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세관 수사 애먹는 경찰, 왜?

두 달간 제자리…답답한 꼬리잡기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경찰의 인천공항세관 수사가 시작된 지 두 달이 지났다. 일부 세관 직원이 동남아 마약상들의 마약밀수를 도왔다는 의혹이다. 연루된 일부 직원은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경찰이 최근까지 압수수색을 감행하는 등 수사 강도가 높은 것과는 상반된 모양새다. 직접 증거를 확보하지 못한 까닭일까? 경찰 수사에 진전이 보이지 않는다는 지적이 제기되기 시작했다.

인천공항세관(이하 세관) 직원들의 마약밀수 조력 의혹 수사가 잠잠해졌다. ‘상부상조’ 사이인 경찰과 세관 간 대치는 이례적이다. 뜨거운 감자였던 사건이 조용해진 건 경찰이 수사에 어려움을 겪고 있기 때문으로 파악됐다.

세관 직원들의 마약밀수 조력 의혹 수사는 두 달 전부터 시작됐다. 별건의 마약 사건으로 실형을 선고받은 말레이시아 출신 국제 범죄조직원 A씨로부터 구체적 진술을 얻어낸 게 컸다. 영등포경찰서(이하 영등포서)는 A씨를 조사하면서 “지난 1월 입국 당시 세관 직원 4명의 도움을 받았다”는 증언를 확보했다. 체포된 다른 조직원들도 A씨의 진술과 유사했다.

마약상 밀수
도운 의혹

A씨는 한국과 중국, 말레이시아서 주로 활동했다. 지난 1월27일 인천공항을 통해 필로폰 24kg을 몸에 붙여 들어온 운반책 6명 중 1명이다. 한 달 뒤에는 다른 조직원이 김해공항을 통해 6만명이 동시에 투약할 수 있는 필로폰 약 4kg을 밀반입하다 적발돼 1심서 징역 8년을 선고받았다.

세관 연루 의혹을 수사하던 경찰은 다른 조직원을 통해 A씨의 신원을 확보하고 현장검증에도 참여시켰다.


A씨는 “밀반입 루트와 계획을 세관 직원들이 알고 있었고 운반책들의 얼굴을 알았기 때문에 통과됐던 것”이라고 진술했다. 실제 운반책들이 입국할 때 무리 없이 심사를 통과했고 세관 직원들이 먼저 알아보고 안내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아프리카돼지열병 확산 때문에)농림축산검역대를 통과해야 하는데 세관 구역으로 몰래 통과할 수 있게 빼줬다”고 증언했다.

부산지검은 필로폰 14㎏ 상당을 김해공항을 통해 밀반입을 시도한 혐의로 말레이시아 국적 20대 여성 B씨를 구속 기소하기도 했다. B씨는 지난 5월29일 말레이시아서 푸딩파우더 포장재 안에 필로폰 약 14㎏을 숨겨 김해공항을 통해 밀반입을 시도했다.

검찰이 압수한 필로폰 약 14㎏(시가 약 463억원)은 김해공항을 통해 밀반입을 시도한 역대 최대 물량으로, 46만 명이 동시에 투약할 수 있는 양이다.

검찰은 B씨에게 징역 20년을 구형했고, 부산지법 형사5부(부장판사 장기석)는 A씨에게 징역 8년을 선고했다.

부산지검 관계자는 “밀반입을 시도한 필로폰의 양이 상당하고, 마약 밀반입은 공중보건과 사회질서에 미치는 악영향이 매우 크다”며 “더욱 중한 선고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해 양형부당을 이유로 항소했다”고 설명했다.

영등포서는 초기 수사 단계서 성과를 거뒀다. A씨의 진술대로 한 부서의 실무급 직원들이던 세관 공무원들의 혐의가 사실로 밝혀지면, 수사는 윗선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컸다.


필로폰 24kg 몸에 붙여 무사통과
수사대상 오른 직원들 밀수 조력?

그러나 외압 의혹이 제기되면서 수사 속도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복수의 경찰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서울경찰청 출신 C 경무관은 영등포서 D 경정에게 전화를 걸었다. 경찰청 감찰담당관실은 지난달 C 경무관에게 전화를 건 경위와 통화 내용 등에 대해 직접 물었고, B 경정에게도 당시 상황에 대해 확인했다.

