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텝 꼬인 이낙연 플랜 B

새길은 좌측이냐 우측이냐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와 이낙연 전 총리가 마침내 다른 길을 걷게 됐다. 4·10 총선까지 100일도 남지 않은 시점에서다. 둘은 웃는 모습으로 악수하고 떠났지만 각자의 속내는 복잡할 수밖에 없다. 이 전 총리가 쏘아 올린 공이 어디를 향할지 주목된다.

연초부터 제1야당 대표가 피습당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지난 2일, 부산을 방문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에게 지지자로 보이는 한 남성이 “사인을 해달라”며 접근했고 미리 준비한 흉기로 이 대표의 목을 찔렀다. 사상 초유의 사태에 여야 모두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신년 초 예정됐던 정치권 일정이 ‘올스톱’ 상태에 들어갔다.

드디어…
헤어질 결심

피습사건이 발생하기 사흘 전 이 대표와 이낙연 전 총리는 두 번째 ‘명낙회동’을 가졌다. 둘의 만남은 지난달 30일 서울 종로구의 한 음식점서 진행됐다. 다과 형식으로 진행된 회동서 두 사람은 배석자 없이 약 1시간 정도 대화를 나눴다. 이 대표와 이 전 총리의 단독 만남은 지난해 7월 이후 약 5개월여 만이다.

첫 번째 명낙회동과 마찬가지로 우여곡절 끝에 자리가 이뤄졌지만 서로의 이견만 확인했을 뿐 성과는 없었다. 이 대표는 사퇴 및 통합 비상대책위원회 출범 요청을 거절했고, 이를 확인한 이 전 대표가 탈당 의사를 굳힌 것으로 보인다.

회동 후 이 대표는 기자들과 만나 “상황이 매우 엄중하기 때문에 우리 국민들과 당원들 눈높이에 맞춰 단합을 유지하고 총선을 반드시 이겨야 된다는 말씀을 드렸다”며 “당이 부족함이 많다고 생각될 수 있고 실제 기대치에 부족한 점이 있겠지만, 당을 나가시는 것이 그 길은 아닐 것이라는 간곡한 말씀을 드렸다”고 밝혔다.


이 대표는 “어떤 경우에도 우리가 가능한 길을 찾아 단합을 이뤄내고 그 힘으로 우리 국민들이 절망적 상황을 이겨내야 되겠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며 이 전 총리를 향해 “다시 한번 깊이 재고해달라”고 덧붙인 뒤 자리를 떠났다.

곧바로 취재진 앞에 선 이 전 총리는 “윤석열정부의 형편없는 폭주에도 불구하고 민주당이 국민으로부터 대안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것은 단합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변화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오늘 그 변화의 의지를 이 대표로부터 확인하고 싶었으나 안타깝게도 확인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이어 “민주당을 지키는 건 중요하지만 더욱 중요한 건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이 구현하고자 했던 가치와 정신과 품격을 지키는 게 본질이라고 믿는다”며 민주주의 정신을 강조했다.

아울러 “오늘 민주당 변화 의지를 확인할 수 없었던 것이 매우 안타깝다”고 강조한 뒤 자리를 떴다.

지난 1일 회동을 통해 아무런 성과를 얻지 못한 이 전 총리는 행주산성서 진행한 신년 인사회서 “우리는 큰 싸움을 벌여야 한다”며 본격적으로 신당을 향한 의지를 드러냈다.

‘큰 싸움’ 구상하지만…딜레마
신당 가속화에 불붙은 내전

그는 “그 싸움은 정치를 이대로 둘 수 없다는 세력과 정치가 이대로 좋다는 세력의 한판 승부”라며 “국민께 새로운 선택지를 드리겠다는 세력과 선택의 여지를 봉쇄해 기득권을 누리겠다는 세력의 한판 승부”라고 주장했다.


