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수장학회 물주' 김재철의 '마지막 로비' 의혹 논란

  • 김설아 sasa7088@ilyosisa.co.kr
  • 등록 2012.10.17 09:3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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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완벽한 ‘박정희 코스프레’를 위하여…

[일요시사=김설아 기자] MBC가 2대 주주인 정수장학회에 대한 기부금을 증액했다. 정수장학회는 이렇게 확보한 자금을 ‘박정희 미화사업’에 지원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문제는 공영방송 MBC다. 대선을 코앞에 두고 공영방송이 특정 대선후보와 관련 있는 일에 동원됐다면 정치권에 일 파장은 상상을 초월한다. 실제 MBC는 정수장학회의 ‘쌈짓돈’ 금고일까. 쏟아지는 관련 논란과 의혹을 <일요시사>가 세세히 짚어봤다. 

논란의 주인공은 김재철 MBC 사장이다. 먼저 사태 파악을 위해선 정수장학회와 MBC의 관계를 짚어봐야 한다. 정수장학회는 MBC 주식 30%(6만주)를 소유한 2대주주인 동시에 <부산일보>주식 100%를 소유하고 있다. 이에 따라 MBC는 배당금 명목으로 매년 3천만원을 정수장학회에 지급한다. 문제는 MBC가 기부금 명목으로 정수장학회에 제공하는 돈. 이 기부금의 규모는 매년 20억원에 이른다.

기부금 이례적 증액
그 배경은 무엇?

2002년 13억원, 2003년 17억원에 이르던 기부금은, 정치권에서 기부금 문제가 쟁점으로 떠오른 2004년부터 2010년까지는 20억원으로 고정됐다. 그런데 2011년에는 6월30일과 9월30일 두 차례로 나눠 각각 10억 7500만원씩 모두 21억 5000만원을 정수장학회에 장학금 명목으로 기부했다. 

MBC는 왜 지난해에 1억5000만원을 더 지원했던 것일까. 기부금 증액이 MBC 이사회에서 결정된 시점은 지난해 5월4일, 방문진이 김재철 사장의 연임을 확정한 것은 같은 해 2월16일의 일이다. 다시 말해 김 사장이 연임에 극적으로 성공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기부금 증액이 이루어진 것이다.

일각에선 이 기부금이 ‘박정희 미화사업’에 지원된 비용일 가능성에 무게를 싣고 있다. 올해로 창립 50주년을 맞은 정수장학회의 박정희 미화사업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사진집 발간 등이다. 이 사업계획은 1년 전부터 예정됐던 것이다. 지난해 9월21일 열린 정수장학회 이사회 회의록에도 실마리가 남아있다. 당시 최필립 정수장학회 이사장은 이렇게 말했다.


“내년에 (정수장학회) 창립 50주년을 맞이합니다. 설립자이신 박정희 대통령 기념사업을 구상하고 있던 중에, 출판사 ‘기파랑’에서 박 대통령의 일생을 조명할 수 있는 사진집을 출판하겠다는 계획과 함께 지원을 요청해왔습니다. 1억5천만원을 요청하고 있습니다만 1억원 정도는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MBC, ‘박정희 출판물’ 위해 기부금 증액?
장학금·동창회보 인쇄비까지 MBC가 지원

이에 김덕순 정수장학회 이사는 “박정희 시대를 경험하지 못한 젊은이들에게 설립자의 업적을 알리는 좋은 기회도 될 듯하다”고 호응했고, 이사진 전원 만장일치로 1억원 지원을 의결했다.

정수장학회 50주년에 맞춰 오는 11월 중 발간 예정인 사진집은 <사진과 함께 읽는 대통령 박정희>(가제)다.
도서출판 기파랑은 <조선일보> 편집인과 방일영문화재단 이사장을 역임한 안병훈씨가 지난 2006년 퇴임 이후 설립한 출판사다.

그는 2007년 대선 당시 박근혜 캠프 공동선거대책위원장을 지냈으며 강창희 국회의장, 김용환·최병렬·김용갑 새누리당 상임고문, 현경대 전 의원 등과 함께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의 멘토그룹인 ‘7인회’에도 속해 있다.

‘김재철 사장의 박정희 회고사진집 출판비용 제공 의혹’을 제기한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 소속 배재정 민주통합당 의원(비례대표)은 이와 관련 “결국 김재철 사장은 적어도 MBC 이사회 이전에 안병훈 기파랑 대표 또는 최필립 정수장학회 이사장으로부터 출판사업과 관련해 지원요청을 받았으며, 이에 따라 1억5000만원을 더 정수장학회 기부금으로 책정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박정희 선양사업에
공영방송 ‘이용’


그러면서 배 의원은 “MBC가 이처럼 정수장학회의 ‘쌈짓돈’ 금고역할을 하면서 박 전 대통령을 기리는 이른바 ‘선양사업’에 돈을 댄 것은 또 있다”고 꼬집었다. 바로 베트남의 200여 명의 장애우 및 고엽제 피해 자녀들에게 지원하는 장학금이다.

최필립 정수장학회 이사장은 지난 2007년 베트남을 방문했을 당시 현지 NGO총연합회인 ‘국민원조대외조정위원회(PACCOM)’의 지원요청을 받고 이를 2008년부터 MBC에 요구해 매년 2만달러를 지원 받은 뒤 이를 정수장학회 명의로 전달하고 있다.

