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재계는 지금 '차남 전성시대'

  • 김설아 sasa7088@ilyosisa.co.kr
  • 등록 2013.01.11 10:3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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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보다 잘나가는 ‘아우 회장’ 뜬다

[일요시사=경제1팀] 재벌가에선 장남이 곧 기업을 잇는다는 장자계승 공식이 있었다. 세월이 지나 조금 사정이 나아지긴 했지만 차남들은 늘 형보다 못한 2위 자리에 만족해야했다. 그러나 재계는 지금 ‘차남 전성시대’다. 누구의 동생, 누구의 둘째아들이라는 ‘꼬리표’에서 벗어나 경영수완을 발휘하며 경영전면에 나선 ‘실세 차남’들이 속속 배출되고 있다.

 

 

‘차남 경영시대’를 써가는 대표적인 인물은 서경배 아모레퍼시픽그룹 회장이다. 서 회장은 새해 첫날 사장에서 회장으로 전격 승진하면서 오는 2020년까지 세계 7대 화장품 회사로 발돋움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고 서성환 창업주의 차남인 서 회장은 경성고-연세대 경영학과, 코넬대학교 경영대학원을 마친 수제로 알려져 있다. 그는 1987년 아모레퍼시픽그룹의 전신인 태평양화학에 입사하면서 2세 경영수업을 받기 시작했다.

탁월한 성과로
경영능력 입증

서 회장의 경영능력은 1992년 경영상태가 급격히 나빠지고 있던 태평양제약의 사장으로 취임하면서 빛을 발했다. 붙이는 관절염 치료제 ‘케토톱’을 개발해 흑자로 전환시키는 등 탁월한 능력을 발휘한 것.

이후 그는 1994년부터 3년 동안 태평양 기획조정실을 총괄하면서 체계적인 경영 시스템을 만드는 등 본격적으로 경영에 참여했다.

이 과정에서 부친으로부터 능력을 인정받은 서 회장은 30대 초반의 나이였던 1997년에 일찌감치 후계자로 지명돼 경영권을 넘겨받았다.


사장 취임 후 서 회장은 아모레퍼시픽을 세계로 뻗어 나가는 명품 기업으로 바꿔놓았다. 특히 설화수, 헤라, 라네즈, 아이오페, 마몽드 등 기존 제품을 잇달아 히트 브랜드로 변신시키며 업계의 부러움을 샀다.

이후 2002년 3월 글로벌기업으로서의 이미지 제고를 위해 영문 상호인 아모레퍼시픽 코퍼레이션을 처음 선보였고 2003년 1월 부친이 숙환으로 별세한 이후에는 자신만의 패러다임으로 회사를 이끌어 갔다.

그는 창업 정신을 계승하면서도, 기존의 보수적인 경영에서 벗 어나 능력급제 등 개혁정책을 펼치며 제2의 전성기를 열었다.

혁신은 곧 성과로 이어졌다. 서 회장은 사장 취임 후 12년 만인 2010년엔 회사 규모를 네 배로 키워냈다. 회사의 비약적인 성장과 함께 서 회장 자신도 지난해 말 자산 2조원 이상의 부자클럽에 이름을 올리는 경사를 맛봤다.

경영권 승계 ‘세컨드’바람…“내가 제일 잘나가”
형 그림자에 가려있다 뒤늦게 급부상 지휘봉 잡아

지난해 초 1조7950억원이었던 서 회장의 자산총액이 연말에 2조8380억원으로 58.1%나 증가한 것이다. 이에 따라 국내 상장 및 비상장 주식부자 100명 중 9위였던 서 회장의 순위는 1년 만에 4위로 껑충 뛰어 올랐다.

반면 동생보다 5년 먼저 회사에 입사해 후계 경영수업을 받던 장남 서영배 태평양개발 회장은 탁월한 경영성과를 낸 동생에게 후계자 자리를 빼앗긴 뒤 종합산업, 금속, 용기 등 기술 소재분야를 물려받았으나, 서 회장이 이끌고 있는 회사에 비해서는 그 규모가 너무 초라한 수준이다.


국내 재계 5위 규모인 롯데그룹의 후계자 역시 신격호 총괄회장의 차남 신동빈 회장이다. 신 회장은 신 총괄 회장의 두 번째 부인인 일본인 시게미쓰 하츠코 여사와의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는 일본 아오야마가쿠인대학 경제학부를 졸업한 뒤 미국 콜롬비아대에서 MBA를 마치고 1981년 일본 노무라증권에서 사회생활을 시작, 글로벌 감각을 키웠다.

