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기획> 구조견 입양으로 다시 찾은 행복

뜬장 개가 가족이 되기까지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일요시사>와 동물구조단체 사단법인 위액트가 구조견 입양을 위해 의기투합했다. 지난해 10월 <일요시사> 지면에 구조견 홍보 캠페인을 처음 선보인 이후 현재 60회에 이르렀다. 구조견이 새로운 가족을 만나 그들의 ‘식구’가 되기까지의 여정을 조명했다.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자기의 과거와 현재와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시인 정현종의 작품 ‘방문객’의 한 구절이다. 누군가와의 만남이 한 인간의 인생에 있어 굉장히 거대한 사건이라는 뜻으로 풀이된다.

1년2개월
협업 프로젝트

동물은 어떨까? 열악한 환경에 방치돼있던 동물이 새로운 주인을 만나 구원받고 동시에 인간의 기쁨이 된다. 동물은 인간에게, 인간은 동물에게 서로의 일상으로 자리 잡는다. 동물을 들인다는 건 사람을 들이는 것만큼이나 인간의 삶에 있어 실로 대단한 일이다. 특히 인간에게 상처 입은 동물을 끌어안는 건 큰 용기가 필요하다.

위액트는 <일요시사>에 게재하는 구조견 입양 캠페인 문구에 ‘상처를 갖고 있는 구조견을 가족으로 맞이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결정이 아니란 걸 알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사랑의 힘을 믿습니다. 아이들에게 기적을 만들어주세요. 폭력 속에도 멍들지 않은 애정, 새 가족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아이들의 삶이 되어주세요’라고 적었다.

지난해 10월28일 <일요시사> 1503호에 실린 ‘스칼렛’을 시작으로 1564호 ‘바라’까지 60마리의 구조견이 지면에 실렸다. 위액트 측에 따르면 이 가운데 약 80%가 국내외로 입양됐다. <일요시사>는 연말을 맞아 위액트 입양팀과 함께 구조견 입양 캠페인을 복기했다.

그리고 제2의 견생을 살고 있는 표고(구조 당시 이름은 빈츠)와 그 가족을 만났다.

지난해 3월 위액트는 한 건의 제보를 받았다. 강원도 동해에서 누군가가 유기견을 포획해 개 농장으로 유통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당시 구조에 참여한 함형선 위액트 대표는 “구조를 자주 하다 보면 개와 주변 환경만 봐도 상황을 대충 짐작할 수 있다. 개들의 크기가 다양했고 목줄의 종류도 천차만별이었다. 각기 다른 곳에서 데려온 것으로 추정됐다”고 말했다.

이어 “개들의 상태가 외관상으로는 멀끔해 보였지만 심장사상충처럼 특정 개월 수 이상일 때만 감염되는 질병에 걸려 있었다. 빈츠는 그곳에서 구조했던 다섯 마리 중 한 마리였다. 검은색과 흰색이 섞인 빈츠의 모색이 과자 ‘빈츠’와 비슷해 활동가들이 그렇게 이름 붙였다”고 설명했다.

강원도 동해시서 극적 구조
지난 9월 입양 파티서 만나

빈츠는 좁고 배설물로 가득한 뜬장, 상한 음식, 더러운 물 등 너무나 열악한 환경에서 견생의 끈을 붙잡고 있었다. 당시 동행한 <일요시사> 영상팀이 포착한 영상에서도 빈츠는 구조자가 손을 내밀자 한껏 몸을 웅크리고 뒷걸음질 쳤다. 구조 당시 몸무게는 6㎏으로 털은 짧았고 바싹 마른 상태였다.

그로부터 9개월 뒤 빈츠를 다시 만났다. 집으로 들이닥친 취재진을 보고 처음에는 경계했지만 곧 주인 정유희씨의 곁에서 안정을 찾았다. 빈츠는 새로운 이름인 ‘표고’로 불리고 있었다. 정씨와 그의 아들이 오랜 시간 고민해 지은 이름이었다.

그 사이 표고는 몸무게가 12㎏까지 불었고 털도 ‘퐁실퐁실’하게 자란 상태였다. 정씨가 떠준 옷을 입고 있는 표고의 표정에서 구조 당시의 공포와 불안은 찾아볼 수 없었다.

