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락한 윤석열정부 결정적 장면 10

불씨는 김건희
부채질은 명태균
기름칠은 윤석열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당선 당시 과반에 가까웠던 지지율은 10% 초반까지 떨어졌다. 40%대서 30%대로, 여기서 또 20%대로, 이후 10% 후반을 거쳐 10% 언저리까지 단계적으로 무너졌다. 국민은 왜 대통령에 대한 지지를 거둬들였을까?

불과 3년여 전만 해도 윤석열 대통령은 보수 재건의 선봉장 대접을 받았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 분당 사태를 겪는 등 궤멸 직전까지 몰렸던 보수 진영의 유일한 희망으로 불렸다. 대선후보가 넘쳐났던 진보진영과 달리 보수는 말 그대로 씨가 마른 시기였다. 

윤 대통령은 박 전 대통령 탄핵을 발판 삼아 성장했다. 박근혜정부 당시 국가정보원 댓글 수사 과정서 항명하다 좌천된 윤 대통령은 국정 농단 사태로 주목받았다. 박영수 특검팀에 합류해 박 전 대통령을 사법 처리하는 데 일조한 그는 문재인정부서 서울중앙지검장-검찰총장으로 발탁됐다. 

문정부의 ‘파격 인사’를 언급할 때마다 첫 손에 꼽히던 윤 대통령은 조국혁신당 조국 전 대표 수사 문제로 정부와 갈등을 빚기 시작했다. 이후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추미애 의원이 조 전 대표에 이어 법무부 장관으로 임명되면서 대립각은 커졌다.

결국 그는 검찰총장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자진 사퇴했다. 보수 진영의 대권주자로 발돋움을 시작한 시기다. 

2021년 7월 국민의힘 입당, 같은 해 11월 국민의힘 대선후보로 확정된 윤 대통령은 2022년 3월 대선서 민주당 이재명 대표에 0.7%p 차로 신승을 거뒀다. 선출직은 단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정치 초보가 생애 첫 선거서 이겨 대한민국 대통령이 된 것이다. 당시 윤 대통령의 득표율은 48.56%였다.


그로부터 2년7개월 뒤 윤 대통령은 탄핵 소추돼 직무 정지 상황에 부닥쳤다.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11일 만인 지난 14일 국회서 탄핵안이 가결됐다. 검찰과 경찰,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등은 윤 대통령을 비롯한 일부 국무위원, 군·경 관계자를 내란 혐의로 수사하고 있다.

윤 대통령은 ‘내란 우두머리’ 혐의를 받는 중이다. 법정형이 사형, 무기징역, 무기금고뿐인 중범죄다. 

윤 대통령의 지지율은 비상계엄 이후 11%까지 떨어졌다. 집권 이후 최저치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갤럽이 지난 10~12일 전국 만 18세 이상 유권자 1002명을 대상으로 조사(95% 신뢰수준에 표본오차±3.1%p)한 결과다. 전주보다 5%p 하락했고 부정 평가는 85%까지 치솟았다. 부정 평가의 이유로는 비상계엄 사태가 49%를 차지했다. 

윤 대통령의 지지율은 집권 초기 가장 높고 시간이 흐를수록 우하향하는 모습을 보였다. 역대 대통령 대부분 비슷한 양상을 보이지만 윤 대통령은 그 하락세가 가파른 편이다. 또 한 번 하락한 지지율이 반등하는 때도 많지 않았다. 임기 반환점을 지날 무렵에는 이미 10% 후반~20% 초반 박스권에 갇힌 상태였다.

▲‘용산’ 이전의 나비효과 = 윤 대통령이 취임하기 전 국민의 기대치는 50% 후반대였다. 향후 5년간 윤 대통령이 직무 수행을 잘 할 수 있을지에 대한 답이었다. 취임 한 달 전까지 유지되던 50%대 지지율이 40%대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대통령 집무실 이전’이 첫 번째 원인으로 꼽혔다.

내각을 조각하는 과정서 드러난 인사 문제보다 높은 수치였다. 

윤 대통령은 당선인 시절부터 청와대를 벗어나 새로운 집무실서 국정을 보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서울 용산구 국방부 청사가 새로운 대통령실로 낙점됐다. 이전 과정서 불거진 잡음은 청와대를 국민에게 무료 개방하면서 사그라지는 듯했다.


