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강국 맞아?’ 불안한 행정망의 민낯

‘3일간 먹통’ 발만 동동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자칭 디지털강국이 무너졌다. 올해 들어 4번이나 전산망에 문제가 생겼다. 정부는 명확한 원인을 밝히고 있지 않다. 정부가 지방행정전산서비스 개편 TF를 구성한 만큼 후속 대응에 관심이 쏠린다.

정부 인증시스템상의 네트워크 장비 오류로 정부 행정전산망에 장애를 겪었다. 하지만 정부는 장비 고장의 구체적 원인과 백업시스템이 미작동한 이유에 대해서 속 시원한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지난 17일, 새올행정시스템에 접속하는 길목인 GPKI(행정전사서명인증서) 인증시스템에 장애가 발생했다. 같은 날 12시쯤 이를 복구해 정상 가동했으나 오후 1시 다시 시스템 장애가 발생해 서비스가 전면 중단됐다.

전면 중단

고기동 행정안전부(이하 행안부) 차관은 지난 19일, 정부서울청사 브리핑서 “지방행정전산서비스는 모두 정상화됐다”고 발표했다. 행정망 마비가 발생한 지 사흘 만이다. 고 차관은 이번 장애의 원인으로 새올 인증시스템에 연결된 네트워크 장비의 장애를 지목했다. 

정부는 GPKI 인증시스템의 서버 등을 모두 분석해 네트워크 장비(L4스위치, 이하 L4)에 이상이 있음을 확인했다. 18일 새벽 이 장비를 교체하고 서비스를 정상 재개했다.


다만 문제 장비는 찾았으나 오류의 구체적 원인은 나오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서보람 행안부 디지털정부실장도 브리핑 당시 “L4 장비 안에서 어떤 부분이 실제로 문제를 일으켰는지는 조금 더 면밀한 조사를 거쳐서 확정할 수 있을 것 같다”며 명확한 원인을 밝히지 못했다.

문제가 된 장비는 트래픽을 분산해 속도를 높이는 장치인 L4 장비다. 통상 네트워크 영역을 뭉뚱그려 ‘네트워크’라고 분류하지만 업계에서는 이를 L1부터 L7까지 7개 계층으로 구분한다.

이중 L4는 부하분산(로드밸런싱, Load Balancing)을 담당하는데 복수의 서버를 한 대처럼 묶어서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역할을 한다. 애플리케이션 딜리버리 컨트롤러(ADC), 부하분산 장비라고도 불린다.

L4는 서버에 전달되는 수많은 요청을 우선순위에 따라 배분해 원활하게 가동될 수 있도록 하는 역할을 한다. A 창구(서버)에 사람(트래픽)이 많이 몰렸다면 비교적 한산한 B 창구(서버)로 사람(트래픽)을 유도함으로써 서비스가 장애 없이 잘 유지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골자다.

이번 행정망 마비는 L4를 거쳐 서버에 요청이 가는데 L4가 이를 전달해 주지 않아서 생긴 것이다. 대체용 스위치가 있었지만 이마저도 고장 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하드웨어적인 문제였는지 소프트웨어적인 문제였는지 밝혀지지 않았다. 

정부 전산망이 행정망 마비 사태 장애 복구 완료 선언 사흘 만에 또 오류를 일으키기도 했다. 행안부에 따르면 22일 오전 11시45분경 각 기초자치단체 주민센터서 20여분간 주민등록 등본, 초본 발급이 지연됐다. 이번 오류는 지난 17일 전산마비 주범인 새올 지방행정시스템 문제가 아니라 차세대 주민등록시스템서 발생한 것으로 알려졌다.

초유 행정전산망 올스톱
올들어 벌써 4번째 오류


이번 행정망 마비를 포함해 올해 들어 벌어진 국가전산망 마비는 네 번째다. 세계 최고의 디지털기술을 보유하고 있다고 자부하며 디지털 강국이라는 자찬도 무색해졌다.

지난 3월에는 법원 전산 시스템이 마비됐다. 데이터를 이관하던 중 오류가 발생해 소송 업무의 근간이라고 할 수 있는 전자소송시스템이 중단돼 일부 소송 일정이 미뤄졌다.

