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61년 억울한 인생 최말자

1964년 채워진 족쇄 풀었다

[일요시사 취재 1팀] 안예리 기자 = 성폭행에 저항하다가 가해 남성의 혀를 깨물었다는 이유로 중상해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은 최말자씨가 61년 만에 검찰로부터 무죄를 구형받았다. 최근 검찰은 “정당방위에 해당한다”며 무죄를 구형했고, 피해자였던 최씨에게 “마땅히 보호받았어야 했음에도 가늠할 수 없는 고통과 아픔을 드렸다”며 공식적으로 사과했다.

부산지방법원 형사5부(부장판사 김현순)는 지난 23일 오전 11시, 부산지법 352호 법정에서 최말자씨의 재심 첫 공판과 결심공판을 동시에 진행했다. 보통 재심 사건은 수차례에 걸쳐 공판 준비기일, 본안 심리, 결심공판을 진행하지만 이번 재판은 두 차례 공판 준비기일을 거쳐 당사자 간 쟁점을 좁힌 뒤 곧바로 본안 심리와 구형 절차까지 함께 진행했다.

오랜 기다림
이제야 무죄

이날 공판에서 검찰은 무죄 구형과 함께 공개적으로 최씨에게 사과했다. 피고인 최씨에 대한 형사 책임이 없다는 사실뿐만 아니라, 수사와 공소 과정에서 피해자를 가해자로 몰아간 사법 당국의 책임을 검찰이 직접 인정한 것이다. 구형은 정명원 부산지검 공판부 부장검사가 맡았다.

정 검사는 검찰석 자리에서 일어나 정중하게 고개를 숙인 뒤 “이 사건은 생면부지의 남성으로부터, 인적이 드문 장소에서 갑자기 가해진 성폭력 범죄에 대해 피해자가 즉각적으로 대응한 상황”이라며 “피고인이 행한 방어 행위는 정당방위로서 과하지도, 위법하지도 않다고 판단되며 이에 무죄를 선고해주시기를 요청드린다”고 말했다.

이어 과거 검찰 조직의 잘못된 판단에 대한 책임을 언급했다.


그는 “검찰은 피해자를 단순히 범죄 피해자로만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그에 따른 사회적 편견과 2차 피해로부터도 지켜야 할 의무가 있다”면서도 “그러나 과거 이 사건에서는 검찰이 그 역할을 다하지 못했고, 오히려 피해자에게 깊은 상처를 남기는 방향으로 작용했다”고 사과했다.

그러면서 “그 결과, 성폭력 피해자로서 마땅히 보호받았어야 할 최말자님께 가늠할 수 없는 고통과 아픔을 드렸다. 이 자리를 빌려 깊이 사죄드린다”며 고개를 숙였다.

정 검사는 발언을 마친 뒤 다시 한번 피고인을 향해 몸을 숙이며 직접 사과의 뜻을 전했다. 공판은 피고인 심문 절차를 생략한 채 곧바로 결심 단계로 이어졌다. 피고인 최씨에 대한 심문 없이 형사 절차의 마지막 단계인 검찰 구형이 곧바로 진행된 것은, 검찰이 사건의 성격을 정당방위로 명확히 판단했기 때문이다.

변호인 측은 이날 결심 의견에서 “이 사건은 1964년이라는 시대 상황 때문이 아니라, 그 당시에도 법리상 무죄가 나와야 했던 사건”이라며 “검찰과 법원의 초기 판단 착오로 60년이 지난 지금에야 비로소 바로잡히는 사법적 오류의 대표적인 사례”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제는 법원이 응답할 차례”라며 무죄 선고를 재판부에 촉구했다.

재판 말미에 재판장이 피고인에게 마지막으로 진술 기회를 부여하자, 최씨는 조용히 손에 쥐고 있던 A4용지 한 장을 펼쳤다. 그 안에는 직접 작성한 최후 진술이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국가는 1964년, 생사를 오가는 악마 같은 그날의 사건을 어떤 대가로도 책임질 수 없다. 피해자 가족의 피를 토하는 심정을 끝까지 잊지 말고, 꼭 기억해주시길 바란다”고 운을 뗀 최씨는 “지난 61년간 죄인으로 살아왔다. 이제 나의 소망은 하나뿐”이라고 말했다.

