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한 ‘코리안 특급’ 박찬호 야구인생 19년 희로애락

'IMF 시련' 국민에 희망을 던졌다

[일요시사=연예팀] ‘코리안 특급’ 박찬호가 전격 은퇴를 선언하며 프로인생을 마감했다. 1994년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 LA다저스에 진출해 아시아 선수로는 최다승인 124승을 기록한 박찬호. 이제 마운드 위에서 당당했던 그의 모습은 볼 수 없지만, IMF 금융위기 때 희망을 던진 박찬호의 불같은 강속구는 국민의 뇌리 속에 깊이 자리 잡고 있을 것이다.

대한민국 야구영웅 박찬호가 마운드를 떠난다. 단지 소속팀을 이전한다는 게 아니다. 현역을 은퇴하며 19년 프로선수의 화려한 삶을 마감한다는 것이다. 지난달 29일 한화 구단은 “박찬호가 금일 오후 본인의 은퇴 의사를 구단에 전달했고, 구단은 박찬호의 은퇴 결정을 존중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이로써 한국야구의 ‘살아있는 레전드’ 박찬호는 정든 마운드를 떠나게 됐다.

국민영웅 등극

박찬호는 한국야구의 선구자나 다름없다. 충청도 공주 출생인 그는 공주중동초-공주중-공주고를 거쳐 한양대에 입학했다. 학창시절부터 빠른 강속구를 던지며 유망주로 주목을 받았던 박찬호는 한양대에 진학한 후 최고 구속 156km를 찍는 등 탄탄대로의 길을 걸었다.

그는 공주고 3학년 시절인 지난 1991년, 미국에서 열린 세계청소년선수권대회를 통해 처음 다저스스타디움에 발을 디뎠다. 이후 1993년 유니버시아드대회에서 1승2세이브 평균자책점 1.10으로 활약해 메이저리그 관계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이후 대학교 2학년이었던 지난 1994년, 박찬호는 LA 다저스와 120만달러의 금액을 받고 성공적인 계약을 이끌며 한국인 최초로 메이저리그에 진출했다. 게다가 마이너리그를 거치지 않고 메이저리그로 직행한 17번째 선수라는 타이틀도 얻게 됐다.


그러나 미국 프로야구의 벽은 높았다. 단 2경기 만에 마이너리그로 내려가게 된 것. 그는 마이너리그에서 2년간 칼을 갈며 재기할 생각만 다졌다. 1996년이 되던 해, 2년 간 다잡았던 노력과 땀은 그를 배신하지 않았다. 중간계투로 종횡무진 활약하며 5승(5패)을 거둔 박찬호는 마침내 풀타임 메이저리거가 되는데 성공했다. 이듬해부터는 믿고 쓰는 선발투수로 발돋움하며 승승장구했다.

이어 그는 1997년 14승(8패), 1998년 15승(9패), 1999년 13승(11패), 2000년 18승(10패), 2001년 15승(11패)으로 5년 연속 두 자릿수 승수를 따내며 다저스의 에이스이자 메이저리그에서도 손에 꼽는 특급 선발투수로 자리 잡았다. 특히 이 시기는 우리나라가 IMF라는 심각한 금융위기를 겪었기 때문에 박찬호의 빛나는 활약이 국민에게는 실낱같은 희망과도 같았다. 즉 박찬호는 국민 영웅으로 우뚝 올라선 것이다.

국가의 위상을 드높인 그는 이윽고 슈퍼 에이전트 스캇 보라스와 계약했고, 시즌 후 텍사스 레인저스와 5년간 최대 6500만달러라는 초대형 FA 계약을 터뜨리며 부와 명예를 한꺼번에 거머쥐었다.

기대를 한몸에 받고 간 텍사스에서 박찬호는 첫 번째 시련을 맞이했다. 2002년 9승(8패)으로 기대에 한참 못 미친 성적을 보여준 그는 허리와 햄스트링 부상을 차례로 당하며 2003년 1승(3패), 2004년 4승(7패)에 머물렀다. 박찬호를 향한 텍사스 주 지역여론은 차갑게 식었고 팬들의 비난이 들끓면서 육체적·정신적으로 고초를 겪었다.

