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피습으로 본 정치테러 수난사

아베 참극, 남 일 아니다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극단으로 치닫는 정치 갈등이 결국 피를 봤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부산 공식 일정 도중 칼에 찔렸다. 이번 사건으로 과거 비슷한 사례들도 국내외서 회자되고 있다. <일요시사>는 과거 정치테러 사건들을 되짚어봤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지난 2일, 부산 가덕도 신공항 건설부지 방문 도중 60대 남성 김모씨로부터 목 부위를 흉기로 습격당했다. 이 대표는 사건 현장서 응급처치를 받은 뒤 병원으로 이송됐다. 이날 오전 10시27분께 이 대표는 부산 가덕도 신공항 부지를 둘러본 후 취재진 질문에 답변했다. 

음모론에 
가짜 뉴스

답변을 끝내고 이동하는 도중 머리에 ‘내가 이재명’이라고 적힌 파란 종이 왕관을 쓰고 뿔테 안경을 쓴 김씨가 “사인해 주세요”라고 말하며 취재진 사이를 비집고 들어왔다. 그는 이 대표에게 펜과 종이를 건네 손을 쓰지 못하게 한 다음 곧바로 오른손에 든 흉기로 이 대표의 목을 찔렀다.

이후 민주당 당직자와 사복 경찰 등에 의해 제압된 그는 경찰 조사에서 ‘이재명 대표를 죽이려고 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대표는 사건 발생 20여분 만인 오전 10시47분에 도착한 구급차에 실려간 뒤 헬기로 오전 11시13분께 부산대병원 권역외상센터로 이송돼 외상 담당 의료진으로부터 응급 검사와 응급처치를 받았다. 이 대표는 목 부위에 1.5cm가량의 자상과 함께 경정맥에 손상을 입은 것으로 확인됐다.


이 대표는 이후 서울대병원으로 이송돼 혈전 제거를 포함한 혈관 재건술을 받았다. 

권칠승 민주당 수석대변인은 지난 2일 브리핑서 “당초 1시간을 예상했으나 약 2시간가량 수술이 진행됐다”며 “뇌경정맥 손상이 확인됐으며 정맥서 흘러나온 혈전이 예상보다 많아 관을 삽입한 수술이 시행됐다”고 밝혔다.

이 대표는 수술 직후 중환자실에 입실했으며 지난 3일 중환자실서 일반 병실로 옮겨 회복 치료를 받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과 경찰은 지난 2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피습사건과 관련해 각각 특별수사팀·특별수사본부를 꾸려 진상 조사에 착수했다. 경찰은 해당 사건을 접수하고 총력 대응에 나섰다. 윤희근 경찰청장도 사건 직후 신속하고 엄정한 수사를 지시했다.

부산 공개 일정 중 칼에 찔려
극단적 정치 양극화 우려 심화

윤 청장은 부산경찰청에 “즉시 수사본부를 설치하도록 하고 신속하고 철저하게 사건의 경위와 범행 동기, 배후 유무 등을 수사하라”고 지시했다. 또 “유사 사례 재발을 방지하기 위해 주요 인사에 대한 신변보호를 강화하겠다”고도 했다.

부산경찰청 특별수사본부는 지난 3일, 김씨가 이 대표를 급습할 때 사용한 흉기는 길이 17cm, 날 길이 12.5cm 크기의 등산용 칼이었고 손잡이 부분이 테이프로 감겨 있었다고 밝혔다. 또 김씨가 범행 전날인 1일 오전 부산에 도착했다가 울산으로 간 뒤 범행 당일인 2일 오전 부산에 온 것도 파악했다.


경찰은 김씨가 경남과 부산 등을 순회하는 이 대표 방문지를 따라다닌 정황이 있는 것으로 보고 구체적인 동선을 조사하고 있다. 

경찰은 지난 3일 충남 아산시에 있는 김씨 자택과 사무실 등에 대한 압수수색을 진행했다. 경찰은 김씨의 개인용 컴퓨터와 노트북, 과도, 칼갈이 등을 확보했고 범행과 연관성이 있는지 살펴보고 있다.

