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녀 불문’ 몰카 범죄의 허점

  • 김민주 기자 alswn@ilyosisa.co.kr
  • 등록 2024.04.23 11:03:50
  • 호수 147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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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실 몰래 찍어도 100만원뿐

[일요시사 취재1팀] 김민주 기자 = 내가 모르는 사람이 나를 몰래 찍고 사진을 소장하고 있으면 어떨까? 최소한 그 사실을 알았을 때 불쾌한 기분을 느낄 것이다. 이것이 바로 몰카 범죄다. 그러나 몰카 범죄가 인정되려면 ‘공공장소’서 찍히면 안되고, ‘노출이 있는 옷’을 입고 있어야 한다. 피해자가 느낀 성적 수치심이나 불쾌감은 고려 대상이 아니다. 

한국갤럽이 지난해 7월11일부터 13일까지 전국 만 18세 이상 1001명에게 스마트폰 사용 여부를 물은 결과 97%가 ‘사용한다’고 답했다. 국내 성인의 스마트폰 사용률은 2012년 1월 53%서 그해 6월 60%, 2013년 2월 70%, 2014년 7월 80%, 2016년 하반기 90%를 돌파했다.

초소형 
카메라

2017년부터 2020년까지는 93%서 정체했으나, 2021년 95%, 2022년 97%로 추가 상승했다. 스마트폰 사용률이 90%대에 접어든 시기는 저연령일수록 빨랐다. 2012년 상반기 20대, 그해 하반기 30대, 2014년 40대, 2016년 50대 순으로 90%를 돌파했다.

60대 이상 스마트폰 사용률은 2012년 상반기 10% 초반, 2013년 7월 30%, 2016년 1월 60%, 2022년 90%, 지난해 92%에 다다랐다. 전 국민이 스마트폰을 사용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스마트폰 사용 인구가 늘어나는 것은 전 국민이 ‘초소형 카메라’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모든 스마트폰에는 초소형 크기의 카메라가 부착돼있다. 이에 따라오는 것이 바로 ‘몰래카메라’ 범죄다. 누구나 손쉽게 자신의 휴대전화에 부착된 초소형 카메라로 촬영이 가능해지면서 생긴 부작용이다.


경찰청 자료에 따르면, 몰카 범죄는 2018년부터 2022년까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5년간 몰카 범죄로 검거된 인원은 2만8529건으로 2018년 5497명, 2019년 5556명, 2020년 5151명, 2021년 5792명으로 꾸준히 5000명대를 유지했다. 2022년에는 6533명이 몰카 범죄로 검거됐다.

특히 2022년 경찰이 검거한 6533명의 몰카 범죄자 중 10대와 20대 피의자가 3269명으로 전체 몰카 범죄자의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몰카 범죄자 10명 중 2명은 14세 이상 19세 미만의 범죄소년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 밖에도 61세 이상 몰카 범죄자도 2018년 112명서 2022년 213명으로 약 2배 증가했다.

몰카 피해 장소를 유형별로 살펴보면, 아파트 등 공동주택 안이 863건으로 가장 많았다. 다음으로 노상 692건, 역·대합실 357건, 지하철 361건, 숙박업소·목욕탕 269건 등이 뒤를 이었으며 학교서도 164건의 몰카 범죄가 발생했다.

특히, 최근 몰카 사건은 공중화장실도 통계 분류 유형에 포함돼, 지난해 7월 기준 공중화장실 내 몰카 범죄도 313건 발생한 것으로 집계됐다.

몰카 범죄가 나날로 심각해지면서 관련 법규도 제정됐다. 성폭력처벌법 제14조의 ‘카메라등이용찰영죄’는 이동 통신기기와 온라인의 발달로 새로운 성폭력인 몰래카메라 범죄를 규정한다.

전 국민 핸드폰 소유…몰카도 기승
대부분 벌금형, 노출 없으면 무죄

제14조(카메라 등을 이용한 촬영)에는 ‘카메라나 그 밖에 이와 유사한 기능을 갖춘 기계장치를 이용해 성적 욕망 또는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사람의 신체를 촬영대상자의 의사에 반해 촬영한 자는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나와 있다.


