점포 쟁탈전’. 그 이면을 들여다봤다. 



롯데가 지난달 30일 신세계를 제치고 인천 터미널 부지에 대한 매매계약을 체결했다. 이 부지를 매입키로 한 정식회사 명칭은 롯데인천개발주식회사다. 이 회사는 인천종합터미널 부지의 복합개발을 목적으로 설립된 일종의 ‘특수목적회사(SPC)’다. 신세계와 인천시간 법정 공방이 한창이던 지난해 12월18일 설립됐다. 최초 자본금은 5000만원이다.

인천 ‘노른자 땅’
이미 떼어 놓은 당상?

주목되는 것은 이 회사의 사업 목적이다. 설립 당시만 해도 프로젝트 성격의 일시적 목적과 맞는 ‘개발’업무이었지만 20여일 뒤 무려 50여 가지의 사업 목적이 등장했다.

법인등기부 확인 결과, 롯데인천개발(주)은 최초 부동산 매매·임대업, 건축물 건설·분양·임대 업 및 관련 컨설팅업 등을 주 사업목적으로 등록했다가 지난달 9일 이를 모두 변경했다. 그리고 이틀 뒤인 11일 백화점사업·신용카드업·영화상영업·여행업·신재생 에너지 발전업·태양광 발전업·주유소업·주차장업·화물자동차터미널사업·부동산 개발 및 투자업 등 51가지의 새로운 사업목적을 등록했다.

개발 회사의 목적이라고 보기에는 아리송한 목적이 다수 등장한 것이다. 이는 애당초 롯데인천개발이 인수를 지레 짐작하고 터미널 부지 위에 있는 신세계 백화점 인천점 사업장 들을 사업목적에 반영한 것으로 풀이된다. 현재 인천터미널 부지 위에는 신세계백화점, 영화관, 터미널, 주유소 등의 사업체가 있다.


인천터미널 인수강행 선봉…설립 두고 궁금증 증폭
법원 ‘금지’판결 직후 증자에 사업목적 변경까지

문제는 자본금 변경일과 사업목적 변경 일자다. 롯데인천개발이 지난해 28일 자본금을 5000만원에서 10억 원으로 늘리는 변경 등기를 완료한 시점과, 사업 운영 목적을 변경한 날은 인천시와 롯데쇼핑이 맺은 인천터미널 매각 투자약정이 무효화된 시점이다. 

인천시는 지난해 9월 인천터미널을 롯데쇼핑에 넘긴다는 내용의 투자 약정을 체결했고, 신세계는 다음 달 부동산 매각 절차 중단을 위한 가처분 신청을 냈다.

첫 번째 가처분신청은 기각 결정이 내려졌고 인천지방법원은 두 번째 가처분신청에서 신세계의 손을 들어줬다. 인천시가 롯데쇼핑에 인천터미널을 수의로 매각하지 말라는 판결이었다.

하지만 롯데는 이 결정을 무시하고, 자본금을 늘리고 사업 목적을 변경하는 등 인수 추진을 위한 절차를 밟았던 것이다. 부동산 매매 거래 완료를 자신하는 듯 말이다.

무늬만 외투기업?
실질적 입김은 롯데

롯데인천개발과 관련된 또 다른 논란은 수의계약 타당성 여부와 외국인투자기업의 적절성 여부다. 이번 인수를 강행한 롯데인천개발은 사실상 수의계약 형식으로 터미널 부지 사업권을 따냈다. 이 같은 딜이 가능한데는 롯데인천개발이 외국인 투자기업으로 분류돼 있었기 때문이다.


외국인투자촉진법에 따르면 국내 기업 총 자본금 중 최소 지분율이 10% 이상 되어야 하고 투자액도 1억원 이상 이어야 외투기업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 현행 국공유재산(인천종합터미널 부지 및 건물)을 매각할 때는 경쟁 입찰로 이뤄져야 하지만, 외투기업이 되면 관련 법령의 혜택으로 부동산을 수의계약으로 쉽게 취득할 수 있다.

롯데인천개발은 지난해 말 해외 페이퍼컴퍼니 1곳으로부터 일부 출자 받아 수의 계약이 가능한 외국인 투자기업 등록을 마쳤다. 이후 해외기업 한 곳으로부터 추가 투자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이번 수의계약이 가능해졌다.

문제는 롯데인천개발이 투자를 받은 해외기업이 롯데그룹으로부터 자금을 지원 받아, 외국인투자기업으로 급조했을 가능성이다. 외국인투자기업 등록 절차상으로는 자본의 최종 국적을 확인하기 불가능하다.

