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락한 윤석열정부 결정적 장면 10

불씨는 김건희
부채질은 명태균
기름칠은 윤석열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당선 당시 과반에 가까웠던 지지율은 10% 초반까지 떨어졌다. 40%대서 30%대로, 여기서 또 20%대로, 이후 10% 후반을 거쳐 10% 언저리까지 단계적으로 무너졌다. 국민은 왜 대통령에 대한 지지를 거둬들였을까?

불과 3년여 전만 해도 윤석열 대통령은 보수 재건의 선봉장 대접을 받았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 분당 사태를 겪는 등 궤멸 직전까지 몰렸던 보수 진영의 유일한 희망으로 불렸다. 대선후보가 넘쳐났던 진보진영과 달리 보수는 말 그대로 씨가 마른 시기였다. 

윤 대통령은 박 전 대통령 탄핵을 발판 삼아 성장했다. 박근혜정부 당시 국가정보원 댓글 수사 과정서 항명하다 좌천된 윤 대통령은 국정 농단 사태로 주목받았다. 박영수 특검팀에 합류해 박 전 대통령을 사법 처리하는 데 일조한 그는 문재인정부서 서울중앙지검장-검찰총장으로 발탁됐다. 

문정부의 ‘파격 인사’를 언급할 때마다 첫 손에 꼽히던 윤 대통령은 조국혁신당 조국 전 대표 수사 문제로 정부와 갈등을 빚기 시작했다. 이후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추미애 의원이 조 전 대표에 이어 법무부 장관으로 임명되면서 대립각은 커졌다.

결국 그는 검찰총장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자진 사퇴했다. 보수 진영의 대권주자로 발돋움을 시작한 시기다. 

2021년 7월 국민의힘 입당, 같은 해 11월 국민의힘 대선후보로 확정된 윤 대통령은 2022년 3월 대선서 민주당 이재명 대표에 0.7%p 차로 신승을 거뒀다. 선출직은 단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정치 초보가 생애 첫 선거서 이겨 대한민국 대통령이 된 것이다. 당시 윤 대통령의 득표율은 48.56%였다.


그로부터 2년7개월 뒤 윤 대통령은 탄핵 소추돼 직무 정지 상황에 부닥쳤다.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11일 만인 지난 14일 국회서 탄핵안이 가결됐다. 검찰과 경찰,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등은 윤 대통령을 비롯한 일부 국무위원, 군·경 관계자를 내란 혐의로 수사하고 있다.

윤 대통령은 ‘내란 우두머리’ 혐의를 받는 중이다. 법정형이 사형, 무기징역, 무기금고뿐인 중범죄다. 

윤 대통령의 지지율은 비상계엄 이후 11%까지 떨어졌다. 집권 이후 최저치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갤럽이 지난 10~12일 전국 만 18세 이상 유권자 1002명을 대상으로 조사(95% 신뢰수준에 표본오차±3.1%p)한 결과다. 전주보다 5%p 하락했고 부정 평가는 85%까지 치솟았다. 부정 평가의 이유로는 비상계엄 사태가 49%를 차지했다. 

윤 대통령의 지지율은 집권 초기 가장 높고 시간이 흐를수록 우하향하는 모습을 보였다. 역대 대통령 대부분 비슷한 양상을 보이지만 윤 대통령은 그 하락세가 가파른 편이다. 또 한 번 하락한 지지율이 반등하는 때도 많지 않았다. 임기 반환점을 지날 무렵에는 이미 10% 후반~20% 초반 박스권에 갇힌 상태였다.

▲‘용산’ 이전의 나비효과 = 윤 대통령이 취임하기 전 국민의 기대치는 50% 후반대였다. 향후 5년간 윤 대통령이 직무 수행을 잘 할 수 있을지에 대한 답이었다. 취임 한 달 전까지 유지되던 50%대 지지율이 40%대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대통령 집무실 이전’이 첫 번째 원인으로 꼽혔다.

내각을 조각하는 과정서 드러난 인사 문제보다 높은 수치였다. 

