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삼기의 시사펀치> AI 시대 인구 감소는 재앙이 아니다

지금 우리 사회는 마치 숫자에 홀린 듯 보인다. 뉴스는 “출산율 0.7명” “지방 소멸” “국가 지속 가능성 붕괴” 등 자극적인 말을 반복하고, 정부는 세금과 예산을 쏟아부으며 아이를 낳아 달라고 읍소한다. 지자체는 집을 주겠다는 포스터를 붙이고, 현금을 주겠다는 현수막도 내건다.

그러나 지금 AI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은 “왜 아이를 낳지 않느냐”가 아니라, “사람이 많지 않아도 돌아갈 수 있는 사회를 만들 생각을 한 번이라도 해봤는가”다. AI가 계획하고 로봇이 일하는 시대의 인구 감소는 재앙이 아니라 새로운 문명의 시작일지 모른다.

현금으로
해결될까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우리나라를 설명하는 단어는 ‘인구절벽’이다. 그래서 정부는 지난 10월 인구소멸지역 7개 군을 선정해 주민들에게 매달 15만원씩 지급하는 농어촌 기본소득 시범사업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자체도 “인구절벽으로 지방이 사라지면 국가가 무너진다”며 마치 우리나라가 절벽 끝에서 떨어지기 직전이라도 된 듯 아우성이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이슈가 되고 있는 인구절벽은 하나의 전제 위에 서 있다. 바로 ‘사람이 경제를 움직인다’는 전제다. 20세기 산업화 시대엔 이 말이 옳았다. 공장엔 노동자가 필요했고, 조립 라인엔 수많은 손이 필요했다. 한 사람이 얼마나 열심히 일하느냐보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일하느냐가 생산력을 결정했다. 이때는 사람 수가 곧 국력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AI 시대다. 공장에는 더 이상 수백명이 필요하지 않다. 로봇과 이를 관리하는 엔지니어 몇 명이면 충분하다. 생산 라인은 이미 자동화됐으며, 심야 물류창고는 불을 끄고도 돌아가는 ‘다크 팩토리’가 됐고, 은행 업무도 사람 대신 키오스크와 AI 상담사가 대신하고 있다.

그렇다면 인구 감소를 단순한 재앙으로 보는 건 과연 맞는 건가. 과거에서 못 벗어난 시선이 아닐 수 없다. 일본이 ‘축소 사회’라는 정책 용어를 만들고, 유럽이 ‘인구 축소를 전제로 한 도시 재설계’를 논의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인구 감소는 사회가 무너진다는 신호가 아니라 “이제 사람이 많지 않아도 돌아가는 체계를 설계하라”는 새로운 문명의 요구다.

인구절벽이 아닌 문명 전환점
종말 아닌 질문 바꾸라는 신호

정부가 인구 문제를 바라보는 시선은 여전히 ‘사람이 줄면 나라가 멈춘다’는 프레임에 갇혀 있다. 통계청의 보고서는 노동력 부족, 생산성 하락, 세금 감소, 복지 재정 고갈 등을 경고하고, 정부는 이를 근거로 출산 장려책을 쏟아낸다. 하지만 이 사고방식은 ‘사람이 일해야 세금을 내고, 세금이 복지를 지탱한다’는 산업화 시대의 경제 운영 체계를 전제로 한다.

문제는 지금 우리의 경제 시스템은 이미 그 프레임을 벗어나 있다는 것이다. 과거엔 사람 수가 GDP를 결정했지만, 지금은 기술 수준이 결정한다. 사람 대신 AI, 플랫폼, 데이터와 무형자산이 부를 창출한다. 소득세나 근로 기반 조세가 국가 재정의 중심이었던 시대는 저물고 있다.

그런데도 정부와 지자체는 여전히 아이를 낳거나 전입하면 돈을 지원하는 방식으로 사람을 늘리려 한다. 기업 역시 인력이 부족하다면서 자동화와 기계 도입으로 인원 감축을 스스로 추진해 왔다. 모순은 여기서 발생한다. 기술이 노동을 대체하고 있음에도 정책은 여전히 ‘인구=노동력=국가 경쟁력’이라는 도식에 머물러 있다.

