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스포츠> 한국골프회원권의 어제와 오늘

  • 한종해 han1028@ilyosisa.co.kr
  • 등록 2012.11.12 11:4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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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기는 옛말, 이제는 이용가치다”

골프회원권은 1990년부터 시장에 유통되면서 전문적인 거래가 시작됐다. 그동안 골프회원권은 어떤 변모 과정을 거쳤을까. 1991년 설립돼 회원제 골프 활성화에 징검다리 역할을 해온 에이스회원권거래소의 에이스피지수를 중심으로 골프회원권 20년사를 정리했다.

골프장 공급과잉, 대중화로 회원권 가치 하락
지방권, 수도권 비해 하락폭 미미 시세 지탱

에이스피지수는 전국 116개 골프장 176개 종목의 등락을 지수화한 것이다. 2005년 1월1일 기준 1000포인트가 기준이며 그 이전 지수는 해당 시점의 종목을 같은 방식으로 산출했다.

1990~1997년
회원권 거래의 태동기

회원권은 1988년 서울올림픽 이후 본격적으로 시장을 형성하기 시작했다. 해외여행 자유화가 허용됨에 따라 여가와 레저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면서 골프인구가 자연스레 늘었다. 당시에는 수요와 공급이 많지 않던 시절이라 특정 소수계층의 거래가 주를 이뤘다. 하지만 골프장이 하나 둘 늘어나고 골프 인구도 늘어남에 따라 시장은 점차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1997~2003년
외환위기 따른 침체 후 상승


1990년대 중반부터 점차 상승국면을 보이던 회원권 시장은 1997년 말 시작된 외환위기로 인해 하락세를 맞았다. IMF 구제금융에 따른 실물 경기가 침체되면서 실수요자들이 지갑을 굳게 닫은 것이 큰 원인이었다. 자금 확보가 급해진 법인들은 매물을 싼 가격에 내놓기 시작했으며 개인들 또한 극심한 투자심리 위축으로 회원권 시세 곡선은 급락 추세를 보였다.

1999년까지 IMF의 한파가 지속됐지만 2000년 상반기 경기침체의 원인을 제공한 외환시장이 차츰 안정세를 보이면서 반등과 하락을 반복하는 기술적 조정기를 거치게 된다. 2001년에는 경기종합지수가 소비자물가지수를 상향 돌파해 경기회복의 골든크로스가 발생했다.

이 시점을 기점으로 경기가 살아나는 움직임을 보였고, 경기회복을 위한 저금리 정책이 시행되면서 높았던 금리가 다시 낮아지는 금융구조가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IMF 외환위기 시절 다량으로 나온 저점 매물이 빠르게 소진되기 시작했고 경기회복과 저금리라는 구조적인 배경은 골프회원권 시장으로의 자금유입을 원활하게 했다.

특히 IMF 외환위기 시절 한국인들에게 희망과 투지의 불씨를 지피게 해줬던 박세리의 US여자오픈 우승 소식이 전해지면서 골프에 대한 관심도 한층 높아지게 됐다. 2003년 초 에이스피지수는 상승세로 전환돼 IMF 구제금융을 받기 이전 시점의 지수대를 회복했다.

2003~2008년
부동산 대책 반사이익 급등

2003년 참여정부가 들어서면서 부동산 투기억제를 위해 시행됐던 제1차 부동산대책의 반사이익으로 시중자금이 부동산에서 주식이나 골프회원권 시장으로 유입되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회원권 시장은 급등 후 숨고르기가 반복되는 롤러코스터 장세를 연출했다. 그러나 2004년 7월 이헌재 전 부총리의 ‘골프장인허가 간소화’ 정책 발표로 골프장 공급이 급증할 것이라는 우려와 카드대란으로 인한 경기불안으로 시장은 다시 급락세를 탔다. 2005년 들어 인허가 간소화 정책의 실효성 논란이 지속되면서 기술적 반등세를 보이다가 8·31 제2차 부동산대책 발표 이후엔 회원권시장으로 대거 투자금이 몰리기 시작했다.


결국 2006년 3월 들어서는 투기적 매수세가 무차별적으로 유입돼 소위 ‘묻지마 상승세’라고 표현될 만큼 폭발적인 급등세를 보였다. 종목을 가리지 않고 시중에 유통이 가능한 회원권들은 모두 자고 나면 수천만원씩 오르기 일쑤였다. 이때 에이스피지수는 한 달 사이 무려 300포인트나 상승했다.

회원권 가격이 기하급수적으로 오르자 언론 등을 통해 시세 거품론이 제기되면서 고점 매물의 출회가 늘어나 시장은 급락세로 돌변하게 된다. 하지만 이내 2006년 7월 들어 시행된100인 이상 기업체의 주5일 근무제 영향으로 골퍼수가 증가해 다시금 상승국면을 맞았다.