성폭행범 혀 깨물어 ‘유죄’
가해자와 결혼까지 종용당해


이어 “후손들이 성폭력 없는 세상에서, 자신의 인권을 지키며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대한민국의 법이 만들어지기를, 두 손 모아 빌겠다”고 마무리했다. 최후 진술을 마친 최씨는 고개를 숙여 재판부를 향해 깊이 인사했다.

최씨 사건은 1964년 5월6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경남 김해군 대동면 예안리의 한 조용한 농촌 마을에서 벌어진 일이다. 그날 오후, 당시 만 19세였던 최씨는 친구 몇 명과 함께 자신의 집에서 이야기를 나누며 한가로운 오후를 보내고 있었다. 오후 4시께, 인근 마을에 사는 노모씨가 최씨의 집 앞에 불쑥 나타났다. 평소 알고 지내던 사이도 아니었던 노씨는 ‘할 말이 있으니 꼭 만나자’며 집 앞에서 기다렸다.

당황한 최씨는 “할 말이 없으니 돌아가라”며 거절했지만, 노씨는 지속해서 보자고 고집을 부렸다. 집요한 태도에 불쾌감을 느끼면서도, 친구들에게 불필요한 위협이 가지 않도록 상황을 정리하려던 최씨는 그를 큰길까지 데려다주기로 했다. 마을 안쪽의 좁은 골목이 아닌, 사람들이 다니는 큰길이면 곧 돌아갈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씨의 생각과는 달리, 두 사람이 큰길을 향해 걷는 도중 노씨는 갑자기 황당한 말을 꺼냈다. 그는 “키스만이라도 하자”며 애원했고, 이를 단호히 거절하는 최씨에게 끈질기게 달라붙었다. 길가에서 벌어진 실랑이는 20여분 가까이 이어졌다. 노씨는 급기야 최씨를 억지로 붙잡고 바닥에 넘어뜨려 강제로 입을 맞추려 시도했다.

이 과정에서 몸싸움이 벌어졌고, 세 차례나 최씨를 땅에 쓰러뜨렸다. 위기감을 느낀 최씨는 노씨가 억지로 자신의 입에 혀를 넣은 순간, 강하게 이를 깨물었다. 혀 끝 약 1.5㎝가량이 절단되며 노씨는 고통에 비명을 질렀고, 피를 쏟으며 바닥에 쓰러졌다. 그 틈을 타 최씨는 필사적으로 몸을 일으켜 집으로 도망쳤다.

하지만 사건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피투성이가 된 노씨가 최씨의 집까지 뒤따라왔다. 그는 문 앞에서 “내 혀를 찾아달라”며 울부짖었고, 최씨는 무섭고 당황스러운 상황에서도 남동생과 함께 밖으로 나갔다.

스스로를
지켰는데…

두 남매는 바닥을 뒤져 잘려나간 혀 조각을 찾아냈고, 노씨는 그것을 들고 2㎞가량 떨어진 병원으로 달려가 봉합 수술을 받았다. 수술은 성공적이었지만 노씨는 당분간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해 입원 치료를 받아야 했다.

사건 발생 직후 마을 사람들은 이 일로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피해자인 최씨는 성폭행의 위협 속에서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저항했지만, 마을 사람들 중 일부는 “혓바닥을 잘랐다”는 부분에 집중하며 최씨를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일이 많았다고 한다. 문제는 이후 노씨의 행동이다.

병원 치료를 마치고 돌아온 노씨는 최씨의 집을 찾아와 “이런 일도 인연이니 결혼하자”고 제안했다. 자신을 폭행하려 했던 가해자로부터 ‘혼인’을 제안받은 최씨는 이를 거부했고, 그 순간부터 노씨는 돌연 최씨를 협박하며 돌변하기 시작했다.

그는 “나를 불구로 만든 책임을 져야 한다” “치료비와 위자료를 내놔라”라며 위협했다. 심지어 노씨는 흉기를 들고 최씨의 집에 침입해 협박까지 벌이는 등 폭력적인 행동을 서슴지 않았다.