롯데에 몸을 담기 시작한 것은 1988년 일본 롯데상사 입사 하면서 부터다. 2년 뒤 한국 롯데그룹에 합류해 호남석유화학 상무로 입사했고, 코리아세븐 전무를 거쳐 1997년 그룹 기획조정실 부회장으로 임명됐다.

신 회장은 이때부터 사실상 롯데그룹의 후계자로 자리를 굳혔다. 2004년 기획조정실이 정책본부로 격상됐고 신 회장이 본부장을 맡으며 실질적 사령탑으로 그룹 경영을 진두지휘해온 것이다.

신 회장은 노무라 증권에서 쌓은 국제 금융 감각을 바탕으로 공격적인 M&A를 단행하며 그룹의 외형 성장도 주도했다. 그의 공격적인 M&A는 국내에만 머물지 않고 중국과 인도네시아 대형마트 마크로, 벨기에 초콜릿 회사 길리안, 말레이시아 석유화학 기업 타이탄 등을 인수해 해외 시장을 지속적으로 개척해 나갔다.

롯데그룹은 나날이 덩치를 키우면서 2010년 사상 최대 규모인 61조원의 매출을 올렸고 매출 기준으로 삼성-현대기아차-SK-LG에 이어 국내 재계 5위 그룹의 자리를 확고히 굳혔다.

불리한 여건서
출발해 성공

이후 2011년 2월, 신 회장은 롯데그룹 정기 임원인사에서 회장으로 승진하면서 그룹의 적통을 이어 받았다.
이에 반해 신 총괄회장의 장남인 신동주 부회장은 한국롯데에 비해 규모가 10배 이상 작은 일본 롯데를 맡고 있다.

신 회장이 형을 제치고 한국롯데를 물려받을 수 있었던 배경은 그의 공격적인 경영스타일이 한 몫 한 것으로 알려졌다. 형인 신 부회장은 내성적인 성격에다 학자풍인 반면 신동빈 회장은 보다 공격적이고 적극적인 스타일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파리바게뜨로 유명한 SPC그룹 허영인 회장도 허창성 창업주의 차남이다. 삼립식품 창업주인 허창성 회장은 장남인 허영선씨에게 삼립식품을 물려주고, 차남 허 회장에게는 삼립식품의 자회사였던 샤니를 넘겨줬다.

당시 샤니는 삼립식품에 비해 회사 규모 등 모든 면에서 상대가 되지 않는 회사였다. 매출 규모도 삼립식품의 10%정도로 초라했다.

샤니를 물려받은 허 회장은 미국 대학 경영학과(MBA)를 포기하고 한우물만 파기 시작했다. 미국 제빵학교에서 빵과 과자에 대해 배웠고, 귀국 후 파리크라상과 파리바게뜨를 설립, 태극당과 고려당이 장악했던 한국 제빵시장에 파란을 일으켰다.


이후 허 회장은 손대는 브랜드마다 모두 1위로 만들어내는 능력으로 식품업계에서 ‘미다스의 손’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샤니를 모태로 성장한 허 회장호 SPC그룹은 2000년 매출액이 4800억원이었던 작은 기업에서 3조 원을 넘어서는 중견기업으로 성장했다. 현재 SPC그룹은 파리크라상, 파리바게뜨, 배스킨라빈스, 던킨도너츠, 빚은, 파스쿠찌 등 5000여개의 점포를 운영 중이다.

반면 삼립식품 본체를 넘겨받은 형 허씨는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리조트 사업에 크게 투자했다가 부도를 막지 못했다. 1997년 부도 후 5년여에 걸친 법정관리 기간에 마이너스 성장과 적자를 지속하던 삼립식품은 결국 동생 허 회장이 운영하던 샤니가 2002년 말 인수했다.

대권 받은 동생
‘형제의 난’도

국내 주류시장을 선도하고 있는 하이트-진로그룹의 경우도 박경복 조선맥주 창업주를 이어 차남인 박문덕 회장이 이끌고 있다. 박 회장은 만년 2위에 머물던 하이트맥주를 업계 1위로 올려 논 장본인이다.

1991년 박 회장이 회사 사장으로 취임할 당시만 해도 조선맥주는 시장점유율 20%, 부채비율 1600%로 회생가능성이 없는 부실회사였다. 그러나 박 회장은 사장 취임 2년 만에 회장에 오르며 하이트맥주를 개발, 시장에 선보였고 조선맥주를 완전히 변모시켰다.


