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시밭길 대법원장 청문회 관전 포인트

이번엔 야당도 OK?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미스터 소수 의견’으로 불리는 조희대 전 대법관이 대법원장 후보로 지명됐다. 중도보수 성향을 지녔지만 법대로, 소신대로 판단하는 조 후보자의 인선 가능성을 두고 여러 관측이 제기된다. 특히 사법부 공백의 부담감을 함께 안고 있는 더불어민주당의 선택에 관심이 쏠린다.

이균용 전 대법원장 후보자의 임명동의안이 국회 본회의서 야당 주도로 부결된 지 약 40일째다. 법조계에서는 대법원장 공백으로 사법 행정의 마비를 우려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8일, 대법원장 공백을 끊겠다며 중도보수 성향의 조희대 전 대법관을 후보자로 지명했다. 

공백 해결?

조 후보자는 경북 경주 출신으로 대구 경북고와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1981년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1986년 서울형사지법 판사로 임관해 30년 가까이 법관으로 일했다. 2014년 3월 당시 양승태 대법원장의 임명 제청으로 대법관에 임명됐으며 퇴임 후 로펌에 가지 않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석좌교수로 후학을 양성해왔다. 

김대기 대통령 비서실장은 지난 8일 용산 대통령실 브리핑서 “조희대 후보자는 27년 동안 전국 각지 법원서 판사로 재직하다가 2014년부터 2020년까지 대법관으로 봉직했다”며 “법관으로서 국민의 재판받을 권리를 보장하는 데 평생 헌신했고 대법관으로서도 원칙론자로 정평이 날 정도로 법과 원칙이 바로 선, 합리적이고 공정한 판단력을 보여왔다”고 지명 이유를 설명했다. 

한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이번에는 후임자를 고르는 데 있어 (임명동의안)국회를 통과하는 부분과 대법원장 공백 사태가 오래되면 안 되는 부분에 신경을 많이 썼다”며 “(조 후보자가)문제없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조 후보자의 인선에 관해 여러 관측이 나온다. 법조계에서는 보수 성향의 원칙주의자로 불리는 조 전 대법관이 후보자로 지명되면서 야당의 반대로 인한 대법원장 공백 장기화를 우려하고 있다.

조 후보자는 진보 성향이 짙었던 김명수 전 대법원장 체제서 굵직한 사건에 반대 의견을 내놓으며 ‘미스터 소수 의견’으로 불렸다.

양심적 병역거부 처벌 관련 대법원 전원합의체 공개 변론에서는 처벌해야 한다는 소수 의견을 냈고,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에 비판적 다큐멘터리인 <백년전쟁>에 대해서는 “검증되지 않은 사료로 사실을 왜곡했다”며 반대 의견을 제시했다.

중도보수 조희대 전 대법관 지명
인선 가능성 두고 여러 관측 제기

박근혜정부 ‘국정 농단’ 전원합의체 사건에선 “박근혜 전 대통령은 자신에 대해선 어떠한 뇌물도 요구하지 않았다”고 반대 의견을 냈다. 최순실(개명 후 최서원)씨가 삼성그룹으로부터 받은 말 3필에 대해서도 “뇌물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소수 의견을 내기도 했다. 

현재 대법원 대법관의 성향은 중도·보수 7명, 진보 5명으로 구성돼있다. 조 후보자가 인선된다면 8 대 5로 더욱 중도보수 측이 힘을 받게 된다. 

게다가 내년 1월1일에 중도보수 성향의 안철상 대법관과 진보 성향의 민유숙 대법관이 퇴임한다. 대법원장이 대법관 인사권을 가지고 있는 만큼 조 후보자는 인선 이후 바로 후임을 물색해야 하는 상황이다. 해당 인사로 중도보수와 진보 측의 균형이 유지되는지 무너지는지 결정되는 점도 야당의 부담으로 보인다.


