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그릇 챙기기’ 법조계 법률 플랫폼 그림자

수백억 부어도 찬밥 신세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생성형 AI의 발전은 모든 업계에 변화를 불러왔다. 하지만 유독 변화를 수용하지 않는 업계가 있다. 바로 ‘법률 업계’다. 대한변호사협회는 변호사 광고 플랫폼부터 생성형 AI까지 리걸테크 기업의 법조계 진출을 거부하고 있다. 리걸테크 기업은 최근 수백억원의 투자를 받았지만 여전히 찬밥 신세인 국내를 벗어나 해외로 나갈 태세다.

법조계에서 법률 플랫폼의 수용으로 인한 갈등이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8년 전 로톡이 출시되면서 시작된 플랫폼 갈등을 넘어 제도권으로 수용하는 과정에서 진통 과정을 직접 경험한 주요 리걸테크 기업들은 해외로 나갈 계획부터 수립한 상황이다.

리걸테크
강력 반발

변호사 광고 플랫폼 로톡을 개발한 로앤컴퍼니는 리걸테크 기업이다. 리걸테크는 법률(Legal)과 기술(Technology)의 합성어로, 인공지능(AI) 기술을 활용해 법률적인 문제 해결을 돕기 위해 등장했다. 리걸테크 기업들은 근로계약서 위험 조항 분석과 변호사 광고 등에 AI 기술을 적용, 다수가 법률서비스를 합리적으로 이용하도록 진입 문턱을 낮추고자 했다.

하지만 대한변호사협회(이하 대한변협)의 강력한 반발에 부딪혀 고초를 겪었다.

로앤컴퍼니가 2014년 출시한 ‘로톡’은 변호사들에게 일정 광고료를 받은 후 법률 자문을 구하는 소비자가 볼 수 있도록 변호사 목록과 광고를 실어주는 리걸테크 서비스다. 법률 소비자 입장에서 영역별 전문 변호사를 쉽게 확인하고 어려운 법률 용어에 대한 해석도 접할 수 있어 유용하다.


대한변협의 생각은 달랐다. 로톡이 광고료를 지불한 변호사를 법률 소비자에게 소개·알선했다며 변호사가 아님에도 법률사무를 취급했다고 주장했다. 이 같은 의견 차이는 2015년 서울지방변호사회가 로톡을 변호사법 위반으로 고발하면서 수면 위로 드러났다.

해당 사건은 결국 무혐의 처리됐지만, 로톡이 판례 수집 과정에서 개인정보를 침해했다는 이유로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혐의까지 추가해 재차 고발이 이뤄졌다. 추가 고발마저 무혐의 처분이 나오자 대한변협은 ‘변호사 광고에 관한 규정’을 개정, 플랫폼 업체에 광고를 의뢰하는 변호사를 징계하는 내부 규정을 만들었다.

이후 로톡을 이용하는 변호사 123인에 대한 징계 절차를 강행했다. 변호사법에 따라 대한변협이 내린 변호사 징계에 대한 이의신청은 법무부 변호사징계위원회가 맡았고, 법무부는 2023년 9월26일 징계 처분을 취소하며 8년간의 기나긴 공방에 마침표를 찍었다.

법무부는 로톡 사태 이후 규제 공백 상태인 변호사 검색 서비스 정착을 위해 후속 조치인 ‘변호사 검색 서비스 운영 가이드라인’을 지난 6월 공표했다. 가이드라인은 총 20개조로 구성됐다. 변호사 검색 서비스의 ▲검색 조건 ▲검색 결과 표시 ▲상담료·보수액 표시 ▲전문 분야 광고 ▲이용자 평가와 후기 등의 규정을 담았다.

로톡과 8년 넘게 협회와 갈등
정부·정치권 중재도 안 통해

구체적으로 출신 학교나 자격시험의 유형, 기수처럼 정형적·객관적·가치 중립적인 정보를 기준으로 변호사를 검색하는 것을 원칙적으로 허용한다. 다만 공직자와의 인맥 지수 등 전관예우 등을 조장할 우려가 있는 검색 조건은 금지했다.

회원이나 유료 회원 변호사 등을 검색 순위 상단에 정렬하거나 글꼴, 글자 크기 등을 두드러지게 표시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허용한다. 다만 같은 유료 회원 사이에서 지급한 광고비 금액을 기준으로 차등을 두는 것은 법률 비용 상승을 고려해 막았다.


