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지경 세태> 재벌가 외국인학교 부정입학 백태

  • 김설아 sasa7088@ilyosisa.co.kr
  • 등록 2012.11.15 10:2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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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 귀족학교 보내려 나라도 남편도 버렸다

[일요시사=사회팀] “내 자식만 잘되면 된다”는 극단적 이기심이 불러온 외국인학교 부정입학 사건. 돈 많은 재벌가와 부유층 며느리·딸 등이 연루된 사건의 단면은 충격적이다. 그들에게 대한민국 공교육 제도는 먼 나라 얘기였다. 조국도, 혼인관계도 그저 장식물로 기능하는 ‘허울’에 불과했다. 아무리 ‘맹모삼천지교’라고 하지만 빗나간 학구열에 맹모도 혀를 찰 지경이다.

외국인학교들이 부유층 자제를 위한 귀족학교로 변질되고 있다. 국내 체류 외국인 자녀의 교육을 위해 설립된 외국인학교는 원칙적으로 부모 중 1명이 외국인이어야 입학 가능하다. 부모가 모두 내국인이라면 외국 거주기간이 3년 이상일 때 정원의 30% 내에서 입학이 허용된다. 그러나 일부 부유층 학부모 사이에서 이런 규정쯤은 어떤 걸림돌도 되지 않았다.

부유층 치맛바람
신종 맹모 등장

재벌가 등이 연루돼 떠들썩했던 인천 지검 외사부의 외국인 학교 부정 입학 비리 수사가 사실상 마무리됐다. 지난 8월 수사를 시작한 이후 석 달 만이다. 검찰은 이번 수사에서 브로커 6명과 학부모 47명을 적발했다.

브로커 가운데 4명은 구속 기소됐고 중남미 현지 브로커 2명은 지명 수배된 상태다. 학부모 가운데는 1명이 구속 기소됐고, 나머지 46명은 불구속 기소됐다.

기소된 학부모에는 박용현 전 두산그룹 회장의 셋째 며느리, 이정갑 전 현대자동차 부회장 며느리, 김기병 롯데관광개발회장 며느리, 나승렬 전 거평그룹  회장의 딸 등 대기업 총수 가족이 포함됐다. 박정구 전 금호그룹 회장의 셋째 딸이자 허진규 일진그룹 회장의 둘째 며느리도 비뚤어진 교육열에 동참했다.


뿐만 아니라 안국약품, 초당약품 등 유명 제약업체 가족과 한 제분업체 며느리도 재판에 넘겨졌다. 강남 성형외과 원장 등 의사 부인도 7명이나 됐다. 충청지역 중견기업 대표의 며느리는 브로커에게 1억원을 주고 영국 등 3개국 위조 여권을 넘겨받아 딸을 서울의 외국인학교 2곳에 편·입학시켜 유일하게 구속됐다.

이들은 2009년부터 부정입학 알선브로커 등에게 5000만∼1억5000만원을 주고 실제 국적취득 여부 확인이 쉽지 않은 중남미의 과테말라, 온두라스, 니카라과, 도미니카 공화국 및 아프리카의 시에라리온 등 국가의 위조여권을 발급받았다. 그 뒤 서울과 경기, 인천 등 8개 외국인학교에 여권 사본을 제출해 자녀 53명을 부정입학시켰다.

위장이혼·결혼에 서류조작·국적세탁·원정출산
재벌 며느리 등 51명 기소…학생 53명 퇴학 조치

이들이 사용한 수법은 외국 국적을 얻기 위해 한국인 남편과 고의로 이혼한 뒤 외국인과 결혼을 한 ‘위장결혼형’부터 합격할 때까지 허위 여권을 사고 또 사는 ‘국적갈아타기형’, 현지에 방문해 여권을 받아오는 ‘현지방문형’ 등 각양각색이었다.

서울 강남에 거주하는 중견기업체 사장의 며느리인 백모(36)씨는 자녀 3명을 모두 미국에서 원정 출산했다. 첫째와 둘째는 미국 시민권자 자격으로 국내 외국인학교에 입학했다.

하지만 외국인학교 입학자격이 변경(2009년 2월)되면서 부모 중 1명이 외국 국적이 필요해지자 백씨는 강남의 유학알선 브로커에게 외국국적 취득을 의뢰하고 불가리아 여권을 받았다.

 

그러나 브로커가 보기에도 위조한 티가 너무 나자 새로이 영국여권을 위조한 뒤 셋째 딸을 R외국인 학교에 입학시켰다.


이후 백씨는 집 근처에 있는 영국계 외국인학교에 딸을 전학시키고 싶었지만 학교에서 요구하는 국적상실신고 서류가 위조된 영국 여권으로는 입학이 어렵자 다시 브로커에게 의뢰해 중남미 과테말라 여권을 부정 발급받은 뒤 국적상실신고를 하고 영국계 외국인학교에 자녀를 입학시켰다.

강남의 병원장이면서 의사 부인인 이모(38)씨는 아예 한국인임을 포기하고 국적을 도미니카로 바꿨다. 이씨는 2012년 브로커 김씨에게 4500만원을 건네고 도미니카의 지방도시로 출생지가 기재된 위조여권으로 자녀 1명을 외국인학교에 보냈다.

국적 버린 의사부인
위장 결혼한 사장부인

중견기업 사장 부인인 오모(46)씨는 브로커 제안에 따라 남편과 위장 이혼까지 했다. 오씨는 2010년 에콰도르 국적을 취득하기 위해 한국인 남편과 위장이혼한 뒤 에콰도르 국적의 외국인과 위장결혼까지 했다.

하지만 국적 취득이 순조롭지 않자 브로커가 위조해 준 외국국적동포 국내거소신고증을 G외국인학교에 제출해 자녀를 입학시켰다.