이 대표가 싸움의 대상으로 삼은 세력은 이 대표와 친명(친 이재명)계를 비롯한 그의 강성 지지층을 뜻하는 ‘개딸(개혁의딸)’인 것으로 풀이된다. 이처럼 신년부터 광폭 행보를 보였던 만큼 정치권에서는 빠르면 1월 첫째 주에 이 전 총리의 거취가 정해질 것으로 전망했다.

하지만 이로부터 하루 뒤 이 대표가 피습당하면서 이 전 총리의 신당 창당 시기가 예상보다 늦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민주당 안팎이 뒤숭숭한 상황서 신당 창당을 강행할 경우 역풍을 맞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면서 주춤하는 분위기다.

신당을 준비하던 이 전 총리 측은 모든 상황을 고려해 창당을 다소 늦추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이 전 총리 측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상식적으로 지금 상황서 신당 선언 같은 행동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며 “모든 일정을 잠정 보류한 상태”라고 말했다.

구체적인 일정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이 대표의 회복 상황에 따라 조율될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신당 창당에 강한 의지를 드러넀던 만큼 그 시기를 늦출 뿐, 계획을 무르지 않을 것이라는 게 정치권의 중론이다.

이 대표 피습사건에도 계획을 철회하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자 당 안팎에서는 이 전 총리를 향한 비판의 수위를 높였다. 특히 호남지역을 중심으로 신당 철회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커지면서 지지도에 타격을 입을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민주당 이병훈 광주시당위원장은 “이 전 총리의 신당 창당은 대단히 유감스럽고 국민의 뜻과 배치되는 시도”라고 비판했다. ‘5·18 정신’과 김대중 전 대통령의 ‘DJ 정신’ 핵심은 화해와 통합을 통해 민주주의를 지켜내는 것인데 뜻이 다르다는 이유로 당을 나가는 것은 민주주의 정신에 부합하지 않다는 해석이다.

예상 못한
돌발 변수

이 위원장은 “윤석열정권의 무도한 폭정을 막아내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 된 민주당”이라며 끝까지 통합 정신을 내세웠다.

전북지역 총선 예비후보도 이 전 총리의 계획에 반대하고 나섰다. 민주당 이춘석 익산갑 예비후보는 “‘이낙연 신당’은 대통령후보 경선의 불복”이라며 “민주당의 정신과 가치에는 ‘깨끗한 승복’도 있다는 것을 왜 깨닫지 못하느냐”고 힐난했다.

민주당 이덕춘 전주을 예비후보 역시 “이 전 총리의 탈당 후 신당행은 야권 분열의 길을 걸어가는 것으로 윤석열 검찰 독재로부터 고통받는 국민을 외면하는 것”이라며 “나라의 운명을 위태롭게 하는 ‘망국 열차’에 올라타는 것”이라고 소리 높였다.

이 전 총리의 신당을 반대하는 이유는 총선을 앞두고 윤석열정부에 맞서 민주당이 단일대오를 형성해야 한다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이는 이 전 총리에게 있어 창당의 명분이 부족하다는 비판으로 귀결되는 만큼 신당의 정체성과 자신의 체제를 확고히 하는 게 첫 번째 과제로 제시됐다 “윤석열도 싫고 이재명도 싫다”는 무도층이 “이낙연은 좋다”고 마음을 돌릴 확실한 명분이 필요하다는 게 정치권 관계자의 설명이다.

당에서 퇴출당한 경험이 있는 국민의힘 이준석 전 대표는 창당의 명분이 비교적 뚜렷한 편에 속한다. 이번 총선이 ‘정권 심판론’ 성격을 띠는 만큼 ‘반윤(반 윤석열)’ 세력은 무당층을 흡수할 수 있는 키워드이기도 하다.

반면 대선 패배 후 곧바로 미국으로 떠난 뒤 귀국한 이 전 총리는 이 대표를 때릴 명분도, 이유도 없다는 비판이 꾸준히 제기됐다. 현 정부에 반대하는 게 아닌 제1야당에 대항한다는 점에서 진보 성향이 비교적 옅은 지지자의 호응을 끌어낼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따라서 이 전 총리는 ‘민주당의 정통성’을 키워드로 창당에 나설 것으로 전망된다. 민주 계열에 있어 ‘정통성’은 큰 의미를 갖는 만큼 민주주의 정신을 기존 민주당서 ‘이낙연 신당’으로 옮기겠다는 해석도 뒤따른다.

