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아트인> 권옥연 100주년 기념전

창백한 회색빛 거장의 ‘그레이’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현대화랑서 한국 근현대미술의 거장 권옥연 화백을 조명한다. 올해는 권 화백이 태어난지 100주년이 되는 해로 이에 맞춰 ‘권옥연 100주년 기념전’이 열린다. 관람객은 다음 달 16일까지 거장의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 

권옥연 화백은 특정 사조나 단체활동에 참여하지 않고 독특한 톤과 색채 등 특유의 화풍으로 독자적인 미술 세계를 펼친 작가다. 현대화랑과는 1972년 개관 2주년 전시 때부터 인연을 맺었다. 1985년에는 개인전을 개최했다. 

중후함

권 화백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진행되는 이번 전시에는 ‘권옥연 그레이’로 알려진 특유의 회색빛 인물과 풍경이 한 자리에 놓인다. ‘부인의 초상’ ‘절규’ ‘달맞이꽃’ ‘귀향’ 등 회색 풍경 이전의 1950년대 초반 작품부터 작고 직전인 1990년대까지 주요 작품 20여점을 함께 선보인다.

디지털 아카이빙 비디오를 통해 권 화백의 생애와 작품을 함께 살피는 회고전 형식으로 준비했다. 

1950년대 권 화백이 프랑스서 유학생활 당시, 시인이면서 초현실주의 주창자였던 앙드레 브르통은 그의 작품을 두고 ‘동양적 쉬르레알리즘(초현실주의)’라고 호평했다. 그 시기의 조형 의식이 담긴 작품 ‘절규’가 이번 전시서 공개된다. 야생동물을 모티브로 한듯한 상형문자 도상은 입을 크게 벌리고 울부짖는 절실함을 고스란히 전해준다. 


권 화백은 1960년대 프랑스서 서울로 귀국했다. 그는 자신만의 고유한 독립된 조형 의식을 찾아나서며 어떤 사조나 미술 운동에 동참하기보다는 고분 벽화나 민속적 요소, 할아버지에게 배웠던 한자 서예의 경험 등 떠나온 고향에 대한 기억을 가지고 오롯이 자신만의 조형 세계를 구축했다. 

생애와 작품을 살피는 회고전
“따뜻한 온기와 여운 남길 것”

1970년대 ‘우화’나 ‘탈(전설)’ 1980년대 ‘옛이야기’와 ‘달맞이꽃’ 등은 한국적 정서의 신화와 설화의 이미지로 출발해 문학적 상상력까지 더한 권 화백만의 주제의식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1990년대 이후에도 ‘무제’ ‘귀향’처럼 은유적이고 시적인 한 편의 문학작품을 함축해놓은 듯한 지속적인 화풍은 이어진다.

김윤석 아이프미술경영 대표는 “이번 권옥연 화백 100주년 기념전을 맞아 문득 ‘화가는 정신연령이 다섯살이 넘으면 그림을 못 그린다’며 입버릇처럼 작가적 순수성을 강조했던 권 화백의 말이 되새겨진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권옥연은 한평생 예술의 멋과 풍류가 함께하는 삶의 격이 무엇인지 보여줬던 예술가였다”며 “원시적 체취가 물씬 배어 나오는 작품서 향토적 소재주의, 목가적 서정주의, 절제된 색감과 화면 구성, 상상과 무의식의 초현실적 조화를 이룬 작품 세계까지, 결국 권 화백의 작가적 삶은 자연과 인간미의 서사적 만남을 어떻게 한국적 미감으로 되살려낼 것인가에 대한 천착이었다”고 설명했다. 

진정성

현대화랑 관계자는 “생전 ‘한결같은 중후함과 삶의 진정성’을 지켜야 한다고 강조했던 권 화백의 작품은 전반적으로 창백해 보일 수 있는 회색빛을 띠고 있으면서도 특유의 색채와 한국적인 미감이 더해지며 관람객에게 따뜻한 온기와 여운을 남길 예정”이라며 “이번 회고전을 통해 권 화백의 깊고 푸르른 그레이 화면을 경험하길 바란다”고 밝혔다.

<jsjang@ilyosisa.co.kr>
 


[권옥연 화백은?]

권옥연 화백은 1923년 함경남도 함흥서 태어나 어린 시절 조부로부터 서예를, 바이올리니스트였던 아버지에게 음악을 배우며 성장했다.