긴 시련 끝에 부상에서 회복된 그는 2005년 텍사스에서 8승을 거두며 개인 통산 100승을 채우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활약에도 불구하고 박찬호는 고액 연봉에 비해 한참 못 미친 성적으로 ‘먹튀’라는 오명을 떠안게 됐고, 자신의 의사와 관계없이 샌디에이고 파드레스로 트레이드 돼버리고 말았다.

숱한 좌절과 고비에도 박찬호는 같은 해 2005년, 12승(8패)을 거두며 재기에 성공, 2006년에는 선발과 불펜을 오가며 7승(7패)을 거뒀다. 그러나 예기치 못한 일이 그를 괴롭히고 있었다. 다름 아닌 장출혈이었다. 갑작스럽게 찾아온 건강악화에 박찬호의 재기는 기약할 수 없을 듯 보였다. 하지만 여기서 물러설 그가 아니었다. 박찬호는 생애 첫 포스트시즌을 위해 불굴의 의지를 보이며 빠르게 회복을 찾아갔고, 데뷔 후 처음으로 가을잔치 무대를 밟는 영광을 누렸다.

한국인 최초 메이저리거…아시아 선수 최다승
‘굿바이 마운드’ 한화 유니폼 입고 전격 은퇴


축제도 잠시 그에게는 또 다른 고난이 기다리고 있었다. 2007년 뉴욕 메츠와 계약한 박찬호는 단 1경기 출전이라는 굴욕을 맛봐야만 했다. 이어 불안한 성적 때문에 시즌 중 방출 조치를 당하기도 했다. 방출된 뒤 그는 휴스턴 애스트로스와 계약했다. 그런데 이는 메이저 계약이 아닌 마이너 계약이었다. 또 다시 마이너리그로 추락하게 된 것이다. 결국 그해 박찬호는 풀타임 메이저리거가 된 이후 가장 오랜 시간 마이너리그에서 보냈다. 모두가 “포기하라”며 고개를 저었다.

주위의 만류에도 그는 포기하지 않고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섰다. 2008년 친정팀 LA다저스로 돌아온 박찬호는 선발투수가 아닌 불펜투수로 4승(4패)을 거두며 보란 듯이 부활했고, 2009년 필라델피아 필리스로 옮겨 3승(3패)으로 불펜의 한축을 맡으며 생애 첫 월드시리즈 무대까지 밟았다. 이듬해 2010년 박찬호는 우승반지 하나만 노리고 뉴욕 양키스로 이적했으나 부진을 면치 못해 시즌 중 웨이버 공시됐고, 피츠버그 파이어리츠로 옮겼다. 시즌 성적은 4승(3패) 평균자책점 5.12로 다소 인상적인 성적을 거두진 못했다.

지난 1994년 처음으로 발을 디딘 후 17년간 9개의 팀을 옮겨 다닌 박찬호는 메이저리그 통산 성적 476경기 124승98패, 평균자책점 4.36, 탈삼진 1715개로 통산 승수는 아시아 출신 선수로는 최다승이며 1993이닝으로 최다 투구이닝을 달성했다.

오랜 시간 동안 야구인생을 엮어나갔던 메이저리그 생활을 청산한 뒤 그는 일본프로야구 오릭스에서 7경기 중 1승5패, 평균자책점 4.29를 기록했다. 그리 훌륭한 성적이라고는 볼 수 없지만 그는 1년 동안 일본에서 메이저리그와는 다른 야구를 배웠다.

18년간의 해외 선수 생활을 뒤로 한 그는 우여곡절 끝에 오랜 꿈이었던 고향 팀 한화이글스 유니폼을 입었다. 명성에 걸맞게 연봉을 백지위임하며 최소 연봉 2400만원, 옵션 6억원 전액을 야구발전 기금으로 쾌척하는 위엄을 보였다.

개막 후 7경기 연속 선발등판한 날 연일 매진을 기록하며 ‘티켓파워’를 대대적으로 과시한 박찬호는 불혹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녹슬지 않은 기량을 펼치며 국가대표 에이스 류현진과 함께 원투펀치를 이뤘다.

