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요시사 취재2팀] 박정원 기자 = 대구 도심 유원지인 수성못에서 육군 대위가 총상을 입은 채 숨진 사건이 발생하면서 군의 허술한 총기·실탄 관리 체계가 다시 도마에 올랐다.
현역 장교가 소속 부대에서 K-2 소총과 실탄을 들고 38km 떨어진 현장까지 이동했지만, 군은 이 사실을 전혀 인지하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3일 경찰과 군 당국에 따르면, 지난 2일 오전 6시29분께 대구 수성구 수성못 화장실 뒤편에서 육군3사관학교 소속 30대 A 대위가 쓰러져 있다는 시민의 신고가 접수됐다. 현장에 출동한 소방당국은 머리 쪽 총상으로 피를 흘리고 있는 그를 심정지 상태로 발견했다.
경찰은 타살 흔적이 없는 점 등을 확인했다.
군 당국은 현장에서 군용 K-2 소총을 수거하는 과정에서 유서도 발견했다.
수사는 군사경찰이 일차적으로 기본 사실관계를 확인하는 절차로 이어졌다. 군사경찰 조사 이후 사건이 경찰에 이첩되면 형사기동대가 정식 수사에 착수한다는 계획이다. 현행법상 군사경찰은 군인 관련 범죄가 확인될 경우 해당 사실을 경찰에 즉시 통보하도록 규정돼있다.
경찰 관계자는 “군 내부 조사가 선행되고 있지만, 사망 원인과 관련해 범죄 혐의점이 드러나면 경찰 수사가 불가피하다”며 “총기 반출 부분은 경찰 수사 대상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사건 당일 찍힌 CCTV에는 파란색 바지와 검은 티셔츠 차림의 A 대위가 검은색 가방을 들고 수성못 일대를 배회하는 모습이 찍혀 있었다. 해당 가방에는 소총이 들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군은 해당 총기가 3사관학교 생도들이 사용하는 훈련용임을 확인했으며, 훈육 장교였던 그가 평소 실탄을 소지하는 보직은 아니었다고 밝혔다.
문제는 이번 사건을 단순히 개인의 극단적 선택으로만 치부할 수 없다는 점이다. 소속 부대에서 수성못까지 약 38km 거리를 소총과 실탄을 소지한 채 이동했지만, 군은 전혀 이를 감지하지 못했다.
경찰에 따르면 A 대위가 총기와 실탄을 들고 수성못으로 이동한 뒤 사망하기까지 군으로부터 접수된 검거 지원 또는 이동경로 파악 요청은 전무했던 것으로 파악됐다.
그가 어떻게 총기와 실탄을 손에 넣고, 이를 들고 부대 밖으로 나올 수 있었는지는 아직 오리무중이다. 달리 말하면 총기 반납이 이뤄지지 않아도 부대 내에서 즉각 확인되거나 경보가 울리지 않았다는 의미다.
군 당국은 “부대별로 관리 지침이 다르다”며 총기 반출 경위를 조사할 계획이라고 설명했지만, 관리 체계 전반이 사실상 작동하지 않았다는 지적을 피하긴 어려워 보인다.
이번 사건은 과거 유사 사례들에서도 확인된다. 지난 2002년 경기 포천에선 육군 상사가 K1 소총과 실탄을 들고 농협을 털었다가 범행 직후 부대에 총기를 반납해 군·경 합동수사에 붙잡히는 사건이 발생했다.
지난해에는 강원 양양에서 해양경찰 소속 경찰관이 근무지에서 총기와 실탄을 무단 반출한 뒤 차량 안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불과 두 달 전인 지난 6월에도 대구 모 부대 소속 병사가 렌터카에 소총을 두고 내렸다가 사흘 뒤 시민에게 발견되기도 했다.
군과 경찰을 막론하고 총기 관리 체계가 권한 집중과 사후 확인 지연에 취약하다는 점이 반복적으로 드러난 셈이다.
육군 부사관 출신의 한 예비역은 <일요시사>와 인터뷰에서 “총기와 탄약은 보통 2인1조 확인, 봉인지 부착, 대장부 기록 등으로 관리된다”며 “겉으로는 ‘이중·삼중 통제’를 강조하지만, 현실은 사람에 의존하는 방식에 머무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책임 간부에게 권한이 집중되면 열쇠와 기록, 점검을 한 사람이 동시에 처리할 수 있어 실질적인 상호 검증이 무력화된다”고 지적했다.
부대별 지침이 제각각이라 일률적인 기준이 작동하지 않는 점도 구조적 허점으로 꼽았다.
그는 “부대별 여건이나 임무 성격에 따라 세부 지침이 달라 통일된 기준을 적용하기 어렵다”면서 “총기 반출이나 보관 과정에서 현장의 자율적 판단에 의존하는 부분이 남아 있어 관리 사각지대가 생길 수밖에 없다”고 꼬집었다.
온라인에서도 인적 관리만으로는 총기 반출 사고를 막을 수 없다고 입을 모은다.
한 누리꾼은 “총기와 탄창, 탄약 상자에 개별 식별장치를 부착해 반출 즉시 자동경보가 울리도록 하고, 대장부 대신 전자 서명과 이중 인증을 통해 단독 반출을 원천 차단해야 한다”고 의견을 내놨다. 또 “총기 미반납이나 비정상 이동이 발생할 경우 경찰 등 외부 기관에 자동 통보되는 시스템은 어떠냐”는 제안도 나왔다.
국회에서도 군 총기 반출 사고에 대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안규백 국방부 장관은 전날, 해당 사건에 대해 “관련 책임자를 엄중 문책하고, 총기 탄약 관리 시스템을 전반적으로 재점검하라”고 지시했다.
유용원 국민의힘 의원도 국회 국방위원회에서 “교육기관에서 간부들을 양성하는 훈육 장교가 소총과 실탄을 소지한 채 영천에서 대구까지 아무런 제재 없이 이동해 사고가 발생했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며 “육군 부대를 대상으로 총기 관리 전수조사가 필요하다”고 꼬집었다.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 예방 상담 전화 ☎109 또는 자살 예방 SNS 상담 ‘마들랜’(마음을 들어주는 랜선친구)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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