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이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공천 심사기준(안)에 ‘12·3 내란 극복 공로상 수상자 15% 가산점’ 조항을 포함한 사실이 확인되면서 정치권이 격랑에 빠져드는 모양새다.
공식 문서는 ‘내란 극복 공로상’이라고 명기하고 있지만, 해석은 사실상 계엄·탄핵 정국에서 핵심 역할을 한 인사들에 대한 보상이라는 인식으로 번지고 있기 때문이다.
가산점 자체는 예전부터 있던 제도지만, 특정 정치적 사건을 기준으로 한 가산점 신설은 민주당 내에서도 거부감이 크고, 국민적 불신을 증폭시키고 있다. 이 조항의 정치적 파장과 구조적 문제를 정리해본다.
공식 문구, ‘12·3 공로상 15% 가산’
민주당이 지난달 10일부터 1박2일 일정으로 열린 지역위원장 워크숍에서 공개한 ‘제9회 지방선거 공직선거 후보자 추천 심사기준 및 방법(안)’의 가장 논란이 되는 부분은 감·가산점 항목의 확대다. 이 중 특히 눈길을 끄는 조항은 바로 12·3 내란 극복 공로상 수상자 15% 가산점이다.
당은 이 항목을 국가유공자·5·18 유공자와 동일한 수준으로 나란히 뒀다. 그 결과 문구만 놓고 보면 내란 극복 공로상이라는 표현이 기존의 국가유공자 범주에 준하는 지위를 갖는 것으로 보이도록 구조화돼있다.
그러나 이 조항은 아직 당규가 아닌 심사기준(안) 단계며, 최고위원회의 의결을 거쳐야 확정된다. 따라서 당 내부에서도 논의 중인 안일 뿐이라고 선을 긋는 상황이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이미 논란이 걷잡을 수 없이 번져버렸다는 것이다. 당이 공식 문구를 다듬기도 전에 언론·정치권의 해석이 앞서가면서 “민주당이 12·3 계엄 저항자들에게 보상한다”는 프레임이 먼저 확산됐다.
이 문구가 정치적 의미로 확장될 여지가 충분했다는 점이 문제의 근원이다. 내란 극복이라는 의미 자체가 강한 정치적 방점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어떤 사건을 내란으로 규정하는 순간, 그 사건은 정치적 해석을 넘어 헌정사적 의미를 지니게 된다. 그런 용어가 공천 기준에 담긴다면 그 파급력은 단순한 정책 문구 수준을 넘어선다.
왜 ‘계엄·탄핵 공로자’로 읽히는가
물론 문건에는 계엄, 탄핵이라는 단어가 직접적으로 등장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언론과 정치권이 이를 곧바로 계엄·탄핵 정국에서 핵심 역할을 한 인사들에 대한 가산점이라고 풀이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민주당은 지난 1년간 12·3 비상계엄을 헌법 파괴 행위와 내란으로 규정해 왔다. 그리고 이를 저지하거나 덮개를 걷어낸 정치적 인물들을 당 내부에서 내란 극복 공로자로 불러왔다. 당의 언어 습관이 그대로 제도 문구에도 반영된 셈이다.
즉 ‘12·3’이라는 날짜와 ‘내란 극복’이라는 용어가 결합되는 순간, 그것은 당연히 계엄·탄핵 정국 전체를 상징하는 코드가 된다. 당 내부에서는 그동안 자연스럽게 사용되던 표현이지만, 공천이라는 제도적 영역에 들어오는 순간 상징성은 훨씬 더 무거워진다.
문제는 민주당의 해석이 국민의 해석과 다르다는 점이다. 국민은 특정 정치적 사건을 기준으로 보상을 제공하는 공천 가산점을 긍정적으로 보지 않는다. 정당 내부의 공적을 당이 내부적으로 보상하는 구조는 닫힌 정치, 폐쇄적 정치 문화의 전형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당이 평소 당내 회의에서 쓰던 언어가 대중적 설득력을 확보하지 못한 채 제도화되면 충돌이 발생한다.
국가유공자와의 충돌 논란
민주당의 가산점 체계는 오랫동안 존재해 왔다. 여성·청년·장애인·정치 신인에게 10~25% 가산점을 부여해 정치적 약자를 보호하고, 진입장벽을 낮추는 장치다. 또 국가유공자·5·18 민주유공자에게도 15% 가산점을 부여해 왔다. 이 체계는 오래된 것이며, 사회적 합의도 상당히 높다.
문제는 12·3 내란 극복 공로상 수상자가 이 구조 안에 새롭게 삽입되면서 발생한다. 가산점의 본래 취지는 사회적 약자의 정치 참여 확대, 혹은 민주주의 공헌자에 대한 예우라는 점에서 비교적 명확했다. 그러나 정치적 사건에 대한 공로라는 기준이 들어오는 순간, 기존 체계는 균열을 일으킬 수밖에 없다.
국민 입장에서 단순한 질문은 “왜 이 사건의 공로가 국가유공자와 같은 등급이 돼야 하느냐?”다.
이 질문에 대해 민주당은 명확한 답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기존 가산점은 공적·희생·사회적 약자라는 보편적 기준을 따른 반면, 이번 가산점은 특정 정치 사건의 특정 역할자에 대한 보상이라는 매우 협소한 기준을 따른다. 이는 공천제도에 있어 확장성이 아니라 분열성을 가져온다.
정치적 보상? 시대정신?
당 내부에서는 이 조항을 정치적 보상이 아니라, 12·3 내란에 맞선 민주주의 수호 세력에 대한 예우라는 논리로 설명한다. 이는 당의 상징적·정치적 가치에 기반한 판단일 수 있다. 그러나 이 판단이 제도로 연결되는 순간, 당을 둘러싼 정치적 프레임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흐르게 된다.