정통성
쟁탈전

김대중 전 대통령을 따르던 정치세력들을 뜻하는 ‘동교동계’가 이 전 총리와 뜻을 함께한다는 점도 눈여겨볼 만하다. 민주당 고문이기도 한 이석현 전 부의장은 옛 동교동계 출신으로 6선 의원을 지낸 인물이다.


이 전 국회부의장은 YTN <신율의 뉴스 정면승부>서 “지금부터 민주당의 정통성은 이낙연 신당에게 있다고 이해해도 되겠느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그렇게 생각한다”고 답했다. 지금의 민주당이 ‘이재명 사당’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만큼 당의 정통성을 되찾고 국민에게 선택의 여지를 넓혀주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 전 부의장은 지난 12월29일, 기자회견을 열고 탈당 선언과 동시에 이 전 총리 신당 합류 의사를 밝혔다.

그는 “민주당이라는 배가 ‘대선 패배’라는 유빙에 부딪혔을 때 선장도 바꾸고 배도 정비했어야 한다. 선장이 파국으로 배를 몰아도 선원들은 배의 크기만 믿고 자기들만의 선상 파티를 즐기고 있다”며 “원칙에 귀 닫고 상식을 조리 돌림하다가는 결국 난파해 침몰할 것”이라고 이 대표 체제를 비판했다.

이어 “서울법대 동창이며 동지인 50년 친구 이 전 대표의 외로운 투쟁을 외면할 수 없다”며 “개인보다 나라 걱정의 충심뿐인 이낙연의 진정성을 저는 안다”고 설명했다.

신당에 관해서는 “민주 세력 최후의 안전판이자 제3의 선택지”라고 언급했다. 민주당을 가라앉은 여객선 ‘타이타닉’에 비유하며 “(신당은 현재 민주당이)난파하면 옮겨 탈 수 있는 구명보트 역할과 윤석열정권의 국정 난맥서 새로운 배를 찾는 합리적 다수의 국민을 위해 준비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대표도 체제도 민주당 정통성을 총선 승리의 돌파구로 여기는 모양새다.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을 참배한 이 대표는 “어느 때보다 크고 단단한 하나가 되겠다”며 당내 통합에 방점을 찍었다. 지난 2일에는 문재인 전 대통령을 예방할 계획이었으나 피습으로 인해 일정은 연기됐다.

때아닌 정통성 줄다리기에 정치권에서는 전직 대통령을 비롯한 각자의 인맥을 동원해 정통성을 부각시키는 전략이라고 해석했다. 정통성이 민주당 내 지표가 되면서 양측 모두 거물급 민주당 인사를 찾아가는 등 광폭 행보를 보일 거라는 전망도 나온다.

민주 세력 ‘안방마님’ 노린다
‘중도 빅텐트’ 어디까지 끌어안나?

이 전 총리는 ‘중도 빅텐트’를 구심점으로 삼았다. 그는 각종 인터뷰를 통해 국민의힘 이 전 대표를 비롯한 한국의희망 양향자 대표, 새로운선택 금태섭 대표, 정의당 류호정 의원까지 시각을 넓히고 있다. 제3지대와 협력 가능성은 모두 열어둔 셈이다.

하지만 신당에 합류하겠다고 나서는 현역 의원의 수가 적은 만큼 폭발적인 확장성은 기대하기 어렵다는 평이 나온다. 당내 비명(비 이재명)계 의원으로 구성된 ‘원칙과상식’ 모임조차 이 전 총리와 함께하겠다며 선뜻 나서지 않는 상황이다.

오히려 이들은 신당설에 연기가 오르던 초반부터 이 전 총리의 투쟁 방식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왔다.