윤 대통령은 당선인 시절부터 청와대를 벗어나 새로운 집무실서 국정을 보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서울 용산구 국방부 청사가 새로운 대통령실로 낙점됐다. 이전 과정서 불거진 잡음은 청와대를 국민에게 무료 개방하면서 사그라지는 듯했다.


하지만 대통령실 이전이 불러온 나비효과는 대단했다. 무속 논란은 여전히 끊이지 않는 중이고 공사 과정서 드러난 수의계약 의혹은 감사원 감사, 고발, 기소 등 형사 사건으로 비화됐다. 감사원장 탄핵 소추의 원인으로도 작용했다. 민주당은 최재해 감사원장이 대통령실 집무실과 관저 이전 의혹을 부실하게 감사했다는 이유로 탄핵안을 가결시켰다.

취임 초 50% 지지율 다 까먹어
탄핵안 가결 직전 11%로 최저치

▲인사가 만사? 임명 강행 = 윤 대통령의 지지율은 취임 한 달여 동안 50%대를 유지하다가 40%대로 떨어졌다. 하락세는 멈추지 않고 지지율이 30%대까지 떨어지면서 긍정 평가와 부정 평가 사이에 ‘크로스’가 발생했다. 2022년 6월7~9일 조사에서 53%를 찍었던 지지율이 7월5~7일 조사에서 37%까지 떨어진 것이다. 

응답층은 인사를 1순위 부정 평가 원인으로 꼽았다. 윤 대통령의 인사 논란은 단순히 후보자 지명 문제서 끝나지 않았다. ‘불통’ 문제로 번진 것이다. 윤 대통령이 임기 동안 임명을 강행한 인사청문 대상자는 총 29명이다. 문재인정부 23명, 박근혜정부 10명, 이명박정부 17명, 노무현정부 3명과 비교하면 압도적으로 많다.

야당의 신상 털기식 검증도 문제지만 대통령 역시 국회의 문제 제기를 도외시하면서 인사청문회 무용론까지 나왔다. 

▲당내 갈등, 이준석부터 한동훈까지 = 2022년 7월26~28일 조사에서 윤 대통령의 지지율은 취임 이후 처음 30% 아래로 떨어졌다. 부정 평가는 60%를 웃돌았다. 윤 대통령과 국민의힘 등 여권의 지지 기반인 TK(대구·경북)와 보수층서도 긍정과 부정의 격차가 대폭 줄었다. 그 시기까지도 인사 문제는 윤 대통령의 발목을 잡은 상태였고, 여기에 더해 당내 갈등이 주요 원인으로 떠올랐다. 

국민의힘 당 대표였던 현 개혁신당 이준석 의원을 둘러싼 논란이 한창 불거지던 시기였다. 특히 윤 대통령과 국민의힘 권성동 원내대표(당시 당 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가 주고받은 문자메시지가 언론에 공개되면서 사안이 커졌다.

윤 대통령이 이 의원을 겨냥한 듯한 “내부 총질이나 하던 당 대표가 바뀌니 달라졌습니다”라고 보낸 부분에 관심이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국민의힘 당 대표의 힘겨루기는 이 의원서 그치지 않았다. 한동훈 전 대표는 ‘윤한 갈등’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강하게 부딪쳤다. 김건희 여사 문제로 삐걱거리기 시작하더니 사퇴 요구, 거부 등이 이어지면서 감정의 골이 깊어졌다. 한 전 대표는 12·3 비상계엄 사태서 언급된 체포조 명단에 여당 인사 가운데 유일하게 포함됐다.

▲순방 중 비속어 논란, 언론 탄압까지 = ‘외교’는 윤 대통령의 직무 수행 긍정 평가를 지탱하던 한 축이었다. 윤 대통령은 스스로 ‘대한민국 1호 영업사원’이라고 자칭하면서 다양한 국가로 순방을 다녔다. 김 여사와 함께 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해외순방 횟수, 비용 등이 문제로 떠올랐다. 국민 경제 상황이 좋지 않은데 대통령 내외가 지나치게 자주 해외로 나간다는 지적도 잇따랐다. 순방 효과가 크지 않다는 분석도 제기됐다. 실제 대통령이 외국에 나갔다가 돌아와 순방 효과를 홍보하면 지지율이 오르게 마련인데 윤 대통령은 그 폭이 적었다.