하지만 몰카 범죄 피해자들은 가해자들이 제대로 된 처벌을 받지 않는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들은 성폭력처벌법 제14조의 구성요건이 ‘성적 욕망 또는 성적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신체’로 특정해서, 법원은 가해자와 피해자의 성별, 나이를 기준을 중요시한다.

또 여성의 특정한 신체 일부가 부각해서 촬영했는지를 중심으로 처벌하고 있어서 피해자가 함부로 촬영을 당하지 않을 자유와 보호가 빠졌다는 지적이다. 즉, 피해자의 관점과 경험이 반영되지 않았다는 문제다.

몰카 범죄 처벌은 71.97%가 벌금형이 선고되고 있고, 촬영물이 유포돼 보복성 포르노에 이용되더라도 벌금형이 선고되는 등 미약한 처벌로 이뤄지고 있다.

원주시의 한 대학 내 남자 화장실에 들어가 옆 칸에서 용변을 보던 대학생의 모습을 자신의 휴대전화로 몰래 촬영한 20대가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법조계에 따르면 춘천지법 원주지원 형사2단독 박현진 부장판사는 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위반(카메라 등 이용 촬영·반포 등)혐의로 불구속기소 된 A(21)씨에게 벌금 100만원을 선고했다.

A씨는 원주시의 한 대학 건물 5층 남자 화장실에 들어가 옆 칸에서 용변을 보던 B(19)군의 모습을 자신의 휴대전화로 몰래 동영상 촬영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A씨는 같은 대학에 다닐 뿐 별다른 친분이 없는 B군을 상대로 불법 촬영해 성적 수치심을 느끼게 한 사실이 공소장에 담겼다. 또 A씨의 이 같은 행위는 사건화가 되지 않았을 뿐 처음이 아니었던 점도 수사와 재판 과정서 드러났다.

관련 법규
조항 보니…

박 부장판사는 “범행 직후 피해자에게 발각돼 영상을 삭제하고 수사 단계서 피해자와 합의한 점, 대학 자퇴를 선택한 것이 자숙의 의미로 보이는 점 등을 고려해 형을 정했다”고 판시했다.

관사에서 동료 교사를 몰래 촬영하려다 붙잡힌 남성에게도 벌금형이 선고됐다. 전주지법 군산지원 형사2단독(부장판사 강동원)은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카메라 이용 촬영·반포 등) 위반 혐의로 기소된 C씨(31)에게 벌금 700만원을 선고했다. 또 40시간의 성폭력 치료 프로그램 이수도 명했다.

C씨는 전남의 한 중학교 교직원 관사에서 창문을 통해 여성 교사의 샤워 모습을 몰래 촬영을 시도한 혐의로 기소됐다. 당시 샤워를 하던 여성 교사는 촬영하는 소리를 듣고 경찰에 곧바로 신고한 것으로 전해졌다.

재판부는 “학생들을 바르게 지도할 임무가 있는 교사 신분으로서 범행을 저질렀다는 점에서 비난 정도가 더욱 크다. 다만 피고인의 범행이 미수에 그친 점, 피해자가 피고인에 대한 처벌을 희망하지 않는 의사를 표한 점, 잘못을 반성하는 자세를 보이는 점 등을 참작해 형을 정했다”고 판시했다.

자신이 입원 중인 요양병원서 의료진의 신체 부위를 몰래 촬영하거나 여성 화장실에 숨어든 60대에게 징역형의 집행유예가 선고된 경우도 있다.


광주지법 형사 9단독 전희숙 판사는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D(61)씨에게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또 성폭력 치료 강의 40시간 수강을 명했다.

D씨는 자신이 입원 중인 광주 한 요양병원서 33차례에 걸쳐 휴대전화로 옷을 갈아입는 의료진 신체 부위를 촬영한 혐의로 기소됐다. 또 같은 병원 여성 화장실에 성적인 목적을 갖고 몰래 침입한 혐의로도 재판에 넘겨졌다. 그는 “용변이 급해 가까운 여성 화장실에 들어갔을 뿐”이라고 항변했지만, 재판부는 진술 번복을 들어 받아들이지 않았다.

찍히는 
부위 따라…

재판장은 “범행 방법과 횟수, 촬영 내용 등에 비춰 죄질이 좋지 않다. 다만 처벌 전력 없는 초범이고 피해자가 처벌을 원치 않는다. 모든 양형 요소를 고려해 형을 정한다”고 판시했다.