하지만 대통령실 이전이 불러온 나비효과는 대단했다. 무속 논란은 여전히 끊이지 않는 중이고 공사 과정서 드러난 수의계약 의혹은 감사원 감사, 고발, 기소 등 형사 사건으로 비화됐다. 감사원장 탄핵 소추의 원인으로도 작용했다. 민주당은 최재해 감사원장이 대통령실 집무실과 관저 이전 의혹을 부실하게 감사했다는 이유로 탄핵안을 가결시켰다.

취임 초 50% 지지율 다 까먹어
탄핵안 가결 직전 11%로 최저치

▲인사가 만사? 임명 강행 = 윤 대통령의 지지율은 취임 한 달여 동안 50%대를 유지하다가 40%대로 떨어졌다. 하락세는 멈추지 않고 지지율이 30%대까지 떨어지면서 긍정 평가와 부정 평가 사이에 ‘크로스’가 발생했다. 2022년 6월7~9일 조사에서 53%를 찍었던 지지율이 7월5~7일 조사에서 37%까지 떨어진 것이다. 

응답층은 인사를 1순위 부정 평가 원인으로 꼽았다. 윤 대통령의 인사 논란은 단순히 후보자 지명 문제서 끝나지 않았다. ‘불통’ 문제로 번진 것이다. 윤 대통령이 임기 동안 임명을 강행한 인사청문 대상자는 총 29명이다. 문재인정부 23명, 박근혜정부 10명, 이명박정부 17명, 노무현정부 3명과 비교하면 압도적으로 많다.

야당의 신상 털기식 검증도 문제지만 대통령 역시 국회의 문제 제기를 도외시하면서 인사청문회 무용론까지 나왔다. 

▲당내 갈등, 이준석부터 한동훈까지 = 2022년 7월26~28일 조사에서 윤 대통령의 지지율은 취임 이후 처음 30% 아래로 떨어졌다. 부정 평가는 60%를 웃돌았다. 윤 대통령과 국민의힘 등 여권의 지지 기반인 TK(대구·경북)와 보수층서도 긍정과 부정의 격차가 대폭 줄었다. 그 시기까지도 인사 문제는 윤 대통령의 발목을 잡은 상태였고, 여기에 더해 당내 갈등이 주요 원인으로 떠올랐다. 

국민의힘 당 대표였던 현 개혁신당 이준석 의원을 둘러싼 논란이 한창 불거지던 시기였다. 특히 윤 대통령과 국민의힘 권성동 원내대표(당시 당 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가 주고받은 문자메시지가 언론에 공개되면서 사안이 커졌다.

윤 대통령이 이 의원을 겨냥한 듯한 “내부 총질이나 하던 당 대표가 바뀌니 달라졌습니다”라고 보낸 부분에 관심이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국민의힘 당 대표의 힘겨루기는 이 의원서 그치지 않았다. 한동훈 전 대표는 ‘윤한 갈등’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강하게 부딪쳤다. 김건희 여사 문제로 삐걱거리기 시작하더니 사퇴 요구, 거부 등이 이어지면서 감정의 골이 깊어졌다. 한 전 대표는 12·3 비상계엄 사태서 언급된 체포조 명단에 여당 인사 가운데 유일하게 포함됐다.

▲순방 중 비속어 논란, 언론 탄압까지 = ‘외교’는 윤 대통령의 직무 수행 긍정 평가를 지탱하던 한 축이었다. 윤 대통령은 스스로 ‘대한민국 1호 영업사원’이라고 자칭하면서 다양한 국가로 순방을 다녔다. 김 여사와 함께 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해외순방 횟수, 비용 등이 문제로 떠올랐다. 국민 경제 상황이 좋지 않은데 대통령 내외가 지나치게 자주 해외로 나간다는 지적도 잇따랐다. 순방 효과가 크지 않다는 분석도 제기됐다. 실제 대통령이 외국에 나갔다가 돌아와 순방 효과를 홍보하면 지지율이 오르게 마련인데 윤 대통령은 그 폭이 적었다.

이 과정서 ‘바이든-날리면’ 논란이 불거졌다. 2022년 9월22일 MBC는 “이 XX들이 승인 안 해주면 바이든은 쪽팔려서 어떡하나”라는 자막과 함께 윤 대통령의 발언을 보도했다. 대통령실은 ‘바이든’이 아니라 ‘날리면’이라고 해명했다. 이 문제는 소송으로까지 이어졌다. 법원은 1심서 MBC에 정정보도를 하라고 판결했다. 