이 과정서 ‘바이든-날리면’ 논란이 불거졌다. 2022년 9월22일 MBC는 “이 XX들이 승인 안 해주면 바이든은 쪽팔려서 어떡하나”라는 자막과 함께 윤 대통령의 발언을 보도했다. 대통령실은 ‘바이든’이 아니라 ‘날리면’이라고 해명했다. 이 문제는 소송으로까지 이어졌다. 법원은 1심서 MBC에 정정보도를 하라고 판결했다. 


그 사이 MBC는 ‘편파 방송’이라는 이유로 대통령 전용기 탑승 매체서 배제됐다. 노골적인 언론탄압이라는 지적이 나온 대목이다. 2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여당의 MBC에 대한 부정적인 반응이 계속되고 있다. 권 원내대표는 지난 18일 현안 브리핑 과정서 MBC가 질문하려 하자 “다른 언론사 (질문)하라”며 받지 않았다.

▲또다시 일어난 참사, 이태원 = 2022년 10월29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로서 압사 사고가 발생했다. 20~30대 청년이 죽어가는 사고 현장이 실시간으로 생중계됐다. 전조는 있었으나 대비가 없던 사고였다. 158명이 사고로 사망했고 1명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2014년 세월호 참사로 수많은 10대 아이들을 잃은 경험이 있는 국민은 또다시 일어난 대형 사고에 절망했다. 8년여 만에 다시 일어난 대형 참사에 ‘국가 시스템 부재’라는 지적이 제기됐고 일부 관련자들은 재판에 넘겨졌다. 이태원 참사 관련 수습은 현재진행형이다. 

보수 재건 선봉장 대접 받다…
인사·정책·측근 관리 실패

▲‘나라 망신’ 부산 엑스포&새만금 잼버리 = 마지막까지 ‘근소한 격차’라고 생각했으나 뚜껑을 열어보니 참패였다. ‘2030 세계박람회(엑스포)’ 유치전서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에 29대 119로 진 것이다. ‘무능한 외교’의 극치라는 평가가 뒤따랐다. 애초에 역전극은 무리라는 목소리가 있었지만 정세를 읽지 못하고 무리하게 일을 진행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이미 유치한 국제행사를 제대로 진행하지 못한 점도 문제로 떠올랐다. 지난해 8월 ‘2023 새만금 세계 스카우트 잼버리’ 행사는 파행 그 자체였다. 2017년 문정부서 최종 개최지로 결정된 후 윤정부서 대회 준비를 맡았는데 운영 전반서 문제가 드러났다. 이 사건도 ‘준비 부족’ 지적을 받은 이후 1년여가 지났지만 현재진행형이다.


▲‘원기옥 터진’ 22대 총선 = 이태원 참사, 부산 엑스포 유치 실패, 새만금 잼버리 파행 등 각종 문제는 윤 대통령의 지지율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2022년 11월4주차(11월22~24일 조사)부터 9개월여 동안 윤 대통령의 지지율은 30% 초중반을 오르내렸다. 각종 사건·사고에도 지지율의 등폭이 크지 않았다. 

하지만 지난 4월10일 제22대 국회의원 선거 이후 윤 대통령의 지지율이 23%로 폭락했다. 취임 이후 최저치다. 부정 평가는 66%로 나타났다. 22대 총선서 국민의힘은 108석을 얻으며 ‘폭망’했다. 민주당에 과반, 범야권에 192석을 내줬다. 개헌 가능선(200석)을 막은 게 위안이라면 위안이었다.