벌금형도 아닌 무죄판결을 받은 경우도 많다. ▲피해자의 전신 모습이 촬영됐거나 ▲영상의 전체 구도 등에서 피해자의 맨살이 드러난 부분을 부각시켜 촬영하지 않았거나 ▲촬영자가 찍은 사진에 다른 사물이 함께 찍히는 경우 ▲촬영 각도나 촬영 거리 등을 고려해 특수한 방식을 쓰지 않은 경우다.

법원은 이런 경우의 몰카는 ‘성적 욕망 또는 수치심을 유발하는 타인의 신체를 촬영한 것’이 아니라고 보고 있다. 따라서 짧은 치마, 원피스, 짧은 바지를 입어도 하반신 위에 종이가방이나 가죽가방을 올려 놓거나, 전신을 촬영해서 맨살이 드러난 다리 부분을 부각시키지 않으면 무죄판결을 받았다.


촬영자가 미니스커트를 입고 서 있는 여성의 허벅지 중간부터 다리 부위를 찍었지만, 사진 한쪽에 긴 바지를 입고 서 있는 남성의 다리가 촬영돼 무죄판결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종류의 사진들은 풍경 사진이 아닌 데다, 우연히 찍은 것도 아니다. 범죄자들은 이 같은 법망을 교묘히 피해 처벌받지 않는 것이다.

실제로 법원은 지하철서 청바지를 입고 서 있던 10대 여성과 검정색 7부 바지를 입고 서 있던 10대 여성의 다리를 몰래 촬영해 불법 촬영 혐의로 기소된 가해 남성에 대해 무죄 취지로 판결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촬영한 사진은 피해자들의 하체 전체를 찍은 것이기는 하나, 피해자들은 몸에 달라붙는 바지를 입고 있고, ‘디지털카메라의 특성상 얼마든지 사진을 확대해 특정 부위만을 볼 수도 있다는 점을 고려’해서, 피고인이 촬영한 사진은 성적 욕망 또는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다른 사람의 신체를 촬영한 것”이라고 판시했다.

7년 이하 5000만원 이하
욕망·수치심 유발해야

법원은 피해 여성이 입고 있는 옷차림과 노출의 정도도 살핀다. 무죄판결서 피해 여성들은 대부분 짧은 치마, 반바지, 레깅스 차림이었다. 법원은 이런 옷차림의 여성이 타인에 의해 몰래 촬영됐고, 그 촬영물이 유통되더라도 ‘성적인 특정 부위가 아니다’라고 판단했다.

일상서 쉽게 볼 수 있는 모습이기에 피해자가 수치심을 느끼지 않을 것으로 판단한 것이다. 또 사람이 왕래하는 공개된 장소서 자연스럽게 볼 수 있는 여성의 모습이면, 노출된 신체 부위가 촬영되더라도 피해 여성의 수치심이 유발되지 않는다고 보고 있다.

특히 피해자가 촬영을 당한 시기가 여름이라면 다리 부분에 맨살이 노출됐어도 일반적인 옷차림에 불과하다는 해석이다.

하지만, 아래 엘리베이터 몰카 사건은 가해자가 귀가 중이던 여성에게 호감을 느껴 아파트 엘리베이터까지 따라가서 몰카를 촬영하면서 법의 심판을 받게 됐다. 

가해자는 피해 여성의 아파트 엘리베이터까지 따라가 엘리베이터에 함께 탄 후, 피해자 몰래 가슴 상반신을 촬영했다. 당시 피해자는 우연히 촬영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으나 무서워 아무런 이의를 제기하지 못했다. 이후 엘리베이터 내에 설치된 CCTV 영상을 확인한 후 경찰에 신고했다.

피해 여성은 경찰에 출석해 “너무 당황스럽고, 무섭고, 수치스럽고, 기분이 나빴다”고 진술했고, 법정에선 “성적 수치심을 느꼈고, 몸만 촬영했기 때문에 성적인 느낌을 갖고 촬영했다고 생각한다”고 진술했다.

대법원은 가해자의 촬영이 이뤄진 경위와 의도, 피해자의 피해 감정 진술 등을 모두 배제했다. 피해자의 옷차림과 노출만으로 무죄를 선고한 것이다.