수임 전 변호사와의 위임계약 체결 여부를 결정하기 위해 필요한 ‘상담료’ 표시는 허용하되, 구체적인 위임계약 체결을 전제로 실제 법률서비스 제공에 필요한 보수액을 사전에 표시하는 것은 금지했다.

변호사 등에게 ‘전문 분야’를 표방하는 광고 판매를 원칙적으로 허용하되, 각 변호사가 구매 가능한 전문 분야 광고의 개수를 합리적인 범위 내에서 제한하기로 했다. 플랫폼 이용자가 전문 분야 광고의 공신력을 판단할 수 있도록 각 변호사 등이 구입한 전문 분야 광고 목록과 분야별 실적도 공개하도록 했다.

실제로 법률서비스를 경험한 것이 객관적으로 검증된 이용자에 한해 변호사 평가를 플랫폼에 게재할 수 있도록 규정한다. ‘뒷광고’와 ‘음해성 후기’를 방지하기 위함이다. 객관적·정량적 평가가 어려운 법률서비스의 특성을 고려해 별점 등 수치화된 형태의 평가 또는 종합평가를 금지한다.

정치권에서는 관련된 법안이 계속 나오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김영배 의원은 변호사법 23조 1항에 규정된 ‘광고 허용 매체’에 로톡 등 온라인 플랫폼을 추가하는 법안을 대표 발의했다. 기존 법은 신문·잡지·방송·컴퓨터 통신 등으로만 한정했다.

김 의원 등은 지난 21대 국회에서 같은 내용의 법 개정을 추진했으나 임기 만료로 폐기됐고, 22대 국회에서 재발의했다.

다양한
법안 발의

김 의원 측은 온라인 플랫폼을 통한 변호사 광고를 허용해야 법률서비스 시장에서의 정보 비대칭이 해소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김 의원 등은 “법률 시장에서 온라인 플랫폼 서비스가 활성화돼야 변호사에 대한 충분한 정보가 유통되고, 이를 통해 사건 브로커의 폐단을 없앨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대한변협은 관련 규제를 풀어주려다 되레 사건 브로커를 양성화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이들은 “변호사법 23조는 사건 브로커가 기생할 소지를 제거하기 위해 제정된 것”이라며 “이미 공공성과 공신력이 없는 사무장 등 비(非) 변호사가 온라인 플랫폼이란 형태로 사건 브로커 역할을 하고 있는데, 이를 제한 없이 허용하면 변호사법이 저지하고자 한 사건 브로커를 오히려 공인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온라인 플랫폼의 법적 정의부터 명확하지 않아 규제 완화의 위험성이 크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대한변협은 “온라인 플랫폼은 법령·판례 검색부터 인공지능·빅데이터 기반 법률 전략 수립, 변호사 소개·알선, 형량 예측까지 다양하다”며 “비 변호사가 운영하는 온라인 플랫폼까지 허용돼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조국혁신당 이해민 의원은 인공지능을 활용한 법률서비스를 육성하고 국민들의 알 권리를 증진하기 위한 ‘법률정보기술산업 진흥 및 법률 소비자 편익 증진에 관한 법률안(이하 리걸테크진흥법)’과 ‘법원조직법 일부개정법률안(이하 법원AI공개법)’을 대표 발의했다.


리걸테크진흥법은 정부가 진흥 계획을 수립해 공공 데이터 개방, 전문 인력 양성, 창업 및 해외 진출 지원 등을 체계적으로 지원할 수 있도록 법적 기반을 담았다. 현재 주요 선진국에서는 AI 소송 예측이나 법률 문서 자동 작성 지원 같은 혁신 서비스가 빠르게 확산하고 있지만, 국내 리걸테크 기업들은 자동화된 법률정보기술서비스에 대한 명확한 법적 근거가 없어 사업 진입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 의원은 법원AI공개법도 발의했다. 이 법안은 최근 법원이 개발한 유사사건 판결문 추천 AI처럼 AI 기반 재판 지원 기능을 전 국민에게도 공개할 수 있도록 한다. 현재 해당 AI 모델은 지난 1월 개통된 차세대 전자소송시스템 구축사업의 일환으로 개발됐으며 사건번호를 입력하면 유사사건 목록을 추천하는 구조다.