그 사이 MBC는 ‘편파 방송’이라는 이유로 대통령 전용기 탑승 매체서 배제됐다. 노골적인 언론탄압이라는 지적이 나온 대목이다. 2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여당의 MBC에 대한 부정적인 반응이 계속되고 있다. 권 원내대표는 지난 18일 현안 브리핑 과정서 MBC가 질문하려 하자 “다른 언론사 (질문)하라”며 받지 않았다.

▲또다시 일어난 참사, 이태원 = 2022년 10월29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로서 압사 사고가 발생했다. 20~30대 청년이 죽어가는 사고 현장이 실시간으로 생중계됐다. 전조는 있었으나 대비가 없던 사고였다. 158명이 사고로 사망했고 1명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2014년 세월호 참사로 수많은 10대 아이들을 잃은 경험이 있는 국민은 또다시 일어난 대형 사고에 절망했다. 8년여 만에 다시 일어난 대형 참사에 ‘국가 시스템 부재’라는 지적이 제기됐고 일부 관련자들은 재판에 넘겨졌다. 이태원 참사 관련 수습은 현재진행형이다. 

보수 재건 선봉장 대접 받다…
인사·정책·측근 관리 실패

▲‘나라 망신’ 부산 엑스포&새만금 잼버리 = 마지막까지 ‘근소한 격차’라고 생각했으나 뚜껑을 열어보니 참패였다. ‘2030 세계박람회(엑스포)’ 유치전서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에 29대 119로 진 것이다. ‘무능한 외교’의 극치라는 평가가 뒤따랐다. 애초에 역전극은 무리라는 목소리가 있었지만 정세를 읽지 못하고 무리하게 일을 진행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이미 유치한 국제행사를 제대로 진행하지 못한 점도 문제로 떠올랐다. 지난해 8월 ‘2023 새만금 세계 스카우트 잼버리’ 행사는 파행 그 자체였다. 2017년 문정부서 최종 개최지로 결정된 후 윤정부서 대회 준비를 맡았는데 운영 전반서 문제가 드러났다. 이 사건도 ‘준비 부족’ 지적을 받은 이후 1년여가 지났지만 현재진행형이다.


▲‘원기옥 터진’ 22대 총선 = 이태원 참사, 부산 엑스포 유치 실패, 새만금 잼버리 파행 등 각종 문제는 윤 대통령의 지지율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2022년 11월4주차(11월22~24일 조사)부터 9개월여 동안 윤 대통령의 지지율은 30% 초중반을 오르내렸다. 각종 사건·사고에도 지지율의 등폭이 크지 않았다. 

하지만 지난 4월10일 제22대 국회의원 선거 이후 윤 대통령의 지지율이 23%로 폭락했다. 취임 이후 최저치다. 부정 평가는 66%로 나타났다. 22대 총선서 국민의힘은 108석을 얻으며 ‘폭망’했다. 민주당에 과반, 범야권에 192석을 내줬다. 개헌 가능선(200석)을 막은 게 위안이라면 위안이었다.

총선 과정서 윤 대통령은 ‘엑스맨’ 역할을 자처했다. 김 여사 문제로 국민의힘과 갈등을 빚었고 총선 2개월 전 밀어붙인 의대 정원 증원 문제는 전통적인 보수 지지층인 고령층도 등을 돌리게 했다. 정부가 ‘의대 정원 2000명 증원’을 발표한 이후 전공의가 병원을 떠나면서 발생한 ‘응급실 뺑뺑이’ 문제도 민심에 불을 질렀다. 

윤 대통령은 4·10 선거 결과에 의문을 품었고 이는 12·3 비상계엄 사태서 계엄군의 선거관리위원회 진입으로 이어졌다. 음모론으로만 치부됐던 부정선거 의혹을 대통령이 직접 거론한 것이다. 일각에서는 계엄 사태에 이르기까지 일련의 흐름에 4·10 총선이 큰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도 나온다.

▲‘모든 문제의 시발점’ 김건희 = 김 여사는 윤 대통령이 대선에 나선 이후 ‘조용한 내조’를 말한 바 있다. 대선 기간 내내 김 여사 관련 의혹이 거듭 불거지자 뒤로 물러나 있겠다는 뜻을 드러낸 것이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김 여사의 활동 범위가 넓어지기 시작했고 동시에 각종 의혹이 다시 수면 위로 올라왔다. 

