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피습으로 본 정치테러 수난사

아베 참극, 남 일 아니다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극단으로 치닫는 정치 갈등이 결국 피를 봤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부산 공식 일정 도중 칼에 찔렸다. 이번 사건으로 과거 비슷한 사례들도 국내외서 회자되고 있다. <일요시사>는 과거 정치테러 사건들을 되짚어봤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지난 2일, 부산 가덕도 신공항 건설부지 방문 도중 60대 남성 김모씨로부터 목 부위를 흉기로 습격당했다. 이 대표는 사건 현장서 응급처치를 받은 뒤 병원으로 이송됐다. 이날 오전 10시27분께 이 대표는 부산 가덕도 신공항 부지를 둘러본 후 취재진 질문에 답변했다. 

음모론에 
가짜 뉴스

답변을 끝내고 이동하는 도중 머리에 ‘내가 이재명’이라고 적힌 파란 종이 왕관을 쓰고 뿔테 안경을 쓴 김씨가 “사인해 주세요”라고 말하며 취재진 사이를 비집고 들어왔다. 그는 이 대표에게 펜과 종이를 건네 손을 쓰지 못하게 한 다음 곧바로 오른손에 든 흉기로 이 대표의 목을 찔렀다.

이후 민주당 당직자와 사복 경찰 등에 의해 제압된 그는 경찰 조사에서 ‘이재명 대표를 죽이려고 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대표는 사건 발생 20여분 만인 오전 10시47분에 도착한 구급차에 실려간 뒤 헬기로 오전 11시13분께 부산대병원 권역외상센터로 이송돼 외상 담당 의료진으로부터 응급 검사와 응급처치를 받았다. 이 대표는 목 부위에 1.5cm가량의 자상과 함께 경정맥에 손상을 입은 것으로 확인됐다.


이 대표는 이후 서울대병원으로 이송돼 혈전 제거를 포함한 혈관 재건술을 받았다. 

권칠승 민주당 수석대변인은 지난 2일 브리핑서 “당초 1시간을 예상했으나 약 2시간가량 수술이 진행됐다”며 “뇌경정맥 손상이 확인됐으며 정맥서 흘러나온 혈전이 예상보다 많아 관을 삽입한 수술이 시행됐다”고 밝혔다.

이 대표는 수술 직후 중환자실에 입실했으며 지난 3일 중환자실서 일반 병실로 옮겨 회복 치료를 받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과 경찰은 지난 2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피습사건과 관련해 각각 특별수사팀·특별수사본부를 꾸려 진상 조사에 착수했다. 경찰은 해당 사건을 접수하고 총력 대응에 나섰다. 윤희근 경찰청장도 사건 직후 신속하고 엄정한 수사를 지시했다.

부산 공개 일정 중 칼에 찔려
극단적 정치 양극화 우려 심화

윤 청장은 부산경찰청에 “즉시 수사본부를 설치하도록 하고 신속하고 철저하게 사건의 경위와 범행 동기, 배후 유무 등을 수사하라”고 지시했다. 또 “유사 사례 재발을 방지하기 위해 주요 인사에 대한 신변보호를 강화하겠다”고도 했다.

부산경찰청 특별수사본부는 지난 3일, 김씨가 이 대표를 급습할 때 사용한 흉기는 길이 17cm, 날 길이 12.5cm 크기의 등산용 칼이었고 손잡이 부분이 테이프로 감겨 있었다고 밝혔다. 또 김씨가 범행 전날인 1일 오전 부산에 도착했다가 울산으로 간 뒤 범행 당일인 2일 오전 부산에 온 것도 파악했다.


경찰은 김씨가 경남과 부산 등을 순회하는 이 대표 방문지를 따라다닌 정황이 있는 것으로 보고 구체적인 동선을 조사하고 있다. 

경찰은 지난 3일 충남 아산시에 있는 김씨 자택과 사무실 등에 대한 압수수색을 진행했다. 경찰은 김씨의 개인용 컴퓨터와 노트북, 과도, 칼갈이 등을 확보했고 범행과 연관성이 있는지 살펴보고 있다.

김씨는 지난 4일 살인미수 혐의로 영장실질심사를 받고 구속됐다. 검찰도 특별수사팀을 설치해 철저한 수사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이원석 검찰총장은 이날 부산지검에 이 대표의 피습사건을 담당할 특별수사팀을 구성하고 철저히 수사할 것을 지시했다.