즉 사회의 운영체제는 이미 AI 기반으로 바뀌었는데, 정책은 아직도 윈도98을 돌리고 있는 셈이다. 단적인 예로, 지자체는 지금도 ‘전입하면 현금 지급’ ‘출산하면 주택 제공’ 같은 1990년대식 정책을 반복한다. 그러나 이는 사람이 필요하다는 게 아니라, 정책이 필요하다는 신호에 불과하다.

유럽연합은 2024년 보고서에서 “인구 감소는 노동시장 위기가 아닌, 자동화에 기반을 둔 재구조화의 기회”라고 해석했다. 그들은 “사람이 줄면 미래가 없다” 대신 “사람이 줄어도 미래가 있도록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인구 통계에 대한 공포가 아니다. 통계를 해석하는 방식과 정책을 만드는 인식 자체의 업데이트다.

자동화적
축소 이론

이제 우리는 인구 감소를 재앙으로 바라보는 대신 새로운 문명적 관점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자동화적 축소 이론(Synthetic Shrinkage Theory)’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 자동화적 축소 이론은 ‘인구 감소는 기술 문명이 인간의 노동을 대체하기 시작할 때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과정이며, 이는 사회 시스템을 재설계해야 한다는 신호’라는 사유의 틀이다.

즉 이 이론은 인구 감소가 과거의 ‘대량 인구, 대량 생산, 대량 소비’의 시대가 끝나고, ‘선택적 노동, AI 자동 생산, 맞춤형 소비’의 시대로 이동하면서 생기는 불가피한 현상이라고 설명한다.

자동화적 축소 이론은 이상적인 이론이 아니다. 실제로 일본·독일·핀란드 같은 국가들은 인구가 줄어들자, 세금을 기업의 자동화 기계에 부과하는 ‘로봇세’와, 데이터 사용료를 시민에게 돌려주는 ‘데이터 배당제(일정 생산성을 넘긴 자동화 기업에 사회 기여금을 부과하는 정책)’ 등을 추진하고 있다.

AI 강국과 선진 복지를 주장하고 있는 이재명정부도 “노동이 사라질 때 복지는 무엇으로 유지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답하기 위해 ‘산업화 시대의 연금과 세금 방식’을 버리고 ‘AI 시대에 맞는 새로운 시스템’을 설계해야 한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지자체는 인구 유입을 위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아이를 낳으면 수백만원을 주며, 전입하면 전세자금을 지원하고, 혼인 신고만 해도 주거 공간을 제공하겠다는 현수막이 아파트 단지 곳곳에 붙어 있다. 사람이 오면 도시가 살아난다고 믿고, 도시가 살아나려면 먼저 사람을 모아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 반대다. 지자체가 살만한 곳이면 사람이 모이고, 그렇지 않으면 아무리 돈을 뿌려도 사람은 오지 않는다. 다시 말해 사람이 없어서 도시가 죽는 것이 아니라 ‘도시가 죽어 있으니 사람이 없는 것’이다.

도시부터
돌아가야

AI 시대에 경쟁력 있는 지자체는 사람이 많은 도시가 아니라, 사람이 없더라도 유지될 수 있는 도시다. 학생 수가 20명 미만으로 줄어든 농촌 학교가 과거엔 폐쇄 대상이지만, AI 튜터와 온라인 강의 플랫폼을 활용하면 도시보다 더 다양한 교육을 아이들에게 제공할 수 있다.

실제로 일본 일부 지역은 ‘작은 학교+원격 강의+지역 공동체’ 형태로 교육 모델을 재구성해, 폐교가 아닌 마을 대학으로 변신하고 있다고 한다. 병원 역시 마찬가지다. 의사가 부족해 문을 닫는 게 아니라, 원격 진료 시스템과 응급 드론 배송 체계를 구축하면 적은 인구에도 불구하고 의료서비스를 유지할 수 있다.

결국 지자체 경쟁력의 중요 요소는 사람 수가 아니라 시스템과 구조다. 지금 지방 소멸을 막는 길은 사람을 붙잡는 것이 아니라, 사람 없이도 유지되는 시스템을 설계하는 것이다. 좋은 시스템이 작동하기 시작하면, 사람은 자연히 돌아온다. 지자체가 할 일은 출산율 경쟁이 아니라, 인구가 줄어도 괜찮은 시스템을 만드는 일이어야 한다.