조 후보자는 안철상 대법원장 권한대행을 예방하기 위해 서울 서초구 대법원을 찾은 자리서 기자들과 만나 보수 색채가 강해질 수도 있다는 지적에 관해 “무유정법이라는 말이 있다. 정해진 법이 없는 게 참다운 법이라는 말”이라며 “예전 대법관 취임사에서도 우리 두 눈은 좌우를 가리지 않고 본다고 말했다”고 언급했다.

이어 “제가 한평생 법관 생활을 하면서 한 번도 좌나 우에 치우치지 않고 항상 중도의 길을 걷고자 했다”고 강조했다.

1957년 6월 태어난 조 후보자가 헌법이 정한 대법원장 임기(6년)를 채우지 못하고 2027년 6월 정년(70세)으로 물러나야 한다는 것도 약점으로 거론된다. 조 후보자가 임명될 경우 윤 대통령이 퇴임 전 후임 대통령과 협의해 차기 대법원장 후보자를 지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조 후보자는 임기 문제에 관해 “기간이 문제가 아니고 단 하루를 하더라도 진심과 성의를 다해 헌법을 받들겠다”고 기간이 문제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일각에서는 임기 문제는 오히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에게 호재라는 평가도 나온다. 민주당으로선 정권교체에 성공하면 곧바로 원하는 사람을 대법원장으로 지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법조계와 달리 정계에서는 조 후보자의 임명동의안이 무난하게 통과될 것이라는 의견이 나온다. 조 후보는 세간에서 ‘판사다운 판사’ ‘선비형 법관’ ‘돈 욕심 없는 판사’로 불린다. 조 후보자가 말로 자신의 견해를 이야기하기보다는 재판으로만 말하는 강단있는 법관이며 돈보다 배우고 가르치는 데 욕심이 있다는 평가다.

굵직한 사건 반대 의견
‘미스터 소수 의견’ 통과?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조 후보자는 지난 2020년 대법관 퇴임 후 성균관대학교 석좌교수로 자리를 옮긴 뒤 대법원장 지명 전까지 후학 양성에 힘썼다. 국내 대형 로펌 여러 곳이 영입 제의를 했지만 모두 거절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 후보자의 이 같은 인품은 2014년 대법관에 임명되기 전 인사청문특별위원회 논의 단계서 이미 인정받았다.

조 대법관 후보자의 인사청문특위 위원장은 당시 야당이던 민주당 김동철 의원(현 한전 사장)이 맡았다. 그는 청문회 실시 직후 본회의에 보고하는 과정서 “도덕성 측면서 특별한 흠결은 찾아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특히 김 의원은 “이번 청문회는 병역기피, 탈세, 위장전입, 부동산 투기 등 불미스러운 사안들이 전혀 제기되지 않았다”며 조 후보자의 청렴함을 강조하기도 했다. 

민주당 한 관계자도 조 후보자에 관해 “조 후보자는 보수쪽 문제든 진보쪽 문제든 자신의 소신을 관철한 인물”이라며 “조 후보자가 대법원장이 된다고 편향적으로 변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오히려 거론된 후보자 중 가장 중도에 적합한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김명수 전 대법원장은 지난 9월25일 퇴임했다. 윤 대통령은 이균용 서울고법 부장판사를 후보자로 지명했지만 민주당은 이 전 후보자의 도덕성과 성인지 감수성 등을 문제 삼고 임명동의안을 부결했다.


이 전 후보자의 임명동의안 부결로 대법원장 자리는 공석이 됐다. 사법부 수장인 대법원장 없이 대법원이 운영되는 것은 지난 1993년 부동산 투기 의혹으로 사퇴한 김덕주 전 대법원장 이후 처음이다.

민주당은 여전히 철저한 인사검증이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야당도 OK?

윤영덕 원내대변인은 지난 8일 서면 브리핑서 “헌정 사상 두 번째 대법원장 임명동의안 부결과 사법부 수장 공백 사태는 윤 대통령의 잘못된 인사가 불러온 결과였다”며 “사법부 수장의 공백으로 고통받은 것은 국민”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제 남은 일은 윤 대통령의 조 후보자 지명이 잘못된 인사의 반성 위에서 이뤄졌는지 살피는 것”이라며 “민주당은 조 후보자가 대통령실의 설명대로 원칙과 정의, 상식에 기반해 사법부를 이끌 수 있는 인물인지 국민의 눈높이서 철저히 검증하겠다”고 강조했다. 