지난 6월에는 교육부의 4세대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나이스)이 개통 직후 오작동했다. 당시 일선 학교서 기말고사 문항정보표가 유출되는 등 교육 현장에서는 ‘대혼란’이 일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정부가 대기업이 공공 전산망의 구축·관리에 참여하지 못하도록 하는 ‘공공 소프트웨어 대기업 참여제한 제도’가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참여제한 제도는 소프트웨어 관련 공공 프로젝트에 대기업이 참여하지 못하도록 하는 제도다. 참여제한 제도가 시행되고 최저가 입찰제로 기술력과 상관없이 저렴한 소프트웨어와 시스템을 공공기관서 낙찰한다는 문제 제기도 이어졌다.

새올 시스템과 나이스를 비롯한 정부 행정망은 모두 중소기업이 운영·관리를 맡고 있다. 국가행정망은 관리 주체인 국가정보자원관리원의 공무원 300여명(대전 본부 171명)이 관리·감독하고 실제 시스템 작업은 400여명의 협력업체 직원이 한다. 

하지만 협력업체에는 잦은 인사와 이직으로 제대로 된 인수인계도 되지 않는 상황이다. 

한 정보통신업계 관계자는 “대기업 SI가 지난 십몇년간 공공 (IT) 시장에 우수 인력을 공급하는 사관학교였다”며 “그러나 일정 규모 이하 정부 입찰에 대기업 참여가 제한되면서 기업서 우수 인력을 훈련시켜 공급하는 역할을 못하게 된 것이 이번 문제서도 드러났다”고 지적했다. 

이어 “올해 들어 벌써 국가전산망이 네 번째 마비됐다”며 “이는 기술력도 인력도 부족한 중소기업에 국가기간망을 맡겨 사후대책이 미흡하다는 것을 방증하는 셈”이라고 꼬집었다. 

디지털 재난에 대응할 정부 차원의 매뉴얼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은 점도 문제다. 행안부 등에 따르면, 재난안전기본법에 따라 위기관리 매뉴얼을 만들어야 하는 41개의 위기 상황 유형에 ‘행정전산망 사고’는 포함돼있지 않다.

이번 사태 당시 행안부 국가정보자원관리원은 ‘장애관리절차서’라는 내부 매뉴얼에 따라 전산망 복구에 나섰다. 그러나 이 매뉴얼은 실무 차원의 내용일 뿐 위기 때 관계부처와의 상황 공유 등의 내용은 빠져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마비 근본 원인은?
“원인 규명이 우선”


행정전산망 사고에 대한 정부 차원의 위기 대응 체계가 부실하다 보니 전산 마비 때 민원 대응 매뉴얼이 없었고 일선 지자체 현장에선 혼선이 가중되기도 했다.

전문성 문제도 두드러졌다. 행안부나 유관기관들이 정부 시스템에 대한 운영 프로세스나 매뉴얼, 장비 간의 종속성, 서비스 간의 종속성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을 확률이 크다는 것이다.

업계서도 단순 네트워크 문제로 사흘간이나 국가 행정망이 마비될 수 없다고 입을 모은다.

한 업계 관계자는 “(L4와 같은)스위칭 장비 서버는 라우터에 밀착해 있어 시스템이 꺼져도 전원을 가동하면 문제가 생각보다 빨리 해결되는 편”이라며 “사전 대응책 준비가 부족한 게 초유의 장기간 접속 오류를 빚은 것 같다”고 진단했다.

이어 “L4를 셧다운시키고 장애 복구에 나서더라도 애플리케이션 단에서의 시스템 및 구조를 이해 못할 경우, 애플리케이션 단 장애가 어디까지 확산돼있는지를 이해를 못하면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이밖에 ‘디지털 정부’의 실현을 위해서는 국가 시스템 장비 노후부터 해결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현재 장비는 내구연한이 10년을 초과한 장비가 대다수라 업체가 바뀌더라도 사태의 재연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도 나온다. 