김씨는 지난 4일 살인미수 혐의로 영장실질심사를 받고 구속됐다. 검찰도 특별수사팀을 설치해 철저한 수사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이원석 검찰총장은 이날 부산지검에 이 대표의 피습사건을 담당할 특별수사팀을 구성하고 철저히 수사할 것을 지시했다.

대통령도
당 대표도

대검찰청은 언론 공지를 통해 “검찰총장은 이 대표 피습사건과 관련, 정당 대표에 대한 테러로서 사안의 중대성을 고려해 부산지검에 특별수사팀을 구성하고 경찰과 협력해 신속하고 철저하게 진상을 규명하고 관련자를 엄정히 처리하도록 지시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전국 검찰청에 22대 총선과 관련해 폭력행위가 발생하지 않도록 유관기관과 긴밀한 협조체제를 구축해 철저히 대비하고 정치적 폭력행위에 대해서는 엄단하도록 지시했다”고 덧붙였다.

이 대표 피습사건과 가장 유사한 사건은 박근혜 전 대통령(당시 한나라당 대표) 커터칼 사건이다. 박 전 대통령 커터칼 사건은 2006년 5월20일 5·31 지방선거를 앞두고 벌어졌다. 박 전 대통령은 서울 신촌 현대백화점 앞에서 오세훈 당시 서울시장 후보 지원 유세장을 찾아 단상에 오르던 중 지모씨에게 얼굴을 기습당했다. 

박 전 대통령은 이로 인해 길이 11cm, 깊이 1~3cm의 열상을 입었다. 이 사고로 박근혜는 인근 신촌 세브란스병원으로 옮겨져 봉합 수술을 받았다.

이 사건은 당시 선거의 판세를 뒤집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박 전 대통령이 당시 입원 도중 측근들에게 “대전은요”라고 물은 사실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고 퇴원한 뒤 바로 대전서 선거 지원에 나서면서 한나라당에 열세였던 판세가 뒤집힌 것으로 분석했다. 

박근혜 커터칼 사건 대표적
질산 투척당한 김영삼 아찔

비교적 최근 사례로는 같은 당 대표인 송영길 전 대표 피습사건이 있다. 

송 전 대표는 지난 2022년 3·9 대선을 앞두고 이재명 후보를 위해 서울 신촌 지원 유세 중에 유튜버인 표모씨가 내려친 둔기에 머리를 가격당했다. 송 전 대표는 피습 직후 연세대학교 신촌세브란스병원 응급실로 이송됐고 봉합수술을 받은 뒤 이재명 지원유세를 지속했다.


오세훈 서울시장도 위기의 순간을 경험했다. 2020년 4·15 총선을 앞두고 참석한 당시 미래통합당 후보 유세 현장서 흉기를 들고 난동을 부린 괴한이 구속됐다. 출마지인 서울 광진구서 차량 선거운동을 벌이던 중에는 괴한이 미리 준비한 흉기를 들고 접근하던 중 경찰에 제지되기도 했다.

괴한은 경찰에 “잠을 자려고 하는데 수면에 방해돼 홧김에 범행했다”는 취지로 진술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정치인들은 공개 일정 중에 시민으로부터 계란을 맞거나 주먹으로 폭행당한 사례도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민주당 대선후보 시절인 2002년 11월 ‘우리쌀 지키기 전국 농민대회’서 연설하다가 청중의 야유 속에서 날아온 달걀에 아래 턱을 맞았다. 당시 노 전 대통령이 “정치하는 사람들은 달걀 하나씩 맞아야 한다” “달걀을 맞아서 일이 잘 풀린다면 어디에 가서든 맞겠다”고 말했던 일화는 유명하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2007년 12월 대선후보로서 경기도 의정부를 찾아 거리 유세를 하던 중 허리 부근에 계란을 맞았다. 당시 승려 복장을 한 중년 남성이 “BBK 사건의 전모를 밝히라”고 외치며 계란을 던졌다.