<kcj5121@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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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끝 국민의힘 뒤집기와 자충수

벼랑 끝 국민의힘 뒤집기와 자충수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비상계엄 1주년을 맞아 페이스북에 사과 입장을 밝혔다. 국민의힘 원내 지도부도 기자회견을 열고 고개를 숙였다. 사과는 짧았지만,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비난은 길었다. 사과 의견을 통해 확인되는 국면 전환 노림수는 ‘한동훈을 제외한 빅텐트’인 걸까? 국민의힘 공보실은 지난 2일 오후 10시54분 출입기자들에게 지난 3일 지도부 일정을 공지했다. 공보실에 따르면, 지도부의 일정은 ‘통상 일정’이었다. 공개 외부 일정이 없단 의미다. 지난 3일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1주년이었다. 통상의 의미는? 지도부의 공개 외부 일정이 없단 것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의 비상계엄 관련 공개 사과 및 기자회견 일정이 없었단 의미로 해석될 수 있었다. 장 대표는 지난 3일 오전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사과 의견을 밝혔다. 장 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은 의회 폭거에 맞서기 위한 계엄이었다”는 등 “정당화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을 소지가 있는 주장부터 제시했다. 윤 전 대통령 파면에 대해서도 “한국 정치의 연속된 비극을 낳았고, 국민과 당원들께 실망과 혼란을 드렸다”는 등 ‘탄핵 반대’ 의견을 유지했다. 장 대표에 따르면, 국민의힘의 잘못은 하나로 뭉쳐 제대로 싸우지 못했다는 부분이었다. 자신에 대해서도 “당 대표로서 책임을 통감한다”고 강조했다. “장 대표가 사과하지 않을 것”이란 예상은 같은 날 오전 4시50분경 이정재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가 국민의힘 추경호 의원의 구속영장을 기각하면서 확실시됐다. 장 대표는 페이스북 게시글에서도 “추 의원 구속영장 기각은 어둠의 1년이 지나고 두터운 장막이 걷히고, 새로운 희망의 길이 열리는 신호탄”이라면서 대정부 투쟁에 의미를 부여했다. 장 대표는 “이재명정권의 대한민국 해체 시도를 국민과 함께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 대표가 사과 불가는 지난달 28일 대구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장외집회에서 어느 정도 예고된 것이었다. 당시 그는 “비상계엄에 대한 책임을 무겁게 통감한다”면서도 “우리가 흩어지고 분열한 결과, 이재명정권이 탄생했단 것을 기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책임을 무겁게 통감한다”면서도 이재명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비난하는 내용으로 연설 대부분을 채웠다. 5일 간격으로 같은 얘기를 반복한 것이었다. 당시 장 대표가 주장한 민주당에 대한 비난의 핵심 내용은 ▲의회 폭거·국정 방해 ▲무모한 적폐 몰이에 따른 공무원 사찰 위협 ▲폭거로 인한 민생 파탄·국가 시스템 붕괴 ▲내란 몰이 등이었다. 비상계엄 1주년에 강조된 “민주당 폭거” 국면 전환·결집 노리는 선 사과·후 비난? 국민의힘의 비상계엄 관련 사과는 ▲송언석 원내대표 ▲유상범·김은혜 원내부대표 ▲최수진·최은석 원내대변인 등 원내 지도부 차원에서 나왔다. 송 원내대표 등은 지난 3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국민께 큰 충격을 드린 비상계엄 발생을 막지 못한 데 대해 국민의힘 국회의원 모두는 무거운 책임을 통감하고 있다”며 “국민 여러분께 다시 한번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이어 군인·공직자·의료인·자영업자 등 비상계엄 선포 피해자들에게 “깊은 위로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고개 숙였다. 