일반 옷차림
대법 “무죄”

몰카 범죄 피해자 E씨는 이 같은 판결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E씨는 “법원은 피해자가 입은 옷차림서 범죄 여부를 판단한다. 노출이 심하지 않은 옷을 입은 여성 피해자는 범죄 피해자가 아니라는 것”이라며 “노출이 있는 옷을 입어야 피해자가 되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주장했다. 

이어 “공개된 장소서 찍힌 사진의 피해자도 피해자가 아니다. 그런데 몰카 범죄의 피해 장소는 대부분 공공장소”라며 “미국은 최근 여성의 동의를 얻지 않은 상태서 다리나 가슴을 촬영하면 프라이버시 침해에 대한 형사 규제를 주장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몰카 범죄 처벌 규정을 신설하는 추세에 있으며, 성적 수치심은 문화와 사회에 따라 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alswn@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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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립무원’ 여야 수장 동병상련

‘고립무원’ 여야 수장 동병상련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이재명 대통령과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당내 강경파의 반발로 인해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 동병상련을 느낄 법한 두 사람은 여야 지도부 회동이라는 전략적 제휴에 가까운 선택으로 각자의 어려움을 풀고 정국에 대응할 것으로 보인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8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정청래 대표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를 용산 대통령실로 초청했다. 오찬은 약 1시간 동안 진행됐고, 이 대통령과 장 대표는 30분 동안 비공개 영수회담을 진행했다. 유튜브 권력자? 이 대통령과 장 대표는 여야의 수장이지만, 각자의 이유로 자신의 진영에선 어려운 상황에 처해있다. 두 사람의 회담은 이 때문에 더욱 주목받았다. 정 대표는 지난달 26일 장 대표가 선출된 이후 줄곧 ‘무시’ 전술로 대응했다. 정 대표는 장 대표 선출 여부와 관계없이 국민의힘에 대해 정당해산심판 청구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강공 기조를 잇고 있다. 이 대통령은 이런 상황에서 여야 지도부 회동과 영수 회담을 진행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선 “이 대통령이 장 대표와 만난 것 자체가 고립무원에 처한 이 대통령의 상황을 보여주는 것일 수도 있다”고 의심하고 있다. 이 대통령이 겪는 어려움은 여당인 민주당과의 관계로부터 시작된다. 이 대통령과 민주당의 관계에 대해선 “대통령 위에 방송인 김어준씨가 상왕으로 군림한다”는 설이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 이 대통령은 문재인 전 대통령 등 친문(친 문재인) 진영과 오랜 갈등 관계에 있었고 “민주당에서 세가 약하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김어준 상왕설’은 이젠 진보 성향 언론에서도 공공연하게 거론한다. <주간경향>은 지난 8일 ‘김어준 상왕설’을 다루면서 “김씨가 비판·견제가 어려운 신성불가침 영역이 됐다”는 민주당 내부 반응과 “김씨는 민주당의 고정 상수고, 당의 일부 기능이 김씨의 유튜브 채널로 이관됐다”는 일부 정치평론가 반응도 소개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위로 알려진 민주당 곽상언 의원은 지난 7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유튜브 권력이 정치 권력을 휘두르고 있다”면서 김씨를 강하게 비판했다. 다음 날엔 “저는 ‘유튜브 권력자’에게 머리를 조아리면서 정치할 생각은 없다”며 “이 방송에 출연하면 공천받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얘기를 들은 기억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노 전 대통령은 지난 2002년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당시 ‘<조선일보>는 민주당 경선에서 손을 떼라’는 의견을 밝히셨다”고 강조했다. 