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실 ‘탈출 러시’ 내막

“어디 갈 데 없나” 산하 기관들 기웃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대통령실 직원들의 탈출 러시가 이어지고 있다. 고위직까지 포함하면 수십명이다. 대통령실 내부는 비상이 걸렸다. 잇단 실무자들의 이탈로 현안 대응이 버거운 모양새다. 난파선서 탈출한 이들은 늘공과 어공 모두 포함됐다. 아직 자리를 옮기지 못한 이들은 ‘낙하산 막차’라도 타려는 것으로 파악됐다.

“윤석열정부만의 문제가 아니다. 어공(정무직 공무원)은 ‘목 놓고 있으면 다 죽는다’는 생각을 항상 갖고 있다.” 대통령실 행정관 출신 한 정치권 인사의 말이다. 지금까지 그래왔듯, 매 정권은 말기에 접어들면 여권 인사 또는 대통령실 간부들의 이사가 이어졌다. 윤석열정부도 다르지 않다. 마지막까지 ‘알박기 인사’가 진행 중이다.

대규모 이동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한 달여간 대통령실서 퇴직한 선임행정관·행정관급 직원은 약 30명이다. 병무청 ‘공직자 등의 병역사항 열람’ 자료에 따르면 2022년 10월부터 대통령실서 근무한 4급 이상(비서관급 제외) 직원은 160여명이다. 이 중 절반이 대통령실을 떠났다.

지난해 11월15일부터 지난 3월까지 3~4급, 일반임기제·별정직 고위공무원과 부이사관·서기관급 직원 수십명이 대통령실을 떠났다. 공개 대상자의 병역 사항을 신고받은 기관장은 1개월 이내 이를 병무청에 통보하고, 병무청은 통보를 받은 후 1개월 이내 이를 관보·홈페이지에 게재해야 한다.

여성의 경우에도 병역의무가 없다는 식으로 게재된다. 별정직 고위 간부던 A씨와 B씨는 최근 선임행정관서 물러났다. 4급 상당 행정관이던 C씨, D씨, E씨 등도 1년도 채 되지 않아 사표를 냈다. 윤정부 출범 초기부터 근무하던 3급 행정관 F씨도 지난해 말 대통령실을 떠났다.


늘공(직업공무원)으로 분류되는 부이사관, 서기관 등 4명도 비상계엄 사태 이후 사직을 택했다.

본래 대통령실서 근무하는 이들 외에 각 부처로부터 파견된 직원들도 ‘탈출’을 염원하고 있다. 대통령실의 기능이 마비된 데다, 정권이 바뀌면 이른바 ‘순장조’가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한 정부 부처 관계자는 “비상계엄 사태 이후 용산으로 파견 나가 있는 직원들이 인사과장에게 ‘최대한 빨리 돌아가고 싶다’는 연락이 빗발친다. 장관이 교통정리를 주도해야 하는데 정국이 그렇지 못하다 보니 마음대로 손쓸 수도 없는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4급 이상 근무자 160여명 절반이 사직
부처 엘리트 출신 경유 ‘공동묘지’로

대통령실에 파견할 지원자가 없자 국장으로 승진시키는 사례도 적지 않다. 기획재정부 한 사무관은 “국장급이든 과장급이든 지원자 자체가 없다. 지금 용산은 ‘공동묘지’다. 가려는 사람이 없다. 발령 대상을 서기관까지 낮춰서 물색 중이라고 하는데 ‘나만 아니면 된다’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통상 대통령실은 각 정부 부처의 에이스들이 파견을 가는 곳이다. 대통령실을 거친 고위공무원들은 1급 실장을 거쳐 정무직인 차관 낙점을 꿈꾼다. 비상계엄 사태로 인해 반대의 상황이 돼버린 것이다.

대통령실 안팎에서는 비상계엄이 아니었더라도 간부들의 탈출 러시가 지난해 말부터 예고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김건희 여사 직속 라인으로 지목됐던 ‘한남동 7인회’와 잇단 ‘김건희 리스크’의 책임을 실무진에게만 지게 만든다는 비판이 수년간 가중됐다는 지적이다.