최씨는 결국 경찰에 노씨를 강간미수 혐의로 고소했다. 노씨는 되려 최씨를 중상해죄로 맞고소했고, 당시 경찰은 사건 현장에서의 정황과 최씨의 진술, 혀를 깨물게 된 경위 등을 종합해 최씨의 행위가 정당방위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최씨는 혀 절단에 대한 처벌을 받지 않았고, 노씨만 강간미수 혐의로 검찰에 송치됐다.


하지만 검찰에 사건이 넘어가면서 상황은 급변했다. 검찰은 오히려 최씨에게 중상해 혐의를 적용해 구속 수사에 착수했다. 최씨는 아버지와 함께 검찰의 출석 요청에 응해 조사를 받으러 검찰청을 찾았다. 하지만 도착한 당일, 검사는 사전 설명도 없이 그녀에게 수갑을 채웠고, 철문이 설치된 좁은 공간에 가둔 채 조사를 진행했다.

이후 조사 절차가 끝나자, 최씨는 다른 피의자들과 함께 포승줄에 묶인 채 곧바로 구치소로 이송됐다.

이 과정에서 구속영장 제시나 구속 사유에 대한 고지, 변호인 선임권이나 진술 거부권 같은 기본적인 권리 안내는 전혀 없었다. 예고 없는 조치에 아버지는 딸과 생이별한 채 홀로 귀가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최씨는 그렇게 구속된 상태에서 재판이 끝날 때까지 약 6개월 동안 구금생활을 이어가야 했다.

재판 과정에서는 피해자인 최씨에게 납득하기 어려운 상황이 반복됐다.

당시 검찰 수사관은 “남자를 불구로 만들었으면 책임을 져야 하지 않겠냐”며 최씨를 몰아세웠고, 담당 검사는 “둘이 결혼하면 간단히 해결될 일”이라며 사실상 결혼을 종용했다. 심지어 법정에서도 판사는 “결혼할 생각은 없느냐”고 물었고, 최씨의 국선 변호인조차 “둘은 이미 다른 사람과 결혼하기 어려운 처지이니 내가 직접 중매를 서겠다”는 변론을 펼쳤다.

최종 판결은 더욱 충격적이었다. 법원은 결국 최씨에게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노씨가 최씨를 강제로 끌고 간 정황은 없다”며 “사춘기 소녀가 이성에 대한 호기심으로 따라간 것일 수 있다”고 적시했다.


강제로 입을 맞춘 행위에 대해서도 “꼼짝 못하게 제압한 것이 아니므로, 이에 저항해 혀를 깨문 것은 방어의 정도를 넘은 것”이라며 정당방위를 인정하지 않았다.

정당방위
한계점

반면 노씨는 성폭력 시도 혐의가 인정되지 않았고, 대신 특수주거침입과 협박 혐의만 적용돼 최씨보다 형량이 적은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강간미수 혐의는 기소조차 되지 않았다.

형 집행이 끝난 뒤에도 최씨는 온전히 일상을 회복하지 못했다. 마을 사람들은 오히려 최씨를 손가락질했다. 이후 최씨는 생활고를 해결하기 위해 와이셔츠 공장에 다니고, 포장마차를 운영하며 묵묵히 일상을 이어갔다.

이후 최씨는 교육을 받지 못한 한을 풀기 위해 63세의 나이에 방송통신대학교에 입학했다. ‘여성의 삶과 역사’를 주제로 졸업 논문을 썼고, 여기에 자신이 겪은 사건을 사실 그대로 담았다.

이 논문을 본 주변 동료의 권유로 여성단체에 도움을 청하게 됐고, 최씨는 다시 법정에 서기 위한 준비를 시작했다. 그는 “억울하게 가해자가 된 삶을, 이대로는 눈을 감을 수 없다”는 마음으로 2020년 5월 중상해 사건에 대해 재심을 청구했다.

여성단체와 함께 2년 넘게 당사자와 주변인들의 증언, 사건 기록, 당시 언론 보도, 형사사건부 및 인명부 등 증거를 모았다. 하지만 부산지법과 부산고법은 “검사의 불법 구금과 자백 강요를 입증할 증거가 없다”며 재심 청구를 기각했다. 재판부는 “당시 검사의 불법 구금 주장을 입증할 명확한 자료가 없다”고 판단했다.