인구가 줄면 복지와 연금이 무너진다는 말은 절반만 사실이다. 만약 우리가 많은 사람들이 일하고 세금을 내서 많은 사람을 부양하는 구조를 계속해서 고집한다면, 인구 감소는 당연히 국가 재정의 위기로 이어진다.

그러나 이제 세상을 유지하는 방식은 사람의 수가 아니라 기술이 만들어내는 부가가치에 달려있다. 자동화 공정, 알고리듬, 플랫폼, 데이터는 인간보다 더 많은 가치를 만들어내고 있고, 그 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있다.

이제 정부는 사람의 노동에서만 세금을 걷는다는 사고를 버려야 한다. 앞으로 필요한 건 노동 기반 조세에서 기술 기반 조세로 이동하는 일이다.

노동 중심 시스템 의한 통계·정책 틀렸다
복지·세금·연금 시스템도 다시 설계해야

예를 들어 앞에서 언급했듯이 로봇과 AI가 사람 대신 일해서 생산성을 올린다면, 그 자동화 시스템이 낳는 이익 일부를 사회 전체를 위해 환수하는 것이 타당하다. 이른바 ‘로봇세’ 또는 ‘AI세’의 논리다. 물론 기업은 반발할 것이다.

하지만 과거 기업도 근로자에게 이득이 되는 4대 보험과 세금을 내기 싫어했었다. 그것이 지금은 자연스럽게 제도화됐듯, 기술 또한 사회적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우리는 이렇게 질문을 바꿔야 한다. “사람이 줄어도 나라가 굴러가게 하려면 무엇을 바꿔야 하는가?” 이 질문을 던지지 못하면 출산율 1.0이 아니라 2.0이 되어도 답은 없다.

우리는 오랫동안 “아이를 낳아라”라고 말해 왔다. 하지만 “왜 아이를 낳으면 안 되는 사회가 됐는지”는 정작 묻지 않았다. AI 시대 인구 감소는 단지 수치의 변화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당연하다고 여겨온 경제·복지·도시·노동 시스템이 이제 더 이상 시대에 맞지 않다는 경고다.

AI는 이미 인간 없이도 돌아가는 공장을 만들었고, 자동화는 인간에게 시간을 돌려주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의 과제는 명확해진다. 사람이 줄어도 괜찮은 나라, 적은 사람으로도 품위 있게 살아갈 수 있는 사회, 사람의 수가 아니라 사람 한 명의 가치를 경쟁력으로 삼는 국가를 만드는 것이다.

이미 AI 시대에 진입한 세계는 이렇게 두 갈래로 나뉠 것이다. 인구수로 경쟁하는 나라 VS 사람의 존엄으로 경쟁하는 나라, 사람을 늘리는 나라 VS 사람이 살 수 있게 만드는 나라, 기술의 속도만 좇는 나라 VS 인간의 시간을 존중하는 나라. 우리는 어떤 나라가 될 것인가? 후자의 나라가 돼야 한다.

없어도 
돌아가는

AI 시대 인구 감소는 재앙이 아니다. 그것은 질문을 바꾸라는 사회적 요구다. “사람을 얼마나 낳을 것인가”가 아니라 “사람이 줄어도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만들 준비가 되었는가”라는 질문 말이다.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을 때 비로소 우리나라는 AI 시대에 맞는 강소국이 될 것이다. 