실제로 일부 지역 언론은 “민주당은 이번 6·3 지방선거를 12·3 내란 세력 척결의 연장전으로 보고 있다”고 보도했다. 민주주의 가치 보호라는 명분은 이해할 수 있지만, 공천 기준에까지 적용되는 순간, 그 명분은 정치적 포상으로 읽히기 더 쉽다.
이 조항을 두고 당내에서도 의견이 갈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시대정신을 제도화해야 한다”는 주장과 “정치적 공로 보상으로 보일 뿐”이라는 우려가 충돌하는 것이다. 민주당은 지난 총선에서 청년·여성·장애인에게 가산점을 확대하며 넓은 공감대를 이끌어냈다. 그러나 이번 가산점은 당 내부에서도 확실한 설득력을 얻지 못하고 있다.
국민적 불신 커지는 이유
국민이 이 문제에 신뢰를 보내지 못하는 데는 구조적인 이유가 있다. 먼저 공천은 기본적으로 공정성이 최우선이어야 하는 절차인데, 특정 정치 사건을 기준으로 한 보상 체계는 본질적으로 공정성과 거리가 멀다. 또 계엄·탄핵 정국은 국민을 깊게 갈라놓았던 사건이며, 지금도 해석의 분열이 존재한다.
이런 사건을 공천 기준에 삽입하면 당 내부의 정당성은 강화될지 몰라도 국민적 정당성은 약화될 가능성이 크다.
특히 “당내 핵심 역할자들끼리 서로 보상하는 구조 아니냐”는 의심을 피할 수 없다. 정치적 공로를 제도적 가산점으로 보상하는 방식은 국민이 기대하는 정치의 공공성과 정면으로 충돌하기 때문이다. 이 문제는 공천 과정의 투명성을 훼손할 뿐 아니라, 민주당이 내세워온 개혁·혁신 공천 이미지와도 맞지 않다.
지방선거 본질과의 괴리
“정치적 상징과 가치를 공천 기준에 넣는 것이 바람직한가”라는 질문 이전에 지방선거라는 제도의 본질을 먼저 되짚어야 한다. 지방선거는 지역의 미래 전략과 행정 경쟁력을 평가하는 선거다. 도지사·시장·군수는 지역경제, 산업구조, 복지·교육·교통의 청사진을 설계하고 집행하는 자리다.
문제는 12·3 내란 극복 공로상이 지역의 미래를 설계하는 능력과 어떤 연결점이 있느냐는 것이다.
가산점이 공천 당락을 좌우하는 구조라면, 실질적 행정 역량과 정책 능력이 가산점에 가려질 수 있다. 이는 지방선거 본질을 근본적으로 훼손한다. 지방자치의 핵심은 “지역의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있는가”이지 “특정 정치적 순간에 어떤 역할을 했는가”가 중심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문제는 공천 제도의 전문성 측면에서도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가산점이 늘어날수록 공천 기준이 복잡해지고, 숙련된 인사를 객관적으로 평가하는 기능이 약화된다. 이는 장기적으로 지방행정의 질을 떨어뜨릴 수 있다.
경선판서 최대 변수로 작동
이 조항은 전국 광역단체장 경선판에서 가장 강력한 정치적 변수 중 하나가 될 가능성이 있다. 특정 인물을 직접 지칭하지 않더라도, 계엄·탄핵 정국 당시 전면에 나섰던 단체장·의원·정무직들이 가산점의 수혜자가 되기 때문이다. 이는 공천 경쟁에서 실제로 가산점 수혜자 VS 비수혜자 구도로 정치적 균열을 강화할 수 있다.
전북·경기·광주 등 민주당 강세 지역에서는 특히 영향이 크다. 정치적 공로가 지역 경선판을 뒤흔드는 새로운 계급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이런 구조가 확산되면, 정책 경쟁은 후순위로 밀리고 “누가 12·3 가산점 대상인가”가 공천의 핵심으로 변질될 위험이 있다.
이는 국민이 싫어하는 정치의 내부자 논리가 그대로 재현되는 것이다. 민주당이 지난 10년간 강조해 온 열린 공천, 능력 공천의 기조와도 충돌한다. 가산점 하나가 공천 전체의 설득력을 위협하는 상황이다.
정치 사건의 제도화 리스크
정리하자면, 민주당의 이번 가산점 논란은 단순히 문구 하나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정치적 상징을 제도화하면서 발생한 충돌이며, 공천의 본질적 가치인 공정성과 경쟁력 평가라는 원칙과 충돌하는 구조적 문제다. 민주당이 그동안 유지해 온 공천개혁의 기조와도 맞지 않는다.
정치적 사건을 가치로 삼는 것과, 그 가치를 공천 제도에 직접 반영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일이다. 전자는 정치적 평가의 영역이지만, 후자는 제도적 공정성의 영역이다. 이 둘을 혼동하면 당 내부의 만족은 얻을지 몰라도 국민의 신뢰는 잃는다.
지금 필요한 것은 “누가 공로자인가”를 정하는 일이 아니라, “어떤 기준이 대한민국 지방자치를 건강하게 만드는가”에 대한 재점검이다. 공천은 정당 내부의 축제가 아니라, 시민 전체의 권리와 연결된 제도다. 정치적 사건을 중심으로 한 포상체계는 공천의 본질을 흔들 뿐 아니라, 국민 전체의 신뢰를 잠식한다.
이번 논란은 민주당만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 정치 전체가 되짚어야 할 질문을 던진다. 정당 내부의 기억과 정당 외부의 시선은 다르며, 제도는 항상 국민의 시선에서 검증받아야 한다. 그 기준을 잃는 순간, 어느 정당도 공천의 공정성을 스스로 증명할 수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