최씨와 여성단체는 곧바로 대법원에 재항고했다. 그리고 3년이 넘는 법리 심리 끝에, 대법원은 기존 결정을 뒤집었다. 대법원 2부(주심 오경미 대법관)는 2024년 6월 “1964년 당시 최씨가 구속영장이 발부되기 전까지 두 달 가까이 구금 상태였다고 볼 여지가 충분하다”며 원심을 파기환송했다.

재판부는 “재심은 확정된 유죄 판결의 중대한 오류를 바로잡아 인권을 보호하기 위한 비상구제 절차”라며 “최씨의 진술은 일관되며 당시 신문 기사, 재소자 인명부, 형사사건부, 집행원부 등 객관적 자료와 부합한다. 이를 탄핵할 만한 증거나 사정도 없다”고 판단했다.

이후 2022년 부산고법에서 열린 심문기일에 검찰은 “대법원의 취지를 존중해 재심 개시가 타당하다”는 의견을 재판부에 전달했다. 재판부는 이에 따라 최씨 사건에 대해 재심 개시 결정을 내렸고, 본안 심리에 착수했다.

최씨는 사건 발생 60년 만에 다시 피고인으로 법정에 서게 됐고, 검찰은 기존 공소 내용을 유지하면서도 사건의 경위를 전면 재검토했다. 이후 마침내 지난 23일 열린 재심 결심공판에서 검찰은 기존과는 전혀 다른 입장을 밝히며 무죄를 구형했다.

“과거 역할을 다하지 못해”
61년 만에 고개 숙인 검찰

이 사건은 국내뿐만 아니라 외신의 주목도 받았다. 미국 <CNN>은 지난 4월 ‘60년 전 성폭행에 저항해 남성의 혀를 깨문 여성, 이제 그녀는 유죄 판결을 뒤집으려 한다’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최씨의 재심 과정을 상세히 보도했다.

<CNN>은 “1960년대 한국 사회는 남성의 폭력이 관습처럼 용인되던 시기였고, 최씨는 그런 분위기 속에서 오히려 가해자로 몰렸다”고 전했다.

보도에 따르면, 당시 최씨는 단순히 길을 안내해달라는 남성을 따라나섰다가 갑작스럽게 성폭력 위협에 직면했고, 몸싸움 끝에 상대의 혀를 깨무는 방식으로 위기를 벗어났다. 이후 그는 강간미수 혐의로 상대를 고소했지만, 검찰은 오히려 최씨에게 중상해 혐의를 적용해 처벌했다는 점도 상세히 다뤘다.

매체는 또 수사 및 재판 과정에서 최씨가 수갑을 찬 채 조사를 받고, ‘순결 검증’이라는 이름의 신체 검사를 강요당했으며, 그 결과가 공개되기까지 했다고 전하며 당시 사법기관의 태도를 “지금의 기준으로는 납득하기 어려운 수준의 2차 가해”라고 지적했다.

특히 재판부와 검찰이 최씨에게 “가해자와 결혼하면 일이 간단히 끝날 수 있다”는 취지의 말을 했다는 점도 문제로 꼽았다.

한국여성변호사회 관계자는 <CNN>과의 인터뷰에서 “당시 판결은 성폭력에 대한 사회적 인식 부족과 여성에 대한 편견이 그대로 반영된 결과”라고 이 사건을 평가했다. <CNN>은 이번 재심이 “정당방위의 기준을 다시 정립하고, 향후 성폭력 피해자의 방어권 인정 여부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평가했다.

최씨 사건은 당시 사법부가 정당방위의 범위를 어떻게 해석했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로, 법학도들이 판례를 통해 형법의 적용 범위와 한계를 공부할 때, 정당방위로 보기 어려운 사례로 자주 인용되던 사건이다. 실제로 최씨 사건은 이후 형법 교과서에 ‘정당방위의 한계를 보여주는 대표적 판례’로 소개됐다.

대법원이 1995년 법원 100년사를 정리해 발간한 <법원사>에도 ‘강제 키스 혀 절단 사건’으로 공식 소개됐다.