<skkim596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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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불사’ 국힘 생존 방정식

‘대마불사’ 국힘 생존 방정식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법원이 주호영 국회부의장의 대구시장 경선 컷오프 관련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다. 그러자 주 부의장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를 강하게 비판하면서 항고할 뜻을 내비쳤다. 주 부의장의 강경 대응은 저조한 국민의힘 지지율과 맞물려 혼란상을 더욱 극적으로 비추고 있다. 과연 국민의힘이란 ‘대마’는 ‘불사’의 존재일까? 주호영 국회부의장이 국민의힘 대구시장 경선에서 컷오프된 것에 반발해 지난달 26일 법원에 가처분을 신청했다. 서울남부지법 민사합의51부(수석부장판사 권성수)는 지난 3일 이를 기각했다. 그러자 주 부의장은 곧바로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법원 결정에 반발했다. 법원 결정 바로 반발 주 부의장은 “저는 그동안 이번 컷오프가 절차·내용 모두 중대한 문제가 있다고 지적해 왔다”며 “법원의 판단과 별개로 이번 공천 과정이 과연 당원·시민의 눈높이에 맞는 공정하고 민주적인 절차였는지는 여전히 엄중하게 따져 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주 부의장은 지난 6일 항고를 제기했다. 이어 지난 8일엔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항고심 판단을 끝까지 지켜본 후 제 거취에 대한 최종 판단을 내리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선 일각에서 제기했던 무소속 출마설을 일단 유보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이어 주 부의장은 “항고심 판단을 기다린다고 해서 이번 공천 난맥상과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 체제의 책임을 덮고 가겠단 뜻은 결코 아니”라며 “이런 공천 구조를 만든 세력과 절대로 타협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공천은 충성의 대가나 숙청의 도구가 아닌, 오직 국민 앞에 가장 경쟁력 있고 책임 있는 후보를 세우는 과정”이라고 주장하는 등 자신을 컷오프한 것을 ‘숙청’이라고 암시했다. 주 부의장이 대구시장 출마에 강한 의지를 드러낸 것에 대해선 여러 해석이 나오고 있다. 6선인 주 부의장은 대구 수성에서만 국회의원을 지냈다. 대구 수성을에서는 4선을 지냈고, 수성갑에선 재선에 성공했다. 이 중 4선을 했던 지난 2016년 총선 수성을 선거에선 친박(친 박근혜)계 주도로 공천을 받지 못해 무소속 출마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유 있게 이겼다. 문제는 주 부의장이 당내 최다선인 6선 의원 겸 국회부의장이라는 것으로부터 비롯된다. 명예가 곧 실권을 보장하진 않는다. 아울러 주 부의장이 차기 총선에서도 같은 지역구에 출마해 7선에 도전하면, 이에 대한 비판이 제기될 수도 있다. 같은 6선인 국민의힘 조경태 의원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조정식 의원은 각각 부산 사하을·경기 시흥을을 지역구로 두고 있다. 부산은 이미 격전지가 된 데다 조 의원은 민주당계 정당과 국민의힘 소속으로 각각 3선 했고, 경기 시흥을은 수도권이다. 국민의힘의 안정된 텃밭으로 분류되는 대구 수성을에서 7선에 도전하는 것과는 상황이 다르다. 설령 7선에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오는 6월 지방선거에서도 참패 가능성이 제기되는 국민의힘이 2년 후 총선에서 다수당이 된다는 보장도, 국회의장이 되리라는 보장도 하기 어렵다. 오는 2028년 총선까지 연일 떠들썩하게 이어지는 계파 갈등을 어느 정도 안정시킨 후 대안 야당으로 발돋움하면서 이재명정부가 실정으로 지지율이 폭락하는 상황이 겹쳐야 승리를 노려볼 수 있다. 