대통령도
당 대표도

대검찰청은 언론 공지를 통해 “검찰총장은 이 대표 피습사건과 관련, 정당 대표에 대한 테러로서 사안의 중대성을 고려해 부산지검에 특별수사팀을 구성하고 경찰과 협력해 신속하고 철저하게 진상을 규명하고 관련자를 엄정히 처리하도록 지시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전국 검찰청에 22대 총선과 관련해 폭력행위가 발생하지 않도록 유관기관과 긴밀한 협조체제를 구축해 철저히 대비하고 정치적 폭력행위에 대해서는 엄단하도록 지시했다”고 덧붙였다.

이 대표 피습사건과 가장 유사한 사건은 박근혜 전 대통령(당시 한나라당 대표) 커터칼 사건이다. 박 전 대통령 커터칼 사건은 2006년 5월20일 5·31 지방선거를 앞두고 벌어졌다. 박 전 대통령은 서울 신촌 현대백화점 앞에서 오세훈 당시 서울시장 후보 지원 유세장을 찾아 단상에 오르던 중 지모씨에게 얼굴을 기습당했다. 

박 전 대통령은 이로 인해 길이 11cm, 깊이 1~3cm의 열상을 입었다. 이 사고로 박근혜는 인근 신촌 세브란스병원으로 옮겨져 봉합 수술을 받았다.

이 사건은 당시 선거의 판세를 뒤집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박 전 대통령이 당시 입원 도중 측근들에게 “대전은요”라고 물은 사실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고 퇴원한 뒤 바로 대전서 선거 지원에 나서면서 한나라당에 열세였던 판세가 뒤집힌 것으로 분석했다. 

박근혜 커터칼 사건 대표적
질산 투척당한 김영삼 아찔

비교적 최근 사례로는 같은 당 대표인 송영길 전 대표 피습사건이 있다. 

송 전 대표는 지난 2022년 3·9 대선을 앞두고 이재명 후보를 위해 서울 신촌 지원 유세 중에 유튜버인 표모씨가 내려친 둔기에 머리를 가격당했다. 송 전 대표는 피습 직후 연세대학교 신촌세브란스병원 응급실로 이송됐고 봉합수술을 받은 뒤 이재명 지원유세를 지속했다.


오세훈 서울시장도 위기의 순간을 경험했다. 2020년 4·15 총선을 앞두고 참석한 당시 미래통합당 후보 유세 현장서 흉기를 들고 난동을 부린 괴한이 구속됐다. 출마지인 서울 광진구서 차량 선거운동을 벌이던 중에는 괴한이 미리 준비한 흉기를 들고 접근하던 중 경찰에 제지되기도 했다.

괴한은 경찰에 “잠을 자려고 하는데 수면에 방해돼 홧김에 범행했다”는 취지로 진술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정치인들은 공개 일정 중에 시민으로부터 계란을 맞거나 주먹으로 폭행당한 사례도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민주당 대선후보 시절인 2002년 11월 ‘우리쌀 지키기 전국 농민대회’서 연설하다가 청중의 야유 속에서 날아온 달걀에 아래 턱을 맞았다. 당시 노 전 대통령이 “정치하는 사람들은 달걀 하나씩 맞아야 한다” “달걀을 맞아서 일이 잘 풀린다면 어디에 가서든 맞겠다”고 말했던 일화는 유명하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2007년 12월 대선후보로서 경기도 의정부를 찾아 거리 유세를 하던 중 허리 부근에 계란을 맞았다. 당시 승려 복장을 한 중년 남성이 “BBK 사건의 전모를 밝히라”고 외치며 계란을 던졌다.

납치까지
위기의 순간


같은 해 11월 무소속 이회창 후보가 대구 서문시장을 방문했을 때도 한 30대 남성이 계란 여러 개를 이 후보를 향해 투척했다. 이 중 계란 하나가 이 후보 옆 사람을 향했고, 계란이 깨지면서 이 후보의 이마와 안경에도 튀었다.

국민의당 안철수 전 대표는 지난 2014년 광주서, 민주당 이낙연 전 대표는 2021년 3월 춘천서 계란 공격을 받았다.

