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롭고 청렴한 행보로 명망을 쌓아가는 변호사 이태하에게는 하루가 멀다 하고 돈과 관련된 송사가 날아든다.
돈 앞에선 그 진하던 핏줄도 희미해지는가. 아버지가 어머니 몫으로 남긴 유산마저 빼앗으려 소송을 건 딸, 장례식이 끝나자마자 아버지의 금고를 습격한 형제들의 난타전, 유산 상속이 걱정돼 홀로된 아버지의 만혼을 저지하려는 자식들.
어느 만큼 지니지 못하면 인간의 존엄마저 박탈해 버리는 것이 또한 돈이다.
하루아침에 월세 4배 인상을 요구하는 건물주와 갈등하는 식당 주인, 청소년들에게 편의점서 담배와 술을 배달하며 하루하루를 연명하는 독거노인…. 생명마저 위협하는 무서운 중독이 바로 ‘돈 중독’이다. 갑작스럽게 애인과 헤어진 여자의 속사정, 로또로 일확천금을 노리다 이성을 잃어버린 가장, 도박과 가상화폐 투자에 빠져버린 두 남자의 인생 마지막 복수…. 돈의 냉혹함은 남녀노소, 지위 고하, 신념의 유무도 가라지 않는다.
연이은 취업 실패로 거동이 불편한 노 회장의 수발을 드는 고액 아르바이트에 뛰어든 20대, 운동권의 대부였으나 암에 걸린 남편으로 인해 생활전선에 뛰어든 중년 여성….
주인공 이태하 변호사를 중심으로 옴니버스 형식으로 짜여진 모든 이야기들은 마치 한 편 한 편이 드라마를 보는 것 같지만, 현실서 그와 비슷한, 혹은 그보다 더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작가의 예리한 필치와 섬세한 심리 묘사는 각각의 이야기가 지닌 리얼함을 극대화하며 독자들을 강력하게 이입시킨다.
돈으로 신음하는 의뢰인들의 고통과 파란만장한 삶을 보며 이태하는 스스로에게, 그리고 세상을 향해 끊임없이 되묻는다. “도대체 돈이란 무엇인가?” 그는 대학 시절 “인생서 돈이란 무엇인가”라는 도발적인 질문을 받은 철학 교수가 내놓았던 답을 떠올린다. “돈은 인간의 실존이자 동시에 부조리다!”
여러 난맥상의 사회 문제와 갈등, 행과 불행의 기저엔 돈이 있다. 자신도 해치고 타인도 해치는 돈 중독으로 인해 우정도, 신의도, 인권도, 목숨도 무참히 짓밟고 짓밟히는 일은 허다하다. 악화되는 경제 상황으로 모든 가치를 앞질러 날로 막강해지는 돈의 힘…
이런 시점에 작가는 우리에게 엄중한 질문을 던진다. 생존의 도구이자 생존을 위협하는 무기이기도 한 돈의 위력 앞에서 어떻게 노예가 되지 않고, 한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중심을 유지하며 살아갈 것인가.
등단 50주년을 지나올 때까지 매 순간 “문학은 인간의 인간다운 삶을 위해 인간에게 기여해야 한다”는 일념으로 역사와 사회문제는 물론 개인의 실존까지 다양한 주제를 천착해왔던 작가 조정래. 신작 <황금종이>역시 그런 문제의식의 연장선상에 있는 작품으로, 작가는 돈은 도구이자 수단일 뿐, 인간을 지배할 수 없다는 철학성을 확보해야만 한 번뿐인 삶을 올바르게 영위해 갈 수 있음을 강조한다.
매일 생각하고, 매일 걱정하고, 매일 꿈꾸는 것, 우리를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하는 것! <황금종이>는 금력(金力)을 향한 맹목적인 쏠림을 잠시 멈추고 나와 우리를 위한 통찰과 각성의 시간을 제공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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