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 전쟁, 기후위기가 불러일으키는 거시적 불안부터 취업난, 노후 빈곤, 물가 상승이 불러일으키는 일상적 불안까지 우리 사회는 그야말로 다중 위기 속에 놓여있다. 하나의 재앙서 다음 재앙으로 마치 줄타기하듯 이어지는 삶에서는 불확실성의 공포와 짙은 무기력이 동시에 느껴진다.
저자 한병철은 <불안사회>서 이 시대의 질병을 ‘불안’이라 진단하며, 난무하는 불안에 미래와 자아를 빼앗긴 현대인의 삶을 적나라하게 꼬집는다. 물론 미래에 닥칠 위험을 감지하고 우려하는 것은 정당한 불안이다.
문제는 질병처럼 ‘창궐’하는 불안이다. 불안을 자극하기 위한 모든 행위는 결코 미래지향적이라고 볼 수 없다. 엄습하는 정체 모를 위협감에 대화와 경청, 공감과 화해가 붕괴된 사회는 감옥과 다름없다. 불안만으로는 미래에 닥칠 그 어떤 문제와 위험에도 적절히 대비할 수 없다.
우리를 집어삼킨 불안은 시간이 지날수록 강력해지고 있다. 안정적인 미래를 그릴 수 없는 불확실성 속에서 사람들은 쫓기듯 주식 투자를 하고, 이른바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으다)’로 집을 산다. 직장에서는 더 좋은 성과를 내기 위해 체력과 정신을 갈아 넣고, 혹시 모를 나중을 위해 진심 없는 인간관계에 매달리기도 한다.
전에 없던 펜데믹을 겪은 후 상황은 더 나빠졌다. 전쟁, 기후위기와 같은 재난 상황서 국가나 체제가 우리를 도울 수 없다는 불신은 우리 사회를 더욱 개인주의로 만들고 있다. 안갯속에 갇힌 미래를 위한 끊임없는 희생과 막연한 비상체제에 사람들은 지쳐가고, 그 와중에도 늘어만 가는 경쟁과 성과 강박 속에서 연대와 공감은 힘없이 붕괴된다.
실패에 대한 불안, 뒤따르지 못하거나 도태될 거라는 불안이 우리의 자아를 빼앗는다.
이에 저자는 이 책에서 무엇이 우리를 계속 불안하게 만드는지, 불안이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면밀하게 고찰한다. 오늘날의 불안은 사실 영구적인 재앙으로 인한 것이 아니라 불안의 체제로 인한 것이다. 이 체제는 사람들을 서로에게서 떼어 내 개인으로 존재하도록 만든다.
끊임없는 경쟁과 성과에 대한 강박은 연대를 끊고 개인을 고립시킨다. 불안이 지배하는 곳에 자유란 없다. 불안과 자유는 상호 배타적이기 때문이다. 불안은 사회 전체를 감옥, 수용소로 만들어 버린다. 불안은 이정표는 세우지 않으면서, 오로지 경고 표지판만을 세울 뿐이다.
불안 사회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저자는 ‘희망’만이 유일한 해결책이라고 말한다. 저자가 말하는 희망은 낙관주의와는 완전히 다르다. 희망은 ‘전진’이다. 미래도 없고, 연대도 사라지고 깊은 무기력에 빠진 현시대에 필요한 것은 바로 ‘희망’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현대인에게 ‘희망’에 관한 긍정적인 기억 따위는 없다. 예전부터 희망은 현실을 보지 못하게 하고, 의미 없는 환상을 만들어내며, 실제 삶으로부터 사람들을 멀어지게 한다고 여겨졌다. 심지어 희망한다는 것은 도피하는 것, 발 디디고 살아야 하는 현재의 삶을 거부하는 것과 동일시되기도 했다. 그러나 저자는 이 책에서 희망에 관한 기존의 생각들에 질문을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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