대통령실 행정관 출신 한 국민의힘 관계자는 “공직기강비서관실서 예고도 없이 휴대폰 사용 내역을 조사하고 감찰을 벌이는 일이 있었다. 대통령의 비공개 식사 일정이 언론에 자주 보도되면서 내부 단속은 지속되고 책임으로 ‘어공 물갈이’와 승진 제외 등 수년간 자행돼온 행태가 폭발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다른 대통령실 출신 인사도 “김건희 여사 라인 인물 중에서 스스로 용산을 나온 이가 거의 없다. 대부분 호가호위하고 잘못을 저지른 사람으로 지목돼도 책임지고 물러나는 경우가 없었다. ‘대통령 라인과 여사 라인 따로’라는 말이 거짓말이 아니다. 책임져야 하는 이가 책임지지 않는데 누가 정권에 충성하겠나”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김건희 리스크’ 책임 전가 불만 폭발
“버티면 죽는다” 순장조 되느니 낙하산

대통령실을 탈출한 일부 간부와 여권 인사들은 ‘낙하산 막차’ 탑승에 열을 올리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정책위의장인 진성준 의원은 최근 광화문 천막당사에서 열린 당 원내대책회의서 “12·3 불법 계엄 이후 우리 당이 파악한 알박기 인사만 해도 15개 기관에 걸쳐 63명 임명, 41명 공모 중으로 100명이 넘는다”고 주장했다.

진 의장은 그 사례로 국민의힘 국회의원을 지낸 최춘식 한국석유관리원 이사장, 국민의힘 서울시의원을 지낸 이주수 에너지정보문화재단 대표이사, 윤석열 캠프 특별고문과 국민의힘 당협위원장을 지낸 유종필 창업진흥원장 등을 거론하며 “자격도 전문성도 검증이 안 된 깜깜이 인사들이 대통령실에 있었거나 국민의힘 명함을 갖고 있다는 이유로 공공기관장에 임명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특히 1년 넘게 장관이 공석으로 있는 여성가족부 산하 양육비이행관리원장에는 대통령실 행정관 출신의 전지현 변호사가 임명된 점을 비판하며 “전문성이 전혀 없는, 김건희 여사의 측근으로 분류되는 인물이 임명됐다. 윤석열정권의 인사 참사가 어제오늘 일은 아니지만 해도 해도 너무한다”고 말했다.

중소벤처기업부 산하 공공기관인 한국벤처투자 상임감사도 여권 출신 인사가 내려왔다. 한국벤처투자는 지난달 말 윤정부 대통령실 행정관 출신을 상임감사로 선임했다.

마지막 기회

그는 20년 가까이 여권서 국회의원 보좌관을 지냈다. 지난달 11일 신청 접수를 마감한 한국벤처투자 대표이사 자리에 중기부 실장급 관료가 물망에 오르고 있지만 ‘외부인’ 가능성도 여전히 언급되고 있다.

신용보증재단중앙회는 지난달 신임 회장으로 원영준 전 중기부 소상공인정책실장을 임명했다. 신임 기관장이 취임하면 보도자료 등을 통해 이를 공지하는 것이 상례지만 신보중앙회는 어물쩡 넘어갔다.

<hounder@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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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가 뭐죠?” MZ가 바꾼 추석 풍경