이 대표 역시 계란 봉변을 당할 뻔했던 사례가 있다. 이 대표가 2021년 12월13일 경북 성주를 방문한 자리서 한 고교생이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배치에 반대한다며 계란을 던졌지만 맞지는 않았다. 해당 고교생은 체포됐지만 이 후보가 처벌을 원치 않는다는 의사를 밝혀 하루 만에 풀려났다. 

김성태 당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2018년 5월 ‘드루킹 댓글조작’ 사건에 특검을 요구하며 서울 여의도 국회 본관 앞에서 단식농성하던 도중 한 남성에게 턱을 가격당해 병원으로 후송됐다. 가해자 김모씨는 김 원내대표에게 악수를 청하는 척하다가 갑자기 폭행하며 “김경수 의원은 무죄”라고 외쳤다.

당시 자유한국당 의원들은 배후 의혹을 제기하며 릴레이 동조 단식에 나섰으나 경찰 조사 결과 김씨의 단독 범행이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원희룡 전 제주도지사도 제주도 제2공항 건설 문제 토론회 도중에 지역 주민에게 얼굴과 팔 등을 폭행당하기도 했다.

부산 공개 일정 중 칼에 찔려
극단적 정치 양극화 우려 심화

민주화 이전 군사정권 시절에는 정적을 노린 계획적 테러도 이뤄졌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신민당 원내총무로서 박정희 대통령의 3선 개헌 반대 투쟁을 주도하던 1969년 6월20일 상도동 자택 인근서 질산(초산) 테러를 당했다. 괴한들이 뿌린 질산이 자동차 창문에 던져져 차창이 녹아내렸으나, 김 전 대통령은 크게 다치지 않았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유신 반대 운동을 벌이던 1973년 8월8일 일본 도쿄의 한 호텔서 중앙정보부 요원들에 의해 납치됐다. 김 전 대통령은 동해상으로 끌려가 살해당할 뻔했다가 5일 만에 극적으로 풀려났다.

이 같은 정치테러로 정치권 안팎에서는 정치 양극화를 우려하고 있다. 양극단의 지지층이 유튜브 등을 중심으로 증오를 부추기고 가짜 뉴스를 양산하며 여론몰이에 나서는 양상이 위험 수위를 넘나드는 탓이다.

이 대표 피습 당일에는 일부 극우 유튜브 채널 등에선 피습사건이 이 대표 쪽의 ‘자작극’이라는 주장을 폈다. ‘가짜 칼’ ‘가짜 피’라는 가짜 뉴스도 퍼져나갔다. 

민주당 온라인 당원 게시판 ‘블루웨이브’와 이 대표 팬카페 ‘재명이네 마을’ 등에는 “쌍특검법(김건희 여사 특검법, 대장동 50억 클럽 특검법) 거부권 행사에 부정적인 여론을 덮으려는 것” “피습의 배후는 윤석열” 등의 주장이 올라왔다. 

이를 두고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장은 “정치 양극화가 심화하면서 팬덤정치가 기승을 부리고, 팬덤정치가 양극단으로 치닫다 보니 혐오가 증오정치로 악순환하면서 ‘정치테러’가 발생했다”고 말했다. 

이준한 인천대 교수(정치외교학)는 “정치 지도자들이 서로 남의 얘기를 듣지 않고 자기주장만 하는 상황서, 정치 시스템에 대한 불신이 작동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극단적으로 표현해야 자기 얘기를 들어준다고 생각한 거 아니겠느냐”고 꼬집었다.

혐오 정치 
불씨 키워

여야는 일제히 ‘반성문’을 내놨다.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이날 비상대책위원회의서 “(이 대표)피습사건은 대의민주주의 전체에 불행한 오점으로 기록될 것”이라며 “여야 모두 독버섯처럼 자라난 증오정치가 국민께 악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인정하고, 머리를 맞대 정치문화를 혁신할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주문했다.

고민정 민주당 최고위원은 최고위원회의서 “정치혐오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정치인들의 선을 넘나드는 막말이 지지자는 물론 일반 시민을 자극하며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이들에 대한 혐오로 번졌다”고 짚었다.

