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김설아 기자] ‘3명의 여성 연쇄 성폭행한 에이즈 보균자, 아동 포르노물 유포하다 덜미’ ‘에이즈 속이고 10대 소년과 유사성행위한 60대 구속’등의 뉴스가 연일 보도되면서 ‘에이즈 공포’가 확산되고 있다. 전염의 위험도 문제지만 자신의 감염사실을 숨기고 불특정 인물과 성관계를 했다는 것 때문에 더욱 충격적이다. 또 다시 수면 위로 부상한 에이즈 보균자의 성범죄 실태를 들여다봤다.
지난 2008년 7월 중순 서울 종로구 훈정동에 있는 종묘공원. 임모(64)씨는 공원에 있던 A(18)군에게 접근한 뒤 “용돈이 필요하면 날 따라와라”고 유인했다. 공원 주차장에 세워 둔 차량으로 A군을 데려온 임씨는 자신이 에이즈 감염자라는 사실을 알리지 않고 콘돔도 끼지 않은 채 A군을 상대로 동성간 성교를 했다.
에이즈로 복수?
임씨는 이와 같은 방식으로 2010년 7월까지 모두 5차례 A군을 더 만나 유사성교행위를 한 뒤 돈을 줬다. 임씨가 A군을 6번 만나면서 준 돈은 총 7만원이었다.
경찰에 따르면 임씨는 이미 2000년 4월경 에이즈 감염 확정 진단을 받은 상태였다. 이후 김군 역시 에이즈에 감염됐다. 그러나 임씨가 A군 외에 다른 여성 혹은 남성과 성매매를 한 사실은 아직 밝혀지지 않고 있다.
이와 유사한 사건이 2009년 강원도 춘천에서도 있었다. 에이즈에 감염된 40대 동성애자가 이 사실을 숨긴 채 수년 동안 한 남성과 동성간 성교를 맺고 성폭행까지 한 것으로 드러난 것이다.
강원도 춘천에 사는 이모(당시 44세)씨는 2007년 6월 질병관리본부에 등록된 에이즈 환자였다. 경찰에 덜미가 잡힐 때 까지도 그는 관할 보건소에서 진료상담을 받고 약을 복용하고 있었다. 그러나 최소한의 보호막인 콘돔조차 착용하지 않고 자신과 같은 동성애자인 B(당시 37세)씨와 성관계를 맺어왔다.
이씨와 B씨가 처음 만난 것은 2005년 12월 서울의 모 남성 휴게텔이다. 이들은 그후 1년 여 간 집과 모텔을 전전하며 성관계를 가져왔다. 자신과 성관계를 거부할 것이 두려웠던 이씨는 B씨에게 자신의 감염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그러다 2006년 B씨는 이씨에게 결별을 요구했다. 이에 불만을 품은 이씨는 “동성애 사실을 가족에게 알리겠다”고 협박해 강제로 성관계를 가지기 시작했다. 2007년 5월 춘천시 모 모텔에서 강제로 성폭행을 하는 등 2009년 3월 초까지 수십 차례에 걸쳐 B씨를 강제 추행하고 동성애를 미끼로 150만원을 갈취하기까지 했다.
결국 이씨는 경찰에 덜미를 잡혔고 동성 간의 성 접촉을 미끼로 금품을 갈취한 혐의(강제추행 등)로 구속됐다.
수년간 감염 숨긴 채 성관계…공포 확산
환자관리 강화? 사회적 편견부터 없애야
같은 해 충북 제천에서는 에이즈에 감염된 20대 택시기사가 무려 6년 동안 수 십명의 여성들과 성관계를 맺어온 것이 알려져 온 나라가 에이즈 공포에 떨기도 했다.
2003년 군 입대 직후 에이즈 환자로 판명된 전모(당시 26세)씨는 100여 벌의 여성 속옷을 훔친 혐의로 붙잡혔다. 여죄를 추궁하던 경찰이 전씨의 휴대폰에서 여성들과 성관계를 맺는 동영상을 찾아내면서 이른바 ‘에이즈 택시 사건’의 전말이 서서히 밝혀졌다.
전씨는 사회에 대한 복수심으로 일부러 피임기구도 사용하지 않은 채 수 십명의 여성들과 성관계를 맺어온 것으로 드러나 충격을 줬다. 당시 이 사건은 성문란 현상에 대한 개탄과 함께 에이즈 감염 확산에 대한 두려움 등으로 큰 사회적 파문이 일었다. 이후 수개월간 제천시 보건소는 에이즈 의심 환자들의 방문으로 업무가 마비되기도 했다.
이처럼 잊을 만하면 에이즈 보균자의 성범죄 사건이 벌어지면서 에이즈 환자에 대한 당국의 관리실태가 도마에 오르고 있다.
‘후천성면역결핍증’이라 불리는 에이즈(AIDS)는 HIV라는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면역체계를 잃어버리는 질병을 말한다. 인체의 방어기전이 전무하기에 작은 감염에도 심각한 합병증이 생겨 결국 사망에 이른다.
1985년부터 2011년까지 우리나라의 누적 감염인 수는 8544명으로 이 중 1512명이 사망해 7032명이 생존해 있다. 2011년 한 해 동안 발견된 내국인 신규 감염인은 888명으로 계속 늘어나는 추세다.
에이즈 바이러스는 혈액이나 정액, 질 분비물, 모유 등을 통해 전염되는데 가장 흔한 전염 경로는 성관계이다.
성관계에서의 보편적인 감염률이 1000분의1∼1000분의4 정도지만 질 내벽이나 페니스에 상처가 있는 경우 그리고 항문섹스인 경우는 감염 가능성이 훨씬 높다. 단순한 신체 접촉이나 음식, 기침, 같은 좌변기 사용 등을 통해서는 감염되지 않는다.
그러나 이러한 전염성을 알면서도 콘돔을 착용하지 않은 채 성관계를 맺은 것은 분명 범죄행위다. 감염자가 확인되면 중상해죄가 적용된다.
그렇다 하더라도 국가 차원에서 보균자의 성생활을 관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1대1로 감시하기 위해선 수천명의 인력이 필요한데다 에이즈 보균자의 정확한 수적 파악도 제대로 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관련법은 에이즈 보균자의 신고에만 의존해, 등록된 보균자보다 실제 보균자는 3배(2∼5배) 이상이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또 에이즈 보균자들은 거주지 이전 시 보건 당국에 신고할 의무가 없어 소재가 파악되지 않는 사각도 존재한다.
사회적 관심 필요
이와 관련 보건소 관계자는 “이러한 허술한 에이즈 보균자 관리가 더 많은 감염자를 양산시킨다는 분석도 있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에이즈 환자를 바라보는 사회시선”이라며 “그들은 국가가 일거수일투족을 추적해야 하는 예비 범죄자가 아니다. 우리와 다름없는 평범한 시민이라는 시각으로 더 많은 사회적 관심이 필요한 존재다”라고 말했다.
스치기만 해도 병을 옮는 사람들, 혼자 죽기 억울해 많은 사람들에게 전염시키려는 사람들, 사회에 대한 증오심과 복수심을 표출한 반사회적인 행동 등으로 평가하는 사회적 편견들이 에이즈환자들을 음지로 몰아넣고 비정상적인 성관계를 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에이즈 환자가 없는 사회가 아닌, 에이즈 환자와 더불어 사는 사회를 만들어 나가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