납치까지
위기의 순간


같은 해 11월 무소속 이회창 후보가 대구 서문시장을 방문했을 때도 한 30대 남성이 계란 여러 개를 이 후보를 향해 투척했다. 이 중 계란 하나가 이 후보 옆 사람을 향했고, 계란이 깨지면서 이 후보의 이마와 안경에도 튀었다.

국민의당 안철수 전 대표는 지난 2014년 광주서, 민주당 이낙연 전 대표는 2021년 3월 춘천서 계란 공격을 받았다.

이 대표 역시 계란 봉변을 당할 뻔했던 사례가 있다. 이 대표가 2021년 12월13일 경북 성주를 방문한 자리서 한 고교생이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배치에 반대한다며 계란을 던졌지만 맞지는 않았다. 해당 고교생은 체포됐지만 이 후보가 처벌을 원치 않는다는 의사를 밝혀 하루 만에 풀려났다. 

김성태 당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2018년 5월 ‘드루킹 댓글조작’ 사건에 특검을 요구하며 서울 여의도 국회 본관 앞에서 단식농성하던 도중 한 남성에게 턱을 가격당해 병원으로 후송됐다. 가해자 김모씨는 김 원내대표에게 악수를 청하는 척하다가 갑자기 폭행하며 “김경수 의원은 무죄”라고 외쳤다.

당시 자유한국당 의원들은 배후 의혹을 제기하며 릴레이 동조 단식에 나섰으나 경찰 조사 결과 김씨의 단독 범행이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원희룡 전 제주도지사도 제주도 제2공항 건설 문제 토론회 도중에 지역 주민에게 얼굴과 팔 등을 폭행당하기도 했다.

부산 공개 일정 중 칼에 찔려
극단적 정치 양극화 우려 심화

민주화 이전 군사정권 시절에는 정적을 노린 계획적 테러도 이뤄졌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신민당 원내총무로서 박정희 대통령의 3선 개헌 반대 투쟁을 주도하던 1969년 6월20일 상도동 자택 인근서 질산(초산) 테러를 당했다. 괴한들이 뿌린 질산이 자동차 창문에 던져져 차창이 녹아내렸으나, 김 전 대통령은 크게 다치지 않았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유신 반대 운동을 벌이던 1973년 8월8일 일본 도쿄의 한 호텔서 중앙정보부 요원들에 의해 납치됐다. 김 전 대통령은 동해상으로 끌려가 살해당할 뻔했다가 5일 만에 극적으로 풀려났다.

이 같은 정치테러로 정치권 안팎에서는 정치 양극화를 우려하고 있다. 양극단의 지지층이 유튜브 등을 중심으로 증오를 부추기고 가짜 뉴스를 양산하며 여론몰이에 나서는 양상이 위험 수위를 넘나드는 탓이다.

이 대표 피습 당일에는 일부 극우 유튜브 채널 등에선 피습사건이 이 대표 쪽의 ‘자작극’이라는 주장을 폈다. ‘가짜 칼’ ‘가짜 피’라는 가짜 뉴스도 퍼져나갔다. 

민주당 온라인 당원 게시판 ‘블루웨이브’와 이 대표 팬카페 ‘재명이네 마을’ 등에는 “쌍특검법(김건희 여사 특검법, 대장동 50억 클럽 특검법) 거부권 행사에 부정적인 여론을 덮으려는 것” “피습의 배후는 윤석열” 등의 주장이 올라왔다. 

이를 두고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장은 “정치 양극화가 심화하면서 팬덤정치가 기승을 부리고, 팬덤정치가 양극단으로 치닫다 보니 혐오가 증오정치로 악순환하면서 ‘정치테러’가 발생했다”고 말했다. 

이준한 인천대 교수(정치외교학)는 “정치 지도자들이 서로 남의 얘기를 듣지 않고 자기주장만 하는 상황서, 정치 시스템에 대한 불신이 작동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극단적으로 표현해야 자기 얘기를 들어준다고 생각한 거 아니겠느냐”고 꼬집었다.