하지만 이후의 메시지는 이재명정부·민주당 비판 등 장 대표의 주장과 크게 차이가 없는 내용이었다. 송 원내대표는 “국민의힘 의원들은 패배의 아픔을 딛고 분열과 혼란의 과거를 넘어서 다시 거듭나겠다”며 “소수당이지만 처절하게 다수 여당과 정권에 맞서 싸우겠다”고 강조했다. 이전까지 국민의힘에서 장 대표에게 공개적으로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정치인은 오세훈 서울시장과 김용태·김재섭·권영진·엄태영·이성권·조은희 의원 등이었다. 국민의힘 양향자 최고위원은 지난달 29일 대전에서 진행된 장외집회 중 “국민의힘은 불법 계엄을 방치했으니, 반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가 일부 지지자들의 강한 항의를 받았다. 김재섭 의원은 지난달 28일 YTN 라디오 <더 인터뷰>에 출연해 “당 지도부의 사과가 없으면 제 나름의 사과를 해야 할 것 같다”며 “같이 메시지를 낼 국민의힘 의원들이 약 20명은 된다”고 주장했다. 이는 곧 “연판장을 돌리거나 기자회견을 할 수도 있다”는 압박으로 해석될 가능성이 있었다. 오 시장도 같은 날 채널A <김진의 돌직구 쇼>에 출연해 “중도층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라도 당 차원의 사과가 필요하다”며 “공당이라면 반성문을 쓰는 게 도리”라고 주장했다. 결국 이들은 당과 무관하게 대국민 사과를 했다. 오 시장은 지난 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 소속 중진 정치인이자, 서울시민의 일상을 책임지는 시장으로서 그 책임을 무겁게 받아들인다”며 “그날의 충격과 실망을 기억하는 모든 국민께 거듭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국민의힘 의원 25명은 지난 3일 국회에서 “비상계엄 선포 당시 집권여당의 일원으로서 비상계엄을 미리 막지 못하고 국민께 커다란 고통과 혼란을 드린 점에 대해 거듭 국민 앞에 고개 숙여 사죄드린다”면서 ▲헌법재판소의 윤 전 대통령 파면 결정 존중 ▲윤 전 대통령과의 정치적 단절 ▲국민의힘 체질 개선·재창당 수준의 혁신 등을 약속했다. 이어지는 각자 플레이 장 대표에게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후 자체적으로 대국민 사과 성명을 발표한 국민의힘 정치인들은 대체로 수도권에 기반을 둔 소장파다. 이들 중 국민의힘이 강경 보수 정당으로 자리매김하면 가장 큰 손해를 볼 정치인으로는 오 시장과 김재섭·김용태 의원이 거론된다. 오 시장은 높은 개인 인기를 바탕으로 민주당의 서울시장 탈환 공세에 맞서고 있다. 김재섭 의원의 지역구 서울 도봉갑은 원래 민주당 텃밭이었다. 김 의원은 지난해 총선 당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1094표 앞서 어렵게 이겼다. 지난해 12월7일 국민의힘의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 표결 집단 이탈에 동참했을 때도 지역구에서 규탄 집회가 개최되는 등 홍역을 치렀다. 김용태 의원도 경기 가평·포천에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박윤국 한국도자재단 이사장에 2774표 앞서 어렵게 금배지를 다는 데 성공했다. 국민의힘에 대해선 “강경 보수화가 진행된다”는 지적이 각계에서 이어지고 있다. 이 우려는 장 대표가 지난달 16일 유튜브 채널 ‘이영풍 TV’에 출연해 ▲자유통일당 ▲우리공화당 ▲자유민주당 ▲자유와혁신 등 원외 강경 보수 4당과의 지방선거 연대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깊어졌다. 장 대표는 지난달 28일 개혁신당과의 연대 가능성에 대해선 “지금은 연대를 논의할 때가 아니”라면서 선을 그었다. 최근 국민의힘에선 “한동훈 전 대표를 축출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할 만한 밑그림을 계속 그리고 있다. 국민의힘 여상원 윤리위원장은 지난달 17일 사의를 표명했다. 