곽 의원은 곧바로 반격을 받았다. 같은 당 최민희 의원은 지난 9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곽 의원을 일컬어 ‘부화뇌동 국회의원님’이라고 지칭하면서 “자존감을 좀 가지시라. 부끄럽지 않느냐”고 비판했다. 최 의원이 곧바로 반격한 것은 역설적으로 김씨와 이 대통령의 위상을 확인시켜 줬다. 이 대통령은 현재 각종 여론조사에서 50%가 넘는 높은 지지율을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검찰 해체 ▲각종 외교 현안 ▲조국혁신당 성범죄 의혹 등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위에서 누르고 옆에서 치받고 이 대통령 앞에 수북한 난제 민주당에선 정 대표가 검찰개혁 관련 공세를 주도한다. 현재 진행 중인 3개의 특검(내란·김건희·채 상병)과 관련해 수사 기간·범위·인력 대폭 확대와 관련 재판 녹화 중계를 추진하는 특검법 개정안을 추진하고 있다. 개정안은 이미 국회 법사위를 통과했고, 국민의힘은 헌법재판소에 효력정치 가처분을 신청했다. 검찰을 겨냥해선 “추석 전 검찰을 해체하고, 중대범죄수사청(이하 중수청)과 공소청을 설치하겠다”는 방침을 유지하고 있다. 사법부를 겨냥해선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를 추진하고 있다. 민주당과 이재명정부 내부에선 중수청의 소속 부처를 놓고 이미 갈등이 있었다. 친명(친 이재명)계 좌장으로 알려진 정성호 법무부 장관은 지난달 27일 “중수청을 행정안전부에 설치하면 민주적 통제가 어려워질 수 있다”면서 사실상 ‘법무부 설치’를 주장했다. 그러자 친민주당 진영은 정 장관에게 강하게 반발했다. 그동안 친민주당 성향을 강하게 드러냈던 임은정 서울동부지검장은 지난달 29일 검찰개혁 공청회에서 “정 장관도 검찰에 장악돼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검찰개혁 후속 법안을 마련하는 정부 기구 구성과 관련해 정 대표와 대통령실 우상호 정무수석이 크게 언쟁을 했다”는 설까지 불거졌다. 장 대표는 이 대통령과 만났을 당시 공개 발언에서 특검 연장·특별재판부 설치와 관련해 이 대통령에게 거부권 행사를 요청했다. 장 대표가 거부권 행사를 요청한 명분은 ‘견제와 균형 붕괴’였다. 장 대표는 이어진 비공개 회동에서도 “오랫동안 되풀이된 정치 보복 수사를 끊어낼 수 있는 적임자는 이 대통령”이라면서 특검 연장·특별재판부 설치에 강한 우려와 유감의 뜻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장 대표에게 뚜렷한 답변을 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선 이 대통령의 반응을 놓고 “이 대통령이 제어하지 못하는 상황일 수도 있다”고 보고 있다. 정 장관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중수청 소속 부처도 행정안전부로 결정됐다. 이에 대해서도 “이 대통령이 당의 의사를 이겨내지 못한 것”이란 분석이 나오고 있다. 지난 4일(현지시각) 미국 조지아주에서 발생한 현대차·LG 에너지솔루션 합작 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의 한국인 노동자 300여명 구금 사태도 이 대통령에게 비판의 화살이 집중되는 계기가 됐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25일(현지 시각)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진행했다. 그로부터 불과 10일 후 발생한 사태였다. 안팎 모두 꼬인 실타래 한미 양국은 정상회담 후 3500억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 펀드를 조성하기로 합의했고, 미국이 한국에 부과하는 관세율은 15%로 확정했다. 일본은 5500억달러 규모의 펀드를 조성하기로 한 후 15% 관세율을 받아냈다. 그런데 일본의 관세율 15%가 트럼프 대통령의 행정명령이 내려지면서 명문화된 것과 달리, 우리는 아직 문서를 받아내지 못했다. 미국 정부는 “3500억달러 투자처를 구체적으로 명시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노동자 300여명이 구금된 구체적인 이유는 이들이 최대 90일 동안 단기 체류만 할 수 있는 무비자 전자여행허가 제도를 통해 입국해 근무한 것이었다. 