“차례가 뭐죠?” MZ가 바꾼 추석 풍경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우리에게 추석은 차례를 지내거나 귀향을 하는 것이 익숙한 명절이었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 명절을 보내는 방식이 크게 달라졌다. 특히 차례를 지내는 비중은 줄어들고 MZ세대를 중심으로 긴 연휴를 활용한 여행, 단기 아르바이트, 자기계발 등을 하는 것이 새로운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최근 여론 조사 결과에 따르면 추석에 차례를 지내겠다고 응답한 비율은 40%대 초반에 그쳤다. 절반 이상은 차례를 지내지 않겠다고 답한 것이다. 불과 한 세대 전만 해도 당연하게 여겨지던 차례와 제사가 더 이상 필수가 아니게 된 셈이다. 알바 우선 통계청 조사에서도 명절 의례를 간소화하거나 아예 하지 않는 가정이 해마다 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차례를 지내는 대신 긴 연휴를 여행으로 보내려는 수요가 뚜렷하게 증가했다. 한국인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여행 중개 플랫폼 스카이스캐너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약 77%가 이번 추석 연휴에 여행 계획을 세웠다고 응답했다. 특히 해외여행 비중이 크게 늘었다. 10년 전 대비 명절 여행에 긍정적인 인식이 37%에서 70%로 2배 가까이 상승했다. 검색 데이터에 따르면, 추석 연휴 기간 인기 여행지는 일본(43.1%)이 1위였고, 이어 베트남(13.2%), 중국(9.6%), 태국(7.5%), 대만(6.2%) 순이었다. 도시별로는 일본 후쿠오카(20.2%)가 가장 높은 검색 비율을 기록했으며, 오사카(18.3%), 도쿄(15.4%), 방콕(8.9%), 타이베이(8.0%)가 뒤를 이었다. 여행을 가지 않고 명절 연휴를 일터에서 보내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긴 연휴를 활용해 “돈을 벌겠다”는 사람들이 늘면서 단기 아르바이트 수요도 급증했다. 당근마켓과 같은 알바 커뮤니티와 플랫폼에는 “추석 알바 구합니다”라는 글이 다수 올라왔다. 한 20대 청년은 “쉬는 날이 길어 잠깐이라도 일을 하려 한다”고 밝혔고, 한 대학생은 “여행 경비를 마련하기 위해 선물세트 포장 알바에 지원했다”고 말했다. 특히 명절 기간에는 업무강도가 높아 평균 시급의 1.5배를 지급하는 경우가 많다. 평상시에 근무할 때보다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많은 청년들이 명절 시즌 알바를 노리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 맞춰 구인·구직 플랫폼들은 ‘추석 알바 채용관’을 운영하며 수요를 모으고 있다. 백화점과 대형 마트, 도·소매점과 전통시장에서 단기 인력을 모집하고, 선물용 고기·과일 세트 포장, 택배 상·하차, 진열·판매 등의 일자리가 집중적으로 생겨났다. 절반 이상 “안 지내요” 77%가 여행 계획 세워 지난해 추석 구인 구직 사이트 알바천국 조사에서는 응답자 중 절반 이상(53.9%)이 단기 용돈 벌이를 위해, 22.2%는 고물가로 인한 지출 부담 때문에, 18.2%는 여행 경비나 등록금 등 목돈 마련을 위해 명절 알바를 계획했다고 답했다. 이는 명절을 단순히 휴식 시간으로 보내지 않고, 생계와 목표 달성을 위한 수단으로 활용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음을 보여준다. 집에 머무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자기계발하며 추석 나기’가 새로운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혼자 추석을 보내는 일명 ‘혼추족’ 중에는 독서나 온라인 강의, 어학 공부, 자격증 준비 등에 연휴를 투자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스터디 카페와 도서관을 찾는 이용객이 증가했다는 조사도 나왔다. 