이 의원은 “많은 선진국이 공개된 판결문 데이터와 AI를 접목해 산업 발전과 국민 편익 측면에서 앞서나가고 있다”며 “이 법이 리걸테크 산업을 진흥하고 법률서비스 소비자의 권익을 보호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개혁파와
반개혁파

정부와 정치권에서 리걸테크 기업을 정착화시키려고 노력 중이지만, 법조계에서는 여전히 갈등이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리걸테크 기업이 추구했던 기술을 빠르게 받아들여야 한다는 ‘개혁파’와 AI의 할루시네이션 및 왜곡 등이 사회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반개혁파가’가 계속 충돌하고 있기 때문이다.

개혁파의 대표 선두는 기술을 통해 큰 성장을 이룬 법무법인 YK와 법무법인 대륜이다. 이들은 대형 로펌의 인적 네트워크나 브로커를 통해 사건이 처리되는 정보가 불투명한 ‘법조인 중심’의 시장에서 AI 기술을 이용한 마케팅과 브랜드로 법률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며 ‘고객 중심’의 시장으로 돌렸다는 평가를 받는다.


법무법인 대륜 대표변호사들은 지난 29일 ‘대한민국 법조계 개혁과 미래를 위한 대륜의 제언’이라는 입장문을 발표했다.

이들은 “국민에게 법률 정보를 투명하게 제공함으로써 법률 지식 수준을 높이고 국민이 저렴하면서 빠르고 편리하게 수준 높은 법률서비스를 받게 하는 것이 발전에 기여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로펌과 변호사가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새로운 아이디어로 정당하게 경쟁할 때 그 혜택은 고스란히 고객에게 돌아간다”며 “이런 경쟁을 인위적인 규제로 가로막는 것은 고객이 마땅히 누려야 할 혜택과 자유로운 선택의 권리를 빼앗는 것과 같다. 법조계의 성장과 발전이 멈추면 그 피해 또한 더 나은 서비스를 받지 못하는 고객에게 돌아갈 수 밖에 없는 것”이라고 기술 도입에 찬성했다.

그러면서 “반개혁 세력은 이 같은 합법적이고 시대에 부합하는 노력마저 조직적으로 매도하고, 심지어 변호사 사회 내부의 불만을 외부 개혁 세력 탓으로 돌리며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며 “지금 그들은 오히려 자유시장 확대를 경계하며 ‘변호사 수 감축’이나 ‘유사 직역 배제’ 같은 비현실적이고 소극적인 주장만 반복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또 “국내 법조시장을 확대하고 변호사에게 더 많은 수익을 제공하려면 관행을 답습하기 보다 시대적 변화를 주도해야 할 책임 있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꼬집기도 했다.

로펌업계 내분 일어
일본부터 진출 시작

반면 정재기 대한변호사협회 부협회장은 온갖 규제로 법률서비스의 발전을 막고 있다는 지적에 대해 “변호사협회는 리걸테크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기술의 발전이 수단으로만 쓰여야 한다는 것”이라며 “AI가 법률 문서 작성, 형량 예측 등 법률서비스를 제공할 경우 법치주의의 근간을 흔들 수 있다”고 반박했다.

정 부협회장은 “과거 군사정부에 AI가 나왔다고 하면 입력된 정보를 근거로 유신헌법이 맞다고 판결했을 것”이라며 “반면 호주제 폐지, 간통죄 위헌, 소수자를 위한 판결 등과 같은 획기적이고 사회를 진보시킬 수 있는 판결은 나올 수 없다”고 주장했다.

사법 신뢰의 문제도 우려했다.

그는 “어떤 사람이 AI를 통해 예상한 형량이 1년인데 판사가 징역 3년을 판결한다면 불만을 가질 수밖에 없다”며 “사법을 산업으로만 본다면 우리 사회가 70∼80년간 투쟁해 쟁취한 인권이 무너질 것”이라고 반박했다.

업계에 따르면 리걸테크 기업 로앤컴퍼니는 최근 500억원 규모의 투자 유치를 마무리했다. 국내 리걸테크 투자 유치 금액으로 역대 최대다.

