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은 다양한 형태와 방법으로 시민의 삶에 영향을 미친다. 경찰은 시민의 신체와 생명, 그리고 재산 보호라는 고유한 사명을 가지고, 시민과 가장 가까이서 필요한 법을 집행한다. 예로부터 경찰을 그냥 경찰(Police)이라고 하면서도 법 집행(Law Enforcement)이라고 하는 이유다.
법 집행을 통해서 경찰은 시민의 신체와 자유를 제한하거나 시민을 강제하거나 명령할 수 있다. 물론 경찰의 법 집행은 정당성을 전제한다. 그것이 법 집행의 정당성, 경찰의 정당성(Police Legitimacy)이다.
최근 경찰 발전 추세의 큰 흐름은 경찰이 전통적인 전문가 모형(Professional Model)서 벗어나 시민 참여형(Participatory Model)으로 자리잡혀가고 있다. PCR, 즉 경찰과 시민 관계(Police-Community Relationship)를 강조했던 이전과 달리 최근에는 지역사회 경찰 활동(Community Policing)이 대세가 된 것이다.
변화의 이면에는 경찰 사명의 성공적인 수행은 경찰만의 노력으로는 불가능하며, 시민의 참여와 협조를 필요로 한다는 인식이 자리하고 있다. 치안은 경찰의 독과점이 아니라 경찰과 지역사회의 협력과 협동으로 가능해지는 소위 시민과 경찰의 공동 생산(Co-Production)의 결과여야 한다는 것이다.
과거 경찰을 대표하는 그들의 직업적 부문화의 하나가 “우리 대 그들(We vs They)”, 즉 경찰과 시민이라는 적대적 관계였던 반면, 이제는 동반자 관계여야 한다는 것이다. 시민의 참여와 협조 없이는 범죄의 해결이 있을 수 없어서 경찰의 존재 이유도 없어지고 기능할 수도 없게 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경찰은 정의롭고 정당한 법 집행을 통해서 시민의 신뢰를 받아야 하는 것이다.
불행하게도 경찰이 시민의 신뢰를 얻는 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경찰이 시민의 신체와 재산에 대한 수호천사일 수도 있지만 동시에 시민의 신체와 자유를 제한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경찰이 정당하고 절차적으로 공정한 법 집행을 통해 경찰의 정당성을 높임으로써 시민의 신뢰를 얻고, 신뢰를 바탕으로 다시 정당성을 더욱 강화할 수 있다는 점이다. 시민의 경찰에 대한 신뢰가 경찰의 법 집행에 대한 정당성을 높이고 이는 다시 신뢰도 상승으로 이어진다.
물론 나라마다 역사와 재경, 처해진 여건과 상황에 따라 차이는 있겠지만 경찰에 대한 시민의 신뢰와 경찰의 법 집행에 대한 정당성이 예전 같지 않다고들 말한다. 친절한 경찰의 대명사와도 같았던 영국의 ‘Bobby’도 시민의 신뢰를 점점 잃고 있으며, 그 결과 시민의 협조는 찾기가 힘들고 범죄와 무질서에 관한 시민의 우려와 염려만 커지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더욱이 최근에는 이동통신기술의 발전으로 경찰 활동의 일거수일투족이 가시적이고 투명해져서 경찰의 일탈과 비위가 쉽게 감시되고 있다는 점도 경찰 신뢰와 정당성을 위협하게 됐다.
LA 폭동의 시발점이었던 로드니 킹 사건, “흑인의 생명도 중요하다(Black Lives Matter)”는 사회운동, ‘경찰 예산 지원 중단(Defund the Police)’ 운동, 경찰 폐지(Abolish the Police) 운동의 계기가 된 미네소타 경찰의 조지 플루이드 살해 사건 등이 시민의 영상 제보로 시작된 대표적 사례다.
이처럼 경찰에 대한 시민의 신뢰와 경찰의 법 집행에 대한 정당성은 경찰 기능의 유지에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신뢰받지 못하는 경찰과 정당하지 못한 경찰의 법 집행은 존재할 수도, 존재해서도 안 된다.
경찰에 대한 신뢰는 경찰의 법 집행에 대한 정당성의 기반이지만, 반대로 경찰 불신은 경찰 정당성의 기반을 약화시킨다. 그런데 경찰 신뢰와 정당성은 경찰, 또는 경찰의 법 집행의 절차적 정의(Procedural Justice)에 크게 영향을 받는다. 결국 절차적 정의가 경찰의 법 집행의 정당성을 높이고 높아진 정당성은 다시 시민의 경찰에 대한 신뢰를 높이는 셈이다.
[이윤호는?]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명예교수
고려사이버대 경찰학과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