지난 19일 표고의 새로운 집이 된 서울 서대문구의 한 아파트에서 정씨와 표고를 만났다. 정씨가 인터뷰하는 내내 표고는 자신의 방석에서 꾸벅꾸벅 졸았다.

정씨는 “표고가 집에 온 이후로도 한동안 이름을 정하지 못했다. 산책하거나 산에 가면서 아들과 나무나 풀, 식물 이름을 따서 지으면 어떨까 얘기했는데 마음에 드는 이름이 잘 안 떠오르다가, 어느 날 아들이 ‘표고 어때?’라고 물었다. 듣자마자 너무 좋아서 그 이름으로 했다”고 말했다.

‘표고’라고 하면 대부분 표고버섯을 떠올리는데, 정씨는 그 뜻 외에도 ‘바다의 면이나 어떤 지점을 정해 수직으로 잰 일정한 지대의 높이’ 등의 의미도 마음에 들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름을 정한 이후 빨리 익숙해지도록 자주 불러줬다. 3~4일이 지나니 표고라는 이름에 반응하더라. 영특하다”고 웃었다.

3년 전 정씨가 15년 동안 키운 고양이가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정씨는 이후 고양이를 입양하려고 백방으로 알아봤다. 구조자가 입양 신청서를 쓰는 과정에서 지나치게 까다롭게 구는 등 힘든 일도 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정씨는 개를 입양하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까다로운
입양 절차

그러다 친구가 임시보호(임보)하던 개를 며칠 맡아준 뒤 관심이 생겼다.

정씨는 “고양이를 기를 때는 특성상 집에서 거의 활동했는데 개는 아이와 공놀이도 하고 몸으로 노는 게 된다는 걸 알았다. 그때부터 포인핸드(유기동물 입양 플랫폼) 어플에서 개를 찾아보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그는 1년가량 정말 많은 유기견을 살펴봤지만 여름이 다 지나갈 때까지도 마음에 닿는 개를 만나지 못했다.

그러다 우연히 보게 된 게 바로 표고(당시 빈츠)였다. SNS 알고리즘으로 위액트 사이트에 게재된 표고의 공고 이미지가 뜬 것이다.

정씨는 “8~9개월 동안 사진을 한 번 본 뒤에 다시 찾아서 본 경우가 없었는데 표고는 계속 생각났다. 나중에는 내가 보지 못한 사진이나 영상이 있을까 싶어서 열심히 찾아서 봤다. 실물을 보러 갈 때쯤엔 웹에 올라온 영상이나 사진은 전부 본 상태였다”고 설명했다.

정씨와 그의 아들, 표고의 만남은 위액트에서 주최한 ‘입양파티’를 통해 이뤄졌다. 지난 9월에 진행된 입양 파티에서 정씨와 그의 아들은 표고에만 온 신경을 집중했다.

위액트 관계자는 당시 두 모자의 모습을 보고 “일반적으로 초등학생이나 중학생은 강아지에 관심을 보인다. 그런데 그분들은 오로지 표고였다. 그래서 우리끼리도 ‘빈츠는 저 집에 가면 되겠다. 저 집에 가면 평생 행복하게 살겠다’고 말할 정도였다”고 말했다.

정씨는 “아들이 입양 파티 장소에 들어가자마자 ‘어? 빈츠다!’ 하고 먼저 알아봤다. 표고는 그때도 소심하고 (사람이) 무서워서 익숙한 사람 다리 사이에 얼굴만 내밀고 있었다. 그때부터 표고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걸음걸이가 어떤지, 눈빛이 어떤지, 어디를 많이 보는지 유심히 봤다. 표고는 내내 수줍어했던 기억이 난다”고 웃었다.

가족·이웃
살가워져

정씨는 입양 파티에서 찍은 사진과 영상을 집에 와서도 여러 번 봤다. 이후 표고의 입양 신청서를 작성했다. 위액트의 입양 신청서는 ▲주거 환경 ▲가족 구성원 ▲반려 경험 ▲입양 동물 케어 등 질문만 수십 개에 이를 정도로 ‘악명(?)’ 높다.