다른 리걸테크 기업 엘박스도 지난달 300억원 규모의 투자 유치에 성공했다. 엘박스 역시 변호사를 겨냥한 AI 보조 솔루션 엘박스AI를 운영하고 있다. 엘박스엔 글로벌 벤처캐피털(VC)인 레전드캐피털이 자금을 넣어 시장의 관심을 받았다. 리걸AI 솔루션 앨리비를 운영하는 BHSN도 최근 100억원 규모의 투자를 받는 데 성공했다.

국내 리걸테크 기업들은 불확실한 규제와 변호사 단체와의 갈등으로 수년간 어려움을 겪었다. 하지만 생성형 AI가 발전하고 1년 전 변호사를 대상으로 한 AI 솔루션 시장이 열린 이후엔 분위기가 달라진 셈이다.

업계에서는 해당 기술을 통해 받은 투자를 통해 국내보단 해외에 우선 투자한다는 계획이 계속 나오고 있다. 국내 리걸테크 기업이 노리는 1차 해외 공략 지역은 한국과 법 체계가 비슷한 일본이다. 일본엔 벤고시닷컴 등 리걸테크 유니콘 기업이 있지만 AI 적용은 상대적으로 늦은 편이다.

투자 받아
해외 진출

로앤컴퍼니는 슈퍼로이어로 일본을 공략할 예정이고, 엘박스도 내년 진출을 준비 중이다. BHSN 역시 일본 법인을 설립하고, 동남아시아를 포함한 아시아권 법률 AI 시장의 선두주자가 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임정근 BHSN 대표는 “미국 AI는 미국 데이터 중심으로 학습돼있다”며 “우린 한국과 일본, 베트남 등 데이터에 강점이 있다”고 말했다.

<kcj5121@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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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끝 국민의힘 뒤집기와 자충수