총선 과정서 윤 대통령은 ‘엑스맨’ 역할을 자처했다. 김 여사 문제로 국민의힘과 갈등을 빚었고 총선 2개월 전 밀어붙인 의대 정원 증원 문제는 전통적인 보수 지지층인 고령층도 등을 돌리게 했다. 정부가 ‘의대 정원 2000명 증원’을 발표한 이후 전공의가 병원을 떠나면서 발생한 ‘응급실 뺑뺑이’ 문제도 민심에 불을 질렀다. 

윤 대통령은 4·10 선거 결과에 의문을 품었고 이는 12·3 비상계엄 사태서 계엄군의 선거관리위원회 진입으로 이어졌다. 음모론으로만 치부됐던 부정선거 의혹을 대통령이 직접 거론한 것이다. 일각에서는 계엄 사태에 이르기까지 일련의 흐름에 4·10 총선이 큰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도 나온다.

▲‘모든 문제의 시발점’ 김건희 = 김 여사는 윤 대통령이 대선에 나선 이후 ‘조용한 내조’를 말한 바 있다. 대선 기간 내내 김 여사 관련 의혹이 거듭 불거지자 뒤로 물러나 있겠다는 뜻을 드러낸 것이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김 여사의 활동 범위가 넓어지기 시작했고 동시에 각종 의혹이 다시 수면 위로 올라왔다. 

정국을 흔든 사건의 뒷배경에 김 여사의 ‘그림자’가 어른거리는 일이 벌어졌다. 해병대 채 상병 사망 사건과 관련해 수사외압 의혹이 불거졌고 또 구명 로비 의혹이 더해졌다. 특히 구명 로비 의혹에 언급된 이종호 전 블랙펄인베스트 대표가 김 여사가 연루된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의 핵심인물 가운데 1명이라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특검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야권서 흘러나왔다.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은 윤정부의 ‘꼬리표’가 되는 모양새다. 핵심 인물이 기소돼 재판을 받는 상황서 검찰이 김 여사를 무혐의 처분하면서 이창수 서울중앙지검장 등이 탄핵소추되는 등 검찰 조직 자체도 초토화됐다. 민주당 등은 김 여사를 둘러싼 각종 의혹을 망라한 ‘김건희 특검법’을 이른바 ‘통과될 때까지’ 발의하고 있다. 

이 과정서 윤 대통령은 수차례에 걸쳐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했다. 윤 대통령이 직접 국민 앞에서 김 여사 논란을 언급하며 고개를 숙이긴 했지만 악화된 민심을 뒤집을 순 없었다. 과반 의석을 차지하고 있는 야권에 국민의힘서도 이탈표가 늘어나는 등 김 여사에 대한 조사가 본격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된다.

▲‘한 달 내에’ 명태균 게이트 = 명태균씨가 지난달 15일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구속되면서 이런 말을 했다. “나를 구속하면 윤석열 대통령이 한 달 안에 하야한다.” 윤 대통령은 하야하지 않았지만 지난 14일 국회서 탄핵안이 가결되면서 직무 정지 상태가 됐다. 공교롭게도 명씨가 해당 발언을 한 지 꼭 한 달 만이었다. 

‘명태균 게이트’의 핵심은 윤 대통령 부부가 명씨의 영향력 행사에 어느 정도로 관여했는지다. 공천 개입 의혹 등 정치권을 뒤흔들 수 있는 사건 관련 녹취록이 풀리고 있다. 명씨가 김 여사와 나눈 메신저 대화 내용도 공개되면서 사건은 확대될 조짐을 보이는 중이다.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직접적인 ‘트리거’가 됐다는 의견도 있다.

▲‘몰락의 버튼 눌렀다’ 12·3 계엄 = 지난 3일 오후 10시27분 전까지 윤 대통령이 실제 탄핵소추될 것이라는 의견은 많지 않았다. 김 여사 논란 등으로 야권서 ‘탄핵의 불’을 지피려고 노력했지만 국민 반응은 뜨뜻미지근했다. 10년 새 대통령을 두 번이나 탄핵한다는 사실에 거부감을 느끼는 국민이 많았다는 뜻이다. 