모임을 이끄는 민주당 이원욱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이낙연 전 총리가 추구하는 신당의 가치가 무엇인지 모르겠다”며 “이재명 대표가 싫어서라고 보이는데 국민이 볼 때는 ‘또 하나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정당’이라는 느낌이 강하다”고 지적했다.

원칙과상식은 ‘공동행동’을 원칙으로 한다. 이 의원이 신당에 선을 그은 만큼 집단 탈당 후 이 전 총리와 합류할 가능성은 낮을 것으로 풀이된다. 이로써 현재 이 전 총리와 함께하는 사람은 이 전 부의장과 최성 전 고양시장이다.

최 전 시장은 민주당 총선 예비후보 후보자 검증서 부적격 판정을 받았다. 이후 이의 신청을 제기했으나 최종 기각됐다. 그가 출마를 준비해오던 곳은 친명계인 민주당 한준호 의원의 지역구인 경기 고양을이다.

최 전 시장은 “이재명의 민주당에 의한 북한 수령체계식 불법·부당한 공천 학살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친명 일색으로 당을 유지하기 위한 ‘공천 학살’이 이 전 총리 신당에 합류하는 계기가 됐다는 설명이다. 이처럼 신당이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하는 시기는 공천 작업이 한창인 1월 중순서 2월 중으로 예상된다.

다만 예상했던 시기보다 창당 계획이 늦춰진 만큼 새로운 인물을 영입하는 데 있어 차질은 불가피하다. 만일 공천 작업이 마무리되는 2월 말이 되어서야 인사 영입을 시도할 경우 ‘이삭줍기’라는 비판이 제기될 수도 있다.

하지만 최 전 시장처럼 ‘공천 학살’이라는 여론이 조기에 나온다면 이 대표 체제를 비판하는 동시에 사람을 끌어들일 명분이 생긴다. 비명계 의원이 대거 컷오프되는 상황이 온다면 단순한 ‘이삭’이 아닌 이 대표와 맞서기 위한 ‘아군’이 제발로 들어올 것이란 관측도 제기된다.

당내 인사들은 이 전 총리의 신당이 ‘찻잔 속 미풍’에 그칠 것이란 회의적인 시선을 보내면서도 긴장감을 유지한 채 견제하는 분위기다. 이 대표의 피습사건을 명분삼아 이참에 신당 창당을 삼가야 한다는 여론도 형성됐다.

거대 세력
폭풍전야

당내 중진을 비롯한 친명계 의원 역시 “신당에 합류할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면서도 민주당에 끼칠 파급력에 관해서는 말을 아끼고 있다. 거물급 인사가 구축하는 새로운 세력은 그 자체로 영향을 갖기 때문이다.

만류하는 세력 속에서도 새로운 길을 걷겠다는 이 전 총리의 뚝심은 꺾이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지난 7일 이 전 대표는 본격적으로 탈당 계획을 시사했다. 그는 “동지들과 상의해야 할 문제가 있지만 이번 주 후반에는 인사를 드리고 용서를 구해야 하지 않겠냐”며 다시 한번 신당에 대한 의지를 굳혔다. 그의 선택이 미풍일지 여의도에 휘몰아칠 태풍일지 그 귀추가 주목된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민주당 조기 선대위?

총선을 앞두고 이재명 대표의 ‘조기 복귀’가 어렵다는 판단이 나오면서 당에 비상이 걸렸다.

수술을 집도한 의료진은 이 대표가 민감한 목 부위에 자상을 입은 만큼 추가 손상 등 경과를 지켜봐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에 일각에서는 조기 통합 선거대책위원회(이하 선대위)를 띄워 당무 공백을 메꾸고 총선을 준비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국민의힘 한동훈 비대위원장이 전국을 돌며 본격적인 ‘총선 모드’에 돌입한 반면 이 대표의 부재가 길어질수록 선거에 불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선대위 전환이 당론으로 결정된다면 비명계가 주장해오던 ‘비대위 전환’ 요구로 번질 수 있는 만큼 당내서도 상황을 지켜보자는 분위기다.