C 경무관과 D 경정은 감찰담당관실에 통화 상황을 각각 진술했다.

C 경무관은 과거 자신이 영등포서장과 인천공항경찰단장을 지낸 이력을 언급하며 “국정감사를 앞두고 관세청장이 신경을 많이 쓰는 것 같다”며 “내가 (세관 측에) ‘관세청이나 경찰청 모두 정부 일원이기 때문에 타 기관을 예우할 거다. 그렇게 무리하게 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말했다.

‘과거 업무 때문에 인연을 맺은 인천공항본부세관 측 인사로부터 요청을 받아 전화를 걸었다’는 취지의 말도 덧붙였다고 한다. C 경무관은 당시 이 사건과는 관련 없는 보직을 맡고 있었고, D 경정은 C 경무관의 관계를 “일면식도 없는 사이”라고 말했다.

D 경정은 “이튿날 서울청으로부터 수사팀이 배제된 상태서 세관 직원 관련 사건의 이첩을 검토 중이라는 통보를 받았고 중간 수사 결과 발표 때(지난달 10일) 세관 연루 내용은 제외하고 발표하라는 지휘부의 지시 등도 있었던 상황이라, A 경무관의 전화와 사건 이첩 논의 등을 세관 직원 수사에 대한 대한 ‘외압’으로 느꼈다”고 말했다.

C 경무관은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서 “국정감사를 앞두고 세관이 예상 질의를 준비하기 위해 이 사건 보도자료에 세관 관련 내용이 들어가는지 확인 요청을 해 왔고, 이에 기관 간 업무협조 차원서 전화를 건 것일 뿐이다. 수사 개입 의도는 없었다”고 밝혔다.

“억울하다”
5명 혐의는?

수사팀이 특정범죄가중처벌법(마약류 관리법) 위반 및 위계공무집행방해 혐의로 입건한 세관 직원은 현재까지 총 5명이다. 그러나 수사는 아직 마약 유통책들의 진술 이외에 뾰족한 추가 증거를 찾지는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수사팀이 세관 직원과 마약 유통책 간 금전거래 여부를 들여다보기 위해 신청한 금융거래내역 압수수색 영장도 검찰서 두 차례 반려됐다.

세관에는 고급 마약 첩보들이 몰린다. 검찰이 일부 수사권을 회복하면서 한동안 마약수사에 올인하던 경찰과 경쟁할 수밖에 없는 구조가 된 상황이다. 세관 내부에서는 제공할 수 있는 첩보가 한정적이기에 경찰보다는 검찰에 넘기는 게 유연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한 세관 직원은 “경찰이 세관을 마약과 관련해 강도 높게 수사한 적이 없다. 이번 수사와 관련해 검찰에만 첩보를 제공하는 것에 관한 화풀이가 아니냐는 시선도 있다”고 주장했다.

우선 경찰청 간부가 영등포서 측에 연락을 취한 수사 외압 의혹은 본청 차원서 진상조사가 시작됐다. 사건 수사는 디지털포렌식 과정을 거치는 단계에 이르렀다.


서울경찰청 관계자는 “외압 의혹 부분은 본청 차원서 진상조사 중이다. 서울청 단위서 할 수 있는 부분은 철저한 수사를 진행할 수 있도록 (영등포서를) 지원하고 있고 지휘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사건 관련자들이 참여하면서 시간이 조금 오래 걸리고 있다”며 “현재 피의자는 5명인데 일부 조정은 가능하다. 원래는 4명이었는데 지금 5명이 됐다. 한 명이 줄어들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관세청은 영등포서의 수사를 지켜보되 사건에 연루된 직원 1명을 직위해제 조치했다. 연루된 직원 중 일부는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다. 말레이시아 조직원들이 “세관 직원들이 길을 안내해서 따라갔다. 농림축산검역소가 아니라 세관 구역으로 나왔다”는 진술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해 힘든
유착·외압

당시 조직원들이 타고 온 비행기는 검역 대상인 쿠알라룸프르발 비행기였다. 해당 비행기서 내린 모든 승객은 세관의 검역을 받아야 한다. 경찰은 해당 진술이 신빙성이 있다고 판단해 수사를 이어가는 중이다. 하지만 사건에 연루된 세관 직원들의 말은 다르다.

