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정치팀] 박근혜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가 대권을 잡았다. 이로써 임기 내내 수많은 의혹에 시달렸던 이명박 대통령이 사실상 면죄부를 받은 것 아니냐는 일각의 평가도 있다. 하지만 전두환 전 대통령을 백담사에 유폐시키고 청문회장에 세운 사람은 친구이자 후계자였던 노태우 전 대통령이었다. 이 대통령이 박 당선자를 바라보며 불안에 떠는 이유다. 따라서 <일요시사>는 임기 말 '망명설'까지 나도는 이 대통령의 뒤숭숭한 앞날을 예측해봤다.
지난 2009년 검찰의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의 정·관계 로비 수사로 이른바 '친노' 진영은 쑥대밭이 됐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친형을 비롯한 측근들은 줄줄이 구속됐고 수사망은 최종적으로 부인인 권양숙 여사와 자녀들에게까지 좁혀왔다. 또 검찰은 수사과정에서 피의사실을 과도하게 공표하며 노 전 대통령에게 극심한 모욕감을 안겼다. 이러한 전방위 압박을 견디다 못한 노 전 대통령은 결국 자살이라는 선택으로 비극적인 생을 마감한다.
시작은 창대
끝은 비굴
반면 수사과정에서 함께 의혹을 받은 현정부 쪽 인사 중 처벌된 이는 별로 없다. 추부길 전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이 구속되고 이명박 대통령의 친구인 천신일 세중나모회장이 불구속 기소된 것이 사실상 전부였다.
특정인을 겨냥해 가족의 계좌까지 샅샅이 뒤지는 저인망식 수사와 범죄자 진술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묻지마 수사, 정권교체 때마다 되풀이되는 '보복수사'의 전형이다. 이러한 보복수사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인물은 별로 없다. 심지어 김영삼 전 대통령 정권초기에는 검찰 내부에 아무런 내용도 없이 단지 이름만 적혀있는 살생부가 돌았다. 검찰은 얼마 후 명단에 적혀있던 이들 대부분을 구속하거나 기소하는데 성공했다. 전직 대통령의 운명은 전적으로 후임 대통령의 선택에 달렸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지난 19일 새 대통령 당선자가 결정됐다. 이와 함께 주목을 받는 것은 이명박 대통령의 앞날이다. 한 정치전문가는 "상황이 이러한데 하물며 임기 내내 각종 의혹에 시달렸던 이 대통령의 경우는 어떻겠는가? 박근혜 당선인의 선택에 따라 천당과 지옥을 오갈 수도 있다"고 예상했다.
이번 제18대 대선의 최종 승자인 박근혜 당선인은 그동안 이명박 정부와의 차별화를 시도하며 냉랭한 분위기를 줄곧 이어왔다. 이 대통령으로서는 직접적인 원한관계인 문재인 전 대선 후보를 피한 것만으로도 안도하고 있을지 모르지만 상황은 그리 녹록치 않다는 이야기가 심상찮게 나돌고 있다.
정권연장 성공했는데 벌벌 떠는 MB '왜?'
제 식구 감싸기? 이왕 할거라면 확실하게
이 대통령과 박 당선인의 악연은 지난 200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박 당선인은 그해 한나라당 대선 경선에 출마, 이명박 당시 후보에게 석패했다. 경선방식 등에 논란은 있었지만 박 당선인은 깨끗이 승복하고 선거에서 이 대통령을 적극 도왔다. 하지만 이듬해 제18대 총선 공천에서 친박계 의원들이 대거 탈락하면서 이 대통령과 박 당선인 간의 갈등이 본격화됐다.
이때 박 당선인은 "나도 속고, 국민도 속았다"는 유명한 말을 남긴다. 이후 박 당선인은 친박계 의원 60여 명의 복당을 관철시켰지만 이 대통령과는 끊임없이 대립하며 '여당 내 야당'이라는 별칭까지 얻었다. 아이러니 하게도 이러한 여당 내 야당 이미지는 박 당선인이 이번 대선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원인 중 하나가 됐다.
한편 대통령직에서 물러날 이 대통령을 기다리고 있는 의혹들은 무척 다양하다. 그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은 BBK주가조작 사건이다. BBK사건이란 김경준씨가 지난 1999년에 설립한 회사인 BBK를 통해 주가조작으로 수백억원의 차익을 남기고 이 돈을 횡령한 사건이라고 알려져 있다.
김경준씨는 이 대통령이 BBK의 실제 소유주이며 자신도 피해자라고 주장했으나 한국 검찰에서는 이 사건이 이 대통령과 관련이 없고 김씨와 그 가족들의 범행이라고 결론을 냈다.
BBK사건 의혹
드디어 풀리나?
수사과정에서는 2000년경 여러 언론이 이 대통령이 BBK를 창업했다는 인터뷰를 보도한 사실이 밝혀졌고, 이 대통령이 BBK의 대표이사로 적혀 있는 명함이 발견되기도 했으며, 한 강연회에서 이 대통령이 자신이 BBK를 설립했다고 말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동영상까지 공개됐지만 검찰은 객관적인 정황을 번복할 만한 증거는 안 된다며 무혐의로 수사를 마무리 했다.
지난 2007년 불거진 BBK와 관련한 논란은 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현재 복역 중인 김씨는 최근 자서전을 내고 이 대통령의 임기가 완료되면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진실들을 추가로 밝히겠다고 공언해놓은 상태다.
두 번째는 대선자금이다. 올 여름 이 대통령은 측근비리로 극심한 몸살을 앓았다. 임기 중 여섯 번째 대국민사과까지 해야 했다. '영일대군'이란 별칭을 얻으며 정권 내내 의혹을 몰고 다녔던 친형 이상득 전 의원과 '방통대군'으로 불리던 '멘토'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이 구속 기소됐다.