당무에 복귀한 이 대표가 곧바로 업무를 수행할 수 있을지도 우려되는 지점 중 하나다. <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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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광로 내각’ 눈에 띄는 이재명 사람들

‘용광로 내각’ 눈에 띄는 이재명 사람들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11개 부처 장관 후보자와 국무조정실장 인선을 발표했다. 취임 후 첫 개각인 만큼 이 대통령의 국정 철학과 정부의 방향성을 가늠할 수 있다. 초대 장관인 데다가 이력도, 배경도 독특한 이들이 합류하면서 주목도는 배로 높아졌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부)에는 배경훈 LG AI연구원장이, 외교부에는 조현 전 1차관이 후보자로 지명됐다. 이 밖에도 ▲통일부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정동영 의원 ▲국방부 민주당 안규백 의원 ▲국가보훈부 한나라당 권오을 전 의원 ▲환경부 민주당 김성환 의원 ▲고용노동부(이하 노동부) 김영훈 전 민주노동조합총연맹(이하 민주노총) 위원장 ▲해양수산부 민주당 전재수 의원 ▲여성가족부 민주당 강선우 의원 ▲중소벤처기업부(이하 중기부) 한성숙 네이버 대표이사 ▲국무조정실장 윤창렬 LG글로벌 전략개발원장 등이 후보자로 임명됐다. 가리지 않고 사람만 보고 큰 폭의 내각 변화가 일어난 가운데 유독 주목을 받는 인물이 있다. 이력이 독특하거나 발탁 배경을 놓고 갑론을박이 이어지는 등 청문회 과정 역시 순탄치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우선 이슈는 국방부 장관으로 내정된 안규백 후보자다. 안 후보자는 5선 국회의원으로 약 20년 동안 국회 국방위원을 지내며 의정 활동 대부분을 국방 분야에서 보냈다. 내란 사태 당시 ‘윤석열정부의 비상계엄 선포를 통한 내란 혐의 진상규명 국정조사 특별위원회(내란 특위)’ 위원장 등을 맡기도 했다. 강훈식 대통령 비서실장은 “안 후보자는 국회 국방위 간사·위원장 등 5선 국회의원 이력 대부분이 국방위 활동이기에 군에 대한 이해도가 풍부하다”며 “64년 만에 문민 국방 장관으로 계엄에 동원된 군의 변화를 책임지고 이끌어 나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안 후보자는 지난해 12월 <일요시사>와의 인터뷰에서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군은 문민통제가 돼야 한다. 비상계엄 당시 문민통제가 공고했다면 대통령이 내란을 지시하더라도 시작 단계부터 군이 반대해 따르지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안 후보자가 청문회를 통해 최종 임명된다면 64년 만에 민간인 출신 국방부 장관이 탄생한다. 첫 민주노총 출신 장관이 탄생할지에도 이목이 쏠린다. 김영훈 후보자는 현직 철도 기관사로, 1992년 철도청(현 코레일)에 입사해 올해로 34년째 근무 중이다. 장관 후보로 지명되기 전날까지 김 후보자는 경부선 부산-서울 구간에서 새마을호 열차를 운행했다. 국민의힘은 김 후보자가 민주노총 출신인 점을 거론하며 이번 인선이 일종의 ‘청구서’라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송원석 원내대표는 “내각이 아니라 민주당 선대위 같다”며 “능력이나 전문성보다 논공행상이 우선된 거 아닌가 하는 국민적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동안 진행된 노동 개혁 성과는 후퇴하고, 노란봉투법(노조법 2·3조 개정안)과 중대재해처벌법 등 주요 현안에 대한 새 정부의 반 기업적 스탠스를 명확히 못 박아두는 인사 아닌지 우려된다. 