한 세관 직원은 “사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떤 물품이 들어 있는지를 체크하는 게 검역”이라며 “신병 검색은 절대 하지 않는다. 들어오는 인물이 누구인지 체크해 따로 분류하는 경우는 없다”고 주장했다.


다른 직원도 “몸을 강도 높게 수색하는 경우는 드물다. 검역소 직원들은 승객들이 들여오는 햄, 고기, 과일 등을 확인한다. 몸을 수색할 이유가 없다. 상식적으로 과일을 옷 사이에다가 많이 들고 오는 여행객들이 있냐”고 되물었다.

경찰은 수사 직전인 내사 단계서 현장검증을 진행한 바 있다. A씨와 타 조직원들이 진술한 내용을 비교하는 등 사실관계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복수의 조직원들은 세관 직원 3명을 ‘도와준 인물’이라고 정확하게 지목했다고 한다. 자리에 없었던 나머지 한 명도, 조직원들은 사진을 보더니 “이 사람이 도왔다”고 언급한 것으로 전해졌다.

세관 직원들은 “통역사를 제외하면 현장검증에 온 조직원은 단 두 명이었다. 이 중에서도 1명이 주로 진술했다”고 반박했다.

압수수색 영장 잇단 반려
아직 물적 증거 확보 못해

가장 먼저 공범으로 지목된 세관 직원은 조직원들이 입국했던 날인 1월27일에 연가를 내기도 했다. 조직원들이 입국장에 들어선 건 오전 8시쯤이지만 해당 직원 이 시간, 공항서 차로 20분쯤 되는 집에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또 이 직원은 1월26일부터 27일 사이 중앙 통로에 출입한 내역이 조회되지 않았다.

조직원들이 진술한 내용 중 빠져나갔던 통로도 수상한 지점이다. A씨는 “주로 4, 5번 검색대로 통과했다”고 주장했지만 경찰 수사 대상에 오른 세관 직원 중 해당 검색대서 일한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경찰은 연가임에도 불구하고 공항으로 나와 조직원들을 돕고 중앙 통로를 제외한 다른 기록이 있는지 수사 중이다. 영등포서 관계자는 “세관 직원들의 주장을 반박할 수 있는 자료와 정황이 있다. 아직 수사 중인 사안이라 구체적인 확인은 어렵다”고 말했다.

부산도 마약 사건으로 골머리를 썩고 있다. 부산지법 형사5부(장기석 부장판사)는 특정범죄가중처벌에관한법률 위반(향정) 혐의로 기소된 태국인 E(40대·여)씨에게 징역 5년을 선고했다고 밝혔다. 또 특정범죄 가중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향정),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향정), 출입국관리법 위반 등 혐의로 함께 기소된 F(30대·남)씨 등 태국인 2명에게는 각각 징역 8년을 선고했다.

E씨는 지난해 12월 합성마약 ‘야바’ 1만9369정(시가 19억3690만원 상당)을 태국서 김해국제공항을 통해 몰래 들여와 국내에 유통하려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E씨는 알고 지내던 F씨로부터 “야바를 숨긴 물품을 반입해주면 대가를 주겠다”는 제안을 받고 태국으로 출국했다.

이후 청바지 뒷주머니나 손가방 등에 은닉된 야바 1만9369정을 받아 자신의 여행용 가방에 넣은 뒤, 기내 수하물로 휴대해 입국하다가 김해공항서 세관 당국에 적발됐다.

이들은 E씨가 들여온 야바를 받아 국내에 유통하려 했으나, E씨가 적발되면서 연달아 붙잡혔다. 이들은 마약 소지나 투약 혐의, 체류 기간을 넘겨 국내에 머문 혐의도 함께 받아 기소됐다. 이들이 밀반입하려던 야바 1만9000여정은 김해공항서 적발한 사례 가운데 역대 최대 규모다.