당시 최 이사장은 2008년 10월31일 베트남에서 장학금을 전달하면서 “베트남에서도 정수장학회의 설립자인 고 박정희 대통령과 같이 어려운 상황에서도 열심히 공부해 나라를 위해 일할 수 있는 많은 인재들이 배출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배 의원은 “이는 사실상 선양사업에 장학사업을 활용하고 있음을 내비친 것”이라며 “정수장학회는 또 2011년부터 MBC로부터 2만달러를 추가로 지원 받아 베트남교육진흥기금(VFPE)에 전달하고 있기도 하다”고 지적했다.

이뿐만 아니라 MBC는 정수장학회 졸업생 모임의 회보 발간비까지 부담하고 있다. MBC는 정수장학회 졸업생 모임인 상청회 회보 발간비로 2009년과 2010년에 총 450만원의 인쇄비를 지원했다.

이와 관련 노웅래 민주통합당 의원은 지난달 11일 교육·사회·문화분야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정수장학회가 자신들의 사적용도로 MBC를 활용하고 있다”고 지적하며 “MBC가 정수장학회 동창회마저도 챙겨야 하는 현실이라면 문제가 있는 게 아니냐”라고 비판했다.

남의 재산 강탈해
설립한 장물?

야당 측은 정수장학회를 두고 유신독재의 ‘장물’이라고 말한다. 부산의 언론인이자 기업가, 국회의원을 지냈던 김지태씨로부터 박정희 전 대통령이 강탈해간 게 오늘날 정수장학회라는 것이다. 김씨의 유가족들은 강탈당한 정수장학회를 되찾기 위해 오랜 기간 끈질긴 법적 투쟁을 벌여왔다.

유족 측은 “박정희는 당시 문화방송 주식 2만주(발행 주식의 100%), 부산문화방송 주식 1만3100주(65.5%), <부산일보> 주식 2만주(100%), 부일장학회 자산으로 만들었던 토지 10만평을 ‘헌납’이라는 명목으로 강제적으로 빼앗아 갔다”고 주장했다.

반면 박 후보 측과 정수장학회는 “부정축재 혐의를 받던 김지태씨가 구명을 위해 자진 헌납한 재산”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정수장학회의 명칭은 3번 바뀌었다. 김지태씨가 설립한 부일장학회를 5·16군사쿠데타 이후 박 전 대통령이 ‘5·16장학회’로 개명한 후, 박 전 대통령의 ‘정’과 육영수 여사의 ‘수’를 따서 정수장학회가 됐다.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는 1995년부터 2005년까지 정수장학회의 실소유주이자 이사장으로 재직했다. 그러나 재단에 대한 문제가 불거지자 이사장직을 사임했고, 이후 박정희 의전공보관 출신이자 박근혜 사조직인 미래연합 운영위원이었던 최필립 전 리비아 대사가 이사장직을 맡고 있다. 이 때문에 정수장학회는 박 후보가 사실상 실소유자라는 의혹을 떨치지 못하고 있다.


‘헌납’과 ‘강탈’ 장물 논란 속, 박 후보는?
MBC 민영화 시 정수장학회 소유가능성↑

이런 가운데 지난 5일에는 박 후보가 정수장학회 이사장 재직 당시 불법적으로 11억여원을 받았다는 주장이 터져 나왔다.

국회 교과위 소속 박홍근 민주통합당 의원은 이날 교육과학기술부 국정감사에서 “정수장학회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박 후보는 정수장학회 이사장으로 재직하던 1995년부터 2005년까지 모두 11억3720만원을 실비 보상 명목으로 지급 받았다”고 밝혔다.

박 의원은 이는 상근임직원 외에는 보수를 지급할 수 없도록 한 ‘공익법인의 설립·운영에 관한 법률’을 위반한 불법행위라고 설명했다. 장학재단인 정수장학회는 공익법인이다. 이번 대선에서도 정수장학회는 박 후보의 아킬레스건으로 작용할 게 틀림없어 보인다.

또한 MBC는 올해 정수장학회 기부금 규모를 지난해보다 6억 증액한 27억5천만원을 지급했다. 이를 두고 정치권 안팎에서는 김재철 사장의 ‘마지막 로비’가 아니겠냐는 비판이 적지 않다.

퇴진 압박을 지속적으로 받은 지 오래인 데다가 정권 말기, 이에 김 사장이 자신의 입지와 관련 있는 박 후보에게 일종의 보험금 성격으로 준 돈이 아니냐는 것이다.


민영화가 해법?
누구 좋으라고…

이에 대해 MBC 측은 “2011년의 경우 경영실적이 굉장히 좋았고, 영업이익도 780억원에 달했다”며 “정수장학회 기부금이 20억원으로 묶여온 상황에서 그 액수가 너무 적은 게 아니냐는 의견이 반영되었다고 보면 됐다”고 해명했다.

하루도 바람 잘날 없는 MBC를 두고 ‘민영화가 답’이라는 목소리도 높다. ‘공영방송’이라는 미명 하에 ‘정권의 나팔수’로 전락하고 장기파업 등 문제적 방송사로 찍힌 탓이다.

그러나 한국 사회에서 MBC 지분을 통째로 인수할 수 있는 기업은 없다고 볼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지분을 쪼개 분할매각하는 방식으로 민영화를 시도할 것이라는 시나리오가 나온다. 결국 30%의 지분을 가진 정수장학회가 MBC의 실소유주 역할을 하지 않겠느냐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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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