<kcj5121@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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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전’ 친윤 대숙청 시나리오

‘대선 전’ 친윤 대숙청 시나리오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김문수 대선후보는 당원들의 도움으로 대선후보 지위를 유지했다. 확실한 명분을 쥔 김 후보는 설령 대선서 패배하더라도 당권 장악을 위한 투쟁을 이어가야 한다. 김 후보가 당내 주도권 다툼서 이기는 방법은 무엇일까? 국민의힘 김문수 대선후보는 권영세 전 비상대책위원장·권성동 원내대표 등 친윤(친 윤석열)계의 대선후보 교체 시도를 당원들의 반대로 진압한 후에야 선대위를 구성했다. 김 후보는 지난 11일 대선후보로 등록했고, 대선후보의 당무우선권을 발동해 국민의힘 김용태 의원을 같은 날 진행된 의원총회서 새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임명했다. 갑툭튀 위원장 권 전 비대위원장이 후보 교체 시도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퇴했기 때문이었다. 일각에선 권 원내대표의 사퇴도 강하게 요구했지만, 김 후보는 권 원내대표를 유임했다. 이날 진행된 의원총회엔 의원 107명 중 50명만 참석했다. 후보 교체 시도에 가담한 친윤계 의원들은 대거 불참했다. 이어 지난 12일엔 국민의힘 비대위 회의가 개최됐다. 국민의힘은 이날 회의서 김용태·주호영·권성동·나경원·안철수·황우여·양향자 등 7인 공동 선대위원장 체제를 발표했다. 김 후보는 후보 교체 시도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국민의힘 이양수 의원을 대신해 박대출 의원을 사무총장으로 임명했다. 박 의원은 선대위서도 총괄지원본부장을 맡았다. 이틀 동안 확정·발표된 인선 중 가장 주목받은 것은 김 비대위원장 임명이었다. 30대 중반 막내 초선 의원을 당 대표격 직책에 임명했기 때문이었다. 김 비대위원장은 비대위원으로서 후보 교체 시도에 강하게 반대했다. 김 비대위원장은 지난 2021년 전당대회서 청년 최고위원으로 당선돼 이준석 당시 대표가 이끌던 지도부에 참가했다. 이어 황우여 전 비상대책위원장 시절에도 비대위원으로 발탁됐던 경험이 있다. 이 전 대표 시절엔 소장파 ‘천아용인’ 중 1명으로 거론됐던 적이 있고, 이 전 대표가 탈당해 개혁신당을 창당한 이후에도 돈독한 친분을 이어가고 있다. 일각에선 김 비대위원장 발탁을 놓고 “개혁신당 이준석 대선후보와의 단일화를 대비한 것”이라고 평가한다. 다만 김 비대위원장에 대해선 “소장파로서의 행보가 약하다”는 평가도 있다. 그래서 김 비대위원장이 적극적으로 권한을 행사할 수 있을지 회의적으로 보는 시선도 있다. 장성철 공론센터 소장은 지난 12일 MBC 라디오 <권순표의 뉴스하이킥>서 “친윤계가 김 비대위원장을 화살받이·방패막이로 앞세워서 상황을 돌파하려는 것 같다”고 평가했다. 이어 김 비대위원장의 역량을 인정하는 기준으로 윤석열 전 대통령 부부와의 결별 및 출당을 제시했다. 함께 출연한 장윤선 정치 전문 기자는 “제일 고통스러운 사람은 김 비대위원장 자신일 것이란 얘기가 있다”며 “대선서 크게 패배하면, 그 책임을 김 후보가 아닌 김 비대위원장이 지는 방식으로 정리하기 위해 허수아비로 세워놓은 것 아니냐는 얘기도 있다”고 거들었다. 친윤계는 의원총회 불참으로써 김 비대위원장 지명에 암묵적으로 동의했다. 김 후보는 당원투표로써 친윤계의 후보 교체 시도를 진압했기 때문에 명분을 확보했다. 국민의힘의 주도권을 휘어잡을 기회를 얻었다고 볼 수도 있다. 30대 초선 비대위원장 총알받이? 방패막이? 김 후보가 대선후보 지위를 굳힌 후 먼저 교체한 사람이 이 전 사무총장이란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전 사무총장은 당 선거관리위원장 자격으로 김 후보 선출 취소 공고와 새 후보 등록 신청 공고를 발표했다. 