그 결과 업계1위던 OB맥주를 밀어내고 선두 자리에 올라 지금까지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뿐만 아니라 박 회장은 2005년 소주 시장 1위 업체 진로를 인수하면서 소주와 맥주 시장 최강자 자리에 올라서게 됐다.

반면 박 회장의 형인 박문효 하이트산업 대표는 동생의 성공으로 덕을 본 케이스다. 하이트산업은 맥주병과 포장제조 등을 담당하고 있다.

고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의 동생인 고 정인영 창업주가 설립한 한라그룹 역시 차남인 정몽원 회장에게 경영권이 넘어갔다.

정 회장은 1979년 고려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뒤 곧바로 한라해운에 입사, 일찌감치 경영 수업을 쌓아온 인물이다. 그는 만도기계 차장, 한라공조 대표, 만도기계와 한라건설 대표이사 사장을 거치면서 1992년 그룹 부회장직에 올랐다.

그러나 당시 한라그룹의 전체 총괄 책임자는 형 정몽국 회장의 몫이었다. 1989년 부회장에 오른 뒤 한라중공업, 한라시멘트, 한라레미콘 등의 그룹 주요 계열사를 지휘해 정 회장이 그룹의 경영권을 승계할 것이라는 것에 이견이 없었다.

세대교체·위기극복 두 마리 토끼
경영능력 시험 통해 회사 대물림

그러나 1995년 3월 창업주는 돌연 정몽국 회장을 샌프란시스코 지사장으로 내보내고 정몽원 회장을 총괄 경영자로 새롭게 선임하면서 그간 그려온 후계구도를 뒤엎었다. 정 회장이  임원인사 및 경영상의 문제로 실점을 한 것이 창업주의 눈 밖에 난 원인이었다. 

장자 승계가 돌연 차남인 정 회장에게 돌아가자 형제간의 앙금은 소송으로 번졌다. 경영악화에 의해 한라시멘트 등 부도처리된 계열사를 정리하는 와중에 벌어진 일 때문이다.

형은 동생으로부터 한라시멘트 등 주식반환 소송을 제기하며 경영권 분쟁을 일으켰지만 2009년 9월 한라건설 주식을 전량 처분 하면서 일단락됐다.

이 밖에도 형을 제치고 그룹 대권을 차지한 재계 케이스는 무수히 많다. 우선 참치캔으로 잘 알려진 동원그룹의 경우 김재철 회장의 차남인 김남정 부사장이 동원엔터브라이즈를 이끌며 실질적인 식품분야 후계자로 낙점을 받은 상황이다.

반면 김 회장의 장남인 김남구씨는 그룹의 비주류인 금융분야를 물려받아 현재 한국투자금융지주 대표로 재직 중이다.

우루사로 유명한 대웅제약도 장남이 아닌 차남 윤재훈 부회장이 그룹 후계구도에서 유리한 위치에 올라 있다.

이 회사 창업주인 윤영환 회장이 장남에게는 대웅식품을 맡기고, 차남인 윤재훈 부회장에게는 그룹의 중추인 제약부문을 일임한 것이다. 반면 윤 회장의 삼남인 윤재승 부회장은 지주회사와 신규·해외사업을 담당하고 이다.

삼형제간 경영권 경쟁구도가 명확하게 드러난 효성그룹의 경우도 장남인 조현준 사장보다는 차남인 조현문 부사장이 더 많은 주목을 받고 있다.

조현준 사장은 미국 비자금 사건에 연루돼 세간의 질타를 받은 것은 물론 등기이사로 재직 중이던 진흥기업이 워크아웃에 처할 정도로 어려움을 겪었다. 또 6개의 IT기업을 엮어 만든 ‘갤럭시아그룹’도 지난해 수백억원의 적자를 내며 경영능력이 시험대에 올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반면 조현문 부사장은 그룹의 주력사업인 중공업 부문장으로 재직하며 지난해 말 눈에 띄는 경영성과를 일궈 냈다.

‘형이냐 아우냐’
그것이 문제로다

특히 그는 2006년부터 중공업 부문을 도맡아 오며 매년 괄목할 만한 성과를 이뤄냈는데, 중국 남통우방 변압기 기업 인수나 750kW 및 2MW 급 풍력발전시스템 국내 최초 인증 등은 업계에서도 인정하고 있다.