여 위원장은 “당에서 ‘물러나면 좋겠다’는 연락이 왔다”며 “굳이 능욕당하면서 자리를 지킬 필요가 없다고 판단돼 원하는 대로 하겠다고 답했다”고 주장했다. 일각에선 이를 두고 “윤리위원회가 ‘계파 갈등 조장’을 이유로 윤리위에 넘겨진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에 대해 주의 조치만 내린 것 때문 아니냐”고 의심하고 있다. 국민의힘 우재준 청년 최고위원은 지난달 30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원하는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고 윤리위원장을 사퇴시키는 게 정당한 일이냐”며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드는 민주당과 뭐가 다르냐”고 정면 비판했다. 이어 국민의힘 당무감사위원회는 지난달 28일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한 조사 절차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당원 게시판 의혹은 “국민의힘 당원 게시판에 올라온 윤 전 대통령 부부 비방글 작성에 한 전 대표 가족이 연루된 게 아니냐”는 의혹이다. 장 대표는 취임 직후 “사실관계를 명확하게 밝혀 당원에게 알릴 것”이라는 방침을 밝혔던 바 있다. 윤 전 대통령 부부는 정치적으로 몰락해 서울구치소에 갇혔고, 형사재판을 받고 있다. 국민의힘이 당원 게시판 의혹을 밝혀낸 후 거둘 수 있는 실익으로는 “한 전 대표를 국민의힘에서 쫓아내고, 친한(친 한동훈)계를 무력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 거론된다. 구 친윤(친 윤석열)계가 거둘 수 있는 이익이다. 한 전 대표에 대해선 보수 성향 유권자 사이에서도 호불호가 명확하게 나뉜다. 하지만 한 전 대표는 윤 전 대통령과 정치적으로 갈등하면서 비상계엄 해제에 동참했던 이력이 있다. 이 때문에 한 전 대표는 “국민의힘이 강경 보수 일색이 되는 걸 막는 방파제·상징”이란 분석이 오랫동안 있어왔다. 친한계로 거론되는 국민의힘 의원 중 상당수는 수도권에 지역구를 둔 소장파라는 분석이 나온다. 윤리위원장 쫓아낸 이유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선 “윤 전 대통령이 정치에서 폭력을 동원하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 잘 몰랐던 것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다. 정치의 본질은 대화·토론·협상이다. 영국 하원에선 20세기 초까지 의원이 총칼을 이용해 결투·난투를 했다. 물리적 폭력이 아닌 ‘언어폭력’ 선에서 공방을 이어가는 정치 문화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정착됐다.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가 전 세계에 줬던 충격은 민주주의가 충분히 성숙했다고 믿었던 대한민국에서 군을 동원해 정적을 제거하려던 사태가 발생했다는 것이었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는 사과 메시지를 먼저 짧게 발표하면서 이재명정부·민주당 비판은 길게 이어가는 형식의 사과 의견을 밝혔다. 사과엔 ▲직접적인 반성 ▲분명한 잘못 인정 ▲재발 방지 약속 ▲보상 약속 등 4개의 원칙이 제기됐는데 “상대방 비판에 더 중점을 둔 사과는 역설적으로 ‘반성을 하는 게 맞느냐’는 비판으로 이어질 소지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지난 2008년 광우병 촛불시위 당시 대국민 사과를 했고, 박근혜 전 대통령은 지난 2016년 최순실 게이트가 불거진 후 대국민 사과를 했다. 이 전 대통령은 “모든 것이 제 불찰이고, 국민께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후속 조치 중 국민의 마음을 헤아리는 데 미흡했고, 우려를 덜어드리지 못한 점에 대해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은 “국정을 꼼꼼하게 챙겨보고자 하는 순수한 마음으로 한 일”이라며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놀라고 마음 아프게 해드린 점에 대해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면서 “국민께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전 대통령은 당시 크게 불거졌던 각종 우려를 ‘괴담’으로 규정지었다. 