민주노총의 정치적 청구서가 본격적으로 날아오는 신호탄으로 보는 시각이 있다”고 밝혔다. 김 후보자가 노동부 장관으로 임명된다면 지난 3년간 거부권에 가로 막혔던 노란봉투법을 비롯한, 주 4.5일 근무제 등이 거대 여당을 등에 업은 채 졸속으로 처리될 것이란 비판이 나온다. 민간 국방 장관, 기관사 노동 장관 파격 인사에 국민들 관심도 ‘쑥’ ↑ 이를 의식한 듯 김 후보자는 쟁점 법안에 대해 “반드시 가야 할 길”이라면서도 “명분만으로 밀어붙이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이어 “주 4.5일 근무제가 어려운 기업이 있다면 무엇이 어렵게 하는지 정부가 잘 살펴보고 공동의 길을 모색해보겠다”고 설명했다. 교수 출신 인사가 없다는 점도 눈여겨볼 만하다. 이번 개각 명단을 보면 대부분 실무형 인사 위주로 곧바로 실전에 투입할 수 있는 실용성 있는 인재를 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기업인이 과기부·중기부 장관 후보자 등으로 내각에 포함된 것 역시 궤를 같이한다. 강 대변인은 “배경훈 과기부 장관 후보자는 AI 학자이자 기업가로서 초거대 AI 상용화로 은탑산업훈장을 받은 인물”이라며 “하정우 AI미래기획수석과 함께 AI 국가경쟁력을 높일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앞서 이 대통령은 네이버 클라우드 AI 랩 소장, AI 미래포럼 공동의장 등을 지낸 하정우 수석을 대통령실 AI 미래기획 수석으로 지목했다. 이재명정부는 “100조를 투자해 AI 강국을 만들겠다”고 선언한 만큼 하 수석과 배 후보자가 손발을 맞춰 글로벌 시장의 주도권을 잡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배 후보자는 서울 종로구 광화문우체국에 마련된 인사청문회 준비단 사무실로 출근하며 취재진과 만나 “이 대통령의 1호 공약인 AI 3대 강국이 되기 위해 3강의 정의부터 해봤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그는 “(현재로선) 우리가 3위를 한다고 해도 미·중과 너무 차이가 크다. 1·2위에 근접한 3위가 돼야 하며 사실 시간이 많이 남아 있지 않다”며 “AI 3강 목표를 반드시 2∼3년 이내에 달성해야겠다는 사명감이 있고, 소속됐던 기업에서 좋은 사례를 만들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중기부 장관 후보자로는 한성숙 네이버 고문이 내정됐다. 한 후보자는 지난 2017년 네이버 최초로 여성 최고경영자(CEO)에 선임됐으며 같은 해 한국인터넷기업협회 제13대 회장을 맡은 인물이다. 역대 중기부 장관을 살펴보면 통상 관료나 정치인이 낙점된 만큼 민간 기업 출신 후보자라는 점에서 신선하다는 평이 나온다. 중소기업계는 한 후보자를 환영하는 분위기다. 일꾼도 실용주의 중소기업중앙회는 논평을 내고 “중소기업계는 이재명정부 초대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으로 한성숙 후보자가 지명된 것을 환영한다”며 “한 후보자는 네이버 등 IT산업에 오랜 경험을 가진 기업인 출신으로 산업 대전환기에 중소기업·소상공인의 AI·디지털화를 촉진하는 등 디지털 생태계를 구축할 적임자”라고 평가했다. 이처럼 정부와 중소기업이 한 후보자에게 기대를 걸고 있지만 과거 국정감사 이력이 발목을 잡을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의 고용노동부 등 국정감사 ‘단골’로 불릴 만큼 여러 차례 소환됐기 때문이다. 특히 지난 2021년 네이버 직장 내 괴롭힘으로 한 직원이 극단적 선택을 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의원들의 질책이 잇따랐다. 