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브라이언 클레그는 이 책에서 40권이 넘는 대중 과학책을 쓴 작가로서의 오랜 경험과 필력을 십분 발휘해, 고대부터 현대까지 2500년에 이르는 과학책 역사의 줄기를 따라 각 시기 인류에 큰 영향력을 끼친 과학서들의 특징과 시대 배경, 과학사의 줄기에서 차지하는 위치, 한계를 돌아본다.
단순히 과학의 연대기를 나열하는 데 그치지 않고 책이라는 매체를 통해 과학사를 종합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도와준다는 점에서 과학에 관심 있는 독자라면 꼭 한번 읽어 볼 만한 책이다. 또 과학책들의 표지와 삽화, 저자 이미지, 역사적 자료 등 280여점의 방대한 고화질 도판을 실어 이해를 돕는다. 도판만 훑어봐도 그 흐름이 느껴지는 체계적인 아카이브다.
과학책은 사람의 목숨을 살리기도 한다. 19세기 헝가리 의사 이그나즈 제멜바이스가 쓴 <산욕열의 원인, 이해, 예방>은 출산하는 여성들의 수많은 목숨을 살렸다. 당시 유럽은 여성 열 명 중 거의 네 명이 출산하다 사망할 정도로 산모의 사망률이 높았다.
제멜바이스는 이 책에서 그 이유가 의사들이 손을 씻지 않고 산모를 검진하기 때문이라고 체계적으로 밝히며, 의사들이 소독제로 손을 씻으면 분만이 안전하게 끝날 확률이 훨씬 높아진다는 확실한 근거를 제시했다. 출간 후 수십 년 뒤였지만, 그의 권고가 실행되자 산모 사망률은 대폭 감소했다.
제멜바이스는 이 책 출간 당시 많은 비판을 받고 정신적 문제에 시달리다 사망했지만, 그가 쓴 책은 계속 남아 전해졌고 산모 감염률을 크게 낮췄다. 이렇듯 혁신적인 과학책들은 직접적으로 사람의 목숨을 구하기도 하고,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을 완전히 뒤바꿔 놓으며 인식의 지각변동을 일으킨다.
이 책은 <히포크라테스 전집> 유클리드의 <원론> 코페르니쿠스의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 아이작 뉴턴의 <프린키피아>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 제임스 클러크 맥스웰의 <전자기학>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 등 과학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저명한 책들을 비롯해 각 시기 인상적인 활약을 하며 인류의 여정과 함께한 과학서들을 총망라한다.
저자는 오늘날 사람들은 책의 죽음을 단언하기도 하지만, 과학책은 인류의 발전을 비추는 환한 등대 역할을 오랫동안 해 왔고 앞으로도 계속 그런 역할을 할 것이라고 확신한다. 본 도서를 통해 고대부터 현대까지 이어진 지성의 연대기를 따라가다 보면 과학의 발전을 이끌어 온 과학자들, 그리고 그들이 쓴 책에 대한 저자의 헌사가 무색하지 않음을 느낄 수 있다.
이 책을 우리말로 옮긴 제효영 번역가는 “과학 지식은 과학을 업으로 삼는 소수만의 전유물로 고여 있지 않고 세상으로 흘러나와 신선한 공기와도 같은 더 많은 사람의 시선이 닿아야만 완성되고 계속 발전한다”며, 과학책을 읽는 독자의 역할을 강조한다.
이 책에 담긴 책들도 독자와 호흡하며 오랫동안 이어져 왔다. 각 시기 독자들이 어떤 과학책을 원했는지, 과학자들이 이에 어떻게 부응했는지 비중 있게 살펴본다는 점도 이 책의 중요한 특징이다. 책을 쓰는 과학자들과 책을 읽는 사람들이 일궈 온 위대한 여정이 이 한 권에 담겨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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