단기 체류 비자로 입국해 근무한 이상 불법체류자가 될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트럼프 대통령과 정상회담까지 진행한 이 대통령에겐 “미국을 왕래하는 국민의 비자 문제에조차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것이냐”는 비판이 제기될 가능성이 커진다. 일본과의 외교도 난항에 부딪힐 가능성이 있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23일,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와 정상회담을 진행한 후 17년 만에 공동언론발표문을 채택했다. 정상회담도 그만큼 훈훈한 분위기로 진행됐다. 하지만 낮은 지지율과 자유민주당(이하 자민당)의 지난 7월 참의원 선거 패배로 인해 사퇴 압력에 시달리던 이시바 총리는 지난 7일 결국 사퇴를 선언했다. 후임 총리 후보로는 자민당 다카아치 사나에 의원과 고이즈미 신지로 농림수산상이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 이시바 총리와 고이즈미 농림수산상은 자민당 내에서 파벌 색이 짙지 않아 비교적 온건한 정치 성향을 지닌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다카이치 의원은 강경한 우익 포퓰리스트였던 고 아베 신조 전 총리의 후계자로 알려졌다. 다카이치 의원은 ▲야스쿠니 신사 참배 ▲헌법 개정 ▲재무장 추진 ▲아베노믹스 계승 등 아베 전 총리와 거의 비슷한 정치색을 드러냈다. 지난 1994년엔 <히틀러 선거전략>이란 책의 추천사를 쓴 것으로 알려졌다. 이 책엔 “단기간에 여론을 모아 권력을 빼앗았다”거나 “긴급조치로 적을 섬멸했다”는 등의 독일 나치의 선거전략을 높이 평가하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설득할 수 없는 유권자는 말살한다”는 등 작전을 일본 정치인의 선거 승리 전략으로 제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노 전 대통령은 자신에게 호의적인 국내 여론을 조성하기 위해 고의로 신사 참배를 했던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일본 총리와 상당한 갈등을 빚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민주당 소속임에도 강경한 우익 성향으로 유명했던 노다 요시히코 전 총리와 갈등하면서 지난 2012년 전격적으로 독도를 방문하는 강수를 뒀다. 박근혜 전 대통령도 재임 중 아베 전 총리와 상당한 갈등을 빚으면서 대중국 외교에 공들였다. 다카이치 의원이 후임 총리가 되면, 이 대통령도 전임 대통령들처럼 상당한 갈등을 빚을 가능성이 있다. 혁신당 나비효과 게다가 우원식 국회의장은 지난 3일 중국 전승절 80주년 경축 행사에 참석한 것으로 보수 성향 유권자들에게 큰 비판을 듣고 있다. 우 의장은 행사에 함께 참석한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짧게 인사를 나눴다. 반면 민주당 박지원 의원은 김 위원장을 2번이나 불렀음에도 아무 반응을 얻지 못해, 이 역시 보수 성향 유권자들로부터 큰 비판을 받고 있다. 이 대통령은 대통령 취임 이후 친서방 외교에 유화적인 방향으로 선회하려고 했다. 하지만 민주당의 전통적 방향과 충돌하는 상황으로 해석되고 있다.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 내부에서 불거진 성추행·성희롱 사건도 이 대통령에게 불리하게 전개될 가능성이 있다. 혁신당은 조국 비상대책위원장 등 친문 핵심 일부가 창당했다. 이 사건은 혁신당 강미정 전 대변인이 탈당하면서 폭로해 외부에 알려졌다. 가해자로 지목된 김보협 수석대변인은 문 전 대통령과 친분이 돈독한 것으로 알려졌다. 신우석 전 사무부총장은 조 비대위원장이 민정수석이었을 당시 민정수석실 행정관을 지냈다. 조 비대위원장은 그동안 특별한 반응을 보이지 않았고, 이 여파는 민주당과 이 대통령에게 번지고 있다. 기성세대 남성의 위선과 운동권 특유의 성 문화 논쟁으로 확대되면서,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과 오거돈 전 부산시장의 성범죄 사건까지 거론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대통령으로선 친문계와 빚고 있는 광범위하면서도 조직적인 엇박자가 국정에도 악영향을 미치는 상황에서 그 뒷감당까지 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한 것이다. 