이 과정에서 대선자금과 관련한 의혹들이 터져 나왔다. 최 전 위원장은 법정에서 "(불법수수한 자금은) 대선여론조사비용으로 사용했다"며 대선자금으로 받았음을 시인했다가 번복했으며, 임석 솔로몬저축은행 회장은 이상득 전 의원에게 대선자금으로 쓰라며 돈을 줬다고 진술했다.
게다가 박희태 전 국회의장이 미디어법 날치기 통과를 앞두고 새누리당 국회의원들에게 나눠준 돈봉투도 대선 때 사용하고 남은 잔금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검찰은 시종일관 모르쇠로 일관하며 사건을 무마시키기에 급급했다.
이외에도 이 대통령은 병역비리, 부동산 투기 및 횡령, 민간인 불법사찰, 내곡동 사저 등 다양한 의혹에 시달리고 있다. 정치권 일각에서 이 대통령이 임기를 마치면 망명할 것이라는 과격한 예측까지도 난무하는 이유다.
정치전문가들은 박 당선인의 선택에 따라 이 대통령이 얼마든지 곤혹스러운 상황에 처할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하지만 정권차원에서의 의도적 보복수사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평가했다.
한 전문가는 "2008년 친박계에 대한 공천학살은 이미 지난 총선에서 친이계 공천학살로 충분히 보복한 것 아닌가? 박 당선인으로서는 이미 (정치보복에 대한) 필요성조차 못 느낄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박 당선인이 이 대통령의 의혹들과 관련한 새로운 증거나 증언 등이 나왔을 때 이를 정권차원에서 덮고 가느냐, 아니면 대대적인 수사를 통해 확실히 선을 긋고 가느냐하는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될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 있다.
덮고 갈까?
선 긋고 갈까?
특히 이 대통령의 의혹과 관련해 야권과 시민단체, 진보언론 등을 중심으로 한 수많은 인사들이 진실을 밝혀내겠다며 잔뜩 벼르고 있는 상황이다. 박 당선인은 예상보다 빨리 선택의 기로에 설 수도 있다.
일례로 노태우 전 대통령과 노무현 전 대통령 모두 자신들이 주도적으로 전 정권을 공격한 것은 아니었다. 그들에게 있어 전 정권은 정치적 선배이자 동반자적인 관계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론의 압박에 모두 무릎을 꿇었다. 이 대통령 역시 결코 안심할 수 없는 이유다.
박 당선인으로서는 이 대통령에 대한 수사를 지시할 경우 당내 친이세력의 반발을 불러올 수도 있다. 선거기간 내내 대통합을 부르짖었던 박 당선인으로서는 무척 부담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또 아무리 선 긋기에 나선다 해도 전 정권에 대한 비판여론이 박 당선인에게 옮겨 붙을 가능성도 충분하다. 결국엔 누워서 침 뱉기가 될 것이란 예상이다. 게다가 박 당선인은 선거과정에서 검찰을 개혁하겠다는 의지를 수차례 표명한 바 있다.
자칫 이 대통령에 대한 대대적인 수사는 구태의연한 보복수사로 비춰져 정치검찰 논란에 휘말리게 될 가능성까지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례 역시 정치적으로 큰 부담이다.
의혹 사실로 밝혀지면 최대 10년 구형 가능
박근혜 정권도 전직 대통령 잔혹사 이어갈까?
그렇다고 무작정 덮고 갈 수도 없는 노릇이다. 박 당선인 입장에서 이 대통령을 두둔하고 나서는 것이 더 큰 부담일 수도 있다는 관측이다.
이러한 경우엔 문재인 전 후보보다 박 당선인 측이 더 무섭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문 전 후보의 경우는 오히려 보복수사라는 비판을 의식해 이 대통령에 대한 수사에 소극적일 가능성도 있었다. 게다가 문 전 후보 주변에는 집권하더라도 정치보복의 악순환 고리를 끊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는 온건파도 많았다.
하지만 박 당선인의 경우는 자칫 제 식구 감싸기로 비춰질 우려가 있어 이왕 수사에 착수할 거라면 매우 강도 높은 수사를 펼칠 가능성이 크다고 전문가들은 진단한다.
박 당선인으로서는 자신의 정치쇄신 의지를 대내외에 천명할 좋은 기회가 될 수도 있다는 분석도 있다. 한 정치전문가는 “박 당선인으로서는 이 대통령과 지금까지 거리를 둬 온 만큼 퇴임한 이 대통령을 굳이 공격할 이유도 없지만 정치적 부담을 감수하고 감쌀 이유도 없다”고 분석했다.
또 문 전 후보의 경우는 이 대통령에 대한 수사가 영남권과 보수층의 반발을 불러올 가능성도 염두에 뒀을 것이란 분석이다. 김영삼 정권이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에게 각각 사형과 징역22년의 형을 내리고도 불과 2년 만에 국민 대화합을 명분으로 이들 모두를 특별사면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읍참마속?
토사구팽?
반면 영남권과 보수층의 두터운 지지를 바탕으로 대권을 잡은 박 당선인으로서는 이러한 점들에 구애받지 않고 비교적 자유로운 선택을 할 수 있다.
한편 법조계에서는 이 대통령과 관련한 의혹이 사실로 밝혀질 경우 최소 5년에서 10년 사이의 구형도 가능하다고 내다보고 있다. 박근혜 정권의 출범과 함께 전직 대통령 잔혹사가 또 다시 재현될까? 겨울바람이 유난히 차가운 요즘, 벼랑 끝에 선 듯한 이 대통령의 운명에 귀추가 주목된다.
김명일 기자 <mi737@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