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단 하루라도 각종 범죄에 관한 뉴스를 접하지 않는 날이 없을 만큼, 언론의 폭력 보도에 일상적으로 노출돼있다. 범죄 관련 보도를 접한 사람은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받게 된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작지 않다.
언론을 통한 범죄 묘사의 영향을 둘러싼 논쟁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그만큼 중요한 주제인 동시에 명쾌한 결론이 나지 않았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범죄와 관련한 언론의 폭력 묘사와 현실 세계서의 폭력성이 어떤 관계인지에 대해 학계서 관심 갖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학계에선 언론을 통한 폭력성 노출이 대중의 공격성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준다는 것에 대체로 동의하는 분위기다.
다만 범죄 행위의 노출이 대중에게 어떤 식으로 잠재적 영향을 주는지에 대해서는 논쟁이 계속되고 있다. 대다수 범죄학자들은 ‘모방범죄(Copycat Crime)’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언론이 직접적으로 폭력을 야기하는지에 관해서는 별다른 논쟁이 없었다.
반면 언론의 폭력성이 미치는 잠재적인 영향을 연구하는 심리학자들은 특히 영상매체를 통한 노출이 ‘둔감화 영향(Desensitizing Effects)’으로 작용해 어린이·청소년의 잠재적 공격성이 커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이 같은 주장의 이면에는 ‘사회학습이론(Social learning Theory)’이 자리하고 있다. 언론의 폭력 보도에 빈번하게 노출될 경우, 타인의 고통에 덜 민감해지고 타인에게 공격적이거나 해로운 방식으로 행동할 개연성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물론 언론을 통한 폭력성 노출과 범죄 행위 가담 사이에 연관성이 발견됐더라도 반드시 폭력 관련 보도가 범죄 행위로 이어진다고 보긴 힘들다. 오히려 폭력적 성향을 지닌 사람이 폭력적 언론을 더 빈번하게 선택한 결과일 수도 있다.
즉, 폭력적인 보도에 먼저 노출돼 폭력을 모방해 행동으로 옮길 수도 있으나, 폭력을 일삼는 사람이 폭력적 보도를 더 좋아한다고 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어린 시절 공격적 성향이었다고 해서 폭력적인 내용이 담긴 TV 프로그램을 더 많이 시청한 건 아니다. 이는 폭력적 내용을 다룬 영상 시청이 공격적 행위의 결과가 아닌 원인임을 보여준다.
일각에서는 언론의 폭력성 노출이 공격적 행위의 원인일지라도 그것은 공격적 행위에 기여하는 다른 여러 원인의 하나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언론의 폭력성에 노출되는 것이 폭력의 학습이 아닐지라도 최소한 시청자를 현실 세계서의 폭력에 둔감하게 만들어서 폭력에 가담하기 쉬워질 수 있는 반면, 일부 사람들은 언론에서 폭력을 시청하는 것이 즐거움이 될 수 있지만 그런 폭력적 묘사를 보는 사람에게서 기대될 수 있는 열망적 자극을 초래하지 않기도 한다는 것이다.
결국 언론을 통한 폭력적 묘사를 시청하고 노출되는 모든 사람이 다 폭력적 행위에 가담할 개연성도 높아지는 것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우리가 언론의 폭력성, 폭력적 묘사와 시청자, 청중의 그런 폭력성 노출을 우려하는 것은 ‘폭력은 폭력을 낳는다(Violence breeds violence)’는 경고 때문일 것이다. 폭력을 행사하기 위해 현실서 경험을 꼭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니며, 폭력적 내용에 노출되는 것만으로도 현실 세계서의 경험에 가까운 영향이 있을 수 있다.
[이윤호는?]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명예교수
고려사이버대 경찰학과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