하지만 3일 이후 모든 상황이 달라졌다. 1979년 이후 45년 만의 비상계엄 선포는 국민을 자극했다. 국민은 거리로 뛰쳐나왔고 야권은 발 빠르게 탄핵안을 발의했다. 정족수 미달로 투표가 한 차례 불성립됐을 때 국민의 분노지수는 크게 상승했다. 결국 지난 14일 탄핵안이 가결됐다. 윤 대통령은 취임 2년7개월 만에 헌재의 판단을 기다리는 헌정사상 세 번째 대통령이 됐다. 

<jsjang@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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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생기업 잡은’ 신정훈 의원실 수상한 보도자료

[단독] ‘생기업 잡은’ 신정훈 의원실 수상한 보도자료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한 업체가 국회의원실발 보도자료에 직격탄을 맞았다. 해당 업체는 보도자료의 내용이 사실과 다르다고 억울함을 토로했다. 보도자료를 쓴 의원실 보좌관은 “잘못된 부분이 없다”고 반박했다. 양측의 입장이 첨예하게 엇갈리는 상황에서 <일요시사>가 사건의 전말을 파헤쳐 봤다. 국회의원은 최고 헌법기관인 국회의 구성원인 동시에 개개인이 헌법기관이라는 이중적 지위를 갖는다. 법률을 만들고 개정하는 입법 기능 외에도 인사청문회, 국정감사 등을 통해 행정부를 견제하고 감시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투표로 선출된 ‘국민의 종’으로서 국회의원은 기자회견, 보도자료 등을 통해 국민에게 활동 상황을 보고한다. 국회의원 민원 창구? 국회의원 이름으로 하루에도 수건씩 보도자료가 쏟아진다. 법안을 발의하거나 지역구 예산을 수주했다는 내용, 자료와 데이터를 바탕으로 정부 기관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내용 등이다. 언론은 국회의원실발 보도자료를 받아 기사로 작성한다. 언론 보도는 사정기관의 감사나 수사 등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최근 한 국회의원실에서 나온 보도자료가 논란이 되고 있다. 보도자료에 언급된 정부 기관, 그 기관과 일하는 업체 등이 후폭풍에 휘말렸다. 보도자료를 받아 쓴 일부 매체는 언론중재위원회에 제소됐다. 언론사 기자들의 이메일로 배포된 보도자료는 국회의원실 보좌관이 직접 작성한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 5월14일 더불어민주당 신정훈 의원실 오모 보좌관은 ‘경찰청, 순찰차 납품 지연 및 특정 업체 유착 의혹에도 자료 제출 거부!’라는 제목의 보도자료를 작성해 언론사 기자들에게 보냈다. 신정훈 의원은 전남 나주·화순을 지역구로 하는 3선 의원으로, 현재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다. 경찰청은 행정안전위원회의 피감기관이다. 순찰차는 일반 차량에 특장 작업을 거쳐 경찰청에 납품된다. 멀리서도 순찰차임을 확인할 수 있는 리프트 경광등을 달고 겉면에 스티커를 부착하는 ‘데칼’ 작업을 거쳐 수배·체납·도난 차량을 확인할 수 있는 멀티캠을 내부에 다는 등의 작업을 거친다. 순찰차 한 대를 특장하는 데 약 1700만원의 비용이 드는 것으로 알려졌다. 매년 1000여대의 노후 순찰차가 교체된다. 신정훈 의원실에 따르면 지난해 노후 순찰차 959대를 교체하기 위해 총 491억원의 예산이 집행됐다. 하지만 이 중 약 225억원 상당인 343대가 납기를 맞추지 못했고 완성 검사를 통과하지 못했다. 또 납품업체의 문제로 순찰차 납품이 늦어졌는데도 불구하고 발주 기관인 경찰청은 지체상금 부과, 계약 해지 등의 조치를 하지 않는 등 직무유기를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신정훈 의원실의 자료 요구에 경찰청이 제출을 거부하고 있다고도 덧붙였다. 