이와 관련 재계 관계자는 “섬유와 중공업, 산업자재 등 2세들이 각자 맡은 부문을 잘 이끌어가고 있지만 특히 조 부사장은 그룹 전체 실적 악화의 주요 원인이었던 중공업 부문의 흑자전환에 성공하면서 경영능력에 대한 재평가를 받을 가능성이 높아보인다”고 말했다.

김설아 기자 <sasa7088@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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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머외 쿠팡’ 막가는 싸가지 행보

‘검머외 쿠팡’ 막가는 싸가지 행보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고객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쿠팡의 태도가 도마 위에 올랐다. 현재까지 대응만 봐서는 국민은 물론, 정부와도 전면전을 벌일 기세다. 새어나간 정보의 범위와 규모가 ‘역대급’이라는 말이 나올 만큼 최악의 사태임에도 불구하고 쿠팡의 고개는 꺾일 줄 모르고 있다. 일각에서는 ‘뭘 믿고 저러나’ 소리가 나오는 중이다. 쿠팡의 고객 개인정보 유출 사건, 이른바 쿠팡 사태가 점입가경이다. 사태가 일어난 지 한 달이 지났지만 수습은커녕 국민의 화만 돋우고 있다. 쿠팡의 대응 태도가 미지근한 수준을 넘어 뻔뻔한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 김범석 의장은 모습을 비추지 않고 보상안은 꼼수로 가득하다. 국민을 조롱하는 게 아니냐는 말이 나올 정도다. 한 달 만에 고개 숙여 지난해 11월 말 3370만명에 이르는 쿠팡 고객의 개인정보가 ‘탈탈’ 털렸다. 앞서 쿠팡은 4500여건의 고객 정보가 유출됐다고 정부 당국에 신고했지만 2주 만에 그 수치는 7500배까지 늘어났다. 전 국민의 65% 수준이며 지난해 4월 SKT 개인정보 유출 사태 범위(2300만명)를 훌쩍 넘는 사태였다. 쿠팡은 이커머스 시장에서 독점적 지위를 갖고 있다. 대형마트 등이 규제에 막혀 뒷걸음질 칠 때 쿠팡은 로켓배송으로 시장을 싹쓸이했다. 전날 저녁에 주문해도 새벽이면 물건이 문 앞에 와 있는 총알 배송에 소비자는 쿠팡으로 몰렸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비판을 받던 물류센터는 거점 역할을 하고 있다. 이번 사태는 아이러니하게도 쿠팡이 국민의 실생활에 얼마나 스며들어있는지를 바로 보여줬다. 쿠팡 사태가 터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글로벌 투자은행 JP모건은 “쿠팡이 경쟁자가 없는 시장 지위를 누리고 있고 한국 고객이 데이터 유출에 덜 민감해 보인다”며 “잠재적 고객의 이탈은 제한적일 것”이라는 내용의 보고서를 내놨다. 그래서일까? 쿠팡은 역대 최악의 정보 유출 사태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고도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않고 있다. 심지어 대통령이 언급하고 정부 차원의 TF가 꾸려졌는데도 불구하고 오히려 ‘힘겨루기’를 하는 태도를 보이는 중이다. 최근에는 정부의 반박에도 자체 조사 결과를 고집하는 등 이해할 수 없는 행보로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쿠팡은 지난달 25일 ‘정보 유출자는 3300만개 계정에 접근했으나 실제 저장한 정보는 3000여개에 불과하며 제3자 유출 정황은 없는 등 피해가 미미하다’는 내용의 자체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그러면서 “(유출자는)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언론 보도를 접한 이후 저장했던 정보를 모두 삭제하고 범죄에 사용한 노트북을 파손해 하천에 던졌다”고 주장했다. 쿠팡은 “잠수부들이 벽돌에 담긴 쿠팡 가방에 든 노트북을 하천에서 회수했고 유출자가 클라우드 계정에 등록한 일련번호와 해당 노트북의 일련번호가 일치하는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어 “범행에 사용된 PC 와 노트북 등 모든 장치를 회수해 안전하게 확보했고 글로벌 보안업체들의 조사 결과도 진술 내용과 같았다”고 설명했다. 국내에서 매출 90% 나오는데 정보 유출 태도·대응 낙제점 쿠팡이 발표한 대로라면 고객 정보 유출 피해 규모는 기하급수적으로 줄어든다. 또 유출자와 접촉해 장치를 확보했으니 추가 피해는 없다. 전체적으로 사건이 축소되는 것이다. 쿠팡의 발표에 정부는 강하게 반발했다. 