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 차량 급발진 의심 사고 운전자, 1심서 패소

재판부 “브레이크페달 오조작” 판단
유족 측 “제조사에 손…즉시 항소”

[일요시사 취재2팀] 김준혁 기자 = 급발진 의심 사고 시 제조물 책임법상 피해자가 차량의 결함을 입증해야 하는데, 이를 전문 지식이 없는 소비자가 과학적으로 증명해 내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실제로 지금까지 급발진이 인정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지난 2022년 12월, 강원도 강릉서 이도현군(당시 12세)이 사망한 차량 급발진 의심 사고 역시 제조사를 상대로 제기한 민사소송 1심서 유가족이 패소했다.

13일 춘천지방법원 강릉지원 민사2부(박상준 부장판사)는 유가족 측이 KGM(구 쌍용자동차)을 상대로 제기한 9억2000만원 규모의 손해배상청구 사건에 대해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가 차량의 급발진이 아닌 운전자의 페달 오조작으로 보고 제조사의 손을 들어준 셈이다. 유족 측은 즉시 항소하겠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운전자(이 군의 할머니)가 가속페달을 브레이크로 착각해 밟은 것으로 보인다”며 “전자제어장치(ECU)의 결함으로 잘못된 명령을 내린다고 해도 가속페달 기록까지 오류를 일으킬 수 없어 보인다”고 판단했다. 이는 ‘ECU 결함으로 인한 급발진 사고’라는 유가족 측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다.

그러면서 “이번 사건 사고에 대해서 매우 안타깝게 생각한다”며 “많은 고민 끝에 이런 결론을 내리게 됐다”고 유감을 표했다.

이날 재판 과정에선 사고 데이터 기록 장치(EDR, Event Data Recorder) 신뢰성 감정, 블랙박스 영상 음향 분석 감정, 국내 첫 시도인 사고 현장 실도로 주행 재연시험 등 다양한 감정 절차가 반영됐고, 이에 더해 ECU 전문가의 법정 증언까지 함께 다뤄졌다.


선고가 끝난 뒤 KGM 관계자는 “1심 판결에 대해 법원의 판단을 존중하며, 무엇보다 원고께 깊은 위로의 말씀을 전한다”며 “이번 판결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내려진 것으로, 보다 구체적인 내용은 판결문을 통해 확인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유가족 측은 “오늘 판결은 진실보다 기업의 논리를, 피해자보다 제조사의 면피를 선택했다”며 “즉시 항소할 것이며, 도현이의 희생이 진실 위에 정의로 남을 수 있도록 끝까지 싸울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1심 선고 전까지 법조계에선 이번 사고가 급발진의 첫 인정 사례가 될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오기도 했다.

지난 2023년 10월, 유가족 측이 공개한 블랙박스서 “브레이크가 작동이 잘 안 된다”는 할머니의 음성, 경찰이 교통사고처리 특례법상 치사 혐의로 입건된 할머니에 대해 무혐의 처분을 내린 점 등이 추후 민사소송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추측됐기 때문이다.

당시 손정혜 변호사는 <YTN 라디오>에 출연해 경찰의 ‘무혐의’ 결정에 대해 “다행히 할머니가 운전 조작을 잘못해서 사고가 난 것은 아니라는 경찰의 수사 결과가 나온 것”이라고 해석했다.

다만 민사소송에 대해선 “브레이크와 엑셀을 혼동하지 않았고 적절하게 변속레버를 조작했다는 것을 일반인이 과학적으로 증명할 방법이 없다”며 “소비자 입장서 기기 결함으로 인한 급발진 사고로 인정돼 보상받는 것은, 파격적인 대법원 판례가 나오거나 법률이 개정되지 않고서는 정말 어려운 싸움”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이날 1심 판결에 유가족 측이 항소를 결정한 만큼, 소비자 개인이 제조사 측을 상대로 급발진을 인정받는 첫 사례가 될 수 있을 지 관심이 주목된다.


강릉 급발진 의심 사고의 핵심 쟁점은 ‘페달 오조작’ 여부였다. 당초 이번 사고는 30초 동안 지속된 급발진 현상과 “이게 왜 안 돼, 도현아”라는 할머니의 음성이 공개되며 급발진 가능성이 높다는 여론이 형성됐었다.