전문가들은 제도, 전문성, 후속 대처 방안의 문제보다 원인 규명이 먼저라는 입장이다. 김승주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교수는 “사태 초기 대응부터 원인 규명조차 안 되고 있다”며 “국민들이 납득할만한 책임 규명을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삼열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도 “누가 문제인지 손가락질하기 전에 모든 정보를 공개해 전문가들의 숙의를 거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부실 복구?

정부는 지난 21일 ‘지역행정전산서비스 개편 TF’를 구성했다. TF엔 민관 관계자가 대거 참여한다. 공동팀장인 고기동 행안부 차관과 송상효 숭실대학교 교수를 비롯해 산학계 민간 전문가와 행안부, 국방부, 국정원, 한국인터넷진흥원,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 한국지역정보개발원, LG, 네이버 등 관계 기관이 참여하게 됐다. 필요 시 전문가와 다른 기관도 추가적으로 참여를 요청할 방침이다.

고 차관은 “민관이 협력해 신속하고 정확하게 장애원인을 분석하고 이런 장애 상황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재발 방지 종합대책을 수립하기 위해 TF를 구성했다”며 “이번 일을 계기로 더 안정적이고 신뢰할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정부로 거듭나겠다”고 말했다.

<kcj5121@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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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구성원의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된 수장이 반년 만에 끌려 내려왔다. 막말에 가까운 강한 발언과 제멋대로인 행보가 탄핵을 불렀다. 강성 수장이 물러나면서 변화를 기대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대화의 문이 열릴 것인가, 더 높은 벽이 쌓일 것인가.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 전 회장이 3년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탄핵당했다. 지난 5월 취임 이후 6개월 만으로 의협 역사상 2번째, 최단기간 내 불명예 퇴진한 회장이 됐다. 첫 번째는 2014년 4월 임기 1년여를 앞두고 탄핵당한 노환규 전 회장이다. 두 번째 최단기간 의협은 지난 10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서 임시대의원총회를 열고 임 전 회장의 불신임안을 처리했다. 참석 의원 224명 가운데 170명(75.9%)이 찬성했다. 반대는 50명, 기권 4명이다. 전체 대의원 249명 가운데 224명(91.1%)이 표결에 참여했다. 의협 정관에 따르면, 회장 불신임안은 제적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출석하고, 출석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면 가결된다. 지난 3월 임 전 회장은 선거서 유효 투표수 3만3084표 중 2만1646표를 받아 당선됐다. 65.43%의 압도적인 지지다. 의협 회장 선거는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발표로 의정 갈등 수위가 높아지고 있을 무렵에 치러졌다. 전공의가 병원을 떠났고 정부가 ‘2000명’을 강조하던 시기였다. 의협 회원들은 강성 중의 강성으로 분류되는 임 전 회장에게 힘을 실었다. 임 전 회장의 어깨에 너무 힘이 들어갔던 것일까? 임 전 회장의 언행은 사사건건 도마 위에 올랐다. SNS에 올린 글, 공식 석상서 했던 발언 등이 막말 논란으로 번졌고, 단식투쟁 등의 행보는 ‘쇼’라는 비판을 받았다. 무엇보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이하 대전협) 비대위원장과 갈등을 빚으면서 의료계 내부 분열을 조장한다는 지적이 뼈아팠다. 임 전 회장이 8개월 동안 보여준 모습은 고스란히 탄핵 사유가 됐다. 의협 회원 사이에서는 임 전 회장이 SNS로 막말과 실언을 해 의사단체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또 ‘임 회장이 전공의 지원금을 빼돌렸다’는 허위 비방 글을 올린 시도의사회 임원에게 고소 취하 대가로 1억원을 요구한 사실이 녹취록을 통해 알려져 논란이 불거졌다. 특정 인물에 대한 수위 높은 비판은 여론의 역풍을 불렀다. 장상윤 대통령실 사회수석을 겨냥해 “정신분열증 환자 같은 개소리”라고 비난하는 글을 올렸다가 환자를 비하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임현택, 6개월 만에 탄핵당해 막말 논란·의대 증원 못 막아 또 2021년 한 의사가 80대 환자에게 ‘맥페란’ 주사제를 투여한 뒤 부작용이 나타나 기소된 재판에 대해서도 도 넘는 발언을 쏟아냈다. 