정국을 흔든 사건의 뒷배경에 김 여사의 ‘그림자’가 어른거리는 일이 벌어졌다. 해병대 채 상병 사망 사건과 관련해 수사외압 의혹이 불거졌고 또 구명 로비 의혹이 더해졌다. 특히 구명 로비 의혹에 언급된 이종호 전 블랙펄인베스트 대표가 김 여사가 연루된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의 핵심인물 가운데 1명이라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특검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야권서 흘러나왔다.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은 윤정부의 ‘꼬리표’가 되는 모양새다. 핵심 인물이 기소돼 재판을 받는 상황서 검찰이 김 여사를 무혐의 처분하면서 이창수 서울중앙지검장 등이 탄핵소추되는 등 검찰 조직 자체도 초토화됐다. 민주당 등은 김 여사를 둘러싼 각종 의혹을 망라한 ‘김건희 특검법’을 이른바 ‘통과될 때까지’ 발의하고 있다. 

이 과정서 윤 대통령은 수차례에 걸쳐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했다. 윤 대통령이 직접 국민 앞에서 김 여사 논란을 언급하며 고개를 숙이긴 했지만 악화된 민심을 뒤집을 순 없었다. 과반 의석을 차지하고 있는 야권에 국민의힘서도 이탈표가 늘어나는 등 김 여사에 대한 조사가 본격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된다.

▲‘한 달 내에’ 명태균 게이트 = 명태균씨가 지난달 15일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구속되면서 이런 말을 했다. “나를 구속하면 윤석열 대통령이 한 달 안에 하야한다.” 윤 대통령은 하야하지 않았지만 지난 14일 국회서 탄핵안이 가결되면서 직무 정지 상태가 됐다. 공교롭게도 명씨가 해당 발언을 한 지 꼭 한 달 만이었다. 

‘명태균 게이트’의 핵심은 윤 대통령 부부가 명씨의 영향력 행사에 어느 정도로 관여했는지다. 공천 개입 의혹 등 정치권을 뒤흔들 수 있는 사건 관련 녹취록이 풀리고 있다. 명씨가 김 여사와 나눈 메신저 대화 내용도 공개되면서 사건은 확대될 조짐을 보이는 중이다.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직접적인 ‘트리거’가 됐다는 의견도 있다.

▲‘몰락의 버튼 눌렀다’ 12·3 계엄 = 지난 3일 오후 10시27분 전까지 윤 대통령이 실제 탄핵소추될 것이라는 의견은 많지 않았다. 김 여사 논란 등으로 야권서 ‘탄핵의 불’을 지피려고 노력했지만 국민 반응은 뜨뜻미지근했다. 10년 새 대통령을 두 번이나 탄핵한다는 사실에 거부감을 느끼는 국민이 많았다는 뜻이다. 

하지만 3일 이후 모든 상황이 달라졌다. 1979년 이후 45년 만의 비상계엄 선포는 국민을 자극했다. 국민은 거리로 뛰쳐나왔고 야권은 발 빠르게 탄핵안을 발의했다. 정족수 미달로 투표가 한 차례 불성립됐을 때 국민의 분노지수는 크게 상승했다. 결국 지난 14일 탄핵안이 가결됐다. 윤 대통령은 취임 2년7개월 만에 헌재의 판단을 기다리는 헌정사상 세 번째 대통령이 됐다. 

<jsjang@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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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구로발’ 국민의힘 당원 명부 유출 의혹