주 부의장이 국회의장에 도전하는 것도 현실적으로는 가능성이 희박하다. 불확실한 국회의장…‘텃밭 7선’ 대신 대구? 연이은 공천 가처분 세례 속 서울 지지율 13% 따라서 주 부의장이 대구시장 출마에 집념을 불태우는 것은 필연이다. 대선 패배 후 대구시장에 출마해 당선됐던 홍준표 전 대구시장의 전례도 있다. 주 부의장으로선 “나라고 출마 하지 말라는 법이 어디에 있느냐”고 판단해도 무리가 아니란 분석이 있다. 대구시장으로서 임기를 마친 후 대권에 도전하거나 당내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그림을 그리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이 가능성은 일명 ‘주한 연대설’로 통하는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와의 연대설 때문에 불거졌다. 이는 국민의힘 이정현 전 공천관리위원장이 주 부의장을 컷오프한 직후 불거졌다. “주 부의장이 무소속으로 대구시장에 출마해 대구 수성갑에서 재보궐선거가 진행되면, 한 전 대표가 여기에 출마하는 형식으로 연대한다”는 설이다. 한 전 대표 측으로선 손해 볼 게 없다. 한 전 대표는 지난달 25일 채널A <정치시그널>에 출연해 “주 부의장은 보수 재건이 필요하다고 공감하면서 나서겠다고 했다”며 “우린 이미 연대하고 있는 게 아니냐”고 주장했다. 반면 주 부의장은 신중한 반응을 내비쳤다. 그는 지난달 26일 기자들을 만나던 중 주한 연대설 관련 질문을 받자 “제 코가 석 자인데 딴 생각할 여지가 있겠느냐”고 답변했다. 다만 무소속 대구시장 출마 가능성에 대해선 “모든 경우의 수에 대해 준비하고 있다”고 답변했다. 따라서 주한 연대설 성립 가능성 자체를 배제한 것은 아니라는 해석이 나왔다. 주 부의장의 항고 제기는 국민의힘의 치명적 문제 하나를 외부로 노출했다. 국민의힘에선 당내 처분에 대해 연이어 법원으로 달려가는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가깝게는 주 부의장과 김영환 충북도지사가 컷오프에 대한 가처분을 신청했다. 김 지사는 주 부의장과 달리 가처분이 인용돼 경선에 참여할 수 있게 됐다. 멀게는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배현진 의원에 대해 각각 결정했던 제명·당원권 정지 1년 징계의 효력도 법원에서 정지됐다. 4건의 가처분 모두 서울남부지법 민사합의51부에서 판단했다. 재판부는 주 부의장 건에 대해서만 국민의힘의 손을 들어줬다. 장 대표는 김 지사가 신청한 가처분이 인용된 다음 날인 지난 1일 기자들과 만나 “법원이 정치에 너무 깊숙이 개입하고 있다”며 “재판장이 국민의힘에 와서 공천관리위원장과 윤리위원장을 하면 될 것 같다”고 비판했다. 국민의힘의 현 상황에 대해선 “정치의 사법화가 심각할 정도로 진행된 것 같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공천 관련 갈등이 이어지는 가운데, 국민의힘의 지방선거 승리 가능성을 어둡게 하는 신호들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한국갤럽은 지난달 31일부터 지난 2일까지 전국 만 18세 이상 1001명을 상대로 이동통신 3사가 제공한 무선전화 가상번호를 무작위로 추출해 전화 조사원이 직접 인터뷰하는 방식으로 진행한 여론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이에 따르면, 민주당 지지율은 48%로, 국민의힘 지지율은 18%로 집계됐다. 제 코가 석 잔데… 서울에선 민주당 지지율이 51%로, 국민의힘 지지율은 13%로 집계됐다. 부산·울산·경남에서도 민주당 지지율은 42%로, 국민의힘의 지지율은 27%로 집계됐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에서 확인 바람). 영원한 격전지 서울에서도 양당의 지지율 격차가 크게 벌어지는 여론조사 결과 수치가 공개되자, 국민의힘의 현 상황에 대한 지적이 날로 거세게 일어나고 있다. <조선일보>는 지난 4일 자 사설을 통해 “국민의힘은 지금 수도권에서 후보를 찾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며 “현행법상 15% 이상 득표해야 선거 비용을 전액 보전받을 수 있는데 그에 미치지 못할까 걱정한다는 것”이라며 현실을 짚었다. 