입양 신청서가 통과된 이후에도 화상 인터뷰, 트라이얼 등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트라이얼은 입양을 원하는 강아지를 2주간 집에서 임시 보호하면서 위액트가 주는 미션을 수행하는 절차다. 웬만한 마음이 아니면 애초에 시작조차 하기 어려운 수준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입양 신청서 문항 하나하나를 아들과 논의해 적었다”는 정씨는 “보기에 상당히 까다로운 절차인데 힘들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오히려 입양 신청서를 작성한 이후에 용기 같은 게 막 생겼다고 할까, 마음가짐이 좀 달라졌다. 표고가 우리 가족이 될 수 있게, 위액트에서 표고를 우리에게 허락해 주실 수 있게, 되게끔 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회상했다.

긴 절차를 거쳐 표고는 정씨의 가족이 됐다. 입양 확정 이후 6개월 뒤에 소유권 이전이 이뤄지는 위액트 정책상 아직 정식 견주는 아니지만 정씨는 그때부터 ‘내 강아지’라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그렇게 표고는 정씨에게는 ‘둘째’, 정씨의 아들에게는 ‘여동생’으로 이들의 품에 안겼다.

정씨는 “표고가 온 이후로 내가 아들에 대해 놓치고 있던 부분을 알게 됐다. 아들이 표고를 보면서 때때로 질투할 때가 있는데 그럴 때마다 아들에게도 똑같이 스킨십을 해주고 표현해준다. 그러면서 나도 모르게 생겼던 아들과의 거리감을 인식하고 좁혀나가고 있다”며 “또 이웃하고의 대화도 많이 늘었다. 표고는 산책하러 나갈 때마다 다른 개들한테 관심을 보이곤 하는데 그때마다 개 주인들과 날씨 얘기라도 하게 된다”고 웃음을 터트렸다.

재택근무 중인 정씨는 표고와 함께 오랜 시간을 보낸다. 그는 “오전 8~9시에 아침 산책을 하고 돌아와 밥을 먹고 잠시 놀아준다. 이후 나는 일하고 표고는 잠을 잔다. 분리불안이 조금 있어서 낑낑대긴 하는데 그것도 나아지는 중이다. 오후 6시경에 아들과 같이 저녁 산책을 간다”고 설명했다.

마르고 볼품없던 모습 사라져
“누구나 할 수 있는 결정·행동”

일주일에 1번 정도는 산에 올라가는데 그때는 6시간가량 산책을 한다고 했다.

정씨는 “개에게 반복된 루틴을 만들어주는 게 좋다고 해서 아침, 저녁 산책길은 완전히 똑같다”고 말했다. 그러는 사이 표고의 상태는 처음보다 엄청나게 좋아졌다.

그는 “처음에 표고는 다리를 약간 저는 식으로 걸었다. 신체적으로 다치거나 불편해서가 아니라 심리적으로 눈치를 보느라 몸을 웅크리면서 생긴 버릇이다. 집에 온 뒤 산책을 하면서 그 부분이 정말 많이 좋아졌다”고 뿌듯해했다. 실외 배변을 하면서 배변 실수도 사라졌고 분리불안도 좋아지고 있다.

정씨는 “동물이 인간 없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렇지 않다. 사람은 말을 하지 못하는 시기엔 우는 걸로 의사 표현을 하지 않나. 그때 그게 뭘 뜻하는지 모르는 경우가 왕왕 있다. 하지만 개는 다르다. 뭘 더 먹고 싶고, 산책을 더 했으면 좋겠고 같이 좋고 싫음이 명확하다. 훈련만 되면 똥오줌도 가리고 루틴을 만들어주면 손 가는 부분도 줄어든다. 초등학교 저학년 정도의 아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씨는 아주 조심스럽게 “저와 제 아들이 좋은 일을 했다거나 거창한 일을 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인터뷰에 응하게 된 계기를 묻자 나온 답이었다. 그는 “표고를 만나기 전 포인핸드를 보면서 관심이 가는 개에 표시를 해뒀다. 그 사이트에 최근 들어가 봤는데 그 아이들이 여전히 그대로 있었다. 입양된 개는 2~3마리에 불과했다. 생각보다 개 입양이 잘되지 않는 걸 알게 됐다”고 전했다.