일부 출판사나 문화 기획사에서는 명절 연휴에 맞춰 북콘서트 같은 행사를 열기도 했다. 명절이 휴식 기간만이 아닌 스스로를 계발할 수 있는 기회로 활용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 같은 양상은 가족 모임에도 영향을 받았다. MZ세대는 가족·친척 모임을 스트레스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 한 청년은 “친척들과 모이면 취업·결혼 얘기 등으로 잔소리를 들어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가 많은데, 그러느니 차라리 그 시간에 자기계발을 하는 것이 더 유익하다”고 말했다. 과거처럼 친척 모임에 시간을 할애하기보다, 필요한 경우에만 가족을 만나고 나머지 시간에는 개인활동에 집중하는 방식이다. 연휴를 도심에서 보내는 ‘혼추족’을 겨냥해 유통·외식업계도 다양한 이벤트를 내놓고 있다. 수도권 맛집 가이드, 추석맞이 전시·공연, 집콕형 OTT·게임 프로모션 등이 대표적이다. 편의점과 HMR(가정 간편식) 업체는 명절 한정 도시락·한상 차림 제품을 늘리고, 명절 기간 반값·카드 제휴 할인 등 단기 판촉을 강화하고 있다. 추석 선물 시장도 과거와는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예전에는 굴비·한우·고급 과일 세트 등 전통 품목이 중심이었지만, 최근에는 실속형·소포장 선물세트가 늘었다. 대표적으로 대형마트에서는 고급 커피·차 세트, 수제 디저트처럼 가볍게 주고받을 수 있는 소포장 구성이 인기를 끌고 있다. “일과 자기계발이 더 유익해” 명절 스트레스 가족 모임 불참 온라인몰에서는 올리브 오일, 참기름, 견과류, 꿀 등 건강 지향 소품목 세트가 매출 상위에 오르기도 했다. 실속형·소포장 선물을 찾는 배경에는 고물가 부담과 1~2인 가구 증가가 있다. 소비자들은 예전처럼 고가 선물을 준비하기보다, 실용적이고 보관이 편리한 상품을 선택하는 경향을 보인다. 또 명절을 함께 보내는 가족 규모가 줄면서 필요한 양만큼만 담긴 선물세트가 ‘부담 없는 선택’으로 자리 잡았다. 가격 대비 효용을 중시하는 MZ세대 소비자층도 이 같은 흐름을 이끌고 있다. 모바일 선물하기 판매는 전년 추석 대비 두 배 이상 늘었고, 온라인몰도 같은 기간 선물세트 매출이 2배 가까이 증가했다. 편의점 앱을 통한 선물세트 매출은 연중 대비 100% 이상 신장세가 관측됐고, 패션·라이프스타일 플랫폼의 선물하기 거래액도 두 자릿수 증가를 이어가고 있다. 마켓컬리는 추석 기간 한시 선물하기 서비스를 운영하며 홍삼·화장품 등 선물 품목을 확장했다. 명절 식문화 자체도 간편화 된 흐름이 뚜렷하다. 1인 가구 1012만명, 2인 가구 600만명으로 소규모 가구가 크게 늘어난 가운데, 대형마트의 간편 차례상 매출은 최근 3년 연속 증가했다. 편의점의 냉장·냉동 HMR 매출은 두 자릿수 증가했고, 명절 한정 도시락은 1인 가구 밀집 상권에서 판매 비중이 높았다. 이번 추석에도 이런 흐름에 맞춰 대형 마트는 간편 차례상·냉동 밀키트 대형 할인전을, 편의점 4사는 명절 도시락 출시와 제휴 할인행사를 연달아 내놓고 있다. 밀키트와 같은 간편식의 수요가 증가한 데에는 물가 상승이 영향을 미쳤다. 소비자 설문에선 추석 전체 지출 예산이 평균 71만2000원으로 전년 대비 26%가량 늘었다는 응답이 나왔다. 지출 중에는 부모 용돈·선물 비중이 절반을 웃돌았고, 차례상 비용·내식 비용도 적지 않았다. 품목별로 과일·수산물·햅쌀·송편 등의 차례상 음식 가격 부담이 커지면서, 수입 축산물 고려 비율도 늘었다. 이 때문에 “차례상 형식을 간소화하자”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선택의 시대 추석을 준비하는 한 30대 가정주부는 “지금은 시대가 많이 바뀌어서 차례를 안 지내거나 설에 한 번만 지내는 집이 많다. 고물가 시대에 음식을 다 준비하는 것은 부담되는 것 같다. 그런 형식적인 것은 간소화하더라도 차례를 지내는 행위에 의미가 있으니 상관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imshar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