재판부는 “마약류 밀수입 범행은 마약류의 확산 및 그로 인한 추가 범죄로 이어질 개연성이 다분해 위험성이 크고, 피고인이 밀수한 야바의 양은 분량이 상당히 많은 편”이라며 “다만 국내에 유통되지 않은 점 등을 고려했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뻥 뚫린
김해공항

부산본부세관에 따르면 지난 10월20일에도 말레이시아 국적 G씨가 필로폰을 위탁 수하물에 넣고 들어오려다 김해공항서 적발됐다. 당시 필로폰은 셔츠 등을 고정하기 위한 두꺼운 도화지 부자재인 의류용 등대지인 것처럼 위장해 옷 속에 들어 있었다. G씨가 가져온 필로폰은 8kg가량으로 시가 240억 상당이다.

세관은 엑스레이 촬영과 정밀 판독 등 검사를 벌여 공항서 마약을 확인하고 G씨를 검거했다.

<hounder@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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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구성원의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된 수장이 반년 만에 끌려 내려왔다. 막말에 가까운 강한 발언과 제멋대로인 행보가 탄핵을 불렀다. 강성 수장이 물러나면서 변화를 기대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대화의 문이 열릴 것인가, 더 높은 벽이 쌓일 것인가.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 전 회장이 3년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탄핵당했다. 지난 5월 취임 이후 6개월 만으로 의협 역사상 2번째, 최단기간 내 불명예 퇴진한 회장이 됐다. 첫 번째는 2014년 4월 임기 1년여를 앞두고 탄핵당한 노환규 전 회장이다. 두 번째 최단기간 의협은 지난 10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서 임시대의원총회를 열고 임 전 회장의 불신임안을 처리했다. 참석 의원 224명 가운데 170명(75.9%)이 찬성했다. 반대는 50명, 기권 4명이다. 전체 대의원 249명 가운데 224명(91.1%)이 표결에 참여했다. 의협 정관에 따르면, 회장 불신임안은 제적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출석하고, 출석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면 가결된다. 지난 3월 임 전 회장은 선거서 유효 투표수 3만3084표 중 2만1646표를 받아 당선됐다. 65.43%의 압도적인 지지다. 의협 회장 선거는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발표로 의정 갈등 수위가 높아지고 있을 무렵에 치러졌다. 전공의가 병원을 떠났고 정부가 ‘2000명’을 강조하던 시기였다. 의협 회원들은 강성 중의 강성으로 분류되는 임 전 회장에게 힘을 실었다. 임 전 회장의 어깨에 너무 힘이 들어갔던 것일까? 임 전 회장의 언행은 사사건건 도마 위에 올랐다. SNS에 올린 글, 공식 석상서 했던 발언 등이 막말 논란으로 번졌고, 단식투쟁 등의 행보는 ‘쇼’라는 비판을 받았다. 무엇보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이하 대전협) 비대위원장과 갈등을 빚으면서 의료계 내부 분열을 조장한다는 지적이 뼈아팠다. 임 전 회장이 8개월 동안 보여준 모습은 고스란히 탄핵 사유가 됐다. 의협 회원 사이에서는 임 전 회장이 SNS로 막말과 실언을 해 의사단체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또 ‘임 회장이 전공의 지원금을 빼돌렸다’는 허위 비방 글을 올린 시도의사회 임원에게 고소 취하 대가로 1억원을 요구한 사실이 녹취록을 통해 알려져 논란이 불거졌다. 특정 인물에 대한 수위 높은 비판은 여론의 역풍을 불렀다. 장상윤 대통령실 사회수석을 겨냥해 “정신분열증 환자 같은 개소리”라고 비난하는 글을 올렸다가 환자를 비하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임현택, 6개월 만에 탄핵당해 막말 논란·의대 증원 못 막아 또 2021년 한 의사가 80대 환자에게 ‘맥페란’ 주사제를 투여한 뒤 부작용이 나타나 기소된 재판에 대해서도 도 넘는 발언을 쏟아냈다. 이른바 ‘맥페란 재판’ 항소심서 판사가 1심의 금고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해당 의사의 항소를 기각하자 “이 여자 제정신입니까?”라는 글을 SNS에 올린 것이다. 임 전 회장의 발언에 법원은 이례적으로 “재판장의 인격에 대한 심각한 모욕일 뿐 아니라 국민의 신뢰를 크게 훼손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행동”이라고 공개적으로 유감을 표명했다. 