‘먹튀’ 오명도

베테랑으로서 자신의 역할을 톡톡히 해낸 것이다. 국내 야구팬들은 살아있는 레전드 박찬호가 투구를 던질 때마다 환호를 내지르며 열광했다. 그러나 허리와 팔꿈치 통증이 도진 후반기에 그는 타 팀 타자들로부터 난타 당하기 일쑤였고, 체력도 예전만큼 받쳐주지 못했다. 결국 마지막 프로인생 1년 동안 23경기 5승10패 평균자책점 5.06의 아쉬운 성적으로 시즌을 마감했다. 시즌 마감 후 박찬호는 오랜 고민 끝에 은퇴라는 쉽지 않은 결정을 내리며 20여 년에 이르는 프로선수로서의 삶을 내려놓았다.

이제 프로야구선수 박찬호는 없다. 그러나 그가 몸소 보여준 야구 열정과 힘들 때 국민의 마음을 하나로 뭉치게 해준 불꽃같은 희망은 우리들 가슴속에 영원히 간직될 것이다.

김지선 기자 <jisun86@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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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광로 내각’ 눈에 띄는 이재명 사람들

‘용광로 내각’ 눈에 띄는 이재명 사람들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11개 부처 장관 후보자와 국무조정실장 인선을 발표했다. 취임 후 첫 개각인 만큼 이 대통령의 국정 철학과 정부의 방향성을 가늠할 수 있다. 초대 장관인 데다가 이력도, 배경도 독특한 이들이 합류하면서 주목도는 배로 높아졌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부)에는 배경훈 LG AI연구원장이, 외교부에는 조현 전 1차관이 후보자로 지명됐다. 이 밖에도 ▲통일부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정동영 의원 ▲국방부 민주당 안규백 의원 ▲국가보훈부 한나라당 권오을 전 의원 ▲환경부 민주당 김성환 의원 ▲고용노동부(이하 노동부) 김영훈 전 민주노동조합총연맹(이하 민주노총) 위원장 ▲해양수산부 민주당 전재수 의원 ▲여성가족부 민주당 강선우 의원 ▲중소벤처기업부(이하 중기부) 한성숙 네이버 대표이사 ▲국무조정실장 윤창렬 LG글로벌 전략개발원장 등이 후보자로 임명됐다. 가리지 않고 사람만 보고 큰 폭의 내각 변화가 일어난 가운데 유독 주목을 받는 인물이 있다. 이력이 독특하거나 발탁 배경을 놓고 갑론을박이 이어지는 등 청문회 과정 역시 순탄치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우선 이슈는 국방부 장관으로 내정된 안규백 후보자다. 안 후보자는 5선 국회의원으로 약 20년 동안 국회 국방위원을 지내며 의정 활동 대부분을 국방 분야에서 보냈다. 내란 사태 당시 ‘윤석열정부의 비상계엄 선포를 통한 내란 혐의 진상규명 국정조사 특별위원회(내란 특위)’ 위원장 등을 맡기도 했다. 강훈식 대통령 비서실장은 “안 후보자는 국회 국방위 간사·위원장 등 5선 국회의원 이력 대부분이 국방위 활동이기에 군에 대한 이해도가 풍부하다”며 “64년 만에 문민 국방 장관으로 계엄에 동원된 군의 변화를 책임지고 이끌어 나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안 후보자는 지난해 12월 <일요시사>와의 인터뷰에서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군은 문민통제가 돼야 한다. 비상계엄 당시 문민통제가 공고했다면 대통령이 내란을 지시하더라도 시작 단계부터 군이 반대해 따르지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안 후보자가 청문회를 통해 최종 임명된다면 64년 만에 민간인 출신 국방부 장관이 탄생한다. 첫 민주노총 출신 장관이 탄생할지에도 이목이 쏠린다. 김영훈 후보자는 현직 철도 기관사로, 1992년 철도청(현 코레일)에 입사해 올해로 34년째 근무 중이다. 장관 후보로 지명되기 전날까지 김 후보자는 경부선 부산-서울 구간에서 새마을호 열차를 운행했다. 