아버지와 같은 음악가가 되길 꿈꾸던 그는 경성제2고등보통학교(현 경복중고등학교)에 입학하며 미술을 시작했고 학생 시절 제20회 ‘조선미술전람회’(1941)서 수상하며 미술계에 존재를 드러냈다.

1942년 일본 도쿄 제국미술학교(현 무사시노 미술대학)에 입학해 서양화를 전공한 권 화백은 한국에 돌아온 뒤 해방과 전쟁을 겪으면서도 예술에 대한 열정으로 작품 활동에 매진했다.

1949년 제1회 대한민국미술전람회서 입선, 1953년 제5회 대한미술협회전서 문교부 장관상, 1956년 제5회 대한민국미술전람회서 특선을 수상하는 등 작가로서 입지를 다졌다. 

1957년 아내 이병복과 함께 프랑스 유학을 떠난 권 화백은 그랑드 쇼미에르 아카데미서 3년간 서양화를 공부하며 ‘살롱 도톤’(1957~1958), ‘칸느 그랑프리전’(1958), ‘레알리떼 누벨전’(1958)에 참여했다.

귀국 후 제9회 파리 쉬르레얼리즘전(1960), 제8회 상파울루 비엔날레(1965), 일본 도쿄국립근대미술관의 한국 현대회화전(1968) 등 해외 전시에도 활발히 참여했다.