신정훈 의원실은 ‘공공계약에 정통한 한 법조계 관계자’의 “경찰청이 계약성 권리조차 행사하지 않고 이를 묵인한 데다 국회의 자료 제출 요구도 거부한 것은 행정 편의주의를 넘어 법적 의무의 명백한 방기”라며 “이 정도 사안이면 감사원 감사는 물론 직권남용과 배임 혐의까지 적용될 수 있는 중대한 사안”이라는 코멘트를 인용했다. 순찰차 납품 과정 지적 해당업체 “사실과 달라” 납품업체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신정훈 의원실은 “동일한 지배 구조를 가진 Y사(보도자료에는 A사)와 N사(B사)가 10여년간 경찰청의 대형 계약을 반복적으로 수주해 왔다”며 “수의계약이나 경쟁입찰의 형식을 빌린 사실상의 내정 또는 담합 행위로 해석될 수 있다. 공정거래법상 ‘부당 공동행위’ 및 ‘입찰 방해’에 해당될 여지가 있다”고 설명했다. N사는 Y사의 임직원이 만든 회사로 두 업체는 모회사-자회사 관계다. 신 의원은 “국민의 세금으로 집행되는 치안 장비 도입 사업이 법적 절차와 원칙을 무시한 채 일부 업체에 특혜로 왜곡되고 있다”며 “기존 계약분에 대한 의혹이 해소되지 않은 상태에서 신규 발주가 진행돼서는 안 된다. 철저한 진상 조사와 책임자 처벌, 재발 방지 대책이 선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보도자료를 바탕으로 몇몇 언론이 기사를 냈다. 보도 이후 납품업체인 Y사가 보도자료 내용에 사실과 다른 부분이 있다고 주장했다. Y사는 경찰, 법무부 등에 차량을 개조해 납품하는 특장업체다. Y사 관계자는 “보도자료가 배포되기 전, 기사가 나가기 전에 신정훈 의원실이나 언론으로부터 단 한 차례의 연락도 받지 못했다. 보도가 나간 이후 오 보좌관을 만나 사실과 다른 부분을 상세히 설명했지만 아무것도 반영되지 않았다. 오히려 지난달에 관련 보도가 한 차례 더 나갔다”고 주장했다. Y사는 경찰청과 직접 계약을 맺거나 현대자동차로부터 하도급을 받는 형태로 이번 납품에 참여했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경찰청은 현대자동차로부터 616대(소나타), Y사로부터 73대(스타리아 37대, 넥쏘 36대), N사로부터 270대(아이오닉 181대, 그랜저 89대) 등 총 959대를 납품받았다. Y사 관계자는 신정훈 의원실에서 지적한 납품 지연과 검사 불합격에 대해 “제작은 이미 완료됐고 출고를 기다리던 중에 검사 하나가 마무리되면 또 다른 검사를 요청하는 식으로 5개월 동안 시간을 끌었다”며 “2015년부터 경찰청에 순찰차를 납품해 왔지만 이번을 제외하고 단 한 번도 납기에 늦은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우리와 N사의 계약 차량은 납품까지 5개월 넘게 걸렸고 H사의 계약 차량은 검사 하루 만에 출고 처리됐다”며 “그동안 경찰청 검사가 미진했다고 주장하려면 우리든 H사든 같은 잣대로 진행해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사실 확인 안 했다? H사는 순찰차에 설치하는 리프트 경광등을 제작하는 업체로 현대자동차와 하도급 계약을 맺고 납품한 것으로 알려졌다. Y사와 N사가 담합해 경찰청 계약을 10년 동안 수주해 왔다는 내용에 대해서는 “경찰청은 조달사업법에 따른 나라장터 종합쇼핑몰 우선 구매 제도를 통해 (업체들과) 계약했다. 나라장터에 물건을 올리면 경찰청에서 선택하는 방식”이라면서 “우리와 N사는 같은 차종으로 경쟁한 적이 단 한 차례도 없다”고 반박했다. 반면 오 보좌관은 순찰차 사업과 관련해 드러난 문제를 고치라고 여러 차례 얘기했는데 시정되지 않자 보도자료를 통해 지적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지난 1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비서실에서 <일요시사>와 만나 “공무원이 어떤 업무를 하다가 다소간 실수가 발생할 수 있고 관행적으로 잘못된 부분이 있을 수 있다. 