국민의힘은 김 후보자가 민주노총 출신인 점을 거론하며 이번 인선이 일종의 ‘청구서’라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송원석 원내대표는 “내각이 아니라 민주당 선대위 같다”며 “능력이나 전문성보다 논공행상이 우선된 거 아닌가 하는 국민적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동안 진행된 노동 개혁 성과는 후퇴하고, 노란봉투법(노조법 2·3조 개정안)과 중대재해처벌법 등 주요 현안에 대한 새 정부의 반 기업적 스탠스를 명확히 못 박아두는 인사 아닌지 우려된다. 민주노총의 정치적 청구서가 본격적으로 날아오는 신호탄으로 보는 시각이 있다”고 밝혔다. 김 후보자가 노동부 장관으로 임명된다면 지난 3년간 거부권에 가로 막혔던 노란봉투법을 비롯한, 주 4.5일 근무제 등이 거대 여당을 등에 업은 채 졸속으로 처리될 것이란 비판이 나온다. 민간 국방 장관, 기관사 노동 장관 파격 인사에 국민들 관심도 ‘쑥’ ↑ 이를 의식한 듯 김 후보자는 쟁점 법안에 대해 “반드시 가야 할 길”이라면서도 “명분만으로 밀어붙이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이어 “주 4.5일 근무제가 어려운 기업이 있다면 무엇이 어렵게 하는지 정부가 잘 살펴보고 공동의 길을 모색해보겠다”고 설명했다. 교수 출신 인사가 없다는 점도 눈여겨볼 만하다. 이번 개각 명단을 보면 대부분 실무형 인사 위주로 곧바로 실전에 투입할 수 있는 실용성 있는 인재를 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기업인이 과기부·중기부 장관 후보자 등으로 내각에 포함된 것 역시 궤를 같이한다. 강 대변인은 “배경훈 과기부 장관 후보자는 AI 학자이자 기업가로서 초거대 AI 상용화로 은탑산업훈장을 받은 인물”이라며 “하정우 AI미래기획수석과 함께 AI 국가경쟁력을 높일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앞서 이 대통령은 네이버 클라우드 AI 랩 소장, AI 미래포럼 공동의장 등을 지낸 하정우 수석을 대통령실 AI 미래기획 수석으로 지목했다. 이재명정부는 “100조를 투자해 AI 강국을 만들겠다”고 선언한 만큼 하 수석과 배 후보자가 손발을 맞춰 글로벌 시장의 주도권을 잡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배 후보자는 서울 종로구 광화문우체국에 마련된 인사청문회 준비단 사무실로 출근하며 취재진과 만나 “이 대통령의 1호 공약인 AI 3대 강국이 되기 위해 3강의 정의부터 해봤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그는 “(현재로선) 우리가 3위를 한다고 해도 미·중과 너무 차이가 크다. 1·2위에 근접한 3위가 돼야 하며 사실 시간이 많이 남아 있지 않다”며 “AI 3강 목표를 반드시 2∼3년 이내에 달성해야겠다는 사명감이 있고, 소속됐던 기업에서 좋은 사례를 만들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중기부 장관 후보자로는 한성숙 네이버 고문이 내정됐다. 한 후보자는 지난 2017년 네이버 최초로 여성 최고경영자(CEO)에 선임됐으며 같은 해 한국인터넷기업협회 제13대 회장을 맡은 인물이다. 역대 중기부 장관을 살펴보면 통상 관료나 정치인이 낙점된 만큼 민간 기업 출신 후보자라는 점에서 신선하다는 평이 나온다. 중소기업계는 한 후보자를 환영하는 분위기다. 일꾼도 실용주의 중소기업중앙회는 논평을 내고 “중소기업계는 이재명정부 초대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으로 한성숙 후보자가 지명된 것을 환영한다”며 “한 후보자는 네이버 등 IT산업에 오랜 경험을 가진 기업인 출신으로 산업 대전환기에 중소기업·소상공인의 AI·디지털화를 촉진하는 등 디지털 생태계를 구축할 적임자”라고 평가했다. 이처럼 정부와 중소기업이 한 후보자에게 기대를 걸고 있지만 과거 국정감사 이력이 발목을 잡을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의 고용노동부 등 국정감사 ‘단골’로 불릴 만큼 여러 차례 소환됐기 때문이다. 