1983년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으로 선정돼 1986년 대한민국예술원상(미술부문) 수상, 보관문화훈장(1990), 3·1문화상(1994) 등을 수상했다. 2000년 국립현대미술관의 ‘올해의 작가’에 선정돼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서 2001년 대규모 회고전을 열었다.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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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구성원의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된 수장이 반년 만에 끌려 내려왔다. 막말에 가까운 강한 발언과 제멋대로인 행보가 탄핵을 불렀다. 강성 수장이 물러나면서 변화를 기대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대화의 문이 열릴 것인가, 더 높은 벽이 쌓일 것인가.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 전 회장이 3년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탄핵당했다. 지난 5월 취임 이후 6개월 만으로 의협 역사상 2번째, 최단기간 내 불명예 퇴진한 회장이 됐다. 첫 번째는 2014년 4월 임기 1년여를 앞두고 탄핵당한 노환규 전 회장이다. 두 번째 최단기간 의협은 지난 10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서 임시대의원총회를 열고 임 전 회장의 불신임안을 처리했다. 참석 의원 224명 가운데 170명(75.9%)이 찬성했다. 반대는 50명, 기권 4명이다. 전체 대의원 249명 가운데 224명(91.1%)이 표결에 참여했다. 의협 정관에 따르면, 회장 불신임안은 제적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출석하고, 출석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면 가결된다. 지난 3월 임 전 회장은 선거서 유효 투표수 3만3084표 중 2만1646표를 받아 당선됐다. 65.43%의 압도적인 지지다. 의협 회장 선거는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발표로 의정 갈등 수위가 높아지고 있을 무렵에 치러졌다. 전공의가 병원을 떠났고 정부가 ‘2000명’을 강조하던 시기였다. 의협 회원들은 강성 중의 강성으로 분류되는 임 전 회장에게 힘을 실었다. 임 전 회장의 어깨에 너무 힘이 들어갔던 것일까? 임 전 회장의 언행은 사사건건 도마 위에 올랐다. SNS에 올린 글, 공식 석상서 했던 발언 등이 막말 논란으로 번졌고, 단식투쟁 등의 행보는 ‘쇼’라는 비판을 받았다. 무엇보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이하 대전협) 비대위원장과 갈등을 빚으면서 의료계 내부 분열을 조장한다는 지적이 뼈아팠다. 임 전 회장이 8개월 동안 보여준 모습은 고스란히 탄핵 사유가 됐다. 의협 회원 사이에서는 임 전 회장이 SNS로 막말과 실언을 해 의사단체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또 ‘임 회장이 전공의 지원금을 빼돌렸다’는 허위 비방 글을 올린 시도의사회 임원에게 고소 취하 대가로 1억원을 요구한 사실이 녹취록을 통해 알려져 논란이 불거졌다. 특정 인물에 대한 수위 높은 비판은 여론의 역풍을 불렀다. 장상윤 대통령실 사회수석을 겨냥해 “정신분열증 환자 같은 개소리”라고 비난하는 글을 올렸다가 환자를 비하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임현택, 6개월 만에 탄핵당해 막말 논란·의대 증원 못 막아 또 2021년 한 의사가 80대 환자에게 ‘맥페란’ 주사제를 투여한 뒤 부작용이 나타나 기소된 재판에 대해서도 도 넘는 발언을 쏟아냈다. 이른바 ‘맥페란 재판’ 항소심서 판사가 1심의 금고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해당 의사의 항소를 기각하자 “이 여자 제정신입니까?”라는 글을 SNS에 올린 것이다. 임 전 회장의 발언에 법원은 이례적으로 “재판장의 인격에 대한 심각한 모욕일 뿐 아니라 국민의 신뢰를 크게 훼손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행동”이라고 공개적으로 유감을 표명했다. 의대 정원 증원 집행정지와 관련해 기각·각하 결정을 내린 재판장이 ‘회유’받았을 것이라는 주장으로도 입길에 올랐다. 서울고등법원 재판부가 결정을 내린 다음 날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재판장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지난 정권에서는 고법 판사들이 차후 승진으로 법원장으로 갈 수 있는 그런 길이 있었는데 제도가 바뀐 다음에는 그런 통로가 막혀서 이분이 아마 어느 정도 대법관에 대한 회유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있다” 말했다. 서울고법은 법원 명의로 입장문을 내고 “해당 단체장의 아무런 객관적 근거가 없는 추측성 발언은 재판장의 명예와 인격에 대한 심대한 모욕”이라면서 “사법부 독립에 관한 국민의 신뢰를 현저히 침해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언사다.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정부의 2025학년도 의대 증원을 막지 못한 점, 간호법 제정을 저지하지 못한 점이 탄핵 사유로 꼽혔다. 임 전 회장은 총회를 앞두고 의사 회원들에게 사과하고 페이스북 계정을 삭제하는 등 재신임을 호소했지만 반전은 없었다. 회장을 탄핵한 의협은 비대위원회 체제로 전환하고 지난 13일 새로운 회장 선거 전까지 단체를 이끌 비대위원장을 뽑았다. 그 결과 박형욱 대한의학회 부회장이 1차 투표서 총 유효 투표수 233표 중 123표(52.8%)를 얻어 과반으로 당선이 확정됐다. 임기는 내년 1월 차기 회장이 선출될 때까지다. 뒤늦게 호소했지만…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정부는 의료 파탄이란 시한폭탄을 장착해놨다”며 “정말 대화를 원한다면 정부는 먼저 시한폭탄을 멈춰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대화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대위원들의 합의에 기초해 입장과 행동을 결정할 것”이라며 “비대위 운영서 소외돼왔던 전공의들과 의대생들의 견해가 충분히 반영될 수 있게 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임 전 회장이 물러나고 새로운 비대위원장이 등장하면서 의협의 투쟁 방향에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커졌다. 일각에서는 의협의 이번 행보를 의정 갈등의 중요한 변곡점으로 보고 있다. 강성 회장을 필두로 정부와 강하게 대립했던 이전 모습서 벗어나 대화에 참여할 것이라는 의견과 이전보다 더 수위 높은 대정부 투쟁이 예상된다는 의견으로 갈리는 중이다. 