민주당 노웅래 의원이 당시 네이버 대표였던 한 후보자에게 “최인혁 (네이버파이낸셜) 대표를 징계했느냐”고 묻자 “네이버에서 본인이 사임을 했다”고 짧게 답했다. 노 의원이 “징계를 했느냐”고 재차 물었지만 한 후보자는 “징계가 있었다”면서도 정확히 어떤 처분이 내려졌는지 답하지 않았다. 이를 두고 노동계 등에서는 “전형적인 꼬리 자르기”라는 비판이 나왔다. 이 밖에도 뉴스 편집 조작과 댓글 여론 조작 방조 의혹 등으로 2017년부터 4년 연속 국감 증인으로 소환됐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박상웅 의원은 한 후보자 지명과 관련해 “거대 포털과의 전략적 야합이라는 합리적 의심이 든다”고 주장했다. 박 의원은 “한성숙 후보자 지명은 과거 민주당의 규제를 통한 견제가 아니라 포털과의 인사 유착을 통해 정권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시도로 비쳐질 수 있다”며 “플랫폼 권력과 정치 권력의 야합이라는 심각한 의심을 지울 수가 없다는 것이 국민적 시각”이라고 비판했다. 아울러 2021년 국감을 언급하며 “직원들이 고통을 호소하고 극단적 선택까지 했던 괴롭힘의 현장을 방치한 책임자가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를 지원해야 할 부처의 수장으로 지명된 것은 납득할 수 없는 결정”이라며 “국민 신뢰를 저버린 매우 전략적이고 노골적인 이번 인사는 즉각 철회돼야 한다”고 거듭 지적했다. 성급했나? 잡힌 발목 실용과 통합을 위한 지명도 이뤄졌지만 여야 모두에게 질책을 받으면서 오히려 자충수라는 비판이 나온다. 윤석열정부 출신인 송미령 농식품부의 장관 유임과 한나라당 권오을 전 의원이 대표적인 케이스다.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은 송 장관이 유임된 배경에 대해선 “첫 국무회의에서 대부분 사의를 표한 후라 소극적이고 구체적이지 않은 답변이 많았던 반면, 송 장관은 상당히 구체적으로 대통령 질문에 답하고 국정 방향에 대해 미리 준비하고 적극적으로 반영할 수 있는 여러 안을 가지고 왔던 것으로 기억한다”며 “일할 수 있는, 준비된 현직 국무위원이라고 판단한 것 아닌가 하는 짐작을 해본다”고 설명했다. 강 대변인은 “이 대통령은 지난 24일 유임을 발표한 뒤 첫 국무회의에서 송 장관에게 ‘사회적 충돌, 혹은 이해관계에 있어서 다른 의견이 있다면 유임된 장관으로서 적극적으로 들어보고 갈등을 조정하는 데 직접 역할을 하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고 제안했다”고 부연했다. 아울러 “(송 장관이) 그에 대해서 수긍한 것으로 본다”며 “유임 결정까지는 대통령실에서 한 것이지만, 이후에 갈등 조정 기능도 내각에 임명 혹은 내정된 분들의 중요한 역할이라고 본다”고 덧붙였다. 송 장관의 유임을 두고 민주당, 특히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이하 농해수위) 소속 의원을 중심으로 반대의 목소리가 나오는 분위기다. 지난 3년 동안 양곡관리법 등을 반대하고 이를 ‘농망법’이라고 부르는 사람을 기용하는 건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다는 게 주된 이유다.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과 진보당도 목소리를 높였다. 혁신당 박웅두 농어민위원장은 논평을 통해 “이재명정부의 ‘국민통합정부’ 의지를 높이 평가한다”면서도 “남태령 응원봉의 주역이자 이재명 대통령 당선에 뜻을 함께했던 농민들은 송 장관의 유임에 당혹감과 분노를 감추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송 장관은 윤석열 농정에 대해 공식적으로 참회와 반성, 사과와 유감의 발언도 없었고 공개적인 평가의 과정과 책임의 경중을 논의한 바가 없는데 누가 송미령을 장관으로 추천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며 “식량주권에 대한 손톱만큼의 애정이 있다면 유임 결정을 즉각 철회하라”고 밝혔다. 