특히 지난 2021년 네이버 직장 내 괴롭힘으로 한 직원이 극단적 선택을 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의원들의 질책이 잇따랐다. 민주당 노웅래 의원이 당시 네이버 대표였던 한 후보자에게 “최인혁 (네이버파이낸셜) 대표를 징계했느냐”고 묻자 “네이버에서 본인이 사임을 했다”고 짧게 답했다. 노 의원이 “징계를 했느냐”고 재차 물었지만 한 후보자는 “징계가 있었다”면서도 정확히 어떤 처분이 내려졌는지 답하지 않았다. 이를 두고 노동계 등에서는 “전형적인 꼬리 자르기”라는 비판이 나왔다. 이 밖에도 뉴스 편집 조작과 댓글 여론 조작 방조 의혹 등으로 2017년부터 4년 연속 국감 증인으로 소환됐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박상웅 의원은 한 후보자 지명과 관련해 “거대 포털과의 전략적 야합이라는 합리적 의심이 든다”고 주장했다. 박 의원은 “한성숙 후보자 지명은 과거 민주당의 규제를 통한 견제가 아니라 포털과의 인사 유착을 통해 정권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시도로 비쳐질 수 있다”며 “플랫폼 권력과 정치 권력의 야합이라는 심각한 의심을 지울 수가 없다는 것이 국민적 시각”이라고 비판했다. 아울러 2021년 국감을 언급하며 “직원들이 고통을 호소하고 극단적 선택까지 했던 괴롭힘의 현장을 방치한 책임자가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를 지원해야 할 부처의 수장으로 지명된 것은 납득할 수 없는 결정”이라며 “국민 신뢰를 저버린 매우 전략적이고 노골적인 이번 인사는 즉각 철회돼야 한다”고 거듭 지적했다. 성급했나? 잡힌 발목 실용과 통합을 위한 지명도 이뤄졌지만 여야 모두에게 질책을 받으면서 오히려 자충수라는 비판이 나온다. 윤석열정부 출신인 송미령 농식품부의 장관 유임과 한나라당 권오을 전 의원이 대표적인 케이스다.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은 송 장관이 유임된 배경에 대해선 “첫 국무회의에서 대부분 사의를 표한 후라 소극적이고 구체적이지 않은 답변이 많았던 반면, 송 장관은 상당히 구체적으로 대통령 질문에 답하고 국정 방향에 대해 미리 준비하고 적극적으로 반영할 수 있는 여러 안을 가지고 왔던 것으로 기억한다”며 “일할 수 있는, 준비된 현직 국무위원이라고 판단한 것 아닌가 하는 짐작을 해본다”고 설명했다. 강 대변인은 “이 대통령은 지난 24일 유임을 발표한 뒤 첫 국무회의에서 송 장관에게 ‘사회적 충돌, 혹은 이해관계에 있어서 다른 의견이 있다면 유임된 장관으로서 적극적으로 들어보고 갈등을 조정하는 데 직접 역할을 하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고 제안했다”고 부연했다. 아울러 “(송 장관이) 그에 대해서 수긍한 것으로 본다”며 “유임 결정까지는 대통령실에서 한 것이지만, 이후에 갈등 조정 기능도 내각에 임명 혹은 내정된 분들의 중요한 역할이라고 본다”고 덧붙였다. 송 장관의 유임을 두고 민주당, 특히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이하 농해수위) 소속 의원을 중심으로 반대의 목소리가 나오는 분위기다. 지난 3년 동안 양곡관리법 등을 반대하고 이를 ‘농망법’이라고 부르는 사람을 기용하는 건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다는 게 주된 이유다.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과 진보당도 목소리를 높였다. 