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골 오싹한 ‘SNS 괴담’ 천태만상

  • 김설아 sasa7088@ilyosisa.co.kr
  • 등록 2012.10.09 12:3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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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10일 중국인 인육 먹으러 한국 온다?”

[일요시사=김설아 기자] 어느 날 스마트폰으로 날아온 요상한 이야기. 결론부터 말하자면 인육을 먹는 중국인들이 10월 10일 한국으로 인육사냥을 나오니 주의를 요구한다는 것. 트위터와 카카오톡 등을 통해 퍼진 기이한 괴담은 이뿐만이 아니다. 택시 괴담, 할머니 괴담, 조선족 베이비시터괴담까지. 뒤숭숭한 사회분위기와 맞물려 기승을 부리는 충격괴담들을 들여다봤다.

‘오원춘 사건’ 이후 인신매매 괴담이 더 극성을 부리고 있다. 최근에는 중국 ‘쌍십절(대만의 건국기념일)’과 관련한 인육괴담이 확산되고 있다. 온라인 게시판과 트위터 등을 중심으로 떠도는 해당 인육괴담의 주요 내용은 “10월 10일이 중국에서는 ‘쌍십절’로 인육을 먹는 풍습이 있다. 이날 인육을 먹기 위해 한국으로 인육사냥을 나오는데 지난해에도 우리나라 사람들이 많이 잡혀갔다고 한다”는 것이다.

“한국인들 조심”
섬뜩한 경고

정체불명의 이 괴담은 ‘인육데이’ 동영상으로도 만들어져 있다. 유튜브에 공개된 해당 동영상에서는 한국에서 인육 거래가 실제로 성행한다고 주장하며, “중국 인신매매단이 사형 등 강력한 법집행이 이뤄지는 중국보다 상대적으로 형벌이 약한 한국에서 범행을 저지르기 위해 들어오는 것”이라고 말한다.

각종 강력 사건과 장기매매 사건 보도영상을 짜깁기한 영상은 오원춘 사건을 재연해 여성이 칼에 찔려 살해되는 장면, 머리만 남고 뼈와 살이 분리된 소녀의 시신 사진 등 잔인한 영상이 모자이크 없이 더해져 충격을 주고 있다. 그러면서 이런 것들이 모두 “중국에서 인육을 먹기 위해 사람을 살해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또 ‘인육매매 조직폭력배의 증언’이란 제목의 글을 통해 “중국인들은 명절에 인육을 먹던 관습이 있고, 중국 상류층들이 사법당국의 감시를 피해 인육을 찾아 한국에 온다”며 “시신을 잔인하게 훼손한 오원춘 사건을 근거로 인간 도살자들이 실제로 존재하고 인육 거래시장이 10년 전 만들어졌다”고 말한다.

인육데이, 택시납치, 할머니…‘각종 괴담’ 확산
성인1명 장기거래가가 18억? 실종자들이 모두 


“한 해 실종자가 수백 명인데 이들이 인육 공급책 조직에 희생된 것일 가능성이 크다”면서 “중국의 인육업자들이 한국 사람을 납치해 인육?장기매매 용도로 쓰는데 살과 장기는 팔고, 껍데기는 화학 물질로 녹여서 하수구에 흘려보내기 때문에 흔적이 안 남는다. 매년 많은 실종자가 이렇게 사라지고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

장기밀매가 확산되는 이유를 ‘돈’이라고 꼬집기도 한다. 부위별 장기매매 가격은 안구 2억 3천 만원, 치아 130만원, 심장동맥 170만원, 심장 8억 원, 간 4억 원, 신장 3억 원, 위 2천 만원, 창자 290만원, 쓸개 140만 원 등으로 한 사람 몸에서 나오는 암시장 장기매매가가 약 18억에 달한다는 것이다.

이와 비슷한 장기매매 납치괴담은 또 있다. “주된 납치의 타깃은 ‘여성’이고 ‘젊은’ 사람이다. 이들은 인신매매로 많이 팔려 나가는데 옛날같이 단순히 성매매로만 팔려 나간다고 생각하는데 요즘은 대부분이 장기밀매”라며 “마취제로 마취해서 납치한 뒤에 작업장에 데리고 가면 시술자가 나타나는 즉시 바로 적출이 시작되는데. 의외로 간단한데다 증거도 없고 위험부담도 없고 돈은 억대로 벌 수 있어 선호한다고 한다”는 내용이다.

때마침 한 아파트단지 관리사무소가 ‘여학생 납치 사건을 주의해달라’는 안내문을 아파트 게시판에 붙인 사실이 알려지자 인육 괴담은 폭발적으로 번지고 있다.

지난달 30일 김해 장유 신도시의 한 아파트에 사는 한 여중생이 전날 밤 10시40분쯤 학원에 다녀오다 한 낯선 할머니와 마주쳤는데, 할머니가 길을 묻는 척하면서 근처에 세워 둔 승합차로 여중생을 유인해 태우려고 했다는 것이다. 안내문은 어린이는 물론 모든 여성이 납치 대상이 될 수도 있다면서 주의를 당부했다.

아기의 장기적출
부모는 자살?

인신매매, 장기매매 관련 괴담은 이뿐만이 아니다. 조선족 베이비시터가 아기 2명을 납치해 장기적출을 해서, 부모는 자살했다는 ‘조선족 베이비시터’ 괴담도 있다. 괴담의 내용을 보면 이렇다.


