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대구 중구에 위치한 봉산문화회관에서 올해 마지막 ‘기억공작소’ 전시로 작가 최상흠의 개인전을 준비했다. 최상흠은 2009년과 2015년 봉산문화회관서 전시를 연 경험이 있다. 이번 개인전 ‘3개의 에피소드’에서는 평소와 다른 모양새의 작품을 기존 제작 방식인 캐스팅을 통해 선보인다.
최상흠은 2015년 봉산문화회관서 개최한 개인전서 캔버스를 바닥에 뉘어놓고 그 위에 아크릴 물감을 섞은 레진몰탈을 반복적으로 부은 ‘레진몰탈 캐스팅’ 작업을 선보인 바 있다. 봉산문화회관서 3번째 열리는 이번 개인전은 어떨까?
다른 듯
수백개의 분홍색 조각이 전시실 바닥을 채웠다. 몽글하고 동글한 모양새가 꽃봉오리, 혹은 밟혀서 눌린 듯한 모양이다. 바로 옆 사진에는 이 조각이 풀밭에 늘어져 있다.
석고물과 실리콘을 사용해 본을 뜬 뒤 레진으로 캐스팅한 ‘분꽃’은 문자 유희의 첫 작품인 1993년 ‘도가도 비상도’처럼 동음이의어 작업이다. 들판에 퍼질러진 소의 똥 모양으로, 최상흠은 똥 분(糞)과 꽃 화(花)로 표기했다.
벽에 붙은 수많은 종이는 먼지를 뗄 때 사용하는 ‘돌돌이’다. 지난해 6월부터 올해 5월까지 1년의 기록으로 ‘먼지 달력’을 만들었다. 이는 ‘레진몰탈 캐스팅’ 작품의 매끈한 표면에 묻은 성가신 것을 떼어내는 경험서 시작됐다. 봄에는 황사와 꽃가루, 여름에는 작은 벌레 등이 돌돌이에 들러붙었다.
낮은 공간의 천장서 바닥까지 닿을 듯 흘러내리는 8겹의 작품은 ‘흘러내리기’다. 뉘어둔 캔버스 위로 부은 레진몰탈이 색채의 깊이를 만들고 측면으로 배설되는 오줌(尿) 모양으로 흘러 굳혀진 것으로, 캔버스를 세워 매달아 천 대신 비닐을 씌웠다. 최종적으로는 이 지지체를 모두 떼어내고 조색된 물감 그 자체를 전시해 행위의 중첩을 보여준다.
2009년, 2015년 이어 세 번째
아름다움과 추함 경계 허물어
이번 전시는 최상흠의 초기작과 최근작을 제작하는 과정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했다. 인지하지 못한 것을 사유를 통해 새롭게 인지하게 된 경험을 시각화한 것이다. 힘을 들이지 않아도 생산되는 분, 뇨, 티의 모양을 빌려왔다.
이것은 상상의 스펙트럼을 넓히고 관람객 스스로 일상을 깊이 들여다보게 하는 장치가 된다. 최상흠은 이번 전시 작품을 완성한 후 은유하는 글을 연필로 적어뒀고 이를 위해 책과 페이지를 선정해 활자와 타공, 읽는 순서를 설명해뒀다. 그리고 작품과 함께 배치해 사유의 깊이를 더욱 강조하고 관람객이 작품과 상호작용하며 생각하게끔 유도했다.
미술평론가 류병학은 “‘최상흠 작가’라고 하면 무엇보다 눈부시게 아름다운 일명 ‘인더스트리 페인팅’을 떠올린다. 하지만 이번에 전시된 작품은 그 선입감을 뒤집는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최상흠이 기억공작소에 설치한 3점의 작품(먼지 달력, 분꽃, 흘러내리기)에 달아놓은 캡션을 언급했다.
캡션은 회화 옆에 붙이는 제목이나 짧은 설명문을 뜻한다.
류병학은 “최상흠의 캡션은 작품 옆에서 또 다른 작품으로 등장한다. 그의 회화서 파생된 캡션은 ‘먼지 달력’이나 ‘분꽃’, 그리고 ‘흘러내리기’의 회화를 통해 회화를 벗어나고자 하는 것은 아닐까?”라고 말했다.
비슷한
김영숙 봉산문화회관 큐레이터는 “최상흠의 이번 전시는 들여다보기를 통해 일상의 단순한 현상을 상징적이고 의미 있는 사건으로 만든다. 아름다움과 추함의 경계를 허물고 삶의 의미를 되새기며 예술의 과정과 결과를 동시에 보여준다. 이를 통해 우리의 사유와 감각을 자극하며 일상서 간과하기 쉬운 것을 되돌아보게 만든다”고 전했다. 전시는 12월22일까지.
<jsjang@ilyosisa.co.kr>
[최상흠은?]
▲1964년 경북 출생
▲계명대학교 미술대학 회화학과 졸업
▲개인전
‘물감(物監)을 풀다’ 갤러리 분도(2024)
‘가설 건축물’ 스페이스캔&오래된 집(2023)
‘누가 빨강, 노랑 그리고 파랑을 두려워하랴’ 갤러리 R(2022)
‘누가 빨강, 노랑 그리고 파랑을 두려워하랴’ 스페이스 자모(2021) 외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