그걸 인정하고 시정하면 끝까지는 안 간다”고 말했다. 이어 “순찰차 관련 문제를 (경찰청에) 수도 없이 얘기했는데 고쳐지지 않았다. 1차 차량 검사에서 불합격이 나왔는데 2차 검사를 할 때 보니 1차에서 나온 문제가 하나도 시정되지 않았다. 3차 검사는 나도 모르게 진행됐다. 시험성적서를 달라는 말에도 개인 정보를 이유로 주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이번에 납품한 순찰차에 설치된 경광등이 사양서에 맞지 않는다고도 지적했다. 오 보좌관은 “리프트 경광등의 핵심 기능은 주야간 150m 구간에서 잘 보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 납품된 것은 그게 안 된다. 30m만 떨어져도 잘 보이지 않는다. 순찰차에 치명적인 장애”라고 비판했다. Y사 관계자는 “사양서가 존재하는데 30m 밖에서 안 보인다는 건 말이 안 된다. 경찰청에서 3회가량 시연회를 진행했고 현장에서도 더 밝다는 의견이 있었다. 경광등이 사양서와 일부 맞지 않는 건 애초에 사양서 자체가 H사의 제품에 맞춰진 것이기 때문”이라면서 “오히려 H사의 경광등이 경찰청 순찰차 사양서에 적용돼 2015년부터 2024년, 우리와 문제가 생기기 전까지 10여년간 독점적으로 사용됐다”고 반박했다. “현장 직원들 사이에서 고장이 잦아 수리 비용이 많이 나온다는 말을 들은 적 있다”는 이 관계자는 “이번 일이 일어난 것도 H사가 자사의 경광등을 납품하기 위해 오 보좌관에게 문제 제기를 한 게 시발점이 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시정 안 해” “문제 없다” 순찰차를 납품하는 업체들이 자사의 경광등이 아닌 다른 업체의 것을 사용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H사가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이번 일이 일어났다는 것이다. Y사 관계자는 “2022~2023년 H사 경광등에 문제가 발생해 현대자동차가 납기를 놓치는 일이 일어났다. 이 일을 계기로 지난해 5~6월 경광등 납품업체를 바꾸려는 시도가 있었던 걸로 안다”고 주장했다. Y사 역시 H사와 경광등 발주 문제로 갈등을 겪었다. Y사 관계자는 “지난해 6월부터 11월까지 H사에 경광등 발주 견적서를 달라고 요청했지만 답을 받지 못했다. 납기가 (지난해) 12월12일까지라 우리한테도 시간이 많지 않았다. 그래서 (지난해) 11월15일 경찰청과 경광등 업체를 바꾸는 문제로 협의를 진행했고, 11월26일에 바뀐 업체의 경광등으로 우리 공장에서 시연회를 열었다”고 말했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H사는 순찰차 납품업체들과의 갈등을 ‘민원’을 통해 해결하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H사 대표가 신정훈 의원실 오 보좌관을 만나 억울함을 토로했고 그 내용이 지난 5월 나온 보도자료의 배경이 됐다는 의혹이다. 실제로 오 보좌관은 처음에는 민원을 받아 보도자료를 작성한 게 아니라고 했다가 나중에는 H사 대표를 만났다고 인정했다. 지난해 8월경 지역의 향우회장과 함께 H사의 대표가 찾아왔다는 것이다. 공교롭게도 오 보좌관이 경찰청의 순찰차 사업을 들여다보기 시작한 시기와 일치한다. 오 보좌관은 지난 5월14일에 나온 보도자료에 대해 묻자 “지난해 8월부터 이 문제를 파고 있었다”며 “내부에서 나온 정보도 있고 경찰청에서도 (순찰차 사업에 대해) 문제 의식을 갖고 있었다. 이 문제로 경찰청 관계자를 30~40번 만났다”고 밝혔다. 눈여겨볼 대목은 H사 대표가 같은 시기 신 의원에게 정치후원금을 냈다는 점이다. <일요시사>가 나주시·화순군 선거관리위원회를 통해 입수한 신 의원의 ‘연간 300만원 초과 기부자 명단’을 확인한 결과 H사 대표는 지난해 8월22일 500만원을 기부했다. 