그러나 지난해 7월, 서울시청역 차량 돌진 사고 당시 운전자의 급발진을 주장을 재판부가 오조작이었다는 판단을 내리면서 상황은 급반전됐다. 당시 법원은 신발 밑창에 가속페달의 흔적이 뚜렷하게 남아 있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이렇듯 최근 발생한 급발진 사고 대부분은 운전자의 실수로 밝혀지고 있는 추세다.

법원은 1심서 ▲EDR 신뢰성 감정 ▲자동 긴급제동 시스템(AEB) 결함 여부 ▲브레이크등 점등 여부 ▲변속레버 상태 등을 다방면으로 조사해 오조작 여부를 심리했다.

당초 급발진을 주장하는 유가족 측은 “약 30초 동안 지속된 급발진 과정서 운전자가 가속페달을 브레이크로 착각해 밟는 건 불가능하다”며 “ECU 소프트웨어 결함에 의한 전형적인 급발진 사고”라고 주장했다.

반면 KGM 측은 ‘풀 액셀러레이터를 밟았다’는 EDR 기록과 국과수 분석 등을 근거로 “페달 오조작”이라고 반박했다.

국과수 분석 결과 사고 차량의 EDR은 사고 전 마지막 5초간 가속페달 변위량을 100%로 기록했다. 가속페달 변위량은 가속 정도를 나타내는 기록으로, 99% 이상인 경우 ‘풀 액셀러레이터’로 판단한다.

유가족 측은 ‘풀 액셀러레이터’를 밟은 5초 동안 속도가 시속 110km에서 6km밖에 증가하지 않았다는 것을 근거로 “할머니가 실제 조작한 것과는 다른 ‘잘못된 기록’이 EDR에 남았다”며 감정을 의뢰했다.

법원이 지정한 전문 감정인은 “충돌 5초 전 가속페달을 최대로 작동시켰다면, 변속장치에 손상이 없었음이 확인됐기에 시속 136.5km가 넘었을 것”이라며 국과수 분석과 상반되는 결과를 내놨다.

이에 재판부는 “같은 연식의 차량으로 실도로 주행 재연 시험한 결과 EDR 기록상의 속도와 차이가 시속 8∼14㎞로 크지 않고, 모닝 차량과의 추돌이 티볼리 차량 성능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있다”며 “실제 상황을 재연한 실험 상의 한계 등을 고려하면 원고들의 주장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국과수 분석 결과를 인용했다.

AEB 결함 여부에 대해서도 유가족 측은 “사고 당시 AEB가 미작동해 결함이 있다”고 건의했다. 재판부는 유가족 측의 이 같은 주장을 기각했다. 본래 AEB는 가속페달 변위량이 60% 이상이면 해제되는데, EDR 기록상 100%로 가속페달을 밟은 것이 확인됐으므로 AEB가 작동하지 않은 것이 맞다고 본 것이다.

또 재판부는 “티볼리 차량이 굉음을 내며 급가속 주행을 시작한 뒤부터 최종 충돌 시점까지 브레이크등이 들어오지 않았다”며, ‘점등 방식은 ECU 결함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제조사 측의 손을 들어줬다.

이외에도 사고 당시 변속레버 상태에 대해선 국과수 분석대로 “운전자가 변속레버를 굉음 발생 직전 주행(D)→중립(N), 추돌 직전 N→D로 조작한 것이 맞다”고 판단했다.


유가족 측은 음향분석 감정인이 ‘변속레버 변환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고 분석한 점을 근거로 “변속레버는 줄곧 D 상태에 있었다”고 주장해 왔다.

하지만 재판부는 음향분석 감정 결과 발견된 음향에 주목하며 “굉음성 엔진 구동음이 발생하기 직전 뭔가 ‘철컥’하는 듯한 다소 상이한 음향이 들린다”며 “음향 발생 시점의 엔진 회전수와 속도 변화 등에 비춰보면 운전자가 변속레버를 변경한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결론적으로, 재판부는 이날 유가족 측의 주장을 모두 기각하고, KGM 측이 증거로 제시한 국과수 감정 결과를 인용하며 원고 패소를 선고했다.

<kj4579@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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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