2007년 주식시장이 급등하자 자산 가치가 크게 증가한 법인체들은 골프회원권 매입을 확대했다. 당시 법인 거래 증가율은 개인 거래 증가율의 3배를 상회했다. 이는 골프인구가 급격히 늘어나면서 과거 ‘술접대’ 문화에서 점차 ‘골프접대’로 바뀌어 골프와 비즈니스가 접목되는 경향이 더욱 강해지는 시기였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법인매수가 많은 고가 회원권의 가격이 급등하면서 2008년 3월 에이스피지수는 1715포인트를 기록, 최고치를 경신했다.

2008~2010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폭락세

2008년은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이 극에 달하면서 글로벌 금융시장이 크게 혼란을 겪는 시기였다. 이때 회원권 시장의 흐름은 1998년 외환위기 시절 이후 최대로 ‘하향성 격동기’를 맞았다.

상반기까지만 해도 국내 대기업들의 수출 호조와 정권교체 전후 경기부흥에 대한 정책적 기대감으로 고가대 이상의 고점 거래가 이어졌고 지역적인 개발호재로 인해 종목별 시세 상승폭을 높이며 최고점을 찍었지만, 미국발 금융위기에 따른 전반적인 ‘자산디플레이션 현상’으로 급락세를 보였다.

가을 시즌을 맞아 잠시 반등세를 보였으나 이내 미국 월가의 리먼브라더스 파산이 현실화되고 국내 자산시장의 환율 급등으로 인해 회원권 시장은 유례없는 폭락세를 연출했다. 2008년 하반기 에이스피지수는 네달 동안에만 무려 500포인트 이상 하락하며 2003년 부동산 대책발표 이전 시점의 지수로 회귀했다.

2009년 들어서는 단기간의 폭락으로 가격 메리트가 높아진 회원권을 중심으로 매수세가 늘어나면서 반등을 보이기 시작했다. 또한 경기부양을 위한 정부의 유동성 공급과 저금리 금융정책의 영향으로 상반기 에이스피지수는 지속적인 상승세를 보였다. 하지만 중반 이후부터 상승세는 일단락되고 상승과 하락을 반복하는 기술적 조정기를 거치게 된다.

2010년~현재
개소세 감면 소식에 반등 기대

2010년부터 상승세를 엿보던 회원권 시장은 지속적인 대내외적인 악재에 부딪히면서 약세를 거듭하게 된다.
남유럽발 금융 위기가 투자심리를 억누르더니 천안함 사건과 연평도 사건, 김정일 사망 등 한반도의 지정학적 리스크도 부각됐다. 미국의 신용등급 강등으로 인한 경기 하락과 일본 대지진에 따른 자연재해의 불운으로 매수세는 일시적으로 감소했다. 더불어 저축은행 사태와 건설사들의 PF부실채권이 수면 위로 떠오르면서 법인들의 자금경색과 수급상황까지 부정적인 과정을 거치며 하락세로 돌아섰다.

대내적으로는 신설 골프장이 대거 등장하면서 회원권의 희소성이 떨어지게 됐고 일부 부실 골프장들의 입회금 반환 기간이 도래하는 등 회원권 시장의 불투명한 전망이 계속되기 시작했다. 이로 인해 회원권 시장은 기술적 반등을 보이더라도 이내 하락세로 돌아서는 약세를 지속하게 됐다.

회원권 시장의 현재 흐름과 과거와의 큰 차이점은 투기 매수세가 사라졌다는 것이다. 금액대비 효용성이 높은 무기명회원권이나 주중회원권, 저가 회원권 위주의 실이용 목적에 가치를 둔 거래가 주를 이루고 있다. 최근 발표한 세법개편안에 전국 회원제 골프장의 개별소비세가 2년간 폐지되는 내용이 포함됨에 따라 향후 회원권의 이용 가치는 한층 높아질 것으로 기대된다.


지방권은 2005년부터
수도권과 탈(脫)동조화

수도권은 2005년에 신설 골프장이 봇물을 이룬 반면 지방권은 그보다 일찍 2000년부터 신설 골프장이 급증하기 시작했다. 2000년 당시만 해도 지방 골프장 건설비용은 수도권에 비해 3배 가량 저렴한 것이 현실이었다. 사업자들은 저렴한 비용에, 공급이 그나마 적은 지방에 골프장을 건설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2005년에 들어 2000년에 분양했던 골프장들의 입회금 반환 시기가 도래하면서 지방권 회원권 시장이 침체에 들어서기 시작했다. 에이스회원권거래소의 소정진 애널리스트는 “2005년 지방권 신규 분양시장마저 침체에 들어섬에 따라 분양가도 50%정도 하락했다”며 “기존 회원권 거래 덕분에 그나마 시세를 버티는 시기였다”고 설명했다. 2005년 들어 수도권은 상승한 반면 지방권은 약세에 접어든 가장 큰 이유였다.