한편, 공판을 마치고 법정을 나온 최씨는 “이겼습니다”라고 외쳤다. 이어 “아직 실감은 나지 않지만, 지금이라도 잘못을 인정하니 대한민국 정의는 살아 있다고 생각한다”며 “모두 국민 여러분 덕분”이라고 말했다.

관습의 시대
뒤늦은 사과

재판을 지켜본 여성단체 관계자들과 방청객 일부는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법정 내 전광판에는 ‘최말자는 무죄!’라는 문구가 떠올랐다.

재판부는 이날 재심 공판을 마무리하며, 오는 9월10일 오후 2시를 최종 선고기일로 지정했다. 검찰이 직접 무죄를 구형한 만큼, 사실상 무죄 판결이 내려질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법조계의 중론이다.

<imsharp@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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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계 스캔들과 정치권 음모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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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한때 연예계를 떨게 했던 ‘마의 11월’이 다시 온 걸까? 매년 11월마다 연예계와 방송가에서 각종 이슈가 터진다는 말에서 비롯된 표현이다. 아슬아슬하게 11월은 넘기는가 싶더니 12월이 되자마자 연예계 이슈가 온 세상을 뒤덮었다. 동시다발로 터져 나온 연예계 사건·사고에 정작 중요한 이슈들이 가라앉고 있다. SNS에서 의혹이 제기되고, 이는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게재된다. 얼마 가지 않아 기사로 보도된다. 유튜브 쇼츠로 제작돼 확산한다. 다시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다. 방송으로 퍼진다. 방송분이 편집돼 다시 유튜브 영상으로 제작된다. 이 모든 과정에서 생산된 콘텐츠는 SNS를 통해 재생산된다. 다른 이슈가 불거진다. 반복된다. 하루 사이 연달아서 최근 이슈가 퍼지는 방식이다. 기사 등을 통해 정보가 대중에게 전달되던 시기는 이제 끝났다. 이제는 오히려 언론이 온라인 커뮤니티 글을 소스로 기사를 작성하는 판이다. 동시에 레거시 미디어를 통해 정보가 확산하던 시기도 지나간 지 오래다. 이제 모두가 유튜브로 이슈를 확인하고 댓글을 통해 의견을 표출한다. 문제는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레거시 미디어로, 또다시 유튜브로 대표되는 뉴미디어로 정보가 전달되는 과정에서 자극도가 높아진다는 점이다. 동시에 확인되지 않은, 왜곡된 내용이 처음 올라온 정보에 덕지덕지 달라붙는다. 확산 속도 또한 어마어마하게 빠르다. 몇 시간이면 대형 온라인 커뮤니티 사이트를 비롯해 유튜브까지 퍼진다. 이 사이클은 무한정 돌아간다. 시간이 가면서 대중은 짧은 영상에 목말라 하고 있다. 분 단위의 영상보다는 초 단위 쇼츠에 더 열광한다. 영상 제작자는 조회수가 곧 돈이기에 대중의 입맛에 콘텐츠를 맞출 수밖에 없다. 도파민을 바라는 대중의 눈에 들기 위해선 흡인력 있는 영상을 만들어야 한다. 사실이든 아니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불과 일주일 새 연예계에서 동시다발로 이슈가 터졌다. 과거, 약물, 갑질, 조폭 의혹 등 언급되는 단어만으로 충격이 일었다. 여기에 의혹에 연루된 연예인의 면면이 전부 각 분야에서 잘 알려진 사람이라는 점은 이슈 확산에 기름을 부었다. 순식간에 커뮤니티와 유튜브 등이 불타올랐다. 배우 조진웅이 과거에 소년범이었다는 보도가 나왔다. 올해 광복절 경축식을 비롯해 정부 행사에 자주 얼굴을 드러냈던 터라 처음에는 반신반의하는 반응이 많았다. 