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더불어민주당이 이재명 전 대표에게 모든 것을 걸었다. 이 전 대표는 대권주자 1위 타이틀을 지키고 있지만, 아직 확신이 부족한 탓일까? 티 나는 ‘이재명 밀어주기’에 당내 곳곳서 반발의 조짐이 보인다.

지난 14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당내 제21대 대선 경선룰을 확정했다. 권리당원 50%와 일반 국민(여론조사) 50%인 ‘국민참여경선’ 방식이다. 해당 룰은 당원투표서 ▲찬성 96.56% ▲반대 3.44%로 압도적인 표차로 통과됐다.
조급했나
19대 대선 이후 민주당은 대의원과 권리당원, 그리고 국민선거인단 참여자가 함께하는 ‘국민경선’으로 선거를 치러왔다. 그러나 이번 경선룰은 이재명 전 대표 지지층이 대다수인 당원의 목소리가 강해진 만큼 특정 인물에게 유리하다는 비판이 나왔다.
완전국민경선제인 ‘오픈프라이머리를 주장했던 민주당 타 후보들의 불만이 쏟아지자 민주당은 역선택 방지를 근거로 들었다. 기존 국민경선 방식으로 진행할 경우 선거인단으로 위장한 특정 세력이 개입해 제대로 된 민심이 반영되지 않을 것이란 우려에서다.
민주당원 사이에서는 “당이 뽑는 후보인데 당원의 목소리가 중요한 건 당연하다”는 기류가 형성됐다.
이 전 대표가 지지율 1위인 상황서 경선룰까지 유리하게 바뀌자 다른 후보들은 거세게 반발했다. 급하게 밀어붙인 경선룰에 결국 탈이 난 모양새다.
가장 먼저 대선 출사표를 던졌던 김두관 전 의원은 같은 날 오후 경선 불참을 선언했다. 김 전 의원 측은 입장문을 통해 “민주당 경선 참여 거부와 참여를 놓고 내부서 논의 중”이라며 “경선 참여 거부를 결정하는 것이 대선 불출마를 의미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김 전 의원은 라디오를 통해 “이 전 대표도 지난번 경선서 국민경선으로 당선이 됐다. 국민이 축제에 참여하면서 이 같은 룰을 만든 것이 오랜 민주당의 원칙과 전통인데, 지금 그 원칙과 전통이 파괴되고 있어서 문제가 크다”고 밝혔다.
민주당의 역선택 방지 조치에 대해서는 “룰을 바꾸기 위한 핑계에 불과하다”고 꼬집었다. 김 전 의원은 “12·3 계엄, 탱크도 막은 게 국민, 또 시민 의식”이라며 “우리 국민 의식을 믿어야 한다. 많은 국민이 자발적으로 참여하게 하는 게 더 큰 선거를 거둘 수 있는 지름길”이라고 설명했다.
경선룰 손질에 판 깔린 대권 무대?
‘경선 거부’ 사태까지…비명계 반발
이로써 민주당 경선은 이 전 대표와 김동연 경기지사, 김경수 전 경남지사 간 3파전으로 치러지게 됐다.
김동연 후보는 민주당의 오랜 원칙과 전통이 파괴된 점에 유감을 표하면서도 “밭을 탓하지 않는 농부의 심정으로 경선에 임하겠다”고 선언했다. 김 후보는 여의도 선거캠프서 기자회견을 열고 “새로운 대한민국을 위한 비전과 정책으로 경쟁하겠다”며 “치열하게 경쟁하고 통 크게 단합하는 경선이 되도록 솔선수범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민주당의 원칙인 국민경선이 무너진 점을 안타깝게 생각하지만 당원이 결정한 만큼 무겁게 받아들인다. 오늘 이후로 가슴에 묻고 유불리에 연연하지 않은 채 당당하게 가겠다”고 밝혔다.
김 후보는 비교적 계파색이 옅은 편이다. 이를 의식한 듯 그는 “‘어대명(어차피 대통령은 이재명)’이 아니고 ‘어대국’이다. 어차피 대통령은 국민이 뽑는다”며 “많은 당원 동지 여러분이 경선 흥행에 빨간불을 걱정한다. 반드시 파란불을 켜겠다. 돌풍을 불러일으키겠다. 제게는 계파도, 조직도 없지만 나라 경제를 걱정하는 국민이 제 계파이자 조직이다. 국민만 보고 가겠다”고 강조했다.