이어 “개 입양이 대단한 일이 아니라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걸 말하고 싶었다. 개를 구조하고 입양 보내는 위액트 분들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들을 응원하고 싶은 마음에 인터뷰하게 됐다. 본인들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마음이 어떤 것인지 알기에 힘을 실어주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개의 상처
회복으로

정씨는 “누구든지 자기 생활 루틴이 있지 않나. 밥 먹고, 잠자고, 일하는, 하루 24시간을 어떻게 쓰는지는 사람마다 다 다르다. 그 시간에 몇 퍼센트를 강아지에게 떼어줄 수 있는지, 여가나 문화생활 하는 시간을 줄여 그 시간을 개에게 쓸 수 있는지, 그런 생각이 확실하게 들면 개와 행복한 생활을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입양을 원하는 이들에게 당부했다.

<jsjang@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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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선거 이후 꺼낼 국민의힘 개헌 꽃놀이패

지방선거 이후 꺼낼 국민의힘 개헌 꽃놀이패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여야 6당이 참여한 개헌 시도는 국민의힘의 투표 불참으로 인해 결국 무산됐다. 입법적 전격전을 선호하는 민주당은 지방선거 이후 내년 재보궐선거까지 약 10개월 동안의 공백기를 노릴 가능성이 있다. 국민의힘의 청야전술은 이를 막아낼 수 있을까? 국민의힘을 제외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등 여야 6당이 발의한 헌법 개정안이 지난 7일 의결정족수 미달로 투표 불성립 처리됐다. 국민의힘은 이날 표결 불참을 당론으로 정한 후 의원 전원이 불참했다. 이튿날인 8일, 국민의힘이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를 예고하자, 우원식 국회의장은 개헌안 처리를 중단했다. 정족수 미달 투표 불성립 현행 헌법에 따르면, 개헌안은 국회 재적 의원 과반이나 대통령이 발의할 수 있다. 대통령은 이를 20일 이상 공고해야 하고, 국회는 공고일로부터 60일 이내에 재적 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으로 의결해야 한다. 이어 30일 이내에 국민투표를 거쳐 유권자 과반이 투표하고, 투표자 과반이 찬성해야 확정된다. 지난 7~8일 기준, 국회 재적 의원은 286명이라서 개헌안 가결에는 191명의 찬성이 필요하다. 국민의힘 의원은 모두 106명이다. 여야 6당 의원 전원이 개헌안 투표에 참여해 찬성한다면, 국민의힘에서 최소 11명 이상의 이탈자가 나와야 한다. 개헌안에는 ▲헌법 전문에 5·18 광주 민주화 운동과 부마 민주항쟁 명시 ▲계엄 선포 시 48시간 이내 국회 승인을 받아야 유효하도록 변경 ▲국회가 계엄 해제를 능동적으로 주도할 수 있도록 대통령 권한 축소 등의 내용이 담겼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지난 7일 청와대 앞에서 진행된 현장 최고위원회의에서 “이재명은 연임 불가 선언 요구를 끝내 거부했다”며 “개헌을 하겠다면, 먼저 이재명이 연임 불가를 선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송언석 원내대표는 지난 8일 기자들을 만나 “부마 민주항쟁과 5·18 광주 민주화 운동 등을 헌법 전문에 담는 데 대해 근본적으로 반대하지 않는다”며 “헌법 전문은 특정 사건에 대한 게 아니라, 통합적 역사 인식 아래 균형 잡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건국·새마을운동·근대화도 다 헌법 전문에 담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은 지난 7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1987년 개헌은 오로지 제왕적 대통령 견제에만 집중해서, 국회에 예산·입법 등 막강한 권한을 몰아주는 기형적 구조를 탄생시켰다”고 주장했다. 