비상계엄 사태 때에도 SNS에 글을 올리는 등 말할 때는 하는 이른바 ‘개념 연예인’으로 알려져 있어 대중은 조진웅의 반응을 기다렸다. 기사, SNS로 한꺼번에 유튜브 타고 빠른 확산 하지만 소년범이었던 과거가 사실로 드러나고 그가 은퇴를 선언하면서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동시에 조진웅의 은퇴를 두고 ‘과거의 일’이라는 의견과 ‘피해자를 생각하라’는 의견이 대립하기 시작했다. 일부 진보 진영 정치인이 한두 마디씩 말을 보태면서 의견 대립은 정치권으로까지 번졌다. 여기에 소년범 의혹을 최초로 기사화한 언론의 보도 윤리도 도마 위에 올랐다. 개그우먼 박나래는 매니저 갑질 의혹과 불법 의료 시술 의혹이 동시에 불거졌다. 매니저들이 박나래를 상대로 고소했다는 보도가 나온 이후 줄줄이 이어진 후속 보도에서 드러난 의혹들이다. 박나래가 매니저들과 진실 공방을 벌이는 내용이 거듭해서 언론 보도, 유튜브 쇼츠 등으로 이어지면서 불씨가 꺼지지 않고 있다. 특히 불법 의료 시술 의혹은 ‘주사 이모’라는 존재가 등장하면서 판이 커질 기미를 보이고 있다. 주사 이모는 박나래에게 주사 등을 통해 투약한 인물로 추정된다. 해당 인물의 SNS가 공개되면서 몇몇 연예인이 연루 의혹을 받고 있다. 경찰 조사가 예정돼있어 장기전이 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개그맨 조세호는 조폭 연루설에 휘말렸다. 조세호 의혹은 SNS를 통해 사진이 공개되면서 확산했다. 폭로자가 조세호와 조폭으로 추정되는 인물이 함께 찍은 사진을 올리고 글을 쓰면서 논란이 불거졌다. 그 여파로 조세호는 고정 출연하고 있던 <유 퀴즈 온 더 블럭>과 <1박 2일>에서 하차했다. 유명 연예인 도마 위에 아이돌 그룹 BTS의 정국과 에스파 윈터의 열애설도 비슷한 시기에 터졌다.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두 사람이 비슷한 위치에 ‘커플 타투’를 했다는 의혹이 나왔다. 두 멤버의 소속사인 하이브와 SM엔터테인먼트는 ‘노코멘트’라고 입장을 밝혔다. 두 그룹이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는 만큼 계속 언급되는 중이다. 한 건만으로도 상당한 파급력을 지닐 사건이 연이어 터지면서 일각에서는 누군가가 민감한 이슈를 덮기 위해 연예계 사건·사고를 일부러 수면 위로 끌어올린 게 아니냐는 이른바 ‘음모론’이 제기되고 있다. 앞서 매년 11월마다 연예인 관련 사건이 일어나는 것을 두고 나왔던 이야기가 이번에 다시 나온 것이다. 정치나 사회 이슈와 비교해 연예계 관련 사건·사고 소식은 대중에게 직관적으로 다가가는 편이라 몰입도가 높다. 동시에 휘발성도 크다. 또 대중에게 잘 알려진 연예인일수록 사건의 파급력이 크다. 물론 연말연시를 앞두고 머리 아픈 이슈에 질린 대중에게 연예계 문제는 더할 나위 없이 흥미로운 소재라 말이 나오는 것일 뿐 확인된 바는 없다. 말 그대로 ‘도시괴담’에 가깝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이번에는 상황이 묘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말이 심심찮게 보인다. 실제 여야가 한데 얽힌 것으로 추정되는 통일교 문제, 야당에서 강하게 반발 중인 국가보안법 폐지 논란 등이 연예계 이슈에 묻혀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3300만명이 넘는 고객의 개인정보가 유출된 쿠팡 사태도 그 사건 규모에 비해 관심도가 떨어지고 있다. 마의 11월 12월로? 통일교 관련 논란은 당초 야당인 국민의힘에 포커스가 집중됐다. 국민의힘 의원들이 통일교로부터 정치자금을 받았다는 의혹이다. 그러다 최근 그 범위가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으로까지 확대됐다. 윤영호 전 통일교 세계본부장이 통일교에서 금품을 제공한 정치인을 진술하면서 민주당 인사들도 입길에 올랐다. 민중기 특별검사팀은 지난 8월 윤 전 본부장으로부터 ‘통일교가 국민의힘 외에 민주당 소속 정치인들도 지원했다’는 취지의 진술을 확보했다. 