벼랑 끝 국민의힘 뒤집기와 자충수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비상계엄 1주년을 맞아 페이스북에 사과 입장을 밝혔다. 국민의힘 원내 지도부도 기자회견을 열고 고개를 숙였다. 사과는 짧았지만,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비난은 길었다. 사과 의견을 통해 확인되는 국면 전환 노림수는 ‘한동훈을 제외한 빅텐트’인 걸까? 국민의힘 공보실은 지난 2일 오후 10시54분 출입기자들에게 지난 3일 지도부 일정을 공지했다. 공보실에 따르면, 지도부의 일정은 ‘통상 일정’이었다. 공개 외부 일정이 없단 의미다. 지난 3일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1주년이었다. 통상의 의미는? 지도부의 공개 외부 일정이 없단 것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의 비상계엄 관련 공개 사과 및 기자회견 일정이 없었단 의미로 해석될 수 있었다. 장 대표는 지난 3일 오전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사과 의견을 밝혔다. 장 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은 의회 폭거에 맞서기 위한 계엄이었다”는 등 “정당화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을 소지가 있는 주장부터 제시했다. 윤 전 대통령 파면에 대해서도 “한국 정치의 연속된 비극을 낳았고, 국민과 당원들께 실망과 혼란을 드렸다”는 등 ‘탄핵 반대’ 의견을 유지했다. 장 대표에 따르면, 국민의힘의 잘못은 하나로 뭉쳐 제대로 싸우지 못했다는 부분이었다. 자신에 대해서도 “당 대표로서 책임을 통감한다”고 강조했다. “장 대표가 사과하지 않을 것”이란 예상은 같은 날 오전 4시50분경 이정재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가 국민의힘 추경호 의원의 구속영장을 기각하면서 확실시됐다. 장 대표는 페이스북 게시글에서도 “추 의원 구속영장 기각은 어둠의 1년이 지나고 두터운 장막이 걷히고, 새로운 희망의 길이 열리는 신호탄”이라면서 대정부 투쟁에 의미를 부여했다. 장 대표는 “이재명정권의 대한민국 해체 시도를 국민과 함께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 대표가 사과 불가는 지난달 28일 대구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장외집회에서 어느 정도 예고된 것이었다. 당시 그는 “비상계엄에 대한 책임을 무겁게 통감한다”면서도 “우리가 흩어지고 분열한 결과, 이재명정권이 탄생했단 것을 기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책임을 무겁게 통감한다”면서도 이재명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비난하는 내용으로 연설 대부분을 채웠다. 5일 간격으로 같은 얘기를 반복한 것이었다. 당시 장 대표가 주장한 민주당에 대한 비난의 핵심 내용은 ▲의회 폭거·국정 방해 ▲무모한 적폐 몰이에 따른 공무원 사찰 위협 ▲폭거로 인한 민생 파탄·국가 시스템 붕괴 ▲내란 몰이 등이었다. 비상계엄 1주년에 강조된 “민주당 폭거” 국면 전환·결집 노리는 선 사과·후 비난? 국민의힘의 비상계엄 관련 사과는 ▲송언석 원내대표 ▲유상범·김은혜 원내부대표 ▲최수진·최은석 원내대변인 등 원내 지도부 차원에서 나왔다. 송 원내대표 등은 지난 3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국민께 큰 충격을 드린 비상계엄 발생을 막지 못한 데 대해 국민의힘 국회의원 모두는 무거운 책임을 통감하고 있다”며 “국민 여러분께 다시 한번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이어 군인·공직자·의료인·자영업자 등 비상계엄 선포 피해자들에게 “깊은 위로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고개 숙였다. 하지만 이후의 메시지는 이재명정부·민주당 비판 등 장 대표의 주장과 크게 차이가 없는 내용이었다. 송 원내대표는 “국민의힘 의원들은 패배의 아픔을 딛고 분열과 혼란의 과거를 넘어서 다시 거듭나겠다”며 “소수당이지만 처절하게 다수 여당과 정권에 맞서 싸우겠다”고 강조했다. 이전까지 국민의힘에서 장 대표에게 공개적으로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정치인은 오세훈 서울시장과 김용태·김재섭·권영진·엄태영·이성권·조은희 의원 등이었다. 국민의힘 양향자 최고위원은 지난달 29일 대전에서 진행된 장외집회 중 “국민의힘은 불법 계엄을 방치했으니, 반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가 일부 지지자들의 강한 항의를 받았다. 김재섭 의원은 지난달 28일 YTN 라디오 <더 인터뷰>에 출연해 “당 지도부의 사과가 없으면 제 나름의 사과를 해야 할 것 같다”며 “같이 메시지를 낼 국민의힘 의원들이 약 20명은 된다”고 주장했다. 이는 곧 “연판장을 돌리거나 기자회견을 할 수도 있다”는 압박으로 해석될 가능성이 있었다. 오 시장도 같은 날 채널A <김진의 돌직구 쇼>에 출연해 “중도층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라도 당 차원의 사과가 필요하다”며 “공당이라면 반성문을 쓰는 게 도리”라고 주장했다. 결국 이들은 당과 무관하게 대국민 사과를 했다. 