장 대표도 이 대통령 못지않은 고립무원 상황에 직면했다. 시작은 국민의힘 이준석 전 대표로부터도 신임받았던 김도읍 의원을 지난 1일 정책위의장으로 임명한 것이었다. 그러자 “장 대표 당선에 큰 공을 세웠다”고 자부하던 강경 보수 성향 유튜버들이 크게 반발했다. 특히 고성국 ‘고성국TV’ 대표는 지난 2일 “내년 지방선거에서 승리하려면, 국민의힘이 지자체장 30석을 자유통일당 등 자유 우파 정당 4개에 양보하면 된다”고 요구했다. 강경 보수 공세 친한 숙청 시동 민주당의 각종 입법 공세 방어 등 대여 공세 수단도 마땅치 않다. 국민의힘은 민주당의 노란봉투법 통과를 막기 위해 필리버스터를 동원했지만, 큰 의미를 두기 어려웠다. 노란봉투법은 국민의힘의 필리버스터 종료 직후 본회의를 통과했다. 국민의힘이 할 수 있는 일은 본회의 불참밖에 없었다. 3개의 특검은 이미 국민의힘을 사정권에 두고 있다. 현실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수단은 실질적으로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장외 집회밖에 없다. 장 대표는 강경한 대여 공세를 약속하면서 당 대표에 당선됐지만, 강경한 대여 공세를 할 수 있는 현실적인 수단은 처음부터 없었다. 따라서 여야 지도부 회동은 장 대표에겐 정치적으로 큰 의미가 있는 기회였다. 최소한 “이 대통령에게 우리의 요구를 가감 없이 전달했다”고 자부할 만한 명분이 마련된 것이었다. 내부 사정도 녹록하진 않다. 장 대표에겐 지난해 12월 결별한 친한계(친 한동훈)와의 내부 투쟁도 숙제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다만 장 대표가 당선된 것 자체가 이미 친한계엔 큰 타격이었다. 아울러 친한계엔 ▲김종혁 전 최고위원 ▲신지호 전 사무부총장 ▲윤희석 전 대변인 ▲송영훈 전 대변인 등 국민의힘을 대표해 각종 시사프로그램 패널로 출연하는 인사들이 다수 소속돼있었다. 이들은 대체로 친한계의 이해관계를 각종 방송에서 대변했다. 장 대표는 지난 7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서 “방송에서 당의 의견을 가장해 당에 해를 끼치는 발언을 하는 것도 해당 행위”라며 “국민의힘을 공식적으로 대변하는 인물임을 알리는 패널 인증제도를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장 대표의 방침은 “국민의힘 몫 토론자로 출연해 친한계를 대변하는 인사들을 방송에서 솎아내려는 것”이라는 취지로 해석된다. 이처럼 장 대표는 당내에서 양면 전선을 펼쳐놨기 때문에 현재 상황이 녹록지 않다. 강도 높은 내부 투쟁을 진행하는 이 대통령과 장 대표로선 여야 지도부 회동이 동병상련에 가까운 전략적 제휴였을 가능성이 있다. 장 대표는 비공개 회담에서도 국민의힘의 의견을 모두 전달한 것으로 보인다. 이 대통령도 뚜렷한 확답만 하지 않았을 뿐, 대통령 당선 이전 강성 이미지를 중화하려는 듯 유화적으로 대응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선 “장 대표가 이 대통령과 정 대표의 불화를 이용하려고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다른 한편에선 “장 대표도 내부 반발이 있고, 강도 높은 내부 투쟁을 진행해야 해서 제 코가 석 자”라고 보고 있다. 아울러 이 대통령과 장 대표는 그동안의 이미지에서 벗어나 나름대로 중도를 지향하고자 강경파와 투쟁해야 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당분간 이들이 전략적 제휴를 맺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정 대표는 이 대통령과 장 대표의 회담 분위기를 무색하게 하듯이 다음 날인 지난 9일 진행된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내란 청산은 정치 보복이 아니”라며 “국민의힘이 내란 세력과 단절하지 못하면, 위헌정당 해산심판 대상이 될지도 모르니 명심하라”고 경고했다. 수북한 현안들 ‘내란’은 민주당이 국민의힘과 보수 진영을 공격하는 용도로 사용하는 일반 명사가 됐다. 정 대표는 대표적인 당내 강경파로서, 국민의힘에 대한 강경한 태도가 정치적 상징이 된 지 오래다. 이 대통령과 장 대표가 마주 보고 성과를 낼수록 정 대표는 설 자리를 잃는다. 정 대표의 제동은 “고립무원에 처한 여야 수장이 서로에게 동병상련을 느껴도 큰 의미가 없을 것”이란 경고 메시지로 해석될 수 있다. 바퀴들이 삐걱대는 사이 현안은 더욱 수북이 쌓이고 있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