신 의원은 2014년 7월30일 보궐선거에서 당선돼 국회의원이 됐고 20대(2020년), 21대(2024년) 총선에서 배지를 달았다. 2014~2016년, 2020~2024년 등 신 의원이 국회의원 활동을 하는 동안 H사 대표가 후원금을 낸 건 지난해 8월이 유일하다. 경광등 업체 변경 문제 때문? “사기업 갈등에 보좌관이 왜?” 오 보좌관은 H사 대표가 신 의원에게 후원금을 낸 사실을 알았냐는 질문에 “몰랐다”면서 “회계를 관리하는 직원은 나주에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H사 대표에 대해 “이전까지 전혀 몰랐던 사람”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전체 정치후원금 모금 한도) 3억원 중에 500만원을 후원했다고 해서 지난해 8월부터 지금까지 이 문제에 매달리겠느냐”며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한 업체의 문제 제기가 합당하다고 생각했고, 자료를 받아보니 문제가 있다고 판단해 진행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보좌관은 “경찰차 특장 시장 자체가 그렇게 크지 않아 뛰어드는 업체도 많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맨날 같이 했던 업체를 빼버리면 가만히 있겠나. 나는 Y사가 욕심을 부리면서 이 상황까지 왔다고 생각한다. 기존에 해왔던 곳과 똑같이 하면 되지, 더 이익을 취하려 하느냐”고 되물었다. 업체 간 중재의 의도도 있었다는 것이다. H사 대표는 신 의원에게 후원금을 낸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민원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고 주장했다. 신 의원을 지지하는 차원에서 후원금을 냈다는 것이다. H사 대표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일을 잘하신다는 말을 들어서 후원금을 냈다. 지금 이 문제와는 무관하다”며 “사업을 접을까 생각할 정도로 머리 아픈 문제”라고 말했다. 지난해 8월 오 보좌관을 만나 민원을 넣었는지는 “오래돼서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고 했다. Y사는 신정훈 의원실발 보도자료로 큰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했다. Y사 관계자는 “정부 기관에 납품하는 제품을 만드는 건 맞지만, 엄연히 사기업 간 일어난 일에 국회 보좌진이 개입하는 게 맞는지 모르겠다”며 “기사가 나간 이후 우리 회사는 경제, 이미지 부분에서 큰 타격을 받았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경찰청과 지체상금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업체 문제로 인한 지연이 결정되면 지체상금을 물어야 하는 상황이다. 차량 출고가 늦어지면서 보관을 위한 토지 대여료가 1억2000만원 정도 나갔다. 무엇보다 자회사인 N사의 신용등급 하락, 기사로 인한 이미지 훼손 등 무형적인 피해도 만만찮다”고 하소연했다. 받아쓴 언론 “취하해 달라” 한편 Y사는 신정훈 의원실에서 나간 보도자료로 기사를 작성한 매체 3곳을 언론중재위원회에 제소했다. Y사는 “언론의 잘못된 보도로 인해 명예가 심각하게 훼손됐으며 국민에게 경찰 장비 도입 과정에 대한 불신을 초래했다”며 “신청인(Y사)의 업무 수행 능력과 투명성에 대한 의구심을 야기해 치안 활동에 대한 신뢰도 저하로 이어질 수 있는 회복할 수 없는 피해를 입어 정정보도를 구한다”고 조정을 신청했다. Y사 관계자는 “2곳의 매체에서 ‘기사를 내릴 테니 소를 취하해 달라’는 내용의 답변을 언론중재위원회에 보낸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