후보 등록 신청 공고에 제시된 등록 신청 기간은 지난 10일 오전 3시부터 4시까지였고, 등록을 위해 준비해야 할 서류는 총 32종이었다. 등록 장소는 국회 본관 228호 비대위 회의실이었다. 이 황당한 상황은 한 편의 코미디로 남았다. 이날 오전 3시부터 4시 사이엔 공고를 본 후 국회를 방문해 “국민의힘 대선후보로 등록하러 왔다”면서 국회 경비대에 “문을 열어달라”고 요구하는 조롱성 방송을 진행한 유튜버도 있었다. 이 전 사무총장은 소동이 끝난 후 의원 단톡방에 김 후보를 비판하고 권 전 비대위원장을 두둔하는 취지로 어느 정치평론가의 칼럼을 게재했다. 이어 친한(친 한동훈)계인 국민의힘 정성국 의원으로부터 “총장님 입맛에 맞는 정치평론가의 글을 단톡방서 읽을 이유는 없다”고 비판받았다. 김 후보로선 사태가 끝난 이후에도 후보 교체 시도를 정당화하는 이 전 총장을 유임시킬 이유가 없었다. 선거를 목전에 두고 있으므로 권 원내대표까지 교체해 파문을 확대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김 후보가 당의 주도권을 확실히 휘어잡을 기회를 잡은 것은 분명하다. 따라서 실질적으로 선대위를 움직일 당 사무총장은 빨리 교체해야 했다. 김 후보는 권 원내대표를 유임시켜 ‘휴전’ 메시지를 보낸 후 친윤계와의 암묵적 합의를 거쳐 김 비대위원장을 임명했다. 이어 실권을 행사하는 사무총장을 신속하게 확보했다. 국민의힘 대선후보 교체 시도는 1991년 8월 발생한 소련 공산당 보수파의 쿠데타를 연상시킨다. 보수파는 미하일 고르바초프 당시 대통령을 몰아내기 위해 쿠데타를 일으켰다. 이 쿠데타는 KGB 알파그룹과 전차부대 등이 동원돼 신속하게 진행된 군사작전이었다. 쿠데타는 실패했고, 소련은 해체됐다. 이처럼 정치적 기획을 군사작전처럼 몰아쳐 진행하는 성향이 있는 사람은 윤석열 전 대통령이다. 윤 전 대통령은 이런 식으로 당 대표 2명과 비대위원장 1명을 쫓아낸 적이 있다. 더불어민주당 황정아 대변인은 지난 10일 “윤석열 지령, 국민의힘 연출로 시작된 대선 쿠데타”라고 주장했다. “행보가 약하다” 윤 전 대통령도 본의 아니게 자수 아닌 자수를 했다. 윤 전 대통령은 지난 11일 오전 자신의 페이스북에 김 후보 지지를 호소하는 글을 올렸다. 그런데 이 게시글엔 “김 후보를 지지하셨던 분들도 이 과정을 겸허히 품고 서로의 손을 맞잡아야 한다”는 문장이 있었다. 김 후보의 패배를 기정사실로 한 게시글을 수정 없이 그대로 올렸다. 김 후보와 친윤계의 대결이 ‘휴전’에 불과하다는 것을 암시하는 게시글이었다.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 등 친한계는 지도부를 강하게 비판하면서 김 후보를 거들었다. 이 중 친한계 좌장 6선 조경태 의원은 김 후보와 한덕수 전 국무총리의 단일화 논란이 분분했던 지난 9일에도 “무책임한 외부 인사 영입을 통해 대선을 치를 거라면, 경쟁력 있는 이재명 후보를 데리고 오는 게 빠른 거 아니냐”면서 김 후보를 두둔했다. 이를 두고 “당원투표서 김 후보 교체 시도가 부결됐던 이유 중 하나는 친한계 당원들의 반대 움직임”이라고 보는 일각의 평가도 나왔다. 하지만 김 후보와 한 전 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및 탄핵 등 여러 사안서 의견이 엇갈렸다. 두 사람은 국민의힘이 대선서 패배하면 다시 진행될 가능성이 큰 당권 투쟁의 잠재적인 경쟁 상대다. 김 후보는 56.53%를 얻어 대선후보로 선출됐다. 한 전 대표가 얻은 43.47%도 무시하긴 어려운 수치다. 