혐오 정치 
불씨 키워

여야는 일제히 ‘반성문’을 내놨다.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이날 비상대책위원회의서 “(이 대표)피습사건은 대의민주주의 전체에 불행한 오점으로 기록될 것”이라며 “여야 모두 독버섯처럼 자라난 증오정치가 국민께 악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인정하고, 머리를 맞대 정치문화를 혁신할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주문했다.

고민정 민주당 최고위원은 최고위원회의서 “정치혐오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정치인들의 선을 넘나드는 막말이 지지자는 물론 일반 시민을 자극하며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이들에 대한 혐오로 번졌다”고 짚었다.

<kcj5121@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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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구성원의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된 수장이 반년 만에 끌려 내려왔다. 막말에 가까운 강한 발언과 제멋대로인 행보가 탄핵을 불렀다. 강성 수장이 물러나면서 변화를 기대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대화의 문이 열릴 것인가, 더 높은 벽이 쌓일 것인가.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 전 회장이 3년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탄핵당했다. 지난 5월 취임 이후 6개월 만으로 의협 역사상 2번째, 최단기간 내 불명예 퇴진한 회장이 됐다. 첫 번째는 2014년 4월 임기 1년여를 앞두고 탄핵당한 노환규 전 회장이다. 두 번째 최단기간 의협은 지난 10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서 임시대의원총회를 열고 임 전 회장의 불신임안을 처리했다. 참석 의원 224명 가운데 170명(75.9%)이 찬성했다. 반대는 50명, 기권 4명이다. 전체 대의원 249명 가운데 224명(91.1%)이 표결에 참여했다. 의협 정관에 따르면, 회장 불신임안은 제적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출석하고, 출석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면 가결된다. 지난 3월 임 전 회장은 선거서 유효 투표수 3만3084표 중 2만1646표를 받아 당선됐다. 65.43%의 압도적인 지지다. 의협 회장 선거는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발표로 의정 갈등 수위가 높아지고 있을 무렵에 치러졌다. 전공의가 병원을 떠났고 정부가 ‘2000명’을 강조하던 시기였다. 의협 회원들은 강성 중의 강성으로 분류되는 임 전 회장에게 힘을 실었다. 임 전 회장의 어깨에 너무 힘이 들어갔던 것일까? 임 전 회장의 언행은 사사건건 도마 위에 올랐다. SNS에 올린 글, 공식 석상서 했던 발언 등이 막말 논란으로 번졌고, 단식투쟁 등의 행보는 ‘쇼’라는 비판을 받았다. 무엇보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이하 대전협) 비대위원장과 갈등을 빚으면서 의료계 내부 분열을 조장한다는 지적이 뼈아팠다. 임 전 회장이 8개월 동안 보여준 모습은 고스란히 탄핵 사유가 됐다. 의협 회원 사이에서는 임 전 회장이 SNS로 막말과 실언을 해 의사단체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또 ‘임 회장이 전공의 지원금을 빼돌렸다’는 허위 비방 글을 올린 시도의사회 임원에게 고소 취하 대가로 1억원을 요구한 사실이 녹취록을 통해 알려져 논란이 불거졌다. 특정 인물에 대한 수위 높은 비판은 여론의 역풍을 불렀다. 장상윤 대통령실 사회수석을 겨냥해 “정신분열증 환자 같은 개소리”라고 비난하는 글을 올렸다가 환자를 비하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임현택, 6개월 만에 탄핵당해 막말 논란·의대 증원 못 막아 또 2021년 한 의사가 80대 환자에게 ‘맥페란’ 주사제를 투여한 뒤 부작용이 나타나 기소된 재판에 대해서도 도 넘는 발언을 쏟아냈다. 이른바 ‘맥페란 재판’ 항소심서 판사가 1심의 금고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해당 의사의 항소를 기각하자 “이 여자 제정신입니까?”라는 글을 SNS에 올린 것이다. 임 전 회장의 발언에 법원은 이례적으로 “재판장의 인격에 대한 심각한 모욕일 뿐 아니라 국민의 신뢰를 크게 훼손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행동”이라고 공개적으로 유감을 표명했다. 