이른바 ‘맥페란 재판’ 항소심서 판사가 1심의 금고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해당 의사의 항소를 기각하자 “이 여자 제정신입니까?”라는 글을 SNS에 올린 것이다. 임 전 회장의 발언에 법원은 이례적으로 “재판장의 인격에 대한 심각한 모욕일 뿐 아니라 국민의 신뢰를 크게 훼손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행동”이라고 공개적으로 유감을 표명했다. 의대 정원 증원 집행정지와 관련해 기각·각하 결정을 내린 재판장이 ‘회유’받았을 것이라는 주장으로도 입길에 올랐다. 서울고등법원 재판부가 결정을 내린 다음 날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재판장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지난 정권에서는 고법 판사들이 차후 승진으로 법원장으로 갈 수 있는 그런 길이 있었는데 제도가 바뀐 다음에는 그런 통로가 막혀서 이분이 아마 어느 정도 대법관에 대한 회유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있다” 말했다. 서울고법은 법원 명의로 입장문을 내고 “해당 단체장의 아무런 객관적 근거가 없는 추측성 발언은 재판장의 명예와 인격에 대한 심대한 모욕”이라면서 “사법부 독립에 관한 국민의 신뢰를 현저히 침해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언사다.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정부의 2025학년도 의대 증원을 막지 못한 점, 간호법 제정을 저지하지 못한 점이 탄핵 사유로 꼽혔다. 임 전 회장은 총회를 앞두고 의사 회원들에게 사과하고 페이스북 계정을 삭제하는 등 재신임을 호소했지만 반전은 없었다. 회장을 탄핵한 의협은 비대위원회 체제로 전환하고 지난 13일 새로운 회장 선거 전까지 단체를 이끌 비대위원장을 뽑았다. 그 결과 박형욱 대한의학회 부회장이 1차 투표서 총 유효 투표수 233표 중 123표(52.8%)를 얻어 과반으로 당선이 확정됐다. 임기는 내년 1월 차기 회장이 선출될 때까지다. 뒤늦게 호소했지만…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정부는 의료 파탄이란 시한폭탄을 장착해놨다”며 “정말 대화를 원한다면 정부는 먼저 시한폭탄을 멈춰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대화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대위원들의 합의에 기초해 입장과 행동을 결정할 것”이라며 “비대위 운영서 소외돼왔던 전공의들과 의대생들의 견해가 충분히 반영될 수 있게 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임 전 회장이 물러나고 새로운 비대위원장이 등장하면서 의협의 투쟁 방향에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커졌다. 일각에서는 의협의 이번 행보를 의정 갈등의 중요한 변곡점으로 보고 있다. 강성 회장을 필두로 정부와 강하게 대립했던 이전 모습서 벗어나 대화에 참여할 것이라는 의견과 이전보다 더 수위 높은 대정부 투쟁이 예상된다는 의견으로 갈리는 중이다. 후자의 배경에는 대전협이 있다. 앞서 박단 비대위원장 등 전공의 70여명은 전날 의협 대의원들에게 “비대위원장으로 박형욱 교수를 추천한다”는 메시지를 보내 공개 지지 의사를 드러냈다. 대의원회서도 박단 비대위원장의 공개 지지에 대해 경고하는 등 잡음이 일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대전협의 지지를 등에 업은 박형욱 비대위원장이 당선되면서 전공의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의협과 대전협의 공조가 본격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양측의 교류가 정부와의 대화로까지 이어질 수 있느냐는 점이다.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당선 소감부터 정부의 태도 변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또 윤석열 대통령의 변화도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의정 갈등서 줄곧 선봉에 선 전공의들은 ‘의대 정원 증원 백지화’라는 요구사항서 앞으로도 뒤로도 움직인 적이 없다. 전공의의 행보는 의대생, 의대 교수 등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영향력 커진 전공의 단체 의료계가 전공의 중심으로 굴러가고 있는 셈이다. 실제 대전협은 지난 11일 출범했던 여야의정협의체(이하 협의체)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협의체는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불참하고 의료계에서는 학술 단체인 대한의학회와 의대 학장 모임인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만 참석하는 등 ‘반쪽 출범’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협의체의 운영 기한은 올해 말까지로, 다음 달 22~23일 전에 의미 있는 결과를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태도다. 