이어 “말로만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절연’을 선언했을 뿐 실제로는 반대로 하고 있다”며 “공천 혼란에 대해서도 가처분을 인용한 법원 탓만 할 뿐, 어떻게 수습하고 책임질지 방향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는 등 장 대표를 강하게 비판했다. <조선일보>의 주장대로라면, 수습·책임을 맡을 당 대표는 보이지 않는 셈이다. 해당 매체는 “어렵게 나선 후보들은 국민의힘 상징색인 빨간색을 포기하고 흰색 점퍼를 입고 다닌다”며 “인구가 1300만명에 달하고 국회의원 의석수도 가장 많은 경기도에선 지사 출마자를 구하지 못해 공천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는 현실도 짚었다. <조선일보>가 짚은 국민의힘의 현실은 신체를 통제할 두뇌 없이 거대한 군집을 이룬 채 각자의 역할을 맡은 군집 생물에 비유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관해파리를 들 수 있다. 관해파리는 겉으로 볼 땐 덩치 큰 해파리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각각의 역할을 맡은 독립 개체들이 모인 군집이다. 이 개체들은 먹이 섭취·이동·번식 등 각각의 역할만을 담당한다. 각각의 개체들은 생존을 위해 서로 연결돼있지만, 이들을 하나로 통합하는 뇌는 없다. 개체 중 누군가가 제 역할을 못하면 모두 죽는다. 단세포생물인 점균류도 먹이를 찾을 때, 각자의 세포가 알아서 효율적인 길을 찾는다. 이를 통제할 뇌는 없지만, 화학적 신호를 주고받으면서 최적의 경로를 결정한다. 그런데 잘못된 경로를 찾으면 방향을 틀 능력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남는 것은 군집 전체가 굶어 죽는 일이다. 페로몬을 통해 신호를 주고받는 군대개미 집단도 선봉에 선 개미가 길을 잃으면 모든 개미가 원을 그리다가 지쳐 죽는다. 제 역할 못하면… 이탈리아의 정치학자 조반니 사르토리는 원심적 경쟁 이론을 주장했다. 보통의 민주주의 국가에선 정당이 중도층의 표심을 얻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강경한 여당과 무책임한 야당이 양립할 땐 정당이 중도층을 설득하기보다 진영 결집에 따른 조직표 구성에 몰두한다. 이런 구도에선 중도층이 정치에서 배제되고, 정치적 대화도 단절된다. 이런 상황에선 후보자들은 당의 승리와 중도 확장을 포기하고, 강성 핵심 지지층의 지지를 얻으려고 노력한다. 중도층이 정치에 냉담해지면서 설득 가능 대상으로 강성 핵심 지지층만 남기 때문이다. 가성비 높은 선택이 될 수밖에 없다. 아울러 후보자들이 지도부를 거부하면서 강성 핵심 지지층에게만 구애하는 각자도생에 몰두한다. 이는 결국 자신들만의 세계에 빠지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국민의힘의 지방선거 준비 과정에서 서울시장·경기도지사 경선에선 구인난에 빠졌지만, 대구시장·경북도지사 경선은 열기가 과도한 것도 이와 비슷하다. 특히 대구시장 경선엔 국회부의장·경제부총리·원내대표 등 당정의 핵심을 지낸 인사들이 모두 출마했기 때문에 더욱 눈에 띄고 있다. 미국의 정치학자 리처드 카츠와 아일랜드의 정치학자 피터 메어는 정당을 카르텔·프랜차이즈 기업에 비유하는 독특한 이론을 발표했다. 카츠와 메어는 “현대 정당이 시민의 자발적 후원보다 국가의 정당 보조금·공천권 등 국가의 자원에 의존해 서로 담합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중앙당과 지역구 후보의 관계를 본사와 가맹점주 관계로 규정했다. 따라서 중앙당이 자원을 적절히 배분하지 못하거나, 시장에서 자원의 가치가 폭락하면 가맹점주의 불만이 폭발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의 주장을 매개로, 캐나다의 정치학자 켄 카티는 “정당이 실제로 프랜차이즈 시스템으로 바뀌고 있다”고 주장했다. 카티에 따르면, 정당은 브랜드로서만 기능하고, 선거에선 후보가 중앙의 브랜드를 빌려온다. 공천은 결국 이들 간 계약 관계 역할을 한다. 이는 실제 정치적 현상으로 드러나고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 2일 서울 쌍문역 일대 쌍리단길을 방문했다. 