의대 정원 증원 집행정지와 관련해 기각·각하 결정을 내린 재판장이 ‘회유’받았을 것이라는 주장으로도 입길에 올랐다. 서울고등법원 재판부가 결정을 내린 다음 날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재판장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지난 정권에서는 고법 판사들이 차후 승진으로 법원장으로 갈 수 있는 그런 길이 있었는데 제도가 바뀐 다음에는 그런 통로가 막혀서 이분이 아마 어느 정도 대법관에 대한 회유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있다” 말했다. 서울고법은 법원 명의로 입장문을 내고 “해당 단체장의 아무런 객관적 근거가 없는 추측성 발언은 재판장의 명예와 인격에 대한 심대한 모욕”이라면서 “사법부 독립에 관한 국민의 신뢰를 현저히 침해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언사다.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정부의 2025학년도 의대 증원을 막지 못한 점, 간호법 제정을 저지하지 못한 점이 탄핵 사유로 꼽혔다. 임 전 회장은 총회를 앞두고 의사 회원들에게 사과하고 페이스북 계정을 삭제하는 등 재신임을 호소했지만 반전은 없었다. 회장을 탄핵한 의협은 비대위원회 체제로 전환하고 지난 13일 새로운 회장 선거 전까지 단체를 이끌 비대위원장을 뽑았다. 그 결과 박형욱 대한의학회 부회장이 1차 투표서 총 유효 투표수 233표 중 123표(52.8%)를 얻어 과반으로 당선이 확정됐다. 임기는 내년 1월 차기 회장이 선출될 때까지다. 뒤늦게 호소했지만…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정부는 의료 파탄이란 시한폭탄을 장착해놨다”며 “정말 대화를 원한다면 정부는 먼저 시한폭탄을 멈춰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대화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대위원들의 합의에 기초해 입장과 행동을 결정할 것”이라며 “비대위 운영서 소외돼왔던 전공의들과 의대생들의 견해가 충분히 반영될 수 있게 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임 전 회장이 물러나고 새로운 비대위원장이 등장하면서 의협의 투쟁 방향에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커졌다. 일각에서는 의협의 이번 행보를 의정 갈등의 중요한 변곡점으로 보고 있다. 강성 회장을 필두로 정부와 강하게 대립했던 이전 모습서 벗어나 대화에 참여할 것이라는 의견과 이전보다 더 수위 높은 대정부 투쟁이 예상된다는 의견으로 갈리는 중이다. 후자의 배경에는 대전협이 있다. 앞서 박단 비대위원장 등 전공의 70여명은 전날 의협 대의원들에게 “비대위원장으로 박형욱 교수를 추천한다”는 메시지를 보내 공개 지지 의사를 드러냈다. 대의원회서도 박단 비대위원장의 공개 지지에 대해 경고하는 등 잡음이 일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대전협의 지지를 등에 업은 박형욱 비대위원장이 당선되면서 전공의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의협과 대전협의 공조가 본격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양측의 교류가 정부와의 대화로까지 이어질 수 있느냐는 점이다.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당선 소감부터 정부의 태도 변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또 윤석열 대통령의 변화도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의정 갈등서 줄곧 선봉에 선 전공의들은 ‘의대 정원 증원 백지화’라는 요구사항서 앞으로도 뒤로도 움직인 적이 없다. 전공의의 행보는 의대생, 의대 교수 등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영향력 커진 전공의 단체 의료계가 전공의 중심으로 굴러가고 있는 셈이다. 실제 대전협은 지난 11일 출범했던 여야의정협의체(이하 협의체)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협의체는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불참하고 의료계에서는 학술 단체인 대한의학회와 의대 학장 모임인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만 참석하는 등 ‘반쪽 출범’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협의체의 운영 기한은 올해 말까지로, 다음 달 22~23일 전에 의미 있는 결과를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태도다. 