[단독] ‘구로발’ 국민의힘 당원 명부 유출 의혹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서울의 한 지역구에서 특정 당의 당원 명부가 유출됐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2020년부터 2022년까지 총선, 지방선거 등을 치르는 과정에서 일어난 일로, 당 관계자의 업무용 노트북에 담겨있던 정보가 뒤늦게 드러난 것이다. 올림픽 육상 100m 경기를 생각해 보자. 8개 레인에 각 나라를 대표하는 선수들이 선다. 이 선수들은 국내 선발전에서 1등을 차지했을 것이다. 국가대표로 뽑힌 선수는 올림픽에 출전해 예선을 치르고 결승에서 금메달을 다툰다. 0.01초 차이로 메달 색깔이 달라지는 경기에서 승자는 늘 단 1명뿐이다. 치열한 공천 경쟁 선거는 올림픽보다도 더 확고한 ‘승자 독식’ 구조다. 올림픽에선 2등에게 은메달, 3등에게 동메달이라도 주지만 선거에서 2등은 꼴찌와 같다. 당선자는 후보자에서 국회의원, 시·군·구의원, 구청장·군수, 시·도지사 등으로 신분 상승이 이뤄진다. 명예와 권력을 동시에 거머쥘 수 있는 자리로 순식간에 올라가는 셈이다. 이렇다 보니 선거에 출마하려는 후보들은 당선 가능성이 큰 자리로 몰린다. 어떤 경기든 일단 출발선에 서야 경쟁을 할 수 있듯, 선거에서 공천은 본선으로 가기 위한 1차 관문이 된다. 자리는 하나, 후보는 여럿이니 경쟁이 치열할 수밖에 없다. 일례로 최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에서 불거진 공천 헌금 의혹은 자리를 돈으로 사려 했다는 내용으로, 관련자는 구속됐다. 최근 서울 구로구에서 일어난 당원 명부 유출 의혹도 공천 경쟁 과정에서 시작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의 업무용 노트북에서 수십개의 엑셀 파일이 발견됐는데 그중 일부가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 명부였고 이름, 연락처, 거주지 등이 포함된 이 파일이 상대 당의 후보 경선에 사용됐을 가능성이 제기됐다. 2020년 21대 총선 당시 서울 구로을 지역구에서 거물급 인사가 후보로 맞붙었다. 구로을 지역은 서울에서 민주당 지지세가 가장 강한 곳이다. 17대(2004년)부터 지난 22대(2024년) 총선까지 20여년간 민주당이 이겼다. 민주당(당시 통합민주당)이 사상 최악의 패배를 당한 18대 총선에서도 구로을 지역은 넉넉하게 수성한 바 있다. 업무용 노트북에서 발견 이름·연락처·거주지 담겨 구로에서만 평생 살았다는 한 시민은 “선거 때마다 텃밭, 험지 이런 말을 많이 쓰지 않나. 구로는 국민의힘 입장에서 ‘사지’다. 민주당이 아주 꽉 잡고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 보니 총선 등에서 민주당 후보가 되기 위한 경쟁이 치열하다. 몇몇 인사들은 바닥부터 훑어가며 선거를 준비한다. 민주당은 21대 총선 때 구로을 지역 후보로 윤건영 의원을 전략공천 형태로 낙점했다. 윤 의원은 당시 문재인정부 청와대 국정기획상황실장을 맡고 있었다. 현재까지도 문재인 전 대통령의 최측근이자 복심으로 불린다. 국민의힘은 서울 양천을 지역에서 내리 3선을 지낸 김용태 전 의원을 ‘자객’ 공천했다. 민주당의 독식으로 관심 지역에서 벗어나 있던 구로을이 순식간에 ‘격전지’로 떠올랐다. 문제는 구로을 지역 총선 출마를 준비하던 예비후보들이 있었다는 점이다. 이 가운데 민주당 조규영 전 서울시의원의 반발이 거셌다. 조 전 시의원은 2006년 지방선거에서 서울 비례대표로 정치권에 입성, 이후 구로2선거구에서 서울시의원으로 재선했다. 조 전 시의원은 최소한 경선은 치를 수 있게 해달라며 민주당의 전략 공천을 비판했다. 당시 조 전 시의원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기존 지역 당원 수보다 더 많은 권리당원을 모았다. 열심히 뛰었다. 누구와 경쟁하든 경선에서 이길 자신이 있었다”며 “그러나 결과는 낙하산 공천이었다. 저는 특혜나 찬스를 원하지 않았다. 공정한 경선만을 바랐다. 낙하산 공천은 공정하지도 않고 본선 경쟁력도 없다”고 강조했다. 어디에 사용했나 조 전 시의원은 노숙 단식까지 해가며 경선을 촉구했지만 결국 낙천했다. 이후 다른 선거에도 출마하지 않았다. 잊히는 듯했던 조 전 시의원의 이름이 최근 다시 거론되고 있다.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업무용 노트북에서 조 전 시의원의 이름이 표기된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 명부가 발견된 것이다. <일요시사> 취재에 따르면 국민의힘 당원들의 이름과 연락처, 행정동 등이 기재된 엑셀 파일은 ‘(보안철저)저쪽디비’ 폴더에 담겨있었다. 해당 파일의 ‘구분’ 부분에 ‘조규영 일반 당원’이라고 표기돼있다.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관계자는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 명부가 맞다고 말했다.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 명부에 민주당 구로을 국회의원 예비후보였던 조 전 시의원의 이름이 기재돼있다는 점에서 의심이 촉발됐다. 