오 시장의 현장 방문에 동행한 국민의힘 소속 서울시의원들과 도봉구의원들은 국민의힘의 상징색 빨간색이 아닌 흰색 점퍼를 입었다. 오 시장도 서울시 로고가 새겨진 흰색 점퍼를 입고 현장을 돌아다녔다. 지난달 31일 진행된 국민의힘 서울시장 본경선 후보들 대상 첫 토론회에서도 후보들은 장 대표를 비판했다. 이들은 “흰색 점퍼에 눈이 간다면 동그라미 푯말을, 빨간색 점퍼에 눈이 간다면 엑스 푯말을 들어달라”는 진행자의 요구에 일제히 엑스 푯말을 들었다. 오세훈 ‘흰색 점퍼’ 현장행 “빨간색 입고 싶다” 대우그룹·프랑스 사회당 등 한순간에 망한 대마들 하지만 말은 날카로웠다. 오 시장은 “빨간색 점퍼를 입고 싶은 마음을 엑스 푯말을 들어 표현해 봤다”고 말했다. 미래통합당 윤희숙 전 의원은 “흰색 옷을 입어야 하는 사람은 장 대표”라며 “이번 공천이 마무리되면 백의종군을 결심해 달라”고 요구했다. 국민의힘 박수민 의원은 “빨간 당 출신이 빨간색을 안 입는 자기모순은 이해할 수 없다”면서도 “장 대표가 확장하지 못했다면 후보들이 확장하면 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지난달엔 장 대표의 지원 유세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의견을 밝혔다. 본사에 대한 가맹점주들의 집단행동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다. 서울시당위원장을 맡은 배 의원도 지난 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의 서울 지지율 13%의 주역 장동혁 지도부가 기초단체장 후보를 못 구한 지역의 후보를 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방선거 패배 가능성이 내·외부에서 연이어 제기되고 있지만, 국민의힘 지도부에 대해선 “변화할 의지도, 대책도 없는 것 같다”는 평이 나온다. 이 같은 상황은 카츠와 메어가 이미 이론적으로 짚었다. 이들은 “카르텔 정당은 국가 자원을 독점하기 때문에 ‘우리는 망하지 않는다’는 착각에 빠지기 쉽다”고 지적했다. 바둑으로 치면, 국민의힘은 여러 개의 돌로 넓게 자리 잡은 곤마인 ‘대마’와 비슷하다. 시사 분야에서 관용적으로 잘 쓰는 표현 중 하나는 ‘대마불사’다. “대기업이나 대형 금융기관은 국가의 지원을 받아 망하지 않는다”는 관용 표현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1990년대 후반 IMF 금융위기는 대마불사로부터 비롯됐다. 가장 충격적이었던 상황은 당시 재계 2위였던 대우그룹의 해체였다. 김우중 당시 회장은 ‘세계 경영’이라면서 해외 업체를 공격적으로 인수했다. 그러다 IMF 금융위기를 맞아 구조조정을 거쳤지만, 삼성자동차를 받고 대우전자를 주는 빅딜 과정에서 엄청난 빚을 져 결국 워크아웃을 선언했다. 김 전 회장도 해외로 도피했다. 대우그룹은 그렇게 해체됐다. 국제 정치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1990년대 초반 캐나다의 집권당 진보보수당은 경제 실정과 내부 갈등 끝에 구심력을 잃고 연이은 당원 탈당 사태를 겪었다. 그 결과 150석을 넘게 보유했던 거대 여당이 선거 한번에 2석만 건지는 참패를 당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프랑스에서도 프랑수아 올랑드 전 대통령의 낮은 지지율을 극복하지 못했던 사회당은 지난 2017년 대선을 앞두고 강경한 좌파 성향 브누아 아몽 대선후보를 선출했다. 그러자 사회당 소속 정치인 다수는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창당했던 신생 정당 앙 마르슈로 옮겼고, 당은 선거에서도 참패했다. 반대로 민주당은? 민주당은 대구시장 선거 승리를 위해 대구에서 일정한 기반을 갖추고 있고 선거 승리 경험도 있는 김부겸 전 총리를 대구시장 후보로 선출했다. 이어 지난 8일엔 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김 후보와 함께 대구 농수산물도매시장을 방문하는 등 승리 의지를 드러냈다. 구인난을 겪고 있는 국민의힘과 달리, 민주당에선 추미애 의원이 치열한 경선 끝에 경기도지사 후보로 선출돼 주목받고 있다. 대마불사는 과연 영원한 걸까. 대마불사만 믿고 배짱 영업을 해도 되는 걸까. 대우그룹 해체는 국민의힘에 어떤 의미를 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