2005년 8·31 부동산 대책의 영향으로 투자적 매수세가 회원권 시장에 몰렸지만 투자처를 찾던 매수자들의 시선은 수도권에만 몰렸다. 이 때문에 지방 회원권 시장은 실이용 목적의 매수가 주를 이뤄 시세 거품론이 제기됐던 수도권과는 정반대의 모습을 보였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영향으로 지방권 에이스피지수는 영남권 694, 호남권 709포인트로 최저점을 기록했으나 수도권에 비하면 하락폭은 미미했다. 2010년 이후 지방권은 수도권과 달리 박스권 장세를 유지하며 꾸준히 시세를 지탱하고 있다.

소정진 애널리스트는 “지방권은 2004년 최고점을 찍은 반면 수도권은 이보다 4년 늦은 2008년이 최고점이었다”면서 “국내 회원권시장은 지방권이 수도권보다 선행적 흐름을 보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자료제공 : <월간골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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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입수> 노상원 수사 기록 ②부정선거에 꽂힌 내막

[단독 입수] 노상원 수사 기록 ②부정선거에 꽂힌 내막

[일요시사 취재1·정치팀] 오혁진·박희영·김철준 기자 = 12·3 내란 사태가 발생한 지 6개월이 지났다. 특검이 출범하면서 관련 수사도 발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현재까지 여러 언론을 통해 핵심 인물들의 수사 기록이 일부 보도됐다. 그러나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에 대한 내용은 구체적으로 언급된 바 없다. <일요시사>는 경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단의 ‘노상원 수사 기록’을 단독으로 입수해 공개하기로 했다. “부정선거 증거가 차고 넘치고 나중에는 드러날 것이다.” 노상원 전 국군정보사령관이 수사기관에 진술한 내용이다. 그가 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처럼 부정선거 음모론에 꽂혀 있다는 걸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노 전 사령관은 윤 전 대통령의 지지자들이 주최하는 집회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사실상 수년 전부터 망상에 빠져있었다고 볼 수 있다. 같은 생각 노 전 사령관이 윤 전 대통령 지지자들이 주도하는 부정선거 음모론 집회에 참여하기 시작한 건 2년 전부터로 추정된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노 전 사령관 수사 기록에 따르면 그는 부정선거 음모론 집회와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의 집회에 여러 차례 참여했다. 노 전 사령관이 전 목사와 개인적으로 알았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다만 노 전 사령관은 김 전 장관에게 집회에 참여할 때마다 당시 분위기와 참석자들이 윤 전 대통령을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해 텔레그램으로 자신의 의견을 전달했다. 1년간 ‘극우 집회’를 분석한 노 전 사령관은 부정선거 음모론에 집착하기 시작했다. 그는 “문상호, 정성욱, 김봉규 등과 만날 때 주로 어떤 말을 했느냐”는 경찰 측의 질문에 “선관위를 얘기했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선관위가 부정선거의 온상이라고 김용현 전 장관이 많이 말씀하셨다. 나에게도 여러 번 선관위의 부정선거에 대해 알아보라고 지시했고 네이버로 찾아도 봤다”고 말했다. “부정선거를 주로 누구에게서 들었냐”는 경찰 측의 질문에는 “관련 집회에 여러 번 참여하면서 들었고 특정 인물이 누구인지 실명을 거명하긴 그렇다. 나도 김 전 장관에게 보고를 해야 해서 스스로 공부도 많이 했다. 여론조사 조작이나 선거 부정은 합리적인 근거가 있다”고 했다. 전 주도 윤 지지자 극우 집회 직접 참석 김과 텔레그램으로 부정선거 자료 공유 노 전 사령관은 부정선거의 근거로 “선관위 산하에 여론조사심의위원회가 있다. 여론조사기관은 여론조사심의위에 등록해야 한다. 여론조사기관의 갑이다. 여론조사심의위원회는 9명으로 위원장 이대영 사무총장과 강성봉 등이고 그 밑에 쭉 있는데 7명이 진보 계열 인물이다. 여론조사기관이 편향되어 있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고 주장했다. 