오 시장은 지난 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 소속 중진 정치인이자, 서울시민의 일상을 책임지는 시장으로서 그 책임을 무겁게 받아들인다”며 “그날의 충격과 실망을 기억하는 모든 국민께 거듭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국민의힘 의원 25명은 지난 3일 국회에서 “비상계엄 선포 당시 집권여당의 일원으로서 비상계엄을 미리 막지 못하고 국민께 커다란 고통과 혼란을 드린 점에 대해 거듭 국민 앞에 고개 숙여 사죄드린다”면서 ▲헌법재판소의 윤 전 대통령 파면 결정 존중 ▲윤 전 대통령과의 정치적 단절 ▲국민의힘 체질 개선·재창당 수준의 혁신 등을 약속했다. 이어지는 각자 플레이 장 대표에게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후 자체적으로 대국민 사과 성명을 발표한 국민의힘 정치인들은 대체로 수도권에 기반을 둔 소장파다. 이들 중 국민의힘이 강경 보수 정당으로 자리매김하면 가장 큰 손해를 볼 정치인으로는 오 시장과 김재섭·김용태 의원이 거론된다. 오 시장은 높은 개인 인기를 바탕으로 민주당의 서울시장 탈환 공세에 맞서고 있다. 김재섭 의원의 지역구 서울 도봉갑은 원래 민주당 텃밭이었다. 김 의원은 지난해 총선 당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1094표 앞서 어렵게 이겼다. 지난해 12월7일 국민의힘의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 표결 집단 이탈에 동참했을 때도 지역구에서 규탄 집회가 개최되는 등 홍역을 치렀다. 김용태 의원도 경기 가평·포천에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박윤국 한국도자재단 이사장에 2774표 앞서 어렵게 금배지를 다는 데 성공했다. 국민의힘에 대해선 “강경 보수화가 진행된다”는 지적이 각계에서 이어지고 있다. 이 우려는 장 대표가 지난달 16일 유튜브 채널 ‘이영풍 TV’에 출연해 ▲자유통일당 ▲우리공화당 ▲자유민주당 ▲자유와혁신 등 원외 강경 보수 4당과의 지방선거 연대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깊어졌다. 장 대표는 지난달 28일 개혁신당과의 연대 가능성에 대해선 “지금은 연대를 논의할 때가 아니”라면서 선을 그었다. 최근 국민의힘에선 “한동훈 전 대표를 축출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할 만한 밑그림을 계속 그리고 있다. 국민의힘 여상원 윤리위원장은 지난달 17일 사의를 표명했다. 여 위원장은 “당에서 ‘물러나면 좋겠다’는 연락이 왔다”며 “굳이 능욕당하면서 자리를 지킬 필요가 없다고 판단돼 원하는 대로 하겠다고 답했다”고 주장했다. 일각에선 이를 두고 “윤리위원회가 ‘계파 갈등 조장’을 이유로 윤리위에 넘겨진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에 대해 주의 조치만 내린 것 때문 아니냐”고 의심하고 있다. 국민의힘 우재준 청년 최고위원은 지난달 30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원하는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고 윤리위원장을 사퇴시키는 게 정당한 일이냐”며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드는 민주당과 뭐가 다르냐”고 정면 비판했다. 이어 국민의힘 당무감사위원회는 지난달 28일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한 조사 절차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당원 게시판 의혹은 “국민의힘 당원 게시판에 올라온 윤 전 대통령 부부 비방글 작성에 한 전 대표 가족이 연루된 게 아니냐”는 의혹이다. 장 대표는 취임 직후 “사실관계를 명확하게 밝혀 당원에게 알릴 것”이라는 방침을 밝혔던 바 있다. 윤 전 대통령 부부는 정치적으로 몰락해 서울구치소에 갇혔고, 형사재판을 받고 있다. 국민의힘이 당원 게시판 의혹을 밝혀낸 후 거둘 수 있는 실익으로는 “한 전 대표를 국민의힘에서 쫓아내고, 친한(친 한동훈)계를 무력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 거론된다. 구 친윤(친 윤석열)계가 거둘 수 있는 이익이다. 한 전 대표에 대해선 보수 성향 유권자 사이에서도 호불호가 명확하게 나뉜다. 하지만 한 전 대표는 윤 전 대통령과 정치적으로 갈등하면서 비상계엄 해제에 동참했던 이력이 있다. 이 때문에 한 전 대표는 “국민의힘이 강경 보수 일색이 되는 걸 막는 방파제·상징”이란 분석이 오랫동안 있어왔다. 친한계로 거론되는 국민의힘 의원 중 상당수는 수도권에 지역구를 둔 소장파라는 분석이 나온다. 윤리위원장 쫓아낸 이유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선 “윤 전 대통령이 정치에서 폭력을 동원하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 잘 몰랐던 것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다. 정치의 본질은 대화·토론·협상이다. 영국 하원에선 20세기 초까지 의원이 총칼을 이용해 결투·난투를 했다. 물리적 폭력이 아닌 ‘언어폭력’ 선에서 공방을 이어가는 정치 문화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정착됐다.