김경수 후보는 당의 결정에 따르겠다는 입장을 거듭 반복했다. 그는 한 라디오를 통해 “경선룰 토론은 일종의 샅바 싸움”이라며 “샅바 싸움을 길게 하는 것은 좋지 않으며 당이 결정하면 따르는 것이 당원의 도리”라고 말했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어대명 분위기가 강하게 감지되지만, 민주당은 이 이상을 넘어 ‘확대명(확실히 대통령 후보는 이재명)’을 바라는 눈치다. 지난 총선서 역풍을 무릅쓰고도 ‘비명계 공천 학살’을 단행한 민주당이 이번에도 강경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지난 20대 대선 경선서 불거진 ‘이낙연 트라우마’를 의식한 게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이 전 대표의 사법 리스크 중 하나인 ‘대장동 스캔들’이 경선 막판에 터진 만큼 비슷한 상황을 사전에 차단하겠단 것으로 풀이된다.
당시 경선후보였던 이 전 대표는 2차 경선까지만 하더라도 이낙연 전 국무총리보다 앞섰지만 대장동 스캔들 이후 3차 국민 선거인단 투표서 이 전 대표는 28.30%를, 이 전 총리는 62.37%를 기록했다.
아직 이낙연 트라우마 못 벗었나
토론회 횟수 갈등까지 첩첩산중
이 과정서 생긴 양측의 갈등은 명낙 대전으로 이어졌다. 결국 대선 패배에 이후 이 전 총리는 탈당했고 지지층 간 여전히 앙금이 남아 있는 상태다.
이 전 총리가 고문으로 있는 새미래민주당(이하 새미래)은 민주당의 경선룰을 꼬집으며 “100% 완벽한 가짜 민주당을 완성했다. 스탈린의 공산당이나 히틀러 나치당과 다를 바 없다”고 거칠게 비판했다.
새미래 전병헌 대표는 SNS를 통해 “민주당은 21세기 대명천지에 멀쩡히 살아있는 이낙연의 그림자에 화들짝 놀라 전통적 경선 제도마저 쫓아냈다”고 말했다. 전 대표는 “민주당이 자랑해 온 빛나는 전통의 마지막 끈마저도 이재명 체제 아래 끊어졌다”며 “이번에는 부족한 2%를 채우고 100% 완벽한 가짜 민주당을 완성했다”고 지적했다.
경선룰에 이어 TV 토론회 개최 횟수를 두고도 갈등이 생겼다. 민주당은 이번 경선서 후보자 TV 토론회를 2회 진행할 예정이다. 이는 과거와 비교했을 때 현저히 적은 횟수로 이 전 대표를 제외한 타 주자들이 자신의 비전과 공약을 충분히 설명할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민주당은 경선 일정이 빠듯해 횟수를 늘리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민주당은 마찬가지로 박근혜 전 대통령 파면으로 치러진 조기 대선 국면 당시에도 예비경선 TV 토론회는 2회, 본경선서도 9회 진행했다. 눈에 띄게 적어진 횟수에 나머지 두 후보 캠프 내에서도 볼멘소리가 나오는 실정이다.
지난 16일 이재명·김동연·김경수 세 사람은 예비후보 등록을 마친 후 처음 한자리에 모였다. 이들은 “단합된 모습으로 공정한 경쟁에 임하겠다”고 저마다 다짐을 했으며 당 지도부 역시 “네거티브 없는 품위 있는 경쟁”을 당부했다.
반격 만지작?
다소 불편한 기류 속 민주당 경선 레이스가 시작됐다.
한 야권 관계자는 “그 누구가 ‘들러리 후보’가 되길 원하겠느냐”며 “세 사람이 웃으면서 손을 잡았지만 김동연·김경수 후보 마음 한편은 쓰릴 수밖에 없다. 주말 동안 순회 경선 당원투표를 거치면서 어느 방식으로든 정치 공세가 이뤄질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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