예를 들면 국내기업이 해외에 페이퍼컴퍼니를 만들고 그것을 통해 국내에 다시 투자 할 경우도 외국인투자기업으로 등록될 수 있다. 만약 롯데인천개발에 국내자본이 투입된 것이 확인된다면 이번 수의계약 자체가 무효화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외투기업임에도 롯데인천개발의 사내이사가 모두 롯데그룹 기존 임원들로 채워져 있다는 것도 논란거리다. 롯데인천개발 등기부 등본에는 김현수 롯데쇼핑 재무부문장이 대표이사로 등재돼 있고, 이밖에 명노훈 호텔롯데 경영지원부문장과 석희철 롯데건설 건축사업 본부장이 사내 이사로, 이갑 롯데쇼핑 마케팅 부문장은 감사로 함께 올라가 있다. 반면 외국인은 실질적인 회사 운영에 참여하지 않고 있다.

매각방식 돌연 변경에 롯데·인천 밀월설 ‘솔솔’
부지인수 위해 외투기업 위장 지적도…3월내 결론

이를 두고 업계 관계자는 “결국 롯데인천개발은 최소한의 특혜를 얻어내기 위해 외국인 자본만 형식적으로 끌어들인 채, 실질적인 입김은 롯데가 행사하는 이상한 외투기업이라는 지적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며 “어떻게 해서든 알짜 땅을 따내겠다는 신동빈 회장의 고집과 롯데그룹의 꼼수가 만들어 낸 회사가 롯데인천개발 아니겠냐”고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았다.

송영길-롯데
‘붉은’커넥션?

인천시와 롯데, 양측 사이에 무언가 밀약이 있지 않고서는 나타날 수 없는 현상이라는 게 재계의 전반적인 시각이다. 특히 변호사 출신인 송영길 인천 시장이 법원의 결정을 무시하면서까지 조급하게 롯데와의 계약을 강행한데 대해 뒷말이 무성하게 나오고 있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인천터미널 매각 방식이 공개 입찰에서 수의계약으로 바뀐 것부터가 미스터리”라며 “토지거래 방식의 급작스러운 변화는 뒤로 모종의 거래가 오고갔다는 것 아니겠냐”고 반문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심각한 재정난에 봉착한 인천시가 자금력이 충분한 롯데의 입김으로 매각방식을 바꾸고, 당장의 돈이 궁한 인천시 입장에서는 마다하기 힘들었을 것”이라며 “이미 신세계가 2017년까지 장기 임대 계약을 맺고 백화점을 운영 중인데, 빅딜이 아니고서야 한 쪽에 일방적으로 유리하게 바꾸기는 힘들다”고 말했다.

유통 공룡들의
부지선점 전쟁


신세계 측도 이번 계약 강행이 차별과 롯데에 대한 특혜라고 주장하며 법적 공방을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지난 19일 3건의 가처분 신청 중 상대적으로 불필요한 ‘부동산 처분금지 가처분 신청’ 1건을 취하하면서 실제 매매계약 이행금지 가처분에 대한 본격적인 집중 공방을 예고했다.

신세계 측의 주장은 크게 3가지다. 인천시가 롯데와 매매계약을 체결하며 △공유재산 매각 때 2인 이상이 경쟁해야 한다는 지방계약법을 위반했고 △계약 상대방 선정과정에서 신세계를 배제한 채 롯데와만 협상을 진행해 수의계약 동등대우 원칙을 어겼고, △MOU 가처분신청 인용 결정에도 불구하고 본 계약을 강행, 법원의 판단을 무시했다는 점이다.

신세계 관계자는 “수의계약 대상자 선정절차 위반 등 (MOU) 가처분 인용 때 나온 법원의 지적사항을 모두 무시하고 본 계약 체결을 강행했다”며 “공정한 절차를 무시한 일방적인 계약자 선정은 특혜가 아닐 수 없다”고 강조했다.

신세계는 또 “롯데와 계약 이전에 신세계 최고경영층이 9500억원의 금액을 제시했음에도 계약을 강행한 것은 인천시가 높은 금액에 터미널을 매각해야 한다고 한 기존의 주장과 상반되는 것”이라며 다시 한 번 롯데와 인천시의 특혜의혹을 제기했다.

그러나 인천시는 “그동안 명확한 금액을 제시하지 않던 신세계 측은 롯데와 9000억 원에 매각한다는 통보 이후 9500억 원에 매수할 의사가 있다고 처음 밝혔으며 앞서 구체적인 금액을 제시한 바가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터미널을 둘러싼 인천시와 롯데, 신세계간의 줄다리기가 아직도 팽팽한 가운데 매각은 다음달 말쯤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재판부는 오는 28일 2차 심문을 속개할 예정이며 3월 말 이전에 이번 사건에 대한 결정을 내릴 예정이다. 인천 ‘노른자위’ 싸움의 무게추는 과연 어느 쪽으로 기울여질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김설아 기자 <sasa7088@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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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