후자의 배경에는 대전협이 있다. 앞서 박단 비대위원장 등 전공의 70여명은 전날 의협 대의원들에게 “비대위원장으로 박형욱 교수를 추천한다”는 메시지를 보내 공개 지지 의사를 드러냈다. 대의원회서도 박단 비대위원장의 공개 지지에 대해 경고하는 등 잡음이 일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대전협의 지지를 등에 업은 박형욱 비대위원장이 당선되면서 전공의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의협과 대전협의 공조가 본격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양측의 교류가 정부와의 대화로까지 이어질 수 있느냐는 점이다.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당선 소감부터 정부의 태도 변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또 윤석열 대통령의 변화도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의정 갈등서 줄곧 선봉에 선 전공의들은 ‘의대 정원 증원 백지화’라는 요구사항서 앞으로도 뒤로도 움직인 적이 없다. 전공의의 행보는 의대생, 의대 교수 등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영향력 커진 전공의 단체 의료계가 전공의 중심으로 굴러가고 있는 셈이다. 실제 대전협은 지난 11일 출범했던 여야의정협의체(이하 협의체)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협의체는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불참하고 의료계에서는 학술 단체인 대한의학회와 의대 학장 모임인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만 참석하는 등 ‘반쪽 출범’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협의체의 운영 기한은 올해 말까지로, 다음 달 22~23일 전에 의미 있는 결과를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태도다. 하지만 박단 비대위원장은 협의체에 대해 ‘무의미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협의체가 첫발을 뗀 11일 SNS에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전공의와 의대생, 당사자 없이 대화나 하겠다는 한가한 소리를 하고 있다”며 “한 대표는 2025년 의대 모집 정지와 업무개시명령 폐지에 대한 입장부터 명확히 밝히시길 바란다”고 일갈했다. 이어 “눈치만 보며 뭐라도 하는 척만 하겠다면 한동훈의 ‘여야의정 협의체’ 역시 임현택 전 의협 회장의 ‘올바른 의료를 위한 특별위원회(올특위)’와 결국 같은 결말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올특위는 의료계의 입장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의협 주도로 구성한 범의료계 특별위원회다. 전공의와 의대생이 해당 위원회에 불참하면서 파행 운영되다 지난 7월 해체됐다. 정부는 협의체서 의료계가 제안한 내용에 대해 “진정성 있게 검토하겠다”는 견해를 밝혔다. 지난 11일 협의체서 의료계는 한국의학교육평가원 자율성 보장, 추가 합격 제한 등을 통한 2025학년도 의대 선발 인원 축소 등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윤순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지난 14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이하 중대본) 회의를 주재하면서 “마주 앉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만큼 활발한 대화와 소통을 통해 누적된 갈등을 해소하고 신뢰를 회복해 국민이 원하는 결과를 끌어낼 수 있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의협과 전공의 등 다른 의료계 단체의 참여를 호소했다. 박단 공개 지지 새 비대위원장 강경 투쟁이냐 VS 노선 변화냐 의료계 내부 상황은 크게 바뀌었지만 향후 상황은 여전히 ‘시계 제로(0)’ 상태다. 임 전 회장과 박단 비대위원장 간 갈등의 불씨도 여전히 살아있다.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공개적으로 요청하는 등 ‘(임 전 회장과)같이 갈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바 있다. 실제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요청하면서 “이해와 소통이 가능한 새로운 회장을 필두로 의협과 대전협 두 단체가 향후 상호 연대를 구축할 수 있길 기대한다”는 입장문까지 냈다. 임 전 회장의 탄핵안 가결 직후 박 비대위원장이 “결국 모든 길은 바른 길로”라는 내용의 SNS 글을 올리기도 했다. 문제는 임 전 회장이 박단 비대위원장을 상대로 반격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임 전 회장은 탄핵 사흘 만에 닫았던 페이스북 계정을 다시 열고 “박단과 그 뒤에서 박단을 배후 조종해 왔던 자들이 무슨 일을 해왔는지 전 의사 회원들에게 아주 상세히 밝히겠다”며 박단 비대위원장을 저격하는 글을 올렸다. 그러면서 “의협 대의원회 비대위원장과 의협 회장 선거가 더 이상 왜 필요한가”라면서 “박단이 의협 회장 겸 비대위원장을 맡아 모든 권한과 책임하에 의료 농단을 해결하면 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지해주셨던 모든 분에게 우선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이유가 어떻든 회장 취임 전부터 탄핵하겠다고 마음먹고 있던 자들에게 빌미를 주어 넘어간 것 자체가 제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또 의협의 근본적인 개혁의 첫걸음으로 의협 대의원회 폐지 등을 내용으로 하는 민법상의 사원총회를 개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원총회는 민법에 규정된 사단법인의 최고의사결정 기관이다. 의협 최고의결기구로 알려진 대의원총회보다 상위에 있고 정관의 규정으로 폐지할 수 없다. 사원총회는 이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경우나 총 사원 5분의 1 이상이 회의의 목적 사항을 제시해 청구하는 경우 소집될 수 있다. 반격 시작 내부 갈등? 올해 2월 시작된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10개월째로 접어들었다. 온갖 말이 오갔지만 되짚어보면 조금도 좁혀지지 않은 평행선 상황이 계속되는 모양새다. 정부와 의료계의 대치 상황이 길어질수록 ‘의료 붕괴’는 가시화되고 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정말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