글쓴이가 승무원으로 일하던 시절 선배가 조선족 베이비시터에게 큰아이와 8개월 된 둘째 아이를 맡겼는데, 베이비시터는 아이 둘을 납치해서 사라졌다는 것이다. 이후 아이의 부모가 경찰에 신고했으나 “중국에서 유아 장기매매가 기승인데다, 베이비시터의 여권 등이 모두 위조된 것이라 찾아내기가 어렵다”는 답변을 들었고, 나중에 범인을 찾았지만, 아이들은 이미 장기가 적출된 상태로 발견돼 충격으로 부부가 자살했다고 한다.

‘가짜 택시 주의보’라는 이른바 ‘택시괴담’도 돌고 있다. 택시 문고리에 마취제를 묻혀 두고 이를 만진 승객이 실신하면 장기를 꺼내 파는 가짜 택시가 돌아다닌다는 것이다. 특히 택시괴담 속에는 아는 사람이 범행 대상이 될 뻔했다는 증언까지 실려 있어 충격을 준다.

‘택시괴담’ 뿐 아니라 ‘할머니 괴담’도 트위터, 카카오톡 등을 통해 빠르게 번지고 있다. 이는 버스에서 할머니가 여학생에게 일부러 시비를 걸어 내리게 한 뒤 뒤따라 온 승합차로 납치하려 했다는 경험담이다. 할머니의 짐을 들어준 한 남자 대학생이 할머니가 건넨 음료수를 마셨다가 정신을 잃고 병원에 묶여 있었다는 괴담도 있다.

이밖에 임상실험 지원자의 장기를 적출해 간다는 ‘구인광고 괴담’, 공짜심리를 이용한 ‘무료쿠폰 납치괴담’, 경찰임을 가장해 휴대폰으로 위치를 묻고 조사에 도움을 달라며 접근하는 ‘위장 납치괴담’ 등도 유행하고 있다.

‘중국=인육문화’
어쩌다 이런 등식이

그렇다면 이 같은 엽기적인 괴담 등이 SNS를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가장 큰 이유로 바로 최근 몇 달 동안 우리 머릿속에 ‘중국=인육문화’ 라는 등식이 이뤄졌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 중심에 ‘오원춘 인육설’이 있다. 오원춘은 경기도 수원에서 지난 4월 20대 여성을 집으로 납치한 뒤 성폭행 하려다 살해하고 사체를 360여 조각으로 나눈 뒤 13개의 비닐봉지에 나눠 담는 엽기적 범죄를 저질렀다. 그러나 오원춘이 여성을 성폭행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그의 범행 목적이 인육이었다는 의혹이제기 됐다.

급기야 지난 6월 1심 판결에서 담당 재판부가 공식적으로 오원춘의 행태가 ‘인육 제공’목적이라고 언급하면서 파장은 더욱 커졌다. 일부 네티즌들 사이에서 ‘역사적으로 긴 기간 동안 행해졌던, 중국의 식인 문화’, ‘중국 인육 상설시장’, 그리고 지난해 논란이 됐던 중국발 ‘태아사체로 만든 인육캡슐’의 존재’ 등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네티즌들의 뇌리엔 ‘중국=식인문화’라는 등식이 성립된 것이다.

오원춘 인육설의 연장선? 무슨 연관이 있기에?
엽기사건 난무, 사회안전망 부족, 불안심리 겹쳐

비단 오원춘 사건의 영향 뿐 아니라 최근 잇달아 발생하는 각종 엽기사건, 사회 안전망 부족 등도 이러한 괴담을 야기 시킨 하나의 이유로 볼 수 있다는 분석이다.

이에 한 네티즌은 “한국에 살면서 최소한 ‘치안’ 하나만큼은 다른 선진국 부럽지 않은 수준이라 체감하고 있었는데, 언젠가부터 각종 성폭행 사건과 살인 사건 등의 뉴스를 자주 접하다 보니 그간 우리나라 치안에 대해 가졌던 믿음이 불안과 불신으로 바뀌었다”며 “그러다보니 인터넷을 떠도는 불분명한 이야기에까지 사람들의 관심이 집중된 것 아니겠나”라고 말했다.

경찰 역시 인터넷과 SNS를 떠도는 글이 단순한 괴담일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최근 ‘택시 괴담’, ‘할머니 괴담’, ‘휴대전화 괴담’ 등 다양한 괴담이 나왔지만 신고가 들어왔다거나 확인된 사실은 없다”며 “최근 강력범죄가 기승을 부리자 사회 분위기가 불안해지고, 이에 따라 각종 괴담이 생성되는 것 같다”고 밝혔다.

무서운 세상
분위기도 ‘흉흉’


10월 10일 쌍십절을 맞아, 중국인들이 인육을 먹기 위해 한국으로 원정을 올 것 이라는 이른바 ‘인육데이 괴담’. 대부분의 사람들이 관련 괴담들을 ‘과장된 이야기’라며 거짓으로 분류하고 있지만, 이러한 괴담이 생겨나게 된 원인과 그에 대한 국민 우려에 대해서는 짚어 볼 필요가 있다. 괴담은 불안한 사회, 불통 사회가 낳은 자화상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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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