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경제1팀] 부산 한 상조회사 회장의 기막힌 사기극이 호사가들의 입길에 오르내리고 있다. 그는 거액을 사기 친 뒤 거짓 사망신고를 했다. 주변인도 모자라 구청에 검찰과 법원까지 감쪽같이 속았다. 누구 하나 의심하지 않았던 그의 사기 행각은 금세 들통 났다. 이 과정에서 놀라운 비밀도 드러났다. 사법부를 농락하면서 완전범죄가 될 뻔 했던 사기극을 재구성해 봤다.
A회장은 지인 B사장과 함께 지난해 5월 부산의 한 상조회사를 헐값에 인수해 ○○○상조로 상호를 변경했다. 자본금은 3억원. A회장은 오너를, B사장은 대표이사를 맡았다. A회장은 지역 유력 회사 이사와 시민단체 이사장, 학부모 단체 회장 등의 명함을 들고 다니며 회원을 모집했다.
부산 유명인 동생
그 결과 ○○○상조는 1년 만에 회원이 3000명으로 늘어났다. 이들이 낸 돈은 수십억원에 달했다. 여기에 별도로 울산○○원 장례식장 매점 운영권, 편의점 유치, 취업 등 명목으로 지인 6명으로부터 7억원을 투자받았다.
남의 돈으로 '떵떵'거리던 A회장은 지난 7월 말 갑자기 회사 문을 닫고 잠적했다. 회원들은 처음엔 까맣게 몰랐다. A회장은 폐업 이후인 8월 말까지 회원들의 돈을 계속 인출해갔다. 뒤늦게 A회장의 야반도주 사실을 알게 된 회원들은 매월 부은 '피같은' 돈을 떼일 위기에 처하자 개인 투자자들과 함께 A회장과 B사장을 사기 혐의로 검찰에 고소했다.
한 피해자는 "기존 상조회사의 정보를 그대로 방치하는 등 공정위가 이미 폐업한 상조회사를 제대로 관리하지 않아 피해가 컸다"며 "상조회사가 폐업신고를 하지 않더라도 당국에서 먼저 신속히 파악해 소비자들에게 정확한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고 토로했다.
여기까지만 해도 A회장의 파렴치한 사기 행각은 충격적이다. 그런데 그 후에 더욱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
검찰은 즉각 수사에 착수했다. 일단 두 사람을 불구속 기소하고 재판을 받게 했다. 이게 실수라면 실수였다. 검찰은 지난달 28일 구형을 하지 못한 채 공소를 취하했고, 법원도 공소를 기각했다. A회장이 숨져 처벌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어찌된 일일까.
A회장 측 변호사는 A회장의 사망진단서, 주민등록 말소 서류 등을 검찰에 제출했다. 그러나 모두 위조였다. A회장이 실제로 숨진 게 아니라 위조한 사망진단서에 검찰과 법원이 속은 것이다.
A회장은 부산시내 모 병원에서 발급받은 자신의 모친 사망 진단서에서 이름과 주민등록번호, 사망 일시 등을 바꿔 지난달 21일 폐암으로 숨진 것으로 조작했다. 사망신고는 가족이나 동거인이 할 수 있다. 공범인 B사장은 이를 악용해 주소를 A회장의 집으로 옮긴 뒤 동거인 자격으로 관할 구청에 사망신고를 했다. 이틀 뒤 A회장 주민등록이 말소됐다.
A회장의 사망소식을 접한 피해자들은 '다단계 사기왕' 조희팔씨의 사망 조작 의혹이 떠올랐다.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멀쩡했던 사람이 어떻게 하루아침에 암으로 죽냐는 의문이 떠나지 않았다.
회원 상대 수십억 사기…회사 문 닫고 잠적
수사 시작되자 사망 조작 "검찰·법원 농락"
검찰과 법원이 사건에서 손을 떼자 피해자들이 직접 A회장을 찾아 나섰다. A회장이 칩거할 만한 장소를 모조리 뒤졌다. 피해자들은 A회장의 생존 단서를 그리 어렵지 않은 곳에서 찾아냈다. 사망진단서를 발급한 병원이었다. 병원에서 사망한 사람이 조씨의 모친이란 사실을 밝혀낸 것. 아울러 "A회장 이름으로 사망진단서가 발급된 게 없다"는 병원 측의 답변을 받았다.
A회장의 행적도 잡아냈다. 피해자들은 부산시내 한 대형마트에서 장을 보는 A회장을 목격해 덜미를 잡았다.
한 투자자는 "가짜 사망진단서에 관할 구청, 검찰과 법원까지 감쪽같이 속다니 정말 어처구니가 없다"며 "사망진단서를 보면 컴퓨터로 조작한 글자체가 원문과 확연히 다르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런데 단순히 서류만 보고 판단했다"고 지적했다.
피해자들은 A회장이 살아있다는 사실을 검찰에 알렸고, 검찰은 확인 작업을 거쳐 실수를 인정했다. A회장에게 농락당한 검찰은 지난달 30일 즉각 항소했다. 법원도 공소기각 결정을 취소한 뒤 재판을 계속 진행하기로 했다.
뿐만 아니다. 검찰은 기존 사기 혐의에 위조공문서행사와 공무집행방해 등 혐의를 추가해 A회장과 B사장을 구속 수사키로 했다. 그런데 이도 '뒷북'수사란 지적이다. 이미 A회장은 잠수를 탄 뒤였다. 검찰이 수배를 내리고 추적에 나섰지만 보름째 감감무소식이다.
눈에 띄는 점은 검찰 재수사와 피해자들의 추적 과정에서 그동안 베일에 싸여 있던 A회장 신상에 대한 비밀이 드러났다는 사실이다. A회장은 부산 유명 상조업체인 ○○상조 회장의 동생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가 평소 들고 다니던 명함 중엔 '○○상조 이사'도 끼어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 역시 사기였다. A회장은 임원으로 ○○상조 경영에 참여하지 않았다. 직원으로 근무한 적도 없다. 법인 등기부등본에 따르면 ○○상조 회장과 그의 또 다른 동생만 대표이사와 이사로 등재돼 있다. 계열사도 마찬가지다. A회장의 이름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상조 관계자는 "A회장은 회사와 아무런 관계가 없다. 오너와 어떤 관계인지도 확인할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제2의 조희팔'
일각에선 A회장과 ○○상조 회장이 배다른 이복형제란 주장도 있다. 부친이 같아 사실상 가족이지만 친모가 달라 평생 등을 지고 살았다는 것이다. ○○상조 회장은 A회장의 모친이 사망했을 때 조문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일부 피해자는 ○○상조에 피해보상을 요구했으나 일언지하에 거절당했다는 후문이다.
부산 상조업계에선 A회장이 '제2의 조희팔'로 불리고 있다. 사기 규모는 큰 차이가 나지만 회원을 등친 수법, 장기간 도피, 사망조작 등 일련의 과정이 거의 일치해서다. 그리고 여태 잡히지 않는 것까지 유사하다. 혹시 A회장의 롤모델이 조희팔은 아니었을까.
김성수 기자<kimss@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