노 전 사령관은 부정선거 음모론자들이 주장하는 임시선거사무소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는 “네이버에 검색하면 다 나오는데 2021년 국회의원 선거 때 동작구 선거사무소가 있는데 옆을 임대해서 임시선거사무소를 만들었었다. 언론에 나오니까 발뺌했었고 김 전 장관에게 보고하자 김 전 장관이 더 많은 자료를 보내 줬었다”고 했다. 노 전 사령관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의 부정선거가 확실하다며 “결국에는 다 까질 것이다. 전산은 한 번 까지면 되돌릴 수가 없다. 폭파하거나 고물상에 갖다 버리지 않는다면 전산은 결국 까진다. 북한이 쳐들어온 것도 아니고 서울 상공에 포를 쏜 것도 아니지만 윤석열 전 대통령께서는 선관위의 부정선거가 확실하다고 생각하시고 정국이 전시에 준하는 사태라고 민감한 상황이라고 보신 것 같다. 그런 상황이 아닌데도 그렇게 행동한 건 그만큼 절박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2시간짜리 호소였다. 만약 국회 결정을 윤 전 대통령께서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유혈사태가 났을 것”이라고 윤 전 대통령을 옹호했다. 노 전 사령관은 지난해 12월 초, 선관위가 서버 교체를 검토했다가 교체하려 했던 것을 두고 “윤 전 대통령께서 어디에선가 확실하고 핵심적인 정보를 들으셨을 것 같다. 서버 조작이 있었기에 그 서버를 우리가 확보하려 할 때 선관위 측이 폭파했을 수도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의 군검찰·검찰 피의자 신문조서를 보면 윤 전 대통령은 지난해 8월 초 ‘정보사 군무원 간첩 사건 수사 결과’를 보고받는 자리에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대표였던 이재명 대통령을 포함한 정치인 등 인물들에 대해 “비상대권을 사용해 이 사람들에 대해 조치를 해야 한다”며 “현재의 사법체계, 형사소송법, 방탄국회 및 재판지연 아래에선 이런 사람들을 어떻게 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재명 조치’ ‘2시간짜리 계엄’ 겹치는 윤·노 발언 "서버 확보하려 했다면 선관위가 폭파했을 것” 주장 윤 전 대통령이 “비상대권을 사용한 조치”를 언급한 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만큼 이 대통령과 자신의 의견을 거스르는 인물들에 대한 복수심이 극에 달했던 것으로 해석된다. 이는 노 전 사령관도 마찬가지다. 노 전 사령관은 경찰에 “김용군(대령)과 구삼회 등에게 ‘이재명은 죄가 7개인데 봐주고 지연시키고 구속도 안 되고 당 대표까지 하는데 더불어민주당이 감사원장, 중앙지검장, 판사 등을 모두 탄핵하려고 하는 게 과연 올바른 세상이냐’고 한 적이 있다”고 진술했다. 윤 전 대통령과 노 전 사령관이 언급한 말이 일치하는 건 이뿐만이 아니다. 윤 전 대통령은 지난해 12월12일 “국정원 직원이 해커로서 해킹을 시도하자 얼마든지 데이터 조작이 가능했고 비밀번호도 아주 단순해 ‘12345’ 같은 식이었다”고 주장한 바 있다. 노 전 사령관도 “선관위가 헌법기관인데 스스로 깨끗해야 하거나 아무런 문제가 없어야 하는데 황제·세자 채용 등 문제가 나왔다. 각종 할 수 있는 최악의 것은 다 저질렀다. 그리고 전산 해킹이 언급될 때 서버 본체를 보여준 것도 아니고 일부 샘플만 살짝 보여줬는데 얼마든지 전산 조작이 가능하고 해킹에 얼마나 취약하면 비밀번호가 ‘1234’냐. 이미 그런 게 다 나왔다. 그렇게 떳떳하면 왜 본체를 못 열어주나”고 말했다. 그러나 조태용 국정원장은 같은 해 12월 검찰 조사에서 “선관위 시스템에 보안상 취약점이 발견됐지만, 부정선거에 관한 단서는 전혀 포착하지 못했다”는 내용으로 보고했다고 진술했다. 일각에서는 노 전 사령관이 윤 전 대통령과 직접 비화폰으로 연락을 주고받았을 것이라는 보고 있다. 실제 노 전 사령관도 지난해 12월2일 자신의 지인에게 윤 전 대통령과의 친분을 과시했다. 노 전 사령관은 당시 “나 같은 경우는 브이(V, 윤 전 대통령 지칭)하고 이렇게 좀 도와드리고 있다. 원래 한 4~5년, 3~4년 전에 알았다뿐이고 그래서 이제 뭐 이렇게 여러 가지로 좀 도와드리고 있다. 비선으로”라고 했다. 친분 과시 노 전 사령관은 안산 ‘롯데리아 회동’에 참석했던 구삼회 전 육군 2기갑여단장에게도 “며칠 전에는 김용현과 함께 대통령도 만났다. 갈 때마다 대통령이 나한테만 거수경례를 하면서 ‘사령관님 오셨습니까’라고 한다. 내가 이런 사람이다. 대통령과 장관 같이 만난다. 나는 벌써 여러 번 만났다”고 했다. <hounder@ilyosisa.co.kr> <hypak28@ilyosisa.co.kr> <kcj512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