이어 “국회가 권력남용을 이유로 언제든 대통령과 국무위원들을 탄핵의 심판대에 세울 수 있다면, 헌정 질서를 무너뜨리면서 폭주하는 국회도 해산의 심판대에 설 수 있어야 견제와 균형의 원리가 완성된다”며 “의회해산권 도입을 본격적으로 논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나 의원은 지난해에도 민주당을 비판할 때마다 의회해산권 도입을 주장했다. 국민의힘 주요 관계자들의 발언에 대해서는 “개헌안 속 숨겨진 덫을 잘 파악한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이번 개헌은 통치 구조 개헌의 전초전일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의 주장에 대해서는 “헌법적 상식과 맞지 않는다”는 지적도 나온다. 헌법 제128조 제2항은 “대통령의 임기 연장 또는 중임 변경을 위한 헌법 개정은 그 헌법 개정 제안 당시의 대통령에 대해서는 효력이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는 과거 대통령들이 개헌을 통해 정권을 연장했던 과오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반성적 고려 차원에서 삽입된 조항이다. 대통령이 해당 조항의 효력을 무시하면서 임기 연장·중임 변경을 추진하려면 하야한 후 재선을 노려야 한다. 건국·새마을운동·의회 해산 쏟아내…과연? 이재명 독재 연장? 헌법 구조상 불가능한데… 하지만 이런 상황에선 대통령이 감당해야 할 정치적 책임이 매우 클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상식적이라고 보기 어렵다. 송 원내대표가 헌법 전문에 추가할 것을 요구한 건국·새마을운동·근대화도 실제로 시도할 경우, 엄청난 논쟁이 불거질 가능성이 있다. 헌법 전문은 실제 헌법재판에서 보충적 규범으로 활용되는 등 단순한 선언이 아니라 법 규범으로서의 효력을 가지고 있으며, 국가의 정체성과 헌법의 취지를 선언하는 문장이다. 따라서 국민 대다수가 동의하는 가치를 담아야 한다. 이를 위해선 역사적 평가가 끝난 불가역적 가치를 담는 게 원칙이다. 그래서 현행 헌법 전문에는 ▲3·1 운동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 ▲4·19 민주 이념 등이 담겨있다. 여야 6당이 전문 추가를 시도했던 ▲5·18 광주 민주화 운동 ▲부마 민주항쟁 등도 역사적 평가가 끝났다. 특히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의 재평가를 주도했던 정권은 국민의힘의 전신 신한국당 소속 김영삼 전 대통령의 문민정부였다. 송 원내대표가 주장한 건국 이념 반영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과 곧바로 충돌한다. 임시정부 법통 논란은 해방 직후에도 치열하게 진행됐던 논쟁이었다. 임시정부의 법통을 인정했던 진영은 이승만 전 대통령·한국민주당 등 우익 진영이었다. 제헌의회도 임시정부 시절 임시의정원의 정통성을 승계하는 방향으로 정통성을 확보했다. 이는 김 전 대통령·김대중 전 대통령도 인정한 후 역사적 상식으로 굳어졌다가 뉴라이트 진영이 건국절 논란을 일으키면서 송 원내대표의 주장으로까지 흘러간 것이다. 건국 이념 반영은 임시정부 법통과 충돌할 수밖에 없다. 나 의원이 주장한 의회해산권에 대해서는 “대통령제와 맞지 않는다”는 반박이 나온다. 의회해산권은 의원내각제 국가에서 총리가 보유하는 권한이다. 의회가 갖는 내각불신임권과 함께 상호 견제를 위한 짝패를 이룬다. 국무총리가 있고, 현역 의원이 내각에 참여하는 우리 통치 체제는 일정 부분 의원내각제 속성을 반영하고 있다. 하지만 대통령은 직선제로 선출된다. 대통령은 의회가 아닌 국민을 향한 정치적 책임을 진다. 아울러 국회는 대통령에 대해 탄핵소추권을 가질 뿐 대통령과 내각을 불신임할 수 없다. 대통령은 구조적으로 의회해산권을 가질 수 없다. 대통령이 의회해산권을 가졌던 것은 유신 헌법과 제5공화국 헌법이었다. 