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2팀] 박정원 기자 = “우리 아이들은 이제 어디서 뛰어 놀아야 합니까?”
최근 초등학교 5학년 자녀를 둔 학부모 A씨는 학교로부터 당혹스러운 안내문을 받았다. 안전사고 우려를 이유로 방과 후 운동장에서의 축구 활동을 전면 금지한다는 내용이었다.
학교 측은 아이들이 다칠 경우 발생할 책임 소지와 일부 학부모들의 민원을 의식해 ‘금지’라는 행정적 결단을 내린 것이다.
하지만 이를 바라보는 학부모들의 시선은 싸늘하다. 아이들의 ‘성장판’이자 유일한 에너지 발산 창구인 운동장이 행정 편의주의에 의해 점차 폐쇄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런 현상은 비단 한 학교만의 일이 아니다. 실제로 지난 2월 부산의 한 초등학교도 축구와 야구 등 구기 종목을 운동장에서 금지해 논란이 됐다. 축구공에 맞거나 넘어져 다치는 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학교와 교사에게 쏟아지는 과도한 책임 추궁과 민원이 결국 ‘금지’라는 극단적인 결과로 이어진 것이다.
학교 밖 교육 활동의 위축은 더욱 심각한 수준이다. 서울시교육청의 ‘최근 3년간 현장체험학습 운영 현황’ 자료에 따르면, 서울 지역 초등학교 중 1일형 현장체험학습을 실시한 학교는 2023년 598곳(98.8%)에서 2025년 309곳(51.1%)으로 2년 만에 절반 가까이 급감했다. 숙박형 수학여행을 가는 학교 역시 같은 기간 13.2%에서 6.8%로 반토막이 났다.
이 같은 기피 현상의 배후에는 ‘사법 리스크’가 자리 잡고 있다. 2022년 강원도 속초에서 현장 체험학습 중 학생이 버스에 치여 사망한 사고와 관련해, 최근 법원이 인솔 교사에게 유죄(금고형 집행유예)를 선고하면서 교육계의 공포는 극에 달했다.
이런 가운데 최근에는 강원도로 2박3일 수학여행을 추진하던 한 중학교가 비용 논란 끝에 결국 수학여행을 취소하는 일까지 발생했다. 해당 학교가 1인당 60만6000원의 경비를 안내했다가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과도한 비용’ 논란이 일자 결국 취소 결정을 내린 것이다.
수학여행 일정에는 박물관 탐방, 케이블카, 루지, 목장 체험, 올림픽 체험 등이 포함돼있었으며, 전세버스 비용 12만1000원, 숙식비 15만원, 5끼 식비 9만7000원, 입장료 10만9000원 등으로 구성됐다.
해당 학교 학부모로 알려진 한 누리꾼은 온라인 커뮤니티에 “별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이슈화되면서 일이 커지더니 결국 학교에서 수학여행 취소를 결정했다”며 “비싸다고 생각하면서도 아이의 추억을 위해 보내려 했던 것 아니겠냐. 결국 피해는 대다수 아이들이 보게 됐다”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실제로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의 설문조사 결과, 교사의 98.5%가 학생 안전사고에 대해 ‘불안함’을 느끼고 있으며, 82.1%는 이런 불안감이 ‘교육 활동을 매우 위축시키고 있다’고 답했다. 사고가 발생하면 학교안전공제회 보상과는 별개로 교사 개인이 민·형사상 소송에 휘말리거나 치료비를 배상하는 사례가 빈번하기 때문이다.
학교가 안전, 민원 등 각종 논란을 피하기 위해 정적인 공간으로 변모하는 사이, 일부 학부모들 사이에선 아이들의 건강하게 자랄 권리가 박탈되고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A씨도 그중 한 명이다. 그는 15일 온라인 커뮤니티 ‘보배드림'에 글을 올려 “운동장은 아이들의 기본권이 보장돼야 할 공간”이라며 “안전 펜스를 높이거나 시간을 조절하는 노력도 없이 무조건 금지부터 하는 것은 교육기관의 본질을 저버리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이어 “축구는 단순한 공놀이가 아니라 협동심과 규칙, 그리고 에너지를 발산하는 배움의 과정”이라며 “아이들이 운동장에서 마음껏 소리 지르고 땀 흘리며 자라길 바라는 것이 무리한 욕심인가”라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학교가 민원 대응 창구로 전락해 버리는 현실이 안타깝다”며 “우리는 지금 아이들에게 ‘조심하라’고 가르치는 게 아니라 ‘아무것도 하지 마라’고 가르치는 것이 아닌가 싶다”고 우려했다.
전문가들은 학교와 교사에게만 무한 책임을 지우는 현재의 구조가 계속되는 한, 운동장에서 공을 차거나 체험학습과 같은 학생들의 추억을 쌓는 과정은 영영 돌아오기 어려울 것이라고 경고한다.
교육계에 이 같은 우려가 확산되자, 국회는 지난해 ‘학교안전사고 예방 및 보상에 관한 법률’을 개정했다. 개정안에는 교직원이 고의나 중과실 없이 안전조치 의무를 다했을 경우 민형사상 책임을 면책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하지만 일선 교육 현장의 반응은 미지근하다. ‘충분한 안전조치’의 기준이 모호해 결국 사고 발생 시 책임 소재를 다투는 과정에서 교사의 부담이 여전하다는 지적이다.
인천의 한 고등학교 교사 최모(31)씨는 “개정안만으로는 현장의 불안감을 해소하기에 역부족”이라며 “교사의 고의나 중과실이 없다면 책임을 면제해준다는 사회적 합의와 더불어, 학부모 역시 ‘내 아이’만을 이유로 과도한 민원을 제기하기보다 학교를 신뢰하는 성숙한 시민 의식이 절실하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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