친한계 일원인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은 지난 12일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한 전 대표의 선대위 참여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한 전 대표는 지난 11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비상계엄 및 탄핵 반대에 대한 사과 ▲윤 전 대통령 부부와의 절연 ▲한 전 총리와의 단일화 약속을 내걸고 후보로 선출된 것에 대한 사과 등 자신의 선대위 참여 조건을 제시했다. 김 전 최고위원은 이를 언급하면서 “김 후보가 하나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렇듯 김 후보는 당내 유력 계파들인 친윤·친한과의 불씨를 두고 있다. 두 계파 모두 앙숙이기 때문에 김 후보로선 두 계파 모두를 포섭하기도 쉽지 않다고 볼 수 있다. 아울러 2026년엔 국회의원들의 ‘대목’이라고 볼 수 있는 지방선거가 진행된다. 불씨가 들불이 될 가능성이 크다. 이 때문에 최소한 선거 상황에선 김 비대위원장이란 완충지대가 필요했을 가능성도 있다. 김 후보도 바보가 아닌 한 대선 승리 가능성이 크지 않단 것은 잘 알고 있다. 그 자신도 친윤계의 쿠데타로 인해 정당하게 선출된 후보직을 잃을 뻔했다. 대선 이후엔 곧바로 당권 투쟁이 진행될 가능성이 크다. 김 후보가 대선 이후에도 정치적 영향력을 잃지 않고 당을 장악하려면 당권 투쟁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김 후보에게도 우군이 필요하다. 남겨놓은 갈등 불씨 김 후보는 지난 2020년 1월 국민의힘의 전신 자유한국당을 탈당한 이후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와 돈독한 친분을 유지했다. 같은 해 8월 발생한 사랑제일교회 코로나19 집단감염 사건 이후에도 경찰이 자가격리 조치를 어기고 집회에 참석한 사랑제일교회 일부 신자를 연행하려고 하자 이를 막는 등 논란을 일으킨 적이 있다. 당시 김 후보는 “내가 김문수인데, 왜 가자고 그러느냐”라거나 “내가 국회의원을 3번 했다”는 등 호통을 치는 등 경기도지사 재임 당시 119에 전화해 갑질했던 ‘도지삽니다’ 사건을 연상시키는 언행으로 물의를 일으켰다. 전 목사는 후보 교체 시도를 격렬하게 비판했다. 전 목사가 주도하는 대한민국 바로 세우기 국민운동본부(이하 대국본)는 지난 10일 국민의힘을 규탄하는 집회를 개최했다. 전 목사는 이날 “멀쩡하게 뽑아놓은 김문수를 아웃시키고, 한덕수를 영입했다”며 “국민의힘이 사기 치는 것 봤죠? 이건 완전 불법”이라고 주장했다. 대국본도 같은 날 배포한 입장문서 “국민의힘은 종북 좌파와 맞서 싸우겠다는 애국 보수만 나타나면 알레르기 반응부터 보인다”고 비판했다. 김 후보는 지난 8일 관훈토론회 초청 토론회서 “광장 세력과도 함께 손잡을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지금은 기독교의 교회 조직과 말씀 때문에 대한민국 자유민주주의가 버티고 있다고 생각한다”면서 전 목사 등 강경보수 성향 일부 교계를 극찬했다. 당내 지분이 전혀 없는 상황서 친윤·친한 모두와 경쟁해야 하는 김 후보로선 우군이 절실하다. 김 후보는 강경보수 세력 내부서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와도 돈독한 친분을 유지하고 있다. 김 후보는 지난 4월24일 전씨의 유튜브 채널 ‘전한길뉴스’에 출연했다. 전씨는 전 목사의 경쟁자로 통하는 손현보 세계로교회 목사와 연결돼있다. 전씨는 김 후보의 선거 전략을 분석하면서 “김 후보가 기득권 정치와 차별화된 이미지를 구축하고, 호남 지역 표심을 공략하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TV 토론서 압도적 존재감을 발휘하고, 막판에 보수 우파가 단합하면 충분히 이길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전 목사와 전씨는 윤 전 대통령 탄핵 국면서 보수 진영 내부의 막강한 영향력을 확보했다. 두 사람의 영향력은 인원 동원 능력으로부터 비롯된다. 