이 헌법은 대통령에게 강력한 권한을 부여했던 프랑스 드골 헌법을 참고했다. 역사적 평가 불가역 가치 국민의힘이 개헌안 표결에 불참하거나 필리버스터를 시도하는 것에 대해선 “나름대로 이유는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106석을 보유한 국민의힘으로서는 할 수 있는 일이 그것밖에 없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아울러 개헌안의 주요 내용인 ▲5·18 광주 민주화 운동 ▲부마 민주항쟁 등은 모두 전신 민주공화당·민주정의당을 포함한 국민의힘의 약점이다. 국민의힘으로서는 4·19 혁명에 이어 역사적 약점이 헌법 전문에 추가되는 굴욕을 감당하기 어려울 가능성이 크다. 이 때문에 국민의힘은 자가당착에 빠질 수 있는 부분까지 감수하면서 개헌안 표결에 불참했다. 부마 민주항쟁의 무대 부산·마산은 오랫동안 국민의힘을 탄탄하게 받쳐주던 주된 지지 기반이었다. 부산·경남은 노무현 전 대통령 등장 이후 경합 지역이 됐다. 국민의힘은 개헌 투표에 불참하면서 부산·마산의 위업을 헌법 전문에 담는 것을 걷어차는 외통수에 갇혔다. 비상계엄 관련 개헌안은 근본적으로 대통령의 권한을 약화시키면서 국회의 권한을 강화한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국민의힘으로서는 개헌을 반대할 수밖에 없었다.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서는 국민의힘과 보수 진영 내부에서조차 평가가 일단락된 사안이기 때문이다. 아울러 국민의힘이 배출한 전직 대통령의 업보가 헌법에 명백하게 못 박히는 것이다. “국민의힘은 위헌 정당”이라는 암시가 새 개헌안에 담기는 것을 배제하기 어렵다. 여야 6당 중 민주당에 대해선 “국민의힘의 구조적 약점을 날카롭게 찌르면서 기습적인 총력전을 시도한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각 정당은 이미 6·3 지방선거라는 총력전을 앞두고 있다. 국민의힘이 개헌안 표결에 불참한 이유에 대해선 “개헌 시도가 지방선거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인식을 한 것 같다”는 분석이 나온다. 민주당이 ‘총력전 속 총력전’을 시도한 것과 비슷하다. 개헌 시도와 6·3 지방선거를 묶는 연환계를 구사하면서 전쟁을 양면 전쟁으로 바꾸는 것이다. 당세가 줄어들어 물량 동원에 한계를 보이는 국민의힘을 상대로 심리적·물리적 과부하를 유도한 것이다. 이는 장 대표의 지도력 논란까지 파고들어 결정적 지점에 화력을 집중하고, 국민의힘의 정치적 명분까지 꺾으려 했던 난도 높은 승부수였다. 개헌안 표결은 진행하지 못했지만, 국민의힘의 궁색한 현실을 전방위적으로 폭로했기 때문에 “졌지만 지지 않은 승부”라는 평가가 나올 수도 있다. 국민의힘은 그 궁색한 현실 때문에 투표 불참·필리버스터라는 고전적인 청야전술을 동원할 수밖에 없었다. 총력 공격 총력 방어 이는 명장들이나 강대국이 자주 구사하던 전법이었던 사실을 전쟁사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당 태종은 제1차 고당(고구려-당나라) 전쟁에서 패배한 이후 전략을 바꿔 수시로 소규모 부대로 고구려를 침공해 변방을 교란하는 등 소모전을 병행했다. 태종의 뒤를 이은 당 고종은 2회에 걸쳐 대규모 침공을 감행했다. 고구려의 연개소문은 제2차 고당 전쟁 당시 사수에서 당나라 대군을 격파했지만, 방어선이 한반도 내부로 점점 밀리고 있는 양상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어 제3차 고당 전쟁에서는 내부 배반까지 겹쳐 고구려가 끝내 멸망하고 말았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소련군도 독일군이 서부전선 노르망디 상륙작전이라는 기습을 당해 방어에 모든 신경을 쏟고 있을 때, 바그라티온 작전이라는 총력전을 진행해 동부전선 내 독일군을 완전히 전멸시켰다. 민주당이 노린 전세는 이 같은 구도였다. 민주당은 이재명 대통령이 대표로 재임할 당시부터 윤석열정부를 상대로 30건이 넘는 탄핵소추를 발의하거나 법안 물량 공세를 펼치는 등 총력전 양상의 입법전을 주도했다. 170석이라는 압도적 의석수를 확보한 데서 비롯됐다. 