윤 전 본부장이 언급한 인물 가운데 1명이 전재수 전 해양수산부 장관(당시 민주당 의원)이었다고 한다. 명품 시계 2개와 함께 수천만원을 한일 해저터널 추진 등 교단 숙원사업을 위해 줬다는 것이다. 금품수수 의혹이 보도되자 전 전 장관은 지난 11일, 전격 사의를 표명했다. 그는 “불법 금품수수는 없었다”면서 “장관직을 내려놓고 당당하게 응하는 것이 공직자로서 해야 할 처신”이라고 했다. 이어 “저와 관련된 황당하지만 전혀 근거 없는 논란”이라며 “해수부가 또는 이재명정부가 흔들려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내부에서는 정권이 흔들릴 수도 있는 사안이라는 목소리도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그동안 통일교 관련 논란으로 국민의힘에 맹공을 퍼부었는데 역풍이 불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실제 국민의힘은 ‘통일교 특검’을 주장하면서 민주당과 이 대통령을 몰아가는 중이다. 공수가 뒤바뀐 것이다. 범여권에서 추진 중인 국가보안법(이하 국보법) 폐지를 두고 정치권이 갈등을 빚고 있다. 국민의힘이 국보법 폐지에 강하게 반발하면서 여야 간 힘겨루기로 비화했다. 정치권 이슈 묻히고 쿠팡도 잠잠해지나? 지난 7일 민주당 민형배, 조국혁신당 김준형, 진보당 윤종오 의원은 국보법 폐지 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의원들은 “국보법은 제정 당시 일본제국주의 치안유지법을 계승해 사상의 자유를 억압한 악법이라는 비판을 받아왔다”며 “국보법의 대부분 조항은 형법으로 대체 가능하며 남북교류협력법 등 관련 법률로도 충분히 규율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반면 국민의힘은 국보법 폐지를 용인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국민의힘 송언석 원내대표는 ‘국가보안법 폐지, 누구를 위한 것인가’ 토론회에서 “국가정보원에서 대공수사권을 떼어내 경찰에 이관했지만 경찰은 그만한 준비가 제대로 안 돼 사실상 대공수사가 공중에 붕 뜬 느낌”이라며 “이런 상황에서 국보법을 폐지하려는 시도가 있다는 건 굉장히 심각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연예계 이슈에 바로 직전 가장 큰 이슈였던 쿠팡 사태도 상대적으로 잠잠해졌다. 지난달 말 문자메시지 등을 통해 알려진 쿠팡 사태는 3370만명의 개인정보가 해외로 유출된 사건이다. 사실상 모든 고객의 정보가 털린 셈이다. 올 한 해 통신사, 카드사 등에서 개인정보 유출을 겪은 이용자는 또 한 번 직격탄을 맞았다. 쿠팡 사태는 해킹 등으로 정보가 유출된 여타 업체와 달리 전 직원의 소행으로 드러나면서 이커머스 업체의 보안 실태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지고 있다. 동시에 2010년 창업 이래 이커머스 시장을 독점하다시피 한 쿠팡 생태계의 민낯이 낱낱이 알려졌다. 동시에 쿠팡에서 일어난 노동자 사망사고도 재조명받는 중이다. 지난 10일에는 박대준 쿠팡 대표가 사임했다. 쿠팡은 “최근의 개인정보 사태에 대해 국민께 실망하게 한 점에 대해 매우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이번 사태의 발생과 수습 과정에서의 책임을 통감하고 모든 직위에서 물러나기로 했다”고 밝혔다. 사실상 경질이라는 의견이 많다. 당분간은 계속될 듯 일각에서는 음모론에서 한발 더 나아가 여당 쪽에서 연예계 이슈를 터트린 게 아니냐는 의심이 나오고 있다. 통일교 논란, 국보법 폐지, 쿠팡 논란 등 대형 이슈가 여당 쪽에 불리한 내용이 아니냐는 설명이다. 한편에서는 여야가 동시에 발을 걸치고 있는 사안인 만큼 특정 진영의 유불리를 따질 수 없다는 반박도 나온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