농해수위 소속인 진보당 전종덕 의원 역시 “농망 장관”이라며 지명 철회를 촉구하는 1인 시위에 나섰다. 통합용 지명? 여야 모두 아우성 ‘윤의 사람’ 그대로 품은 이유는? 일부 야권에서도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송 장관은 민주당이 추진한 양곡법과 속칭 농민3법을 농업의 미래를 망치는 농망법이라며 대통령 거부권 행사까지 건의했다”며 “그런데 이재명정부의 농림부 장관으로 지명되니 ‘새정부 철학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추진하겠다’고 답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장관을 오래하려면 송미령 같이’라는 자조가 공직사회 전반에 퍼지지 않겠느냐”며 “금번 인사를 보니 이 대통령이 말하는 실용주의의 정체를 알겠다. 그건 실용의 이름으로 포장된 기회주의이자 국익으로 덧발라진 밥그릇 챙기기”라고 꼬집었다. 논란에 대해 한 민주당 관계자도 “나름 탕평 인사로 가장 탈이 안 날 것 같은 인물을 유임시킨 것 같은데 아마 이 대통령도 뒷말은 예상했을 것”이라며 “내란 종식을 내걸고 정권을 잡은 만큼 모순된 면이 있다. 그날 밤(12월3일) 용산에 모인 국무위원을 내란 동조자, 내란 방관자라고 하더니 ‘일을 잘하니 함께 가겠다’라는 건 국민에게 조금 더 설명이 필요한 부분”이라고 말했다. 권 전 의원이 보훈부 장관으로 지목된 것 역시 탕평 인사로 분류된다는 해석이다. 권 후보자는 지난 4월 6·3 조기 대선 당시 이재명 후보 캠프에 합류에 눈길을 끌었다. 친유승민계로 분류되는 권 후보자는 한나라당과 새누리당을 거쳐 바른정당에서 최고위원을 지냈다. 보수 인사였던 그는 이재명 캠프에 합류하면서 “대구와 경북의 정치적 발언권을 보장하기 위해 참여하게 됐다”며 “민주당의 중도 보수 지향에 대해 힘을 보탤 것”이라고 설명했다. 강훈식 대변인은 권 후보자가 보훈부 장관으로 지명된 것에 대해 “경북 안동에서 3선 의원을 역임했다”면서 “지역과 이념을 넘어 특별한 희생에 특별한 보상이라는 보훈 의미를 살리고 국민통합을 이끌 것으로 기대한다”고 설명했다. 권 후보자는 보수와의 소통에 힘을 쏟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그는 국민통합을 강조하며 “소통의 장을 자주 마련하면 광화문 태극기 부대와 촛불 부대가 서로 소통이 되고 이해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대통령께서 국민통합이라면 소통의 장을 마련해 각자가 논리의 주장을 공개적으로 이야기해보고 들어봐서 반영하라고 하셨다”며 “그래도 자기 진영 논리에 충실할 수밖에 없다면, 이해할 수 있는 소통의 장을 자주 마련하도록 하겠다”고 설명했다. 유임된 송 장관을 제외한 10개 부처에 대한 개각이 이뤄지면서 국회 역시 각 상임위가 바쁘게 돌아갈 예정이다. 시기상 장관 후보자 청문회는 7월 말에 진행될 가능성이 크다. 김민석 국무총리 후보자 청문회를 겪은 국민의힘은 남은 장관 후보자들에 대해서도 ‘송곳 검증’을 하겠다며 벼르고 있다. 격돌의 7월 관전 포인트 다만 한 야권 관계자는 “김민석 후보자의 청문회가 이틀 동안 진행됐지만 총리로서의 자격 검증은 뒷전이고 돈 문제만 물고 늘어졌다”며 “물론 총리 후보자의 부도덕한 면을 부각시킬 수 있겠지만 총리 후보자 청문회인 만큼 더 다양한 각도에서 질문을 해야 했다. 곧 있으면 다른 장관에 대한 청문회도 진행될 텐데 지금처럼 (청문회를) 진행해서는 국민의힘도 좋은 소리를 듣지 못할 것”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