하지만 박단 비대위원장은 협의체에 대해 ‘무의미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협의체가 첫발을 뗀 11일 SNS에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전공의와 의대생, 당사자 없이 대화나 하겠다는 한가한 소리를 하고 있다”며 “한 대표는 2025년 의대 모집 정지와 업무개시명령 폐지에 대한 입장부터 명확히 밝히시길 바란다”고 일갈했다. 이어 “눈치만 보며 뭐라도 하는 척만 하겠다면 한동훈의 ‘여야의정 협의체’ 역시 임현택 전 의협 회장의 ‘올바른 의료를 위한 특별위원회(올특위)’와 결국 같은 결말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올특위는 의료계의 입장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의협 주도로 구성한 범의료계 특별위원회다. 전공의와 의대생이 해당 위원회에 불참하면서 파행 운영되다 지난 7월 해체됐다. 정부는 협의체서 의료계가 제안한 내용에 대해 “진정성 있게 검토하겠다”는 견해를 밝혔다. 지난 11일 협의체서 의료계는 한국의학교육평가원 자율성 보장, 추가 합격 제한 등을 통한 2025학년도 의대 선발 인원 축소 등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윤순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지난 14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이하 중대본) 회의를 주재하면서 “마주 앉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만큼 활발한 대화와 소통을 통해 누적된 갈등을 해소하고 신뢰를 회복해 국민이 원하는 결과를 끌어낼 수 있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의협과 전공의 등 다른 의료계 단체의 참여를 호소했다. 박단 공개 지지 새 비대위원장 강경 투쟁이냐 VS 노선 변화냐 의료계 내부 상황은 크게 바뀌었지만 향후 상황은 여전히 ‘시계 제로(0)’ 상태다. 임 전 회장과 박단 비대위원장 간 갈등의 불씨도 여전히 살아있다.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공개적으로 요청하는 등 ‘(임 전 회장과)같이 갈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바 있다. 실제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요청하면서 “이해와 소통이 가능한 새로운 회장을 필두로 의협과 대전협 두 단체가 향후 상호 연대를 구축할 수 있길 기대한다”는 입장문까지 냈다. 임 전 회장의 탄핵안 가결 직후 박 비대위원장이 “결국 모든 길은 바른 길로”라는 내용의 SNS 글을 올리기도 했다. 문제는 임 전 회장이 박단 비대위원장을 상대로 반격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임 전 회장은 탄핵 사흘 만에 닫았던 페이스북 계정을 다시 열고 “박단과 그 뒤에서 박단을 배후 조종해 왔던 자들이 무슨 일을 해왔는지 전 의사 회원들에게 아주 상세히 밝히겠다”며 박단 비대위원장을 저격하는 글을 올렸다. 그러면서 “의협 대의원회 비대위원장과 의협 회장 선거가 더 이상 왜 필요한가”라면서 “박단이 의협 회장 겸 비대위원장을 맡아 모든 권한과 책임하에 의료 농단을 해결하면 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지해주셨던 모든 분에게 우선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이유가 어떻든 회장 취임 전부터 탄핵하겠다고 마음먹고 있던 자들에게 빌미를 주어 넘어간 것 자체가 제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또 의협의 근본적인 개혁의 첫걸음으로 의협 대의원회 폐지 등을 내용으로 하는 민법상의 사원총회를 개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원총회는 민법에 규정된 사단법인의 최고의사결정 기관이다. 의협 최고의결기구로 알려진 대의원총회보다 상위에 있고 정관의 규정으로 폐지할 수 없다. 사원총회는 이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경우나 총 사원 5분의 1 이상이 회의의 목적 사항을 제시해 청구하는 경우 소집될 수 있다. 반격 시작 내부 갈등? 올해 2월 시작된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10개월째로 접어들었다. 온갖 말이 오갔지만 되짚어보면 조금도 좁혀지지 않은 평행선 상황이 계속되는 모양새다. 정부와 의료계의 대치 상황이 길어질수록 ‘의료 붕괴’는 가시화되고 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정말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