원래 민주당은 압도적 지방선거 승리를 기대했다. 그러다가 이 대통령 공소 취소를 강하게 추진하는 상황에 대한 일부 유권자의 반감을 사면서 일부 지역에서는 보수층이 결집하는 등 선거 구도가 백중세로 바뀌고 있다. 그럼에도 민주당은 이 대통령 공소 취소에 대한 의지를 꺾지 않고 있고, 개헌까지 시도했다. 지방선거 종료 이후엔 내년 4월 재보궐선거 전까지는 선거가 없는 만큼, 오는 6월부터 내년 4월까지 약 10개월 동안 여야가 전면전을 치를 가능성은 높지 않다. 이는 실제 정치학·정책학 이론으로도 입증된다. 존 W. 킹던 미국 미시간대 명예교수는 ‘정책의 창’ 이론을 주장했다. ▲사람들이 문제의식을 느끼고 ▲준비된 해결책이 있으며 ▲정치권이 움직일 수 있는 분위기 등 3박자가 맞물리면 ‘정책의 창’이 열린다는 것이다. 민주당의 관점에서는 선거 종료 이후 유권자로부터 직접 심판받지 않는 그 10개월이 정책의 창이 열리는 시기라고 할 수 있다. 개헌 및 이 대통령 공소 취소 등 물량 공세를 밀고 나갈 수 있는 전략적 시간대라고도 볼 수 있다. 업보·약점 헌법 전문 실리면 위헌 정당? 투표 불참·필리버스터…청야전술 한계 전술적으로 보더라도, 국민의힘이 동원할 수 있는 수단은 투표 불참·필리버스터라는 청야전술격 수동적 방어밖에 없다. 법안을 반복적으로 밀어붙이면, 국민의힘은 투표 불참·필리버스터로 대응하게 된다. 그럴수록 국민 피로도가 높아지고, 중도층의 의심을 받게 된다. 진영이 확고하게 나뉜 상황에서는 중도층이 캐스팅 보트를 행사한다. 필리버스터는 말 그대로 마지막 방법이어야 하지만, 국민의힘이 거듭 사용하면서 식상해져 그만큼 비장함의 강도도 낮아졌다. 민주당의 입법적 전격전과 국민의힘의 투표 불참·필리버스터는 일종의 경로가 됐다. 양당 모두 경로 의존성이 생긴 것이다. 물론 국민의힘은 송 원내대표와 나 의원을 통해 ▲건국 담론 ▲새마을운동 ▲근대화 ▲대통령의 의회해산권 등 반격 카드를 제시했다. 하지만 모든 국민의 지지를 얻기 어려운 담론이기 때문에 기존 경로를 고칠 만큼 파급력이 강한 승부수가 되긴 어렵다. 아울러 민주당은 압도적 의석을 가진 집권여당이라는 위치를 이용해 선거 기간이 아닌 10개월 동안에도 지지층을 결집하면서 중도층의 설득을 얻을 영구적 선거운동을 할 준비를 마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이 대통령 공소 취소에 대해선 중도층의 의견이 아직 명확하게 확인되지 않아 민주당으로서도 도박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개헌안의 경우는 다르다. ▲5·18 광주 민주화 운동 ▲부마 민주항쟁 ▲비상계엄 선포 및 해제 요건 변화 등은 국민 대다수가 이미 평가를 마친 사안이다. 이 대통령 공소 취소에 대한 중도층·보수층의 비판을 상쇄할 수도 있다. 민주당은 이 같은 영구적 선거운동을 통해 내년 재보궐선거에까지 대비하는 입법적 공세를 치르려고 한다. 청야전술은 자신의 경제 기반을 모두 허물면서 진행하는 극단적 처방이다. 국민의힘이 투표와 토론을 포기하거나 체력을 소비하는 등 극단적 처방을 할수록 대중·언론의 관심을 얻지 못하는 딜레마에 빠졌다. 이어 지지 기반인 부산·경남의 자랑스러운 역사를 헌법 전문에 담는 것까지 포기해야 하는 악순환의 고리에 접어들었다. 2200년 역사를 자랑하던 동로마 제국이 몰락을 이기지 못했던 사례가 있다. 콘스탄티노폴리스에 세운 테오도시우스 3중 성벽은 오스만 술탄국이 준비한 대형 ‘우르반 대포’를 이겨내지 못했다. 또 예니체리 등 최정예 병력을 앞세운 오스만 술탄국의 물량 공세도 이겨내지 못했다. 여기에 방어전을 실질적으로 주도했던 용병 대장 조반니 주스티니아니가 부상 때문에 전장을 이탈하는 불운까지 겹쳤다. 궁색한 현실 자충수 되나 물론 청야전술에도 한계는 있다. 국민의힘에는 연개소문이나 조반니 주스티니아니조차도 없다. 지방선거가 끝나면 민주당에는 정책의 창이 열릴 것이다. 지도력 공백을 회복하지 못한 국민의힘은 이제 청야전술을 넘어선 새 전술을 고안해야 한다. 국민의힘은 과연 정책의 창을 막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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