의대 정원 증원 집행정지와 관련해 기각·각하 결정을 내린 재판장이 ‘회유’받았을 것이라는 주장으로도 입길에 올랐다. 서울고등법원 재판부가 결정을 내린 다음 날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재판장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지난 정권에서는 고법 판사들이 차후 승진으로 법원장으로 갈 수 있는 그런 길이 있었는데 제도가 바뀐 다음에는 그런 통로가 막혀서 이분이 아마 어느 정도 대법관에 대한 회유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있다” 말했다. 서울고법은 법원 명의로 입장문을 내고 “해당 단체장의 아무런 객관적 근거가 없는 추측성 발언은 재판장의 명예와 인격에 대한 심대한 모욕”이라면서 “사법부 독립에 관한 국민의 신뢰를 현저히 침해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언사다.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정부의 2025학년도 의대 증원을 막지 못한 점, 간호법 제정을 저지하지 못한 점이 탄핵 사유로 꼽혔다. 임 전 회장은 총회를 앞두고 의사 회원들에게 사과하고 페이스북 계정을 삭제하는 등 재신임을 호소했지만 반전은 없었다. 회장을 탄핵한 의협은 비대위원회 체제로 전환하고 지난 13일 새로운 회장 선거 전까지 단체를 이끌 비대위원장을 뽑았다. 그 결과 박형욱 대한의학회 부회장이 1차 투표서 총 유효 투표수 233표 중 123표(52.8%)를 얻어 과반으로 당선이 확정됐다. 임기는 내년 1월 차기 회장이 선출될 때까지다. 뒤늦게 호소했지만…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정부는 의료 파탄이란 시한폭탄을 장착해놨다”며 “정말 대화를 원한다면 정부는 먼저 시한폭탄을 멈춰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대화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대위원들의 합의에 기초해 입장과 행동을 결정할 것”이라며 “비대위 운영서 소외돼왔던 전공의들과 의대생들의 견해가 충분히 반영될 수 있게 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임 전 회장이 물러나고 새로운 비대위원장이 등장하면서 의협의 투쟁 방향에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커졌다. 일각에서는 의협의 이번 행보를 의정 갈등의 중요한 변곡점으로 보고 있다. 강성 회장을 필두로 정부와 강하게 대립했던 이전 모습서 벗어나 대화에 참여할 것이라는 의견과 이전보다 더 수위 높은 대정부 투쟁이 예상된다는 의견으로 갈리는 중이다. 후자의 배경에는 대전협이 있다. 앞서 박단 비대위원장 등 전공의 70여명은 전날 의협 대의원들에게 “비대위원장으로 박형욱 교수를 추천한다”는 메시지를 보내 공개 지지 의사를 드러냈다. 대의원회서도 박단 비대위원장의 공개 지지에 대해 경고하는 등 잡음이 일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대전협의 지지를 등에 업은 박형욱 비대위원장이 당선되면서 전공의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의협과 대전협의 공조가 본격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양측의 교류가 정부와의 대화로까지 이어질 수 있느냐는 점이다.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당선 소감부터 정부의 태도 변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또 윤석열 대통령의 변화도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의정 갈등서 줄곧 선봉에 선 전공의들은 ‘의대 정원 증원 백지화’라는 요구사항서 앞으로도 뒤로도 움직인 적이 없다. 전공의의 행보는 의대생, 의대 교수 등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영향력 커진 전공의 단체 의료계가 전공의 중심으로 굴러가고 있는 셈이다. 실제 대전협은 지난 11일 출범했던 여야의정협의체(이하 협의체)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협의체는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불참하고 의료계에서는 학술 단체인 대한의학회와 의대 학장 모임인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만 참석하는 등 ‘반쪽 출범’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협의체의 운영 기한은 올해 말까지로, 다음 달 22~23일 전에 의미 있는 결과를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태도다. 