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퓰리즘 공약이 판치는 선거 풍토가 바뀌지 않는다면 국가 재정은 물론 민주주의도 망가질 수밖에 없다. 전국구 선거처럼 정당 차원의 기싸움이 치열한 10·16 재보궐선거를 앞두고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와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 조국 대표가 아무말 대잔치급 ‘현금 지원성 공약’을 내세우며 전남 곡성 및 영광 주민들을 우롱하고 있다.
민주당 이 대표는 곡성·영광에 지방정부 예산을 활용한 ‘주민 기본소득’이라는 그럴듯한 이름을 붙여 유권자들에게 월 100만원 지급 방안 시범 도입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혁신당은 이에 질세라 민주당보다 20만원을 더 올려 120만원의 행복 지원금 일괄 지급을 내걸었다. 조 대표는 전라도식 화법으로 “솔찬히(‘상당히’라는 뜻의 전라도 사투리) 쌈박한 공약”이라며 선거를 ‘매표 투전판’으로 전락시켰다.
이렇게 동네 군수 한 명 뽑는 선거를 앞두고 공약이라며 주민들에게 돈을 나눠주겠다는 것인데, 영광군과 곡성군이 유권자들에게 그런 돈을 뿌릴 만큼 재정이 풍부한 지자체가 아니라는 걸 알기나 하는지 알 수 없다. 이런 식으로 지역 유권자들을 우롱해서는 안 될 일이다.
실제로 통계청의 재정자립도 조사(지난 5월 기준)에서 229개 기초자치단체 중 영광군은 163위(11.7%), 곡성군은 172위(9.3%)에 불과했다. 영광군의 지난해 세입은 9609억원이었는데, 군에서 거둔 자체 수입(지방세 등)은 972억 원에 그쳤다.
이렇듯 전국 지자체 중 재정자립도가 하위권인 영광군은 세수 결손으로 곳간이 직격탄을 맞은 상황인데 아무런 근거와 계획도 없이 유권자들에게 돈을 살포하겠다면 ‘빚쟁이 지자체’로 만들겠다는 얘기와 뭐가 다른가?
인구 수 3만도 채 되지 않는 데다 주민들이 딱히 먹고 살 방편도 별반 없는 시골 마을 곡성군도 처지는 별반 다르지 않다.
또, 이들에게 돈이 어디서 나서 줄 건지 물었더니 탈원전을 주장하고도 영광 원자력발전소서 나오는 지원금을 주민들에게 나눠주겠다는 어불성설이다.
이렇게 양당이 앞다퉈 현금 지원성 공약을 내놓는 건 과거와 달리 치열해진 호남 선거구도와 무관하지 않고 이 대표와 조 대표의 대리전 양상도 띠고 있기에 다음 선거에서 또 얼마를 주겠다고 얘기할지 벌써 우려된다.
현금지원 기본소득은 보편적 복지라는 그럴싸한 포장 아래 시장경제의 틀을 흔들고 국가 재정을 파탄 위기로 몰고 갈 수 있는 위험한 포퓰리즘이다. 지역 발전을 위한 비전과 정책 대신 돈 퍼주기 공약을 남발하는 건 매표 행위에 불과하다.
어쨌든 지역발전과 민생 회복을 기치로 내걸어야 할 이번 보궐선거(이하 보선)에서 참신한 공약은 전혀 없고 돈만 주겠다고 공수표를 남발하는 것은 어떻게든 선거에 이기기만 하면 된다는 무책임한 발상이자, 호남 유권자들에 대한 기만행위인 것은 틀림없다.
작금의 곡성, 영광에서 벌어지고 있는 보선 유세는 과거 자유당 시절의 ‘고무신 선거’ 수준으로 타락했다. 참으로 기가 막힐 노릇이다.
특히, 전직 기초단체장들의 불법행위로 인해 치러지는 보선이 지역 정치판의 쇄신을 도모해야 하지만 이번 선거에 출마하는 영광·곡성의 기초단체장 후보 중 민주당 후보의 면면은 깜냥이 되질 않는다.
영광군수 민주당 후보는 해당 지자체에 파이프 등 건설자재를 납품하다가 입방아에 올랐던 인물이다. 지자체 납품 관련 구설에 오른 자가 정치가랍시고 민주당 공천을 받아 도의원까지 지냈고 이번에는 군수 후보로 낙점됐다.
곡성군수 후보는 도의원 한번 했던 이력으로 인구 3만도 되지 않는 시골에서 수십 년째 군수 선거 때만 되면 정치판에 기웃거리던 인사다. 이들의 면면을 보니 ‘풀뿌리 민주주의’의 민낯이 씁쓸하기만 하다.
김명삼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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