쿠팡의 조사 내용은 사전에 정부와 어떤 논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진행됐다는 설명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부)는 “정보 유출 종류와 규모, 경위 등은 민관합동조사단이 조사 중인 사안”이라며 “쿠팡이 발표한 내용은 조사단에 의해 확인된 바 없다”고 밝혔다.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과도 “쿠팡 측이 제출한 진술서와 노트북 등 증거물을 분석 중”이라며 “사실관계를 면밀하게 확인하겠다”고 했다. 논란이 계속되자 쿠팡은 정부의 지시를 받아 조사를 진행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경찰은 사전 협의가 없었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사실관계가 엇갈리고 있는 것이다. 쿠팡은 지난달 26일 내놓은 입장문에서 “정부의 지시에 따라 수주간 진행한 조사였다”고 선을 그었다. 같은 달 9일 정부가 쿠팡 측에 유출자와 접촉할 것을 제안했고 14일 쿠팡은 유출자를 처음 만난 뒤 해당 사실을 정부에 보고했으며 16일에는 정부 지시에 따라 유출자의 데스크톱과 하드드라이브를 정부에 제공했다는 게 쿠팡 측 주장이다. 하지만 국가정보원(이하 국정원)도 “쿠팡의 입장문 형식의 보도자료에서 정부와 협력했다는 내용 중 일부 국정원으로 추정되는 부분도 사실과 다르거나 왜곡된 부분이 있다”고 반박했다. 쿠팡이 자체 조사와 관련해 정부와 사실 공방을 벌이고 있는 와중에 김범석 쿠팡 의장이 사건 발생 한 달여 만에 사과했다. 그동안 박대준 전 대표가 청문회 등에서 뭇매를 맞고 있는 동안에도 김 의장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랬던 그가 정부의 압박이 거세지자 처음으로 입을 연 것이다. 5만원 상당 속사정은? 김 의장은 지난달 28일 “쿠팡의 창업자이자 이사회 의장으로서, 쿠팡 전체 임직원을 대표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이어 “저희의 책임으로 발생한 이번 데이터 유출로 인해 많은 분께서 자신의 개인정보가 안전하지 않다는 두려움과 불안을 느꼈고 사고 초기부터 명확하게 직접적으로 소통하지 못한 점으로 인해 큰 좌절감과 실망을 안겨 드렸다”며 “사고 직후 미흡했던 초기 대응과 소통 부족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김 의장은 한 달 만에야 입을 연 부분에 대해 “무엇보다 제 사과가 늦었다”면서 “모든 사실이 확인된 이후에 공개적으로 소통하고 사과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판단했다. 돌이켜보면 이는 잘못된 판단”이라고 고개를 숙였다. 비판과 질책을 겸허히 받아들인다고도 했다. 하지만 자체 조사 논란에 대해서는 기존 입장을 고수했다. 김 의장은 “쿠팡은 조사 초기부터 정부에 전면적으로 협력해 왔다”며 “일련의 과정에서 많은 오정보가 확산하는 상황에서도 정부의 ‘기밀 유지’ 요청을 엄격히 준수했다”고 주장했다. 김 의장의 사과는 국회 6개 상임위원회가 참여하는 대규모 연석 청문회를 이틀 앞두고 나왔다. 정부가 범부처 TF를 과기부 총리 산하로 확대하고 다각도로 압수수색과 조사를 진행하는 등 대응 수위를 높이는 상황에 압박을 느꼈을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그러나 사과와는 별개로 김 의장은 청문회에 불출석하겠다고 밝혔다. 김 의장뿐만 아니라 동생인 김유석 쿠팡 부사장, 강한승 전 쿠팡 대표 등이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하면서 쿠팡에 대한 부정적 여론에 기름을 부었다. 여기에 쿠팡이 내놓은 보상안도 도마 위에 올랐다. 쿠팡은 지난달 29일 고객 정보 유출 사태와 관련해 총 1조6850억원 규모의 보상안을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전체적으로 보면 1인당 5만원 상당이다. 하지만 세부적으로 뜯어보면 쿠팡의 ‘꼼수’가 보인다. 청문회는 나 몰라라 보상안은 ▲쿠팡 전 상품 구매 이용권 5000원 ▲쿠팡이츠 5000원 ▲쿠팡트래블 2만원 ▲명품 플랫폼 알럭스 2만원 등으로 구성됐다. 소비자들은 보상금의 상당 부분이 쿠팡트래블과 알럭스 등 평소 이용 빈도가 낮은 서비스 이용권 위주로 구성된 점을 지적했다. 실제 이번 보상안을 통해 쿠팡트래블과 알럭스를 처음 알게 됐다는 소비자도 있다. 시민단체도 쿠팡의 보상안에 반발했다. 참여연대는 “1인당 5만원 보상이라고 했지만 현금이 아닌 구매 이용권으로 사실상 강제 소비를 유도하는 방식”이라며 “보상이 아니라 매출 확대를 위한 마케팅에 불과하다”는 내용의 논평을 발표했다. 