하지만 박단 비대위원장은 협의체에 대해 ‘무의미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협의체가 첫발을 뗀 11일 SNS에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전공의와 의대생, 당사자 없이 대화나 하겠다는 한가한 소리를 하고 있다”며 “한 대표는 2025년 의대 모집 정지와 업무개시명령 폐지에 대한 입장부터 명확히 밝히시길 바란다”고 일갈했다. 이어 “눈치만 보며 뭐라도 하는 척만 하겠다면 한동훈의 ‘여야의정 협의체’ 역시 임현택 전 의협 회장의 ‘올바른 의료를 위한 특별위원회(올특위)’와 결국 같은 결말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올특위는 의료계의 입장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의협 주도로 구성한 범의료계 특별위원회다. 전공의와 의대생이 해당 위원회에 불참하면서 파행 운영되다 지난 7월 해체됐다. 정부는 협의체서 의료계가 제안한 내용에 대해 “진정성 있게 검토하겠다”는 견해를 밝혔다. 지난 11일 협의체서 의료계는 한국의학교육평가원 자율성 보장, 추가 합격 제한 등을 통한 2025학년도 의대 선발 인원 축소 등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윤순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지난 14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이하 중대본) 회의를 주재하면서 “마주 앉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만큼 활발한 대화와 소통을 통해 누적된 갈등을 해소하고 신뢰를 회복해 국민이 원하는 결과를 끌어낼 수 있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의협과 전공의 등 다른 의료계 단체의 참여를 호소했다. 박단 공개 지지 새 비대위원장 강경 투쟁이냐 VS 노선 변화냐 의료계 내부 상황은 크게 바뀌었지만 향후 상황은 여전히 ‘시계 제로(0)’ 상태다. 임 전 회장과 박단 비대위원장 간 갈등의 불씨도 여전히 살아있다.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공개적으로 요청하는 등 ‘(임 전 회장과)같이 갈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바 있다. 실제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요청하면서 “이해와 소통이 가능한 새로운 회장을 필두로 의협과 대전협 두 단체가 향후 상호 연대를 구축할 수 있길 기대한다”는 입장문까지 냈다. 임 전 회장의 탄핵안 가결 직후 박 비대위원장이 “결국 모든 길은 바른 길로”라는 내용의 SNS 글을 올리기도 했다. 문제는 임 전 회장이 박단 비대위원장을 상대로 반격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임 전 회장은 탄핵 사흘 만에 닫았던 페이스북 계정을 다시 열고 “박단과 그 뒤에서 박단을 배후 조종해 왔던 자들이 무슨 일을 해왔는지 전 의사 회원들에게 아주 상세히 밝히겠다”며 박단 비대위원장을 저격하는 글을 올렸다. 그러면서 “의협 대의원회 비대위원장과 의협 회장 선거가 더 이상 왜 필요한가”라면서 “박단이 의협 회장 겸 비대위원장을 맡아 모든 권한과 책임하에 의료 농단을 해결하면 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지해주셨던 모든 분에게 우선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이유가 어떻든 회장 취임 전부터 탄핵하겠다고 마음먹고 있던 자들에게 빌미를 주어 넘어간 것 자체가 제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또 의협의 근본적인 개혁의 첫걸음으로 의협 대의원회 폐지 등을 내용으로 하는 민법상의 사원총회를 개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원총회는 민법에 규정된 사단법인의 최고의사결정 기관이다. 의협 최고의결기구로 알려진 대의원총회보다 상위에 있고 정관의 규정으로 폐지할 수 없다. 사원총회는 이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경우나 총 사원 5분의 1 이상이 회의의 목적 사항을 제시해 청구하는 경우 소집될 수 있다. 반격 시작 내부 갈등? 올해 2월 시작된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10개월째로 접어들었다. 온갖 말이 오갔지만 되짚어보면 조금도 좁혀지지 않은 평행선 상황이 계속되는 모양새다. 정부와 의료계의 대치 상황이 길어질수록 ‘의료 붕괴’는 가시화되고 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정말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