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24일 화성의 리튬전지 제조 공장서 ‘역대 최악’의 공장 화재가 발생했다. 31명의 사상자를 낸 이 참사는 위험물 보관 및 취급에 관한 규제 불이행, 정부의 안전 기준 및 점검 미비, 처벌보다 예방에 중점을 둔 법과 정책 부재 등이 지적되면서, 예견된 참사였다는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또 화재로 숨진 23명 가운데 18명이 이주노동자(중국인 17명, 라오스인 1명)이고 17명이 여성이며, 이들 대부분이 일용직 노동자였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위험마저 외주화되고 이주화된 산업 현장의 불평등한 조건이 여실히 드러났다.
공장 내부구조와 언어가 낯설고 필수적인 안전 교육을 받지 못했을 취약한 노동자들에게 ‘사고’의 위험과 피해가 더 치명적으로 전가된 것이다.
또 6월30일은 씨랜드 화재 참사 25주기이기도 하다. 올해 기준 오송 지하차도 참사 1주기, 이태원 참사 2주기, 세월호 참사 10주기, 마우나 리조트 참사 10주기, 대구 지하철 참사 21주기, 씨랜드 참사 25주기, 삼풍백화점 참사 29주기, 성수대교 참사 30주기를 맞는다.
그러나 지난해 10월 이태원 참사 1주기에 여러 외신이 “사임하거나 해임당한 정부 고위 관료는 한 명도 없었다”<로이터> “한국 정부 기관들이 인터뷰 요청을 다 거절했다”<BBC> “한국은 변하지 않았다”<타임스>고 보고했듯, ‘참사의 나라’라는 말이 지나치지 않은 한국서 많은 사람이 ‘사고’로, 일하다가 이동하다가 쇼핑하다가 여행하다가 자다가 죽는다.
이런 참사 때마다 위정자들 입에서는 “교통사고 같은 것”이라는 말이 무책임하게 나온다. 지난 4월에 개봉한 다큐멘터리 〈바람의 세월〉에는 세월호 참사 분향소 지붕에 적힌 ‘사고’라는 글자가 ‘참사’로 바뀌는 인서트 컷이 나온다.
한국은 ‘사고’가 아니라 ‘참사’로 불리는 것조차 때로 싸워 얻어야만 하는 ‘참사 회피의 나라’이기도 하다. 왜 ‘사고’는 흔한가? 왜 예전보다 많은 사람이 ‘사고’로 죽는가? 왜 가난한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사고’로 더 죽는가? ‘사고’는 개인의 운이나 책임에 달린 것인가?
왜 “그건 ‘사고’였다”고 말하는가? 왜 ‘사고’에 대해 말하지 않거나 덮으려 하는가? 정말로 ‘사고’는 막을 수 없는가?
<사고는 없다>는 교통사고부터 산업재해, 재난 참사까지 다양한 종류의 ‘사고’와 지난 한 세기 동안 벌어진 ‘사고’의 역사를 추적함으로써 ‘사고’라는 말이 어떤 죽음과 손상을 감추고 그것이 반복되게 만드는지를 밝혀내는 책이다.
저자는 지난 2006년 미국서 화제가 된 자전거 교통사고로 친구를 잃은 일을 계기로, ‘사고’에 천착하게 됐다.
그는 ‘사고’ 및 위험에 관한 문헌과 20세기 초부터 오늘날까지의 방대한 데이터를 면밀히 검토하고, 고속도로에서 원자력발전소까지 다양한 현장의 사례를 취재하고, 관련 전문가와 정책 입안자, 활동가, 사고 피해자 및 유가족과 가해자를 인터뷰해 이 책을 완성했다.
이 책은 과실, 조건, 위험, 규모, 낙인, 인종주의, 돈, 비난, 예방, 책무성이라는 10가지 키워드를 연결하고 확장하면서 촘촘하고 풍성한 논의를 펼친다. ‘사고’에 관한 유일무이하고 종합적인 탐구라고 할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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