동시에 누가 노트북에 해당 파일을 옮겼는지도 관심사로 떠올랐다. 문서가 발견된 노트북은 2020년 총선 과정에서 당원협의회에 업무용으로 지급된 것으로 알려졌다. 다시 말해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관계자만 사용할 수 있었다는 뜻이다.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관계자에 따르면, 지난 지방선거에서 국민의힘 비례대표로 구로구의회에 입성한 A 구의원이 해당 노트북을 사용했다. A 구의원은 2022년 국민의힘 비례대표 후보로 공천을 받아 당선됐다.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여성부장을 맡은 이력도 있다.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관계자에 따르면, 문제의 노트북은 A 구의원이 여성부장으로 활동할 무렵 사용했다가 후임자에게 넘겼다. 그는 “이후 여성부장이 바뀔 때까지 쭉 A 구의원이 가지고 있던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쉬쉬하다 이제서야 눈여겨볼 대목은 A 구의원의 이력이다. 그는 2022년 지방선거에서 국민의힘 소속으로 비례대표 순번을 받아 당선됐지만, 2020년 총선 때까지만 해도 민주당 조 전 시의원을 보좌하는 수행비서 역할을 했다. 실제 조 전 시의원이 예비후보로 선거운동을 하는 모습이 찍힌 사진 곳곳에서 A 구의원을 확인할 수 있다.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관계자에 따르면 “A 구의원은 조 전 시의원 낙천 이후 김용태 전 의원 배우자의 수행비서로 발탁됐다. 김 전 의원의 측근이 A 구의원을 추천한 것으로 안다”며 “2020년 총선에서 김 전 의원이 낙선하고 당협위원장으로 있을 당시 A 구의원이 비례대표로 공천받았다”고 설명했다. 민주당 측 정치인을 수행했던 인사가 국민의힘 소속으로 선거에 출마한 데 이어, 그가 직접 사용한 노트북에서 자신이 보좌했던 사람의 이름으로 파일명이 기재된 국민의힘 당원 명부가 발견된 셈이다. A 구의원이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 명부를 민주당 측에 유출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 대목이다.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관계자는 “A 구의원이 조 전 시의원을 수행할 당시 지역구 경선을 대비해 당원 명부를 입수한 게 아닌가 싶다”며 “당시 경선까지 진행되지 않았기에 당원 명부가 실제 사용됐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 문서를 가지고 있었다는 자체만으로도 의아한 점이 많다”고 말했다. 또 다른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관계자는 “사실 이 문제는 올해 1월경에 처음 드러났다. A 구의원이 당원협의회에 노트북을 반납하고 확인하는 과정에서 해당 폴더가 발견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동안 ‘쉬쉬’하다가 최근에 문제가 수면 위로 올라왔다”고 설명했다. 당협 회의에서 논의 A 구의원 “문제없다” <일요시사> 취재 결과, A 구의원의 당원 명부 유출 의혹은 지난 1월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에서 논의됐다. 해당 의혹이 구로 지역에서 확산하자 A 구의원이 먼저 이 문제를 먼저 거론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당원협의회 회의에 참석했던 관계자에 따르면 대부분 위원은 ‘덮고 가자’는 쪽으로 의견을 모았다고 한다. 문제가 불거지면 지방선거를 망칠 수 있다는 주장이었다. 일부 관계자가 “심각한 개인정보 유출” “해당 행위”라고 주장하면서 조사를 요청했지만 그 수가 많지 않아 관철되지 않았다. 회의에 참석한 한 위원은 “선거를 치르다 보면 당원 명단이 일부 흘러 다니는 경우가 있긴 하지만 이렇게 명부가 통째로 유출되는 건 심각한 일”이라며 “명백한 해당 행위다. 자체 조사를 통해 징계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국민의힘 윤리위원회 규정 제20조(징계사유)에 따르면 ▲당에 극히 유해한 행위를 했을 때 ▲현행 법령 및 당헌·당규·윤리 규칙을 위반해 당 발전에 지장을 초래하거나 그 행위의 결과로 민심을 이탈케 했을 때 등의 사유로 징계할 수 있다고 돼있다. 해당 관계자는 A 구의원의 행위가 당에 극히 유해한 행위라고 주장했다. 경찰 수사가 진행될 가능성도 나오고 있다. 해당 행위? 징계 가능성? A 구의원은 해당 의혹은 전부 해명됐다는 입장이다. 그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당협 회의에서 이 문제가 논의됐는데 문제없다고 결론 났다. (당원 명부 유출 의혹은) 일고의 논의 가치도 없는 주장”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해당 의혹을 언급한 제보자에게 허위사실 유포, 명예훼손 등으로 조치할 수 있다는 점을 전해 달라”고 말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