쿠팡의 행보는 사사건건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국민을 조롱하고 정부를 기만하는 게 아니냐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쿠팡이 미국 시장에 상장한 기업이지만 매출 대부분을 우리나라에서 벌어들이는 상황인데도 이 같은 태도를 보이는 것에 분노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회원 탈퇴, 보상안 거부, 집단소송 참여 움직임이 거세지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심지어 이재명 대통령도 쿠팡 사태에 대해 여러 차례 언급했다. 이 대통령은 쿠팡 사태가 일어나고 사흘 뒤인 지난달 2일 “쿠팡 때문에 국민의 걱정이 많다”면서 “사고 원인을 규명하고 엄중하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러면서 “관계부처는 해외 사례를 참고해 과징금을 강화하고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도 현실화하는 등 실질적인 실효적 대책에 나서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뒤늦은 사과·꼼수 보상안 도마 위에 이래서 정치권 인사 영입했나? 의혹 12일에도 개인정보 유출 사고가 반복되는 것에 대해 “경제 제재가 너무 약해서 규정 위반을 밥 먹듯이 한다”며 “앞으로는 규정을 위반해 국민에게 피해를 주면 엄청난 경제 제재를 당해서 ‘회사가 망한다’는 생각이 들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규정을 위반하면 난리가 나야 하는 것 아니냐”며 “그런데 위반해도 태도를 보면 ‘그래서 어쩔 건데’ 이런 느낌이 든다”고 지적했다. 정부도 쿠팡에 강력하게 경고하며 전방위 대응을 예고했다. 실제로 같은 달 29일, 배경훈 부총리 겸 과기부 장관 주재로 ‘쿠팡 사태 범정부TF’ 회의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과기부와 경찰청, 개인정보위원회, 금융위원회 등은 역할을 분담해 신속한 조사를 진행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배 부총리는 “쿠팡이 국내 고객 정보 3000만건 이상을 유출한 것은 명백한 국내법 위반 사항으로 정부는 쿠팡이 관련 법령을 위반한 사실이 확인될 경우, 다른 기업과 동일하게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하게 조치할 것”이라고 말했다. 상황에 따라서는 영업정지 여부도 판단할 것으로 보인다. 사방에서 몰아치는 압박에도 쿠팡이 연달아 이상한 행보를 보이자 ‘믿는 구석’이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됐다. 그 정도로 쿠팡의 현재 대응 방식을 이해할 수 없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일각에서는 쿠팡이 미국 기업인 것에 주목하고 있다. 미국 증시가 쿠팡의 모든 결정에 가장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요소라는 것이다. 실제 쿠팡이 자체 조사 결과를 발표한 다음 날 미국 뉴욕 증시에서 쿠팡의 주가는 6% 급등했다. 국내에서는 쿠팡의 ‘셀프 조사’에 분통을 터트리고 있는데 미국 시장에는 호재로 작용한 것이다. 쿠팡이 정치·국회 인사를 대거 영입한 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게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정치권 인사를 영입해 쿠팡 관련 각종 논란을 틀어막고 있다는 의혹이다. 해당 의혹은 ‘강력 경고’ ‘전방위적 대응’ 등의 수사를 사용하고 있지만 실제 조사는 흐지부지될 것이라는 관측이 조심스럽게 나오는 배경으로도 꼽힌다. 변죽 울리다 무사통과? 실제 최근 원내대표직에서 사퇴한 더불어민주당 김병기 의원이 국정감사를 한 달여 앞둔 시점에 박대준 전 쿠팡 대표 및 대관 총괄과 오찬을 한 사실이 드러났다. 당시 쿠팡이 일용직 퇴직금 미지급 사건에서 검찰 외압 의혹, 물류센터·배송 기사의 과로 및 산재 사망 문제가 제기된 상황이었던 만큼 적절성 논란이 불거졌다. 김 의원은 그달 16일 자신의 SNS에 “공개 일정이고 적어도 5명이 (함께) 식사했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만남보다 대화의 내용이 중요한 것 아니냐? 참고로 지난해 7월16일 쿠팡 물류센터도 방문했었다”고 적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