하지만 박단 비대위원장은 협의체에 대해 ‘무의미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협의체가 첫발을 뗀 11일 SNS에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전공의와 의대생, 당사자 없이 대화나 하겠다는 한가한 소리를 하고 있다”며 “한 대표는 2025년 의대 모집 정지와 업무개시명령 폐지에 대한 입장부터 명확히 밝히시길 바란다”고 일갈했다. 이어 “눈치만 보며 뭐라도 하는 척만 하겠다면 한동훈의 ‘여야의정 협의체’ 역시 임현택 전 의협 회장의 ‘올바른 의료를 위한 특별위원회(올특위)’와 결국 같은 결말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올특위는 의료계의 입장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의협 주도로 구성한 범의료계 특별위원회다. 전공의와 의대생이 해당 위원회에 불참하면서 파행 운영되다 지난 7월 해체됐다. 정부는 협의체서 의료계가 제안한 내용에 대해 “진정성 있게 검토하겠다”는 견해를 밝혔다. 지난 11일 협의체서 의료계는 한국의학교육평가원 자율성 보장, 추가 합격 제한 등을 통한 2025학년도 의대 선발 인원 축소 등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윤순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지난 14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이하 중대본) 회의를 주재하면서 “마주 앉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만큼 활발한 대화와 소통을 통해 누적된 갈등을 해소하고 신뢰를 회복해 국민이 원하는 결과를 끌어낼 수 있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의협과 전공의 등 다른 의료계 단체의 참여를 호소했다. 박단 공개 지지 새 비대위원장 강경 투쟁이냐 VS 노선 변화냐 의료계 내부 상황은 크게 바뀌었지만 향후 상황은 여전히 ‘시계 제로(0)’ 상태다. 임 전 회장과 박단 비대위원장 간 갈등의 불씨도 여전히 살아있다.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공개적으로 요청하는 등 ‘(임 전 회장과)같이 갈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바 있다. 실제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요청하면서 “이해와 소통이 가능한 새로운 회장을 필두로 의협과 대전협 두 단체가 향후 상호 연대를 구축할 수 있길 기대한다”는 입장문까지 냈다. 임 전 회장의 탄핵안 가결 직후 박 비대위원장이 “결국 모든 길은 바른 길로”라는 내용의 SNS 글을 올리기도 했다. 문제는 임 전 회장이 박단 비대위원장을 상대로 반격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임 전 회장은 탄핵 사흘 만에 닫았던 페이스북 계정을 다시 열고 “박단과 그 뒤에서 박단을 배후 조종해 왔던 자들이 무슨 일을 해왔는지 전 의사 회원들에게 아주 상세히 밝히겠다”며 박단 비대위원장을 저격하는 글을 올렸다. 그러면서 “의협 대의원회 비대위원장과 의협 회장 선거가 더 이상 왜 필요한가”라면서 “박단이 의협 회장 겸 비대위원장을 맡아 모든 권한과 책임하에 의료 농단을 해결하면 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지해주셨던 모든 분에게 우선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이유가 어떻든 회장 취임 전부터 탄핵하겠다고 마음먹고 있던 자들에게 빌미를 주어 넘어간 것 자체가 제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또 의협의 근본적인 개혁의 첫걸음으로 의협 대의원회 폐지 등을 내용으로 하는 민법상의 사원총회를 개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원총회는 민법에 규정된 사단법인의 최고의사결정 기관이다. 의협 최고의결기구로 알려진 대의원총회보다 상위에 있고 정관의 규정으로 폐지할 수 없다. 사원총회는 이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경우나 총 사원 5분의 1 이상이 회의의 목적 사항을 제시해 청구하는 경우 소집될 수 있다. 반격 시작 내부 갈등? 올해 2월 시작된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10개월째로 접어들었다. 온갖 말이 오갔지만 되짚어보면 조금도 좁혀지지 않은 평행선 상황이 계속되는 모양새다. 정부와 의료계의 대치 상황이 길어질수록 ‘의료 붕괴’는 가시화되고 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정말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