재벌가 며느리인 박모(38)씨는 지난 6월 1억원을 주고 브로커를 통해 중남미의 과테말라 여권을 취득하려 하던 중, 브로커가 ‘국적상실신고를 하려면 과테말라에 갔다 온 것처럼 출입국 기록이 있어야 하는데 과테말라로 가는 경유지인 미국만 갔다 오면 된다’고 말하자 실제로 미국 샌프란시스코 여행을 다녀왔다.

이후 브로커는 ‘과테말라 국적을 취득하려는 희망자가 많다’는 이유로 박씨에게 과테말라가 아닌 니카라과 여권 사본을 구해 주었고 박씨는 이를 그대로 D외국인학교에 제출해 자녀를 입학시켰다.

학부모 조모(38)씨는 과테말라 여권을 취득하기 위해 30시간의 비행시간도 마다하지 않고 직접 과테말라까지 날아가 뇌물을 주고 여권을 받아왔다. 현지 브로커들은 요건이 되지 않는 조씨의 여권을 발급받기 위해 시도했지만 뇌물을 주고 미리 말을 맞춰 두었던 공무원이 출근을 하지 않았다.

이에 이들은 계속 대기하다 담당 공무원이 출근한 후에 직접 여권을 받았다. 조씨는 이 여권을 갖고 자녀를 T외국인학교와 D외국인학교에 입학시켰다.

외국인학교에 열광
재벌가 사람들 왜?

이처럼 부유층 학부모들이 법을 무시하면서까지 자녀를 외국인학교에 입학시키려는 것은 외국인 학교가 ‘미국식 교육’을 받을 수 있을 뿐 아니라 명문대 진학의 지름길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10여 년 전부터 강남 학부모들 사이에서 외국인학교는 조기유학의 대안으로 급부상했다. 

해외 유학 업무를 담당해온 한 담당자는 부유층 사이에서 부는 외국인 학교 열풍에 대해 “국내에서도 선진국과 동일한 시스템으로 자녀를 교육시키고자 하는 열망과 조기유학의 폐해가 들어나기 시작한 시점과 맞물린 것 같다”며 “조기유학의 경우 비용도 많이 들고 떨어져 있으니 자녀의 탈선 가능성도 클 수밖에 없는데 반면 외국인학교는 국내에서 생활하며 가족과의 단절에서 오는 정서적인 폐해를 막을 수 있고 국내 고등학교 내신에 해당하는 학업성적평점(GPA)을 높게 받기가 상대적으로 쉽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이 관계자는 “외국인 학교는 일정 정도 이상의 학점만 이수하면 졸업이 가능한데다 미국 사립학교의 졸업자격까지 갖출 수 있어 미국 명문대 진학이 용이하다”며 “여기에 상류층 자녀들끼리 학교를 기반으로 두터운 인맥을 형성할 수 있다는 점도 장점”이라고 덧붙였다.

명문대 진학 지름길…조기 유학 대안으로 떠올라
입학 서류에 대한 공통기준·검증절차 따로 없어

외국인학교의 한 반의 정원은 20∼25명 정도다. 모든 수업은 토론식으로 진행되며 수업시간 외에 자유시간도 많다. 늦어도 오후 3시면 정규 수업이 끝나고 계절별로 30∼40여개의 방과 후 활동이 자율적으로 실시된다. 학교·학년마다 차이가 있지만 학비는 1년에 2000만∼3000만원에 이른다. 기숙사비 등을 모두 합치면 4000만∼6000만원까지 들기도 한다.

외국인학교에 다니는 자녀를 둔 한 학부모는 “학비가 싼 편은 아니지만 충분히 투자할 가치가 있다”며 “일반학교를 보내도 사교육비 지출이 만만치 않기 때문에 투자한 만큼 ‘본전’을 뽑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내국인의 입학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전국 51개교의 외국인학교 중 외국인 학생보다 국내 학생 숫자가 많은 학교가 12곳에 달한다. 특히 인천에 위치한 청라달튼외국인학교의 경우 현원 106명 중 한국인 학생이 89명(84%)이나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상황이 이렇자 외국인 학교 건물 신·증축에 투입된 세금만도 2000억원이 넘는데 국민혈세가 부정입학 부유층 자녀들의 교육에 사용됐다는 비난도 적지 않다. 부정입학을 도모한 학부모에 대한 처벌도 중요하지만 외국인학교 입학 실태를 관리·감독하는 감시망 강화 등 제도 개선도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그들만의 학교
돈이면 다 된다?

검찰 관계자는 “상당수 외국인학교가 입학 서류에 대한 공통기준이 없어 학생·학부모의 여권사본과 출입국증명서만 받아 입학생을 선발하고, 제출서류를 검증하는 절차도 갖추지 못하는 등 감시 시스템이 전혀 없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며 “부유층 아이들 교육에 필요한 덕목으로 아빠의 무관심, 엄마의 정보력, 자녀 본인의 체력, 할아버지의 재력 등이 필요하다는 우스갯소리도 나오는데 이번 수사를 계기로 외국인 학교 입학 및 실태관리에 대한 전반적인 제도 개선이 요구된다”고 말했다.

법과 양심을 무시한 도덕 불감증과 ‘금전만능주의’ 행태를 여실히 드러낸 사건. 어떤 학부모는 “왜 외국 국적을 취득했느냐”는 물음에 “내 돈 내서 내 여권 샀는데 뭐가 잘못이냐”고 되레 따졌다고 한다. 빗나간 자식사랑이 결국 자녀에게 ‘돈이면 다 된다’는 편법을 먼저 가르친 것은 아닌지 성찰할 필요가 있다.

김설아 기자 <sasa7088@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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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