이들을 국민의힘 내부에 유입시켜 전당대회서 승부를 본다면, 김 후보가 국민의힘을 장악하는 것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지방선거서 급한 일은 의원들의 지역구 내 지방선거 공천에 개입하는 일이 될 가능성이 크다. 지역구 국회의원의 영향력 아래서 손발 노릇을 하는 기초자치단체장과 지방의원을 장악하면, 의원들의 손발을 묶어둘 수 있다. 후보 교체 시도 5적 지역구서 공천 전쟁? 김 후보와 충돌할 가능성이 큰 의원은 ▲권 전 비대위원장 ▲권 원내대표 ▲이 전 총장 ▲성일종·박수영 의원이다. 이 중 이 전 총장을 제외한 4명에 대해선 홍준표 전 대구시장이 지난 11일 자신의 페이스북 게시글서 ‘4적’이라고 주장했던 적이 있다. 홍 전 시장은 “경선을 혼미하게 한 책임을 지고, 의원직 사퇴·정계 은퇴하라”고 주장했다. 이들 중 지도부였던 ▲권 전 비대위원장 ▲권 원내대표 ▲이 전 총장은 후보 교체 시도를 직접 진두지휘했다. 성 의원은 김 후보와 한 전 총리의 단일화에 가장 적극적이었다. 박 의원은 김 후보의 캠프에 참여했지만, 김 후보가 단일화와 관련해 신경전을 이어가자 “김 후보 주변 운동권 출신 인사들이 ‘한 전 총리는 가라앉고, 김 후보가 단일후보가 될 것’이라는 식의 논리를 퍼뜨리고 있다”고 비난했다. 또 김 후보를 일컬어 “전형적인 좌파식 조직 탈취 시도를 하고 있다”는 비난도 이어갔다. 김 후보는 대선후보 자격이 취소됐던 지난 10일 기자회견을 개최해 스스로 “국민의힘 대통령 후보 김문수”라면서 지도부를 비판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이어 캠프 내 측근들과 함께 국민의힘 중앙당사를 방문해 대통령 후보실을 점거했다. 이를 놓고 일각에선 “왕년의 투사 김문수가 돌아온 것이냐”고 반응했다. 이날 김 후보의 대응을 돌아보면, 대선 이후 당권 투쟁서 물러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독자 영역을 구축한 친윤·친한과 달리 김 후보는 외부 세력을 당내에 유입시키기 위한 명분부터 구축해야 한다. 대선서 패배하더라도 의미 있는 득표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 홍 전 시장은 자유한국당 후보로서 대선에 출마했지만, 보수 정당이 분열됐던 여파를 극복하지 못했다. 그래서 불과 785만여표(약 24%) 득표에 그쳤다. 이는 역대 대선 직선제 2위 후보 중 당선자와 최다 표차 낙선과 보수 정당 최저 득표율이었다. 홍 전 시장은 대선 패배 이후 약 3주 동안 미국을 방문한 후 전당대회에 출마해 당 대표로 당선됐다. 예나 지금이나 당내 세력이 미약한 홍 전 시장은 당의 하락세를 막지 못했고, 지난 2018년 지방선거 패배 책임 차원으로 당대표직서 물러났다. 대선서 많은 득표를 하지 못했던 것도 홍 전 시장의 지도력에 힘이 붙지 않았던 이유 중 하나였다. 따라서 김 후보로선 대선 결과와 상관없이 당을 장악하기 위해선 패배하더라도 최대한 많은 득표를 해서 명분을 쥐는 것이 중요하다. 이 후보와의 단일화 시도를 완전히 접지 않은 것도 그 이유 중 하나라고 해석할 수 있다. 하한선 35% 무너지나 YTN이 엠브레인퍼블릭에 의뢰해 지난 11~12일 이틀간 무선 100% 전화 면접 방식으로 진행했던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김 후보는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보다 13% 뒤처진 33%의 지지를 얻었다. 김 후보가 설령 대선서 패배하더라도, 국민의힘을 장악하려면 40% 이상의 독자 지지율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 최저 하한선은 35%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김 후보에겐 승패 여하를 떠나 많은 것이 달린 대선일 수밖에 없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