이 때문에 촛불 시위 세력이 제시한 재협상 시한과 맞물린 시점에서 사과가 나온 점을 감안할 때 국면 전환을 위한 명분 쌓기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다. 박 전 대통령은 이미 각종 의혹이 광범위하게 제기돼 근거 자료들까지 제시되는 시점에서 “취임 후 일정 기간 일부 자료들에 대해 최순실씨의 의견을 들은 적은 있지만, 청와대 보좌 체계가 완비된 이후에는 그만뒀다”고 주장했다. 이로써 박 전 대통령의 해명은 신뢰를 잃었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의 사과도 두 전직 대통령의 사과처럼 자신의 주장을 뒤에 배치한 후 더 큰 비중을 부여하는 형식을 유지했다. 비상계엄 1주년에 강조된 “민주당 폭거” 국면 전환·결집 노리는 선 사과·후 비난? 이런 사과 형식은 국면 전환·지지층 결집 목적을 가진 이들이 활용한 사례가 많다. 대표적인 예로, 고대 로마에서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암살된 후 있었던 마르쿠스 브루투스·마르쿠스 안토니우스의 연설이 꼽힌다. 카이사르 살해를 주동한 브루투스는 “카이사르에 대한 내 사랑은 카이사르를 사랑하는 다른 분보다 절대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단언한다”고 선언한 후 “로마를 더 사랑해서 카이사르를 죽였다”고 주장했다. 이어 “나라를 위해 눈물을 머금고 가장 사랑하는 친구를 죽였다”고 강조했다. 안토니우스는 “카이사르 암살에 가담한 사람들은 모두 존경할 만한 분들”이라고 선언한 후 카이사르를 찬양하면서 그의 유언장을 공개했다. 유언의 핵심 내용은 “내 재산을 로마 시민에게 기증한다”는 것이었다. 또 카이사르가 살해당할 당시 입었던 칼자국과 피로 얼룩진 옷도 공개했다. 흥분한 로마 시민은 암살자들의 집을 습격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안토니우스·아우구스투스는 로마 정국을 장악했다. 불리한 내용을 먼저 짧게 거론한 후 유리한 내용을 장황하게 거론하는 형식은 정치적 목적을 위해 즐겨 이용된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가 짧은 사과 의견을 밝힌 후 이재명정부·민주당을 비중 있게 비판한 것도 강경 보수 세력에겐 강한 인상을 줄 가능성이 있다. 특히 장 대표는 비상계엄의 원인을 ‘의회 폭거’라고 규정했다. 이에 따르면, 윤 전 대통령은 카이사르가 된다. 비상계엄 해제에 찬성해 사실상 윤 전 대통령 몰락에 가담한 한 전 대표와 친한계는 브루투스 일당이 되는 구도가 그려질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강경 보수 세력은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해 어떤 의견을 제시할지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다. 공나형 전남대 학술연구교수는 지난 2022년 발표한 논문 <대통령의 공적 사과 담화에서 드러나는 ‘개입’ 양상>에서 김영삼 전 대통령이 지난 1993년 쌀 시장 개방을 수용하면서 밝힌 대국민 사과와 박 전 대통령의 최순실 게이트 관련 대국민 사과를 분석했다. 공 교수는 김 전 대통령의 사과문에 대해선 “선의로 행한 행위가 어쩔 수 없는 부정적인 결과로 이어졌다고 강조하면서 결과의 부정성에 관여하는 자신의 의도의 비중을 제거했다”고 분석했다. 박 전 대통령의 사과문에 대해선 “자기 고백이 많은 분량을 차지하지만, 그 고백의 원인이 되는 행위에 대해선 소극적”이라고 분석했다. 12월3일 조용히 장 대표·송 원내대표의 사과도 “어쩔 수 없었다”는 항변과 상대방 비판을 내용으로 채웠다. 그러면서 민주당 심판·보수 재건·대여 투쟁을 강조했다. 결국 두 사람의 답은 ‘한 전 대표를 제외한 빅텐트’ 방침 재확인으로 보인다. 국민의힘의 12월3일은 이렇게 조용히 지나갔다. <ctzxp@ilyosisa.co.kr>