혁신당 박웅두 농어민위원장은 논평을 통해 “이재명정부의 ‘국민통합정부’ 의지를 높이 평가한다”면서도 “남태령 응원봉의 주역이자 이재명 대통령 당선에 뜻을 함께했던 농민들은 송 장관의 유임에 당혹감과 분노를 감추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송 장관은 윤석열 농정에 대해 공식적으로 참회와 반성, 사과와 유감의 발언도 없었고 공개적인 평가의 과정과 책임의 경중을 논의한 바가 없는데 누가 송미령을 장관으로 추천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며 “식량주권에 대한 손톱만큼의 애정이 있다면 유임 결정을 즉각 철회하라”고 밝혔다. 농해수위 소속인 진보당 전종덕 의원 역시 “농망 장관”이라며 지명 철회를 촉구하는 1인 시위에 나섰다. 통합용 지명? 여야 모두 아우성 ‘윤의 사람’ 그대로 품은 이유는? 일부 야권에서도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송 장관은 민주당이 추진한 양곡법과 속칭 농민3법을 농업의 미래를 망치는 농망법이라며 대통령 거부권 행사까지 건의했다”며 “그런데 이재명정부의 농림부 장관으로 지명되니 ‘새정부 철학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추진하겠다’고 답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장관을 오래하려면 송미령 같이’라는 자조가 공직사회 전반에 퍼지지 않겠느냐”며 “금번 인사를 보니 이 대통령이 말하는 실용주의의 정체를 알겠다. 그건 실용의 이름으로 포장된 기회주의이자 국익으로 덧발라진 밥그릇 챙기기”라고 꼬집었다. 논란에 대해 한 민주당 관계자도 “나름 탕평 인사로 가장 탈이 안 날 것 같은 인물을 유임시킨 것 같은데 아마 이 대통령도 뒷말은 예상했을 것”이라며 “내란 종식을 내걸고 정권을 잡은 만큼 모순된 면이 있다. 그날 밤(12월3일) 용산에 모인 국무위원을 내란 동조자, 내란 방관자라고 하더니 ‘일을 잘하니 함께 가겠다’라는 건 국민에게 조금 더 설명이 필요한 부분”이라고 말했다. 권 전 의원이 보훈부 장관으로 지목된 것 역시 탕평 인사로 분류된다는 해석이다. 권 후보자는 지난 4월 6·3 조기 대선 당시 이재명 후보 캠프에 합류에 눈길을 끌었다. 친유승민계로 분류되는 권 후보자는 한나라당과 새누리당을 거쳐 바른정당에서 최고위원을 지냈다. 보수 인사였던 그는 이재명 캠프에 합류하면서 “대구와 경북의 정치적 발언권을 보장하기 위해 참여하게 됐다”며 “민주당의 중도 보수 지향에 대해 힘을 보탤 것”이라고 설명했다. 강훈식 대변인은 권 후보자가 보훈부 장관으로 지명된 것에 대해 “경북 안동에서 3선 의원을 역임했다”면서 “지역과 이념을 넘어 특별한 희생에 특별한 보상이라는 보훈 의미를 살리고 국민통합을 이끌 것으로 기대한다”고 설명했다. 권 후보자는 보수와의 소통에 힘을 쏟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그는 국민통합을 강조하며 “소통의 장을 자주 마련하면 광화문 태극기 부대와 촛불 부대가 서로 소통이 되고 이해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대통령께서 국민통합이라면 소통의 장을 마련해 각자가 논리의 주장을 공개적으로 이야기해보고 들어봐서 반영하라고 하셨다”며 “그래도 자기 진영 논리에 충실할 수밖에 없다면, 이해할 수 있는 소통의 장을 자주 마련하도록 하겠다”고 설명했다. 유임된 송 장관을 제외한 10개 부처에 대한 개각이 이뤄지면서 국회 역시 각 상임위가 바쁘게 돌아갈 예정이다. 시기상 장관 후보자 청문회는 7월 말에 진행될 가능성이 크다. 김민석 국무총리 후보자 청문회를 겪은 국민의힘은 남은 장관 후보자들에 대해서도 ‘송곳 검증’을 하겠다며 벼르고 있다. 격돌의 7월 관전 포인트 다만 한 야권 관계자는 “김민석 후보자의 청문회가 이틀 동안 진행됐지만 총리로서의 자격 검증은 뒷전이고 돈 문제만 물고 늘어졌다”며 “물론 총리 후보자의 부도덕한 면을 부각시킬 수 있겠지만 총리 후보자 청문회인 만큼 더 다양한 각도에서 질문을 해야 했다. 곧 있으면 다른 장관에 대한 청문회도 진행될 텐데 지금처럼 (청문회를) 진행해서는 국민의힘도 좋은 소리를 듣지 못할 것”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