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가 전 세계에 줬던 충격은 민주주의가 충분히 성숙했다고 믿었던 대한민국에서 군을 동원해 정적을 제거하려던 사태가 발생했다는 것이었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는 사과 메시지를 먼저 짧게 발표하면서 이재명정부·민주당 비판은 길게 이어가는 형식의 사과 의견을 밝혔다. 사과엔 ▲직접적인 반성 ▲분명한 잘못 인정 ▲재발 방지 약속 ▲보상 약속 등 4개의 원칙이 제기됐는데 “상대방 비판에 더 중점을 둔 사과는 역설적으로 ‘반성을 하는 게 맞느냐’는 비판으로 이어질 소지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지난 2008년 광우병 촛불시위 당시 대국민 사과를 했고, 박근혜 전 대통령은 지난 2016년 최순실 게이트가 불거진 후 대국민 사과를 했다. 이 전 대통령은 “모든 것이 제 불찰이고, 국민께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후속 조치 중 국민의 마음을 헤아리는 데 미흡했고, 우려를 덜어드리지 못한 점에 대해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은 “국정을 꼼꼼하게 챙겨보고자 하는 순수한 마음으로 한 일”이라며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놀라고 마음 아프게 해드린 점에 대해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면서 “국민께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전 대통령은 당시 크게 불거졌던 각종 우려를 ‘괴담’으로 규정지었다. 이 때문에 촛불 시위 세력이 제시한 재협상 시한과 맞물린 시점에서 사과가 나온 점을 감안할 때 국면 전환을 위한 명분 쌓기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다. 박 전 대통령은 이미 각종 의혹이 광범위하게 제기돼 근거 자료들까지 제시되는 시점에서 “취임 후 일정 기간 일부 자료들에 대해 최순실씨의 의견을 들은 적은 있지만, 청와대 보좌 체계가 완비된 이후에는 그만뒀다”고 주장했다. 이로써 박 전 대통령의 해명은 신뢰를 잃었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의 사과도 두 전직 대통령의 사과처럼 자신의 주장을 뒤에 배치한 후 더 큰 비중을 부여하는 형식을 유지했다. 비상계엄 1주년에 강조된 “민주당 폭거” 국면 전환·결집 노리는 선 사과·후 비난? 이런 사과 형식은 국면 전환·지지층 결집 목적을 가진 이들이 활용한 사례가 많다. 대표적인 예로, 고대 로마에서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암살된 후 있었던 마르쿠스 브루투스·마르쿠스 안토니우스의 연설이 꼽힌다. 카이사르 살해를 주동한 브루투스는 “카이사르에 대한 내 사랑은 카이사르를 사랑하는 다른 분보다 절대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단언한다”고 선언한 후 “로마를 더 사랑해서 카이사르를 죽였다”고 주장했다. 이어 “나라를 위해 눈물을 머금고 가장 사랑하는 친구를 죽였다”고 강조했다. 안토니우스는 “카이사르 암살에 가담한 사람들은 모두 존경할 만한 분들”이라고 선언한 후 카이사르를 찬양하면서 그의 유언장을 공개했다. 유언의 핵심 내용은 “내 재산을 로마 시민에게 기증한다”는 것이었다. 또 카이사르가 살해당할 당시 입었던 칼자국과 피로 얼룩진 옷도 공개했다. 흥분한 로마 시민은 암살자들의 집을 습격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안토니우스·아우구스투스는 로마 정국을 장악했다. 불리한 내용을 먼저 짧게 거론한 후 유리한 내용을 장황하게 거론하는 형식은 정치적 목적을 위해 즐겨 이용된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가 짧은 사과 의견을 밝힌 후 이재명정부·민주당을 비중 있게 비판한 것도 강경 보수 세력에겐 강한 인상을 줄 가능성이 있다. 특히 장 대표는 비상계엄의 원인을 ‘의회 폭거’라고 규정했다. 이에 따르면, 윤 전 대통령은 카이사르가 된다. 비상계엄 해제에 찬성해 사실상 윤 전 대통령 몰락에 가담한 한 전 대표와 친한계는 브루투스 일당이 되는 구도가 그려질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강경 보수 세력은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해 어떤 의견을 제시할지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다. 공나형 전남대 학술연구교수는 지난 2022년 발표한 논문 <대통령의 공적 사과 담화에서 드러나는 ‘개입’ 양상>에서 김영삼 전 대통령이 지난 1993년 쌀 시장 개방을 수용하면서 밝힌 대국민 사과와 박 전 대통령의 최순실 게이트 관련 대국민 사과를 분석했다. 공 교수는 김 전 대통령의 사과문에 대해선 “선의로 행한 행위가 어쩔 수 없는 부정적인 결과로 이어졌다고 강조하면서 결과의 부정성에 관여하는 자신의 의도의 비중을 제거했다”고 분석했다. 박 전 대통령의 사과문에 대해선 “자기 고백이 많은 분량을 차지하지만, 그 고백의 원인이 되는 행위에 대해선 소극적”이라고 분석했다. 12월3일 조용히 장 대표·송 원내대표의 사과도 “어쩔 수 없었다”는 항변과 상대방 비판을 내용으로 채웠다. 그러면서 민주당 심판·보수 재건·대여 투쟁을 강조했다. 결국 두 사람의 답은 ‘한 전 대표를 제외한 빅텐트’ 방침 재확인으로 보인다. 국민의힘의 12월3일은 이렇게 조용히 지나갔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